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회)

제1편 눈물의 백합꽃

울며 내린 황초령

  

황초령과 재질령을 넘어 굽이굽이 돌아가면 대흥리라는 곳이 나진다. 앞에도 산, 뒤에도 산, 올려다보이는 파란 하늘이 동전잎만큼이나 보이는 심심산골이다.

앞뒤가 산으로 꽉 둘러막힌 이 무서운 산골길로 한 녀인이 어린 딸애의 손목을 잡고 터벅터벅 걸어가고있었다. 다리골이라는데를 찾아가는 오영금과 9살난 예봉이였다. 그곳에는 예봉의 외가가 있었다.

오래간만에 친정을 찾아가는 오영금이였으나 기쁨보다도 안 떨어지겠다고 발버둥치던 5살짜리 화봉이 생각에 걸음걸음 피눈물을 삼키였다. 더우기 즐거운 친정나들이가 아니라 품을 팔러 가는 몸인지라 걸음은 천근만근 무거웠다.

문수일이 정신병에 걸린척 한 얼굴을 하고 서울로 다시 올라간 후 집의 살림살이형편은 더욱더 기울어져갔다. 생각다 못하여 문형섭은 얼마간이라도 식구들의 목숨을 부지하려고 마지막수단으로 집을 팔았다.

집까지 팔다나니 당장 거처할 곳이 문제였다. 그리하여 70고령의 문형섭이 10여명이나 되는 집식구들을 거느리고 주북을 떠나 연포리로 이사를 하였다.

연포에는 문씨들이 많으므로 문중의 땅을 얻어 부치려는 생각에서였다.

연포에서 다 쓰러져가는 오막살이를 하나 얻어 거처하였다.

소작지를 겨우 얻어 농사일은 주로 할아버지와 어머니, 삼촌댁들이 하고 할머니는 부두에 나가 어물을 받아다 시장에 내다 팔았다. 어린 예봉과 고모(문숙방)는 광포강에 나가 가막조개를 주어다 팔기도 하고 집에서 죽도 쑤었다. 온 식구는 그야말로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고 손발을 다 버둥거렸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야산을 헤매며 나물을 캤고 여름에는 가막조개줏기, 가을부터 그이듬해 봄까지는 밭에 나가 콩뿌리, 강냉이뿌리, 수수뿌리를 캐다가 땔감을 마련하느라 예봉의 말랑말랑하던 손은 어느새 북두갈구리처럼 험해졌다. 그런 예봉에게도 기쁜 날이 있었다면 그것은 가막조개 판 돈 35전을 주고 코고무신을 난생처음 사신은 날이였다.

서모인 리영자가 신었던 하얀 깃또구두에 대비할바는 못되여도 제가 번 돈으로 산 코고무신인지라 소중하기 그지없었다. 그래서 그는 그 고무신을 신지 않고 옆구리에 끼고다니다가 시내에 갈 때에만 살짝살짝 신었으며 밤에 잘 때는 가슴속에 꼭 품고 잤다. 그러는 딸애를 영금은 눈물겹게 바라보군 하였다. 이런 고생속에 예봉은 9살을 먹었다.

 

*       *

 

아침식사시간이였다. 온 식구가 둘러앉은 둥근 밥상에는 여느때처럼 또 시래기범벅이 올랐다. 우거지밥 아니면 멀건 죽물에 된장으로 끼니를 에우는것이 일상사인지라 예봉은 말없이 숟가락을 들었다. 이윽고 어머니가 작은 두리반에 할아버지의 상을 챙겨들고 웃방으로 올라갔다. 흰쌀이 섞인 노란 조밥에 보글보글 끓는 감자장이 뚝배기에 담겨져있었다. 구수한 그 냄새가 예봉의 내장을 들었다놓는다. 어머니가 밥상을 할아버지앞에 공손히 놓아드리고 아래방으로 내려서는데 느닷없이 화봉이가 앙-하고 울음을 터쳤다. 술질을 하던 집안식구들이 얼굴들을 찡그렸다. 요즘에는 식사때마다 걸핏하면 울어대여 여간 시끄럽지 않았던것이다. 당황해난 어머니가 화봉을 달래였다.

《화봉아, 울지 말아. 왜 그래?》

어머니가 구슬리자 5살난 화봉은 더욱 울음소리를 높였다. 어머니는 그의 손에 숟가락을 쥐여주며 또다시 얼리였다.

《자, 이 범벅이 얼마나 맛있는지 아니? 우리 화봉이 용타.》

그러나 화봉은 숟가락을 집어던지며 더 앙앙 소리쳐울었다.

그는 할아버지의 밥상을 넘보며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너무도 화봉이가 소란하게 울어대자 식구들은 골들을 찌프리고 곱지 않은 눈길로 쏘아보았다.

《얘, 며늘애야. 아마 음식이 맞갖지 않아 그런가부다. 화봉아, 어서 이리 오너라.》

문형섭이 숟가락을 들다말고 손녀를 불렀다.

《아니, 그런게 아니예요.》

황급히 만류하는 어머니의 얼굴에는 진땀이 보송보송 내돋았다.

《화봉아, 자 엄마랑 같이 먹자. 응, 곱다.》

엉거주춤 일어서려 하던 화봉은 어머니가 주저앉히며 얼리자 마구 발버둥질쳤다. 그리고는 숨넘어가게 울어댔다. 순간 어머니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누가 어쩔 사이도 없이 딸애의 두팔을 모아쥔 영금은 냉큼 들어안아가지고 우물가로 휭하니 달려가는것이였다.

갑자기 얼떠름해졌던 예봉은 그만에야 자리를 차고일어섰다.

《엄마!…》

뒤따라 고모 문숙방이 허둥지둥 따라섰다. 입을 악문 어머니는 딸애를 우물가에 막 집어넣으려는 참이였다.

《오늘 너 죽고 나 죽자!》

울음을 딱 그친 화봉은 공포에 질린 눈을 흡뜨고 굳어졌는데 거꾸로 들린 그의 머리가 물에 금방 잠기려는찰나였다.

《형님, 왜 이래요?》

문숙방이 울음에 젖은 목소리로 웨치며 어머니의 팔을 잡아당기고 예봉은 발을 동동 구르며 팔에 매달렸다. 까무러친듯 울지도 못하는 어린 딸애를 고모의 팔에 팽개친채 어머니는 비칠비칠 걸어갔다. 눈에서는 눈물이 비오듯 흘러내리고있었다.

그날밤 어머니는 문형섭에게 친정이 있다는 장진골안으로 가서 품을 팔 결심을 이야기하였다. 한동안 곰방대를 물고 잠자코있던 문형섭은 땅이 꺼지게 한숨을 내쉬며 말하였다.

《시집살이라고 와서 한뉘 고생만 시키는게 한스러운데 이제 어떻게 또 네 어깨우에 그런 짐을 지우겠느냐.》

《아버님, 온 식구가 이대로 굶어죽을수야 없지 않아요. 장진은 그래도 인심이 후한 곳이니 몇해 품을 팔면 무슨 도리가 나지겠지요.》

이렇게 해서 어머니와 예봉이 떠난 고달픈 길이였다. 막상 헤여지자고보니 가슴에 걸리는것이 화봉이였다. 5살짜리 어린 딸애를 품에서 떼내 시어머니에게 맡길 때 오영금의 가슴에서는 피눈물이 흘렀다. 진정 네가 미워서 우물에까지 집어넣으려 했겠느냐! 애어린 너의 입건사 하나 해주지 못하는 이 어미가 한스러워 분풀이를 한것이니 이 에미를 용서해다오. 동구밖에까지 울려나오는 딸애의 울음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줄달음치면서 어머니는 속으로 이렇게 웨치였다.

그러나 이 길이 딸들과의 영리별이 되는 길이였음을 그가 어찌 상상인들 하였으랴!

각박한 세상은 한없이 어질고 순박하기만 한 이 녀인의 인생길에 걸음걸음 고통과 설음, 희생의 눈물만을 휘뿌려던졌던것이다.

 

*          *

 

길 떠난지 10여일이 지나서야 예봉이는 어머니와 함께 다리골에서 3리 남짓한 곳에 자리잡은 외가에 도착하였다. 시집간지 여러해만에 집에 온 딸과 외손녀인지라 온 집안식구들이 달려나와 반겨맞았다. 외가에도 외할머니, 외삼촌과 그 아주머니들로 하여 집식구들이 많았다. 외가집식구들이 어머니와 예봉에게 고맙게 굴어도 웬일인지 예봉에게는 모든것이 쓸쓸하기만 하였다.

외가집에 도착한 이튿날 그는 슬며시 밖에 나가 집을 둘러보았다. 돌각담으로 둘러싸인 밭가운데 자리잡은 외딴집이였다. 문득 할아버지가 있는 자기 집이 그리워났다. 비록 초가집이였지만 허청간도 있고 발방아와 우물도 있는 정든 집!

우물가에 서있는 복숭아나무에서 봄이면 분홍빛꽃들이 활짝 피여나고 지붕에는 하얀 박꽃들이 피여나 얼마나 아름다왔던가. 호박이 주렁주렁 매달린 수수울바자밑에는 빨간 봉선화와 채송화꽃들이 만발하여 이맘때면 봉선화물을 들이느라고 고모와 같이 꽃을 따군했지. 화봉이는 곁에서 방글방글 웃고… 예봉은 어린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서글픈 한숨을 내쉬였다. 저도모르게 유년시절을 빼앗긴 그의 가슴에 너무도 일찌기 찾아든 소녀의 고민이랄가.

웃음보다도 눈물을 더 많이 보아온 그의 정서는 어느덧 비애로 물들어있었다. 예봉은 별로 쓸쓸하게 느껴지는 돌각담을 한참 바라보다가 스적스적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가 토방으로 올라서려는데 집안에서 외할머니의 성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네 그 잘난 서방이라는 녀석은 서울에서 광대노릇 한다며?…》

《…》

《어이구, 령감도 정신이 쑥 나갔지. 축인지 풍월인지 잘한다고 너를 그 풍각쟁이한테 주더니 이 신세 만들었지 뭐냐. 어이구, 기차라.》

《돌아가신 아버님 욕하지 말아요. 그때에야 뭐 그이가 그렇게 될줄 알았나요.》

《그러게 네 아버지 사람볼줄 모른단 말이 아니냐. 제 처자 하나 건사 못하는 녀석이 무슨 큰일이나 칠것처럼 서울바람 나서 돌아친다니 기가 막힌 일 아니냐. 글쎄 네가 품을 팔러 이 산골에까지 굴러온것을 보니 에미가슴이 터져 그런다.》

예봉은 차마 방문을 열지 못하고 토방에 쪼그리고앉았다. 머리를 들어 파아란 하늘을 바라보느라니 어진 할아버지와 귀여운 동생의 얼굴이 우렷이 떠오르는것이였다. 가슴이 뭉클해지며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였다. 이때 방문이 벌컥 열리며 외할머니가 토방에 나섰다.

예봉은 얼른 일어서며 눈가의 눈물을 급히 닦았다. 그러는 예봉을 못마땅한 눈길로 바라보던 외할머니가 쯧쯧 혀를 차며 푸념을 늘어놓았다.

《넌 왜 청승맞게 눈물을 짜며 야단이냐? 응? 네 애비닮아 광대노릇 할라느냐. 궁바가지처럼… 그 애비에 그 딸이겠지. 호박 심은데서 대가 날가!》

예봉의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그 딸에게 다 쏟아붓지 못하는것이 한이라는듯 외할머니는 한참 떠들다가 부엌으로 들어가버렸다.

예봉은 비맞은 병아리처럼 온몸을 옹송그리고 토방구석에 그대로 서있었다. 아버지때문에 먹는 욕설이라 설음에 설음이 겹치여 목구멍으로 울음이 막 넘쳐날것만 같았다. 울먹거리는 그를 어느새 나온 어머니가 품에 꼭 껴안았다. 《엄마-》 더는 참지 못하고 그는 엄마품을 파고들며 눈물을 좔좔 쏟았다.

《울지 말아. 외할머니도 속상해서 그런다. 네가 미워서 욕한게 아니야.》

목메인 소리로 예봉을 달래는 어머니의 눈굽에도 눈물이 맺히여 축축히 젖어들었다.

《난 아버지가 제일 미워. 그런데 외할머니는 나보고 글쎄…》

예봉은 더욱 서럽게 울었다. 어린 마음에도 못난 아버지의 딸이라는 수치감과 그로 하여 당한 모욕감이 아프게 가슴을 자극하였던것이다. 어머니는 말없이 딸애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기만 하였다. 그 어떤 말로도 딸애의 가슴에 생긴 상처를 씻어줄수 없음을 그는 본능적으로 알고있었다. 아니 그를 위로하기보다 어머니는 벌써 9살짜리 딸애에게 은연중 마음을 의탁하게 되는 자신을 놀랍게 느끼고있었던것이다.

사람은 그 어떤 희망과 기대속에 살기마련이다. 한생을 의탁하려던 남편이라는 기둥이 점점 기울어져감을 느끼게 되였을 때 이 녀인이 붙잡은 삶의 바오래기줄이 과연 어린 딸이 아니였을가.

나는 생각하였다. 그때 어머니로서는 어린 예봉이가 삶의 희망과 기대의 전부였을것이며 더우기는 마음의 벗이기도 하였다고.

어린 예봉이가 없었더라면 고생과 설음의 바다만을 헤쳐가던 이 녀인에게는 도대체 생의 의의가 없어지게 된다. 아무리 숙명이라는 그물에 졸라매인 몸이라도 생의 의의를 찾지 못한다면 스스로 목숨을 포기하게 되는것이 인간의 본능일진대 이 녀인을 지탱케 한 지지점이 바로 어린 예봉이였을것이다.

어머니와 어린 딸은 25년이라는 시간적개념과 나이차이를 훨씬 뛰여넘어 가장 가까운 하나의 마음으로 합쳐지고있었다.

 

*        *

 

문예봉은 문득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장선생도 예술영화 <꽃파는 처녀>에서 눈먼 순희가 동구밖에 나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진종일 언니를 기다리며 서있는 장면이 생각나시겠지요?》

《예, 생각나구말구요. 참 처량한 모습이였어요. 순희가 불쌍하여 가슴이 막 아프더군요.》

영화의 장면이 눈앞에 선히 떠올랐다. 동구밖에 서있는 한그루의 나무, 그앞에 서서 동구길쪽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어린 소녀, 소녀의 머리우에 흰눈이 흩날리고 비가 내리며 세월은 흐른다. 그러나 하염없이 서있는 소녀…

《나는 그 장면을 볼적마다 내 어린시절이 생각나서 남몰래 울군  한답니다. 외가에 가서 어머니가 품을 팔던 그 시절 어머니를 기다리며 울군 하던 내 모습이 생각나서요. 그때 나에게 <눈물녀>라는 별명이 다 붙었댔답니다. 정말 울기도 많이 울었지요.》 문예봉의 눈시울이 어느덧 붉어졌다.

아마도 어린시절의 아픈 추억이 그의 가슴에 더께앉았던 옛 상처를 헤집어놓았으리라.

외가집이 자리잡은 마을에서는 울바자곁에 쪼그리고앉아 해종일 어머니를 기다리며 울군 하는 어린 예봉의 모습에 인제는 익숙해질 정도였다.

겨울이면 장진강의 얼음구멍에 어머니가 빠질가보아, 여름에는 어머니가 타고오던 매생이가 뒤집힐가보아 예봉은 마음을 조이며 목이 빠지도록 길쪽만 바라보군 하였다. 해질녘까지도 어머니의 모습이 길쪽에서 보이지 않으면 저절로 설음이 북받쳐 혼자 흐느껴울군 하였다.

산골마을에서의 어머니의 품팔이, 그것은 그야말로 고역에로 이어진 육체적몸부림이라 할수 있었다.

이집저집 다니며 일하였는데 한집에서 대체로 4~5일씩 묵군 하였다. 여름한철에는 삯빨래질과 삯바느질이 기본이였다.

어머니가 강변에 나가 빨래를 새하얗게 널 때면 예봉이도 풀을 한 빨래가 날아나지 않도록 지켜주었다. 밤새워 다듬이질을 할 때도 예봉은 옆에서 잔심부름을 하였다.

새벽닭이 울 때까지 팔목이 시큰하도록 다듬이질을 하고나면 어머니는 너무 지쳐 그자리에 쓰러지는데 어깨가 쑤셔나서 예봉이가 꼭꼭 주물러주지 않으면 쪽잠도 들지 못할 지경이였다. 시인들의 시구절에는 다듬이질소리가 애틋한 향수를 불러오는 그 어떤 감미로운 정서로 채색되군 하지만 실지 그 다듬이질하는 녀인들의 생활은 그와는 거리가 너무도 먼 고역임을 예봉은 일찌기 깨달을수 있었다. 가을에는 깊은 산골 부대기밭에 올라가 감자를 캐주고 마을까지 날라오는 삯일을 하였다.

그 품값으로 받은 감자로 겨울에는 농마나 엿을 달여가지고 산판 벌목장들을 찾아다니며 팔았다.

겨울의 긴긴밤은 길쌈으로 밝히는 고된 나날이기도 했다. 장진은 원래 척박하여 목화를 심지 못하고 대신 삼을 많이 심었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길가나 돌각담 조밭머리에 삼을 심었다가 그것을 쪄서 껍질을 벗긴 다음 실을 뽑는데 그것도 무릎에다 비벼서 한오리한오리 실을 비벼내는 그야말로 원시적인 방법으로 실을 뽑았다. 그렇게 뽑은 실로 베를 짜서는 옷을 해입기도 하고 장에 나가 팔아 다른 필수품들을 사오기도 하였는데 어머니는 겨우내 실을 뽑는 이 삯일을 하였다. 그래서 받은 삯전과 엿을 판 돈 그리고 농마가루를 매해 할아버지가 있는 시집으로 보내군 하였다.

집안을 살리기 위하여 억척스럽게 일하는 어머니를 보면서 예봉은 남몰래 눈물을 흘리군 하였다. 너무도 불쌍한 어머니였다. 이따금 잠에서 깨여나 보면 옆자리가 빌 때가 있었다. 깜짝 놀라 밖에 나가보면 울바자옆에 쪼그리고앉은 어머니가 소리를 죽여가며 울고있었다. 어떤 때는 시집에 남겨놓고온 어린 딸애의 이름을 나직이 부르며 얼굴을 감싸쥐고 흐느끼는 어머니의 모습을 볼 때마다 예봉은 얼른 뛰여들어와 이불을 푹 뒤집어쓰군 하였다. 그리고는 이불속에서 자기도 마음껏 울군 하였다.

한 부락에서 다른 부락으로 옮겨가는 때가 예봉은 제일 싫었다. 정이 좀 들가 하면 또 옮기는것도 서러운 일인데 주로 밤중에 무인지경 산골길로 걸어가야 하는 일이 더 싫고 무서웠다. 그러나 그는 어머니를 생각하여 그런 기색을 전혀 내지 않았다. 어머니의 손을 꼭 쥐고 밤길을 타박타박 걸어갈 때면 범이 나오지 않을가 하는 무섬증으로 온몸의 신경은 바늘끝처럼 도사려지군 하였다.

길섶에서 약간의 바스락소리만 나도 그는 어머니 치마폭을 꼭 감싸쥐군 하였다. 별의별 도깨비들이 막 쏟아져나올것 같은 환각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는 딸애의 손목을 잡고 묵묵히 걸음을 다우치는 어머니의 심중은 얼마나 아프고 쓰렸으랴.

아마도 그 대흥리 산골길의 굽이굽이마다에 찍혀진 어머니의 발자국에는 모성애의 뜨거움과 함께 모진 슬픔과 외로움, 고뇌와 허탈에 시달리던 그 녀인의 피눈물이 자욱자욱 고여있을것이다.

 

*        *

 

어머니의 고된 품팔이도 어느덧 2년을 넘기였다. 예봉이가 11살 되는 해 대흥리에도 사립보통학교가 설립되였다. 그리하여 예봉은 그렇게 가고싶던 학교에 입학하여 평생소원을 풀게 되였다.

학교에 다니다나니 예봉은 어머니의 품팔이에 따라다니지 못하고 외가집에 눌러있게 되였다.

외할머니는 여전히 문수일에 대한 미운 감정을 예봉에게 쏟으며 외손녀를 고와하지 않았다. 그러나 학교에 다닌다는 그 행복감은 예봉으로 하여금 모든것을 이겨낼수 있게 하였다. 코고무신을 처음 사신던 날에 느꼈던 행복감에 비할바없는 큰 행복이였다. 하지만 야속한 생활은 예봉에게서 이 자그마하고 초보적인 행복마저 앗아가고말았다. 행복은 예봉에게 어울리지 않는 말인듯싶었다.

12살 되던 어느 봄날이였다. 공부를 마치고 기쁜 마음으로 외가집에 들어서던 그는 어머니의 통곡소리에 그만 우뚝 서버리고말았다. 야단법석하는 외할머니의 목소리가 울려나오는데 무슨 영문인지 알수 없었다.

그는 살며시 방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를 보자 외할머니는 때를 만난듯 무섭게 쏘아보며 소리쳤다.

《인젠 네 에미를 여기 놔두고 어서 애비따라 가거라.》

어머니의 통곡소리는 그치지 않았다. 그러는 어머니를 찔 흘겨보던 할머니는 탕 하고 발을 굴렀다.

《그만 그치지 못하겠니? 청승맞게 울긴 왜 울어. 차라리 잘됐지. 제 처자 하나 건사 못하는 놈팽이한테 무슨 미련이 있어 우는거냐. 응? 못난년같으니.》

외할머니는 흰 종이장을 예봉에게 훌 던져주며 쓰겁게 말하였다. 《자, 봐라. 네 애비란 사람이 너희 어머니에게 리혼수속장을 보내왔다. 제 새끼들 살리겠다고 에미는 여기서 아득바득하는데 그놈은 이따위짓을 해? 너도 그 씨종자니 어서 애비따라 가거라. 네 어미는 보내지 못하겠다.》

성이 독같이 난 외할머니는 다시 어머니쪽에 대고 말하였다.

《네 나이 아직 일없다. 그따위 자식 싹 잊어버리고 팔자를 고치자.》

너무도 뜻밖에 들이닥친 타격이였다. 아버지가 리혼수속장을 보내왔으니 거기에 어머니가 도장을 찍어보내기만 하면 아버지와 어머니는 영영 갈라진다. 여직껏 아버지란 존재를 의식하지도 못했고 또 필요로 하지도 않았으나 어쨌든 아버지는 있었던것이다. 그런데 인제는?…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리고 동생은? 할아버지는?… 꼬리를 물고 따라서는 의문으로 하여 그는 지칠대로 지쳤다. 모든것이 슬프고 우울하기만 한 그는 그날부터 학교에도 안 가고 고민에 싸였다. 며칠동안 울던 어머니는 드디여 결심을 내린듯 어느날 리혼수속장에 도장을 찍어보내였다.

봉건도덕의 희생물이 되였던 이 녀인으로서는 일생일대의 대용단이라고도 할수 있는 행동이였다.

아마도 남편에 대한 봉건적인 순종과 어리석은 사랑에 스스로 속박되여온 이 녀인도 남편이란 사람이 자기를 무자비하게 차버린다는 물질적증거를 눈으로 실감하고서는 아마도 소스라쳐 악몽에서 깨여난것이였다.

지지리 봉건적인 박해와 배반, 치욕으로 생을 이어오던 가련한 녀인! 그가 드디여 문수일의 리혼장에 두말없이 동의하는 도장을 찍어보냄으로써 짓밟혀졌던 자기의 존엄을 뒤늦게나마 되찾았다고 볼수 있지 않을가.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하는 법이다.

이 극적사건이 있은지 둬달후 어느날 외가집에 낯선 남자 한명이 찾아왔다. 그 사람은 외할머니와 어머니와 함께 아래방에서 오전한겻 무슨 이야기들을 오래동안 나누었다.

점심식사를 간단히 치른 후 그 남자손님이 예봉이가 있는 방으로 올라왔다.

한동안 예봉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 낯선 손님이 학습장 몇권과 연필 등을 꺼내놓으며 서글서글하게 말하였다.

《예봉이라지? 이제부터는 우리 집에 가서 공부하며 살자.》

예봉은 초면의 사람이 서름서름하여 아무 대꾸도 못하고 어른들의 눈치만을 살피였다. 무슨 영문인지 알수가 없었다.

그 손님이 돌아간 후 그는 외삼촌네와 동네사람들의 쉬쉬 하는 말을 듣고야 어머니가 재가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였다.

청천벽력같은 소식이였다.

어머니가 다른 집으로 시집가다니?… 어머니를 빼앗긴다는 생각에 예봉은 하늘이 다 무너지는듯 하였다.

할아버지를 그처럼 극진히 공대하고 화봉이가 보고싶어 밤마다 우시던 어머니가 어떻게 집안식구들을 다 버리고 다른 남자한테로 시집갈수 있단 말인가? 거짓말이다. 거짓말이야. 너무도 믿기 어려운 사실을 두고 며칠간 고민에 싸여 얼굴이 다 초췌해진 그는 어느날 밤 용기를 내여 소심하게 물었다.

《엄마, 다른 집에 간다는게 사실이야?》

《?…》

자리에 누워서도 이리뒤척, 저리뒤척하며 잠못 들던 어머니는 놀란 눈으로 딸을 멀거니 쳐다보았다.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그로서도 갈피를 잡을수 없었다.

《거짓말이지?》

예봉은 어머니곁에 바싹 기여들며 소곤대였다.

거짓말이기를 바라는 딸애의 결곡한 마음을 가슴저리게 느끼며 어머니는 떨리는 손으로 그를 꼭 그러안았다. 눈물이 핑그르르 돌았다. 그는 예봉을 쓰다듬으며 목메인 소리로 말하였다.

《예봉아, 요전에 왔던 아저씨 생각나지?》

예봉은 소스라치는 생각에 벌떡 일어나앉았다.

《그럼 엄마는 진짜?…》

말끝을 맺지 못하는 예봉의 목소리는 어느덧 울음으로 변해버렸다.

어머니가 다른 집에 시집간다는것이 진짜로구나. 어쩌면 어머니가 이럴수 있을가? ·…

예봉은 그만 이불에 어푸러지며 왕 하고 울음을 터쳤다.

아직도 어린 예봉이가 그때의 어머니의 복잡하고도 아픈 심리를 어떻게 다 리해할수 있었으랴. …

세상살이는 책으로가 아니라 세월과 체험으로 체득되는 값비싼것이다.

딸이 울음을 터치자 어머니는 그를 달래였다.

《예봉아, 그 아저씨집에 가면 편히 공부도 할수 있단다. 그 아저씨와 우리 셋이서 살면 좋지 않느냐?》

그러나 예봉은 세차게 몸을 흔들며 서럽게 말하였다.

《그럼 화봉이와 할아버지는 어떡하나?》

어머니는 말문이 딱 막혔다. 예봉이 하나만 데리고 그 남자의 집으로 들어가기로 약속되여있었던것이다.

울고있는 딸애를 암담한 눈으로 쳐다만보던 어머니가 그만에야 버럭 역증을 내였다.

《12살이나 먹은 년이 이렇게도 에미가슴을 박박 긁어야 옳겠니. 응?》

예봉은 어머니의 푸들푸들 떠는 얼굴을 두렵게 바라보았다. 그러는 예봉의 모습이 더욱 어머니의 마음을 뒤집어놓았다. 차라리 빡빡 맞서기라도 했으면…

그는 움쭉 일어서며 방문을 박차고 나갔다. 겁이 더럭 난 예봉도 벌떡 일어나 따라나갔다.

마당한구석에 무져놓은 장작더미우에서 바줄을 찾아쥔 어머니는 뒤따라나오는 딸을 야멸차게 쏘아보며 말했다.

《내가 죽어야 씨원하겠지.》

그는 밖으로 뛰쳐나가려고 대문의 빗장을 뽑아던지였다.

《엄마 나 안울게. 이러지 마.》

예봉은 어머니의 팔에 매달리며 빌었다. 나간다거니 못 나간다거니하는 모녀간의 눈물겨운 몸부림이였다.

외할머니가 나와 말려서야 어머니는 겨우 진정되였다.

그이튿날 예봉은 할아버지에게 편지를 썼다.

어머니를 따라 그 낯선 남자의 집으로 간다는것은 생각조차 못할 일이였다. 생각만 해도 수치심으로 가슴이 얼어들었다.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어질고 착한 할아버지의 손녀인 내가 남의 집에 가서 공부하다니!

부끄러운 일이였다.

《애기야, 애기야.》하며 안아주고 업어주고 제사집이나 나들이 갈 때도 꼭 손목잡고 다니던 할아버지! 그 할아버지를 내가 어떻게 배반한단 말인가.

아무리 공부가 평생소원이라고 해도 그것만은 못할짓이다. 더구나 동생 화봉이는 어떻게 한단 말인가. 안 떨어지겠다고 울며 발버둥질하던 그 애어린 동생을 생각하며 예봉은 눈물을 머금었다.

아무리 어머니와 아버지가 갈라져 집이 깨여졌다고 해도 내 집은 할아버지가 있는 그 집이다!

예봉은 편지에서 하루빨리 자기를 여기서 데려가달라고 할아버지에게 신신당부하였다.

 

*        *

 

높기도 한 황초령이다. 무더위가 한창인 8월의 그 굽이굽이 산골길로 예봉이가 말없이 걸어가고있었다. 몇년전에 어머니의 손을 잡고 타박타박 걸어 들어왔던 그 길을 따라 함흥으로 돌아가는 길이였다. 슬픔과 울분으로 꽉 차있어 예봉의 마음은 무겁기만 하였다.

편지한지 한달만에 그를 데리러 온 큰삼촌과 예봉이 앞서고 어머니와 외할머니가 보퉁이를 이고 뒤따랐다.

어머니와 영영 헤여지게 되는 리별의 길이였다.

어머니는 내내 눈물이 글썽하여 예봉에게 다시 생각해보라고 사정하였지만 예봉은 요지부동이였다.

한번 굳어진 그의 마음은 풀릴줄을 몰랐다. 그 마음과 함께 얼굴도 굳어진듯 희디흰 얼굴에는 차거운 랭기가 돌았다.

60리나 되는 황초령고개에 올라 그들은 한참 쉬였다.

여기서 그들은 작별해야 하는것이다.

인제 어머니와 외할머니는 굽이굽이 고개를 내려 다시 장진으로 돌아가야 하고 예봉과 삼촌은 함흥으로 가야 한다.

자연은 마음껏 여름의 한철을 즐기고있는듯 모든것이 푸르싱싱하다.

그러나 고개에 오른 네사람의 마음은 서리맞은 가을잎처럼 후줄근하고 쓸쓸하기만 하였다.

《자, 인젠 떠나보자구요.》

삼촌이 떼기 힘든 말을 하며 먼저 움쭉 일어섰다.

평시에는 예봉을 그닥 고와 안하던 외할머니도 정작 리별의 마당에서는 눈물이 헤펐다. 그는 예봉의 머리를 자꾸 쓸어주며 눈굽을 훔치였다.

《예봉아, 이 외할미를 욕많이 해라. 네가 미워서가 아니라 네 애비가 미워서 그랬다.》

외할머니는 치마자락을 들추더니 꼬깃꼬깃 만 지전 몇장을 예봉의 손에 쥐여주었다.

예봉은 고개를 수굿하고 아무 말도 못하였다.

어머니는 이고온 보통이를 예봉의 앞에 내려놓았다. 너무도 울어 눈굽이 벌겋게 짓물려있었다.

그러나 눈물은 마를새없이 또다시 그의 얼굴로 줄줄이 흘러내렸다.

《예봉아, 이제라도 마음을 돌리지 않으려니?》

간절한 기대를 담아 어머니는 마지막으로 다시금 딸에게 하소하였다.

《너까지 가버리면 난 누구를 믿고 살라느냐? 응?! 이 어미생각도 좀 하려무나.》

애원에 찬 어머니의 목소리는 울음 절반이였다. 그는 쌀쌀해진 딸이 너무도 야속스러웠다.

자기와 마음이 그토록 한덩어리로 되여있던 딸, 어린 그에게 자기도 모르게 마음을 의지하였던 그 딸이 이토록 매정스레 모녀간의 정을 끊을줄이야 어이 알았으랴.

남편이 버리고 딸마저 버린 이 몸, 인제 새 사람을 만난들 행복할가?

서러운 생각에 저절로 흐느낌이 터져나왔다.

예봉이는 다소곳이 어머니에게 절을 하였다.

그리고는 돌따서서 삼촌의 뒤를 부지런히 따랐다.

등뒤에서는 어머니의 통곡소리가 가슴을 헤집어놓았으나 그는 입술을 옥문채 뒤한번 돌아보지 않았다.

그의 가슴에는 자기도 모르는 그 어떤 분노가 서리서리 엉켜돌고 있었던것이다.

그것이 무엇인지 자기자신도 미처 가늠할수 없었다. 어쨌든 하나밖에 없는 어머니마저 빼앗겼다는 아니 어머니마저 자기를 버렸다는 설음이 울분으로 변하여 그의 가슴을 꽉 채우고있었던것이다.

파리한 그의 얼굴에는 눈물 한점 없었다.

쩍하면 울기부터 하여 《눈물녀》라 불리우던 그에게서 인제는 눈물도 말라버린듯 두눈에는 매몰찬 그 무엇만이 내풍기고있었다.

어린애답지 않은 조카의 그런 모습을 보는 삼촌은 속으로 딱해하며 혀를 찼다. 어머니를 리해하자면 아직은 그의 나이가 너무 어린것이다.

한동안 령을 내렸을 때였다.

삼촌이 그를 멈춰세웠다.

《예봉아, 인제 가면 영리별일수 있는데 어머니를 마지막으로 보아야지.》

그러면서 그는 뒤쪽을 가리키였다.

예봉이 뒤를 돌아보니 아득한 령우에 굳어져있는 어머니의 흰 치마저고리모습이 한점으로 안겨왔다. 어머니는 그때까지도 돌아가지 못하고 딸이 멀리로 사라질 때까지 령우에 서있었던것이다. 자그마한 점으로 아스라하게 보이는 처량한 어머니의 그 모습! 예봉의 가슴이 불시에 찡 하고 저려올랐다. 가슴이 뭉클하여 막혔던 물목이 터진듯 울음이 그칠새없이 터져나왔다.

《엄마야-》

그는 목메여 부르짖으며 그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삼촌도 그를 말리지 않았다. 가슴속설음을 다 쏟아놓고 가라는 심산인듯 먼저 스적스적 령길을 내려갔다. 어푸러진채 예봉은 마음껏 눈물을 쏟았다. 차디차게 랭각된듯싶던 가슴속에서 지열처럼 소리없이 끓던 설음과 울분이 단번에 터져나오듯 걷잡을수 없이 쏟아지는 눈물이였다.

황초령에 뿌린 눈물의 소나기로 그는 가슴속에서 어머니의 모습을 깨끗이 지워버리고있었다.

가혹한 세월은 모녀간의 정을 이렇게 무자비하게 끊어놓았던것이다.

 

*        *

 

《정말 가슴아픈 이야기이군요. 그래서 문선생은 해방전 어느 잡지에선가 12살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했군요.》

동정어린 나의 말에 문예봉은 머리를 끄덕이였다.

《그래요. 당시 나의 가슴속에서 어머니는 죽은거나 같았지요. 지금 생각해보면 참 단순했어요. 철이 없었지요. 후에 나도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면서부터 그때 어머니의 심정이 깊이 리해되더군요. 내가 얼마나 어머니의 아픈 가슴을 더 아프게 박박 긁었겠는가를 생각하면 나자신이 나를 용서할수 없을 정도예요.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막…》

문예봉의 눈시울이 다시금 붉어졌다. 오래전에 아물었던 상처의 통증이 되살아난것이였다.

나는 그가 진정되기를 기다렸다.

로년에 이른 녀인의 눈물은 값비싼것이다. 얼마나 많은 심중의 말이 그 눈물 한방울한방울마다에 진하게 배여있는것인가.

이윽고 조용히 눈굽을 찍은 문예봉이 말을 이었다.

《해방전 보도계에서 기자회견을 할 때마다 부모들에 대한 질문이 꼭꼭 있었답니다.

그래서 나는 어머님에 대한 소중한 추억을 기자들앞에서 더럽히고싶지 않아 적당히 둘러대군 하였지요. 그러나 어머니가 사망하였다고 말할 때는 정말 속으로 피눈물을 삼키군 하였어요. 내 손으로 어머니를 매장하는것만 같앴으니까요.》

또다시 목메여하는 그를 바라보며 나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당시 잡지나 신문들에 실린 사진의 미소어린 그의 표정뒤에 얼마나 많은 슬픔과 고뇌의 심연이 숨겨져있었을가.

식민지조선의 예술인들의 운명이 모두 그러하듯이 문예봉에게도 슬픔과 눈물이 그 어떤 숙명이 아니였을가.

어머니마저 잃은 그의 운명은 어떤 인생의 바다로 흘러갈것인지. 나는 그가 결코 행복이라는 꽃수레와는 도무지 어울릴수 없는 운명임을 직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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