(제27회)

제2편 백합꽃은 태양의 빛을 받다

《그 옷차림이 참 좋습니다》

 

간고한 후퇴의 로정을 따라 소개하여갔던 예술영화촬영소는 주체39(1950)년 11월경에 다시 조국으로 나왔다.

위대한 수령님의 천재적인 지략에 의하여 전전선에서 전환이 일어나고 인민군대가 반격으로 넘어간 시기였다.

만포에 도착한 문예봉은 그곳에 나와있는 허정숙 문화선전상을 만나게 되였다.

허정숙 문화선전상은 무척 반가와하며 문예봉과 박학을 자기 방으로 불렀다.

《오래간만이예요. 무척 고생들 했겠어요.》

허정숙 문화선전상은 시원시원한 성격그대로 그들의 손을 활달하게 잡아흔들었다.

《참 용해요. 당을 따라 수천리길을 걸었으니 우리 예술인들도 인제는 당당한 혁명가들이라고 말할수 있어요. 1차남진때에도 전선에서 공연들을 얼마나 전투적으로 잘했나요. 수령님께서 늘 말씀하시는 혁명적예술인들이 다 되였단 말이예요. 난 이것이 제일 기뻐요.》

대견한 얼굴로 문예봉과 박학을 바라보는 허정숙의 온몸에서는 생신한 활기가 뿜어져나오는듯 했다.

그는 미소를 머금은 얼굴을 예봉에게 돌리였다.

《예봉동무도 아마 일생에서 처음으로 그런 간고한 길을 걸어봤겠지요?》

《그렇습니다. 난생 처음입니다. 그러나 많은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요? 뭘 느꼈어요?》

《상동지, 전 수수밥에 소금을 찍어먹어도 내 조국이 제일이라는걸 이국땅에서 절감하였습니다.

위생실도 못쓰게 하지, 집도 빌려주지 않지… 어느 요업공장 북데기속에서 자면서 절대로 전쟁에서 지면 안된다는것을 정말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옳아요. 이 전쟁에서 우리가 지면 또다시 망국노가 되는거예요. 절대로 그럴수 없지요. 우리 수령님께서 계시는 한 꼭 승리할거예요. 벌써 우리 인민군대가 전전선에 걸쳐 반공격으로 넘어가지 않았습니까. 미국의 <강대성>에 대한 신화가 산산이 부서지고있어요.》

허정숙은 그들에게 현재의 전쟁상황과 정세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주었다.

확신에 찬 허정숙의 이야기는 상대방의 심금을 강하게 울리는 그 무엇이 있었다.

문화선전상의 말을 들으며 문예봉은 초조해지는 마음을 걷잡을수가 없었다.

지금처럼 국립극장에 배속되여 따라다니다가는 전쟁이 끝난 다음 영화인들이 떳떳이 총화지을 그루터기가 없을것 같았다.

누구나가 다 전쟁시기 조국앞에 기여한 자기의 몫을 총화할 때 우리 영화인들은 국립극장을 따라다니며 밥을 얻어먹었다고 말하겠는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였다.

이 문제는 사실 영화인들속에서 심각히 론의되던 문제이기도 하였다.

그런데 전쟁승리에 대한 허정숙의 확신에 찬 말은 예봉의 마음에 더욱 부채질을 하였던것이다.

문예봉은 조바심을 치며 허정숙에게 제기하였다.

《상동지, 한가지 제기할것이 있습니다. 우리 영화배우들에게도 영화예술극장 같은것을 따로 조직해줄수 없습니까?》

허정숙은 의아한 표정이였다.

《동무네야 지금껏 국립극장에 배속되여 활동하여오지 않았습니까. 무엇이 불편합니까?》

《아니, 그런것이 아닙니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 영화인들도 자기의 몫을 뚜렷하게 맡아하고싶어서 그럽니다. 이자 상동지도 말씀하셨지만 전쟁승리가 가까와오는데 전쟁이 끝난 다음 우리 영화인들이 국립극장이나 따라다니며 둘러리노릇이나 했다고 수령님께 보고드리겠습니까?》

옆에 앉아있던 박학도 흥분되여 일어섰다.

《상동지, 이 문제는 영화인들속에서 이미전부터 론의되여오던것입니다. 전쟁시기라 영화를 꽝꽝 찍어내지 못한다고 해서 우리 영화인들은 연극인들의 그늘밑에서 편안히 살고싶지 않습니다.

우리도 전쟁승리에 기여하는 똑똑하고 독자적인 몫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들의 절절한 말을 심중히 듣고있던 허정숙은 머리를 끄덕이였다.

전쟁승리에 힘껏 몸바치고싶어하는 영화인들의 마음이 가슴을 울리는것이였다.

얼마나 기특하고 찬양할만 한 일인가.

허정숙 문화선전상은 그자리에서 결심을 내리였다.

《좋아요. 수령님께 동무들의 의견을 보고드리고 결론을 받겠어요.》

예봉과 박학은 기쁨에 넘쳐 허정숙의 사무실을 나섰다.

새로운 투쟁의 활무대를 그려보는 그들의 발걸음은 활기로왔다.

그후 며칠이 지나 만포군 청룡리에서 영화배우극단이 조직되였다.

단장으로 심영이 선출되였다.

새로운 극단의 출현은 영화인들에게 무한한 창조의 열정을 안겨주었다.

그들은 영화배우극단의 특색에 맞는 작품들로 화선무대를 장식하고저 밤낮으로 들끓었다.

그들의 마음은 오직 불타는 화선무대로만 달리고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이 총포성 울부짖는 화선무대가 아니라 더 안전한 후방으로 가게 되리라는것에 대해서는 미처 모르고있었다.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 보내주시는 폭신한 솜옷이 예술인들에게 전달되였다.

간고한 후퇴의 길을 걸어온 예술인들은 사실상 옷주제가 말이 아니였다.

겨울철이였으나 홑옷차림 그대로였고 신발도 변변치 못했다.

허나 전쟁이기에 옷차림에 대해서 별로 마음을 쓰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수령님께서는 당을 따라 수천리길을 걸어온 예술인들은 진정 조국을 사랑하는 혁명가들이라고 높은 평가를 주시면서 그들을 아끼고 잘 돌봐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새로 조직되는 사단에 보낼 솜옷을 예술인들에게 먼저 공급하여주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사랑이 어린 햇솜으로 누빈 포근한 솜옷들을 받아안고 예술인들은 감격의 눈물을 흘리였다.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은 그뒤에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에 의하여 그들은 전선으로가 아니라 문화선전성간부학교에 가서 공부하게 된것이였다.

너무도 꿈같은 일이였다.

모든 사람들이 오직 전쟁에 대해서만 생각할 때 안전한 후방에 가서 공부한다는것이 너무도 믿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은 엄연한 현실이였다.

문예봉과 예술인들은 장자강반의 아담한 마을에 자리잡은 문화선전성간부학교에서 난생처음 사회정치교육을 체계적으로 받게 되였다.

전쟁의 총포성이 울리지 않는 아늑한 교실에 앉아 공화국에서 가장 유능한 교원들로부터 사회발전법칙과 조선력사, 우리 당의 투쟁력사와 인민주권에 대한 강의를 받으면서 예봉은 참으로 생각이 깊어졌다.

해방전에는 고작 무당집이나 찾아다니며 자기 운명을 점치던, 그야말로 몽매한 세계에서 헤매던 자기들이였다.

예봉이자신도 맏아들 종화가 태여나자 그의 운명이 걱정되여 누구보다먼저 무당집을 찾아갔었댔다.

무당은 아들애의 관상을 이리저리 보더니 잘만 키우면 큰사람이 되지만 그렇지 못하면 악인이 되리라는것이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도 어처구니 없는 말이였다.

사람이란 누구나 다 좋은 환경에서 품을 들여 키우면 훌륭한 사람이 되는것이요, 그렇지 않고 망탕 굴리면 나쁜 길에 떨어지기 마련이 아닌가. 어떤 사회적풍토에서 어떤 교육과 교양을 받으며 자라는가가 문제인것이다.

지금에 와서보면 너무도 뻔한 리치인데 점쟁이나 무당에게 운명을 걸며 희롱당하던 자신들의 어리석음도 그리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였다.

그것도 다 그 사회제도의 산물이였던것이다.

만일 수령님이 아니시였다면 나나 동료예술인들은 아직도 몽매한 세계에서 헤매는 광대의 신세를 면치 못하였을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수령님께서 아시고 조국이 사랑하는 혁명적예술인들이 되였고 오늘은 높은 정치적식견을 지닌 혁명적예술인들이 되라고 간부학교에 보내시여 체계적인 교육까지 주시니 어버이수령님이시야말로 진정 운명의 구세주가 아니신가.

문예봉은 한없는 고마움에 목메이는 심정을 안고 간부학교에서 정치사상적인 리론과 수양을 차곡차곡 쌓아갔다.

 

*            *

 

주체39(1950)년 12월 24일 이날은 예봉의 생애에서 또 하나의 잊을수 없는 날이였다.

이날 간부학교에서 공부하던 예술인들은 강계에서 온 자동차를 타고 향하리로 향하였다.

그곳에서 진행된 력사적인 조선로동당 제3차 전원회의교시를 전달받으러 가는 길이였다.

북방의 날씨는 령하30°C를 오르내리는 강추위를 몰아왔으나 예술인들은 수령님을 뵈옵게 된다는 흥분으로 추운줄을 몰랐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향하리의 갱도였다.

수많은 예술인들과 과학자들이 회의장에 모여있었다.

회의장에 들어간 예봉은 새삼스레 자기의 차림새에 눈이 갔다.

자동차를 타고올 때는 다 같은 솜옷차림이여서 별 생각이 없었는데 회의장에 들어와보니 녀배우들은 어느틈에 준비해가지고 왔는지 맵시있는 세타에 양복치마들을 입고있었다.

회의장에 모인 사람들이 거의다 누런 솜옷차림이여서 녀배우들의 화려한 옷차림은 눈이 부시도록 이채를 띠지 않을수 없었다.

녀배우들속에서 유독 자기만이 솜옷을 입고있는것을 발견한 예봉은 어지간히 당황하였다.

아무리 전쟁시기라 해도 큰 회의에 참가하면서 옷차림에 대하여 너무도 소홀히 한것 같은 자책감이 가슴에 매달렸던것이다.

그는 새삼스레 자기 옷차림을 살펴보았다. 투박한 동화에 솜버선 그리고 국방색솜옷…

푸른색, 자주색 등의 고운 세타에 날씬한 치마를 화려하게 차려입고 앉아있는 다른 녀배우들과는 너무도 대조되는 차림새였다.

예봉은 옹색하여 될수록 자기를 나타내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런데 회의장을 돌아보던 홍명희 부수상이 녀배우들속에서 문예봉을 알아보고 걸음을 멈추었다.

《예봉동무가 옳구만. 그런데 남자옷을 다 입구, 참 전쟁이란 사람을 몰라보게 만드는구만.》

홍명희 부수상이 능청스럽게 웃으며 한마디 하였다.

그바람에 예봉은 더욱 얼굴이 붉어져 몸둘바를 몰라 쩔쩔맸다.

시간이 흘러 회의장에 수령님께서 들어오시였다.

참가자들모두가 일어나 우뢰와 같은 박수와 《만세!》의 환호성을 올리며 수령님을 환영하였다.

수령님을 뵈옵는 문예봉의 눈에는 눈물이 핑 돌았다. 남천강기슭에서 수령님께 들국화꽃다발을 드리였던 그때로부터 1년남짓한 세월이 흘렀다.

별로 길지 않은 그 기간 얼마나 많은 사변들이 우리 조국땅에 들이닥치였던가. 그러나 수령님의 모습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으시였다.

만사람의 마음을 대번에 끌어당기시는 영채로운 안광, 름름하신 자태, 활달하신 걸음새…

전쟁의 중하와 조국의 운명을 한몸에 지니시고 불철주야의 로고를 바쳐가시는 수령님이시였지만 여전히 젊으셨고 활력에 넘치신 모습이시였다.

세차게 끓어오르는 환희와 격동이 피줄처럼 퍼져나가는듯 온몸이 뜨겁게 달아올라 예봉은 박수를 치고 또 치였다.

환호하는 참가자들에게 답례를 보내시며 주석단으로 걸어가시던 수령님께서 문득 걸음을 멈추시였다.

그이께서는 녀배우들속에 섞여있는 예봉을 어느새 알아보시고 곧추 그에게로 다가오시였다.

반갑게 웃으시며 손을 내미시는 수령님께 예봉은 뜨거운 눈물을 머금고 인사를 올리였다.

그이께 인사를 올리면서 예봉은 자신의 옷차림에 또다시 마음이 씌여졌다.

수령님을 뵈옵는 자신의 정성과 마음이 모자라는 표현 같아 송구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러다나니 자연히 몸가짐이 부자연스러웠고 옹송그려졌다.

그런데 수령님께서 그 옷차림이 참 좋습니다라고 말씀하시는것이였다.

예봉의 얼굴은 더욱 달아올랐다.

너무도 뜻밖의 말씀에 예봉은 송구스럽게 숙였던 머리를 버쩍 들었다.

수령님께서는 자애에 넘치신 얼굴로 전시에 이렇게 입으니 얼마나 전투적인가고, 배우라고 하여 환경에 맞지 않게 입고다니면 인민들이 좋아하지 않는다고 뜻깊은 말씀을 하시였다.

온몸을 휩싸고있던 불안과 어색함이 순식간에 날아났다.

몸과 마음이 삽시에 거뜬해짐을 느끼였다.

예봉은 끝없는 감사의 마음으로 수령님을 우러렀다.

예봉이자신도 부끄러워했던 그 차림새를 그토록 평가해주시는 수령님의 웅심깊으신 마음이 너무도 절절하게 가슴을 울리는것이였다.

언제면 수령님께서 바라시는 그런 높이에 오를수 있을가?…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의에 참가한 작가, 예술인, 과학자들과 《우리의 예술은 전쟁승리를 앞당기는데 이바지하여야한다》라는 력사적인 담화를 하시였다.

담화에서 수령님께서는 우선 우리의 작가, 예술인들, 과학자들이 당을 따라 산을 넘고 강을 건너 여기까지 후퇴하여 들어온데 대하여 매우 만족하게 생각한다고 하시면서 언제나 동무들이 보고싶었다고 절절하게 말씀하시였다.

순간 회의장에는 감격의 환호성이 꽃보라마냥 터져올랐다.

전체 회의참가자들은 목이 메여 눈물을 흘리면서 우렁찬 《만세!》의 환호성을 터치고 또 터치였다.

얼마나 그립고 뵙고싶었던 수령님의 품이였던가.

수령님의 품을 그리며 걸어온 후퇴의 수천리길에 무슨 일인들 없었으랴.

그러나 오직 수령님과 공화국을 믿고 시시각각 앞을 막아나서는 온갖 시련과 난관을 박차며 여기까지 걸어온 그들이였으니 그들은 자신들의 선택이 얼마나 옳았는가를 다시금 온넋으로 체험하며 신념과 의지를 더욱 가다듬고있었던것이다.

수령님께서는 회의참가자들이 진정되기를 기다리며 몇번이나 자리에 앉으라고 손짓을 하시였다.

이윽고 그이께서는 우렁우렁하신 음성으로 커다란 전환이 일어나고있는 전선의 형편과 국내외의 정세를 분석하여주시면서 이 전쟁에서 꼭 승리한다는데 대하여 명쾌하게 밝혀주시였다.

수령님께서는 다음으로 전쟁의 종국적승리를 위하여 작가, 예술인들앞에 나서는 과업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여주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작가, 예술인들은 소설, 연극, 영화, 수필, 만화를 비롯한 여러가지 형식을 다 동원하여 미제국주의자들은 사람의 탈을 쓴 승냥이이며 조선인민의 철천지원쑤라는것을 폭로하여야 한다고 하시였다.

또한 우리 인민의 영웅적투쟁모습을 세상에 전하는 사업을 진공적으로 하여야 하며 미제는 반드시 멸망하고 우리는 반드시 승리한다는것을 인민들에게 똑똑히 인식시켜야 한다고 하시였다.

예봉은 수령님의 교시를 한마디라도 놓칠세라 귀를 기울이며 수첩에 또박또박 적어나갔다.

수령님의 교시를 자자구구 새기면서 예봉은 수령님께서 우리 예술인들이 어떻게 살며 투쟁해나가길 바라고계시는가 하는것을 더욱 똑똑히 알게 되였다.

수령님께서는 또한 과학자, 기술자들이 하여야 할 과업에 대해서도 강령적인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참으로 이날에 하신 수령님의 연설은 전쟁시기 우리 작가, 예술인들, 과학자들앞에 나선 사명과 임무를 뚜렷이 밝힌 강령적인 지침이였으며 뚜렷한 리정표였다.

회의참가자들은 모두 신심과 랑만에 넘쳐 수령님의 교시를 관철할 일념으로 가슴들을 불태웠다.

전쟁의 포성은 아직도 거세게 울부짖고있었으나 그들모두의 가슴에는 벌써 전쟁승리의 축포가 찬연히 터져오르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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