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회)

제2편 백합꽃은 태양의 빛을 받다

투쟁의 무대

 

《해방직후 남조선에서 문화예술인들의 투쟁이 활발하게 벌어지지 않았습니까?》

8. 15이후 남조선의 정치정세와 나라의 분렬을 막기 위하여 일어났던 문화예술인들의 투쟁자료를 어느정도 연구하였던 나는 당시의 직접적인 체험자인 문예봉에게서 더욱 실감있는 사실자료들을 듣고싶었다.

《그래요. 그때 예술인들은 참된 민족예술을 창조할수 있는 대로가 활짝 열린듯 모두 가슴들이 부풀어있었지요. 왜놈들 꼴이 보기 싫어 산골이나 지방 여기저기 은거하여있던 창작가, 예술인들이 짐들을 싸들고 서울로 모여왔습니다. 영화인들은 영화인동맹을, 연극인들은 연극인동맹을 뭇고 새로운 작품창작에 열들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당시로서는 영화창작이 거의 불가능한 상태였습니다. 작품이 없는것은 아니였지만 복잡한 정치적소용돌이가 이는 그때 영화창작에 돈을 대겠다는 기업가가 없었던것입니다. 더구나 하나밖에 없던 록음장을 미국놈들이 군수창고로 빼앗아가다나니 영화창작이란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였지요.

그래서 주로 연극과 지금으로 말하면 종합공연같은 형식의 작품들을 무대에 올렸습니다. 그때 무대에 올린 작품들은 거의가 다 위대한 수령님을 칭송하는 작품들이였고 인민들의 충천한 기세에 어울리는 반일주제이거나 당시 미군정하에서 빚어진 참상을 비판하고 새 생활을 위하여 투쟁하는 내용들을 취급하였던것 같습니다. 력사극이나 현실물극이나 하나같이 외세에 의한 민족의 분렬을 막고 민주주의적인 새 생활을 창조하자는 목소리가 높았댔습니다.》

《그러한 진보적인 연극들이나 예술공연들에 대한 탄압이 심하였다는 자료들을 많이 읽었는데…》

나의 호기심어린 물음에 문예봉은 고개를 끄덕이였다.

《미제와 반동들의 책동이 정말 극심했답니다. 당시는 조국에 개선하신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흠모심이 열광적으로 끓어오른 때여서 좌익바람이 셌습니다. <동지>, <동무>라는 부름이 가장 매력있는 말로 되여있었어요.

저의 남편 림선규도 남로당에 입당했고 나도 입당했는데 시대에 민감한 당시의 창작가, 예술인들 대부분이 좌익계에 속해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어요.

인민들의 이러한 정치적경향에 당황해난 미제와 그 반동들은 악랄하게 이를 탄압하였지요. 인민들의 정치적권리를 옹호하며 경제생활을 개선할데 대한 강령을 내세우고 투쟁하던 민주주의적 정당, 사회단체들과 인민들이 선거한 인민위원회들이 강제해산당하였지요. 그리고 민주주의적자유를 요구하는 인민들의 평화적시위마저 금지하고 총검과 땅크로 짓뭉개면서 수많은 인민들을 살상하고 애국적인사들을 검거투옥하였습니다.

주체35(1946)년 8. 15해방 1주년기념일에 발생한 광주참살사건과 쏘미공동위원회 재개를 촉구하는 전주시민대회에 경관들이 총탄을 퍼부어 수십명의 희생자와 부상자를 낸 사실들이 그 대표적실례라고 할수 있었습니다. 지어 미군정은 민주주의적출판물에 대한 정간, 페간, 발매금지처분을 내리다 못해 테로단을 동원하여 신문사와 출판사를 습격하는 지경에 이르렀지요.

극장에도 립석경관을 꼭 참가시켜 조금이라도 저들의 비위에 거슬리는 대목이 있으면 그 즉시 공연을 중지시키거나 예술인들을 마구 체포하는 폭거를 꺼리낌없이 하였답니다. 지어 공연무대에 수류탄이 날아들고 다이나마이트가 터지는 소동이 빈번했는데 황금정사건도 그 하나의 실례였지요.》

주체35(1946)년 12월 황금정에 자리잡은 자그마한 극장에서는 좌익계예술인들이 준비한 공연이 성황리에 진행되고있었다.

연극도 하고 춤도 추고 시랑송도 하는 일종의 종합공연이였다. 이름있는 무용가 장추화를 비롯한 명배우들이 많이 출연하고 해방된 인민들의 미감에 맞는 선진적인 작품들이 무대에 올랐기때문에 극장은 매일과 같이 초만원을 이루었다.

문예봉은 그 공연에서 시랑송을 하였다.

어느날 낮공연때였다.

문예봉은 무대에 나가 《기발을 내리라!》라는 시랑송을 하고있었다. 근 반세기동안 조선인민을 가혹하게 압박하던 일제총독정치의 폭압기구를 그대로 본딴 남조선의 모든 사법기관, 행정기관, 경찰기관 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내용이였다.

한창 정열적으로 시를 랑송하고있는데 갑자기 시꺼먼 물체가 무대로 날아올랐다.

《수류탄이다!》

다급한 웨침과 함께 무대와 객석에서 아우성이 터졌다.

순간적으로 당황해진 예봉은 그자리에 굳어져버리였다.

이찰나 그 누군가가 비호같이 무대에 날아올라 다짜고짜 예봉을 밀쳐뜨리였다. 와- 하는 소동과 동시에 쾅- 하고 수류탄이 폭발하였다.

검붉은 화염이 무대와 객석을 뒤덮었다.

그후의 일을 예봉은 기억할수가 없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여러 사람들의 근심어린 눈길들이 자기를 굽어보고있었다. 그는 자신이 어느 분장실에 누워있음을 가까스로 깨달았다.

수류탄이 날아오른 그 위기일발의 순간에 객석에서 한 청년이 그야말로 비호같이 뛰여나와 그를 구원하였고 많은 사람들이 예봉을 겹겹이 둘러싸고 호위하였다는것을 그는 후에야 알게 되였다.

자기를 호위하고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예봉은 감사의 눈물을 흘리였다. 자기를 위해주는 그 마음들이 너무도 고마와 목이 메여올랐다. 예봉을 구원한 청년은 어느새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았다.

이때 본정경찰서의 김태일형사가 살기등등하여 나타났다. 공연때마다 못되게 노는 악질형사였다.

김태일은 겨우 정신을 수습한 예봉에게 무작정 경찰서로 가자고 다그어댔다.

《아니 수류탄을 던진 놈을 잡아야지 피해자를 잡아가는 법이 어디 있소?》

《예봉씨야 무슨 죄가 있다고 잡아가노?》

주위의 사람들이 한마디씩 하였다.

김태일은 사나운 눈찌로 사람들을 휘둘러보며 위협투로 뇌까렸다.

《수류탄사건때문이 아니야. 입들을 다무는게 좋아.》

《아니, 말 안하게 됐소? 배우들을 죽이려던 범인을 잡을 생각 안하고 오히려 죽을번 한 사람들을 잡아가니 이거야말로 복통이 터질 일 아니요?》

《모든게 다 거꾸로 된 세상이란 말이요!》

사람들은 김태일 너따위가 다 무어냐는듯 마구 반발하였다.

그러거나말거나 김태일은 예봉과 함께 무용가 장추화, 박영로 등을 체포하여 경찰서로 압송하였다.

일제때에도 경찰서출입을 적지 않게 한 예봉이여서 별로 무섭지 않았다.

김태일은 예봉이부터 심문을 시작하였다. 심문의 요점은 누구의 부추김을 받고 불온시를 랑송하였는가 하는것이였다.

《그 시는 내가 고른겁니다.》

나직하게 대답하는 예봉을 지긋이 쏘아보던 김태일이 갑자기 어성을 높이였다.

《솔직히 대답하면 용서하고 거짓말하면 극형이야. 이름난 배우라 해도 법은 법이니까. 남로당 선전부일군들이 시켰지?》

예봉은 가슴이 띠끔하였다.

시랑송을 트집잡아 남로당일군들을 체포하자는 속심이 빤히 들여다보였다.

예봉은 정신을 바싹 가다듬었다. 자칫하면 놈들의 올가미에 걸려들수 있었다.

김태일은 무용가들에게도 동이 닿지 않는 추궁을 늘어놓았다. 붉은색옷을 입고 춤을 춘것이 곧 적색사상고취라는것이였다.

일본놈들의 사고방식과 어쩌면 그리도 꼭같을가? 남원에 갔을때 붉은 조명을 비쳤다 하여 적색사상류포죄로 몰아붙이던 일본놈들의 추태가 떠올라 예봉은 쓴웃음을 지었다.

문이 벌컥 열리며 박형사가 한 청년을 밀치며 들어왔다.

언뜻 바라보니 25살쯤 되여보이는 작달막한 청년인데 조선바지저고리우에 홈스팡코트를 입었다. 경찰서인데도 주눅이 들지 않고 매우 당돌한 표정이 이채로왔다.

박형사는 청년이라고 얕보았는지 처음부터 목청을 높이였다.

《극장에는 왜 왔댔어?》

아마도 예봉이네 공연을 보러 왔다가 극장에서 붙잡힌 모양이였다. 예봉은 관심을 가지고 청년을 주시하였다.

《구경왔댔소. 왜 그러오?》

대꾸하는 말이 만만치 않았다.

《극장에 공연보러 온것도 죄요?》

말이 막힌 박형사는 청년을 쏘아보다가 벌떡 일어나 그의 몸을 수색하기 시작하였다.

코트주머니에서 자그마한 책이 나왔다. 의기양양해진 박형사는 얄궂은 표정으로 그를 힐끗 쳐다보았다. 벌컥벌컥 책장을 번지던 놈은 딱 소리나게 책상우에 그것을 던지며 소리를 질렀다.

《좌익서적을 가지고다니는줄 누가 모른대? 너 이 책 어디서 났어?》

청년은 코트를 벗어 의자에 걸어놓으며 여유작작한 태도로 박형사와 마주앉았다.

《책방에서 샀소. 공부하는것도 죄요? 당신이 뭐가 돼서 내가 공부하는 자유까지 구속하려드오? 해방이란 말이요. 해방! <민주주의>라면서 책도 마음대로 볼수 없게 한다면 그게 도대체 무슨 민주주의요?》

야유가 섞인 청년의 공격이였다.

궁지에 몰린 박형사가 약이 올라 불그락푸르락하는데 문을 다급히 열어제끼고 사찰계장이 나타났다.

《뭘하고있소? 박형사! 빨리 남문동으로 가시오.》

남문동에서 지금 세계직업련맹의 남조선방문을 환영하는 시위가 대규모적으로 벌어지고있는데 빨리 막아야 한다는것이였다. 사태를 급히 설명하는 사찰계장의 얼굴에는 몹시도 긴장한 빛이 어려있었다.

박형사는 황황히 모자를 쓰며 일어섰다. 청년도 덩달아 일어섰다.

《그럼 난 나가도 되지요?》

어이없는 눈길로 그를 쏘아보던 박형사가 불시에 꽥 소리를 질렀다.

《야, 너 여기가 어딘줄 알고 덤벼?》

《박형사, 왜 그래?》

사찰계장이 눈살을 찌프리며 물었다.

《불온서적을 가지고있기에…》

박형사가 더 설명하기도 전에 청년이 그의 말을 가로챘다.

《책방에서 공개적으로 파는 책을 한권 샀는데 무작정 끌고왔습니다. 사연을 다 이야기했는데도 저 형사는…》

사찰계장은 시끄러운지 더 말을 듣지 않고 홱 돌아서 나가며 퉁명스레 말하였다.

《어서 내보내라.》

사찰계장이 사라지자 박형사는 잡아먹을듯이 청년을 노려보았다.

《썩 사라져!》

의자에 걸쳤던 코트를 천천히 집어들며 청년은 지지 않고 맞받았다.

《당신이 뭐가 돼서 내가 구경하는 자유, 책 보는 자유를 박탈하려는거요? 해방된 지금에 와서도 일제경찰놈들처럼 놀다가는 력사의 심판을 면치 못할줄 아오.》

《이자식이 나가라면 순순히 나갈것이지.》

박형사는 청년의 등을 문밖으로 떠밀었다.

그 광경을 바라보는 예봉의 가슴은 후련하였다.

놈들과 맞서 당당히 겨루는 그 청년처럼 싸우리라는 배심이 생기는것이였다.

한소동이 가라앉은 후 김태일은 다시금 예봉에 대한 심문을 계속하였다.

예봉은 그놈과 배짱있게 맞섰다. 그 시는 내가 읊고싶어 읊었다. 내가 무슨 세살난 어린애라고 누구의 부추김을 받고 행동하겠는가. 사람을 너무 업수이 보지 말라. 그 시가 정말로 화가 된다면 내가 감옥살이를 하면 될것이 아닌가. 의외의 반항에 김태일은 난처해진 꼴이였다. 확실한 증거도 없는 조건에서 이런 식으로 심문을 하다가는 끝이 없는 공방전이 될것이였다. 문예봉은 다른 사람들과는 사정이 좀 달랐다. 잘못 다쳤다가는 사회여론이 들고일어날수 있었다. 아무리 형사라고 해도 일순간에 사람을 영웅으로도 머저리로도 만들수 있는 보도계의 칼도마에 올라 이리저리 료리당하고싶지는 않았다.

은근한 위구와 불안을 느낀 김태일은 잠시 생각을 굴리다가 한걸음 물러서는척 하며 여유작작하게 다루자고 마음먹었다.

그는 느슨한 미소를 지으며 점잖게 말하였다.

《예봉씨, 오늘은 이만하겠는데 밤새 잘 생각해보시오. 그리고 래일 아침 9시에 다시 오시오.》

예봉은 도고하게 머리를 쳐들고 경찰서문을 나섰다.

문예봉을 비롯한 배우들의 체포소식은 그이튿날에 벌써 특별소식으로 각 신문들에 일제히 실리였다. 사회여론이 물끓듯 하였다.

이에 바빠난 경찰에서는 그에 반박하는 기자회견까지 실었다.

기자-어제 황금정에서 수류탄폭발사건이 있었다던데요?

경찰-예, 공연도중에 수류탄이 무대에 날아오른 불미스러운 사건입니다.

기자-그 범죄자들을 잡았습니까?

경찰-현재 수사중에 있는데 십중팔구 망나니깡패들의 소행으로 추측됩니다.

기자-그 배후에 정치적색채가 깔려있는게 아닐가요?

경찰-지금 추적중에 있습니다만은 아직 그런 단서는 없습니다.

기자-그런데 문예봉씨를 본정경찰서에서 체포하여갔다던데…

경찰-그런 일은 없습니다. 우리 경찰에서는 문예봉씨를 체포한적이 없습니다.

기자- 사실인가요?

경찰-우리 경찰서의 명예를 훼손시키려는 의도에서 조작한 랑설일겁니다.

기사를 읽어내려가는 예봉의 얼굴에 진한 랭소가 비꼈다. 눈감고 아웅이라더니 어쩌면 이리도 철면피할가?

그런데 림선규는 빙긋이 웃고있었다.

《당신은 운수가 참 좋아.》

《왜요?》

《경찰들자신이 당신 잡아간 일이 없다고 신문에 광고했은즉 구태여 당신이 오늘 제발로 찾아갈 필요가 없지 않소.》

《정말 그렇군요. 경찰이 도리여 날 살려주는군요.》

그들부부는 마주보며 명랑하게 웃었다.…

며칠간 예봉은 무대에 출연을 하지 않았지만 극장에는 매일 나갔다.

어느날 김태일이 또 나타났다. 그는 예봉에게 왜 약속한 날자에 경찰서로 나오지 않았는가고 따지고들었다.

《경찰서에서 나를 잡아간 일이 없다고 신문에 냈는데 내가 왜 제발로 찾아가겠어요. 그리 좋은 곳도 아닌데…》

로골적인 야유에 김태일의 얼굴이 지지벌개졌다.

그로서는 할말이 없었던것이다. 말이 막혀 일순간 당황해하던 그자는 형사의 위세만은 차려야 한다는 직업의식에서였는지 그래도 한마디 내뱉는것을 잊지 않았다.

《정 그런 식으로 나오면 재미없어요.》

그러나 문예봉은 눈섭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예봉의 말을 들으며 나와 요시꼬는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제가 놓은 덫에 자기가 걸린다는것이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가?

허나 예봉은 웃지 않았다.

당시를 직접 체험해보지 못한 나처럼 가볍게 웃어버릴수가 없는 그 무엇이 있는듯 그의 눈에는 심각한 빛이 어려있었다.

인생의 경험과 교훈은 서적에서가 아니라 세월속에서 터득되는 값비싼 보석이다. 그러니 나와는 세대의 차이에서 오는 더 심각한 체험의 세계가 쌓여있을것이다.

나의 생각은 옳았다. 예봉은 그 당시를 결코 가볍게 웃어넘길수 없는 세대였다.

남북의 분렬이 눈앞에 박두한 치렬한 정치투쟁의 그 시기 얼마나 많은 진보적예술인들이 위대한 수령님과 북녘을 우러렀고 그속에서 피도 많이 흘리였던가.

주체36(1947)년 봄 진주에서 연극 《독립군》을 공연할 때였다.

연극은 제목이 말하여주다싶이 독립군의 투쟁모습을 통하여 조선독립의 사상을 강하게 표현한 민족적색채가 짙은 작품이였다.

미제와 반동들은 이에 악을 먹고 공연도중 무대에 수류탄을 던지는 테로를 감행하였다.

하여 무대우에 서있던 박학을 비롯한 여러명의 배우들이 심한 부상을 당하는 참사가 빚어졌다.

놈들은 이 사건이 마치 《동인제》들사이의 암투에 의한 테로사건인듯이 여론을 오도하려했지만 조선민족의 슬기와 존엄, 긍지와 영예를 짓밟아버리려는 미제와 반동들의 악랄한 테로행위였다는 력사적진실을 감출수가 없었다.

진보적연극인이였던 심영도 여러번 테로를 당하였다.

어느날 연극 《님》 (《번지없는 부락》)에서 진보적인 학생역을 맡아 공연을 끝내고 종로거리를 지나는데 별안간 검은 그림자가 그의 앞을 막아나섰다. 주춤 걸음을 멈추는 순간 둔탁한 총성과 함께 그는 그자리에 쓰러졌다.

진보적연극인들의 정치활동을 막아보려고 리승만역도의 《대한청년단》졸개들이 그를 암살하려 했던것이다.

다행히 오른편 아래복부에 관통상을 입었기망정이지 하마트면 목숨을 잃을번 하였다.

그후 5월에도 그는 경상북도 대구에서 순회공연도중 또다시 10여명의 《서북청년단》놈들에게서 집단구타당하고 중상을 입었다. 대구경찰서 앞거리에서 이런 참변이 일어났는데도 경찰들은 모른체 하며 어느 한놈도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놈들의 묵인하에 백주에 벌어지는 테로와 살인극이였다.

인민배우 유경애도 그러한 체험을 겪었다.

부산에서 조령출작 《위대한 사랑》을 공연할 때였다. 이 작품은 갑오농민전쟁의 지도자 전봉준을 취급한 반침략애국주의주제의 작품으로서 공연초시기부터 놈들이 이리저리 트집을 걸던 작품이였다.

그러나 연극인들은 모든것을 물리치고 기어이 작품을 무대에 올려 성황리에 공연을 계속하고있었다. 이에 악을 먹은 놈들은 어느날 공연무대에 다이나마이트를 던지는 폭거를 감행하였다.

그때 무대에는 전봉준의 혼사문제를 이야기하는 장면이 펼쳐지고있었는데 박학과 유경애, 김양춘이 서있었다. 그런데 유경애의 발밑으로 갑자기 시꺼먼 쇠뭉치가 굴러오는것이 아닌가. 쇠뭉치에서는 칙칙거리며 심지가 타들어가고있었다. 순간적으로 유경애는 《폭발물이예요!》라고 소리치며 반대켠방향으로 어푸러졌다. 그와 동시에 쾅- 하고 다이나마이트가 폭발하였다. 오른쪽팔이 띠끔하는 감각과 함께 그는 정신을 잃었다. 한참후에 정신을 차려보니 그의 반대켠에 서있던 박학은 팔과 다리에 심한 부상을 입었고 유경애의 남동생 경호의 다리에서는 검붉은 피가 줄줄 흘러내리고있었다. 억이 막힌 유경애는 동생의 다리를 어루만지며 눈물을 흘리였다. 경호는 애써 웃음을 지으며 누이를 위로하였다.

《누나, 일없어.》

동생의 얼굴에 피여났던 미소가 얼마나 인상깊게 가슴에 새겨졌는지 수십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도 유경애는 종종 그때를 회고하며 눈물을 머금군 하였다.

남반부예술계에서 벌어진 이 모든 사건들은 미제와 반동들과의 치렬한 정치투쟁의 반영이였다.

모스크바3국외상회의때에는 서울운동장에서 10만명대규모의 시위가 벌어졌는데 황철, 리단을 비롯한 수많은 연극인들과 영화인들도 동맹기발을 휘날리면서 여기에 참가하였다. 평택의 농민들까지 참가하는 정도였다. 《모스크바3국외상회의를 지지한다》, 《우리에게 쌀을 다오》, 《나무를 다오》 라는 구호를 든 10만명의 군중들이 동대문에서 남대문까지 함성을 올리며 행진할 때 그 기세는 하늘을 찌를듯 하였다. 시위대오가 화신거리에 이르렀을 때 돌벼락이 쏟아져 숱한 부상자들이 났으나 시위군중들은 흩어지지 않고 군중대회장소에까지 진입하였다.

이 대회에서 리주하, 려운형 등 각계 인사들이 연설하였는데 한결같이 외세를 배격하고 나라의 분렬을 막자고 호소하였으므로 군중들의 대환영을 받았다.

이러한 정치투쟁의 물결속에서 예술인들도 무대를 거점으로 더욱더 격렬한 투쟁을 벌리였다. 미제와 리승만괴뢰도당의 단독정부수립을 반대하는 거족적인 투쟁이 일어났을 때에 예술인들은 남북조선총선거를 지지하는 군중들의 명단을 작성하여 가지고있다가 공연시에 객석을 돌면서 수표를 받는 아슬아슬한 투쟁도 마다하지 않았다.

극장을 거점으로 한 예술인들의 투쟁이 강화되자 놈들은 수많은 예술인들을 체포하였다. 그때 박학, 태을민, 김세영, 문정복 등 많은 진보적예술인들이 옥고를 치르었다.

거듭되는 테로와 체포소동에 더는 참을수 없었던 예술인들은 문화인대표단을 무어가지고 미군정청에 항의를 들이대기로 하였다. 문예봉도 그 대표로 뽑히였다.

미국놈들은 처음에는 그들을 청사안으로 들여놓지도 않고 내쫓으려하였다. 허나 대표단의 끈질긴 요구와 사회여론이 두려워 하는수없이 그들을 청사안으로 안내하였다.

쏘미공동위원회 수석대표 브라운이라는자가 그들을 만났는데 매우 로회한 놈이였다. 문화인대표단앞에서 그는 먼저 자기의 안해도 미술가라고 하면서 이렇게 예술인들과 자리를 같이하게 되여 매우 기쁘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대표들이 예술인들에 대한 체포나 테로, 수류탄공격에 대해 항의하자 브라운은 미군정측과는 아무런 련관도 없는 우발적인 사건이라고 시치미를 딱 떼면서 도리여 테로분자들에 대한 《격분》을 표시하기까지 하였다.

《예술인들사이의 반목과 질시, <동인제>들사이의 마찰이 그런 테로사건으로까지 번져질줄은 정말 짐작도 못했습니다. 우리 미군정에서도 앞으로 예술인들의 자유로운 예술활동을 보장하기 위하여 적극 힘쓰겠습니다. 테로와 같은 불미스러운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 서로 긴밀히 협력하기를 바랍니다.》

닭 잡아먹고 오리발 내미는격으로 아닌보살하는 브라운의 말에 한 예술인이 격하여 들이대였다.

《지금 이 남조선에서 미군정의 지시없이 진행되는 일이 어데 있습니까? 서울경찰청장은 소위 <고시>라는것을 내놓고 예술인들의 공연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조금만 눈에 거슬리면 립석경관이 즉시 중지시키거나 창작가들을 마구 체포할수 있는 권한을 주었는데 미군정이 어찌 모른단 말입니까?》

《아, 여러분, 문제를 혼돈하지 마시오. 지금 이 땅에는 바야흐로 새 정부를 수립하여야 하는 매우 중요한 시기가 도래하고있습니다. 해방된 오늘의 자유로운 현실을 외곡하고 민중들을 극단적인 정치적소요에로 선동하는 작품들에 대해서는 철저히 막아야 하는것입니다. 일체 정치활동을 엄금한다는 미군정의 포고에도 있는바이지만 예술활동의 정치화는 우리도 환영하지 않습니다.》

노랑눈을 희번득거리며 브라운은 오금을 박았다.

예술의 비정치화라는 간판을 내들고 제놈들의 백색테로를 합리화하는 브라운의 수작질에 역겨움을 느낀 문예봉은 참지 못하고 일어섰다.

《당신의 부인이 예술인이라니 한마디 합시다. 예술은 어디까지나 그 사회의 현실을 진실하게 반영하는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미군이 주둔한 남조선의 현실을 보십시오. 인민들은 배고파 허덕이고 매일과 같이 총에 맞아 쓰러지고있습니다. 기아와 빈궁에 허덕이고 테로와 학살이 살판치는 이런 현실을 외면하고 자유롭고 행복하게 잘산다고 거짓말을 하라는건데 인민들이 그걸 믿겠습니까. 그래서 지금의 생활을 그대로 반영하여 무대에 올렸더니 수류탄이 날아들고 예술인들을 마구 붙잡아갑니다. 여기에 무슨 민주주의가 있고 예술의 자유가 있습니까.》

대표들은 저저마다 항의의 목소리를 높이였다.

《문예봉씨를 비롯하여 여기에 참석하신 대표여러분의 심정을 충분히 리해할만 합니다. 그러나 명백히 할것은 각종 테로사건의 배후에 미군정이 서있다고 생각하는것은 커다란 오해라는것입니다.

미군정은 지금 조그마한 극장에서 벌어지는 테로사건같은데 신경을 쓸새가 없습니다. 그러나 당신들의 요구도 있고하니 앞으로 불미스러운 사건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주목을 돌리겠습니다. 더 요구하실 문제가 없습니까?》

브라운은 서둘렀다. 그리 유쾌하지 못한 이자리를 빨리 피하고싶은 모양이였다.

놈의 야스꺼운 태도에 격분한 예봉이 다시 일어섰다.

《브라운선생, 우리에게 렬차를 하나 보장해줄수 있습니까?》

《렬차 말입니까?》

브라운의 눈이 커졌다.

《렬차는 해서 뭘하렵니까?》

《내가 들은바에 의하면 북반부에서는 예술인들에 대한 대우와 사회적관심이 대단하다고 합니다. 우수한 예술인들은 류학도 보내고 견학도 시킨다고 하는데 예술활동의 자유는 더 말할것도 없구요. 그래서 저는 수류탄공격과 테로때문에 언제 죽을지 모르는 미군정하의 이 남조선땅에서는 예술활동을 할수 없다고 온 세상에 공포하고 가족들과 함께 렬차를 타고 북조선으로 가렵니다. 이 소원을 풀어줄수 있습니까?》

브라운의 눈빛이 살벌해졌다. 그러나 인차 얼굴표정을 수습하고 억지웃음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하였다.

《우리 미군정청에서도 우수한 예술인들에 대해서는 류학도 보내고 견학조직도 할 예정입니다. 구태여 북조선에까지 갈 필요가 있겠습니까? 예술인들에 대하여 나는 언제나 존중하는 립장입니다. 우리 미군정과 협력을 잘해준다면 당신들에게 예술창조의 광활한 무대를 보장해줄것입니다. 이것은 나개인의 의사가 아니라 우리 미군정의 의사이기도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당신들과의 오늘회견은 호상 매우 유익한 일이였다고 생각합니다.》

브라운은 미리 준비한 원고를 외우듯 재빨리 주어섬기고는 황황히 자리를 뜨는것이였다.

물론 예술인들은 이 청원놀음에 큰 기대를 건것은 아니였다. 나라를 분렬시키려는 미국놈들과 반동들의 죄행을 사회적으로 더욱 여론화시키는것이 기본목적이였다. 허나 브라운놈을 직접 만나보니 나라의 분렬을 꾀하면서 그와 배치되는 모든것에 대하여 가차없이 독재의 칼날을 휘두르려는 미국놈들의 검은 속심이 더욱 실감되는것이였다. 예봉이 딛고 서있는 무대는 더욱 격렬한 투쟁의 무대로 될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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