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회)

제5장 굽이치는 한강

6

 

상춘이 형무소로 넘어가 첫 면회가 허락되는 날이였다. 6월의 비가 부슬거리는 아침이였다. 어머니는 서대문형무소로 갔다.

채남이 먼저 와있었다. 한꺼번에 두사람씩 면회를 할수는 없었다. 어머니가 양보를 하든가 채남이 다음번으로 밀리든가 누구 하나는 상춘을 만나보지 못하기마련이다.

《전 여기서 기다리겠어요.》

채남이 자리에서 물러섰다. 어머니는 채남을 측은한 눈으로 보았다. 그는 상춘이 잡힌 후 얼굴이 상한듯 했으나 태도만은 침착하고 행동에서 소녀티가 가시고 성숙된 녀성의 틀이 잡혀갔다.

《아니다. 난 많은 경난을 겪었다. 슬픈것도 고생도 다 참을수 있다. 얼굴은 못 봐도 그애와 늘 얘기할수도 있고 그애의 눈을 볼수도 있다. 너들이야 아직… 오늘은 니가 만나봐라. 만나거든 벌써 여러번을 장자울을 다녀왔고 <계>에도 늘 나간다고 해라. 그게 아마 그애가 어미헌테 제일 바라는걸게다. 어서 들어가보라는데두.》

《계》라는것은 민족해방동맹을 뜻하는 암호였다. 상춘은 보석으로 출옥한 장자울의 태정과도 련계를 맺어 농민운동을 비밀리에 추진하도록 도움을 주었다. 지금은 민족해방동맹이 그것을 지도한다. 그 접선을 어머니가 맡아서 하고있다.

《아녜요. 어머니가 만나보셔야죠. 전 편지로 할게요.》

《아니래두 그러는구나.》

어머니와 채남이 그렇게 서로 양보를 하며 듣지 않을 때 그들의 차례가 와서 간수가 면회인의 이름을 불렀다. 어머니는 채남을 밀어 육중한 옥문으로 들어가게 했다. 채남은 마지못하는듯 뒤를 돌아보며 옥문으로 사라졌다.

어머니는 옥문앞에 서서 채남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비내리는 영천거리를 바라보았다.

얼마후에 채남이 나왔다. 그는 들어갈 때와는 달리 명랑한체 해보였으나 어머니는 젖어있는 그의 눈에서 젊은이들의 리별의 아픔을 읽을수 있었다.

《잘 있던?》

《어머니가 와계신다는걸 얘기했어요.》

《몸이 괜찮고?》

《잘 있어요. 그저 아무렇지 않다고만 해요. 체조도 하게 돼서 좋대요.》

《무슨 말을 하던?》

《어머니가 <계>에 나가시느냐고요!》

《그게 제일 궁금할게다.》

《몇번 갔다오셨다고 그랬더니 그제서야 마음놓인데요. 빙그레 웃지 않아요, 참.》

《또 다른 말은 없었니?》

《들어갈 땐 할 얘기가 많은것 같더니 막상 만나니까 가슴만 울렁거려 모두 잊어버리고 할 말 아무것도 없는것 같았어요. 이담엔 적어가지고 와야겠어요.》

《할 말이 있기로니 맘대로 할수가 있니? 그렇게 얼굴만 보는거지.》

채남은 전차길에 나와서도 어머니와 헤여지지 않았다. 우산을 같이 쓰고 전차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또 전차를 탄 다음에도 상춘에 대한 이야기는 한이 없었다.

면회시간이 불과 3분밖에 되지 않고 또 간수가 지키고있어서 채남의 말대로 별로 한 말도 없지만 그 짧은 시간에 무언으로 한 대화의 내용은 암만해도 끝이 나지 않았다.

수감된 학생들은 교도소를 《서대문대학》이라고도 부른다. 학생들이 많이 잡혀와서 체조시간이나 일요일 강제로 끌려나가는 예비시간 같은 때는 대학을 방불케 한다고 한다. 준호도, 허강도 만난다고 한다. 그들은 공부를 무섭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도 대학이라고 부른다. 상춘은 오히려 밖에 있는 채남에게 용기를 내라고 격려를 했다 한다. 감옥은 학생들에게 있어 하나의 싸움터같은 기분이였다고 채남은 말했다. 상춘에게서 받은 인상인 모양이였다.

어머니와 채남은 성북동에까지 함께 왔다. 상춘에 대한 공통의 화제가 그렇게 동행을 하게 했다. 또 어쩐지 채남은 어머니옆을 떠나기 싫어했다.

어머니도 그런 마음이였다.

아침에 내리던 비가 개이고 볕이 쪼이며 날은 더웠다. 이제는 여름도 한고비에 들렸다. 채남도 판자촌까지 올라오느라고 땀을 흘렸다. 어머니는 옷도 벗고 세면을 하라고 했으나 그는 수건으로 땀을 찍어낼뿐 옷은 벗지 않고 단정하게 입고있었다.

《약속했어요.》

방에 들어와 앉았을 때 채남은 겨우 하는 말로 입을 열고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뭘?》

《나올 때까지 기다리…》

채남은 채 말끝을 맺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가냘픈 손가락이 무의미하게 방바닥에 금을 긋는다. 우는지도 모른다.

《나올 때까지라니…》

어머니는 채남의 그 말을 무심코 되풀이해보다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너무나 어려운 일이여서 자신이 먼저 놀라며 뒤로 물러앉아 그와 조그만 거리를 만들며 남편의 사진을 쳐다보았다.

《난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어떻게 니가 그렇게…》

어머니는 가슴이 메여올라 더 말을 잇지 못했다. 채남은 울먹이며 말했다.

《어떻게라뇨. 그럼 제가 어떻게 정말 안 기다려요?》

채남은 상춘에게 약속하고 나왔다. 기다리겠노라고, 기다리며 상춘이 하던 일을 하겠노라고. 세속적인 말로 바꾸어 옮긴다면 약혼을 한것이다. 상춘은 그 말을 듣고 눈을 감았으며 화까지 냈다. 그래도 약속은 약속이였다. 그들은 부모와 벗들의 축복도 없이 감옥면회실에서 간수의 날카로운 감시밑에서 채남의 결심 하나로 약혼을 한것이다. 그 어떠한 형식보다도, 어떤 화려한 축복보다도 굳고 아름다운 약혼을 한것이다.

어머니는 자기가 《깨끄지》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던 처녀시절에 벽에 걸린 저 사진의 주인과 밤하늘 별아래 아무도 모르게 백년을 약속하던 그 옛날이 문득 생각나며 가슴이 울렁거렸다.

부질없이 그 비밀을 지난봄에 들려준것이 오늘에 와서 채남으로 하여금 그러한 결심을 내리게 한거나 아닌가 후회가 가슴을 쳤다.

채남이 가엾기도 하고 기특하고 미덥기도 했다. 무슨 말을 더 할수가 없었다.

벌써 옛날이야기다. 그사이 많은 세월이 흘렀다. 남녀간의 풍속도 많이 변했다. 그러나 상춘과 채남의 사랑, 그것도 어머니의 처녀시절같이 아직 시련과 고통과 많은 사연을 겪어야 하는가.

《어떻게 네가 그 어려운 일을…》

어머니의 입에서 저절로 그 말이 또 나오는것이였다.

《감옥에 앉아있는 사람도 있는데요. …》

《모르겠다. 네 맘대로 할 일이지만 난 네가 고마울뿐이다. 이 얘기랑 너도 하지 않은걸로 해라. 나도 듣지 않은걸로 하겠다.》

《왜요. 전 어머니앞에 분명히 말씀드렸어요. 오늘부터…》

어머니는 그 말을 못 들은체 하며 남편의 사진을 쳐다보았다.

(이 일을 어떡험 좋아요?)

그러나 사진은 말이 없다. 그것으로 해서 일제경찰에서도 매를 더 맞았다는 웃는 모습그대로 어머니와 채남을 보고만 있다.

 

여름도 가고 가을이 되였다.

어머니는 지금 북한강 고향근처의 강변으로 간다. 혼자서 간다. 가슴에는 민족해방동맹에서 태정에게 보내는 련락이 들어있다. 준호와 상춘이 구금된 후 조광래 등이 중심이 되고있는 민족해방동맹조직은 지금 공장, 농촌 심지어는 교도소에까지 그 줄을 뻗치고있다. 태정은 고향 장자울에서 농민계를 조직해가지고 농민운동을 하고있다. 그들사이의 련락은 어머니가 맡고있다. 어머니도 지금은 그 한 성원이다.

강은 한껏 맑고 푸르렀다.

어머니는 왼쪽으로 고향을 보며 강변을 걸어간다. 전에는 고향을 생각할 때면 큰아들 상백을 앞세우고 며느리, 작은아들, 손자를 거느리고 가는 꿈을 꾸었으나 지금은 그 꿈의 실현을 위하여 홀로 강변을 걸어간다.

가족들은 아니지만 많은 젊은이들과 함께 가는 기분이였다.

강은 물소리를 내며 흐른다. 왼편에 보이는 고향산천은 작년보다도 더 벌거벗었다. 철조망근처의 게딱지같은 집들, 어머니는 작년 마을에 갔을 때의 기억으로 마음이 아프다.

강은 남편의 생애와 더불어 어머니에게 많은 추억을 주고있다. 기쁜 일보다 슬픈 일이 더 많다. 생각하기조차 싫은 기록들이다. 그러나 지금 어머니에게 그것들은 슬프기만 한 추억으로가 아니라 세상이 밝아지고 통일되여 큰아들을 만날수 있는 날을 위하여 힘쓰도록 늙은 몸에 힘을 주는 근본으로 된다.

어머니는 평생을 두고 고생만 해왔다. 이제는 그것이 영원히 끝날 날이 와야겠다. 또 반드시 그것은 온다. 작은아들이 그 길에 들어섰다는 사실 그것이 어머니에게 그 확신을 더욱 굳게 가지도록 해준다.

그것은 틀림없다.

일성장군님의 현명하신 령도로 날로 발전하여 만인이 근심걱정없이 살고있는 북녘땅이 지척에 있고 투쟁의 길에 들어서는 청년학생들이 늘어가고있거늘, 어찌 이 땅에 통일의 새 아침이 밝아오지 않으랴! …

사람들의 행복이 무한대로 펼쳐진다. 큰아들을 만나는 며느리 귀선의 행복은 그동안의 고통을 보상하고도 남을것이다. 유정도 행복하게 자라리라.

채남과 상춘의 사랑도 더 열렬할것이다. 오원필에 대한 어머니의 존경과 애정이 무한하듯 말이다.

강을 찾는 고향사람들은 또 얼마나 행복하랴. 슬픔만을 안고 흐르던 강이 이제는 모든 사람의 행복을 싣고간다.

강은 금강산에서 발원하여 고향땅을 적시며 흘러 서울을 에돌아 굽이굽이 서쪽으로 북녘땅을 지척에 보며 바다로 흐른다. 어찌 생각하면 강은 어머니의 생애를 낱낱이 알고있으며 지금의 어머니의 마음도 알고있는것 같다.

강은 어머니의 마음을 담아 물소리높이 흐르고있다.

강변에는 들국화가 한창이다.

 

                                                                                       주체55(1966)년

 

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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