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 회)

제1편 눈물의 백합꽃

눈물의 무대

 

봉천(심양)의 어느 한 이름없는 려관방에서 예봉은 한장의 편지를 손에 든채 하염없이 밖을 내다보고있었다. 국제적인 분위기가 농후한 봉천이라 거리는 수많은 인총으로 붐비며 들끓고있었다. 시내의 《심양구》에 있는 사평가는 중국인거리가운데서도 제일로 치는 번화가이다. 거리 량쪽으로는 중국식, 유럽식의 호화상점들과 백화점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사람들의 물결이 끊기지 않는다.

봉천공연을 끝내고 단동으로 떠나기 앞서 극단일행은 지금 모두 거리구경에 떨쳐나섰다.

그러나 예봉은 쓸쓸한 려관방에 홀로 남았다. 어제 받은 림선규의 편지때문에 마음이 산란하여 모든 일이 귀찮았던것이다.

그사이 문수일은 갖은 신고끝에 《연극시장》을 다시 복구하였다. 술집에 팔려갔던 문숙방도 데려와 《연극시장》은 명실공히 문씨가족을 중심으로 하는 연극단이 되였는데 여기서 기둥은 예봉과 문숙방이였다. 문수일은 예봉의 가치와 무한한 가능성을 노리고있었다. 그런데 림선규가 암초였다.

문수일의 눈으로 볼 때 림선규는 재능있는 극작가이긴 했으나 돈한푼 없는 가난뱅이요, 페병쟁이였다. 책밖에 모르는 유약한 림선규에게 예봉을 준다는것은 너무도 손해가 약차한 거래처럼 느껴졌다. 그는 예봉과 림선규의 혼사를 필사적으로 반대해나섰다.

《연극시장》이 복구된 초기에는 인기있는 작품들이 요구되였으므로 림선규에게 그다지 모질게 굴지 않았으며 어느정도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였다. 거기에는 예봉과의 관계도 청춘남녀간의 일시적인 련애놀음으로 그칠수 있다는 한가닥 제나름의 타산도 있었던것이다. 그러나 문수일의 생각과는 달리 예봉과 림선규의 사이는 남달랐다. 둘사이의 사랑은 너무도 진실하였고 그만큼 진지하였다. 어지러운 세상에서 뭇남녀들의 방탕한 정사의 세계를 신물나도록 보기도 하고 또 자신이 직접 그런 정사에 휘말려들어 정력을 탕진하기도 하였던 문수일로서는 도저히 납득이 안가는 그들의 애정세계였다.

림선규에게 무조건 모든것을 의탁하는 예봉의 모습에는 사나운 세상의 비바람을 그에 의지하여 가리우고 피하려고 하는 눈물겨운 몸부림이 있어 일종의 처절한 그 무엇을 자아내는것이였다.

그러나 문수일은 역시 문수일이였다. 극단이 점차 호경기에 들어서자 그는 림선규의 존재를 무시하며 내놓고 멸시하기 시작하였다.

그런다고 그의 곱지 않은 눈총에 서리맞은 호박잎처럼 후줄근해질 림선규 또한 아니였다. 문수일을 압도하는 그의 인격은 도도하였다. 둘사이의 관계는 칼끝을 마주 댄것만치나 날카로왔고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나 같은 상태에 이르렀다.

이런 속에서 《연극시장》이 간도쪽으로 순회공연을 떠나게 되자 림선규는 단호히 극단을 결별하였다. 중국에까지 문수일을 따라다니며 눈총을 받고싶지 않았던것이다.

문수일은 너무도 좋아 춤이라도 추고싶은 심정이였다.

그러나 문예봉은 눈앞이 아찔하였다. 그와 헤여진다는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할 일이였다.

서울에서 작별할 때 림선규는 예봉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사랑을 강요하지는 않겠소. 나와 일생을 같이하겠으면 아버지와 결별하고 나를 따라오는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예봉이 마음대로 하오.》

낯설고 물설은 이국땅을 물결처럼 떠다니는 순회공연의 나날에 예봉이 흘린 고독과 외로움, 슬픔의 눈물은 그 얼마였던가.

림선규가 없는 극단은 마음붙일 곳이 없는 사막지대였다. 후날 그때를 회상하여 예봉은 《온 세상이 귀치 않고 몸과 마음을 붙일 곳이 없었다. 오직 그이가 있는 하늘아래서 내 마음이 흘러갈뿐이였다.》고 말한적이 있다.

이런 예봉에게 어제 뜻밖에도 림선규의 편지가 날아든것이였다. 서울에서 머나먼 봉천에까지 날아온 림선규의 편지를 손에 꼭 쥔 예봉은 눈물부터 머금었다. 눈에 익은 정든이의 필적을 보는 순간부터 걷잡을수 없이 흘러내리는 눈물… 마음은 왜 이다지도 쿵쿵 뛰는것인가.

얼마간 마음을 진정하고서야 예봉은 조심히 편지를 펼쳐들었다. 문안과 함께 자기의 그간 생활을 일일이 적은 뒤 림선규는 이렇게 쓰고있었다.

《예봉이,

우리가 헤여진지도 어느덧 두달이 지났소. 늘 함께 있을 때는 몰랐는데 이렇게 떨어지고보니 예봉이 없는 나의 생활이 얼마나 고독하고 불행한가 하는것을 통절히 깨닫게 되였소. 예봉이 없는 내 생활이란 정말 오아시스 없는 사막과 같은것이요. 나는 날마다 꿈에서 예봉이를 보오. 그런데도 예봉은 지금 내곁에 없고 저 이국하늘밑에서 떠돌고있는것 아니요.

예봉이, 헤여질 때도 말했지만 나는 강요하지는 않소. 그러나 나에 대한 예봉의 마음이 진정이거든 아버지곁을 떠나 이리로 오시오. 아무리 친아버지라 해도 불의를 강요할 때야 반항해야지요. 아버지라 해서 무조건 순종해야 한다는 법은 없소. 예봉이가 아버지라 하여 무조건 아버지를 따르겠다면 나로서는 할수 없는 일이지만 예봉이가 그렇게도 순종밖에 모르는 무능한 인간일가? 나는 그렇게 믿고싶지 않소.

나의 예봉이, 이 편지를 받은 즉시로 결심을 적어보내오. 나는 매일과 같이 그쪽 하늘을 바라보며 예봉이 소식을 기다리오. 우리는 절대로 헤여질수 없소.

예봉이, 거듭 말하지만 나만을 위해서 강요하는것이 아니요. 전적으로 예봉의 의사에 맡기오. …》

거듭거듭 읽어볼수록 림선규의 불같은 열정이 예봉의 가슴을 쿡쿡 찔렀다. 어떻게 하나 자기가 오기를 간절히 바라는 림선규의 곡진한 심정이 안겨올수록 그로부터 멀리 떨어져있는 자기가 놀라왔고 슬펐다. 그이가 없이도 먹고 살아온것이 새삼스러웠다.

리별의 아픔을 당해보아야 그리움의 진가를 안다는 말이 있다.

예봉은 이 두달기간 너무도 그리움으로 타는 심장의 아픔을 체험해오는터였다.

그는 편지를 조심히 접어 품속깊이 간직하였다.

그 시각부터 그의 온 머리에는 어떻게 하면 아버지곁을 탈출할가 하는 생각으로 꽉 찼다. 한시바삐 님이 있는 곳으로 가고싶은 그리움의 화약고에 불길이 달린것이였다.

 

*       *

 

단동에서의 마지막공연은 《리수일과 심순애》였다. 문수일이 리수일역을 하고 예봉이 심순애역을 하였는데 《연극시장》의 마지막공연이라 하여 문수일의 친우들이 객석에 많이 와 앉아있었다.

막이 열리면 수양버들 휘늘어진 대동강가의 달밤을 배경으로 은은한 방창이 흐른다.

 

    대동강변 부벽루를 산보하난

    리수일과 심순애는 량인이로다

    악수론정 하는것은 오늘뿐이요

    도보행진 산보함도 오늘뿐이라

 

이 방창의 선률속에 고보학생복에 모자를 쓰고 만또를 걸친 리수일(문수일)과 흰저고리에 까만치마를 입은 심순애(문예봉)가 걸어나온다. 리수일은 대동강가의 밝은 달을 쳐다보며 처량하게 말한다.

《래년 3월 15일에 저 달이 검은구름에 가리웠으면 이 수일이가 순애를 저주하면서 피눈물을 흘리는줄 아시오.》

순애는 그의 만또자락을 붙잡으며 《수일씨.》 하고 안타깝게 부르짖는다. 바로 이때 객석에서 쯧쯧 하는 소리가 나더니 《얘, 얘, 걷어치워라.》하는 아버지친우들의 목소리가 날아왔다. 아무리 연극이라도 아버지와 딸이 애인관계로 출연하는것이 너무도 거북스러워 친우들이 터친 비난이였다.

다음대사를 생각하던 예봉은 돌연히 무대에 날아든 아버지친우들의 민망스러워하는 목소리에 그만 당황해지고말았다. 무대라는것도 잊고 얼굴이 빨개진 그는 다음행동과 대사를 잊어버린채 그자리에 우뚝 서버리고말았다. 어찌할바를 몰라 갈팡질팡하는 예봉이였으나 문수일은 역시 달랐다. 그는 예봉이에게 질책의 눈빛을 내쏘면서도 슬픔에 잠긴 리수일의 표정은 조금도 흐트리지 않으며 가만히 독촉하는것이였다.

《얘, 어서 해라. 어서.》

그제야 정신을 차린 예봉은 다음대사를 외웠다.

《수일씨, 당신을 외국류학시키기 위하여 나는 김중배의 가정으로 시집을 가요.》

순애(예봉)는 수일의 만또자락을 붙잡고 울음을 터친다. 그러는 순애에게 수일은 이렇게 웨친다.

《내 비록 무산자의 자식이지만 사랑하는 자기 애인을 팔아서 외국류학을 할 그런 저렬한 남아는 아니요.》

수일은 순애의 손을 뿌리치고 단호히 퇴장한다. 순애가 그자리에 쓰러져 슬피 울 때 막이 서서히 내린다.

관중들의 박수갈채가 요란히 터질 때 예봉은 막뒤에서 두눈에 젖은 눈물을 씻으며 천천히 무대를 내렸다. 웬일인지 진정으로 눈물이 북받치는것을 어쩔수가 없었다. 자신에 대한 혐오감의 눈물이였다. 아버지와 함께 밟는 이 무대가 왜 이다지도 치욕스럽게 느껴지는것인가.

얼마나 보기 딱했으면 아버지친우들이 공연이라는걸 알면서도 공개적으로 비난하였으랴. 아버지와 아들, 남편과 안해, 오빠와 누이 등이 한연극단에서 오늘은 애인간이요, 래일은 부부간이요 또 다음날은 원쑤지간으로 분장하고 나와 관객들앞에서 있는 재간, 없는 재간을 다 부릴 때 먹고살기 위한 그 처절한 몸부림뒤에 숨은 가지가지의 비극과 슬픔을 사람들은 알기나 할가!

라운규선생이 말하던 그 진정한 예술의 세계와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연극시장》의 모든것이 부끄럽고 추하고 역하게만 느껴졌다. 한시바삐 이곳을 탈출하고싶었다. 한번 뛰기로 결심한 예봉의 마음은 시위에서 튕겨난 화살처럼 곧추 날아가기만 하였다.

다음공연장소는 신의주였다. 그는 신의주에서 곧장 서울로 갈 작정을 하였다.

려비를 마련하려고 부랴부랴 짐을 들추었다. 아무리 뒤져야 값이 나가는 물건이 눈에 뜨이지 않는다. 있다면 《임자없는 나루배》를 찍은 다음 라운규가 해준 까만 모직외투 한벌이 있을뿐이였다. 그 외투를 꺼내드니 존경하는 라운규선생의 모습과 영화촬영의 나날들이 그립게 안겨오며 가슴이 찌르르해졌다. 라선생의 손길이 스며있는 외투라 무척 소중했고 그만큼 애지중지 아끼던 물건이였으나 어쩔수 없었다. 그는 눈을 꼭 감고 외투를 보자기에 싸들었다. 그리고 림선규가 주고간 약혼반지까지 뽑아 넣었다. 그 반지역시 몸에서 떼여놓을수 없는 귀중품이였으나 그리운 님한테 가자니 별도리가 없었다. 전당포에 그 물건들을 저당잡히고 돈 10원을 받아든 예봉은 비로소 호- 하고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그 돈이면 서울까지 문제없었던것이다.

 

*       *

 

그리운 선규씨!

이밤 또다시 마음속의 말을 당신과 나누렵니다. 우리들이 헤여진지 어느덧 반년, 살같이 흘러가는 세월이 무정할수록 이렇게 헤여져 살아야 하는 우리들의 처지가 더욱 슬프게 안겨옵니다.

선규씨가 나를 기다리다못하여 병들어 누웠다니 이 죄를 어떻게 씻어야 할가요. 아마도 나는 너무도 나약하고 못난것 같습니다.

그동안에 있은 일을 마음속으로 아뢰이자니 왜 이리도 가슴이 아파오는지, 왜 하염없이 눈물부터 흘리게 되는지 나자신으로서도 이 마음을 걷잡을수가 없군요.

선규씨, 나의 두팔에는 지금 쌔근쌔근 잠자는 애기가 안겨있습니다. 우리들의 소중한 사랑의 열매이나 지금은 슬픔덩어리입니다. 이 모진 세상에 멋모르고 태여나 단잠을 자는 아기를 바라볼 때마다 흐르는 눈물이 그 애의 보드라운 뺨에 방울방울 떨어집니다. 귀여운 애기를 품에 안은 어머니가 왜 슬픔의 눈물을 흘려야 하는지

이 세상이 야속하기만 합니다. 이 애기가 정녕 아버지없는 아이가 되지 않을가, 이 애기를 뺏기지나 않을가, 밤마다 나는 소스라쳐 놀라 일어나군 합니다. 그리고는 누가 빼앗을세라 애기를 꼭 껴안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직접 나에게 말은 하지 않았으나 영자의 말을 들어봐도 속심은 뻔합니다. 아이를 다른데 주라는겁니다. 남편도 없이 낳은 아이라 떳떳치도 못할뿐더러 공연에 지장을 준다는겁니다. 더 좋은 남편감이 나선다고 영자가 살살 꾀일 때 나는 귀를 틀어막고 돌아앉군 한답니다. 당신을 꼭 닮은 애기를 품에 안고있는 내가 아닌가요. 애기도 당신의 애기요, 나도 당신의 예봉이 아닙니까. 진작 당신곁에 가있어야 하는 이 몸이 아직도 당신과 수천리 떨어진 곳에 홀로 남아있으니 아, 나는 정녕 자기 사랑도 지킬줄 모르는 그런 녀자인가봅니다.

지금도 신의주에서 있었던 일을 생각하면 분통하기 그지없습니다.

봉천에서 당신의 편지를 받은 직후 나는 신의주에서 곧장 서울로 가려고 려비까지 준비하였댔습니다. 신의주역에 도착한 날 서울로 가는 낮차가 있다기에 그 차를 타기로 작정했지요. 그러나 마음은 결코 가볍지 않았습니다. 모든 작품의 주인공역을 거의다 내가 맡아서 하다싶이 하였는데 내가 훌쩍 떠나면 극단은 어떻게 될가? 참으로 생각이 복잡하고 울적하기만 하더군요. 그러나 나는 단호히 발길을 정거장쪽으로 돌렸습니다. 그 누가 볼세라 슬그머니 떠난 길이여서 뒤 한번 못돌아보고 부리나케 정거장쪽으로 걸었지요. 차가 도착할 시간을 맞춰나갔기에 7원이나 되는 차표를 사가지고 막 빠져나오려는데 글쎄 영자가 경찰까지 데리고 뒤따라온줄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나는 그길로 아버지한테 끌려갔습니다. 아버지는 성난 호랑이처럼 길길이 뛰며 무작정 매를 안기더군요. 그 매질에 쓰러져있는데 또 가두행진을 나가라는겁니다. 운신하기 힘든 몸을 겨우 일으켜 대충 분장을 하고 인력거에 올랐습니다. 다른 배우들은 모두 나를 동정하는 눈치였습니다.

《연극시장》의 공연순서를 찍은 선전물에는 내 이름이 대서특필로 광고되여있었습니다. 그 선전물이 뿌려지는 속에 북치고 꽹과리를 울리며 마을을 돌 때 인력거우에서 활짝 웃는 나의 웃음뒤에 숨은 슬픔의 눈물을 사람들은 짐작이나 할가요. 속으로는 울면서도 겉으로는 웃어야 하는 연극녀우의 처지는 왜 이처럼 비참한것입니까?

그날저녁의 공연은 《국화》였는데 나의 처지와 비슷한 주인공의 이야기라 그야말로 나는 역의 세계에 푹 빠져 공연을 하였습니다. 아니 나는 연기를 하였다기보다 실지의 내 마음을 그대로 쏟아놓았다고해야 옳을것입니다.

극장을 뒤흔드는 관중들의 절찬의 소리가 터져오를 때 나는 막뒤에서 울었습니다. 내가 가련하고 불쌍해서 흘리는 눈물이였습니다. 나의 슬픈 체험이 그대로 무대에 펼쳐지고 그것이 관중들의 찬사를 받는다고 생각하니 기가 막혔습니다. 연극배우는 언제나 슬픈 운명이여야 무대에서 성공할수 있단 말입니까. 세상은 왜 이리도 불공평하단 말입니까?

선규씨,

선규씨의 덕으로 나는 이렇게 생각이 많은 녀자가 되여버리고말았는가봅니다.

그날밤 아버지친구들이 연극공연의 성과를 축하하여 료리점에서 불고기를 한턱 냈습니다. 아버지는 연극단 전원을 여기에 참가시키면서도 나만은 빼놓았습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그런 혼잡판에 섞이고싶은 마음도 없었고 나혼자 있고싶었으니까요. 그래야 호젓한 려관방에서 당신과 이렇게 마음속말을 끝이 없이 나눌게 아닌가요. …

그때 나의 몸속에서는 새 생명이 자라고있었습니다. 자기의 존재를 주장하는 그 생명의 감촉을 받을 때마다 나는 이상한 감정에 휩싸이군 합니다. 당황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고 또 환희롭기도 하고…

어쩌면 좋을가요? 마음속으로 당신에게 보내는 끝없는 질문이였습니다. …

그러나 지금은 내 팔에 애기가 안겨있습니다. 쌔근쌔근 자는 아기의 얼굴에서 당신의 모습을 찾아보면 이 한밤을 지새우는 나는 결코 불행하기만 한 녀인은 아닐것입니다.

 

*       *

 

선규씨,

한 아기의 어머니가 되였으나 변함없이 흐르는 나의 생활입니다. 아니 더 고통스럽고 괴로운 나날들입니다. 애기를 키우며 연극공연을 하느라니 그 고달픔을 어디에 비길가요.

오늘 있은 일입니다.

공연시간에 애기를 푹 재우려고 나는 무대 뒤구석에서 젖을 먹이고있었습니다. 어둑시근한 구석이지만 정신없이 젖을 빠는 애기의 보드라운 머리칼을 만져보는 그 순간이 그래도 저에게는 행복의 시각입니다. 세차게 젖을 빨다가도 문득 젖꼭지를 빼고 나를 올려다보며 해쭉 웃음짓는 애기의 그 귀여운 모습을 애무하며 나는 행복의 무아경에 잠깁니다. 애기의 고운 입술에 입을 꼭 맞출 때 짜릿해지는 행복감! 가슴 무둑해지는 이 시각을 언제까지라도 즐기고싶고 이 애기만을 품에 꼭 껴안고있고픈 심정입니다.

그러나 야속하게 울리는 징소리는 나를 재촉합니다. 공연시간이 다가온것입니다. 서둘러 아이를 품에서 내려놓고 포대기에 꽁꽁 쌉니다. 아직도 젖이 모자란듯 입을 오물거리는 애기를 분장실 책상우에 눕혀놓고 나는 떨어지지 않는 걸음을 옮겼습니다.

객석에는 관중들이 꽉 들어차있었습니다. 한창 공연을 진행하고있을 때입니다. 무대에서 주인공의 독백을 엮고있는데 문득 내 귀가에 애기의 울음소리가 울려오는것 아닙니까. 혹시나?… 귀를 기울이면서 입으로는 대사를 계속 외우고있는데 악을 쓰며 울어대는 아기의 울음소리가 더욱 크게 나의 고막을 두드리는것입니다. 나는 흠칫 몸을 떨었습니다. 황황해지는 마음, 순간적으로 휭 내돌리우는듯 한 머리나는 비칠거리며 쓰러질번 하였습니다. 상대역을 맡은 배우가 잽싸게 나를 붙잡는 연기를 하는척 하며 소곤대는것이였습니다.

《무대요!》

제정신으로 돌아온 나는 태연히 하던 연기를 계속하느라 했으나 자감상태에 빠지지 못한채 적당히 얼버무리고말았습니다. 무대뒤에서는 배고파 우는 아기의 울음소리가 계속 내 가슴을 아프게 쥐여뜯는데 무대에 선 나는 오도가도 못하고 활짝 웃으며 수선을 떨어야 합니다.

어머니를 부르는 애기의 울음소리! 그 울음소리를 들으면서도 무대에서 웃어야 하는 어머니!

막이 내리자마자 애기에게로 정신없이 달려가 부둥켜안으니 애기는 너무도 울다울다 지쳐 새파래진 얼굴로 늘어져있는것 아닙니까. 그 애기를 꼭 껴안은 내 눈에서는 정말로 눈물이 아니라 피눈물이 흘렀습니다.

젖도 채 먹이기 전에 또다시 막이 열리고 내가 또 나가야 할 때입니다.

젖가슴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땀까지 바작바작 흘리며 자지러지게 울어대는 애기를 또 떼여놓고 무대로 나가는 내 걸음도 비틀비틀 제정신이 아니랍니다.

선규씨, 이것이 바로 하루하루 흘러가는 내 생활입니다.

무대뒤에서 우는 아기와 저 멀리 병들어 누운 당신을 생각하면서 진정으로 눈물을 줄줄 흘리며 연극을 하는 때가 많습니다. 그런것도 모르고 관객들은 예봉이가 정말 연극을 잘한다고 박수갈채를 보내지요. 그것이 슬퍼서 저는 또 옵니다. 이래서 울고 저래서 울고 그야말로 눈물의 무대입니다. 그 눈물의 무대에 발을 적시고 서있는 우리 조선의 연극인들처럼 가난하고 기구하고 불쌍한 인생들이 또 어디 있을가요.

선규씨,

새벽닭이 웁니다. 이 한밤을 또 당신과 함께 새운셈입니다. 내 마음속에 서리서리 엉킨 응어리를 당신과 이렇게라도 속삭이면 내 마음도 한결 후련해집니다. 언제면 선규씨에게로 달려가 고운 우리 아기를 당신의 품에 안겨드릴런지그날만을 애타게 그려보는 예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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