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6 회)

제3장 살왜는 살생이 아니다

4

 

관동승병대는 골안에서 병영을 짓고있었다.

부대는 도총섭의 지시에 의해 중화와 평양 그리고 상원과 평양을 련결하는 중요삼각지대에 주둔했다.

유정은 며칠새로 병동건설을 끝내고 기본임무(평양성에 둥지를 튼 왜군의 보급로를 차단하는것)에 착수할 심산으로 병정들을 쉴새없이 다그어댔다.

한창 공사를 벌리다가 재목이 딸리우자 유정은 채벌조를 따로 무어 소나무가 많은 산등으로 올려보냈다.

마광우, 오팔이, 문우, 쇠득이, 백근달 등 젊고 힘깨나 쓰는 승병들이 채벌조에 속했다.

패장으로는 마광우가 임명되였다.

마광우는 원래 중이 아니였다. 키가 꺽두룩하고 성격이 왈패스러운 그는 의금부 라장노릇을 하던 젊은이다. 올여름 금강산 보장암에서 중죄인(홍창해)을 본인불찰로 놓쳐버리고 처벌을 받게 되자 들구뛰여 건봉사에 숨어있다가 그곳에서 승병대가 무어질 때 그새 친해진 제또래 중들과 함께 승군에 들었었다. 그는 손탁이 세고 승벽심이 강해 무슨 일에서나 앞장에 나서서 윽윽 내밀기를 잘해 제꺽 대장의 눈에 들었었다.

광우네 채벌조가 산등판을 돌아치며 쓸만 한 나무들을 한창 찍어내리고있는데 릉선너머 저쪽산기슭 외통길로 왜군들이 말잔등에 짐을 가득 싣고오는것이 보였다. 막잡아 열댓놈 잘돼보였다. 중화에서 평양성으로 통하는 길이니 아마도 성안에 주둔한 주력부대에 조달할 후방물자를 실어오는 모양이였다.

《어랍쇼!- 저게 웬 떡이냐?》

오팔이가 휘두르던 도끼를 허공에서 뚝 멈추며 환성을 질렀다.

《떡? 무슨 떡이야? 어디 있어, 어디?》

그러지 않아도 배가 출출해 죽어가던 백근달이 떡이라는 소리에 군침부터 꿀꺽 삼키며 오팔이가 서있는 주변의 풀밭속을 두리번거렸다.

《이 배불뚝이 먹석아, 나무밑만 보지 말고 눈길 들어 저길 봐라- 저아래 길 말이다.》

《아니, 저거 왜놈군사들이로구나. 이쿠, 큰일났구나, 큰일.》

《여, 뚱보- 왜 그래?》

저쪽에서 통나무를 끌어내리던 마광우가 웬일인가 해 겅정겅정 다가왔다.

근달이가 손짓하는쪽을 바라보던 광우는 주먹으로 제 손바닥을 절싹 치며 쾌재를 불렀다.

《하… 마수걸이가 괜찮은걸! 여, 오팔이- 우리 한번 멋있게 떡판을 쳐볼가?》

《패장이 령만 내리시우, 떡메질은 내가 할테니.》

오팔은 씨름군다운 체통을 들썩거리며 너스레를 피웠다.

둘사이에 끼인 백근달이가 질겁을 해 량쪽에 대고 팔을 휘휘 내흔들었다.

《어, 어, 밸빠진 소리 말어. 왜병들이 총을 얼마나 뿅뿅 잘 쏘는지 알아? 칼도 귀신처럼 쓴단 말이여.》

《그까짓 총이구 칼이구 이 쇠주먹앞에서 맥을 추나 봐라. 아무러면 승병 한사람이 왜놈 하나씩이야 못 제끼겠어. 저놈들이 겉엔 도깨비감투를 틀었어도 속엔 허깨비가 찬것들이야. 왜군이 무서운 사람은 여기 앉아 떡치는 구경이나 하라구.》

이러며 백근달을 꾹 눌러버린 마광우는 당장 집합구령을 쳤다.

채벌에 동원되였던 열댓명의 승병들이 광우한테로 모여들었다.

《우리 젊은 패들이 저기 오는 왜놈을 족쳐대자는거요.》

《저건 다 먹어놓은 떡인데 놔줘서야 안되지. 선두돌격은 내가 맡겠소.》

마광우가 주먹을 내흔들며 앞에서 선동하고 오팔이가 뒤에서 추동하자 모두 싸우는것을 찬성하였다.

광우는 곧 젊은이들을 이끌고 산을 내렸다.

일행중에서 제일 나이가 많은 쇠득이가 광우한테 한마디 걱정을 내비쳤다.

《대장님승낙없이 싸움판을 폈다가 잘못되면 욕먹지 않을가?》

《젠장, 걱정두 팔자우다. 나라 원쑤갚는 일인데 승낙은 무슨 승낙이요? 이제 두구보구래. 잘했다고 잔등 두드려주지 않나.》

광우는 씩 웃으며 쇠득이한테 몽둥이를 하나 쥐여주었다.

젊은 승병들은 몽둥이와 도끼를 하나씩 품고 길가 숲속에 매복했다.

그들이 몸을 숨긴 썩 후에야 놈들이 산굽이를 돌아 나타났다. 먼길을 걸었는지 말도 사람도 헐썩거리며 느적느적 다가왔다.

《굼벵이같은 자식들 오겠으면 좀 빨리 오지 이거야 엉뎅이가 쑤셔와 기다려주겠나.》

오팔이가 안달이 나 쑹얼거리며 도끼대가리를 들었다놨다했다.

놈들의 행렬이 매복권내에 거의 들어섰을 때였다. 왜서인지 행렬이 갑자기 멈춰섰다. 왜군 한놈이 바지괴춤을 풀며 백근달이가 숨어있는 머루넝쿨뒤로 급급히 달음쳐왔다.

당황한 근달은 와당탕 자리를 차고 일어나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뛰여갔다.

뒤를 보려고 엉치살을 드러내며 주저앉던 왜놈은 으악!- 소리를 치면서 자빠졌다.

길가운데 선채로 숨을 돌리던 왜군들이 조총을 꼬나들며 전투태세를 취했다.

그때 광우가 《덮치라-》 하고 소리질렀다.

《나가자-》

오팔이가 맨 먼저 뛰쳐나가며 도끼를 휘둘렀다.

놈들이 조총에 화승불을 다는 그 짧은 찰나에 비호같이 길가운데로 달려나간 승병들은 한놈씩 맡아 족쳐댔다.

칼과 도끼날이 쟁강쟁강 부딪치고 총대와 몽둥이가 지끈, 뚝딱 허공에서 우뢰를 일으켰다.

탕!-

왜군 한놈이 어느새 날쌔게 화승불을 달았는지 저한테로 달려드는 쇠득을 쏘았다.

탄환에 장딴지를 맞은 쇠득이가 비틀거리다가 넘어갔다.

《고 잰내비같은 놈이…》

왜놈 하나를 허양 거꾸로 들어 대갈통을 땅바닥에 짓쪼아 박살내고난 오팔이가 쇠득을 쏜 놈한테로 뛰여가 조총을 나꿔채며 깔고앉았다.

마광우는 처음 자기와 맞다드는 놈의 면상을 떡메같은 주먹으로 몇대 들이쳐 쓰러뜨리고는 또 다른 한놈과 치고 받으며 싸웠다. 하지만 왜군들 대개가 전문 싸움판에서 뼈를 굳혀온 육박전의 능수들인 하층사무라이들과 아시가루 노부시(집단적으로 떠돌아다니며 남의 재물을 략탈해 살아가는 건달군)들이라 당하기가 조련치 않았다.

평시에 힘과 주먹을 자랑하던 오팔이와 광우였건만 얼마 못 가 싸움수가 딸리우고 기맥이 뽑혀 헉헉댔다.

벌써 승병 두셋이 왜군의 칼에 맞아 피를 쏟으며 쓰러졌다.

형세가 역전되여 승병들이 한창 몰리울 때 지원병 수십명이 들이닥쳤다.

유정이 총소리를 듣고 예감이 심상치 않아 걸음날랜 젊은 대원들을 띄운것이였다.

그 덕에 위기를 모면하고 매복기습을 성과적으로 결속한 마광우네는 로획한 열여섯필의 말에 식량자루, 소금자루, 조총을 걷어싣고 부대로 돌아왔다.

그날 저녁 유정은 채벌조를 대오앞에 내다세우고 눈알이 쑥 삐여질 정도로 된욕을 퍼부었다.

《물론 왜놈을 치려는 그 마음은 귀중한거다. 허나 싸움은 그렇게 마구잡이로 하는게 아니다. 전장에 나선 군사의 즉흥적인 사유와 무모한 행동은 쓰라린 패배와 비참한 희생만을 산생시킬뿐이다. 싸움에서는 결사의 각오도 중요하지만 보다 더 필수적인것은 전략전술에 기초한 군사작전임을 명심들 하라.》

이렇게 엄히 질책을 하면서도 속으로는 대원들의 비등된 열의에 맞게 제때에 전투조직을 따라세우지 못한 자신을 탓했다.

유정은 닷새만에 마광우네가 싸움을 벌렸던 그 외통길목에서 대규모적인 매복기습으로 왜군수송대 백수십명을 소탕해버렸다.

그 전투가 끝난 다음날 로획한 군마와 조총을 가지고 택견에 능한 유점사출신 중들을 비롯한 용맹하고 날파람있는 젊은이들로 기마대를 조직했다. 그 기마병들을 모체로 해 렴탐, 습격, 배후교란을 담당수행하는 별초군을 편성했다.

그새 전투들에서 공로가 많은 마광우가 별군장(별초군대장)으로 임명됐다.

어느날 저녁때였다.

말뚝에 말고삐를 매놓고 목이 말라 취사장에 뛰여가 물을 마시고 돌아나오던 대장 전령수인 계명이가 개우리앞에서 갑자기 멈춰섰다.

전란의 복새통에서도 언제 어떻게 쌍붙임을 했는지 새끼를 가져 배가 잔뜩 불어난 누렁이를 금강산을 떠날 때 군량마차에 싣고와 취사장 안뜰에다 거처를 정해주었댔는데 지금 그 우리안에서 이때껏 듣지 못했던 류다른 소리가 새여나왔던것이다.

《이건 또 뭐야?》

이상하여 조짚으로 엮어만든 개우리안을 들여다보던 계명이가 발을 막 구르며 탄성을 질렀다.

《히야!… 누렁이가 새끼를 낳았구나! 누렁이가 새끼를 낳았다.-》

《뭐? 개가 새끼를 낳았다구?》

젊은 승병들이 호기심에 들떠 개우리있는 곳으로 몰려들었다.

우리안에 몸뚱이를 퍼더버리고 누워있는 누렁이의 품안에는 여러가지 털빛갈의 어린 강아지들이 오구구 안겨 젖꼭지를 빨고있었다.

승병들은 옴지락거리는 새끼들을 저저마다 한마리씩 꺼내들고 애지중지 어루만졌다.

《한마리, 두마리, 세마리… 저거! 여덟마리로구나. 대장님, 누렁이가 새끼를 여덟마리나 낳았소이다!-》

《그래? 하하!… 우리 승병대가 흥할 징조로구나, 하하.》

유정은 희색이 만면하여 껄껄 소리내여 웃었다.

 

사인교를 탄 량반 하나가 군졸들의 호위를 받으며 시골 황토길을 서둘러 가고있었다.

창녕 관룡사에 피난 와있다가 가야산으로 거처지를 옮겨가는 경상좌도관찰사 김수의 일행이다.

여느때같으면 기발을 나붓기며 창검을 번쩍거리고 륙방관속들을 주런이 늘어세운 속에 벽제소리, 길군악소리 요란스러웠을 도장관의 행차가 초라한 행장으로 급급히 도망길을 다그치는 꼴이 역겨워 오가던 행인들마다 뒤에 대고 침을 뱉는다.

언덕진 길목에 두 녀승이 뻗치고서서 지나치는 관찰사일행을 쓰겁게 지켜보고있었다.

나이지슥한 녀승이 한숨끝에 중얼거렸다.

《그인 저런 황당한 관료가 되지 말았으면 좋으련만…》

《스님, 그이란 누구오이까?》

열댓살났을 애승이 호기심이 동해 묻자 녀승은 서글픈 기색을 지으며 대꾸한다.

《먼 옛시절 내 마음속에 애정의 봄꽃을 피워줬던 응규라는 글방도련님이란다.》

《그 도련님도 높은 관료가 되셨나이까?》

《아마 지금쯤은 조정에 올라 정승이나 판서가 됐을게다. 대대로 높은 벼슬을 지낸 명문가의 후손인데다가 본인 또한 뛰여나게 총명하고 인품좋은분이였으니까.》

《아그나, 우습기도 하지. 불가의 명성높은 도승이신 스님께서 사내를 다 사모하시다니 참.》

《얜, 중은 뭐 사람이 아니라더냐.》

《호호, 스님한테 련인이 있는줄은 여태 몰랐군요. 그런데 스님은 어이하여 권세가문의 자손인 그분한테 시집을 안 가고 산속 암자의 중이 되셨나이까?》

《그럴만한 사연이 있었다. 얘, 마음 상하는 소린 그만하고 가기나 하자.》

두 녀승은 바랑을 추스르며 어디론가 총총히 사라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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