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회)

제1편 눈물의 백합꽃

아버지와 딸

  

제사공장에서 병들어 돌아온 문예봉은 집에서 할아버지의 극진한 병구완을 받았다. 동생 화봉이는 이미 서울에 있는 아버지가 데려간 뒤라 집에는 할아버지, 할머니만이 호젓이 남아있었다.

예봉은 오래간만에 가정의 아늑함속에서 심신의 피로를 마음껏 풀었다. 허나 할아버지의 마음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병들어 누운 손녀를 측은한 눈길로 바라보며 문형섭은 슬그머니 눈물을 씻군 하였다.

졸지에 부모들의 버림을 받다싶이 생리별당하고 늙은 조부모의 가슴에 매달리는 손녀의 정상이 가긍하여 문형섭은 뜬눈으로 밤을 새우는 때가 많았다. 긴 대통에 담배를 말아 뻑뻑 피우며 잠 못드는 밤이면 긴 한숨이 저절로 흘러나오는것이였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이 귀하고 소중한 손녀의 장래는 과연 어떻게 될것인가!

그래도 집이라고 돌아와 마음 편하게 누워 쌔근쌔근 단잠을 자는 예봉의 얼굴을 하염없이 쓸어만지며 그는 림당수에 몸을 던졌다가 환생하여 왕비가 되였다는 심청이나 렬녀 춘향이와 같은 행운이 손녀에게 차례졌으면 하는 허무한 공상에 잠기기도 하는것이였다. 그래서 어떤 때는 누워있는 예봉이가 심심할세라 《춘향전》이나 《심청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이름은 춘향이고 효행은 무쌍이요 장중보옥같이 길러내니 인자함이 기린이라. 이때 사또자제 리도령은 이팔이요…》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을 예봉은 무척 재미나게 들었다. 어느덧 그의 가슴속에는 마음씨곱고 효성이 지극한, 그러면서도 절개높은 춘향이와 심청이의 모습이 우렷이 자리잡고있었으니 그들처럼 사는것이 녀성의 도리라는 생각이 저절로 굳어지고있었다.

음력 정월 어느날 아버지 문수일이 문득 집에 나타났다.

문수일은 《현성완일행》이라는 순회극단에 속해있었는데 함흥에 공연차로 온것이였다.

아버지의 이 불의의 출현이 문예봉의 운명을 결정하게 되리라는것을 그때는 누구도 몰랐다. 문수일자신까지도.

문수일이라 하면 당시 라운규, 강홍식과 더불어 연예계의 총아라고도 할수 있는 인물이였다.

앞에서도 약간 언급이 되였지만 그는 인간적인 면모에서는 그리 론의할 가치가 없었지만 예술적재능에서는 뛰여난 인재라 할수 있었다. 워낙 미남자였던 그는 연극배우로서뿐아니라 연출이나 분장 등 어느 분야에서나 막히는데가 없었다.

주체10(1921)년에 우리 나라에서 제작된 첫 예술영화 《월하의 맹세》에서 녀주인공 정순이의 아버지역을 바로 문수일이 수행하였던것이다.

물론 이 영화는 저금을 많이 하도록 선전하여 조선사람들의 돈주머니를 털어내기 위한 경제적수탈을 목적으로 총독부체신국이 직접 자금을 대여 만든 영화였다. 그러므로 당시 우리 인민들의 비참한 생활을 진실하게 반영하지 못한 제한성이 있지만 작품에 출연한 문수일을 비롯한 배우들과 창작가들은 작품의 목적을 달리 수정하였다.

총독부체신국이 영화를 통하여 노린 목적인 저금을 많이 하라는 내용보다도 청년들이 《나쁜 길》에 빠지지 말라는 내용에 더 력점을 찍어 형상하였던것이다. 여기에서 문수일의 역형상이 큰 역할을 하였다.

이렇듯 민족수난기의 우리 나라 첫 예술영화에서 주역을 수행한것만 보아도 문수일의 재능을 엿볼수 있다. 문수일의 최대소원은 자기의 극단을 가지는것이였다. 남만 못지 않은 재능을 가지고있으면서도 돈이 없는탓에 《현성완일행》에 매여있는 자신이 역겹도록 불만스러웠다.

그리하여 그는 은근히 앞을 내다보면서 처인 리영자는 물론 자기의 누이동생 문숙방(문예봉의 고모)까지 서울에 데려다놓고 연구생의 명목으로 연기술을 습득시키고있었다. 하늘을 날으려는 대붕의 큰뜻을 누가 알리요! 하고 그는 속으로 이를 사려물고있었다.

아버지가 나타난 그무렵 할아버지의 극진한 도움으로 예봉의 병도 어느덧 수그러들고있었다.

아직 완전히 병색이 가신것은 아니였으나 얼굴도 몸도 퍽 충실하여졌다. 오래간만에 만난 아버지였으나 예봉에게는 반가움이란 꼬물만치도 없었다.

어머니를 버리고 서모와 사는 아버지가 그에게는 이루 말할수 없이 미운 존재였다. 어머니와 생리별을 한것도 아버지탓이 아닌가. 자기를 오래도록 바래며 황초령에 굳어져있던 어머니의 모습을 생각만 해도 짜릿한 아픔이 가슴을 파고드는것이다. 그 눈물의 황초령을 어찌 잊을수 있으랴. 그는 쌀쌀하게 눈을 내리깔고 아버지에 대하여 일체 알은체를 하지 않았다. 온몸이 얼음덩어리라도 된듯 차거운 랭기만이 독하게 풍겨나왔다. 문수일도 역시 인간인지라 제법 처녀티가 나는 딸앞에서 게면쩍어지는 자신을 어쩔수가 없었다.

엊그제까지도 제비꽁지같은 머리채를 달싹이던 애숭이가 이 몇해사이에 너무도 일찌기 조숙해진지라 처음 며칠간은 제 딸이라도 말붙이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문수일의 가슴 한구석을 흐뭇하게 해주는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피여나는 꽃봉오리처럼 아릿다운 딸의 미모였다. 예봉을 처음 보는 순간 문수일이 은근히 놀란것은 이 점이였다. 어릴 때는 도무지 앙증스럽게만 보아온 딸이 이렇게 곱게 피여나리라고는 상상도 못해본 그였다. 아니 그는 애초에 딸을 언제한번 눈여겨본적도 없었다.

《신녀성》인 영자와의 정사에 미쳐돌아가던 때인지라 봉건적인 결혼의 산물인 딸들에 대하여서는 관심밖이였고 새 가정의 장애물로밖에 보지 않았었다.

그러나 이 모든 불우한 환경에 도전하듯 딸은 순후하게 피여났다. 딸의 아름다움은 처음으로 문수일의 잠자던 부성애를 흔들어깨우며 자부심비슷한 감정이 한줄기의 봄비처럼 메마른 가슴에 스며들게 하였다.

그러나 문수일은 아버지이기 전에 우선 극단주를 꿈꾸는 야심에 찬 연예인이였다. 그러기에 딸의 미모를 보는 순간 그의 뇌리를 친것은 아버지된 흐뭇함과 함께 인기있는 녀배우감이 될수 있다는 타산이였다. 수지가 맞는 이 타산으로 하여 그가 더 속으로 기뻐했다고 단정할수는 없지만 후날 극단을 위하여서는 그 어떤 랭혹한짓도 꺼리낌없이 한 문수일의 행위를 보면 영 근거없는 속단이라고는 할수 없을것이다.

 

*          *

 

순회극단인 《현성완일행》은 함흥 동명극장에서 첫 공연의 막을 올렸다.

이 극단의 극단주는 현성완이였으나 실권은 마호정이라는 그의 처가 쥐고있었는데 당시로서는 이름이 있는 극단이였다,

조선영화계의 개척자, 선구자로 이름을 날리던 춘사 라운규도 영화계를 잠시 떠났던 한동안은 이 극단에서 활동한적도 있었다. 극단의 실권자인 마호정역시 우리 나라 영화계의 유년기부터 은막에 출연하였던 녀배우로서 19세기에 태동한 근대연극운동에 과감히 뛰여든 《녀걸》이라 할수 있는 인물이였다. 조선봉건왕조말기 다년간 궁중의 궁녀로 있던 그는 계몽운동자였던 유길준이 쓴 외국기행문 《서유견문》을 읽고 크게 깨달은바가 있어 민족예술운동에 몸바칠것을 꿈꾸었었다.

원래 시조를 잘 읊고 창가도 잘하여 한때 고종의 총애를 받았다는 일화도 있는 그는 《협률사》, 《원각사》에 소속되여 가수로, 배우로 활약하다가 자기의 개인자금으로 극단을 조직하고 직접 귀부인, 상류가정의 소실, 계모역에 출연하여 인기를 모았다. 후날 그가 사망한 후 제일 슬퍼한 사람이 이름난 민족주의운동자였던 도산 안창호였다는 설도 있을만큼 그는 당대의 연극계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녀인이였다.

이러한 극단이였으므로 무대에 올린 연극 《눈물》은 련일 성황리에 공연되고있었다.

아버지 문수일의 거듭되는 권고로 예봉은 어느날 연극구경을 갔다. 세상에 태여나서 연극이라는것을 처음 본 날이였다.

무대에서는 한 봉건가정의 비극사가 펼쳐지고있었다. 량반물림의 한 사나이가 아릿다운 첩을 얻게 된다. 집에 들어온 첩은 초기에는 현모량처인체 하다가 점점 본성을 드러내여 전처자식을 못살게 구박한다. 남편은 처음에 첩의 말만 듣고 자기 자식을 꾸짖고 박대하다가 어느 계기를 통하여 첩이 나쁘다는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하여 첩을 내쫓고 본처에게로 돌아온다.

심각한 사회적문제성이 있는 작품도 아니고 당시 흔해빠진 인정세태적인 가정극이였으나 비교적 극이 째이고 출연한 배우들의 연기술도 일정하게 높아 관중들의 호평을 받았다.

계모역에는 마호정이 직접 출연하였고 남편역에는 바로 문수일이 등장하고있었다.

연극을 보면서 예봉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였다. 무대에 펼쳐지는 생활이 자기가 겪은 생활과 너무도 방불하여 가슴이 막 미여지는듯 했고 속에서 눈물이 저절로 샘솟듯 자꾸만 흘러나오는것을 자제할 길이 없었다. 그의 얼굴은 온통 눈물범벅이 되고말았다. 연극을 보는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체험하는듯 한 환각속에서 그는 연극의 막이 언제 내렸는지도 알지 못하였다.

관중들이 이미 다 흩어져간지 오랬지만 예봉은 굳어진듯 그냥 자리에 앉아있었다.

연극의 여운이 너무도 강하여 좀처럼 자리를 뜨고싶지 않았던것이다. 극장의 문을 닫겠다고 관리원이 독촉해서야 그는 겨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으로 돌아오는 밤길에도 그의 생각은 무대에만 가있었다. 음력 정월이라 날씨는 매웁도록 차가왔으나 그는 전혀 추위를 느끼지 못하였다.

눈앞에는 그저 전처자식을 꽉 부여잡고 후회의 눈물을 흘리던 아버지의 모습만이 크게 확대되여 얼른거릴뿐이였다. 연극무대에서 본 아버지가 도무지 자기 아버지라고는 믿기 어려웠다.

자신이 그토록 미워하는 아버지와 무대에 나타난 선량한 아버지의 모습이 너무도 엄청나게 달라 두사람을 일치시킨다는것이 아직 어린 그로서는 큰 심리적부담이 아닐수 없었다. 연극대로만 한다면 아버지 문수일도 언젠가는 리영자를 내쫓고 우리 어머니에게로 돌아올수 있지 않을가. 그러면 연극에서처럼 나와 화봉이가 아버지의 품에 매달려 기쁨의 눈물을 마음껏 쏟을텐데…

랭혹한 아버지의 진짜모습과 무대에서의 후더운 모습을 엇갈아 떠올리며 예봉은 혹시나 하는 한가닥의 희망을 품어보기도 하였다. 어쨌든 무대우에서 본 아버지의 모습으로 하여 문수일에 대한 예봉의 사무친 증오와 경멸의 덩어리에 한줄기의 금이 가기 시작한것만은 사실이였다. 순진한 그로서는 무대의 아버지를 더 믿고싶었다. 집에 돌아와서도 그는 밥을 먹을 생각도 않고 자리에 누워버렸다. 혼자서 조용히 연극을 본 인상을 되새겨보고싶었던것이다. 연극의 장면장면을 생각하느라면 또다시 눈물이 솟구쳐오른다.

공연뒤처리를 하고 집에 늦게 들어선 문수일은 급히 눈물을 닦으며 일어나앉는 딸을 한동안 말없이 쳐다보았다. 예봉의 눈은 너무 울어 퉁퉁 부어있었다. 문수일은 고개를 끄덕이며 의미있게 물었다.

《오늘 연극구경 왔댔다지?》

《네.》

예봉이 다소곳이 머리를 숙인채 대답하였다.

《그래 연극이 재미있더냐?》

《…》

예봉은 인차 대답을 못하였다. 한마디로 대답하기에는 가슴이 너무도 격동되여있었다.

생활에 예민한 연극인인지라 문수일도 울어서 퉁퉁 부은 딸의 눈을 보면서 짐작되는바가 없지 않았다. 그러나 풍파많은 예술계에서 닦이울대로 닦이운 문수일의 눈에 더욱 크게 포착된것은 딸의 복잡한 인간적내면보다도 진정 연극에 심취될줄 아는 예술적감각이였다. 이점이 문수일을 흐뭇하게 하였다. 역시 딸은 예술적인 감각과 천품을 타고난것 같았다. 저 미모에 배우기량만 잘 갖춰준다면… 문수일은 은근한 어조로 감춰두었던 자기의 속생각을 비쳤다.

《예봉아, 너도 연극을 해볼 생각은 없느냐?》

《예? …》

너무도 뜻밖의 질문에 화닥닥 놀라며 예봉은 아버지의 얼굴을 멍하니 쳐다보기만 하였다.

내가 연극을 하다니? 상상도 못해본 일이였다.

한참만에 예봉은 도리머리를 저었다.

《아버지, 전 그런 재간이 없어요.》

문수일은 느슨한 웃음을 지었다.

《누군 뭐 특별한 재간이 있어 한다더냐. 열심히 배우면 다 되는거야. 네 고모도 그래서 서울에 가있지 않느냐.》

그러나 예봉은 단호하게 거절하였다.

《아버지, 전 정말 그런데는 자신이 없어요. 할아버지와 함께 여기서 살겠어요.》

이때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던 할아버지 문형섭이 벌컥 화를 내며 문수일을 꾸짖었다.

《넌 뭐가 모자라 딸자식까지 광대노릇 시키지 못해 몸살이냐. 연극인지 뭔지 환장을 해도 분수가 있지. 그 애는 못 다친다.》

문수일은 한심하다는듯 할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아버지, 그러면 저 약한것을 또다시 제사공장 같은데 보내겠나요? 아버지가 끼구있어서는 어떻게 하겠다는거예요.》

문형섭은 말문이 막히였다. 노기가 오른 그는 대통을 탕탕 털며 역증스럽게 한마디 내뱉았다.

《여하튼 저 애한테 광대노릇만은 못 시킨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문수일은 더이상 아버지앞에서 우기지 않았다.

그러나 예봉을 데려갈 생각을 결코 포기한것은 아니였다. 《현성완일행》의 공연계약날자도 거의 끝나가고있었다. 며칠후면 극단은 다시 서울로 돌아갈 계획이였다. 문수일은 이 기회에 어떻게 하든 예봉을 데려갈 심산이였다. 예봉이까지 있으면 문수일자신과 누이 문숙방 셋을 기본중추로 하여 《문수일극단》을 꾸릴수 있다. 그러면 현성완에게 목매달린 신세에서 벗어나 독자적으로 활동할수 있을것이다.

어느날 문수일은 조용히 예봉을 불렀다.

그는 여느때없이 침통한 얼굴로 딸에게 말하였다.

《예봉아, 사실 내 너에게 죄를 많이 졌다. 너의 어머니에게도… 그런데 엎지른 물이라 다시 담을수도 없구나. 그러나 난 아버지로서 딸들의 운명만은 끝까지 책임지련다. 그래서 화봉이도 이미 서울에 데려간것이고… 인제 너 하나 남았는데 너를 늙은이들에게 맡기고 가자니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구나.》

문수일은 진정 걱정스러운듯 예봉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였다.

너무도 살뜰한 아버지의 말에 예봉의 놀라움은 컸다. 연극의 그 아버지로 환생한것이나 아닐가 하고 착각할 정도로 문수일의 태도는 너무도 부드럽고 어버이다왔다.

예봉은 코마루가 찡해짐을 어쩔수 없었다. 난생처음 아버지의 다심한 마음에 접하고보니 눈에는 저도모르게 눈물이 맺히였다.

울먹울먹하는 딸을 한동안 바라보던 문수일이 예봉의 머리를 쓸어주며 물었다.

《너 장진에서 보통학교를 다니다가 그만두었다지?》

《네.》

《그것도 다 내탓이다. 그래서 나도 생각을 좀 해보았는데 너 서울에 가서 공부를 계속해보지 않겠니?》

공부라는 말에 귀가 번쩍 뜨인 예봉은 처음으로 아버지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학교에 다니라구요?》

《그래.》

문수일이 흔연히 머리를 끄덕이였다.

예봉은 저도모르게 아버지팔에 매달리며 애원했다.

《아버지, 나 공부 계속할래요.》

딸의 열기띤 얼굴을 바라보며 문수일은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하자. 아버지가 너 하나 공부 못 시켜주겠니? 이번에 서울에 올라갈 때 같이 가서 학교에 들어가자꾸나.》

《정말이지요?》

예봉은 너무도 뜻밖의 경사가 얼른 믿어지지 않아 다짐을 놓았다.

《애두 참, 아버지를 믿지 못하겠니? 이제 며칠이면 서울 갈텐데 지금부터 준비를 잘해둬라.》

예봉은 날아갈듯 한 마음이 되여 집으로 돌아왔다.

할아버지는 예봉에게서 자초지종을 듣고 머리를 기웃거렸다. 웬일인지 믿음이 잘 가지 않았다. 아들 문수일의 기질을 너무도 잘 아는 문형섭으로서는 그럴 법도 하였다. 그에게 한두번 속아왔던가.

제 부모 속이기를 밥먹듯 하는 아들이 딸이라고 못 속일가? 그러나 서울에서 공부하게 되였다고 들떠있는 예봉에게 차마 찬물을 끼얹을수는 없었다. 혼자 속을 태우던 문형섭은 그날밤 문수일을 불러앉히고 따지였다.

문수일은 년로한 아버지에게 딸자식까지 맡기기가 괴롭다는것, 여기에 있어야 로동밖에 더 하겠는가, 그래서 서울에 올려다 공부시킨 다음 좋은 자리에 취직시키거나 시집보내겠다는것 등을 루루이 설명하였다.

아버지가 제 딸의 장래를 책임지겠다는데는 문형섭이로서도 할말이 없었다. 더구나 늙은 량주와 있으면 어차피 예봉이가 주되는 로력자가 되여야겠는데 당장 취직자리도 마땅치 않은것은 사실이였다. 자기가 끼고있어야 결국 손녀에게 고생밖에 시킬것이 없었다.

하여 울며겨자먹기로 문형섭은 손녀를 품에서 내놓을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한숨을 쉬였다. 그러나 그는 아들에게서 단단히 다짐을 받았다.

《너 예봉이만은 광대노릇시키지 않겠다는것을 맹세해라. 녀자가 그런 길에 나서면 몸을 망치기마련이니라.》

《그건 념려마십시오. 아무렴 이 애비가 제 딸을 망치겠습니까.》

문수일은 천연스레 말하였다.

이렇게 되여 그해 3월초 예봉은 아버지를 따라 서울로 가게 되였다.

푸른 꿈을 안은 예봉의 가슴은 부풀어있었으나 그를 기다리고있는것이 역시 눈물의 세계였음을 아직 예봉은 모르고있었다.

 

*          *

 

서울에 도착한 날은 여우도 눈물흘린다는 초봄의 맵짠 날이였다. 싸늘한 랭기가 홑옷을 입은 예봉의 피부를 사정없이 콕콕 찔렀다.

아버지의 집은 동대문안 종로 5정목, 거의다 쓰러져가는 3칸짜리 기와집이였다. (이 집은 예봉의 서모 리영자의 이모집인데 그집 건넌방 한칸에 문수일가족이 동거하고있었다.) 할아버지가 꾸려준 자그마한 보퉁이를 들고 언손을 호호 불며 아버지를 따라 집에 들어서던 예봉은 마당 한구석에서 풍로에 불을 지피고있는 고모 문숙방을 발견하였다.

《고모!》

예봉이 반가웁게 소리치며 달려가자 문숙방은 잠시 얼떨떨해있다가 급기야 손에 쥐였던 나무가지를 떨구며 마주 달려왔다.

《예봉이로구나!》

몇년만에 만나는 그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였다. 예봉이가 어머니를 따라 장진으로 갈 때 헤여진 후로는 처음 만나는 그들이였다. 한동안의 격정이 사라지자 문숙방이 서둘러 물었다.

《네가 웬일이냐? 서울에 다 오고…》

《아버지따라 왔지요 뭐. 공부시켜준댔어요.》

《뭘?》

너무도 기가 차서 문숙방은 말이 나오지 않았다. 순진한 조카가 민망스러울 정도였다.

문숙방은 더 말하지 않고 예봉의 손을 잡아끌며 어서 들어가자고 서둘렀다. 이때 대문이 찌쿵 열리며 동생 화봉이가 풀기없이 들어섰다. 예봉이보다 4살 아래인 화봉은 무슨 저자구럭 같은것을 힘겹게 들고있었다.

예봉이가 막 동생에게 달려가려는데 방문이 벌컥 열리며 서모 리영자가 나왔다.

그는 예봉이에게는 눈길조차 돌리지 않고 직방 화봉에게로 가더니 구럭을 나꾸어채며 꾸중을 하였다.

《널 기다리다가는 눈이 빠지겠다. 언제나 꾸물거리니…그래 얼마 받았니?》

《25전이예요.》

화봉이가 가냘프게 대답하며 거스름돈을 내주었다.

돈을 손바닥에 놓고 세여보던 영자가 별안간 매서운 눈초리로 화봉을 쏘아보았다.

《왜 5전이 없어?》

《예?》

화봉은 겁먹은 눈길로 영자를 쳐다보았다.

《제대로 받았어요.》

《그런데 왜 5전이 없는가 말이야.》

짝 하는 소리와 함께 영자는 어느새 화봉의 얼굴을 갈기며 세차게 마루기둥쪽으로 밀쳤다.

《네년이 떼먹었지? 뭘 사먹었니?》

화봉은 마루기둥모서리에 머리를 찧으며 그자리에 쓰러졌다.

예봉은 저도모르게 화봉에게로 뛰여가 그를 안아일으켰다.

《화봉아!》

그제야 언니를 알아본 화봉은 《언니야!》하며 그의 가슴에 매달려 왕왕 울음을 터뜨렸다. 동생의 이마는 어느새 퍼렇게 멍이 져 부어올랐다.

예봉은 너무도 격하여 영자를 무섭게 노려보았다.

영자는 그제야 예봉의 존재를 알아본듯 아닌보살하며 수선을 떨었다.

《예봉이가 왔구나. 아버지가 이미 말씀하시더라. 글쎄 처음 집에 온 너에게는 안됐지만 화봉이때문에 난 속상해 죽겠어. 아이를 제대로 보나, 심부름을 제대로 하나. 애가 좀 얼뜬한게…》

예봉은 급히 보짐속에서 할아버지가 길떠날 때 정히 싸준 몇푼 안되는 돈중에서 5전을 꺼내들었다.

그는 울음을 겨우 삼키며 간신히 말하였다.

《아직 어린애이니까 거스름쯤 잘못 받을수도 있지 않나요. 이걸로 보태세요.》

그는 영자의 손에 돈을 쥐여주었다.

영자는 예봉의 뜻밖의 태도에 약간 놀라며 사양하는척 하더니 못이기는체 하며 돈을 받아들었다. 급기야 태도를 돌변한 그는 자못 상냥한 태도로 문숙방에게 말하였다.

《예봉이도 왔는데 누이, 빨리 저녁을 지어야지 않아요. 난 애기기저귀를 갈고 젖을 먹여야겠어.》

그가 방으로 사라지자 예봉은 말없이 고모에게 눈물어린 눈길을 주었다.

《예봉아, 화봉이를 잘 돌보지 못해 정말 미안하다.》

문숙방은 후 한숨을 내쉬며 눈을 내리깐채 묵묵히 쌀바가지를 집어들었다. 예봉이 그 쌀바가지를 뺏어들었다.

《고모는 불이나 피워요.》

《아니, 네가 불을 피우렴. 쌀은 내가 씻어야 해. 넌 물이 차서 못 씻어.》

고모는 예봉에게서 기어코 바가지를 빼앗았다.

그때 보니 문숙방의 손은 온통 터갈라져 말이 아니였다. 헝겊으로 동여맨 손가락에는 뻘건 피가 배여있었다.

예봉은 가슴이 알찌근해졌다. 얼마나 고생했으면 손이 다 그렇게 문드러졌으랴. …

《고모, 부엌은 없어요? 이 겨울에 왜 밖에서 고생하나요?》

《동거살이하는 신세에 부엌이 다 뭐냐. 이 마당 한구석에서 때식을 끓인단다.》

문숙방은 서글프게 웃었다.

예봉은 매력있게 생긴 고모의 서글픈 미소를 바라보며 자기가 잘못 왔다는것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방금 마당에서 벌어진 정경이야말로 내가 앞으로 겪어야 할 생활의 한토막이 아닐가. 이런 형편에서 공부가 다 뭣인가.

예봉은 겨우 저녁이라는것을 먹은 후 피곤하여 자리에 눕고싶었으나 그가 누울 형편이 못되였다.

코구멍만 한 단간방에 문수일과 영자 그리고 애기가 자리를 차지하다보니 고모와 예봉, 화봉이는 한켠구석에서 꾸어온 보리자루처럼 말뚝잠을 자야 할 형편이였다.

그래도 문숙방이 먼길을 온 조카를 생각하여 자기 무릎에 그의 머리를 받쳐 쪼그리고 눕히였다. 6명 식구가 자기에는 너무도 비좁은 방이였다.

제사공장의 첫날밤처럼 예봉은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때는 집식구들과 멀리 떨어져 혼자 생소한 곳에 떨어진 고독감과 앞날에 대한 공포감으로 잠못 들었다. 허나 지금은 집식구들속에 끼여있는데도 고독감은 여전히 가슴을 파고든다.

아버지에 대한 한가닥의 신뢰감도 산산이 부셔졌고 서모 영자에 대해서는 더 생각하고싶지도 않았다.

고모 문숙방은 명색이 극단 연구생이라지만 실지는 이 집의 식모나 다름없었고 나어린 동생은 아이보개, 심부름군이였다.

그렇다면 나는? …

예봉은 이 한가지 생각에 골몰하면서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자기를 속인 아버지에 대하여 그는 인제는 증오감보다 극도의 혐오감을 느끼였다.

예봉에게 있어서 문수일은 미운 존재라기보다 인간적으로 너절한 존재로 더욱 굴러떨어졌다고 해야 할것이다.

그러나 문수일에게 있어서 딸의 감정따위는 상관할바가 아니였다.

그에게는 자기의 극단을 꾸려야만 극계의 랭혹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날수 있다는 사활적요구가 더 절박하였던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인간적인 모든것을 다 상실하면서까지 일생의 목표라고도 할수 있는 이 욕망실현에 모든것을 다 복종시켰던것이다.

당시의 암담하고도 각박한 사회풍조와 극계의 생존방식이 재능있는 이 연예인을 이런 비렬한으로 만들지 않았을가?

문예봉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이렇게 생각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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