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회)

제2편 백합꽃은 태양의 빛을 받다

들국화

 

김책 부수상의 검소한 사무실이다.

위대한 수령님을 보좌하여 청소한 공화국앞에 나서는 크고작은 모든 일들을 처리하느라 늘 바쁜 시간을 보내는 김책 부수상이다.

지금 그는 뜻밖에 자기를 찾아와 눈물부터 흘리는 문예봉을 착잡한 생각에 잠겨 바라보고있었다.

(무슨 일로 문예봉이 내앞에서 눈물을 흘리는것인가?)

문예봉이 진정되기를 기다리는 그의 마음은 번거로왔다.

이윽고 문예봉이 자신을 다잡은듯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을 때에야 그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예봉동무, 무슨 일이요? 사연을 이야기하오.》

김책 부수상의 따뜻한 음성은 격분으로 고패치던 억울한 마음을 부드럽게 녹여주는듯 예봉은 그제야 얼굴을 들고 가까스로 입을 떼였다.

《부수상동지, 이런 억울한 일이 또 어데 있습니까?》

첫마디를 떼였으나 또다시 울음이 북받쳐올라 예봉은 손수건을 싸쥐였다.

자기를 두둔하는 어머니앞에서 더욱 크게 울음을 터치는 아이의 심정이랄가. 예봉이로서도 자신을 걷잡을수가 없었다. 침착하면서도 너그러운 김책동지를 대하자마자 막혔던 물목이 터진듯 그동안 쌓였던 설음과 억울함이 눈물의 소나기가 되여 쏟아져내리는것이다.

《자, 이러지 말고 어서 속시원히 이야기하라는데… 이제 보니 예봉동무는 울보였구만.》

김책 부수상은 가볍게 미소하였다. 어데라없이 내풍기는 김책동지의 후더운 인정을 뿌듯이 느끼며 예봉은 가슴속사연을 조용히 터놓았다.

지방주권기관선거[주체38(1949)년 11월]가 있은 어제였다.

선거장에는 오색테프가 늘여지고 곳곳에서 흥겨운 춤판이 벌어져 경축분위기로 온 하당골이 들썩하였다.

남편 림선규와 나란히 투표를 마친 예봉은 동료배우들과 어울려 한바탕 춤을 추며 즐기다가 오후에야 집으로 돌아왔다.

명절음식을 만드느라 한창 지지고 볶고 기름내를 풍기는데 막내아들(종교)이 엉엉 울면서 들어섰다.

《오늘같은 명절날에 울기는 왜 우는거냐?》

제또래 아이들과 또 싸움질을 하였는가보다 하고 예봉은 심상하게 여겼다.

그런데 아들의 울음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

《왜 그러느냐? 누가 때리더냐?》

예봉은 눈물을 이리저리 씻는 아들의 손을 잡아내리며 살뜰히 물었다.

그런데 아들의 입에서 너무도 엄청난 말이 튀여나왔다.

《우리 아버지가 나쁜 놈이래. 선거장에서 반대투표했대.》

《뭘?》

순간적으로 예봉은 아연해졌다. 너무도 험악한 말이여서 온몸에 소름이 쫙 끼쳐들었다. 심장이 얼어드는듯 한동안 멍하니 서있던 예봉은 급기야 정신을 가다듬고 아들의 어깨를 흔들며 다우쳐물었다.

《누가 그런 소리를 하더냐?》

새파랗게 질린 어머니의 얼굴에서 심상치 않은 그 무엇을 느낀듯 아들애도 자못 심각해졌다.

영화촬영소 소장의 아들이 그런 말을 아이들속에 퍼쳤는데 아버지가 선거장안에서 반대투표하느라고 다른 사람들보다 늦게 나왔다는것이다.

아! 예봉에게는 순간적으로 직감되는것이 있었다.

분명 소장의 입에서 나온 소리가 틀림없을것이였다.

뇌리를 치는 그 어떤 예감에 예봉은 온몸이 오싹해졌다.

이런 식으로 복수를 하는가.

촬영소에 들어온 이후 이러저러한 기회를 타고 불순한 자기의 목적에 예봉을 리용하려들던 소장의 불쾌한 모습이 떠올랐다.

얼마전에도 모모한 간부의 침실에 들어가라고 강박하는것을 단호히 뿌리쳤었다. 그때 얼굴이 수수떡처럼 달아올라가지고 자기를 쏘아보던 그 무서운 눈총이 서늘하게 가슴을 찔렀다.

어디 두고보자! 비록 말은 없었으나 이런 악심이 치째진 눈초리에 얼마나 선뜩하게 비껴있었던가.

동료들의 말에 의하면 두번째로 되는 예술영화 《용광로》를 창작할 때에도 연출가에게 문예봉에게 배역을 안 줄수는 없으니 역을 살리지 못하는 방향에서 하라고 내리먹였다는것이다. 보이지 않는 모해의 그물이 음으로양으로 자기네 부부를 조이고 압박하고있음을 그는 시시각각으로 느끼고있었다.

생각해보면 주체37(1948)년 8월 총선거를 계기로 림선규가 많은 예술인들과 함께 북으로 들어올 때부터 그들부부에게는 상서롭지 못한 일들이 생긴것이였다.

북으로 들어올 당시 림선규는 서울 서대문구에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립후보로 선거되였었다.

그런데 남로당에 틀고앉아있던 반당종파분자들이 림선규에게 북에 본때를 보이는 작품을 써가지고가서 통장훈을 불러보라고 추동질하였다.

림선규는 수령님께서 계시는 북으로 가는데 무슨 본때를 보이고 말구가 있는가, 북에 가면 북에서 요구하는 작품을 쓰는것이 옳지 않는가 하면서 놈들와 요구를 일축하여버렸다. 이런 림선규를 아니꼽게 본 놈들은 대의원립후보에서 그를 떼고 대신 김선초라는 녀배우를 대의원립후보로 내세웠다.

몹시 기분이 상하는 일이였으나 그때로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이때부터 림선규를 곱지 않은 눈으로 보아오던 종파분자들은 정치적으로 그들부부를 매장해치우려고 이러저러하게 꾀하고있었던것이였다.

사실 선거장안에서 림선규가 조금 지체한것은 자기가 선거하는 대의원의 얼굴을 눈에 익히려고 사진을 찬찬히 들여다보느라고 그리 된것이였다.

그런데 놈들은 이 일을 트집잡아 선거함을 개봉하기도 전에 림선규가 반대투표하였다고 류언비어를 내돌렸던것이다. 만약 선거함을 개봉한 후에 반대투표가 한장이라도 나온다면 옴짝 못하고 그 오명을 림선규가 뒤집어쓸 판이였다.

버선목이라고 속을 뒤집어보일수도 없는 판국이라 억울한 마음을 누르고 선거함이 개봉되는 시간만을 기다릴수밖에 없었다.

선거함을 개봉하는 그 시각까지 예봉부부의 심장은 그야말로 졸아드는듯싶었다.

밤 12시, 드디여 선거함이 개봉되였다.

100% 찬성이였다. 예봉의 온 가족은 너무도 긴장하였던 나머지 그 소식을 듣자마자 울음판을 터치였다.

분한 마음 같아서는 당장 소장을 찾아가 한바탕 화풀이를 하고싶었으나 예봉은 입술을 깨물고 자신을 자제하였다.

그렇지만 이 분하고 억울한 마음을 어디에 속시원히 하소하지 않고서는 도무지 안정할수가 없었다.

그만큼 그의 가슴은 격분의 도가니로 부글부글 끓고있었다.

분화구를 찾아 소용돌이치는 격한 마음을 가까스로 부여안고 한밤을 뜬눈으로 새운 예봉은 이튿날 즉시 이렇게 김책 부수상에게 달려온것이였다. …

예봉의 이야기를 다 들은 김책 부수상의 얼굴에는 심중한 기색이 어리였다.

그의 이야기속에 내포되여있는 심상치 않은 그 무엇이 즉시에 꿰뚫어졌던것이다.

예봉이 생각하고있듯이 단순히 그들부부를 밉게 보는데로부터 오는 개인적인 복수감이 아닌것이였다.

보다 심각한 정치적색채가 그밑에 깔려있는것이였다.

놈들은 지금 남조선에 있다가 위대한 수령님의 품에 안긴 예술인들 특히는 문예봉이나 림선규처럼 이름있는 배우, 작가들에게 정치적감투를 씌우거나 마음의 상처를 입히여 어떻게 하나 북에 온것을 후회하도록 하려고 책동하고있었다.

결국 우리 수령님과 공화국의 권위를 훼손시키고 헐뜯으려는 행위가 아니고 무엇인가.

김책 부수상은 서서히 차오르는 격분을 지그시 누르며 예봉을 타일렀다.

《예봉동무, 울지 마오. 100% 찬성투표하였으니 결백성이 증명되지 않았소. 결국 동무네가 승리한것이지. 진리는 언제나 밝혀지는 법이요.》

그는 책상서랍을 열고 한권의 잡지를 꺼내여 예봉에게 내밀었다.

《자, 이걸 보오. 그러지 않아도 남조선놈들이 문예봉이 북에 가서 울고다닌다고 선전하는데 이렇게 진짜로 눈물을 흘리고다니면 어찌되겠소?》

예봉은 그가 내미는 잡지를 펼쳐들었다.

남조선잡지에는 문예봉이 북에 들어가 부닥치는 생활고와 정치적억압때문에 울며다닌다는 터무니없는 기사가 실려있었다.

새빨간 거짓말과 악랄한 중상으로 일관된 기사를 보는 순간 예봉은 등골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일제때부터 보도수단들의 허위와 날조, 시비중상의 세례속에 부대껴온 예봉이였으나 지금의 기사는 그 색채부터가 달랐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우리 공화국을 헐뜯는 선전자료로 리용되다니?)

김책 부수상은 잡지를 거머쥐고 벌떡 일어서는 예봉의 어깨를 눌러 앉히였다.

《예봉동무, 지금처럼 나약하게 울고다닐 때가 아니요. 그래야 좋아할것은 원쑤놈들밖에 없소. 앞으로 살아나가느라면 오늘보다 더 참기 어려운 일에 부닥칠수도 있고 별의별 일이 다 있을수 있소.

그때마다 자기개인의 울타리에서가 아니라 장군님께서 믿으시고 우리 공화국이 내세우는 나라의 딸임을 명심하고 행동해야 하오.

장군님께서 예봉동무를 믿고계시는데 뭐가 두려울게 있소.

지난 9월에도 장군님을 만나뵈온 예봉동무가 아니요. 그때 장군님께서는 예봉동무더러 들국화처럼 억센 꽃이 되라고 하시지 않았소.》

아, 들국화! 떨기떨기 피여 웃던 남천강기슭의 들국화꽃송이들…

못 잊을 그날의 화폭이 예봉의 눈앞에 선명하게 펼쳐졌다.

그날은 9월 21일,

새로 조직된 인민군부대에 나가 며칠동안 축하공연을 한 예봉과 예술인들은 그날 들판에 나가 군인들에게 군중무용까지 가르쳐주고 오후 3시경에 출발하였다.

그들이 다달은 남천강기슭에는 흰색, 보라색의 들국화들이 무리지어 피여 웃고있었다.

초가을정서를 함뿍 담은 청초한 들국화꽃송이들이 주단처럼 펼쳐져있는 광경에 황홀해진 예술인들은 환성을 올리며 저마다 꽃들을 한아름씩 꺾어들었다.

희희락락하며 그들이 남천강다리를 건너가고있는데 몇대의 승용차들이 련이어 옆을 지나다가 다리목에서 스르르 멈추어섰다.

차에서 한 일군(후에 안 일이지만 부관이였다.)이 급히 내리더니 그들에게로 뛰여왔다.

수령님께서 문예봉을 부르신다는것이였다.

너무도 뜻밖의 부르심에 예봉은 기쁨을 금치 못하며 무작정 부관의 뒤를 따라서 승용차가 서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차에서 내리신 수령님께 예봉은 손에 들고있던 들국화꽃묶음을 정히 안겨드리였다.

꽃다발을 받으신 수령님께서는 어디 갔다오는 길인가고 다정히 물으시였다.

《새로 조직된 사단에 축하공연을 갔다가 군중무용까지 배워주고 평양으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문예봉의 대답에 수령님께서는 환하게 웃으시며 군인들이 좋아하던가고 다시 물으시였다.

예봉은 밝게 웃으며 군인들이 좋아하고 배우들과 어울려 신이 나서 춤을 추던 광경을 그대로 말씀올렸다.

수령님께서는 그러한 예봉의 모습을 대견하게 바라보시였다.

그러나 옆에 서있는 김책 부수상은 초조한 기색으로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무연히 펼쳐진 풍요한 논벌을 말없이 바라보고계시던 수령님께서는 그에게 아무래도 황해도에 왔던 김에 몇개 면을 더 돌아보고 새 사단들이 조직되였는데 군대원호사업을 잘하도록 조치를 취해야겠다고 말씀하시였다.

장군님, 빨리 평양으로 가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김책부수상이 근심스런 표정으로 말하였다.

순간 수령님의 안색이 무겁게 흐려졌다. 그 무엇이라고 말할수 없는 아픔이 그이의 안광에 비껴있었다.

수령님께서는 침묵을 깨뜨리며 조금 지체되더라도 들렸다가자고 조용히 말씀하시였다.

물론 예봉은 그 당시 대화의 의미를 알수 없었다.

만약 그때 수령님께서 얼마나 고통스러운 순간을 체험하고계시였는가를 알수 있었다면…

예봉과 헤여지기에 앞서 수령님께서는 들국화를 정겹게 바라보시며 가을의 찬바람에 들꽃들은 다 스러졌어도 들국화만은 이렇게 싱싱하게 피며 웃는다고, 이 들국화처럼 억센 꽃이 되라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환절기인데 감기들지 않게 몸간수를 잘하라고 다심하게 이르시고 승용차에 오르시였다.

수령님의 승용차는 평양쪽으로가 아니라 금천군쪽으로 향하였다.

그이튿날인 9월 22일 온 나라에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어머님의 서거에 대한 부고가 비통하게 울려퍼졌다.

그 부고를 듣는 순간 예봉은 너무도 세찬 충격에 심장이 뚝 멎는것만 같았다.

아, 그래서 수령님의 안색이 그리도 어두우셨었구나.

그런데도 그이께서는 평양으로가 아니라 현지지도의 길을 계속 이어가시지 않았던가.

수령님과 김책 부수상사이에 오고가던 대화의 의미가 선명하게 부각되면서 예봉은 쏟아지는 눈물을 걷잡을수가 없었다.

자신은 감히 도달할수도 없고 바라볼수도 없는 위인들의 숭고한 세계였다. …

깊은 회억에 잠긴 예봉의 가슴을 울리며 김책 부수상은 절절하게 말하였다.

《예봉동무는 다 모를거요. 장군님께서 동무를 만나주시던 그 시각 정숙동무의 생명은 경각에 달해있었소. 그러나 정숙동무는 동지들에게 자기의 병상태를 현지지도의 길에 계시는 장군님께 절대로 알리지 못하도록 하시였소. 마지막순간에도 그는 장군님을 잘 모시고 장군님의 뜻을 받들어달라는 한마디를 유언으로 남기신채 웃으며 떠나갔소.

그분들도 인간이신데 왜 그리움이 없고 눈물이 없겠소. 그러나 조국과 인민을 더 귀중히 여기시기에 자신들의 개인적인것은 다 혁명에 바치시면서 웃음을 짓는게 아니겠소.

우리는 다 그분들처럼 살아야 하오. 나도 예봉동무도 그런 고결한 정신세계를 따라배워야 하고 그런 신념과 의지를 가져야 하오.

온갖 꽃이 다 스러진 뒤에도 시들지 않고 피여있는 들국화가 되라고 하신 장군님의 말씀의 뜻이 무엇이겠소. 바로 그 어떤 난관과 시련에도 꺾일줄 모르는 혁명가가 되라는 의미가 아니겠소. 그이의 당부대로 문화전선의 투사가 되시오.》

예봉은 북받치는 오열속에 자신을 질책하며 김책 부수상의 방을 나섰다. 이때처럼 자신이 부끄럽고 환멸스러운 때는 없었다.

김책 부수상의 말대로 수령님께서 믿어주시면 그만인데 무슨 큰일이나 난듯이 허둥지둥 뛰여다닌 자신이 민망스럽기 그지없었다.

만약 수령님과 김정숙어머님께서 이렇게 울고불며 다니는 나약하고 못난 내 모양을 보셨다면 얼마나 실망하시였겠는가.

믿음과 기대를 저버린 인간이야말로 추하고 혐오스럽기 짝이 없는데 내가 정녕 그런 인간이 아닌가.

끝없는 후회와 가슴저미는 자책감이 갈마들어 진정 못하던 이날은 예봉의 일생에서 결코 평범한 날이 아니였다.

이때부터 예봉은 들국화를 남달리 사랑하고 소중히 여겼다.

단아하면서도 청초한 들국화꽃다발과 더불어 그의 가슴속에는 김정숙어머님의 고결한 모습이 우렷이 떠오르군 하였다.

가을의 찬바람에도 시들지 않고 억세게 피여 웃는 들국화의 청초한 모습과 짙은 향기속에 우렷이 안겨오군 하는 김정숙어머님의 숭고한 모습! 어머님의 그 모습은 혁명가가 지녀야 할 신념과 의지, 고결한 풍모의 상징으로 예봉의 가슴속에 깊이깊이 아로새겨졌던것이다.

류달리 복잡하고 간고한 우리 혁명이였기에 문예봉의 생애에도 시련과 곡절은 있었다.

혁명대오에 잠입하였던 종파분자들과 불순분자들은 수령님께서 총애하시고 내세워주시는 문예봉을 꺾어치워보려고 여러번 쏠라닥질을 하였다.

50년대 중반기 종파분자들은 당내투쟁의 흐름을 악용하여 문예봉에게 반쏘분자라는 감투와 간첩죄를 들씌워 매장하려 하였다.

허나 문예봉은 당과 수령님께서 주신 신념과 배짱으로 꿋꿋이 놈들과 맞서싸웠으며 이 사실을 보고받으신 수령님께서는 당중앙위원회 일군을 직접 파견하시여 당에서는 문예봉동무를 믿는다는 뜨거운 정치적신임을 베풀어주시였다.

1970년대 중엽에는 일부 편협한 일군들의 잘못된 처사로 일시 영화예술인대오에서 떨어져나오게 된 일도 있었다.

거의 한생을 바치다싶이한 영화예술계에서 떨어져나오자니 마음속고충과 번민은 너무도 컸다.

무시로 갈마드는 의혹과 번뇌, 좌절감과 가슴아픔…

그러나 문예봉은 그 모든것을 강인하게 참으면서 생소한 고장으로 내려가 맡겨진 일을 성실히 하는데만 마음을 썼다.

그때 그는 예술활동과는 거리가 먼 일을 하면서도 언제한번 자신의 옷차림과 몸단장을 게을리한적이 없었다.

언제나 배우시절처럼 아름답게 화장한 얼굴로 새벽일찍 출근하는 그를 보면서 일부 사람들은 《역시 배우는 배우로구만.》하고 오랜 생활의 타성으로 가볍게 여기였다.

그러나 얼굴과 몸단장을 언제나 배우시절처럼 깨끗하게 하는 거기에는 바로 어떤 환경에서도 흔들림없이 살려는 문예봉의 남다른 깊은 속마음이 비껴있었다.

마음의 타락과 흔들림은 외모의 변화에서부터 오는 법이다.

문예봉은 자기가 지금 어떤 처지에 있건, 어떤 일을 하건 언제나 수령님과 김정숙어머님께서 알고계시는 배우-문예봉으로만 살고싶었다.

그래서 문예봉은 마음의 탕개가 늦춰질세라 자신을 채찍질하며 《내 고향》을 창작하던 그 시절처럼 자신의 얼굴을 가꾸고 몸을 단장하는데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였고 품을 들였던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흐트러지지 않는 그의 배우적인 자세와 몸단장은 결코 그의 직업적인 타성에서가 아니라 수령님께서 아시는 문예봉의 모습으로만 살려는 그의 변색을 모르는 삶의 각오와 정신력의 반영이였고 피나는 노력의 산물이였던것이다.

그때를 감회깊이 돌이켜보며 문예봉은 말하였다.

《저의 일생에서 정신적시련의 시기라고 할수 있었던 그때 나의 최대의 소원은 그 어떤 값을 치르더라도 촬영소마당을 한번 쓸어보는것이였어요.

어버이수령님과 김정숙어머님, 지도자동지의 거룩한 발자취가 어려있고 유서깊은 단풍나무가 설레이고있는 촬영소구내를 한번만이라도 다시 밟아보고 그곳을 정성껏 쓸어볼수 있다면 더 바랄게 없었답니다.

비록 몸은 멀리에 가있어도 마음만은 항상 이곳 촬영소구내에 와있었다고 할가.…

하여튼 나는 신심을 잃지 않았어요.

위대한 수령님과 지도자동지께서 계시는 한 어느때건 나는 꼭 다시 그 품에 안긴다는 믿음이 나의 마음속에 뿌리깊이 내려져있었답니다.

아마 수령님께서는 저의 앞날을 다 미리 내다보시고 그때 벌써 저에게 들국화와 같은 억세고도 강한 꽃이 되라고 당부하셨던가봐요.

저는 한생토록 수령님의 그 말씀을 내 삶의 좌우명으로 심장깊이 새기고 살렵니다.》

들국화꽃다발에 깃든 사연깊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문예봉의 두눈에는 한없는 그리움의 빛이 함뿍 어려있었다.

언제나 위대한 수령님과 김정숙어머님에 대한 한없는 그리움속에 살아가는 그였다.

위대한분들을 우러르고 따르는 한없이 맑고 깨끗한 그리움의 충정속에서 문예봉은 당과 수령만을 아는 혁명적예술인으로 삶의 자욱자욱을 빛내여나갔던것이다.

그의 심장속에 억척같이 뿌리내린 이 혁명적신념과 의지는 조국에 시련이 닥쳐왔던 조국해방전쟁의 불바다속에서 더욱더 강철같이 다져졌다.

 

련재
[장편실화소설]백합꽃 (제1회)
[장편실화소설]백합꽃 (제2회)
[장편실화소설]백합꽃 (제3회)
[장편실화소설]백합꽃 (제4회)
[장편실화소설]백합꽃 (제5회)
[장편실화소설]백합꽃 (제6회)
[장편실화소설]백합꽃 (제7회)
[장편실화소설]백합꽃 (제8회)
[장편실화소설]백합꽃 (제9회)
[장편실화소설]백합꽃 (제10회)
[장편실화소설]백합꽃 (제11회)
[장편실화소설]백합꽃 (제12회)
[장편실화소설]백합꽃 (제13회)
[장편실화소설]백합꽃 (제14회)
[장편실화소설]백합꽃 (제15회)
[장편실화소설]백합꽃 (제16회)
[장편실화소설]백합꽃 (제17회)
[장편실화소설]백합꽃 (제18회)
[장편실화소설]백합꽃 (제19회)
[장편실화소설]백합꽃 (제20회)
[장편실화소설]백합꽃 (제21회)
[장편실화소설]백합꽃 (제22회)
[장편실화소설]백합꽃 (제23회)
[장편실화소설]백합꽃 (제25회)
[장편실화소설]백합꽃 (제26회)
[장편실화소설]백합꽃 (제27회)
[장편실화소설]백합꽃 (제28회)
[장편실화소설]백합꽃 (제29회)
[장편실화소설]백합꽃 (제30회)
[장편실화소설]백합꽃 (제31회)
[장편실화소설]백합꽃 (제32회)
[장편실화소설]백합꽃 (마지막회)

독자감상글쓰기
Change the CAPTCHA codeSpeak the CAPTCHA code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18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