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 회)

제1편 눈물의 백합꽃

《연극시장》에서

 

바람부는대로 물결처럼 흘러가는 극단이다.

정처없이 굴러가는 마차, 그우에 트렁크며 천막이며 악기들을 처싣고 비좁게 앉아 하염없이 밤하늘의 달을 바라보며 흘러가는 인생들

밤새워 맞다드는 첫 마을에 짐을 푼다. 울긋불긋하게 마차를 장식하고 꽹과리와 북을 울리며 한바탕 떠들썩 가두행진을 하여 사람들을 깨운다.

가설막을 치고 무대에 올라 온갖 재간을 다 부리고는 쓸쓸한 화토불을 동무삼아 쓴 술잔들을 기울이며 또다시 밤을 지새운다. 날이 새면 또다시 기약없는 길을 떠나 남북 그 어디나 발길 닿는대로 가야 할 이들이다.

   

    한곳에 그날그날 정붙이기 괴롭다

    반가이 손을 들어 맞아줄이 그 누구냐

    낡아진 악기를 싣고서 떠나야 할 그 운명

    극단아 류랑극단 가엾은 극단아

 

영화촬영을 마치고 돌아온 예봉은 다시 류랑극단에 몸을 실었다.

그간 아버지 문수일은 《연극사》를 탈퇴하고 간난신고끝에 누이 문숙방과 처 리영자, 예봉을 기둥으로 하여 《연극시장》이라는 가족극단을 조직하는데 성공하였다.

영화 《임자없는 나루배》의 성공의 여파는 예봉이 속해있는 《연극시장》의 인기를 대단히 높여주었다. 그토록 사랑스러운 무성영화의 녀주인공이 출연한다는 광고로 하여 가는 곳마다 《연극시장》의 공연장소는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문수일은 대만족이였다. 이대로 가면 경쟁자인 지두환의 《연극사》를 누를수 있을것 같았다. 문제는 극대본이였다. 기성작품들과 번역극들은 관중들의 호평을 받지 못하였다. 민족적인 색채가 짙은 작품을 공연해야 할텐데 그런 작품들은 일본총독부에서 승인하지 않았다.

관중들의 구미에도 맞고 검열에도 쉽게 통과될수 있는 극작품을 쓸줄 아는 재능있는 극작가가 절실히 요구되였다. 그리하여 당시 《드라마의 왕(극의 왕)》이라고 불리우던 젊은 극작가 림선규가 《연극시장》으로 오게 되였다.

림선규는 충청남도 론산출신으로서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운송집에서 급사로 일하였다. 그후 상업학교를 중퇴하고 서울에 올라와 극문학창작활동을 벌렸는데 작품마다 대인기였다. 《연극시장》에 들어오자마자 김시습을 주인공으로 하는 력사극 《속세를 떠나서》와 《페허우에 우는 충혼》, 《태양의 거리》 등 애국적인 경향의 작품들을 련속 창작해내여 무대에 올리는 바람에 문수일은 너무도 좋아 어깨바람이 날 정도였다. 이 재간둥이만 있으면 작품걱정은 안해도 될것이였다. 당시 림선규는 한주일에 한편씩의 극대본을 써낸다는 평판이 돌 정도의 재능아였다.

연극단에 돌아온 예봉이 림선규를 처음 본것이 바로 이무렵이였다.

내성적인 성격이라는것이 첫눈에 알리는 림선규의 조용한 모습은 예봉에게 큰 인상을 남기지 못하였다.

(샌님같은 사람이구나.)

눈빛마저 이글이글 타는듯 하던 정열의 인간- 라운규에 대한 인상이 너무도 강해서인지 림선규의 존재는 예봉의 호기심을 자극하지 못하였다.

20대의 청년답지 않게 사색적인 눈빛이 좀 류다르다고 해야 할지

 

*       *

 

련일 궂은비 뿌리는 가을철이다.

최서해가 일찌기 《…가을비소리는 처량하다. 소리소리 온몸의 신경을 거문고줄 울리듯 울리면서 뼈속까지 스며드는 그 소리는 처량한 맛이 어데라없이 흐르고있다. 어쩐지 모든것이 그립고도 슬프게 들린다.…》 라고 읊은바와 같이 밤새 비에 젖은 몸들을 싣고 포장마차는 어느 지방의 가난한 마을에 들어섰다.

몸도 춥고 마음도 처량하고 기분도 울적하다. 그러나 공연은 해야 했다. 당시 조선의 연극단이 다 그러하듯이 문수일의 《연극시장》도 가난하기는 매한가지여서 어느 하루도 쉴수가 없었다.

겨우 판자집을 빌어서 가설무대를 설치하고 출연준비를 하는데 또다시 가을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포장을 두드리는 그 소나기소리에 진저리를 치면서 예봉은 겨우 분장을 끝내였다.

모든것이 어수선하여 도무지 기분이 나지 않는 예봉은 무대휘장을 살며시 들추고 관객석을 엿보았다. 비물이 주룩주룩 새여내리는 장내에는 코흘리개 조무래기들이 태반인 50여명정도의 관중들이 웅크리고 앉아있었다. 실망의 한숨이 호-하고 저절로 흘러나왔다. 저 50여명을 위하여 공연을 해야 하나?… 그러나 비가 아니라 설사 폭설이 쏟아진대도 공연은 해야 하는것이였다. 이윽고 무대가 열리고 비물이 흐르는 속에서도 공연은 시작되였다. 예봉이가 무대에 나가 칼에 맞고 쓰러지는 장면을 해야 할 차례이다. 무대에 나가면서 얼핏 보니 자기가 쓰러져야 할 자리에 비물이 잔뜩 고여 출렁이고있었다. 온몸이 선뜩하였다. 그러나 피할수는 없었다.

그는 《칼에 맞자》 무작정 그 물바닥에 털썩 쓰러졌다.

《아이구, 저를 어째? 물우에 쓰러지누나.》

객석에서 기찬 소리가 울려나왔다. 사람들의 웅성이는 소음이 커졌다. 관중들은 녀주인공의 죽음이 슬퍼서가 아니라 물바닥에 몸을 적시고 쓰러져있는 현실적인 녀배우의 신상이 더 애처로와 혀를 차고있었다.

차거운 물바닥에 누워있는 예봉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나왔다. 관중들의 동정을 받는 비참한 자기의 처지가 한없이 슬펐고 당장 뛰쳐일어나고싶은 충동으로 온몸을 떨었다. 그러나 공연은 공연이다. …

온몸을 덜덜 떨며 무대뒤로 들어온 예봉은 비물에 흠뻑 젖은 의상을 쥐여짜며 포장대에 기대여 하염없이 밖을 내다보고 서있었다.

뼈속까지 얼구며 가을비는 여전히 쉬임없이 내리고있었다. 얼어드는 몸, 처량한 기분, 암담한 래일… 목구멍까지 구슬픔이 치밀어오른다.

이때 누군가가 다가와 조용히 말하였다.

《예봉씨, 감기 들겠소. 어서 불곁으로 갑시다.》

언뜻 고개를 돌리니 뜻밖에도 림선규가 서있었다.

《?…》

예봉은 그 자세로 오도카니 서서 그를 바라보기만 하였다.

《미안하오, 예봉이.》

리해할수 없는 말이였다. 무엇이 미안하다는 말인가?

림선규는 머리를 떨군채 생각에 잠긴듯 더 구구히 설명하지 않았다.

이윽고 예봉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측은해하는 빛이 너무도 짙게 어려있었다.

《예봉씨가 그 물탕에 쓰러질 때 난 나를 저주했소. 작품을 그렇게 쓰지 말아야 하는건데… 정말 용서하오.》

어린애처럼 사죄하고 미안해하는 청년앞에서 예봉은 잠시 당황해졌다.

이때까지 극단을 따라 류랑하면서 숱한 고생과 별의별 일을 다 겪었어도 누구 하나 이렇게 살뜰히 걱정해준이는 없었던것이다. 녀배우가 의례히 당하는 고초로 눈 한번 깜박하지들 않았다. 그런데 이 림선규라는 청년은?…

각박하고 메마른 인생의 사막에서 불시에 신선한 오아시스를 만난듯 자기의 신상을 걱정해주는 진정어린 그 한마디에 예봉의 얼었던 마음은 저도모르게 훈훈해졌다. 나를 진정으로 위해주는 사람도 있구나! 불같은 고마움의 정이 밀물처럼 가슴을 채웠다.

너무도 사랑과 인정에 굶주렸던 예봉인지라 림선규의 진정어린 말 한마디는 꽁꽁 다져졌던 심장의 화약고에 세찬 불꽃을 튕겨놓았던것이다.

그들은 오래동안 말없이 포장곁에 서있었다. 그러나 눈으로, 마음으로 주고받는 그들의 심장의 말은 끝이 없었다. 진정한 사랑은 입에서가 아니라 마음으로 나타나는 심장의 언어인것이다. …

 

    사랑에 우는것도 청춘이러냐

    분홍빛 라이트에 빛나는 눈물

    서글픈 세리푸에 탄식하는 이내 몸

    마음은 고향따라 헤매입니다

 

공연은 예정대로 잘 진행되지 못하였다. 그칠줄 모르는 비때문에 오도가도 못하고 려관에 주저앉았는데 숙박료와 밥값을 물지 못하여 당장 쫓겨날 판이였다.

연 사흘을 굶으며 랭방에 쭈그리고앉아 고민하던 문수일은 단호한 결심을 내리고 려관주인과 교섭을 시작하였다. 빚진 밥값은 서울에 가서 공연을 하여 갚기로 하고 대신 녀배우 하나를 인질로 남겨놓자는것이였다. 당시 연극계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였다. 인질로 잡힌 녀배우의 운명처럼 기구한것은 없었다. 요행 극단에서 돈을 벌어 찾아가면 별문제이지만 대다수 가난한 극단들이였던지라 인차 해산되거나 공연을 못하여 돈을 가져가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이런 때 인질로 잡힌 녀배우는 주인놈의 의사에 따라 륜락가에 팔리거나 몸을 망치는 길에 떨어지는 비참한 운명을 면치 못하였으니 그런 치욕을 피하여 자살의 길을 택하는 녀배우들 또한 그 얼마인지 모른다.

수난많은 식민지조선의 연극계가 빚어낸 가슴아픈 비화들이라 아니할수 없었다. 더구나 여기서 눈물겨운것은 극단을 위하여 녀배우들이 서로 인질로 남겠다고 자청하였다는 사실이다. 동료들을 위하여 자기 한몸을 바치겠다는 그 갸륵한 심정의 천사들이 가혹한 세상살이의 된서리에 시들어갈 때 수난당한 대지가 터뜨리는 호곡은 그 얼마나 절통하였으랴.

려관집주인은 여러모로 타산한 끝에 예봉을 요구하였다. 그리하여 예봉은 려관에 인질로 잡힌 몸이 되였다.

 

*       *

 

예봉이가 려관에 남은지도 어느덧 한달이 지났다.

차디찬 가을비 뿌리던 하늘에서는 푸실푸실 흰눈이 내리기 시작하였다.

그동안 예봉은 려관의 심부름군이 되여 별의별 일을 다하였다. 아침에 일어나자 바람으로 동이를 이고 몇독되는 물을 다 채워야 했다. 물긷기가 끝나면 식모를 도와 부엌에서 온갖 허드레일을 거들었으며 려관방의 청소도 도맡아놓고 하였다.

아직까지 려관집주인은 그에게 손님들의 험한 술심부름까지는 시키지는 않았으나 어여쁜 그를 리용하여 더 많은 손님들을 끌어들이려는 속심엔 변함이 없었다. 새침하고 랭정해보이는 저년을 어떻게 하면 영원히 손아귀에 걷어쥘수 있을가? 《연극시장》의 극단주가 예봉의 아버지이기때문에 딸을 찾으러 올것만 같아 처음에는 그리 심하게 굴지는 않았으나 계약된 한달이 지나자 려관주인은 속으로 쾌재를 올리였다. 예봉이의 몸값을 가지고 올수 있다는 희망은 점점 사라졌다. 가난하고 천한 연극쟁이들에게 무슨 뾰족한 수가 있을라구?… 려관집주인의 얼굴에는 만족한 웃음이 떠돌았다.

한편 예봉의 마음은 초조해났다. 자기를 남기고 떠나던 아버지의 침침한 눈길, 어찌보면 깨고소해하는듯 하던 서모 영자의 야멸찬 눈길들이 엇갈아 떠오르며 실망의 안개구름이 서리서리 가슴에 엉키는것이였다.

나는 여기서 이렇게 망하고마는것인가? 한숨과 함께 또다시 눈물이 목구멍을 지진다. 가슴 한구석에서 피여오르는 한점의 불꽃이 없었다면 그는 진작 절망을 이겨내지 못했을것이다.

작별시에 그를 바라보던 림선규의 아픔이 실린 눈빛! 마을 동구밖까지 극단을 바래워 따라나온 예봉에게 림선규는 나직이 그러나 힘주어 말하였다.

《예봉이, 절대로 절망하지 마오. 꼭 데리러 오겠소.》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참고있던 예봉은 그 말 한마디를 가슴속에 고이 새겨넣었다. 자기를 그토록 아끼고 동정하는 이 청년이 그에게는 하늘과 같은 존재로 안겨오는것이였다.

눈물로 흐려진 눈을 그에게 보이고싶지 않아 예봉은 고개를 더욱 수그리였다.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져 발등을 적시였다.

림선규는 너무도 가슴이 저려 홱 돌아서고말았다. 더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그는 스적스적 일행을 따라 고개너머로 사라졌다.

차거운 달빛이 흘러드는 밤이였다.

예봉은 이날따라 잠못 들고 고민에 싸여있었다. 아침에 려관주인과 여의치 않은 일이 있었던것이다.

아침인사를 받은 주인은 각별히 상냥스레 말하였다.

《예봉이도 인젠 밥값을 해야겠어. 극단의 빚을 물어야지. 나만 손해보겠나.》

그의 얼굴에는 능청스런 웃음이 비껴있었다.

예봉은 눈앞이 캄캄해졌다. 인제는 자기를 제마음대로 처리하겠다는 소리가 아닌가.

그는 입술을 감빨며 용기를 내였다.

《주인님, 아버지가 돈을 가지고 꼭 올거예요. 좀 더 기다려주세요.》

《흥, 그런 풍각쟁이들한테 한두번 속았다구. 제 딸까지 팔아먹는 방종한것들이 바로 그 족속들이야. 지금 예봉이신세가 그렇지 않나?》

려관주인은 무엇이 그리도 좋은지 여전히 싱글거리는 어조로 내뱉는다.

《아마 연극시장인지 연극사당인지 하는 패들도 다 뿔뿔이 흩어졌을거야. 표가 팔리면 밥이요, 관객이 없으면 헤여지는것이 바로 그 부랑자들의 신세가 아닌가.》

아무 꺼리낌없이 내뱉는 려관주인의 말에 예봉은 얼굴이 새파래졌다. 물론 일부 사람들이 예술을 두고 일시적인 호구지책을 위한 《방종한 사람》들의 일종의 운명적인 도박으로 보고있었다. 그래서 예술인들을 두고 풍각쟁이니, 방종한것들이니, 부랑자니 하는 딱지들을 곧잘 붙여 천시하였던것만은 사실이였다. 그러나 본인을 면전에 놓고 이렇게 혹심하게 모욕하는 그자의 말을 들으니 피가 거꾸로 돌 지경이였다.

그의 눈앞에는 라운규의 정열적인 얼굴이 제일먼저 떠올랐다. 민족을 위한 예술을 해야 한다고 피가 나게 뛰여다니는 라선생의 그 진정이 이처럼 속된 돈벌레의 입에서 튀여나오는 방종과 역설로 마구 란도질당한다고 생각하니 너무도 억울하고 분하였다.

예봉은 입술을 옥물고 조용히 말하였다.

《주인님, 나에 대해서는 아무렇게나 말해도 좋아요.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모욕하지 말아요.》

뜻밖의 반발에 려관주인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요 새침데기가 꽤 맵짠데…)

다음순간 그의 마음은 불시에 갈마드는 생각에 위축되고말았다. 밥값에 인질로 잡힌 주제에 푼수없이

그자는 기름진 낯짝을 불그락거리며 으름장을 놓았다.

《제 푼수를 알아야지. 어쨌든 래일부터 술손님을 받을 준비나 착실히 해.》

아침에 있은 일로 하도 고민을 하다보니 반나절동안 예봉의 얼굴은 몰라보게 수척해졌다.

뙤창으로 흘러드는 차거운 달빛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예봉은 자리를 차고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썰렁한 대기가 페부를 찌르나 달빛만은 유정하였다. 쟁반같은 하현달곁의 애기별들이 파르르 떨며 애처롭게 웃고있는듯 하였다.

토방에 앉아 밤하늘을 우러르는 예봉의 눈에 눈물이 맺히였다. 할아버지의 얼굴이 우렷이 떠오르고 어머니, 화봉의 얼굴이 연줄연줄 나타나 자기를 부르는듯싶었다. 주인이 나를 어떻게 할가? 팔아버릴가? 아니면…

문득 림선규의 선량한 얼굴이 크게 확대되여 다가온다.

《예봉이, 절망하지 말라구. 꼭 데리러 온다니까…》

그러나 그것은 환각일뿐이였다. 예봉은 벼랑끝에 내몰린 자신을 의식하며 하늘을 우러러 마음속으로 빌기 시작하였다.

(아, 선규씨, 어서 빨리 나를 데리러 오세요. 어서요.)

그의 입에서는 저도모르게 구슬픈 선률이 탄식처럼 흘러나왔다.

 

    강남달이 밝아서 님이 놀던 곳

    구름속에 그의 얼굴 가리워졌네

    물망초 핀 언덕에 외로이 서서

    물에 뜬 이 한밤을 홀로 새워요

 

그의 두볼로는 눈물이 줄줄이 흘러내렸다. 달빛에 비친 얼굴은 백랍보다 더 창백하다.

이때였다.

사랑문이 벌컥 열리면서 주인이 나타났다.

《이 야밤중에 무슨 도깨비짓이야!》

신경질적인 웨침과 동시에 그자는 다짜고짜 예봉에게 달려들어 머리를 후려쳤다. 갑자기 당하는 일이라 예봉은 그자리에 푹 쓰러졌다.

《재수없이 밤중에 창가를 해? 이거 미친년이 아니야.》

단잠을 깨운 분풀인지, 아침에 있은 일의 보복인지 려관집주인은 마구 손찌검을 해댔다. 식모가 달려나와 말려서야 주인은 겨우 진정이 되였다.

그자는 궁바가지같은 년때문에 살이 들었다고 두덜대며 들어가버렸다.

머리가 터지고 이마에 멍이 든 예봉은 아침에 일어날수가 없었다. 눈언저리까지 시퍼렇게 짓물렸다. 세상살이를 포기한듯 그는 기척없이 누워있었다. 절망이 그의 마지막기력까지 깡그리 앗아갔던것이다.

 

*       *

 

바로 그 시각 림선규와 문숙방이 예봉에게로 오고있었다.

마을길에 들어선 림선규는 그만 긴장이 풀려 그자리에 풀썩 주저앉고말았다. 이 한달동안 너무도 초긴장상태에서 뛰여다닌 그였다.

《연극시장》에서 문예봉을 처음 본 그 순간부터 그의 심장은 예봉이 결코 남의 사람이 아니라고 끝없이 속삭이는듯 했다. 예봉에게서 배우적인 기질보다도 순박하고 온후한 인간적인 미를 강하게 느낄수록 림선규는 그에게 끌리는 자신의 마음을 걷잡을수 없었다.

림선규의 눈으로 볼 때 예봉은 연극인가정에서 태여난탓으로 어쩔수 없이 무대에 끌리여나온 길 잘못 든 양이였다. 정상적인 생활의 궤도를 따른다면 예봉은 현모량처형의 현숙한 녀성이 될 풍모였다. 하기에 무조건적인 신뢰감이 가는 그 진실한 마음이 연기에도 은연중 내비쳐져 관중들의 박수를 더 받는것이 아닐가. 관중들의 마음은 항상 진실을 더 높이 사는 법이다. 일종의 자기 멋과 들뜬 심리에 싸여 허영을 꿈꾸는 일부 녀배우들의 교태에 진저리가 날대로 난 림선규에게 있어서 순박한 문예봉의 모습은 뜻밖에 발견한 신선한 샘물이였다. 그 깨끗한 샘물에 단 목을 추기며 일생 리별없이 살고싶었다.

그런데 그 예봉이가 인질로 남았다. 눈앞이 캄캄하고 심장이 오그라드는듯 한 압박감을 겨우 물리치며 그는 가까스로 서울로 올라왔다. 눈물과 비애에 젖은 예봉의 모습은 그의 가슴을 달구는 불덩어리였다.

올라오자마자 그는 랭돌방에 붙박혀 머리를 싸동이고 사흘동안에 극작품 한편을 부리나케 써내였다. 흥행성적이 좋은것이라야 했다. 그래서 제목부터 자극적인것으로 달았다. 《처녀구락부》! 달필로 써내갈긴 작품을 문수일에게 넘긴 그는 부랴부랴 단성사를 오르내리며 공연계약때문에 뛰여다녔다.

다행히 공연은 순조롭게 잘 진행되였다. 기성작품들에 싫증을 느끼던 서울관객들은 지방에서 올라온 《연극시장》의 새로운 작품에 대단한 호기심을 가지였다. 극장은 초만원을 이루고 련일 흥성이였다.

그리하여 노상 예봉이때문에 얼굴이 까매서 뛰여다니던 림선규가 이렇게 몸값을 듬뿍 쥐고 문숙방과 함께 길을 떠난것이였다.

 동구밖에서 마음을 좀 진정시킨 림선규와 문숙방은 부리나케 려관으로 들어섰다. 들어서는 길로 그들은 물을 길러 나오는 식모와 마주쳤다.

그들을 본 식모는 반갑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여 잠간 멍청히 서있기만 하다가 부랴부랴 달려나와 맞아들이였다.

예봉의 모습을 눈으로 찾으며 림선규는 말없이 식모의 표정만 살피였다. 웬일인지 불안하였다. 예봉은 보이지 않고 식모는 무언가 딱해하는듯 어색해보였다.

급해하는 림선규의 마음을 눈치챈 문숙방이 식모에게 물었다.

《우리 예봉이 잘 있어요?》

식모는 약간 난처해하며 고개를 끄덕이였다.

《그럼요. 별일 없어요.》

《그런데 왜 보이질 않아요. 어디 나갔는가요?》

《저…》

식모는 주인방을 흘깃 쳐다보며 속삭임소리로 말하였다.

《지금 누워있어요. 어제 좀 일이 있었다우.》

《뭐요? 무슨 일이요?》

조용히 서있던 림선규가 화닥닥 식모의 말을 잡아채며 다급히 물었다.

《주인놈이 벌써?…》

무섭게 번쩍이는 림선규의 눈빛에 기가 질린 식모는 황황히 손을 흔들었다.

《그런게 아니구요. 어제 다툼질을 했는데…》

떠듬거리는 식모의 말에 화가 난 림선규는 예봉의 방이 어디 있는가고 물었다.

식모가 예봉의 방을 가르쳐주자 림선규는 돌개바람처럼 그쪽으로 달려갔다. 문을 홱 열고 들어서던 림선규는 그자리에 못박힌듯 서버렸다.

어둑시근한 방구석에 예봉이 누데기를 덮고 누워있었던것이다. 온몸을 늘어뜨리고 기척없이 누워있는 백지장같은 그 얼굴! 림선규는 문지방에 선채 들어설념을 못했다. 모진 아픔이 가슴을 쿡쿡 찔러대고있었다. 누가 예봉을 이렇게 만들었는가.

문소리에 눈을 뜬 예봉은 어슴푸레 안겨오는 사람의 모습을 바라보며 자기가 꿈을 꾸고있지 않는가 하는 환각에 빠져있었다. 누구일가? 애써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사지가 말을 듣지 않아 다시 쓰러져버렸다.

문숙방이 달려들어와 《예봉아!》 하고 목메여 웨쳤다. 고모를 알아본 예봉은 《고모야!》 하고 소리치며 그의 품에 와락 안겼다. 그들은 얼싸안고 엉엉 울음을 터쳤다. 구슬프기 그지없는 정경이였다.

조용히 문을 닫아주고 토방에 앉은 림선규는 담배 한대를 피워물었다. 푸실푸실 피여오르는 담배연기를 바라보며 그는 후- 하고 한숨을 내쉬였다. 세상은 왜 이리도 구슬프고 험악하기만 한것인가.

문숙방이 거듭 권해서야 림선규가 방에 들어왔다. 예봉이 엉거주춤 일어서며 인사를 하는데 눈귀에는 맑은 눈물이 가랑가랑 맺혀있었다.

림선규의 첫눈에 뜨인것이 헝겊으로 대충 싸맨 예봉의 머리와 피멍이 들어 푸르죽죽해진 이마와 눈언저리였다. 모진 매를 맞은것이 분명하였다.

림선규는 너무도 격분하여 숨이 차올랐다. 저 착한 예봉에게 손을 다 대다니! 어느놈이 감히

《주인놈이 이렇게 했소?》

림선규의 서늘한 목소리였다.

《…》

그는 불쑥 일어섰다.

《왜 이래요?》

문숙방이 놀라며 그의 옷자락을 잡았다.

《참아요. 돈을 주고 돌아가면 그만인데…》

예봉이도 애원하는 눈으로 림선규를 바라보았다. 공연한 다툼으로 일이 틀어질가보아 조마조마해하는 눈치였다. 주인놈이 또 다른 트집을 잡으면 어쩌나요? 하는 심정이 그대로 내비쳐진 그 눈빛! 림선규는 그자리에 털썩 주저앉고말았다. 가슴이 뿌직뿌직 타는것 같았으나 참는수밖에 없었다. 예봉이 바라는대로 해주고싶었다.

워낙 성정이 유순하고 내성적인 림선규인지라 울뚝하던 밸이 어느정도 사그라지자 주인놈과 더 맞서고싶은 생각도 없어졌다.

얼마후 주인놈한테 돈을 던져준 세사람은 귀로에 올랐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은 결코 가볍지 못했다.

그들의 생활에서 오늘의 일은 수난의 한 구간을 겨우 벗어난데 불과하기때문이였다. 생활의 다음구간에는 또 어떤 구렁텅이가 도사리고있을지?… 앞날이 막막하기만 한 그들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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