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회)

제2편 백합꽃은 태양의 빛을 받다

그리운 품을 찾아

  

주체37(1948)년 3월 15일 서울역,

새벽차를 기다리며 붐비는 사람들속에는 허줄한 옷차림의 한 로파가 있었다. 검댕이가 잔뜩 묻은 어지러운 얼굴, 눈에 댄 안대, 거기에 입몸이 잔뜩 부어 몰골이 말이 아니였다. 얼핏 보기에도 거지꼴이였다. 게다가 올망졸망한 아이 넷이 그 로파를 따라다니고있었다. 역전변두리에서 흔히 볼수 있는 가난뱅이로파의 추한 행색이라 누구도 눈여겨보는 사람이 없었다. 그가 바로 문예봉인줄 알았다면 사람들은 소스라쳐 놀랐으리라.

새벽 5시경에 예봉은 약속된 안내원을 알아보았다. 왼팔에 코트를 걸친 양복차림의 한 청년이 시야에 안겨들었다. 엄지손가락에 감겨진 붕대, 오른편귀등에 꽂혀있는 담배가치…

키가 좀 자그마한 그 청년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그 누구인가를 찾고있었다.

예봉은 슬며시 그의 뒤를 따르다가 옆으로 스치는척 하며 그를 툭 쳤다. 청년은 얼핏 머리를 돌렸으나 예봉을 알아보지 못하고 다시금 사방을 살피는것이였다, 예봉은 그의 곁에 바싹 다가들면서 다시금 그의 옆구리를 툭툭 쳤다. 그제서야 청년은 예봉에게 눈길을 모았다. 급기야 그를 알아본 청년은 놀라움과 탄복에 젖은 두눈을 커다랗게 떴다.

《야! 정말 귀신같이 변장했구만요. 선생님,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귀속말로 소곤댄 그는 나는듯이 사라졌다.

조금후에 《대한청년단》복을 쭉 빼입은 그가 웬 부인과 처녀애를 데리고 나타났다. 후에 알게 된 일이지만 그들은 《정판사사건》으로 희생된 박락종동지의 부인과 딸이였다.

《인제부터는 나를 조카라고 하십시오.》

예봉의 일행은 그의 뒤를 따라 렬차에 올랐다.

그는 드디여 그토록 그리운 장군님의 품을 찾아 북행길에 오른것이였다.

일생의 가지가지 추억이 깃든 서울거리를 뒤로 흘러보내며 북으로 달리는 예봉의 가슴은 한마디로 찍어말할수 없는 복잡한 감정의 물결로 일렁이고있었다.

그토록 마음속으로 흠모하며 그리워하던 김일성장군님의 품으로 간다는 환희와 기쁨, 새 생활에 대한 황홀한 꿈과 기대, 벅찬 포부…

허나 준엄한 투쟁의 전구에 남편과 동지들을 두고간다는 아픔 또한 가슴을 에이는것이였다.

투쟁의 련속으로 이어졌던 날과 달들이 그의 눈앞에 선히 어려왔다.

10월인민항쟁때 려운형, 김규식 등 사회계인사들을 찾아다니며 로동자들의 투쟁을 지지성원하여줄것을 요청하던 일, 홍명희, 허헌, 최백근 등 수많은 정객들과 접촉하면서 투쟁의 범위를 확대하여나가던 보람찬 나날들…

그속에서도 우렷이 떠오르는것은 재판장에 침착하게 서있던 남편의 의젓한 모습이였다.

짙은 병색이 도는 창백한 얼굴이나 여유있는 미소를 담고 서있던 남편에게서 얼마나 크나큰 고무를 받았던가.

해방이 되자마자 남로당에 들었던 림선규는 창동에 있을 때부터 자위대를 조직하여가지고 적산물자를 빼내려는 반동들과의 투쟁에서 솜씨를 보였으며 조직의 과업을 받고 투쟁단체들을 내오느라고 눈코뜰새없이 돌아가고있었다.

림선규의 이런 활동을 낌새챈 양주경찰서에서 그에 대한 체포령을 내리고 추적의 그물을 조이고있었다. 그리하여 여기저기 몸을 숨기면서 활동하던중 서울에서 체포되였던것이다. 남편의 체포소식을 들은 문예봉은 림시로 사업을 인계하고 부랴부랴 양주로 내려갔다.

림선규는 페결핵환자이므로 경찰서 류치장에 들어가면 며칠을 견디기 어려운것이다. 빼내지 않으면 목숨이 위태로왔다.

예봉은 양주경찰서 공의를 찾아가 사정하기로 작정하였다. 양주경찰서 공의는 비교적 민족적량심이 있는 사람이여서 예봉의 사정을 다 듣고는 남편을 결핵환자라는 구실로 석방시키자면 사찰계장을 매수하여 시급히 재판에 넘기는것이 가장 좋은 방책이라는것, 그러자면 돈을 먹여야 한다는 조언을 주었다.

예봉은 서슴없이 창동의 집을 팔아 묵돈을 손에 쥐였다.

문예봉의 돈을 먹은 사찰계장은 그의 요구대로 남편을 인차 재판에 넘길것을 약속하였으며 재판정에도 돈을 좀 가지고 참가하는것이 좋다는 귀띔까지 해주었다. 림선규를 체포한 형사에게도 뢰물을 주어야 등탈이 없다는것이였다.

드디여 재판하는 날이 왔다.

조여드는 가슴으로 재판장에 앉아있는 예봉은 불안한 마음을 진정시킬수가 없었다. 아무리 뒤공작을 하였어도 무법이 란무하는 때이라 잠시도 마음을 놓을수가 없었다.

제일먼저 서울대학교 학생이 법정에 나섰다.

키가 후리후리하고 결단성있게 생긴 그 학생의 이름은 이미부터 익히 들어왔었다. 투쟁력이 강한 청년이라는 평판이였다. 그러니 법정투쟁도 잘할것이라는것은 의심할바 없었다.

재판관이 먼저 그에게 질문하였다.

《남로당원인가?》

《그렇소.》

학생은 거침없이 대답하였다.

너무도 쉽게 나오는 대답에 재판관은 흘낏 그를 쳐다보기까지 하였다.

《남로당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재판관의 틀진 목소리가 다시 울리였다.

《매우 극좌적인 당이라고 생각하오.》

단마디로 자르는 그의 말에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어쩌면 저럴수 있는가? 기대가 와르르 무너짐을 느끼며 예봉은 의분에 차서 학생을 주시하였다. 어떤 말이 더 나올것인가?

《남로당에 대하여 그렇게 생각하는 리유는 뭔가?》

재판관의 음성이 누그러졌다. 기분이 매우 좋은 모양이였다.

《내가 그 당에서 나오면 그만인데 그 리유까지 재판장에서 말할 필요는 없다고 보오.》

《…》

아니꼬운 눈초리로 학생을 쏘아보던 재판관이 따지듯 물었다.

《정말 탈당하겠는가?》

《그렇소. 공산주의에 대한 나의 리념과는 맞지 않기때문에 탈당을 결심한거요.》

결패있게 말하는 청년의 태도는 단호하였다. 그 어떤 주저나 미련의 빛도 없이 당당하게 말하는 청년을 바라보는 예봉의 가슴에서는 격분의 불덩어리가 끓어올랐다. 그의 말 한마디한마디가 자기와 남편의 얼굴에 사정없이 뱉아버리는 침처럼 느껴졌다. 배신감으로 가슴이 얼얼해진 그는 증오의 눈초리를 학생에게서 뗄수가 없었다.

다음차례로 림선규가 나섰다.

수척해진 남편의 얼굴을 바라보는 순간 눈물이 콱 솟아올랐다. 병든 몸으로 류치장에서 시달렸을 생각에 가슴이 저려든다. 병약한 저이가 꽤 견디여낼수 있을가? 믿음과 불안이 엇갈리는 복잡한 심정을 부여안고 예봉은 남편의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하였다.

피고석에 서있는 림선규는 첫눈에 병자라는것이 알릴 정도로 안색이 창백하였다. 허나 서있는 자세만은 떳떳하고 당당하였다.

《피고는 남로당원인가?》

판에 박은 재판관의 질문이였다.

《아니요.》

림선규는 단도직입으로 부인하였다.

《거짓말 말아. 법앞에서 거짓증언하면 그 죄가 배가된다는것을 명심해.》

《사실 난 남로당에 들어가자고 해도 들어갈수 없는 몸이요. 내가 극작가라는것은 다 아는 사실이고… 나같이 자유주의가 심한 사람이 남로당과 같이 규률이 센 조직에 들어가서 어떻게 배겨내겠소. 아마 입당한 이튿날로 쫓겨날거요.》

방청석에서는 웃음소리가 일어났다. 그의 여유있는 태도에 공감하는 일종의 지지성원이라 할수 있었다.

조여들던 예봉의 마음도 훈훈해지며 어느정도 긴장감이 풀리는것을 느끼였다.

《당원도 아닌데 어떻게 민청을 조직했는가?》

재판관이 따지고들었다.

《사실 양주군당 조직부장이 내 친구였소. 나더러 자꾸 입당하라고 권고하기에 나같은 자유주의자가 그런 규률이 센 조직에 들어가면 견뎌배기지 못한다고 거절했더니 그럼 자기 일을 좀 도와달라며 면청년들속에서 내가 인기가 있고 신임도 받으니 민청이나 조직해달라는 부탁이였소. 그것마저 거절하면 친구지간에 의가 상할것 같아 좀 나서주었을뿐이요.》

《사실인가?》

《사실이요.》

놈들의 재판심리는 계속되였으나 림선규는 침착하면서도 사리정연하게 자신을 변호하였다.

첫날 재판이 있은 저녁, 사찰계장이 귀띔한대로 예봉은 림선규를 체포한 박형사를 불고기집으로 끌고갔다.

예봉의 초청을 받은 박형사는 너무 기뻐 입이 귀밑까지 째질 지경이였다.

이름난 문예봉과 동석한다는 자체가 그로서는 더없는 인생의 기쁨이였을것이다.

놈을 아예 뼈속까지 녹여버릴 작정을 한 예봉은 술과 불고기를 련속 들이대였다.

예봉의 환대에 녹아버린 박형사는 술이 거나해지자 제먼저 횡설수설하기 시작하였다.

《당신의 남편이 재판장에서 당원이 아니라고 내뻗쳤지만 사실 우리는 그 말을 믿지 않소. 당원이 아닌 사람이 민청을 조직했다는게 말이 되는가?》

박형사의 접시에 고기점을 연방 놓아주며 예봉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하였다.

《그가 당원인가 아닌가 하는거야 집사람인 내가 더 잘 알지 않겠나요. 페결핵환자인데다가 노상 작품때문에 책상앞에만 붙박혀있는 선비가 무슨 활동가이겠습니까?》

박형사가 허허 하고 헛웃음을 쳤다.

《예봉씨, 우리 경찰이 무슨 머저리인가 하오? 근거가 다 있어 체포한거죠. 예봉씨도 면민청위원장노릇하던 김기태라는자를 알지요? 우리가 그놈을 체포하고 집을 수색했는데 그놈의 사업수첩에 림선규가 조직의 지시를 받고 면에 내려와 민청을 조직하고 10월항쟁때도 지도했다는 내용이 다 씌여있었단 말이요.》

예봉은 속으로 고개를 끄덕이였다. 일인즉은 그렇게 된것이였다.

남편이 체포된 내막을 알자 예봉의 마음은 더욱 초조해났다. 김기태는 아직 구류중일가?

그가 끝까지 버티여낼수 있을가? 이놈이 나에게 비밀을 말해주는 리유는 무엇인가?

오만가지 생각이 삽시에 덮쳐들어 예봉의 머리는 쑤시는듯 아팠다.

그러나 아닌보살하고 련속 술을 들이대면서 남편을 빨리 내보내달라고 매달리는척 하였다. 사찰계장의 입김이 닿아서인지 아니면 예봉의 매수공작덕인지 자리에서 일어설 때 박형사는 예봉의 귀에 대고 은근한 투로 말하는것이였다.

《마음을 놓으시오, 예봉씨. 인차 남편은 석방될게요. 대신 앞으로 세상이 바뀌여지기라도 한다면 나를 잘 돌봐주어야 해요.》

박형사의 말은 실로 의미심장한것이였다. 남조선에서 벌어지는 진보적세력의 드세찬 투쟁앞에서 극우익반동들도 동요하고있었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시는 북으로 쏠리는 민심의 반영이 아닐수 없었다.

예봉의 가슴은 기쁨으로 끓어올랐다.

며칠후 림선규는 당당하게 경찰서문을 나섰다. 놈들과의 투쟁에서 거둔 또 한차례 승리였다.

예봉의 투쟁열의는 걷잡을수 없이 불타올랐다. 거세찬 투쟁의 물결속에 그는 더욱더 자기 몸을 푹 잠그었다.

려운형의 피살로 좌익계진영의 사기가 저조해진 때 조직에서는 8월 15일을 계기로 군중대회를 열것을 계획하였다. 문예봉은 조직의 지시대로 매일과 같이 공장, 기업소에 나가 선동사업으로 밤을 밝히였다. 그러던중 8월 13일 룡산정유공장에 나가 선동사업한것이 탄로되여 그에 대한 체포령이 내리였다.

그날밤으로 집을 나선 그는 전라도에 있는 대지주의 아들의 안내로 그집 별장에 피신하였다. 별장에는 문예봉뿐아니라 이미 많은 사람들이 피신해있었다.

정동원은 지주의 아들이지만 혁명투쟁에 과감히 뛰여든 선진적인 청년으로서 인간됨이 성실하고 선량하여 동지들을 잘 도와주었다.

대지주의 별장인지라 놈들의 수색이 미치지 않아 예봉은 그곳에서 근 5개월을 은신해있었다.

아무리 대지주라도 수십명의 인원들을 몇달씩 쳐주자니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였을것이다. (정동원은 6. 25전쟁이후 북으로 들어와 평양신문사에서 일하였다.)

남편 림선규는 그때 서울시당 선전부 부책임자로서 비밀아지트에서 사업하고있었다. 그러다나니 아이들 4명은 거리를 방황하는 형편이였다.

예술인들의 투쟁에서 이때가 가장 어려웠던 시련의 시기였다. 놈들의 백색테로는 더욱더 우심해지는데 예술인들의 얼굴은 공개되여있었기에 아무리 변장을 하여도 놈들의 눈을 피할수가 없었다.

이런 정세를 헤아리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고찬보동지를 비롯한 여러명의 혁명가들을 서울에 파견하여 예술인들을 북으로 데려오도록 하는 사랑의 조치를 취하시였다.

그러나 당시 남로당의 지도부에 기여들었던 미제의 고용간첩들과 종파분자들은 수령님의 사랑이 가닿지 못하도록 음으로양으로 책동하였다. 놈들은 북에 가면 누구누구의 등쌀에 견디기 어렵다느니, 북으로 가는것은 투쟁을 피하고 편안히 살자는 일종의 도피라느니 뭐니하면서 예술인들의 북행길을 차단하려고 각방으로 날뛰였다. 그러면서도 저들은 체포가 두려워 지주집 사랑방에 올방자를 틀고앉아 커피나 마시면서 예술인들을 공개적인 투쟁에로 내몰았다. 자칫하면 예술인투쟁대오가 적들의 백색테로에 완전히 좌절당할 지경에 처해있었다.

이런 실태를 꿰뚫어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예술인들을 하루빨리 북으로 데려올데 대한 거듭되는 조치를 강력히 취해주시였다.

그리하여 문예봉이 마침내 그처럼 그리고 바라던 북행길에 오르게 된것이였다. …

렬차는 개성역을 향하여 질주하고있었다. 4월남북련석회의 전야라 놈들의 경계는 이만저만이 아니였다. 몇번씩이나 검색을 받았다. 놈들의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하여 막내딸만을 예봉의 아이로 하고 나머지 3명은 박락종부인의 아이들로 위장하고있었다.

그런데 길떠나기 전부터 어머니의 변장한 모습에서 의심스런 눈을 떼지 못하고있던 5살난 막내아들(림종교)이 별안간 예봉에게 안기며 《엄마, 배고파.》하고 칭얼대는것이였다.

거지꼴의 예봉의 옷차림과 막내아들의 차림새가 너무도 판이하여 옆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의아해하는 눈초리로 그들을 주시하였다,

맞은편에서는 증명서를 검열하며 경관놈이 다가오고있었다.

예봉이 너무 당황하여 쩔쩔매고있는데 눈치빠른 맏아들 종화가 달려와 동생의 손을 잡아끌었다.

《누구보고 제 엄마래? 머저리같이!》

울상이 되여 끌리워가는 종교를 바라보며 호- 하고 안도의 숨을 내쉬는데 어느새 형의 손을 뿌리치고 또다시 종교가 뿌르르 달려오는것이 아닌가. 그는 무작정 예봉의 치마폭에 안겨들었다.

《엄마, 나 오줌마려워.》

진땀이 빠질빠질 돋는 순간이였다. 경관놈은 벌써 그의 앞좌석에까지 와있었다.

예봉은 종교의 손을 탁 뿌리치며 매몰스레 소리쳤다. 《시끄럽게 굴지 말고 네 엄마한테 가거라, 매맞기 전에.》

순간에 달라진 어머니의 표독스런 태도에 종교의 눈이 올롱해졌다. 금시 왕-하고 울음을 터칠 기세였다.

종화가 다시 달려와 동생을 꾸짖으며 끌고나갔다. 뒤미처 경관놈이 나타나 증명서를 검열하였다. 어찌나 분장을 잘하였는지 종시 그를 알아보지 못하였다. 후에 알게 된 일이지만 그때 예봉의 북행길을 낌새챈 놈들이 추격하여왔었다. 허나 그때는 이미 예봉이 개성을 거쳐 38°선을 넘은 뒤였다.

그이튿날인 3월 16일 서울신문들에는 벌써 문예봉의 월북소식이 대서특필되여 서울시안을 들었다놓았다.

《문예봉 월북! 더는 필딩거리에서 조선치마저고리를 입고 다소곳이 걷는 문예봉의 모습을 볼수 없을것이다.》

문예봉의 월북은 서울시민들에게는 물론 미국놈들과 반동들에게도 큰 충격을 준 정치적사건으로 되였다.

사람들은 자기들이 그토록 열렬히 사랑하고 아끼던 문예봉까지 선택한 북행길이야말로 정의와 진리, 민족의 넋을 지킬수 있는 진정한 삶의 길이라는것을 더욱 절감하면서 북에 대한 동경과 신뢰의 감정으로 가슴들을 끓이였다.

이에 바빠난 적들은 온갖 류언비어를 돌리면서 예봉의 월북이 사람들에게 미치는 정치적영향을 막아보려고 발악하였다.

놈들은 예봉이가 체포령때문에 막다른 골목에서 할수 없어 월북한것처럼 여론을 퍼뜨리였다.

말하자면 문예봉이 민족의 위대한 태양 김일성장군님을 찾아간것이 아니라 더는 갈곳이 없어 월북하였다는것이였다.

그러나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울수는 없는 법이다. 아무리 놈들이 날뛰여도 문예봉을 비롯한 예술인들의 가슴속에 굽이치는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흠모심을 그 무엇으로써도 꺾을수 없었으니 당시 끊임없이 흘러간 문화인들의 북행길은 막을수 없는 력사의 거세찬 흐름이였다.

문예봉의 뒤를 이어 수많은 예술인, 문화인들이 38°선을 넘어 공화국의 품, 수령님의 품에 안기여 약동하는 새 생활의 바다에 뛰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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