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제1편 눈물의 백합꽃

백합꽃은 설음에 운다

 

주체47(1958)년 10월이였다.

단풍이 물들기 시작한 계절이라 맑게 트인 하늘은 한껏 푸르고 땅에는 무겁게 드리운 황금나락이 파도쳐 설레인다. 서늘한 바람결에 실려 청신한 기운이 한껏 차넘치는 풍요한 계절이다.

이런 때 강원도 남강기슭에서는 현실물영화촬영이 한창 진행되고있었다.

해방전 눈물로 헤여졌던 아버지를 로동당시대에 다시 만나는 감격적인 이야기였다. 금강산에서 나서 자란 농촌처녀 순희는 해방전에 기약없이 헤여졌다는 아버지를 언제나 그리며 산다. 어릴 때부터 무용에 소질이 있던 그는 전국예술소조경연에 뽑히여 주역을 맡게 된다. 작곡가선생의 지도밑에 자기들의 행복한 농촌생활을 훌륭히 무대에 펼치는 과정에 자기를 지도한 작곡가선생이 바로 해방전에 피눈물로 헤여졌던 아버지라는것을 알게 된다. 그리하여 아버지와 모녀가 감격적으로 상봉하는 로동당시대의 새 전설이 펼쳐진다. 어버이수령님의 따뜻한 사랑속에서 활짝 꽃피여나는 우리 인민들의 행복한 생활과 로동당시대에 대한 다함없는 찬가라고 할수 있는 작품이였다.

이 영화에서 문예봉은 순희 어머니의 역을 맡고있었다.

오늘은 조국해방전쟁시기 남강마을인민들이 원호물자를 이고지고 고지에로 오르는 장면을 촬영할 계획이였다.

이 장면을 찍자면 어차피 마을인민들로 분장한 배우들이 강물에 들어서야 했기에 그 준비사업으로 끓고있는중이다. 10월이라 청명한 날씨였으나 강물은 좀 차거운편이였다.

그래서 물에 들어서는 모든 배우들의 건강을 념려하여 몸에는 기름을 발라주고 술도 먹이였다. 그러고도 안심치 않아 구급차를 대기시키였고 모포들을 산같이 쌓아놓았다. 한켠에는 모닥불을 활활 피워놓아 수시로 몸을 녹일수 있게 준비하였다.

물속에 온몸을 잠그는것도 아니고 잠간 강을 건느는 한장면촬영을 위하여 이렇게 온 촬영소가 떨쳐나서 준비를 하는 광경을 바라보며 예봉은 생각이 깊어졌다.

작품에 앞서 배우들의 건강이 첫째로 론의되는 너무도 좋은 세월을 만난 지금의 배우들이 시샘이 날만치 부러웠다. 얼마나 행복한 세월에 행복한 창조활동을 벌리고있는 복받은 세대들인가.

문예봉의 눈앞에는 지나간 시절에 있었던 일생 잊혀지지 않는 생활의 토막들이 선명한 화면처럼 펼쳐졌다.

주체25(1936)년 1월 경성영화촬영소에서는 홍개명 연출, 리명우 촬영으로 된 전 7권의 유성영화 《장화홍련전》을 제작하고있었다.

《장화홍련전》도 우리 인민들속에 널리 알려진 고전작품을 각색한것이였다.

천산마을에 전처의 딸들인 장화와 홍련을 데리고사는 배좌수가 후실을 맞아들였다. 장쇠라는 아들을 데리고 들어온 계모는 재산이 전처의 딸들에게로 돌아갈가보아 그들을 죽일 계획을 꾸민다. 계모는 쥐를 잡아죽여 피가 랑자한것을 장화의 잠자리에 밀어넣고는 그가 부정한 행실을 하였다고 배좌수에게 참소한다. 악독한 계모의 책략에 속은 어리석은 배좌수는 집안을 망신시켰다고 장화를 외가로 쫓아보낸다. 장쇠가 그를 데리고가다가 련못에 빠뜨려 죽인다. 언니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동생 홍련도 세상을 원망하며 자살한다.

후에 계모와 장쇠의 죄행이 밝혀져 그들은 릉지처참되고 배좌수는 한숨과 탄식으로 날을 보내다가 세상을 마치고만다.

권선징악의 사상이 반영된 이 작품에서 문예봉은 주인공 장화역을 맡았다.

따스한 봄날이나 여름에 촬영하면 좋으련만 촬영기를 세내여 쓰다나니 부득불 박달나무도 얼어터진다는 엄동설한에 촬영을 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문예봉이 지금도 잊지 못하는 사실은 장화와 홍련이 련못에 빠져죽는 장면을 촬영할 때에 있은 일이다.

화면상으로는 장화가 물에 빠지면 물결이 일다가 이윽고 잠잠해지면서 그 늪가에서 새가 푸드득 날아올라 장화의 동생 홍련의 집앞에 가 울게 된다. 그때 홍련이가 우리 언니 간 곳을 가리켜달라고 하면 새가 다시 그 늪으로 날아간다. 그것을 보고 사연을 알게 된 홍련이도 늪에 빠져죽는 장면으로 화면이 련결된다.

이 장면촬영을 위해 창조집단은 촬영소앞에 땅을 파고 물을 잔뜩 부어넣고 늪처럼 만들어놓았다.

정월이라 시퍼렇게 고인 물은 얼음덩이처럼 차거웠고 보기만 해도 몸이 으쓱할 정도로 스산하였다. 그런데 이제 저 물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인조견치마저고리를 입고 늪옆에서 대기하고있는 예봉의 몸은 벌써부터 얼어들어 가드라드는듯 했고 물속에 들어갈 생각만 해도 몸서리쳐졌다.

그러나 촬영은 해야 했다.

입술이 새파랗게 얼어든 그에게로 리명우가 다가왔다.

《촬영을 멈출수 없으니 인제 물에 뛰여들어가서는 촬영이 끝날 때까지 물밑에 엎디여있든지 아니면 물밑에서 기슭으로 보이지 않게 살금살금 기여나오든지 해야겠어.》

이 엄동설한에 차디찬 물속으로 들어가라고 하는것이 너무도 가혹한 요구라는것을 그도 모르지 않았다. 허나 어쩔수 없는 일이라고 눈을 꾹 감았다. 필림이 넉넉치 못하여 합성촬영을 할 형편이 못되였던것이다.

예봉은 그렇게 하겠다고 고개를 끄덕이였다. 속으로는 몹시 걱정이 되였지만 피할수 없는 정황이였다.

이윽고 촬영가들을 비롯하여 20여명의 기술자들이 자기 위치를 차지한 후 감독의 호각소리를 기다리였다.

먼저 번개치고 우뢰우는 소리와 함께 소나기가 쏟아지는 화면을 얻기 위하여 고무호스로 머리를 풀어헤친 장화(예봉)의 온몸에 찬물을 쏟아부었다. 강한 결심을 먹고 마음을 단단히 도사리고있었으나 너무도 차거운 물이 삽시에 머리에 들씌워지자 저도모르게 악 하는 부르짖음이 터져나왔고 정신이 아찔해졌다. 머리를 쪼개는듯 한 아픔과 온몸을 얼구는 추위에 덜덜 떨고있는 그를 리명우가 늪속으로 탁 떠밀었다.

순간적으로 찬물속에 풍덩 빠져들어간 예봉은 정신이 혼미해짐을 느끼였다. 온몸을 조이는 차거운 랭기, 예리한 얼음쪼각으로 살을 마구 저며내는듯 한 아픔…

간신히 자신을 수습한 예봉은 당장 뛰쳐나오려 했으나 촬영기 돌아가는 소리에 그만 불같은 마음을 누르고말았다. 할수없이 촬영이 끝날 때까지 물밑에 엎드려있기로 했는데 워낙 못이 얕다나니 온몸을 잠글수가 없었고 인조견으로 만든 치마가 자꾸 부풀어나서 둥둥 뜨는것이였다. 이러지도저러지도 못하고 신고하다가 더는 참을수 없어 그는 벌떡 일어났다.

《뭐야?》

고함소리와 함께 촬영기가 멎고 감독의 험상궂은 욕설이 쏟아져나왔다.

《필림이 돌아가는걸 못봐?》

시린 발을 동동 구르며 조명기재들과 반사판들을 들고있던 성원들도 못마땅한 눈초리로 그를 흘겨보았다.

이 추운 날 빨리 촬영을 끝내고 들어가야 할텐데 이렇게 질질 끌면 어쩐단 말인가. 너나없이 신경들이 곤두서는 판이였다. 예봉은 도로 나올수도 없어 사시나무 떨듯 온몸을 와들와들 떨며 물우에 우뚝 서있었다. 어느새 그렁그렁하던 눈물이 줄줄이 흘러내린다. 추위때문인지, 자기의 고통을 알아 못주는 동료들에 대한 원망때문인지, 아니면 생각대로 잘 안되는 자기의 연기때문인지…

설음에 설음이 겹쳐 흐느낌이 절로 터져나왔다. 박달나무도 얼어터진다는 이 정월달에 찬물속으로 뛰여들어야만 하는 자신의 가련한 처지가 그의 가슴을 더욱 서럽게 울려주었으리라.

그의 정상을 보다 못하여 나이많은 록음사가 감독에게 들이대였다.

《저러다 생사람 죽이겠소.》

그리고는 젊은 사람들에게 어서 예봉을 건져주라고 소리질렀다.

고마운 그 목소리에 예봉의 가슴은 뭉클해졌다. 역시 인간은 인정에 끌리고 인정에 머리숙이는 법이다. 뜨거운것을 삼키며 물속에서 나온 예봉은 식당과 겸해서 쓰는 분장실로 달려갔다. 이발이 떡떡 마주치고 온몸이 덜덜 떨렸다. 옷을 갈아입으려고 물에 흠뻑 젖은 저고리를 가까스로 벗으니 몸에는 칼로 베여낸듯 생채기가 쭉쭉 나있었고 시뻘겋게 부어올랐다.

무슨 고문이나 받은듯 험상해진 몸을 보니 기가 찼다. 죽을 지경으로 몸이 떨리지만 그 어디에도 몸녹일 따스한 곳이 없었다.

그러거나말거나 늪가에서는 촬영이 계속되고있었다. 세낸 촬영기의 기일이 촉박했던것이다.

감독은 이번에는 홍련으로 분장한 로재신을 늪으로 떠밀었다.

그런데 물에 빠진 로재신은 하도 물이 차겁고 무서워 그만 《엄마!》하고 소리를 지르며 도로 뛰쳐나왔다.

너무도 어이없어 감독이하 모든 성원들은 허허 하고 웃어버리고말았다. 그러나 그 웃음뒤끝에 모두는 쓰거운 열물을 마신듯 침울한 기분으로 묵묵히 일감들을 거두었다.

아무런 의료적담보도 없이 여리디여린 녀배우들을 찬물속에 들이밀어야 하는 각박한 세상살이를 새삼스럽게 실감하는 그들이였다. 창조라기보다 삶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라고밖에 달리 표현할 길 없는 이 고역! 목숨까지도 내대며 모험을 해야 하는 이런 수난을 조선의 영화인들은 숙명으로 타고났단 말인가.

문예봉의 이야기를 듣는 나의 가슴도 저려올랐다.

모든것을 빼앗긴 식민지조선에서 맨 주먹으로라도 영화를 만들어내겠다고 나선 이들의 기개는 자못 경탄할만 한것이지만 그들이 걸어간 창조의 한걸음한걸음은 얼마나 험난했던가. 영화촬영에 필요한 모든 조건을 국가로부터 직접 보장받는 오늘에는 상상도 못할 일들이 그 시기에는 부지기수였던것이다.

춘사 라운규가 《벙어리 삼룡이》를 제작할 때였다.

남달리 열정적이였던 그는 삼룡이가 불붙는 집속에서 주인집 며느리를 안아내오는 장면을 생동한 화면으로 뽑아내려고 마음을 먹고있었다. 그래서 삼룡이의 몸에 불이 달리는 장면을 실지로 보여주려고 삼룡이로 분장한 자기의 솜옷에 석유를 잔뜩 뿌리였다. 그리고는 안방에서 불난리에 울며 울부짖는 녀자(류신방)를 구해가지고 달려나오는 대목에서 불을 붙였다.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일시에 화약이 폭발하듯 확 하고 불이 붙었다.

이마와 옆구리에 불이 달려 참을수 없이 뜨거웠지만 촬영기가 돌아가는 바람에 뛰쳐나올수도 없었다. 그 자금손실을 메꿀수가 없기때문이였다.

그래서 그는 이를 악물고 화상을 당하면서까지 그 장면촬영을 끝까지 해내였다. 온몸이 불덩어리가 된 그를 보고 누가 땅우에 구을라고 소리쳤다. 라운규는 눈우에 마구 딩굴어서야 겨우 불을 껐다. 그렇게 해서 불을 껐기망정이지 하마트면 목숨을 잃을번 하였다.

그 후과로 라운규는 근 한달동안 병석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앓기까지 하였다.

이런 실례는 너무도 많다.

무성영화 《금붕어》를 촬영할 때 안전장치가 잘되지 못한 상태에서 3층집에서 뛰여내리는 장면을 촬영하다가 리창용이 진짜로 땅바닥에 떨어지는통에 목숨을 잃을번 한 일도 있었다.

《락화류수》에서는 자살장면을 촬영하느라고 복혜숙이 한강에 뛰여들었다가 물살에 떠밀리워내려가는 소동이 일어났다. 《애인》인 리원용이 그의 머리를 끄당겨가지고 헤염쳐야 했으나 물속에 잠겨버린 복혜숙의 허리를 그러안다나니 그 녀자는 진흙탕속에 머리를 처박는 꼴이 되여 물을 잔뜩 먹고 기절해버렸다. 촬영이고 뭐고 사람죽는다고 야단법석을 하며 겨우 그를 끌어내여 물을 토해버렸는데 그 어혈로 며칠간 복혜숙은 죽게 앓았다. 어찌보면 지나친 모험 같아보이지만 영화촬영장치를 만들 자금이 없었기에 생명을 내댄 이런 모험이라도 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생동한 화면을 창조할수 없었던 당시 가난한 영화계의 엄혹한 현실의 반영이 아닐수 없었다.

실감이 나는 하나의 화면을 위하여 그들이 바친 피땀과 노력이 귀중할수록 그들이 겪은 고통과 설음이 아프도록 나의 가슴에 마쳐왔다.

흔히 예술창조의 길은 고행의 길이라지만 거기에는 남다른 창조의 희열과 기쁨도 있는 법이다. 모진 진통끝에 드디여 자기의 창조물인 아기의 힘찬 고고성을 듣는 어머니의 기쁨과도 같은…

그러나 당시 영화인들은 창조의 희열보다도 가난한 영화인들이 겪어야 하는 뼈아픈 설음과 고달픔을 더 예리하게 감수해야 했다. 당장 살아가야 할 생계때문에 울며겨자먹기로 그 길에서 물러서지도 못할 운명들이였던것이다.

 

*          *

 

인적도 드문 새벽 3시경, 한 녀인이 서울 밤거리를 허둥지둥 달려가고있다. 캄캄한 야밤에 무섬증도 없는지 뒤 한번 돌아보지 않고 총총히 반달음을 놓는 녀인,

다급한 그의 걸음은 안국동 어느 한 집 대문앞에서 멎어섰다.

금시 넘어갈듯 한 가쁜 숨소리, 이마에 촉촉히 내배인 땀방울…

맵짠 겨울이지만 몸에서는 불이 이는지 녀인은 외투깃을 젖히며 모두숨을 내쉰다. 드바삐 뛰여오던 자세와는 달리 대문앞에서 귀를 기울이며 집의 동정을 살핀다. 가옥 어느 방에서도 불빛 한점 보이지 않는다. 모두가 다 꿈나라로 간듯.

조심히 대문을 밀어본다. 그러나 안으로 열쇠를 잠그어 끄떡도 안한다.

호-하고 한숨을 내쉰 녀인은 잠간 망설이다가 조심스레 대문을 두드린다. 똑 똑 똑…

그러나 집안에서는 기척이 없다.

다시 두드리는 녀인의 손, 똑똑똑…

그러나 여전히 집안에서는 응답이 없다. 녀인은 모든것을 단념한듯 대문앞에 쪼그리고앉아 하염없이 밤하늘을 바라본다. 차거운 하늘에서 애처롭게 웃고있는 애기별들,

 

                    별 하나 나 하나

                    별 둘 나 둘

 

가슴을 울리는 동요의 구절구절과 함께 예봉의 고운 눈에는 눈물이 핑 돈다. 아, 종화야, 나의 귀여운 아가야, 넌 지금 어쩌고있느냐?

하루종일 집에 가두어놓은 종화생각에 마음은 황황해지나 어쩔수없는 일, 주인집대문은 굳게 닫겨져있는것이다.

촬영소의 록음실이란것이 창고건물을 약간 개조하여 대충 꾸린 방이다보니 방음장치가 잘되여있지 않았다. 그래서 전차소리, 자동차소리, 아이들 떠드는 소리, 지어는 비행기소리까지 다 들려 낮에는 도저히 록음할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비교적 조용한 야밤에야 록음을 하군하는데 록음을 끝내고 한시간가량 걸어오면 오늘처럼 새벽 3~4시경이 되는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주인집에서 대문을 잠그고 자기때문에 야단이였다.

처음 몇번은 아무말없이 문을 열어주더니 인제는 시끄러워하는 기색이 완연하였다. 그런 눈치를 챈 다음부터 예봉은 주인집에서 일어날 때까지 문밖에서 떨며 기다리군 하였다. 그럴수밖에 없는것이 이 세집에서 또 나가라고 한다면 그것은 죽으라는것만치나 무서운 일이였던것이다. 매일이다싶이 당하는 일이지만 정말 속이 빠직빠직 타는 순간이였다.

아침에 띠의 한끝은 허리에 매고 다른 한끝은 방기둥에 매여놓고나온 종화가 어찌되였는지 조마조마하여 정신없이 뛰여온 그였다. 그런데 무거운 대문은 열리지 않고…

울음소리조차 없으니 더욱 불안하였다. 혹시 ?…

생각같아서는 대문을 들부시고 들어가고싶으나 그렇게 할수도 없는 일, 속타는 마음을 안고 또 눈물을 흘릴수밖에 없는 그였다. 설음에 설음이 겹쳐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진다. 돈없는 설음, 종화를 마음껏 돌볼수 없는 설음, 시골에서 병고에 시달리는 남편에 대한 설음… 그야말로 설음덩어리였다.

그러나 그 설음중에서도 집없는 설음이 제일 뼈에 사무쳤다.

림선규와 살림을 시작한 날부터 벌써 몇번이나 세방을 옮겼는지 모른다. 방값을 제때에 내지 못하여 쫓겨나기도 하고 지금처럼 야밤삼경에 문을 열어주기 시끄러워 나가라고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제일 가슴아픈것은 남편이 병자라고 하여 거절당하는것이였다.

녀배우로서의 문예봉의 인기가 올라갈수록 그의 남편은 결핵환자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지여 누구나 선뜻 세방을 주기 꺼려하였다. 그러다나니 세방을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만치나 어려워 한동안은 려관에서 살기도 했다.

지금의 세방을 구한것도 기적이라 해야 할것이다. 남편은 일 절반, 병 절반이므로 시골에 내려가 산다는 조건으로 사정사정하여 다락방이나 다름없는 구석방을 세내였는데 여름에는 빈대가 와글와글하고 겨울에는 서리가 허옇게 불리는 랭방이지만 그런 방이나마 구한것이 다행이였다.

언제면 내 집을 가지고 아이들을 마음껏 길러볼것인가. 하늘의 별을 따겠다는것만치나 허망한 꿈이였지만 예봉이로서는 도저히 버릴수 없는 최대의 갈망이였다.

이윽고 푸름푸름 새벽빛이 돌기 시작하였다. 또다시 한밤을 꼬박 밖에서 새운 예봉이였으나 온몸이 떨리도록 춥다는 생각보다도 아이걱정에 더욱 초조해지는 마음이였다.

찌쿵-드디여 대문이 무겁게 열리며 아직도 잠기를 채 가시지 못한 주인집녀자의 얼굴이 나타났다.

《아유, 또 밖에서 새웠나? 쯧쯧.》

새삼스레 놀란 표정을 지으며 그 녀자는 얼어서 파리해진 예봉의 얼굴을 동정하듯 바라보았다. 새까만 외투를 길게 내려입은 모습이 꼭 수녀와도 같은 인상이다.

《참, 고지식하기란, 대문을 열어달라고 두드릴것이지.》

속에 없는 빈소리를 하며 그 녀자는 우물가로 사라졌다.

예봉은 걸음보다 앞서는 마음을 다잡으며 정신없이 계단을 뛰여올라갔다. 한층, 두층… 방문을 열자마자 그는 아이한테로 어푸러지듯 달려갔다. 기둥에 매인채 쓰러져 자고있는 종화! 달려가 안으니 너무 울어서 얼굴은 온통 눈물범벅으로 매닥질되여있었다. 울다울다 지쳐 쓰러진 애기는 꿈결에조차 흑 하고 느낀다. 가슴이 저려오며 눈물이 또 앞을 가린다. 예봉은 잠자는 종화의 얼굴에 자기 얼굴을 비비며 목메여 흐느끼였다. 하루종일 방기둥에 매인채 엄마품을 그리며 얼마나 울었으랴.

(종화야! 용서해다오. 이렇게밖에 달리할수 없는 이 엄마를…)

성에가 허옇게 내불린 차디찬 랭방에서 아이를 꼭 껴안은채 예봉은 한동안 움직일줄 몰랐다. 너무도 고달픈 세상살이였다.

 

*           *

 

밖에서는 주룩주룩 비가 내리고있었다.

다락방생활에서 참기 어려운것이 추위라지만 여름철의 무더위 또한 그에 못지 않게 고통스럽다. 빈대와 모기성화도 못견딜 지경이지만 장마철이면 사방에서 비물이 새서 그야말로 란장판이다.

지금도 비물이 떨어지는 곳마다 소랭이며 사발이며를 여기저기 받쳐놓다나니 집안꼴이 말이 아니였다.

그래도 병치료하러 고향에 내려가있던 남편이 초여름에 올라와 셋이서 다시 모여사는것이 재미라면 재미랄가.… 방안에서는 아이를 데리고 노는 남편의 웃음소리와 종화의 깔깔대는 웃음소리가 즐겁게 들려온다.

그러나 설겆이를 하는 예봉의 마음은 밝지 못하다. 방세를 독촉하던 주인집녀자의 실쭉해하던 얼굴이 못박혀왔기때문이다.

며칠전 아침 그 녀자는 출근하는 예봉을 불러세우더니 새초롬한 표정으로 말하였다.

《어쩔가? 방을 빌리겠다는 사람이 또 나섰는데…》

방세를 어서 내라는 독촉이였다. 석달분이나 밀렸으니 그럴만도 했다.

예봉은 죄의식에 얼굴이 홧홧 달아올랐다. 렴치없는 녀자라고 얼마나 욕을 했겠는가. 그러나 당장 나갈데도 없었다. 그는 미안한 얼굴로 간절히 사정하였다.

《며칠만 참아주세요. 이번 새 영화가 봉절(첫 상영)되면 다 갚겠어요.》

《글쎄 그렇긴 하지만 나도 워낙 살림이 쪼들리다보니 이러는거라오. 여하튼 열흘내로 마련을 보라구.》

그런데 그 약속한 열흘이 벌써 지나갔다. 워낙 성정이 착한 예봉은 바늘방석에 앉은것 같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있었다. 오늘이라도 당장 나가라면 어쩔가?

이럴 때마다 돈 60원을 잃어버린 일이 가슴을 허빈다. 그는 달마다 조금씩 생기는 돈을 꼬깃꼬깃 모아 60원을 누구도 모르게 치마폭주머니에 건사해두었었다. 그런데 《춘풍》촬영을 할 때 어디서 흘렸는지 아니면 누가 훔쳤는지 그 돈이 없어졌던것이다. 그때의 기가 막히고 아찔하던 심경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활랑거리고 진땀이 내돋는다. 어떻게 한푼두푼 모은 돈인가. 자기의 피와 땀, 눈물의 결정체라고도 할수 있는 그 돈을 놓고 공상도 많았었다. 남편의 약도 사고 번듯한 세방도 얻고 설날 시집에 내려갈 때 기념품도 듬뿍 사고…

그런데 그 돈이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너무도 타격이 커서 그는 한동안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할 지경이였다.

당시 어느 한 잡지에서는 이 소식을 실으며 이렇게 개탄했었다.

《그 어려운 살림에 3원, 3원 타다가 60원까지 모아놓은 결심도 어지간하거니와 그렇게 피와 눈물의 60원을 없이하게 된 악의 죄 또한 크다 할것이다.》

돈때문에 애가 탈 때면 그 잃어진 돈이 아쉽고 그만큼 자신이 저주스러워지군 한다.

이래저래 속이 상해있는데 재난은 피할 길이 없는지 설겆이를 끝내는찰나에 주인집녀자가 들어서는것이였다.

가슴이 한줌만 해진 예봉은 두려운 마음으로 그 녀자의 눈치를 살피였다.

부엌 구석구석에 놓여진 소랭이며 사발들에 뚤렁뚤렁 비물이 떨어지는 광경을 바라보며 그 녀자는 쓴웃음을 지었다.

《집이 변변치 않아 이 고생이구만. 참 미안하네.》

그 녀자는 예봉의 소매를 잡아당기며 좀 나가자고 눈짓하였다. 방에는 림선규가 있기때문에 좀 저어하는 눈치였다. 복도에 나선 그 녀자는 소곤소곤 말하였다.

《그래도 이름난 배우인데 이런 한심한 집에서 고생할게 있나. 남들이 웃는다오. 우리 집보다 훨씬 좋은 집을 소개해줄테니 그리로 이사하는게 어떻겠나?》

예봉은 얼굴이 해쓱해졌다. 얼려서 말죽먹이기라더니 나가라는 소리를 하지 못해 얼리는 말이 아닌가. 상냥한 말뒤에 숨은 주인집녀자의 속심이 뻔히 들여다보였으나 항변 한마디 할수 없는 처지였다. 빚진 종이 무슨 할말이 있으랴.

참혹해진 예봉은 그의 손을 꼭 잡으며 빌다싶이했다.

《우리 신세에 무슨 집타발이 있겠어요. 이런 집도 과남한데요. 제발 조금만 더 참아주세요.》

빈웃음이라도 떠돌던 주인집녀자의 얼굴이 랭랭하게 굳어졌다.

《벌써 몇달째요? 우리도 살기 힘들어서 그러우. 잘 아는 인정에 무작정 쫓을수도 없고 해서 한달두달 넘겨오는데 우리 사정도 좀 봐주어야지.》

도리여 그가 사정하는 처지로 되여버렸다. 예봉이로서도 할말이 없었다. 그 녀자도 역시 방세로 살아가는 처지이니 누가 누구를 동정한단 말인가.

《그럼 주인과 토의하고 방을 내든가 하겠어요.》

예봉은 풀기없는 목소리로 겨우 중얼거리듯 말하였다.

《꼭 그래주게.》

한결 누그러진 얼굴로 주인집녀자는 내려갔다.

방에 들어온 예봉은 한동안 멀거니 서있었다. 모든 사고가 마비된듯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다.

인제는 어떻게 할것인가. 돈 한푼 없으니 꼼짝 못하고 한지에 나앉을수밖에. 정말 막막하기만 하였다.

종화를 무릎에 앉히고 한창 재롱에 취해있던 림선규는 방에 들어와서도 얼없이 서있는 예봉의 이상한 거동에 눈이 갔다.

《여보, 왜 그러오?》

그러나 예봉은 못 들었는지 그 자세로 굳어져있다.

《예봉이!》

좀 더 큰소리로 불러서야 예봉은 흠칫 놀라며 그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언제나 고요하고 아련하게 빛나던 눈빛이 공허하리만치 푹 꺼져있었다. 암울한 표정이다.

《무슨 일이 있었소?》

어느덧 예봉의 눈에 눈물이 글썽하였다.

《집을 내라구 해요.》

울음이 섞인 목소리로 간신히 말한 예봉은 그자리에 주저앉으며 두손으로 얼굴을 싸쥐였다. 들먹이는 어깨, 손가락짬으로 새여나오는 눈물…

림선규는 고개를 떨구었다. 지꿎게 따라다니는 가난의 그림자다. 허지만 그 그림자를 쫓아버릴수 없는 너무도 무맥한 자신이다. 창작적재능과 성실성만으로는 결코 살아갈수 없는 이 세상! 모든것이 한스럽고 혐오스럽다. 이 세상을 콱 갈아엎을수는 없을가! 항상 가슴속 깊은 곳에서 지글지글 끓고있던 분노의 지열이 온몸을 태운다.

그는 두주먹을 꽉 부르쥔채 비내리는 창밖을 한동안 쏘아보았다. 답답한 가슴, 터져오르는 울분…

림선규는 움쭉 일어나 서둘러 옷을 갈아입기 시작하였다.

예봉은 의혹이 실린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다.

《내 좀 나갔다오겠소.》

림선규는 우산도 없이 비내리는 거리로 사라졌다.

예봉은 한줄기 희망의 빛이 가슴에 스며듦을 느꼈다. 혹시 어디서 돈이라도 변통해오려나?

희망과 실망이 엇갈리는 복잡한 심정속에서 그는 남편을 기다렸다.

비는 여전히 멎을줄 모르고 뽀얀 물안개까지 일으키며 쏟아진다.

오후가 다되여서야 남편이 한규설과 함께 손달구지를 끌고 나타났다.

무슨 일인가고 묻기도 전에 림선규는 방구석에 놓여있는 책궤짝들을 들추기 시작하였다.

궤짝에서 책 한권을 꺼내든 그는 보물이라도 쓰다듬듯 겉뚜껑을 어루만지다가 첫페지를 펼치였다. 책장을 번지는 림선규의 얼굴은 너무도 무거운 표정이다. 다른 책 몇권을 그런 식으로 쓰다듬고 쓸어보고 하던 그는 모든것을 단념한듯 소리나게 탁 하고 덮어버리였다. 그리고는 한아름씩 꺼내서 손달구지에 실었다. 한규설이 그의 일손을 도왔다.

림선규는 그리도 소중히 여기던 책을 팔려는것이였다.

모진 가난속에서도 고스란히 지켜온 이 집의 유일한 재산이였다. 그런데 그 살점과도 같은 책들을 팔지 않으면 안될 시각이 들이닥친것이다.

예봉은 남편의 기막힌 심정이 헤아려져 숨도 크게 못쉬고 서있었다.

이윽고 책을 다 싣고난 림선규는 한숨을 푹 내쉬며 예봉에게 말하였다.

《여보, 내 손으로는 차마 저 책들을 팔지 못하겠으니 당신이 좀 수고해주오.》

예봉은 말없이 차비를 하였다.

다행히도 하늘이 약간 훤히 트이며 비발이 가늘어졌다.

그들은 책이 젖을가봐 손달구지우에 가마니를 씌웠다. 한규설이 앞채를 메고 문예봉이 뒤에서 밀며 마당가를 나섰다.

손달구지를 밀어내고 마당문을 닫으려던 예봉은 비물을 맞으며 토방우에 서있는 남편의 모습을 띠여보았다. 너무도 초췌해진 그의 얼굴과 눈길이 마주치는 순간 예봉은 머리를 휘-내둘리우는듯 한 충격에 잠시 몸을 휘청거렸다.

남편의 어진 두눈에 눈물이 고여 번쩍하고있었던것이다. 흔치 않은 사나이의 눈물이였다.

그 눈물에 어린 남편의 말 못할 고통과 쓰라림, 피를 말리는 고뇌가 쿵 하고 가슴에 마쳐와 예봉은 한동안 발길을 떼지 못하였다.

그를 절망의 미궁으로 떠밀어던진것이 바로 자기인듯 죄의식이 가슴을 옥죄이는것이였다.

 

                광막한 광야를 달리는 인생아

                너는 무엇을 찾으려 왔느냐

                이래도 한세상 저래도 한세상

                돈도 명예도 사랑도 다 싫다

 

생을 포기한 윤심덕이 마지막으로 불렀던 이 염세의 비가가 이 순간 애젊은 이들부부의 가슴에도 공명되여 허탈과 체념의 무서운 수렁속으로 떠밀지 않았다고 누가 단언하랴.

온몸에 소나기를 맞으며 손달구지를 밀고가는 예봉의 얼굴로는 비물인지 눈물인지 알수 없는 쩝쩔한것이 하염없이 흘러내린다. 그야말로 암운속을 한치한치 헤쳐나가야 하는 고달픈 인생길이였다.

(그후 문예봉부부는 끝내 이 세방에서 쫓겨나 허헌선생의 주선으로 어느 출판사의 4층짜리 한방을 내여 거처하였다.)

 

*          *

 

이 시기로 말하면 젊은 부부의 예술창작면에서는 개화기라고 할수있는 시기였다.

수많은 극작품을 창작하였던 림선규는 주체26(1937)년에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라는 연극을 동양극장무대에 올려 극계를 뒤흔들고있었다.

홍도의 비참한 운명선을 통하여 당대 식민지사회의 불합리한 모순과 병페를 예리하게 파헤친 이 연극은 림선규의 창작적실력이 최대로 발휘된 그의 대표작이면서도 해방전 우리 나라 연극의 성과작이기도 하였다.

이 연극은 무대에 첫 막을 올린이래 관중들의 대절찬속에서 성황리에 공연되고있었다. 그후 이 작품은 유성영화로 각색되여 더욱 유명해졌으며 《홍도야 울지 말아》라는 영화의 주제가는 삽시에 온 나라에 파급되였다.

림선규는 이외에도 《류랑삼천리》, 《동학당》, 《동백꽃피는 마을》, 《바람부는 시절》 등 인기있는 작품들을 련속 창작함으로써 《연극의 왕》이라는 왕년의 평판을 잃지 않고있었다.

문예봉역시 이 시기에 《춘향전》을 비롯하여 《아리랑고개》, 《미풍》, 《장화홍련전》, 《나그네》, 《춘풍》, 《애련송》, 《인생항로》 등 수십편의 영화들에서 련속 주인공역을 훌륭히 수행하여 《은막의 녀왕》으로서의 지위를 확고히 고수하고있었다.

무대와 은막을 통하여 본 이들부부의 명성은 이렇듯 화려하고 휘황찬란한것이였으나 실생활은 너무도 눈물겨운것이였다. 그들의 생활은 곧 식민지예술인들모두가 겪어야 했던 쓰라린 생활사의 축도라고 할수 있었다.

심영이라 하면 당시에 연극배우로서뿐아니라 연출가로서도 이름이 높았던 명배우였다. 예술활동의 초시기에 벌써 라운규의 지도를 받은 그는 최승일작 《고향을 떠나는 사람들》에서 주인공으로 출연한 후 《일체 면회를 거절하라》, 《걸인의 일기》, 《월희》,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동백꽃피는 마을》, 《바보 장두월》, 《고향》 등 수많은 작품들에서 주역을 수행하였고 연출도 맡아한 극계의 총아였다.

그러한 그도 생계유지가 너무도 곤난하여 서울 어느 호텔앞에서 구두닦이를 하는 신세가 되였다. 이 소식이 신문보도계의 특보감으로 파다히 공개되여 사람들의 한탄과 동정의 눈길을 모았었다.

박재행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1920년대에 극계에 진출하였던 그는 주로 소품무대에 많이 출연하였는데 《아첨하다가 봉변》, 《아버지의 잘못이 아니다》, 《인사불성》, 《취해서 살아온 한생》 등이 그의 대표작이였다.

그는 주체26(1937)년 림선규작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에서 우편배달부역으로 출연했었는데 그의 기지와 연기실력을 보여주는 이런 일화가 있다.

주인공 홍도가 밖으로 나가다가 우편배달부를 만나는 장면이 있다.

그런데 주인공 홍도역을 맡은 녀배우 차홍녀는 바닥이 반나마 떨어진 고무신을 신고 등장하였다가 그만 넘어지는 실수를 하였다. 여느 배우들 같으면 이런 정황에서 당황하여 쩔쩔맬것이였다. 그러나 우편배달부로 분장한 박재행은 그 즉석에서 《아니, 홍도아가씨가 이게 웬일이요. 마음고생이 생긴게로군.》하면서 태연히 홍도를 일으켜주고 《자, 신문이요, 신문이 왔습니다. 오늘도 상품광고뿐 특별한 소식은 없습니다.》라고 말을 하면서 신문을 주고 퇴장하였다.

원래는 없던 장면이였는데 그가 차홍녀의 실수를 이런 즉흥연기로 메꾸어버렸기때문에 관객들은 그런것은 전혀 모르고 연극의 한 장면으로 받아들였다.

이처럼 예술적기지도 있고 재능도 풍부한 그였으나 생활고에 시달리다 못해 임신한 안해를 남겨놓고 자살을 시도하기까지 하였었다.

석금성(최로사의 어머니)은 연기와 화술, 키와 몸매, 생김새가 그쯘히 구비된 녀배우로서 수많은 연극들에서 주역을 담당했었다. 그러한 그도 해산을 한달 앞둔 때까지 무대에 나가 출연하다가 무대로 날아온 사과알에 얻어맞고 실신한채 병원에 실려가 조산하는 비극을 당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연극계의 혜성으로 떠받들리우던 차홍녀도 변변한 치료 한번 못 받은채 꽃나이에 속절없이 세상을 하직하는 비극적운명을 면치 못하였다.

얼마나 눈물겨운 예술인들의 처지인가.

배우란 한갖 돈의 희생물이 되는 노리개에 지나지 않았으니 그들의 세계야말로 눈물의 바다라 하지 않을수 없었다.

문예봉도 그 눈물의 바다우에 떠있는 하나의 부평초와 같은 신세였으니 그의 눈에서 어찌 설음과 슬픔의 눈물이 마를새가 있었으랴.

《은막의 녀왕》이라는 월계관은 화려했어도 그 월계관의 주인인 《녀왕》은 한끼의 밥과 세 식구가 거처할 보금자리가 없어 애타는 가슴을 부여안고 방울방울 피눈물을 흘리고있었던것이다. 허나 그 눈물에 어린 비애와 아픔을 털끝만큼도 헤아려주는이 없는 너무도 랭혹한 세상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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