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회)

제2편 백합꽃은 태양의 빛을 받다

맑은 하늘이 열리던 날에

 

해방의 날을 예봉은 창동에서 맞이하였다.

하늘이 류달리도 맑게 개였던 날이였다.

푸르게 트인 하늘에 구름 한점 없던 그날 자신과 온 민족의 운명에 어떤 재생의 빛발이 비쳐왔는지도 모르고 예봉은 어머니가 계시는 장진으로 갈 이사짐을 꾸리고있었다.

영화계에서 결연히 탈퇴하고 남편과 함께 창동(당시)으로 내려왔지만 무서운 생활고는 여전히 그림자처럼 그들을 따라다니였다. 무우시래기를 볶아먹거나 술지게미를 사다 연명하는 형편이였다.

어느날엔가는 창동양주장에서 사온 술지게미를 먹고 아이들이 취하여 비틀비틀하다가 쓰러져 소동이 났던 희비극도 있었다.

인기배우라 세상이 떠드는 언니의 정상이 하도 가긍하여 화봉이가 돈 800원을 꾸어주어 집 한채를 마련하였으나 생활형편은 여전히 그 식이 장식이였다. 생각다 못하여 어머니가 계시는 장진산골에 가서 감자농사나 하며 살아가려고 기별을 하였더니 어서 오라는 소식이 왔었다. 하여 부지런히 짐을 싸고있던중에 8. 15라는 꿈같은 사변을 맞이하였던것이다.

너무도 뜻밖의 소식에 이사고 뭐고 밖으로 뛰쳐나온 예봉은 만세를 부르고 춤을 추며 거리를 누비는 마을사람들의 물결에 휩싸여 이틀낮, 이틀밤을 어떻게 보냈는지 몰랐다.

더우기 일성장군님께서 백두산의 대군을 거느리고 서울에 개선하신다는 소식이 파다히 퍼져 사람들을 흥분시켰다. 모두들 서울로 간다고 법석이였다. 예봉도 남편과 함께 그날밤으로 주먹밥을 싸들고 서울로 향하였다.

언제나 마음속으로 그리며 살던 전설속의 장군님을 어서 뵙고싶었다. 온 조선민족이 구세주로 우러르던 그이, 100만 관동군을 쥐락펴락하며 일제와 직접 총을 들고 맞서싸운 항일의 영웅! 춘사가 그토록 민족의 영웅으로 떠받들며 자기 작품에 담아보고싶어하던 일성장군님의 모습을 어서 뵙고싶은 충동으로 하여 30리길을 힘든줄도 모르고 단숨에 달려갔다.

서울역에 도착한 예봉의 눈앞에는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온 광장을 꽉 메운 인파가 늠실대고있었던것이다. 그야말로 인산인해라고 할수 있었다. 온몸을 태울듯 사정없이 내려쪼이는 8월의 폭양도 아랑곳없이 서울역은 사람들의 바다로 웅실거리고있었다. 불볕으로 인한 열기보다도 장군님을 맞이하는 서울시민들의 열기가 더 충천한듯 도처에는 김일성장군님을 열렬히 환영한다는 프랑카드들과 구호들이 기세좋게 펄럭이고 우렁찬 환호소리와 노래소리가 그칠줄 모르고 터져오르고있었다.

민족의 령수를 어서 빨리 모시려는 인민들의 뜨거운 마음들이 해방의 기쁨과 환희의 격정속에 활화산마냥 폭발하는 력사의 장면이라 할수 있었다.

예봉은 서슴없이 사람들의 물결속에 뛰여들었다.

자기들이 조선녀성의 상징으로 떠받들며 사랑하던 녀배우를 사람들은 인차 알아보았다. 그들은 저마다 그를 자기들에게로 이끌었고 예봉이가 앞으로 나아갈수 있도록 힘껏 도와주었다.

밤이 깊어가도 사람들은 헤쳐지지 않았다. 미리 준비하여온 주먹밥이나 간식으로 요기를 하고는 또다시 구호를 웨치고 노래를 부르며 기세들을 올렸다.

밤을 밝히면서 오락회 비슷한 모임이 벌어졌는데 사람들은 한결같이 예봉에게 노래를 요청하였다. 그 누구보다도 예봉의 노래를 듣고싶은것이 시민들의 한결같은 심리였다. 단순히 화면으로 낯을 익힌 친숙한 녀배우라는 의미가 아니였다.

왜놈들이 살판치던 그 세상에서도 청초하고 정결한 모습으로 조선녀성의 향취를 자기들의 마음속에 그윽하게 심어주던 사랑하는 예봉을 사람들은 더욱 떠받들고싶어하였다. 화면에서처럼 단아한 조선치마저고리를 입고 자기들과 함께 비지땀을 흘리며 렬차가 들어올 력사적순간을 기다리는 예봉의 모습을 보는것만으로도 시람들은 평소에 품고있던 그에 대한 신뢰감과 사랑의 정이 더욱 뜨겁게 불타올랐던것이다.

관중들의 요청에 자리에서 일어선 예봉은 수집음을 잘 타는 평소의 성격과는 달리 명랑하게 웃음을 띠우고 먼저 한마디 하였다.

《사실 저는 목소리가 나빠서 노래를 잘 부르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일성장군님을 맞이하게 되는 이 기쁜 때에 어찌 목소리를 탓하겠습니까. 저는 일본놈들의 <금곡령>때문에 부르지 못하였던 봉선화의 노래를 마음껏 불러보렵니다.》

관중들의 환호성과 박수갈채가 터져올랐다.

두손을 가볍게 모아쥔 예봉은 감정을 잡아 부드러운 저음으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울밑에 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

                길고 긴 날 여름철에

                아름답게 꽃필적에

                어여쁘신 아가씨들

                너를 반겨 놀았도다

 

애절하게 울리는 노래선률은 사람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흔들어놓으며 밤하늘을 누벼나갔다.

차디찬 가을바람에 스러지는 봉선화의 꽃잎들마냥 왜놈들의 칼부림에 무참히 쓰러져갔던 민족의 슬픔이 가슴을 저미였다. 아무리 하늘을 우러르고 땅을 치며 통곡했어도, 피같은 눈물을 강물처럼 쏟았어도 망국노의 멍에에서 벗어날수 없었던 민족의 쓰라린 구슬픔을 담고 사람들을 울리던 봉선화의 노래!

예봉은 눈물을 삼키며 노래를 계속하였다.

 

                어언간에 여름 가고

                가을바람 솔솔 불어

                아름다운 꽃송이를

                모질게도 침노하니

                락화로다 늙어졌다

                네 모양이 처량하다

 

노래를 부르는 예봉의 두눈에도, 숨소리 하나 없이 조용히 노래를 듣고있는 사람들의 눈가에도 뜨거운것이 고여올랐다.

왜놈들에게 나라를 빼앗겼던탓에 쫓겨가야 했던 기막힌 운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고 부르짖던 리상화의 그 절통한 호곡소리가 지금도 귀전에 들려오는듯…

목메인 흐느낌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흐르는 눈물을 씻으며 예봉은 힘을 주어 마지막절을 선률에 담았다.

 

                북풍설한 찬바람에

                네 형체가 없어져도

                평화로운 꿈을 꾸는

                너의 혼은 예 있으니

                화창스런 봄바람에

                환생키를 바라노라

 

어느새 모두 일어선 군중들이 예봉의 노래를 우렁차게 따라부른다.

그렇다! 일제가 아무리 간악하고 포악무도해도 민족의 넋까지 짓밟을수는 없다. 북풍설한이 아무리 기승을 부려도 봉선화가 다시 피여날 봄날은 꼭 온다고 믿었으니 그 믿음대로 드디여 일본놈들이 망하고 민족재생의 봄날은 오지 않았는가! 우리 조선민족의 태양 일성장군님, 어서 서울에 와주십시오. 온 조선민족이 태양이신 당신을 기다리고있습니다.

슬픔의 정서는 사라지고 기쁨과 환희의 감정으로 승화된 봉선화의 노래가 서울역상공에 오래도록 울려퍼지였다.

 

*          *

 

력사적체험의 내용과 성격이 동시대인이라 하여 다 같을수 없다는 진리를 요시꼬는 새삼스레 절감하고있었다.

한 민족의 운명이 구원되던 력사적인 그 해방의 날, 민족의 영웅을 맞이하려는 열광의 대오에 예봉이 서있었고 그때 사람들은 누구보다도 그의 노래를 듣고싶어하였다는 사실은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고있는것인가.

그의 노래를 들으며 사람들은 구슬픈 민족의 과거와 결별하고 희망찬 미래를 내다보았으니 예봉이 언제나 민족이 사랑하는 딸임을 말없이 인정하였던것이다.

민족이라는 거대한 대양을 떠나본적이 없는 예봉이였기에 아무리 거친 물결이였어도 대양은 언제한번 그를 제 품에서 휘뿌려던진적이 없었던것이다.

허나 요시꼬자신은?…

조국이 없는 사람은 정원이 없는 꾀꼴새와 같다는 격언그대로 그는 언제나 이방인의 처지였다.

1945년 8월 15일을 요시꼬는 상해에서 맞이하였다.

8월 6일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탄의 폭음은 전세계를 경악의 도가니에 몰아넣었고 일본이라는 땅덩어리를 송두리채 뒤흔들어놓았다. 일본천황은 8월 9일 부랴부랴 어전회의를 열고 국체를 보존하는 조건에서 포츠담선언을 수락한다는 항복서를 밤 2시 동맹국에 황황히 통고하였다.

이러한 사실을 전해들은 요시꼬는 자세한 내용을 알고싶어 일본군보도부에 급히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전화기에서는 《우리 대일본제국은 항복할수 없소. 일본본토에서라도 결사전을 할것이요.》라는 저돌적인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아연해진 요시꼬는 전화기를 든채 그자리에 굳어져버리였다.

급변한 정세의 추이를 실지로 몰라서인가? 아니면 패자의 허장성세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제국의 습관으로 되여있는 정치적기만인가?

이렇든저렇든 요시꼬에게는 13일에 예견되였던 군대위문공연을 계획대로 진행하여 병사들을 고무격려하라는 고압적인 지시가 하달되였다. 어쩔수 없는 일이였다.

하여 그는 사태를 알지 못하는 군인들앞에서 《여러분, 수고하십니다. 나라를 위하여 더 힘써주세요.》라고 웨치면서 그들의 요청대로 거듭거듭 노래를 불러주었다.

두눈을 반짝이며 자기의 노래에 심취되여있는 젊은 병사들의 순진한 표정을 바라보는 요시꼬의 마음은 은근히 저려났다.

《전쟁은 끝났어요. 당신들은 살아남았으니 얼마나 좋아요.》하고 웨치고싶었으나 그럴수는 없었다. 한 시대가 끝나는 마지막날까지 일본군국주의자들의 꼭두각시노릇을 해야 하는 저주받을 운명이였으나 그때는 미처 그 치욕의 진가를 알수 없었다. 그저 모든듯이 연극처럼 느껴졌을뿐이였다.

8월 15일 상해륙군보도부장의 방에서 일본에서 보내오는 중대방송이라는 옥음방송(천황이 하는 방송)을 들었을 때 그는 사실을 이미 알고있었던지라 그리 큰 충격을 받지 않았다.

항복한다는 천황의 말을 들으며 주위사람들은 눈물을 흘리였으나 (천황의 목소리도 보통사람들의 목소리나 별반 다른데가 없구나!)하는 우습강스러운 생각이 불쑥 들었을뿐이였다.

허나 저녁녘 인력거를 타고 상해거리를 돌 때는 가련한 일본, 가련한 일본사람이라는 강개한 기분에 사로잡혀 저절로 눈물이 났다.

고향은 친어머니이고 타향은 이붓어머니라고 아무리 오래동안 중국인으로 살아왔으나 피줄은 역시 피줄인것이다.

그후 그는 국적이 분명치 않은 국적불명자가 치르어야 할 치욕의 대가를 톡톡히 치르었다.

9월 9일 중국파견군 총사령관 오까무라대장이 중국 륙군총사령관 하응흠상장앞에서 정식 항복서에 서명한 후 리향란의 이름이 일본과 내통한 녀주구 가와시마 요시꼬(김벽휘)와 함께 벽보에 나붙었다. 그의 죄는 《중국사람으로서 중국을 배반하는 영화를 찍고 일본의 대륙정책에 편승하여 중국을 배반》하였으며 《중어, 일어를 쓰면서 두 나라 사람들의 교제관계를 리용하여 간첩활동에 종사》하였다는것이였다.

홍구수용소에서 심문할 때도 일본인이냐 중국인이냐가 기본초점으로 되였다. 참으로 슬픈 일이였다. 누구나 하나의 친어머니가 있듯이 오직 하나의 조국만이 있다지만 과연 나의 조국은 어데인가?

참외는 넝쿨을 떠나지 못한다지만 자기야말로 넝쿨에서 떨어진 참외신세였다.

구사일생으로 사형을 면하고 귀국의 배길에 오른 그는 리향란과 깨끗이 고별하며 쓰디쓴 눈물을 검푸른 바다에 쏟았다. 패전국민이 되여 쫓겨간다는 설음보다도 《제국정책수행》이라는 보이지 않는 그물로 자기를 옭아매고 아까운 청춘시절을 롱락한 제국에 대한 환멸, 너무도 비참해진 자기 운명에 대한 가슴저린 아픔이 그를 울리였던것이다.

력사의 분기점에 서있은 두 동시대인들의 체험담은 나에게 하나의 형상을 떠올렸다.

무너지는 서까래를 보면서도 그것을 버티라는 주인의 강요에 못 이겨 마지막까지 버둥거리다가 쓰러지고야마는 불쌍한 인간의 모습!

나에게는 그 인간의 형상이 마치 요시꼬처럼 느껴졌다.

일제의 패망이 기정사실화된 그 시각에조차 웃음과 노래로 청년들을 죽음의 전장터에로 내모는 범죄의 길로 요시꼬를 떠밀어넣은 군국주의자들! 하여 그는 천진한 눈빛의 젊은이들에게 웃음을 담아 군국주의독소를 불어넣고 죽음터에로 어서어서 가라고 노래로 떠미는 죄악을 마지막 날까지 저지르지 않으면 안되였으니 력사는 결코 그 죄를 묻어두지 않았다.

력사는 언제나 공정한 법이다. 그 력사의 판결에 의해 8. 15라는 시대의 분기점에서 요시꼬는 법정으로, 문예봉은 해방의 기쁨 넘쳐나는 인민들의 물결우에 둥실 떠오르게 되였던것이다.

매 인간들은 자기 삶에 대하여 각자가 책임져야 하지만 시대적환경 또한 매 인간들의 운명과 무관계한것은 결코 아니다. 그래서 사람은 시대를 잘 만나야 한다는 말도 있는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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