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회)

제2편 백합꽃은 태양의 빛을 받다

화선천리

 

    가슴에 끓는 피를 조국에 바치니

    영예로운 별빛이 머리우에 빛난다

    …

 

온 조국땅에 메아리치는 멸적의 노래드높이 인민군대는 노도와 같이 남으로 진격하고있었다.

전쟁개시 3일만에 원쑤들의 아성인 서울이 해방되고 다음에는 인천해방소식과 수원해방소식이 날아들고 7월 20일에는 대전에서 미24사단을 전멸시킨 쾌승이 련속 전해져 온 나라가 환희의 폭풍으로 끓어번지는 격동의 나날이 흘러가고있었다.

조국해방전쟁의 포성은 영화예술인들의 생활에도 급격한 변화를 가져왔다.

리기영의 장편소설 《땅》을 각색한 작품과 《38°선우에서》라는 예술영화를 만드느라고 온 심혈을 창조세계에 바쳐가던 그들은 촬영소가 적들의 맹폭격에 불바다가 되여버린 그 시각부터 복수의 일념으로 가슴들을 태우며 저마다 전선을 탄원하여나섰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하신 력사적인 방송연설 《모든 힘을 전쟁의 승리를 위하여》와 6월 27일에 전체 당단체들과 당원들에게 보내는 당중앙위원회 편지는 그들모두의 심장을 부글부글 끓게 하였다.

예봉의 집에서는 16살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맏아들 종화가 군복을 입고 결연히 전선으로 떠나갔고 뒤이어 예봉은 《서울해방 평양시경축대》의 한성원으로 서울에 가게 되였다.

전선으로 달리는 남행렬차를 타고 그들일행이 서울에 도착한것은 례년에 드문 무더위로 등골에서 땀이 마를줄 모르던 7월초 어느날이였다.

황철을 비롯한 이름있는 배우들과 함께 2년만에 다시 서울땅을 밟게 되는 예봉은 너무도 감개무량하여 가슴이 막 울렁거림을 진정할수 없었다.

철없던 소녀시절에 첫 무대에 오르던 때로부터 중년나이가 다될 때까지 거의 반생을 흘러보낸 서울이였다.

고달픈 무대생활의 추억이 깃든 부민관을 비롯한 극장들과 《임자없는 나루배》, 《춘향전》의 화면이 흐르던 영화관들, 춘사의 넋이 아직도 배회하는듯 한 한강철다리와 세방살이의 설음을 안고 누벼가던 낯익은 골목들…

모든것이 한없는 감회를 자아내면서 가슴을 설레이게 하였다.

반생의 기쁨과 슬픔, 고민과 희망, 사랑과 피눈물을 그는 바로 여기 서울에 묻지 않았던가.

그러나 지금 예봉의 눈앞에 펼쳐진 서울은 그전날의 풍경이 아니였다.

퇴락해가는 봉건의 잔광과 식민지의 이색적인 풍조가 한데 엉켜붙어 바글대던 종로거리와 광화문을 위주로 한 건물들의 모습은 변함이 없었으나 그속에서 사는 서울시민들의 얼굴과 도시의 분위기는 격동으로 끓어번지는 거대한 도가니였다.

해방의 기쁨으로 서울은 어디에 가나 활기와 웃음으로 뒤설레고있었고 새삶에 대한 환희와 랑만으로 약동하고있었다.

거리의 곳곳마다 인민군대를 환영하는 표어들과 프랑카드들이 펄럭이고있었고 인민군대와 어울린 서울시민들의 환호성이 꽃보라마냥 터져오르고있었다.

기쁨으로 충만된 시민들의 활짝 펴인 환한 얼굴들과 환호하는 사람들의 물결속에 휩싸여 손을 흔들며 흘러가는 의용군대렬들, 곳곳에 걸려있는 인민위원회 간판들…

한마디로 서울은 약동하는 새 생활의 고고성을 한껏 터치고있었다.

이런 분위기속에서 서울해방을 경축하여 국립극장예술인들은 공연의 첫 막을 시공관극장무대에서 올렸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보내주신 공화국예술인들이 남조선인민들에게 보내는 첫인사이기도 한 력사적인 공연이였다.

초만원을 이룬 시공관극장은 서울시민들로 꽉 들어차있었다.

그들이 물밀듯이 극장으로 달려온것은 북조선의 새로운 연극에 대한 커다란 기대와 호기심도 있었지만 보다는 자기들이 그토록 사랑하고 기다려온 예술인들, 북으로 갔던 배우들의 친근한 얼굴을 한시바삐 보고싶은 그리움때문이였다.

우렁우렁한 목소리와 수려한 모습으로 연극무대를 울리던 황철과 심영, 단아한 조선녀성의 모습으로 은막을 아름답게 장식하던 문예봉 등을 어찌 서울시민들이 잊을수 있으랴.

일제의 악정에 시달려오던 그 수난의 시기에도, 미제의 구두발에 모든것이 짓이겨지던 군정의 폭압속에서도 한줄기의 청신한 샘물처럼 사람들의 가슴마다를 민족의 향기로 적셔주던 그들을 서울시민들은 얼마나 사랑하였던가, 또 얼마나 귀중히 여기였던가.

그러던 그들이 북으로 다 들어간 뒤 극장의 무대들은 텅 빈 장마당처럼 한산해졌다. 누구를 보려고 극장으로 가겠는가?

그만에야 시민들은 극장에 등을 돌려대고말았다. 그럴수록 시민들은 자기들의 사랑이고 자랑이였던 월북예술인들의 모습을 떠올리였고 무대에 선 그들과 함께 울고웃던 지난날의 극장무대를 한없이 그리워하군 하였다.

그런데 그토록 보고싶어하던 그 배우들이 경축의 사절로 서울에 나타난것이다!

어서 가자! 어서 가서 그립고그립던 그들과 귀에 푹 익은 그 목소리들을 들어보자!

앞을 다투어 밀려드는 시민들은 이 하나의 심정으로 가슴들을 들먹이며 흥분되여있었다.

무대뒤에서 서울시민들과의 감격적인 상봉을 기다리는 배우들 역시 흥분으로 설레이는 마음을 걷잡지 못하고있었다. 그리운 마음은 그들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수난의 그 세월 무대에서 공개적으로 내놓고 할수 없었던 말뒤의 말을 속속들이 헤아려들으며 우뢰와 같은 박수로써 자기들에게 무언의 찬사와 고무, 호응과 격려의 인사를 보내주던 서울시민들이였다. 무대와 객석이 한데 어울려 울고웃으며 흥분된 가슴들을 억제하지 못하고 손벽이 터져라 박수를 치던 밤들은 또 얼마였던가. …

이윽고 연극공연에 앞서 황철과 심영, 문예봉 등 북에 들어왔던 예술인들이 울렁이는 가슴을 안고 서울시민들과 첫인사를 나누려고 무대로 나갔다.

배우들과의 뜻깊은 상봉을 기다리며 설레이던 극장안은 낯익은 그들의 모습이 무대에 나타나는 순간 삽시에 물을 뿌린듯 조용해졌다. 바늘이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듯 한 고요한 정적이 온 극장을 휩쓴 순간이였다.

무대우에 선 배우들도 객석을 꽉 채운 시민들도 흥분으로 높뛰는 심장을 부여안고 서로 마주보던 그 시각, 그들은 축축히 젖어드는 서로의 눈길들에서 말로는 다 표현할 길 없는 한량없는 그리움의 정회를 속속들이 읽으며 소리없는 울음들을 삼키였다.

흥분으로 높뛰는 가슴을 지그시 누르며 황철이 한걸음 앞으로 나서며 저력있는 목소리로 첫 인사말을 떼였다.

《오래간만입니다!》

너무도 낯익고 너무도 귀에 익은 황철의 음성이 울리는 순간 막혔던 물목이 터지듯 와-하는 환성과 함께 울음소리가 터졌다.

《보구싶었소!》

《왜 인제야 왔소!》

《민족의 위대한 태양이신 일성장군님께서 남녘동포들에게 참된 인민의 예술을 보여 기쁘게 해주라고 우리들을 보내주시였습니다.》

또다시 우렁찬 만세소리가 극장안을 진동하였다. 오색테프와 꽃보라가 뿌려지고 배우들에게 꽃다발들이 안겨졌다. 수령님에 대한 감사의 정을 안고 그리움의 격정을 터치는 력사의 순간이였다.

극장안에 끓어번지는 감격과 흥분의 파도는 언제 가라앉을지 알수 없었다.

황철은 그치지 않고 박수를 치며 환호하는 관객들에게 다시금 머리숙여 인사를 올리고 손을 흔들며 이렇게 웨치였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다시는 떨어지지 맙시다!》

《옳소! 다시는 헤여지지 맙시다!》

발을 구르고 손을 흔들며 극장이 떠나갈듯 호응하는 관중들의 눈에서는 진한 눈물들이 번쩍이고있었다.

황철이 이날에 한 말이 어찌나 인상깊었던지 그때를 체험하였던 사람들은 오늘까지도 그 말을 잊지 않고 감회깊이 회억하군 한다.

《다시는 떨어지지 말자!》

황철의 이 말에는 남해의 기슭까지 냅다 달려가 미국놈들을 내쫓고 남북이 하나되여 공화국의 품속에서 행복하게 살자는, 또 꼭 그렇게 되고야만다는 승리의 신심과 락관이 맥박치고있었던것이다.

하기에 관중들도 전쟁승리에 대한 확고한 신심이 넘쳐나는 이 말을 온넋으로 받아들이며 그토록 열렬히 환호하고 감격해하였던것이 아닌가.

공화국예술인들과 서울시민들과의 첫 상봉은 이렇듯 감격의 열풍속에서 뜻깊게 진행되였다.

그날 국립극장예술인들은 불멸의 혁명송가 《김일성장군의 노래》로 공연의 첫막을 올리였고 뒤이어 태백산빨찌산들의 투쟁을 내용으로 한 연극 《산사람들》을 공연하였다.

공연에 대한 관객들의 반향은 대단하였다. 그들은 처음으로 사상예술성이 높은 진정한 연극을 보게 된것이였다.

저조한 내용과 낡은 연기풍의 신파극에 진절머리를 느끼던 시민들은 북에서 불어온 신선하고도 고상한 연극의 새바람을 마음껏 들이키였다.

당시 서울해방을 경축하는 연극공연은 여러곳에서 진행되였다.

인민군예술극장의 예술인들은 《조국을 지키는 사람들》을, 평양시립극장의 예술인들은 《리순신장군》을, 내무성예술극장의 예술인들은 연극 《땅》을 공연함으로써 서울에 공화국의 청신한 연극열풍을 불러일으키였다.

그 연극열풍을 타고 전쟁승리에 대한 인민들의 신심은 하늘을 찌를듯 높아만 갔다.

남진하는 대오를 따라 화선천리길을 걷고걷는 예술인들의 무대는 총포성이 울부짖는 화선이였다.

당에서는 예술인들을 아껴 서울공연이 끝난 즉시 평양으로 돌아오도록 조치를 취하였으나 예술인들은 싸우는 전선을 떠나지 않고 전선위문공연을 하겠다고 한결같이 결의하여나섰다.

그들의 불타는 제의가 승낙되여 당에서는 10여명의 예술인소편대들을 무어 화선공연을 하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예술인들은 남진하는 대오와 함께 화선공연의 길에 오른것이였다.

문예봉이 속한 소편대는 제1대로서 여기에는 황철, 박학, 한진섭, 리재덕, 태을민, 문정복, 류현(유경애의 남편), 라웅, 남궁만 등과 미술가 정순모, 작곡가 김옥성 등이 망라되여있었다.

첫 공연을 영등포에서 한 그들은 전상자병원에서도 공연을 하였다. 인천에서는 공연을 한 후 수평선이 바라보이는 언덕의 나무그늘아래서 인민군용사들과 식사를 함께 나누면서 흥겨운 오락회를 벌리기도 하였다.

화선공연의 나날은 보람차기도 하였으나 힘겹기도 하였다.

수시로 날아드든 적기의 기총사격과 폭탄이 작렬하는 전장에서 자체의 힘으로 가설무대를 꾸리고 공연을 하자니 애로가 한두가지가 아니였다. 어떤 때는 적기의 폭격으로 공연이 몇번씩 중단된적도 있었으며 진격하는 인민군부대들을 찾지 못하여 며칠씩 산발을 헤매며 고생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예술인들은 힘들다고 결코 주저앉지 않았다. 그들은 포성이 울부짖는 전호가에서도 자체의 힘으로 순식간에 가설무대를 만들었고 모든 군인들이 빠짐없이 관람하도록 하루에 2~3회씩 공연을 하기도 하였다.

또한 공연시작전에는 후방소식도 알려주고 공연이 끝나면 인민군군인들과 함께 구슬땀을 흘리면서 전호도 함께 파고 탄약상자도 날랐다. 이 나날 문예봉의 몸과 마음은 더욱더 강철같이 굳세여져갔다.

수원을 떠나 평택으로 오는 도중 예봉의 일행은 후줄근해진 미군포로들의 대렬과 맞다들었다.

아직도 량볼이 사과알처럼 붉은 애티나는 어린 전사가 총창을 꼬나들고 겁에 잔뜩 질린 꺽다리 미국놈들을 줄레줄레 끌고가고있었다.

오만무례하게 날치던 미국놈들이 파김치처럼 노그라들어 애어린 전사의 손에 코꿴 송아지마냥 끌려가는 몰골은 볼수록 통쾌하기 그지없었다. 배우들은 흐뭇한 심정으로 꼬마전사의 당당한 모습을 오래도록 바래웠다.

우리는 벌써 이겼구나! 샘솟듯 하는 신심과 기쁨이 그들의 가슴에 흘러들었다.

 

*            *

 

그들은 아침에 평택에 도착하였다.

초연이 아직 가셔지지 않은 평택거리 여기저기에서 미군놈들의 송장냄새가 코를 찔렀다.

다행히 군당일군을 만나 그의 안내로 려관숙소에 려장을 풀었다.

오후부터는 비가 억수로 쏟아져내리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예술인들은 파괴되지 않은 건물에 가설무대를 세우고 두차례의 공연을 성과적으로 진행하였다.

저녁녘에 비가 멎자 또다시 조치원을 향하여 출발하였다.

비행기가 떠돌고 사방에서 적패잔병들이 준동하는 때이라 사실 위험한 밤길이였다.

비가 개인 밤하늘에는 어느덧 초생달이 떴다.

초생달을 등불삼아 한창 걷고있는데 등뒤에서 부르릉거리는 자동차소리와 함께 전조등이 밝게 비치였다. 서울방향에서 오는 화물자동차임이 틀림없었다.

《저 차를 타고갑시다.》

김옥성이 날쌔게 길복판에 나섰다. 문예봉도 덩달아 따라나서 손을 흔들며 소리를 질렀다.

《같이 갑시다!》

바로 이때 그 화물차를 노리고 비행기 한대가 쏜살같이 날아들었다. 어찌나 낮추 떴는지 초생달의 역광에 비친 비행기의 동체가 문예봉의 눈에 확 안겨들었다.

《항공!》

예봉은 무작정 소리를 치며 반사적으로 길옆도랑창에 뛰여들었다. 순간 꽈-꽝 하는 폭음소리가 땅을 진동하였다.

도랑창에 굴러떨어진 예봉의 몸은 고인 비물에 흠뻑 젖어 삽시에 물참봉이 되여버렸다.

한동안 기승을 부리던 비행기가 사라진 후 예봉은 도랑창에서 겨우 기여나왔다. 사위를 둘러보니 얼마 떨어진 곳에 황철이 쓰러져있었다.

《황철동무!》

예봉은 황급히 그에게로 뛰여갔다.

예봉의 부름에 황철은 가까스로 몸을 뒤척이였다.

그는 왼팔로 오른팔을 꾹 잡고있었다.

《내 오른팔이 떨어진것 같소.》

《예?》

깜짝 놀란 예봉은 그의 팔을 어루만졌다.

《아니?…》

예봉은 너무도 끔찍하여 어쩔줄 몰라하다가 겨우 후들거리는 손으로 수건을 찢어 그의 팔을 싸매주었다. 그러나 지혈되지 않아 동여맨 수건은 삽시에 시뻘겋게 젖어버렸다.

《이 일을 어찌해요?》

예봉은 가슴이 떨리여 그의 팔을 꼭 붙잡은채 눈물을 머금었다.

황철은 비행기가 사라진 하늘쪽을 말없이 쏘아보고있었다. 그의 눈에는 증오의 불길이 펄펄 타고있었다.

《미국놈들이 내 팔을 빼앗았는데 꼭 복수를 해야겠소.》

이윽고 그는 예봉에게 눈길을 돌리며 조용히 혼자소리로 말하였다.

《인제는 연출을 해야 할것 같소.》

예봉의 가슴은 갈기갈기 찢어지는듯 하였다. 배우가 한팔을 잃었으니 날개를 꺾인셈이 아닌가.

이때 문정복이 울면서 뛰여왔다.

《류현동무와 정순모동무가…》

그는 말끝을 맺지 못하고 또 울음을 터치였다.

자리를 차고 일어선 예봉은 그리로 달려갔다.

길섶에 류현과 정순모의 시체가 나란히 놓여있었다.

초생달에 비친 그들의 얼굴은 몹시도 창백해보였다.

방금전까지도 웃으며 같이 행군하던 그들이 죽었다는것이 도무지 현실로 믿어지지 않았다. 전쟁이래 처음으로 보게 되는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이였다.

가혹한 전쟁의 현실이 뼈속까지 실감되는 순간이 아닐수 없었다.

이날 피해는 컸다. 류현과 정순모는 놈들의 폭탄에 심장을 맞고 그자리에서 숨졌고 라웅과 남궁만은 다리에 심한 부상을 입었으며 문정복은 손가락이 잘리웠다.

뜻하지 않은 참변을 당한 대오의 분위기는 침울하였다. 예봉은 오던 길을 되돌아 군당으로 가서 담가대를 동원하여가지고 왔다. 응급처치를 한 후 환자들을 군당사무실로 날라갔다.

배우들중에서 제일 심한 부상자는 한팔이 잘린 황철이였다.

응급처치를 하였으나 계속되는 출혈로 하여 의식이 점점 흐려지고있었다. 고열로 하여 그의 몸은 불덩어리같았다.

예봉은 그의 이마에 찬물찜질을 해주며 조금이라도 고통을 덜어주려고 애썼다. 눈을 꾹 감은채 아픔을 참느라고 이를 악물고있는 그를 보느라니 뛰여난 화술과 번듯한 미모로 연극무대에서 관중들의 인기를 독점하던 그의 지난날이 떠올라 가슴이 저려왔다. 해방전에는 연극 《춘향전》에서 리몽룡의 역,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동학당》 등에서도 주인공역을 맡아 연극무대를 풍미하던 그였다. 그의 목소리가 너무도 독특하고 뛰여나 춘사까지도 탄복하면서 부러워하지 않았던가.

주체36(1947)년 7월 서울시 남산공원에서 신탁통치를 반대하는 연설을 류창하게 하였을 때 그에 열광적으로 호응하여나섰던 인민들의 환호성과 박수소리가 아직도 들리는듯 하였다. 그가 얼마나 인민들의 사랑을 받았는가 하는것은 춘천에서 5. 10단선을 반대하는 연극공연을 할 때 그를 노리고 10여명의 테로분자들이 달려들었을 때 인민들이 목숨을 걸고 보호하여 빼돌린 사실을 놓고보아도 능히 알수 있는것이다.

그러한 황철이 다시 무대에 설수 있을가?

예봉은 가슴이 아파 저도모르게 눈물이 글썽해졌다.

예봉이 다시금 조심히 붕대를 감아주는데 황철이 눈을 떴다.

눈물어린 예봉의 얼굴을 한창 바라보던 그는 입가에 미소를 그리였다.

《너무 걱정하지 마오. 예봉동무, 한팔이 없다고 예술활동을 못하겠소? 아직 심장이 뛰고있는데…》

그의 두눈에 별안간 벙끗하고 불꽃이 튕기였다.

그러더니 그의 입에서 귀에 익은 시구절이 조용히 흘러나왔다. 그가 애송하던 장편서사시 《백두산》의 한구절이였다.

거침없이 흐르는 물줄기마냥 그의 입에서 도도히 흘러나오는 시구절들! 항일혁명투사들이 지녔던 그 불굴의 넋과 투지를 자기 가슴속에 속속들이 부어넣으며 그들처럼 살려고 의지를 가다듬는 황철의 심장의 웨침이였다.

(불같은 사람! 열정의 인간!)

예봉은 눈물에 젖어 황철이 읊조리는 시 구절구절들을 심장으로 따라외웠다.

사무실의 분위기가 삽시에 변하였다.

상처를 처매고 누워 여기저기서 신음소리를 내던 부상자들이 하나, 둘 몸을 일으키고 그들을 간호하던 의사들과 배우들까지 합류하여 황철의 시를 따라읊었다. 마침내 황철이 읊는 《백두산》시는 우렁찬 합창시가 되여 평택의 밤하늘에 오래오래 울려퍼지였다.

그날밤 황철은 심한 출혈로 끝내 혼수상태에 빠지고말았다. 급히 병원으로 후송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급하였다.

서울로 가는 자동차를 잡으려고 예봉과 배우들이 길가에 나섰으나 끝내 성공하지 못하였다.

모두가 안타까와 연방 길가에 들락날락하고있는데 서울쪽에서 소형자동차 한대가 쏜살같이 평택군당마당으로 들어섰다.

《황철동지가 어데 있습니까?》

차에서 뛰여내리며 한 군관이 다급히 물었다.

모두들 의아한 속에서도 너무 반가와 무작정 자동차에 매달렸다.

후에 안 일이지만 그는 전선사령관 김책동지의 명령을 받고 달려온 군관이였다.

그무렵 전선사령부와 서울지구를 현지지도하고계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황철이 사경에 처하였다는 급보를 받으시였다. 그 소식을 받은 즉시 전선사령관 김책동지를 전화로 찾으신 수령님께서는 지금 황철동무가 중상을 당했는데 출혈을 많이 했겠으니 급히 자동차를 보내여 병원으로 후송하고 치료대책을 세워 무조건 살려야 한다는 지시를 주시였다.

그리하여 수령님께서 보내주신 이 자동차가 포연을 뚫고 서울에서 평택으로 달려왔던것이다.

전쟁의 준엄한 시각에 한 배우의 생명을 위하여 포연서린 전선길로 사랑의 구급차가 달린 례는 동서고금 그 어느 전쟁력사에도 있어본적이 없는 전무후무한 사랑의 전설이였다.

예봉과 배우들은 감격의 눈물을 삼키며 의식을 잃은 황철과 부상자들을 자동차에 실었다. 황철일행을 태운 자동차가 오던 길을 되돌아 서울쪽으로 멀리 사라질 때까지 예봉과 배우들, 의사들은 오래도록 움직일줄 모르고 서있었다. 전쟁이라는 거대한 사변속에서도 매 인간들의 운명을 하나하나 보살피고 책임져주는 위대한 사랑의 품에 안겨있다는 무한한 행복감에 예봉의 심장은 후더워졌다.

해방전에는 얼마나 비참했던 배우들의 운명이였던가. 그야말로 배우들의 목숨은 광풍앞의 초불신세였다. 병이 나도 누구 하나 따뜻이 보살펴주는이 없었고 치료 한번 변변히 받아보지 못하고 목숨들을 잃었다. 영화재사라는 춘사도 페결핵으로 신음하다 젊은 나이에 쓰러졌고 연극계의 혜성이라고 일컫던 차홍녀도 병난 몸으로 무대에 나섰다가 그자리에서 숨이 졌다. 몸이 성성할 때면 인기배우요, 병이 나면 그 순간부터 버려지는것이 해방전 예술인들의 운명이 아니였던가.

그런데 황철 한사람을 위하여 포화속을 뚫고 자동차가 달리니 이 얼마나 꿈같은 세상인가.

격정에 목메이던 그 시각 문예봉은 아직 다는 알수 없었다.

한번 안으시면 끝까지 품어주시고 생을 빛내여주시는 수령님의 품속에서 황철의 인생길이 어떤 기적으로 수놓아질것인가에 대하여…

수령님께서 보내주신 자동차를 타고 서울 영등포병원에 도착한 황철은 여전히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심한 출혈로 그의 생명은 경각에 달해있었다. 시급히 많은 량의 피를 수혈하여야 했다.

그런데 갑자기 어디 가서 그 많은 피를 구할수 있겠는가?

병원에서 안타까와할 때 황철에게 베푸신 수령님의 사랑을 알게 된 수많은 의사, 간호원들은 물론 병원에서 치료받고 전선으로 떠나려던 인민군군인들까지 저저마다 앞을 다투어 자기의 피를 뽑아달라고 팔을 내밀었다. 그야말로 감동없이는 볼수 없는 우리 공화국에서만 펼쳐질수 있는 아름다운 화폭이였다. 그 뜨거운 심장들에서 흘러나온 1300ml의 피가 황철의 몸에 고스란히 흘러들어 꺼져가던 그의 생명에 소생의 불꽃을 피워올리였다. 수령님의 위대한 사랑이 천금주고도 살수 없는 불사약으로 되여 황철을 살려냈던것이다.

이튿날 의식을 회복한 후에야 이 모든 사연을 알게 된 황철은 목메여 울고 또 울었다.

장군님! 제가 무엇이라고 이토록 크나큰 사랑을 베푸십니까. 이 사랑에 저는 무엇으로 보답해올려야 합니까?》

황철에 대한 어버이수령님의 사랑은 이에만 그친것이 아니였다. 수령님께서는 그를 후방병원으로 후송하도록 하시고 외국에까지 보내여 치료를 받도록 배려하여주시였으며 의수를 잘해주어 무대에 다시 내세워야 한다고 간곡히 교시하시였다.

사랑과 믿음에는 보답과 의리가 따르기마련이다.

대해같은 수령님의 은정을 받아안을수록 황철은 자기의 모든 넋과 지혜 그리고 생명까지도 깡그리 바쳐 보답할 일념으로 심장을 활활 불태웠다.

그야말로 그는 보답의 열정을 안고 이글이글 타는 불처럼 일생을 장식하였다.

의수를 하고 무대에 다시 선 그는 연극과 영화에도 출연하는 한편 연출도 하고 극대본도 창작하면서 이전보다 더욱 폭넓은 범위에서 다방면적인 예술창조활동을 벌리였다.

예술가로서의 량심이 깨끗했던 그는 의수를 하고 무대에 선 자기의 역형상에는 어차피 두팔이 다 있을 때와 다른 어설픈 점과 빈구석이 있으리라는것을 절감하고 그 결함을 메꾸기 위하여 초인간적인 노력을 경주하였다. 의수를 한 오른팔을 자유자재로 쓸수 있도록 하려고 그는 왼손으로 글을 쓰고 재봉도 하고 바느질도 하면서 이를 악물고 숙련시켜나갔다.

언제인가는 순회공연때에 쉬지 않고 왼손으로 초물모자나 돗자리를 뜨는 그의 모습앞에 배우들 누구나 탄복하여 마지않았다.

그 순회공연때 초물모자 2개와 멜가방을 만들었는데 멜가방앞면에 색실로 수까지 놓은 3마리의 토끼는 풀밭에서 풀을 뜯어먹는 토끼와 너무도 신통하였다는 일화가 오늘까지 전해지고있다. 이런 피땀어린 노력으로 그는 의수를 한 배우로서의 육체적결함을 훌륭히 극복하여나갔다.

전후에 창작된 연극 《리순신장군》에서 주인공으로 분장하고 공연할 때 있은 일이였다.

감옥에 갇혀 옥살이를 하는 리순신에게 면회를 온 동생이 어머니가 돌아가신 소식을 전하는 장면이였다. 그때 어머니의 비보를 받은 황철의 연기가 어찌나 진실하였던지 동생역을 맡았던 배우는 그만 무대라는것도 잊고 진짜로 그의 두팔을 와락 붙안으면서 흐느끼였다.

그바람에 황철의 의수가 떨어졌다. 동생역을 맡은 배우는 순간적으로 당황하여 어쩔줄을 몰랐다. 그러나 황철은 태연하게 허리를 굽혀 왼손으로 땅을 치며 통곡하는 즉흥연기를 하면서 의수를 재빨리 슬쩍 끼워넣었다. 물론 관중들은 아무런 눈치도 못채고 연극에 심취되여 눈물을 흘리였다. 그 어떤 정황에서도 능숙하게 연기를 해내는 연극인으로서의 황철의 세련된 자질과 능력을 보여주는 일화이기도 하였지만 다른 편으로는 오른팔을 위한 황철의 노력이 은을 낸 일화라고도 할수 있었다. 왼팔처럼 오른팔을 능숙하게 쓸수 없었다면 만사람의 눈길이 쏠린 무대우에서 어떻게 의수를 자연스럽게 끼워넣을수 있었겠는가. 공을 들이면 반드시 성공하기마련이다. 그의 노력을 두고 당시 동료들은 의족을 하고 다시 비행기를 탄 쏘련영웅 메레씨예브와 대비하군 하였다.

주체43(1954)년 5월 22일 황철에게 잊을수 없는 영광의 날이 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국립연극극장에서 공연하는 연극 《리순신장군》을 보시려 극장에 나오시였던것이다.

수령님을 모시고 공연을 하게 된 황철은 흥분으로 하여 안절부절하였다. 성성한 두팔로 완벽한 연기를 보여드릴수 없는것이 안타까왔다.

드디여 막이 오르고 공연이 시작되였다.

황철은 침착한 마음으로 주인공 리순신의 역을 훌륭하게 수행하였다.

연극이 끝나자 수령님께서 제일먼저 박수를 쳐주시였다.

그이께서는 옆의 일군들에게 저 사람이 바로 황철이요, 미국놈들에게 한팔을 잃었지만 저렇게 연기를 잘하오라고 하시면서 몹시 대견해하시였다.

수령님의 모습에서 제 자식을 내세워주고싶어하시는 친어버이의 사랑을 가슴저리도록 느끼며 황철은 흘러내리는 눈물을 걷잡을수 없었다.

그후 황철은 우리 나라 예술인들속에서 첫 인민배우칭호를 수여받았고 조국해방 10주년경축국가연회에도 참가하여 또다시 수령님을 만나뵈왔다.

연회석상에서 수령님께서는 그를 자신의 몸가까이 불러주시고 동무의 얼굴만 봐도 마음이 시원해진다고 호탕하게 웃으시며 친히 그에게 잔을 권하시였다.

순간 황철은 너무도 당황하여 주춤거렸다. 수령님께서 권하시는 잔을 두손으로 받아야겠는데 한팔이 의수였으니 어찌하랴. 머뭇거리며 선뜻 손을 내밀지 못하는 그의 심정을 헤아려 수령님께서는 그의 왼손에 따뜻이 잔을 들려주시며 손수 술을 부어주시였다.

황철은 가슴에서 고패치는 인사의 말을 드리려고 했으나 목이 꺽 막히여 입을 열수가 없었다.

두눈에서 흘러내리는 뜨거운 눈물만이 그의 심장의 아뢰임을 대신하고있었다.

언제인가 수령님께서는 황철을 친히 저택으로 부르시였다.

수령님께서는 황철동무가 공화국북반부에 들어온지 10여년이 지나도록 좀처럼 시간을 내지 못했는데 오늘은 이야기를 좀 나누자고 우정 시간을 냈다고 하시며 오랜 시간 그와 담화를 하시였다.

그의 가정형편과 의수를 한 후의 건강에 대해서까지 일일이 물어보시며 그이께서는 불편한 몸으로 연기를 잘한다고, 혁명의 꽃을 계속 피우고있다고 치하를 하시였다.

그러시고는 그를 대견하게 바라보시며 불편한 몸에 이제는 나이도 있기때문에 다른 사업을 맡기자고 하는데 본인의 생각은 어떤가고 물으시였다.

뜻밖의 말씀에 황철은 놀랐다. 다른 사업이라니? 그러면 무대는?

그의 표정에서 순간적으로 떠오른 속생각을 읽으신듯 수령님께서는 다른 사업이라고 하여 무대생활과 관련이 없는 사업은 아니라고, 당에서는 황철동무에게 교육문화성(당시) 부상의 중요직책을 맡겨 동무가 문학예술부문사업전반을 보도록 하려고 한다고 하시며 미소를 지으시였다.

황철은 너무도 놀라서 어망결에 자리에서 일어서기까지 하였다.

《저같은 사람이 어떻게 그런 중한 사업을 맡아볼수 있습니까. 전 무대밖에 모릅니다.》

솔직한 그의 말에 수령님께서는 부상의 직책을 맡았다고 하여 결코 무대를 떠나라는것은 아니고 부상사업을 하면서 필요할 때는 연기도 하고 방송소설랑독도 할수 있다고 호탕하게 웃으시며 그의 어깨를 눌러앉히시였다.

그러시면서 지도일군으로서 사업을 어떻게 조직하며 일해야 하는가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하나하나 가르쳐주시였다.

이렇게 되여 황철은 일개 배우로부터 나라의 교육문화사업을 지도하는 일군으로까지 성장하여 교육문화성 부상, 국립연극단 총장 등을 력임하면서 《붉은 선동원》을 비롯한 천리마현실을 반영한 새로운 연극을 창조하는데서 커다란 공헌을 하였다.

수령님의 은덕에 보답하기 위한 일념으로 심장을 끓이며 살아온 그는 생전에 오랜 배우생활과정의 체험과 연기형상을 정리하여 리론체계화한 《무대화술》, 《배우와 기교》라는 책을 비롯하여 수많은 도서와 론문들을 집필하여 연극리론과 배우연기교육에 이바지하였다.

그는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인형극을 개척하였다. 인형극 《흥부와 놀부》는 제3차 국제인형극축전에서 부꾸레슈띠상을 받았으며 황철은 1958년부터 국제인형극련맹 위원으로 활약하였다.

오직 예술창조사업에만 몰두하면서 검박하게 생활했던 그는 외국병원에서 치료할 때 록음기 1대를 사가지고와 그것을 극장에 내다놓고 화술교육용으로 썼고 당에서 전재고아들에 대하여 심려하자 서슴없이 6명이나 되는 고아들을 맡아 길렀다.

불치의 병으로 침상에 누운 몸이 되였으나 그는 병마에 도전하여 창작의 불꽃을 더욱 세차게 피워올렸다.

그는 항일혁명투사들의 불굴의 혁명정신을 반영한 회상실기 《돈화의 수림속에서》를 각색한 연극을 구상하고 무르익히면서 대본을 완성하여나가던중 49살의 젊은 나이로 불같은 한생을 마치였다. 마지막기력을 다 모아 이 연극을 꼭 완성하여 어버이수령님께 올려주기 바란다는 간절한 부탁을 남기고 심장의 고동을 멈춘 그의 손에는 연출대본이 꼭 쥐여져있었다.

보답의 일념으로 심장을 태우며 한생을 불같이 정열적으로 뜨겁게 살던 황철은 마지막생도 이렇듯 아름답게 장식하였다.

황철의 사망소식을 들으신 수령님께서는 매우 애석해하시며 비통한 심정으로 황철동무가 잘못되였다는것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그는 그렇게 죽을수 없습니다, 황철동무는 한시도 무대를 떠날수 없다던 사람인데 이제는 무대에서 그를 볼수 없단 말입니까, 황철동무가 운명하는 날까지도 연출대본을 보고있었다고 하는데 정말 죽지 말아야 할 아까운 사람이 죽었습니다, 우리는 당에 충실한 재능있는 예술가를 잃었습니다라고 말씀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조국이 통일되면 더 많은 일을 하여야 할 사람이 아깝게 너무 일찌기 우리곁을 떠났다고 하시며 황철동무의 서거와 관련한 부고를 《로동신문》에 내고 장례를 사회장으로 크게 하도록 하시였다,

그의 유해는 지금 애국렬사릉에 안치되여 영생의 삶을 빛내이고있다. …

황철에 대한 이야기를 특별히 길게 하는 문예봉의 눈에는 뜨거운것이 고여있었다.

《내가 황철에 대한 이야기를 이렇게 하는것은 그가 받아안은 사랑과 믿음이 그 한사람에게만 돌려진 특혜가 아니라 우리 예술인들모두가 받아안은 은정과 배려이기때문입니다. 해방전에야 팔자타령을 하면서 무당이나 점쟁이를 찾아가 자기 운명을 점치던 우리 배우들이 아니였습니까. 그러던 우리들을 수령님께서는 한품에 안으시여 지난날의 온갖 낡은 때를 하나하나 벗겨주시고 수령과 인민, 당과 조국을 알고 거기에 자기의 재능을 다 바칠줄 아는 혁명적예술인들로 키워주시였단 말입니다. 황철이 그토록 불같이 심장을 태우며 생의 마지막까지 충정을 다한것이 우연한 일이겠습니까? 아닙니다. 사람이 그렇게 살자면 그만한 삶의 원동력이 있어야 하는데 그 원동력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수령님의 대해같은 사랑과 믿음, 은덕이였습니다. 그 은덕에 보답하자고 황철은 그렇게 열정의 인간으로 살다가 불꽃처럼 아름답게 순직한것입니다.》

하나의 물방울에 온 우주가 비낀다는 말을 흔히 한다. 이 말은 황철에 대한 이야기에도 꼭 들어맞는 격언이였다.

황철의 생애라는 하나의 물방울에 이 나라 예술인들의 어제와 오늘, 래일의 모습이 찬연히 비껴있는것이 아닌가.

전쟁시기 예술인들이 걸은 화선천리길은 걸음걸음이 성장의 길, 사랑의 길이였음을 나는 가슴뻐근하게 느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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