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1 회)

제2장 청춘의 분수

16

 

어머니는 선규의 장례를 지낸 다음날 이촌동으로 가서 선규네 집살림을 실어왔다. 세간보다 유정을 안착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유정은 울고만 있었다. 오래비생각과 서투른 환경에 소녀는 마음이 아직 붙지 않는것이다. 어머니는 유정을 데리고 대학병원으로 갔다. 선규에 대한 슬픔은 끝이 없으나 어머니로서 우선 할 일은 다한셈이였고 이제부터는 상춘을 돌봐주어야 했다.

아들의 부상당한 몸은 비록 채남이 잘 돌봐준다고는 하지만 아들에게 있어 자기의 손은 《약손》이라는, 어쩐지 옛날부터의 그런것으로 하여 자기가 병원에 가서 붙어있어야 된다고 생각했다. 병원으로 가는 길에 유정을 데리고 갔다. 병원에서는 이것저것 보고 듣는게 있어서 마음이 안정될수 있고 또 아는 학생들도 만나서 위안도 받을것이다.

병원에서는 학생들이 몹시 흥분하고있었다. 앉아있지들을 못하고 서서 웅성거렸으며 상춘도 일어나 앉았다. 그중에서도 채남의 흥분이 더욱 눈에 띄였다. 어머니를 보기만 하면 언제나 반가이 맞이해주던 그가 의자에 앉은채 숨만 거칠게 쉬고있었다.

《왜들 그러니?》

어머니는 채남에게로 가서 조용히 물었다. 그제서야 그는 어머니를 알아보는듯 얼른 일어서서 유정의 손을 잡아주며 호소하듯 말했다.

《경찰이 아버지를…》

채남은 어제 밤에 집에 가지 못했었다. 상춘이 선규장례에 찬비를 맞고 다녀서 그랬는지 밤새도록 열이 높아 간호하다가 낮에야 집에 가보았더니 아버지는 없고 계모 혼자 걱정하고있더라는것이다.

학생들이 흥분하는것은 교수의 검거에도 있었지만 채남이 그 계모에게서 들은 말-어떤 대학총장의 발언이였다.

《이번 사건은 우리가 교육을 잘못한탓으로 발생한것이니 모두 리승만<대통령>에게 사과하러 갑시다.》

아사원에서 권세환이 하자영교수에게 한 말이였다. 교수는 집에 돌아와서 아사원에서의 전말을 대강 부인에게 이야기해두었다.

교수에 대한 검거와 사과운운의 발언은 서로 련관이 있는 일이였다. 그들은 교수들을 그 발언방향으로 이끌어보려고 하다가 그들의 강력한 반박에 부딪치자 하자영교수를 검속해버린것이다.

어머니는 그 말을 듣자 속에서 북받치는 울분을 참을수가 없었다.

《그게 어느 대학 총장이냐?》

어머니의 목소리는 갈리였다. 채남이 대학의 이름을 대주었다.

《왜 그러세요?》

상춘은 어머니의 갈리는 목소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기때문에 걱정이 되여서 물었다.

《내가 그 총장을 찾아가 먼저 사과를 해야겠다. 그가 리승만이한테 제자들을 잘못 가르쳤다고 사과하기 전에 어미들이 자식들을 잘못 낳고 잘못 길러서 이 일이 터졌다고 가서 사과를 해야겠다. 그 사람 집만 대다우.》

어머니의 역설적인 그 말에는 자식들(학생들)에 대한 절대적인 긍지와 옹호가 있었다. 학생들의 행동에 대한 추호의 비난에 대해서도 용서하지 않는 열화같은 항의, 그것이였다. 그것은 상춘을 옹호하고 지키는 마음에서보다 선규의 죽음에서 받은 격앙된 심정이였다.

상춘은 어머니의 그 정신을 알수 있었다. 그러면서 어머니가 혹시 어떤 극한 행동으로 나가지나 않을가 그것이 걱정도 되였다.

《그까짓 집은 알아 뭘 하세요. 집에 가계세요.》

《이걸 집에 데려다 놓고보니까 가뜩이나 가엾고 분한데 어떤 놈이 그런 말을… 리승만이가 그만큼 남의 집 귀한 자식들을 죽였으니 물러나란 말은 못하고 사과?》

분개하는것은 어머니뿐이 아니였다. 그 말이 각 입원실에 퍼지자 모든 어머니들과 가족들이 다 분개했다.

그 총장이란자는 리승만에 대한 아첨이 체질로 되여 그런 말을 했을터이지만 사과라는것은 죽은 학생들의 《죄악》을 전제로 해서만 성립되는 말이니 과연 어머니들의 아들들이 《죄악》을 범했단 말인가?

국민들이 더는 살수 없어서 일어난 그날의 시위가 《죄악》이란 말인가?

나라의 운명을 걱정하여 새 정치를 요구하고 민주주의를 부르짖은 학생들에게 총을 쏘게 한 늙은 독재자에게 사과를 해야 옳단 말인가? 어머니들의 죽은 아들들이나 부상당한 아들들을 모독함에 있어 그이상 더할수는 없는것이다.

학생들이 어머니들을 모아주었다. 창신동에 있는 총장이란자의 집근처 산비탈 어느 공지에 어머니들이 30~40명가량 모였다. 가서 보니 그동안 병원에서 혹은 합동위령제에서, 장지에서 서로 본 얼굴들이 많았다. 수도병원에서 아들의 시체앞에서 울지 않던 로부인도 보였다. 유정이도 어머니를 따라왔다.

같은 처지의 슬픔과 회한을 지닌 어머니들은 그렇게 장소를 달리하여 만나게 되자 저절로 슬픔도 새로와져서 손들을 마주잡고 눈물을 흘리는 부인들도 있었다.

《울지들 마오. 아들의 뒤일을 하겠다면서 요사스레 울긴 뭘.》

로부인이 꿋꿋하게 일어섰다. 어머니들이 따라 일어나서 몇걸음 총장의 집으로 가다보니 어머니생각에는 무엇인가 허전한걸 느끼였다. 역시 학생들이 그렇게 하는것 같이 앞에 무엇인가 하나 들고 갔으면 하는 그것이였다. 학생들도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희생자학생들의 어머니들을 모이게 하는데만 바빠서 미처 들고 갈 프랑카드까지는 생각이 돌지 않았다는것이다. 어머니가 그것을 말하자 다른 부인들은 그아래 어디 포목상점으로 뛰여갈 생각도 하였다.

누구인가 치마 한폭을 찢어냈다. 그러나 졸지에 생각해낸 일이라 먹도 없고 또 무엇이라고 쓸지 적당한 말도 몰랐다.

《먹이 없어 어쩐다?》

어머니가 걱정했다.

《어미들이 먹이 없어 글씨 못 쓰겠소. 여기 먹이 있소.》

로부인은 그 말과 함께 손가락을 깨물었다. 피가 떨어져 치마폭을 점점이 붉게 물들였다.

《쓰기나 하우.》

어머니는 놀라며 속으로는 먹없는 걱정을 한 자신을 부끄럽게 여겼다. 로부인의 손가락을 피가 안 나게 꼭 눌러쥐고 우선 무엇이라고 썼으면 좋을가 그것부터 여러 사람에게 물어보았다.

《내 아들 살려내라!》

어머니들의 그때 심정이 바로 그러했던것이다. 구호가 그렇게 결정되자 어머니는 자기 손가락을 깨물어 그 피로 그 구호의 첫자를 썼다. 그러나 한자를 다 쓰지 못하고 피는 응고되고만다. 그것을 보는 또 다른 어머니가 손가락을 깨물었다. 7~8명의 어머니들이 그렇게 손가락들을 깨물어 그 짧은 구호를 썼다. 아픔도 괴로움도 죽음도 사양치 않는 모성애라는 그 고귀한 말로만 설명되는 행동들이였다.

총장네 집문밖에는 여러대의 자동차가 서있었다. 그 집 응접실에서는 몇몇 총장들과 어용학자들이 모여서 그들대로 위급한 시국수습대책을 론의하는중이였다.

그들은 어제 밤 아사원에서의 결말에도 당황하였고 각 대학들의 교수들사이에 모종의 행동계획이 있다는것을 탐지해내서 더욱 급해맞은것이다.

교수들의 모종계획에 대한 방지대책을 구수밀의하고있었다.

땅바닥에 꼬니판을 그리고 꼬니를 두던 운전사들이 먼저 어머니들의 행렬을 보고 놀랐다. 그중의 한사람은 위급함을 일러바치러 안으로 뛰여들어가려 했으나 다른 운전사가 그의 등을 잡아 멈추게 하고 어머니들에게 응접실이 있는 곳을 일러주었다. 운전사들도 어머니가 팔을 벌려 들고 오는 조그마한 치마폭에 얼룩진 피와 그 서투른 글씨를 보고 그앞에 무조건 숙어지는 머리를 어쩔수가 없었던것이다.

어머니들이 응접실앞 정원에 들어섰을 때 어딘지 모르게 느껴지는 적대적공기와 응접실에서 들려나오는 유쾌하게 웃는 웃음소리는 그들의 비분한 심정과는 너무나 이질적인것이였다.

《내 자식 내놓아라!》 하는 함성과 함께 쟁그랑하고 유리쪼각들이 마루에 쏟아졌다.

응접실에서는 예닐곱의 몸뚱아리가 뛰여나오며 갈팡거렸다.

《내 자식 살려내라!》

《삼대독자 내 아들이 죽었다!》

어머니마다 소리치며 각자 자기가 품은 원한대로 소리를 마구 질렀다. 원통하고도 애절한 절규들이였다. 너무나 분해서 울음을 터치고마는 어머니도 있었다.

그 집 주인되는 머리가 벗어진 총장과 다른 어용학자들은 졸지에 당하는 일이 되여서 잠시 당황망조한 꼴을 보이다가 어머니들만의 녀자시위대인줄 알게 되자 차츰 본래의 점잔과 위엄을 되찾을수 있었다. 한데 모여서서 손짓을 해가며 진정들 하시라, 무슨 말씀들이 있어 오셨느냐, 자못 침착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어머니들의 절규는 진정되지 않았다.

《여보십시오, 어머니들!》

어머니의 이름으로 노한 그들을 무마시켜보려고 팔을 높이 들고 목청을 돋군 사람은 뜻하지 않게 권세환이였다.

그는 그의 남다른 기질인 사람들의 심리적기미를 포착할줄 아는 그 웅변술을 리용하여 팔을 쳐들었다.

《여기 어머니들가운데는 제가 평생을 두고 존경하는 독립운동자의 사모님도 계십니다.》

어머니의 이름을 팔던 그 수법을 또 써보자는것이였다. 그것은 언제나 처음 듣는 사람들을 어리둥절케 하는 효능은 있었다. 어머니들은 자기들가운데 《사모님》이 누구인가 옆의 사람들을 둘러보며 잠시 진정이 되여가는듯 했다.

《사모님!》

권세환은 어머니에게 안겨볼듯 한걸음 나서며 부드럽게 호소하는 목소리로 어머니를 불렀다.

어머니는 심한 모욕을 느꼈다.

《듣기 싫다. 또 그따위 소리냐? 우리 주인은 왜놈들과 싸운 사람이지 무고한 남의 자식들을 쏴죽인 사람이 안야.》

《바로 그렇습니다. 그렇기때문에 제가 존경하는게 아닙니까. 어머니들이 리승만<대통령>이 얼마나 왜놈들을 미워하는분인지 아신다면…》

그는 제 가슴을 두드렸으나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어머니들이 소리쳤다.

《그놈은 왜놈대신 미국놈한테 붙어먹는 개자식이다.》

《양녀를 계집으로 데리고 사는 놈이다.》

《양년치마바람에 나라 팔아먹은 늙은 놈이다.》

《내 자식이나 살려내라!》

그 아우성소리가운데서도 권세환이 몇마디 더 소리를 높이려고 할 때 유정의 조그마한 몸이 공이 구르듯 쏜살같이 가더니 그의 손등을 꽉 깨물고 늘어졌다.

권세환은 기겁을 해서 놀라며 《앗!》 소리를 치고 손을 빼서 털며 유정을 공차듯 내질렀으나 그는 그의 다른 팔에 매달려 떨어지지 않았다.

놀란것은 권세환뿐이 아니였다. 어머니도 놀랐다. 유정이가 권세환이 누구라는것을 정말로 알아서 저러는것일가.

권세환은 재차 유정을 찼다. 유정은 땅에 나동그라졌다.

《엄마야, 오빠야!》

유정은 권세환을 안다. 자기 어머니가 앓아누웠을 때에 엄마의 심부름으로 환평제분회사에 상해(남의 몸에 상처를 내여 해를 입히는것)치료비를 받으러 가서 어린애의 억지로 사무실까지 들어갔다가 마침 회사에 나와있던 권세환에게 호령을 당하고 쫓겨나왔던 일이 있었다. 그때 권세환의 강파르고 매서운 얼굴을 보았거니와 오빠는 바로 그놈이 엄마를 죽였다고 일러주었던것이다. 유정은 그곳 총장의 집에서 엄마를 죽인 사람을 만날줄은 몰랐었다. 그를 보자 소녀의 가슴에 돌처럼 뭉친 원한이 전후를 가릴것 없이 달려들게 했던것이다.

권세환의 손등에서는 피가 떨어지고있었다.

《이놈, 이애가 누군지 네가 알기나 하느냐?》

어머니는 권세환을 보고 소리쳤다. 권세환은 흐르는 피가 아까와서인지 혹은 덧나지 말라는것인지 입으로 피를 핥고있었다.

어머니들은 쓰러진 유정을 안아일으키는 한편 닥치는대로 집을 부시였다. 밖에서는 백차의 날카로운 경적이 울리며 한무리의 경찰들이 달려들었다. 어머니들의 습격을 보고 안채에서 경찰에 련락을 했던것이다.

 

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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