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 회)

제1편 눈물의 백합꽃

백합꽃이 피여난 《임자없는 나루배》

 

흐르는 날과 더불어 연극인으로서의 예봉의 체모도 점차 잡혀갔다.

인기녀배우를 꼽을 때면 그의 이름도 빠지지 않는다.

그동안 《현성완일행》에 속해있던 문수일가족은 여러 배우들과 함께 그 극단을 탈퇴하고 기업가 지두환이 경영하는 《연극사》로 갔다.

《현성완일행》의 극단주는 현성완이였으나 명색뿐이고 그 실권은 마호정이 쥐고있었는데 너무도 배우들에게 린색하다나니 배우들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였다.

생계유지가 곤난하였던 그들의 처지를 리용하여 지두환이 《연극사》를 새로 조직하고 배우들에게 생활비를 선불하였던것이다.

그리하여 문수일을 비롯한 여러 이름난 배우들이 《연극사》로 갔다.

《연극사》에는 지두환의 세 자매인 지희순, 지경순, 지계순과 리경환, 강홍식, 리경설, 리애리수, 전옥, 신은봉 등 당시로서는 실력있다는 배우들로 진영이 꾸려졌다.

번역극 《까츄샤》에서 리경환은 네흘류도브, 리경설은 까츄샤, 강홍식은 씨몬손역을 담당하여 인기를 올렸고 연극 《쟝 발쟝》에서는 문수일이 쟝 발쟝, 문예봉이 꼬제트, 강홍식이 신부역을 맡아 대인기를 모았다.

이 극단이 다른 극단과 달리 더 관중들의 호평을 받은것은 녀배우 리경설과 리애리수가 막간에 나가 노래를 잘 불러 절찬을 받은것과도 관련된다.

이름난 비극배우였던 리경설은 막간에 《방랑자의 노래》라는 노래를 불러 절찬을 받았고 리애리수도 계몽기가요인 《황성옛터》와 함께 《라인강》, 《사랑의 비도》 등 외국가요들을 가슴저미게 불러 관중들의 심금을 울리였다. 그러므로 연극보다도 이 두 막간가수들의 노래를 들으러 오는 축들도 많았다.

《연극사》에 들어간 후 문예봉가족은 산지사방으로 흩어졌다. 동생 화봉은 할아버지가 다시 함흥으로 데려가고 서모 리영자는 세살난 아이를 데리고 문수일과 함께 본가로 들어갔다.

예봉과 문숙방고모는 서울 관철동려관으로 옮겼는데 이 려관은 극단들의 근거지와도 같은 장소였다.

가족이 뿔뿔이 흩어진다는것은 사실 가슴아픈 일이라 할수 있다. 그러나 예봉은 리영자의 비수같은 눈초리에서 벗어난다는것으로 하여 가슴이 다 후련하였다. 솔직히 말하여 더 기뻐했다고 해야 할것이다. 말은 한가족이라 하지만 가정다운 온기라고는 전혀 없었던 집이였다. 영자의 표독과 린색때문에 누구 하나 기를 펴지 못하였었다. 마음속으로 치욕을 묵묵히 참아가며 살아가자니 정말 살이 내릴 지경이였다.

고향집에서 버선을 잘못 기워 할머니한테 봉변을 당하여 쩔쩔매던 영자의 모습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서울에서는 제 이모집을 내여 산다는 행세로 자못 기세가 등등하였다. 맞갖지 않은 일이 있으면 시누이라 하여 차마 문숙방은 어쩌지 못하고 예봉에게는 서리발같은 눈총을 쏘면서 애매한 어린 화봉이만을 들볶았고 사정없는 매를 안기였다.

어느날엔가는 화봉이가 심부름을 잘못하였다고 하여 머리채를 거머쥐고 토방마루에 얼굴을 짓쪼아놓아 끝내 코뼈를 부러뜨려놓고야말았다. 얼굴이 피칠갑이 되여 엉엉 울며 몸부림치는 동생을 부여안고 예봉이도 피눈물을 흘리였다. 그는 장진에 있는 어머니를 원망하였고 불쌍한 자기들의 처지를 저주하였다.

이런 치욕과 구박속에서 살던 예봉이인지라 영자와 헤여지는것이 마치 조롱속에 갇혔던 새가 창공으로 날아가는듯 한 기분이였다. 고모와 함께라면 일생 려관방에서 살아도 원이 없을것만 같았다.

마음속의 이런 변화로 하여 그는 활기에 넘쳐 연극공연에 더 열성을 내였다.

 

*       *

 

지방순회공연의 길에 오른 극단이 흐르는 물처럼 떠다니다 신의주에 머무른 때였다.

뜻밖에도 서울에 있던 라운규가 먼길을 찾아왔다.

문수일을 먼저 만난 라운규는 단도직입적으로 그에게 요구하였다.

《이제 곧 촬영하려는 개화당이문에 자네 딸 예봉을 쓰려네. 승낙하게.》

문수일과 라운규는 오래전부터 연예계에서 쓴맛, 단맛을 같이 겪은 친우였다. 그러기에 라운규는 서슴없이 이런 부탁을 한것이였다.

뜻밖의 제의에 머리를 기웃하던 문수일이 난감한 기색으로 딱해하였다.

《그런데 그 애가 지금 녀주인공역을 맡았는데 연극은 어떻게 하겠나?》

《다른 녀배우들이 있지 않나.》

《글쎄…》

문수일은 초조해하는 라운규를 리해할수 없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우리 예봉이가 아직 나이가 어리고 연기수준도 그닥지 않은데 자네 영활 망칠가봐 걱정이네.》

《별 걱정을 다 한다, 문수일답지 않게. 내가 있지 않나.》

《그렇긴 한데 …》

문수일의 미적지근한 태도가 성미급한 라운규를 참지 못하게 하였다.

《자네 정 이러긴가?》

《나도 잘 가늠이 안가서 그러네.》

《그럼 당자를 직접 만나 물어보자구.》

《우리 예봉일?》

《그래.》

잠시후 두사람앞에 예봉이 불리워왔다.

라운규를 보는 순간 예봉은 반갑기도 하고 어렵기도 한 감정속에서 황황히 인사를 올리였다.

라운규는 예봉의 머리를 쓸어주며 활기있게 웃었다.

《우리 예봉이 그동안 더 컸구만, 더 예뻐지구.》

예봉은 몸둘바를 몰라 쩔쩔매였다.

그러는 예봉의 모습을 정겹게 바라보던 라운규가 은근한 어조로 물었다.

《예봉이, 언젠가 내가 말한적 있지? 함께 일해보자고…》

단성사에서 헤여질 때 하던 라운규의 말이 예봉의 머리에 문득 떠올랐다.

그때는 그저 인사말인줄 알았는데 정말 라선생님이 나를 데리러오셨는가? 믿어지지 않았지만 예봉의 가슴은 저도모르게 높뛰기 시작하였다.

실없이 롱질을 하실분이 아니다!

이윽고 라운규가 예봉에게 부드럽게 말하였다.

《내가 력사물영화를 하나 만들려는데 거기에 나오는 한 녀성의 역을 예봉이가 맡아주었으면 해서 왔어. 어때?》

너무도 뜻밖의 제의라 예봉은 숙이고있던 고개를 들고 라운규를 쳐다보았다. 영화에 출연한다는것은 여적 꿈조차 꾸어보지 못한 일이였다.

개화당이문이란 영화인데 개화당을 도와주는 한 녀인이 있어. 나이도 좀 지숙하구 매우 현숙한 녀성이지. 예봉이 한번 해볼 용기가 없나?》

라운규의 정열적인 눈이 번쩍번쩍 빛난다.

《…》

예봉은 그의 눈을 마주 바라볼 용기가 나지 않아 다소곳이 머리를 숙이였다.

연극무대도 아직 서투른 편인데 라선생님의 영화에 내가 어떻게?… 또 그 조숙한 녀인의 역을 나어린 내가 꽤 감당하겠는가? 아무리 해도 자신이 없었다. 영화를 망쳐놓을것만 같은 위구만이 그들먹이 차올랐다.

망설이던 예봉은 죄송스런 어조로 간신히 말하였다.

《선생님, 전 자신 없습니다.》

미안감으로 예봉의 얼굴은 붉어졌다.

예상밖의 솔직한 대답에 라운규는 한동안 멍하니 그를 바라보기만 하였다.

자기를 써달라고 우정 소개신을 가지고 찾아오는 녀자들은 많았어도 이렇게 자기가 권하는 역을 사양하는 경우란 없었던것이다.

기생, 녀급, 전문학교졸업생 등 수많은 계층의 녀인들이 라운규자신의 손에 발탁되여 첫 영화에서부터 눈부신 성공을 거두고 일약 명배우로 등장한 실례들이 얼마나 많은가!

《벙어리 삼룡이》의 류신방, 《잘 있거라》의 김련실 등이 그러하다.

그중에서도 신일선(신홍련)은 그야말로 라운규의 덕으로 당대 조선영화계의 꽃으로 솟아오른 녀배우라 할수 있었다.

어느때인가 부산에 내려갔던 라운규는 연극공연을 보다가 무대에 올라 독창을 하는 나어린 소녀의 모습을 류다르게 보게 되였다. 보동보동한 얼굴에 보조개가 폭폭 패이는 정이 가는 이쁜 얼굴이였다.

배우선발에 관심이 높았던 라운규는 그때 그 소녀를 기억해두었다. 그러다가 자기의 처녀작 《아리랑》 창조시기 녀주인공 영희역을 두고 고심하고 물색하다가 문득 부산에서 점찍어두었던 소녀의 얼굴을 회상하였다. 소녀의 행적을 추적하던중 《취성좌》에 속해 함흥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떠나려고 하였다. 그런데 마침 일이 될세라 박재행의 소개신을 들고 신일선당자가 라운규를 찾아올줄이야.…

일은 이렇게 되였다. 14~15살부터 이름없는 마술단에 끌리워가 노래도 부르고 뒤일도 하던 신일선은 《취성좌》라는 신파극단에 들어가게 되였다. 함흥 《진사좌》라는 극장에서 공연할 때 신일선은 소위 간부배우들의 구박에 못 이겨 고향인 서울로 도주하려다가 함흥역에서 붙들리고말았다. 신일선의 《덕》으로 《취성좌》에서 밥을 얻어먹고있던 4촌오빠가 어떻게나 손찌검을 하였는지 그는 이틀이나 병원에 입원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였다.

이때 박재행이 그의 병문안을 갔는데 피투성이 된 신일선은 침대에 누워 눈물만 흘리고있었다.

마음이 여린 박재행은 처녀의 정상이 너무도 가긍하여 라운규에게 보내는 소개신을 써주며 서울로 가라고 당부하였다. 그리하여 박재행의 소개신을 가지고 신일선이 제발로 걸어왔던것이다.

라운규의 기쁨은 이루 말할수 없었다.

이때부터 신일선은 라운규의 연기지도를 받으며 《아리랑》에 출연하여 일약 《조선영화의 꽃》으로 명성을 떨치였다.

《아리랑》에 대한 폭풍같은 반향속에서 신일선에 대한 평가 또한 대단하였다.

《동아일보》에서는 이렇게 평하였다.

《신홍련양의 출연은 처녀출연으로서는 놀랄만 한 성공이라 하겠으며 그의 용모와 기예는 확실히 조선녀배우로서는 누구보다도 영화배우적소질을 가장 풍부하게 가진 사람이라 하겠다. …

끝으로 이 영화에 출연하여 성공한 여러분과 더욱 장래의 기대가 적지 않은 신홍련(신일선)양의 자중을 바란다.》

이렇듯 라운규밑에서 배우들은 거의 다 성공하였으므로 라운규자신도 배우선발과 지도에서는 자신을 가지고있었다.

그런데 예봉이가 조심스럽게 사양하자 라운규는 실망과 아쉬움을 걷잡을수가 없었다. 적역자로 점찍고 불원천리 찾아왔는데 거절이라니…

라운규는 급해지는 마음을 지그시 누르고 다시금 예봉을 곡진히 타일렀다.

《처음부터 자신있는 배우는 없어. 인제 내 지도를 받으면 자신심도 생기는거야. 그건 걱정말아라. 예봉이가 꼭 필요해서 그러니 같이 한번 해보자구.》

그러나 예봉은 도리머리를 저었다.

《선생님, 저때문에 영화를 망칠수 있습니다. 전 정말 자신 없습니다.》

아연해진 표정으로 라운규는 말이 없었다.

실망한 눈길로 자기를 바라보는 라운규의 눈빛은 예봉의 마음을 갈팡질팡하게 만들었다.

그렇듯 명성높은 라선생이 간절히 부탁하는데 내가 이래서는 안되지 않을가? 어떻게 할가? 한번 해보겠다고 할가?

그는 슬며시 아버지의 눈치를 살피였다. 문수일의 표정은 덤덤하였다.

라운규는 다시금 물었다.

《예봉이, 끝내 거절인가?》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예봉은 고개를 푹 수그리고 저고리고름을 만지작거렸다.

라운규가 벌떡 일어섰다.

《됐소. 예봉이, 정 자신이 없는거야 어떡하겠나. 억지로 끌어갈수도 없고… 수일이 미안하네, 내 욕심만 채우려 해서. 사실 예봉이 빠지면 이 연극도 곤난할테지.》

그는 급히 모자를 쓰고 문밖으로 나섰다. 문수일과 예봉이 황황히 따라나서며 며칠 묵어가라고 했으나 그는 일이 바쁘다며 그길로 돌아섰다.

서울로 돌아오는 라운규의 마음은 허전하였다.

꼭 잡았던 새를 놓친 기분이였다. 그러나 차츰 머리를 식히고 리성으로 돌아오자 그는 예봉의 진지한 태도에 공감이 가는 자신을 발견하였다.

자기의 연기수준을 과장할줄 모르는 그 허심한 태도와 서뿔리 명예욕에 들뜨지 않는 소박한 품성이 라운규의 격했던 마음을 훈훈하게 녹여주었던것이다.

예봉은 무엇보다도 영화의 운명을 먼저 생각했던것이다. 그는 이것이 기특했다. 아련한 용모처럼 예봉의 마음은 퍼그나 깨끗하고 진실한것이였다. 수줍어하며 머리조차 잘 들지 못하던 예봉의 청초한 자태와 수심기어린 눈은 라운규에게 조선녀성적인 그윽한 정취를 강하게 안겨주었다.

팔짱을 낀채 눈을 꾹 감고 명상에 잠긴 그는 속으로 부르짖었다.

(예봉은 역시 부드럽고 아련한 조선녀인의 전형이다. 어느때든 내가 꼭 꽃피워볼테다.)

 

*       *

 

주체21(1932)년의 어느 늦은 봄날이였다.

포근한 봄빛을 한껏 즐기며 예봉은 서울운동장옆에 자리잡고있는 경성영화촬영소를 찾아가고있었다.

그는 지금 라운규를 찾아가는 길이다.

어제 있은 일이였다.

신의주에까지 찾아왔던 라운규를 섭섭하게 돌려보낸 일이 가슴에 맺혀 고민도 하고 후회도 하였던 예봉은 뜻밖에도 1년만에 다시 찾아온 라운규를 만나게 되였다.

자기를 잊지 않고 또다시 찾아준 라선생이 너무도 고마와 예봉은 무엇이라고 인사를 드려야 할지 갈피를 잡을수 없었다.

그가 방으로 들어가니 문수일과 마주앉아 무슨 말을 하고있던 라운규가 반갑게 웃으며 그를 맞았다.

이미 두사람사이에는 무슨 이야기가 오고간듯 그들의 얼굴에는 만족한 빛이 흐르고있었다.

예봉을 옆자리에 앉히며 라운규는 호탕하게 웃었다.

《예봉이, 아버지와는 이미 다 토의가 있었으니 이번에는 거절할 생각을 말라구.》

라운규는 또다시 웃었다. 몹시도 기분이 좋은것 같았다.

《예봉아, 이번에 라선생이 새 영화를 하나 또 만드는데 네가 꼭 필요하다고 이렇게 다시 오셨다. 전번에는 안되였는데 이번에는 라선생 부탁대로 하거라. 영화에서 성공할수 있다면 오죽이나 좋겠니.》

문수일은 라운규를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방금전 둘사이에 있었던 이야기를 념두에 두었던것이다.

라운규는 예봉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었다.

《수일이, 당신 딸은 아무리해도 연극무대에서는 성공 못해. 그런 애기목소리를 가지고서야 어떻게 연극배우구실을 하겠나. 예봉이는 모든 면으로 보아 무성영화에 적역이네.》

《그렇긴 해.》

문수일도 고개를 끄덕이며 라운규의 말에 공감을 표시하였다. 아무리 딸이라도 연극배우로서의 딸의 치명적인 약점을 모를리 없는 그였다.

전번에는 예봉이 맡았던 역을 바꿀수 없었던 곤난한 사정도 있었고 문수일극단을 꾸리려는 은근한 욕심때문에 선뜻 딸을 내놓기 아쉬워하였던것만은 사실이였다.

그러나 이번까지 친우의 부탁을 거절할수는 없었다. 더우기 예봉이가 영화에서 성공한다면 앞으로의 문수일극단을 위하여 좋으면 좋았지 나쁠것도 없을것이다.

문수일은 선선히 응하였다.

《내 딸을 자네에게 맡기네.》

라운규는 문수일의 손을 꽉 잡았다.

《고맙네. 영화배우로서 예봉의 전망은 내가 맡겠네.》

이렇게 되여 오늘 예봉은 라운규를 찾아 촬영소로 가고있었던것이다.

허나 이 걸음으로 하여 그의 운명이 영화배우로 결정지어지고 평생을 은막속에 담게 되리라는것을 이 따뜻한 봄날에 그는 알지도 못하였고 또 알수도 없었다. 그저 라선생의 지도를 받으며 첫 영화에 출연하게 되였다는 일종의 들뜬 기분과 은근한 우려, 촬영소에 대한 가지가지의 환상과 호기심이 뒤엉킨 마음으로 총총히 걸음을 재촉할뿐이였다.

여러 사람들에게 물어서야 그는 겨우 《경성영화촬영소》라는 건물을 찾았다. 환상속에 그려보던 촬영소와는 너무도 거리가 먼 초라한 창고였다. 양철판을 더덕더덕 붙인 별로 크지도 않은 일본식건물앞에서 잠시 주춤거리던 예봉은 조용히 문을 두드리였다.

순간 호탕한 웃음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며 라운규가 직접 마중나왔다.

《인제야 왔구만. 잘 왔소. 자, 이게 촬영소요. 놀랍지?》

라운규는 눈을 찡끗하며 다시금 통쾌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때마다 새하얀 그의 이가 전부 드러났다. 훤칠한 이마, 숱많은 눈섭, 흰자위가 많은 큰눈, 큰입 그리고 웃을 때마다 량볼에 깊이 패이는 두 줄기의 굵고 깊은 선…

라운규의 정열적인 표정은 예봉이가 본 《아리랑》의 주인공 영진이 모습 그대로였다.

예봉도 그를 마주보며 방긋이 웃었다.

라운규가 나타나자 어둑컴컴하던 창고안이 대번에 밝아진듯 어수선하던 첫인상도 점차 가라앉았다.

《자 예봉이, 이게 우리가 살 집이야. 좋지? 하하하…》

라운규는 또다시 웃으며 《임자없는 나루배》의 촬영장치가 되여있는 창고안을 한바퀴 빙 돌아 구경시키였다.

《예봉이는 이 영화에서 내 딸노릇을 잘해야 해.》

그러더니 느닷없이 심각한 표정이 되여 천정을 응시한채 한동안 말이 없었다. 이윽고 그는 절반은 예봉에게, 절반은 천정을 향하여 독백을 하듯 흥분조로 말하였다.

《예술이란 즐거운 일이요. 그렇지만 고생이야 고생이지.… 그러나 나는 해볼테요. 해볼테란 말이요!》

그의 커다란 눈에서는 숯불같은 열기가 이글거리였다.

예봉은 라운규가 왜 갑자기 이렇게 흥분하는지 리해할수 없었다.

사실 라운규는 문예봉이 나타나자 새삼스레 그를 출연시키기로 하였던 《개화당이문》의 실패가 떠올라 가슴저미는듯 한 순간을 체험하고있었다.

문예봉대신 하소양이란 녀자를 출연시켰다. 구상단계에서부터 력사극영화 《개화당이문》에 대한 라운규의 뜻은 남달리 컸다. 영화를 통하여 일제식민지통치의 이 암흑세상에도 꼭 반드시 김옥균과 같은 영웅남아가 등장해야 한다는 열렬한 호소를 하고싶었고 나라의 독립에 대한 사상을 은유적으로라도 표현하고저 무진 애를 썼다. 그리하여 그야말로 불덩어리가 되여 이 영화제작에 모든 정열을 깡그리 바치였던것이다.

그러나 그의 이런 형상적의도는 알찬 열매를 맺지 못하고 된서리를 맞아 쭈그렁박이 되고말았다. 일제의 검열당국이 마구 휘두르는 가위질에 라운규의 피와 살과 같은 장면장면들이 너저분한 가위밥이 되여 흐트러졌던것이다.

총독부 검열당국에서는 김옥균, 박영교 등 실재인물들을 등장시켜 조선이 개화하는 과정을 형상한 그자체에 대해서는 외면하면서도 개화당인사들이 정부를 전복하고 정권을 장악하는 대목이 구체적으로 묘사되는것에 대해서는 모두 삭제할것을 강요하였다. 정부를 전복하는 과정이 자칫하면 일제통치에 대한 반발과 폭발로 련결될지 모른다는 우려때문이였다. 식민지통치에 자그마한 파렬구라도 뚫릴가봐 기승을 부리는 일제가 가증스럽기 그지없었으나 어쩔수없이 접수하지 않으면 안되는 식민지예술인의 숙명이고 슬픔이였다.

이렇게 되여 완성된 《개화당이문》은 완전한 력사극영화도 아니고 야화적인 이야기도 아닌 얼치기작품으로 상영되는 비극을 겪었다.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태도는 너무도 랭담하였고 비난이 비발치듯 하였다.

결국 라운규는 또다시 실패작으로 머리를 싸쥐였고 왕년의 인기는 더욱 저락되였다.

이때의 심정을 그는 이렇게 토로하였다.

《어떤 영화를 제작할가. 나의 체험을 말하여보자. 김옥균 등 개화당시를 각색하여 개화당이문이란 영화를 만들었는데 하반부는 죽고말았다. 어째서? 김옥균 등이 정부를 전복하려고 한 그 음모는 좋으나 나는 그것을 창작할적에 개화당이 승리하는것으로 끝마쳤다. 비록 3일천하지만 홍영식, 박영교 등은 사실 수구당의 정부를 뒤집어엎고 일시 정권을 쥐였으니까. 그러나 검열당국에선 삭제하여버렸다. 력사상에 있는 사실의 각색도 이러하니 현대의 사회상에서 재료를 취하여 영화를 만들어보자니까 꼭 한가지밖에 없다. 그것은 련애타령…  앞으로 만드는 영화는 조선의 혼이 있고 정신이 있고 피와 살이 있어야 한다.》

이런 몸부림속에서 창작의 침체기, 사상의 번민기를 겪고있는 라운규는 고독하였고 우울하였다.

현실에 대한 반항정신과 민족적인 애국심을 고취하려는 그의 불타는 창작적지향은 항상 일제검열당국의 도전을 받았고 리윤획득의 영화에로 유인하는 일본인출자주들의 유혹이 뒤따랐다.

결코 혼자서는 넘을수 없는 이 수난의 바다에서 민족이 낳은 영화재사의 넋은 찢길대로 찢기고있었다.

이대로 주저앉을것이냐?

숨막히는 좌절의 시기에 그는 여러번 이런 물음앞에 자기를 세워보았다.

얼음장같이 랭랭한 랭돌방에 혼자 누워 천정을 응시하느라면 저도모르게 몸과 마음이 다 쇠락하여짐을 어쩔수 없었다. 지칠대로 지친 그였다.

그러나 그는 그대로 스러져버릴 의지박약자는 아니였다. 일생 《영화광》이란 말을 들으면서 영화를 위하여 태여난듯싶은 그에게서 영화에 대한 열망만은 그 무엇으로써도 도저히 꺾을수 없었으니 그 무서운 고민의 시기에 또다시 펜을 들고 써나간것이 바로 《임자없는 나루배》라는 영화대본이였던것이다.

《미나도좌》에서 이미 구상을 충분히 무르익히고있었던 이 작품을 그는 랭돌방에서 때식을 건느며 불철주야로 써나갔다. 꺼져가던 그의 영화세계에 다시 불꽃이 튕긴것이였다.

이렇게 고심하여 창작한 《임자없는 나루배》가 지금 제작과정에 진입하게 되였던것이다.

이 영화에 대한 라운규의 관심은 각별하였다. 그야말로 품을 들여 만든 이 영화를 새로운 감각으로 제작해내려고 무척 고심하였고 자그마한 실수도 있을세라 조심스럽게 준비작업을 착착 해나갔다.

자신의 고질로 되여있는 1인주도하의 영화제작방식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일본에서 영화연출을 전문으로 배우고 돌아온 젊은 리규환을 데려다가 대담하게 연출을 맡긴것만 보아도 이 영화에 대한 그의 진지한 태도를 능히 엿볼수 있었다. 다른 때 같으면 감독과 촬영 등을 다 자기가 맡아하였을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만은 원작과 주인공역만을 자신이 맡고 연출은 리규환에게 위임하였다. 물론 리규환이 아직 경험이 없는 감독으로서 영화제작과정에서는 연출가의 립장이 아니라 현장에서 전습받는 자세에 서있었던것만은 사실이다. 영화에 대한 실력과 경험에서 라운규를 따를수는 없었던것이다.

허나 라운규는 리규환에게 배워도 주고 또 자신이 알지 못했던 새로운 수법들을 그에게서 겸허하게 배우면서 이 영화를 특색있게 만들려고 애쓰고있었던것이다.

물론 이 모든것들은 예봉이 퍽 후에야 알게 된 사실들이였다.

창고안의 촬영장치들을 다 구경시킨 라운규는 예봉을 데리고 해빛이 밝은 마당가로 나왔다. 마당한가운데는 멍석이 펴져있었는데 연출가 리규환도 있었다.

라운규가 예봉을 소개하자 리규환은 반갑게 인사하며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잘 왔소. 영화에서 성공하자면 성공한 스승밑에서 일하는것이 상책이요.》

라운규가 다시 창고안에 들어간 틈을 타서 속삭이듯 말하였다.

《이번 작품은 라선생의 걸작이니 우리 한번 잘해보자구.》

예봉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였다.

멍석에 앉은 예봉에게 라운규가 《임자없는 나루배》의 줄거리를 이야기해주기 시작하였다.

작품의 내용은 대체로 다음과 같았다.

악착한 지주에게 소작논을 떼운 근면한 농민 춘삼은 임신중인 안해를 데리고 서울로 살길을 찾아 올라온다. 그러나 서울인들 무슨 일자리가 있으랴. 춘삼은 이리저리 굶주리며 류랑걸식하던중에 인력거를 세내여 끌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자동차와 전차가 달리고 자전거가 다니는 넓지 못한 서울장안에는 헌 인력거를 탈 손님들이 많지 못했다. 그의 생활은 여전히 어렵기만 하였다. 설상가상으로 병들어 누워있던 안해가 만삭이 가까와오는데 어느날 집에 와보니 출산전고통으로 안해가 사경에 빠져있었다. 안해를 둘쳐업고 병원들을 찾아다녔으나 돈이 없는 인력거군의 안해를 그 어디에서도 받아주지 않는다.

드디여 안해는 얼음장같은 구들에 딸을 남긴채 죽고만다. 안해를 땅에다 묻은 춘삼은 누데기에 싼 딸을 안고 어느 한적한 강가로 나가 초막을 짓는다. 이때부터 그는 나루터에서 배사공으로 일을 시작한다. 물고기를 잡고 자갈밭을 일구어 농사를 짓고… 외따른 나루터이지만 귀여운 딸을 키워가는 안온한 생활이 춘삼에게는 더없는 행복이였다. 순박하고 근면한 주인공에게도 나날이 귀엽게 커가는 딸에 대한 사랑으로 하여 고생이 고생으로 생각되지 않았고 잔주름과 흰머리칼이 늘어가는것도 아무렇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의 오붓한 살림도 오래갈수 없었다.

일제는 조선의 재부를 신속히 실어가며 대륙을 침략하기 위한 병참기지로 꾸리기 위하여 각지에 철도를 부설한다. 주인공 춘삼이 자리잡은 한가한 나루터 강가우로 철다리가 부설된다. 강을 건느는 손님들로부터 몇푼의 배삯을 받아 살아가던 그들부녀에게 철도부설은 생활의 종말을 가져온것과 같은 무서운 재난이였다. 호젓하던 강변은 어느덧 소란스러운 공사장으로 변하고 완공되는 일제의 철다리는 춘삼의 생활을 위협한다. 춘삼은 철다리공사를 맡아보는 기사를 찾아가 무릎을 꿇고 철다리를 놓지 말아달라고 애원을 하였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벌써 강하구에는 교각이 세워지고 다리건설이 눈에 뜨이게 빨라진다. 철다리가 완공되자 나루터에는 손님이 없어지고 춘삼의 생활터전은 완전히 파괴되고만다. 더구나 철도공사장의 젊은 기사가 딸의 미모를 탐내여 춘삼의 집에 드나든다. 춘삼은 딸의 앞날이 걱정되여 기사를 멀리하라고 당부하였으나 순박한 딸은 놈의 검은 배속을 모르고 서울이야기를 들려주고 그림엽서를 보여주기도 하며 꾀이는 기사놈에게 속히우고만다.

어느날 밤, 잠에서 깨여난 춘삼은 딸이 잠자리에 없는것을 발견하고 허둥지둥 딸을 찾아 헤매다가 마침내 나루배우에 기사와 단 둘이 있는 광경을 목격한다. 딸은 기사에게 이미 몸을 빼앗긴 뒤였다. 격분한 춘삼은 도끼를 들어 나루배의 줄을 끊어버린다. 임자없는 나루배는 격랑에 밀려 정처없이 떠내려간다. 이때 철다리우로 기관차가 달려온다. 저 철다리를 건너오는 시커먼 쇠도적놈! 바로 정면에서 기차가 지축을 울리며 달려올 때 춘삼은 도끼를 높이 들고 마주오는 기차를 향하여 맞받아 돌진한다. 철다리우에는 춘삼의 시체가 참혹하게 보이고 쓸쓸한 나루터 저 멀리에는 격류에 기우뚱거리는 나루배가 외로이 출렁출렁 사라지고있다.

라운규가 어찌나 감명깊이 이야기를 하였던지 예봉은 저도모르게 눈물을 흘리고있는 자신을 발견하였다. 영화의 내용이 너무도 아프게 가슴을 파고들었다. 정처없이 흘러가는 딸의 운명은 어떻게 되였을가? 가슴이 저려올랐다.

라운규도 눈물에 젖은 예봉의 심정을 짐작한듯 잠시 침묵하다가 침통한 어조로 말하였다.

《관중이 울어야지 예봉이가 먼저 울면 되나!》

침울한 분위기를 가시려는듯 움쭉 자리에서 일어선 그는 시원시원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인제 예봉이 입을 의상을 빌리러 갔다오겠으니 리규환선생에게서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들으라구.》

그는 급히 뜨락을 나섰다.

 

*       *

 

이튿날부터 촬영은 시작되였다.

촬영장은 한강 뚝섬 모래불이였다. 거기에 야외가설장치를 지어놓았다.

촬영대와 예봉은 한강 건너 봉운사로 가서 합숙을 하며 촬영할 예정이였다.

영화에는 예봉을 내놓고는 다 로련한 배우들이 출연하고있었는데 춘삼역에는 라운규, 그의 안해역에는 김련실이였다.

첫 영화촬영에 나선 예봉의 마음은 이루 말할수없이 복잡하였다. 오래동안 라운규의 상대역을 해온 김련실과 같은 실력있는 녀배우들과 어울린다고 생각하니 겁부터 났다. 무대우에서는 그런대로 어물쩍 넘길수 있는 행동도 영화에서는 확대되니 더 섬세하여야 할것이였다. 얼굴표정, 손움직임 하나도 자연스럽게 해낼것 같지 않은 우려감으로 하여 그는 공연히 조마조마해지고 소심해졌다.

첫 장면촬영부터 그는 애를 먹었다. 모든것이 서툴었다. 촬영기 돌아가는 소리가 나자 별스레 마음이 조급해지고 황황해지면서 손짓, 고개짓, 걸음걸이 등이 마음먹은대로 되지 않았다.

《중지-》

연출가의 꽥소리와 함께 촬영기가 멎었다.

《다시!…》

자기 역촬영이 없는 틈에 분장한채로 반사판을 들고 조명하던 배우들속에서 웅성거리는 소음이 일었다. 몇번씩 반복되는 재촬영에 어지간히 짜증이 난것 같기도 했다.

예봉은 홍당무같이 달아오른 얼굴을 감싸쥐고 어쩔줄을 몰라하였다. 두손가락짬사이로 눈물이 새여나왔다. 안타까운 눈물이였다.

이때 라운규가 다가와 얼굴을 감싼 그의 두손을 내리우며 따뜻이 타일렀다.

《예봉이, 당황해하지 말고 침착히 하라구. 노를 젓는 아버지를 바라보는 딸의 심정이 어떠해야 할가? 한평생 자기때문에 고생하여오신 아버지의 처량한 모습을 보며 그저 불쌍하다고만 생각해야 할가? 아니야, 그 불행한 아버지를 행복하게 해드려야 한다는 속마음이 내비쳐야 돼. 그저 슬퍼하는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표정과 행동이 나물캐는 동작에서 나타나야 한단 말이요. 나물바구니를 그러쥐는 손동작에 힘을 내서 해보자구.》

그러면서 자기의 아버지나 할아버지의 모습을 그려보며 행동하라는것이였다.

문득 예봉의 눈앞에는 제사공장정문에 찾아와 자기를 보며 눈물을 흘리던 할아버지의 외로운 모습이 떠올랐다. 꼬깃꼬깃 건사했던 돈을 받아쥐고 후들후들 떨며 마치 감옥에다 손녀를 두고 가는듯 발걸음을 떼지 못하던 할아버지, 병석에 누워있는 자기를 위하여 얼음장을 까고 고기를 낚아오던 할아버지! 그 할아버지의 어진 모습을 눈앞에 떠올리며 예봉은 깊은 자감상태에 빠져들었다.

《좋다!》하는 감독의 웨침소리와 함께 촬영기 돌아가는 소리가 고르롭게 울리였다. …

예봉은 라운규의 가르침대로 연기를 하나하나 완성하여나갔다.

라운규는 그의 연기를 위하여 실생활때에도 육친적인 부녀와도 같은 관계를 유지하였고 딸처럼 그를 사랑해주었다.

촬영의 나날은 결코 순탄하게 흐르지 않았다.

필림이 많이 든다고 출자주가 압력을 가하기도 하고 일제의 개들이 가끔 촬영인원들속에서 《불온》한 기운이라도 나타나지나 않나 하여 냄새를 맡으러 돌아다녔다.

어느날 촬영도중에 필림이 떨어지고 합숙의 량식이 떨어졌다. 그리하여 서울시내에 있는 출자주(리창용)를 찾아 사정하려고 사람을 보내였는데 며칠이 지나도 종무소식이였다.

할수없이 라운규가 직접 시내로 가게 되였다.

예봉은 영화에서와 같이 배를 저어 그를 강건너에까지 배웅하여주었다.

그런데 어떤 일이 있어도 그날밤으로 돌아오겠다던 그마저 나타나지 않았다.

라운규마저 없어지자 촬영집단의 의기는 소침해졌고 예봉은 쓸쓸한 마음을 걷잡을수가 없었다.

매일 언덕우에 올라가 강건너 길을 눈이 빠지게 바라보는것이 그의 일과로 되였다.

량식이 없어 낮이면 모두 산으로 나물과 산과일을 따러 흩어졌고 날마다 산나물죽으로 끼니를 에우는 형편이였다. 그들의 가난을 눈치챈 봉운사 중들은 량식도 꾸어주지 않았고 내놓고 천대하였다.

사흘이 지난 날 낮이였다.

이날도 예봉은 강언덕에서 산딸기를 따며 라운규를 기다렸다. 강건너를 바라보니 가설물로 지어놓은 모래밭우의 초막집이 별로 기울어진것 같았다. 달포를 두고 그속에서 촬영하다나니 인제는 자기 집과 같이 정이 들었었다. 그런데 그 집이 반나마 기울어져 넘어지려 한다. 예봉은 서글프기 그지없었다. 그는 벌떡 일어나 언덕을 내리달렸다. 어서 그 집으로 가보고싶었다.

배를 저어 강을 건너간 그는 뜨거운 모래밭을 맨발로 서벅서벅 밟으며 초막집으로 달려갔다.

그가 살며시 초막문을 열려는데 뜻밖에도 초막안에서 드렁드렁 코고는 소리가 울려나왔다.

웬일일가?

예봉은 더럭 무섬증이 났다. 그러나 다음순간 입을 옥물었다.

(내가 이 집의 주인인데 무서울게 뭐야?)

예봉은 잽싸게 문을 열고 대담하게 집안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방안에는 라운규를 비롯하여 시내에 출자주를 찾으러 갔던 세사람이 정신없이들 자고있는것이 아닌가!

《선생님!》

너무도 반갑고 기쁜김에 예봉은 무작정 소리쳤다.

그바람에 세사람이 깜짝 놀라 눈을 비비며 일어나앉았다.

《웬일이세요?》

예봉이 다우쳐물었다.

세사람은 묵묵히 침묵을 지킬뿐 라운규는 눈을 슬쩍 떠서 예봉을 보더니 아무말없이 다시 눈을 스르르 감는다.

예봉은 호-하고 속으로 한숨을 내쉬였다. 일이 순조롭게 되지 않았다는것을 직감했던것이다. 그들이 지금까지 굶었으리라는데 생각이 미친 예봉은 방금 따온 산딸기를 내놓았다.

《퍽 많이 땄구나.》

라운규는 싱긋 웃으며 한되박되는 산딸기를 동료들과 맛있게 나누었다.

그들의 모습은 예봉에게 너무도 슬프게 안겨왔다. 영화 한편 만들기가 이리도 힘겨운가. 라선생은 왜 이런 고역을 사서 하는것일가?

한참만에 벌떡 자리에서 일어선 라운규는 예봉을 데리고 초막에서 나왔다.

그는 모래밭을 성큼성큼 걸어갔다.

인왕산우에는 어느덧 저녁노을이 붉게 비꼈는데 그 노을빛을 받아 한강물도 금빛으로 일렁이고있었다.

강변을 따라 한참 짓수굿이 걷고있던 라운규가 문득 멈춰서더니 울화가 터지는듯 격하게 부르짖었다.

《예봉이, 이 주먹으로 모든것을 한대 쳐서 산산쪼각내고싶소!》

고개를 번쩍 들고 가슴을 떡 뻗친채 먼 하늘을 노려보는 그의 눈빛에는 무서운 고뇌와 반항심이 번득이고있었다. 그와 생활하면서 종종 보게 되는 모습이였다. 그가 이렇게 심각하게 노성을 터칠 때마다 커다란 눈동자에 활활 타번지는 뜨거운 반항의 불길은 어느새 예봉의 가슴속에도 번져져 라운규와 같은 심정이 되여 세상을 흘겨보게 되는것이였다.

그들은 해저무는 한강의 모래불에 서있었다. 여름의 하늘은 몹시도 아름다왔다. 그러나 저물어가는 한강의 모래밭우에 말없이 서있는 라운규의 두볼에서는 눈물이 흐르고있었다.

예봉은 한없이 슬펐다. 그렇게도 유명한 이 훌륭한분이 얼마나 안타깝고 막막했으면 눈물을 다 흘리랴!

흑-하는 흐느낌소리가 저도모르게 흘러나왔다. 라운규는 깜짝 놀라 얼른 돌아서며 예봉의 어깨를 흔들었다.

《배고프지?》

예봉은 고개를 저었다.

《세상에는 더러운것들이 많소! 그렇지만 나는 죽을 때까지 영화를 놓지 않을테요. 예봉이두 영화를 놔서는 안돼. 그렇지 않으면 이 못된 세상과의 투쟁에서 우리가 지는것으로 되지. 우리 끝까지 해봅시다. 하하…》

라운규는 삽시에 기분을 전환시키며 호탕하게 웃었다. 그 웃음으로 그는 가슴속의 번뇌를 털어버리고 다시한번 뛰쳐일어날 용기를 가다듬는것이였다.

예봉과 라운규는 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 봉운사로 돌아왔다.

오는 도중에 라운규는 그간의 사연을 이야기해주었다. 출자주는 촬영기일이 연기되자 비용이 예산보다 많이 든다면서 채 되지도 않은 영화를 다른 흥행주에게 팔아넘기려 흥정하고있었다.

그런데 흥정이 잘 안되였다. 그것은 영화의 내용이 불온하여 일제검열에 걸리면 그 배상을 출자주가 물어내야 한다는 조건부를 흥행주가 들고나왔기때문이였다. 끝없이 갑론을박하는 흥정속에서 촬영은 중지되고 촬영집단은 기아에 내몰리게 되였는데도 출자주나 흥행주들은 눈섭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예술가들이 굶어죽든말든 자기들이 상관할바가 아니라는것이였다. 완성된 영화필림의 상품적가치만이 그들의 관심이였다.

불행중 다행이랄지 영화필림을 도중에서 팔아치우려던 흥정이 잘되지 않자 출자주가 다시 비용을 대여 촬영을 계속할수 있게 되였다.

 

*       *

 

영화의 마지막장면인 철다리장면을 촬영하러 개성으로 가고있었다.

렬차에서 바라보는 들판은 황금물결이였다. 라운규는 그 광경을 바라보며 몇번이나 한숨을 쉬였다.

《예봉이, 숨이 막히도록 저 논배미를 한번 달려봤으면 좋겠소!》

예봉은 그의 말뜻을 인차 깨달을수 없어 그저 두눈을 깜빡거릴뿐이였다.

그들은 신막역에서 내렸다. 철다리를 찍을 예정이였던것이다.

신막역에 내리자 예봉은 라운규를 따라 들판으로 나갔다. 누런 벼이삭들이 무겁게 고개를 드리우고 설렁거리고있었다.

허리에 두팔을 얹고 그 광경을 흐뭇이 바라보던 라운규가 갑자기 예봉을 돌아보았다. 그의 눈은 환희로 번쩍이였다.

《자! 나와 같이 저 벼이삭을 헤치면서 한번 숨이 막힐 때까지 달려볼가?》

그는 예봉의 대답을 들을 사이도 없이 영화에서 흔히 보는 그대로 머리를 번쩍 들고 들판으로 곧장 뻗은 논두렁길을 냅다 달려가기 시작하였다. 솨-솨- 그가 내닫는대로 벼이삭들이 물결쳤다. 벼바다를 헤치고 달려가는 그의 모습은 장관이였다. 가없이 푸르른 가을하늘, 그아래서 끝없이 늠실대는 황금파도, 그 파도를 헤치며 달리는 열정의 사나이!

하늘도 땅도 축복을 보내며 끝없이 미소를 보내는듯 하였다.

예봉은 한참만에야 라운규의 뒤를 따라설수 있었다. 논두렁에 앉아 이마의 땀을 씻는 라운규의 얼굴에서 환희의 불꽃은 사라지고 의외로 침통한 기색이였다.

《이 농사가 다 제것이라면 얼마나 좋겠나! 벼가 논에 있을 때만 제것이란 말이요.》

예봉은 라운규의 심정이 리해되였다.

빼앗긴 땅, 빼앗긴 조국에 대한 슬픔이 그의 가슴을 아프게 지지고있었던것이다. 그래서 그의 영화마다에는 이런 비극을 강요한 일제에 대한 반항과 증오로 하여 언제나 량립할수 없는 첨예한 갈등의 불꽃이 튀였고 수난받는 인민에 대한 진한 동정과 사랑의 눈물이 흘렀던것이다.

라운규는 예봉을 옆에 앉히였다.

《예봉이, 이 풍요한 땅을 빼앗기고 타국에로 쫓겨가는 우리 인민들을 생각하면 정말 가슴에서 피가 흐르오. 두만강을 건너간이들의 처참한 생활은 생각만 해도 치가 떨린단 말이요. 그래서 그 불구대천의 원쑤들을 반대하여야 한다고 호소하고 궐기시키려고 두만강을 건너서를 만들었으나 내 마음의 백분의 일도 전달되지 못했소. 제목부터 사랑을 찾아서로 고쳐졌으니까. 일본놈들과 숨박곡질을 하면서 영화에 나의 사상을 담자니 정말 심장의 피가 다 마르는듯 하오. 수많은 화면들이 삭제당한채 내 의도와는 상관없는 필림이 흐르는것을 보면 내 피가 꺼꾸로 흐르는것 같단 말이요. 언제면 내 마음껏 영화를 만들어보겠는지

그는 손에 그러쥐고있던 돌멩이를 힘껏 던졌다. 울분을 참을수 없는 모양이였다. 이마와 눈시울의 주름살들이 더 깊어보였고 눈에는 이글이글 광채가 돌았다.

《이번 영화는 정말 잘되여야겠는데예봉이도 더 잘 노력해주오. 사랑하는 고향도 빼앗기고 안해와 딸마저 빼앗기다 못해 일터마저 송두리채 빼앗기고마는 춘삼이네 가정의 비극이 오늘 우리 인민전체가 겪는 참사가 아니요. 이 고통의 화근을 맞받아 싸워야 한다는 웨침이 관객들에게 잘 전달되여야겠는데 이것이 문제요.

예봉이, 아기자기한 련애담이나 늘어놓는것이 예술이 아니요. 우리 민족이 지금 그런 련애타령이나 할 땐가? 아니요, 아니란 말이요. 이 고름이 나도록 썩어빠진 사회를 증오하고 추악한 현실의 희생자가 되지 않기 위하여 싸워야 하오. 여기에 진정한 예술의 보람이 있는것이지.》

격하게 부르짖으며 그는 흰자위가 많은 두눈을 들어 푸른 하늘을 응시하였다.

예봉은 온몸으로 그의 말을 받아들이였다. 아버지의 강요에 의해 아무생각 없이 들어선 예술생활을 놓고 그는 요즈음 새로운 사색을 이어가고있었다. 라운규와 생활하면서 그는 연극이나 영화가 일종의 돈벌이나 오락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깨우는 고상한 일이라는것을 차츰 깨닫게 되였던것이다.

심장으로 예술을 사랑하고 심장으로 예술을 대하는 라운규를 보면서 그는 진정한 예술가의 세계와 고민을 알게 되였다. 시대와 민족이 겪는 고통과 슬픔을 한가슴에 안고 몸부림치는 라운규의 울분과 사나이의 눈물은 예봉이로 하여금 자기도 바로 이런 심정이 되여야 한다는 자각을 스스로 받아안게 하였던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라운규는 그의 예술생활의 길을 옳바로 이끌어준 고마운 은사였다고 할수 있었다.

신막에서는 영화의 마지막장면인 철다리장면을 찍기로 하였다. 라운규가(춘삼역) 도끼를 들고 달려오는 기관차를 맞받아나가는 장면이였다.

이 장면촬영을 앞에 놓고 라운규는 몹시도 흥분하였다. 이 장면에 라운규가 영화의 전부를 통하여 달성하고저 하는 사상적알맹이가 있었기때문이였다. 라운규는 이 장면을 통하여 보잘것 없는 배사공이 비록 상대가 안되리만큼 작은 도끼를 들고 기관차를 맞받아나가지만 여기에는 바로 더 무서운 도끼를 추켜든 우리 민족의 기상과 투쟁정신이 비껴있다는것을 암암리에 호소하고저 하였다. 그의 반일정신과 민족적울분의 집중적인 발현이라 할수 있었다.

달려오는 기관차- 그것은 원쑤 일제였고 도끼를 들고 맞받아 나아가는 춘삼이, 그것은 항거하고 투쟁하는 조선인민의 형상이였다.

라운규는 몇번이고 연습을 하였고 고쳐찍었다. 일행이 보기에도 훌륭해보였으나 그는 만족해하지 않았다.

렬차를 맞받아나가는 춘삼이의 두눈은 증오의 불길로 활활 타오른다. 억세인 손에 틀어쥔 그의 손에서 도끼날이 번쩍인다. 철다리로 달려가는 춘삼, 기폭처럼 나붓기는 옷자락, 그의 입에서 터지는 노성

 그의 연기를 지켜보는 사람들마저 감동되고 흥분될 지경이였다.

《중지!》

연출가의 신호에 따라 촬영기가 멎었다.

그런데 라운규가 다시 제기하였다.

《다시한번 더 찍읍시다.》

아연해진 촬영가의 표정, 그는 두덜거리듯 말했다.

《만족할만큼 잘되였습니다. 인젠 필림여유도 없습니다.》

그러나 라운규의 자세는 강경하였다.

《이 장면은 참으로 중요한 장면이요. 두말 말고 찍소.》

촬영가와 연출가는 다시 그의 요구대로 재촬영을 하지 않을수 없었다. 이렇게 거듭 몇번 찍은 다음에야 라운규는 호탕하게 웃으며 이마의 땀을 씻었다.

《자, 인젠 됐소. 시원하오.》

예봉은 그가 왜 이 장면에 이리도 마음을 쓰는지 잘 알수 있었다. 영화의 사상을 살리려는 이 예술가의 양보없는 태도와 진지한 품성은 예봉의 가슴속에 그대로 자양분이 되여 포근히 흘러드는것이였다.

 

*       *

 

주체21(1932)년 9월 14일 전 7권으로 된 《임자없는 나루배》는 드디여 첫 상영을 하였다.

영화는 대성공이였다. 영화관은 초만원을 이루었고 울음바다로 변하였다.

가난한 한 배사공의 운명을 통하여 사람들은 자기들의 기구한 운명을 실감하였고 은근한 반항의 불씨를 심장마다에 새기게 되였다.

당시 이 영화는 《조선사람이라면 보지 않을수 없는 작품》으로 널리 극찬되였다.

일시 떨어졌던 라운규의 명성은 극성있는 작품과 관록있는 연기로 하여 다시금 대인기의 봉우리에 올라섰다.

영화에 새로 등장한 나어린 예봉의 모습은 그야말로 성공의 성공이라 할수 있었다.

갸름한 얼굴에 수심이 어린 눈매의 아련한 자태는 그야말로 이슬을 머금고 고개를 드리운 한송이의 백합꽃을 련상시켰다.

청초하면서도 아름다운 그 모습이 은막에 처음으로 비쳐질 때 순간적으로 사람들은 두눈을 흡떴다. 그리고 흑 하고 숨들을 들이쉬였다. 심산유곡의 수풀속에 곱게 피여 수줍게 웃는 흰 나리꽃! 구슬픔에 잠긴 소박한 그 모습이 너무도 인상적이여서 사람들은 저도모르게 빼앗긴 고향땅과 조국에 대한 애절한 향수와 상실의 아픔을 가슴저미도록 느끼였다.

언제나 그리웁게 가슴을 적시던 민족적인 향취를 아련한 예봉의 모습을 통해 가슴 찡하도록 감수하며 사람들은 모두 소리없는 눈물들을 흘리였다.

대번에 예봉은 《은막의 백합꽃》으로, 조선녀성의 미의 상징처럼 떠올랐다. 《임자없는 나루배》에서 한떨기의 백합꽃이 민족적인 향기를 풍기며 피여난것이다.

 

*       *

 

지금 요시꼬의 심중은 한마디로 표현하기에는 너무도 복잡하고 번거로운것이였다.

문예봉의 첫 영화출연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있노라니 자연히 자기의 과거도 떠올라 자못 감회롭기도 하고 수치스럽기도 하였던것이다.

예술인들이란 언제나 자기의 첫 출연작품을 잊지 않고있으며 일생을 두고 되새기군 한다. 그 첫 출연으로 하여 예술인으로서의 운명이 이렇게도, 저렇게도 결정지어지는 경우가 많기때문이다.

영화인으로서의 첫걸음을 라운규와 같은 애국적인 재사밑에서 뗀 예봉은 역시 행운아라고 할수 있을것이였다. 그러나 요시꼬 나는?…

그의 가슴은 무거웠다. 1931년 일본이 9. 18사변을 일으켰고 다음해인 1932년에 만주국이 조작되였으며 1933년에는 만주국정권의 산물인 《만주의 새노래》가수 리향란이 나타났던것이다. 요시꼬는 지금도 야마이에가 찾아왔던 그날을 저주스럽게 회고하군 한다. 화북파견군 사령부 륙군소좌였던 그는 《만영》에 가서 음악영화의 노래를 불러달라고 간청하였다. 그러나 후날 알고보니 그것은 한갖 속임수였고 17살 어린 소녀를 《일만친선》, 《5족협화》라는 정치극에 끌어넣는 첫걸음일줄이야 어이 알았으랴.

영화의 주제가를 부르러 가는줄로만 알고 3등렬차로 목적지에 도착한 소박한 람빛 중국옷차림의 순진한 요시꼬는 《만영》의 수많은 사람들이 역에 나와 환영하는 바람에 어리둥절해졌다.

풋내기처녀를 이토록 환영하다니?…

그이튿날부터 그는 자기가 《만영》의 처녀작 《신혼려행》이라는 오락편의 영화에서 새색시역을 해야 한다는것을 알고는 깜짝 놀랐다. 그는 강력히 반발하였다. 나는 노래부르러 왔지 영화배우하러 온것이 아니라고…

더구나 렬차안에서 잠옷을 입고 남편의 어깨에 기대여 《사랑하는이》 하고 부르는 부끄러운짓을 하라고 연출가가 시켰을 때는 눈이 뒤집힐 지경이였다. 그는 발을 동동 구르며 못하겠다고 울며 항거하였다.

그러나 연출가는 눈섭 하나 까딱 안하고 말하였다.

《내 말을 듣는게 좋아.》

그 말뒤에 숨은 은근한 강요와 위협의 올가미에 눌려 그는 결국 만주국의 첫 음악영화 《호화로운 단꿈》, 첫 귀신영화 《원혼의 복수》 등 허황하기 짝이 없는 영화의 주인공들로 출연하게 되였던것이다.

영화의 첫걸음부터 그는 일본첩보부의 보이지 않는 거미줄속에서 뗀셈이다. 인생의 첫걸음을 잘못 짚으면 그후의 걸음도 련속 미궁으로 빠지기마련이다. 만주국의 이름난 배우로 《태여난》 리향란은 어쩔수없이 《백란의 노래》, 《열대사막의 맹세》, 《지나의 밤》 등 대륙3부작의 주인공으로 되는 운명의 길을 걸었던것이다.

이 작품들은 하나같이 대륙침략에 미쳐날뛰는 일제의 침략열을 달콤한 사랑이야기에 담아 고취하는 마약들이였다. 영화에서 상대역은 언제나 하세가와 가즈오였다.

회상록을 쓰면서 요시꼬는 그 대륙3부작을 다시 볼 기회를 가지였다. 수십년전에 만들어진 그 영화를 보면서 요시꼬는 얼굴이 뜨거워옴을 어쩔수 없었다. 자기 연기의 유치함은 더 말할것도 없었거니와 작품들이 고취하고저 하는 내용때문에 더욱 마음이 무거웠고 죄스러웠던것이다.

당시 영화평론가 사또 다다오의 글을 보면 이 작품들이 노린 사상적목적을 여실히 알수 있다. 그는 《백란의 노래》에 대하여 이렇게 썼었다.

《하세가와 가즈오의 역은 일본을 상징하고 리향란의 역은 중국을 상징했다. 만약 중국이 그토록 일본을 신임하고 일본에 의지한다면 일본은 중국과 친숙할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 영화가 사랑이야기를 빌어 말하려는 참뜻이였다. 이것은 중국사람들의 견지에서 보면 일본이 중국에다 억지로 우둔하고 허위적이며 모욕적인 사상을 강요하는것밖에 다른 아무것도 아니다. 그리고 일본국내에서는 일본이 중국을 침략한 진상을 알지 못하는 일본사람들에게 이 영화가 자기도취와 달콤한 환상에 빠지게 했다.

리향란을 일본남자에게 홀딱 반하여 그를 사모하는 순진하고도 사랑스러운 중국처녀로 만들었다. 이리하여 일본사람들이 이토록 중국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니까 일본은 부득불 중국을 지도하는것이다. 이것은 침략이라고 할수 없다.는 구실이 마련되였다.》

실태는 이러하였다. 그런데도 그 영화의 주역을 맡고 연기를 더 잘하려고 애쓰던 자기였다.

얼마나 무지스러웠던가! 그는 쓰거움을 금치 못했다. 력사앞에 진 자기의 죄가 너무도 선명히 부각되는듯싶었다.

그 당시는 대륙3부작이 대성공할수 있는 시대였고 그런 공기가 모든것을 지배하고있는 때여서 나도 어쩔수 없이 그 공기를 마시며 살았다는 변명으로 자신을 변호할수 있을가? 후회와 자책, 자신에 대한 모멸감으로 요시꼬는 몸을 떨었다. …

이윽고 자기 생각에서 깨여난 요시꼬가 무거운 기분을 수습하고 문예봉에게 밝은 얼굴을 돌리였다.

《결국 문선생에게 있어서 임자없는 나루배는 처녀작이면서도 출세작이라고 할수 있겠군요.》

《그렇게 말할수도 있지요. 그러나 나는 그런 의미보다 예술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처음으로 알게 되였다는 점에서 이 작품을 사랑한답니다. 지금 생각해보아도 그 영화를 만들 때 예술인으로서의 나이를 몇살 더 먹고 키도 더 큰것 같았어요. 아마 수년동안 배울것을 한꺼번에 배운것 같은 심정이였으니까요.

라운규선생은 영화가 성공적으로 방영된 후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답니다.

우리에겐 너무나도 없는것이 많다. 인물도 없고 돈도 없다. 다만 민족적울분만이 남았다. 영화 하나로 이 모든것을 해결하기엔 참으로 가쁘다. 누구라도 나와 함께 손잡고 마음을 섞으며 춘삼의 한을 풀어줄수 없을가. 아직 춘삼의 통한을 가셔주려면 우리의 힘이 극력 모자란다. 얼마나 애국심과 반항심이 강한 영화인입니까. 예술을 통하여 민족의 아픔을 보여주고 개인적으로나마 반항정신을 심어주지 못해 몸부림치던 라선생님의 그 고뇌와 번민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찡합니다. 그분의 심정을 적으나마 리해하였다는것만으로도 나에게는 큰 성과였지요.》

문예봉은 가없이 푸른 하늘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아득한 저 멀리 남쪽 어느 산기슭에 고이 잠들고있을 잊지 못할 은사를 그려보는듯…

요시꼬는 갈린 목소리로 말하였다.

《나는 그렇지 못해요. 예술이 뭔지 잘 알지도 못한채 줄곧 죄되는 정책에 리용당했으니까요. 후회뿐입니다.》

요시꼬의 아픈 마음이 나에게도 충분히 리해되였다. 두 녀인의 첫 출연이 그 시작에서부터 달랐던것과 마찬기지로 그 결과는 또 얼마나 엄청난것인가.

무성영화 《임자없는 나루배》는 일제강점하에 강요된 우리 민족의 참담한 현실을 진실하게 반영하고 비록 개인적이긴 하지만 강한 반항정신, 반일감정을 형상한 진보적인 작품으로 조선영화사에서 큰 자리를 차지하고있으며 민족수난기에 창작된 민족영화의 대표작으로 꼽히우고있다.

라운규의 《아리랑》과 더불어 《임자없는 나루배》는 해방전 가장 진보적인 영화계렬에 속하는 우리 민족영화의 재보로 된것이다.

더우기 후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고록에서까지 라운규를 비롯한 량심적인 예술인들은 《아리랑》을 비롯한 민족적향취가 강한 영화들을 제작하여 우리 나라 예술인들의 실력을 과시하였다고 높이 평가하시였던것이다.

지금도 위대한 수령님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제5권에는 《임자없는 나루배》의 한 장면이 선명하게 수록되여 깊은 감회를 자아내고있다. 노를 저어가는 춘삼(라운규)과 함께 삿대를 쥐고 서있는 딸(문예봉)의 애련한 모습! 자기의 그 모습이 민족영화를 대표하는 한 장면이 되여 력사에 길이 남고 위대한 수령님의 회고록에까지 오를줄이야 그 당시 문예봉이 상상이나 할수 있었으랴.

민족영화에 바쳐진 자그마한 노력과 얼도 귀중히 여기시는 우리 수령님의 품속에서 《임자없는 나루배》의 애어린 소녀는 이토록 력사와 민족이 아는 영화예술의 원로로 솟아올랐던것이다.

그러나 요시꼬는?…

만주국이라는 인위적인 조작품이 력사의 순리에 따라 하루아침에 사라지자 거기에 서식하였던 모든것이 력사밖으로 밀려났다. 만주국이 없었던것처럼 지금에 와서 만주국영화란 없다. 중국영화사에도 외국영화사 그 어느 갈피에도 대륙3부작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없다. 력사의 썰물에 실려 모든것이 말끔히 사라져버린것이다. 말끔히 사라져버린 그 영화들과 더불어 요시꼬의 반생도 날아가버렸다. 대륙침략열에 미쳤던 일제의 열병은 순진했던 한 소녀의 반생을 이렇듯 허무하게 롱락해버렸던것이다.

인간은 력사와 시대속에 살기마련이다.

그러나 그보다도 먼저 인간은 민족의 한 성원으로 민족속에서 살게 된다.

시대는 변해도 민족은 변하지 않고 무궁한것이다. 시대의 기류가 그 아무리 변화무쌍하다고 하여도 자기가 발을 붙이고있는 민족의 토양우에 굳건히 서서 민족의 아픔과 슬픔을 함께 나눈다면 시대의 기류에 서뿔리 휘말려들지 않는 법이다.

영생과 영원은 언제나 민족이라는 개념과만 통하는 언어가 아닐가.

요시꼬의 비극이 바로 이 민족이라는 굳건한 토양을 떠나 너무 가변적인 시대의 기류에 둥둥 떠다닌데 있었던것이다.

무지개는 아무리 현란하여도 역시 잠간사이에 사라져버리는 신기루에 불과한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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