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제1편 눈물의 백합꽃

어머니의 눈물

 

해방전 잡지 《삼천리》의 한 지면에는 문예봉과 기자와의 회견기가 실려 독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무성영화 《임자없는 나루배》에 첫 출연하여 큰 인상을 남겼고 련이어 《춘향전》, 《춘풍》, 《아리랑고개》, 《장화홍련전》에서 주역을 훌륭히 성공시킨것으로 하여 문예봉은 일약 당대의 인기배우로 떠올랐다.

이런 인기녀배우와의 회견기인지라 사람들은 저저마다 호기심어린 눈길로 잡지의 글줄들을 더듬었다. 그 회견기에는 이러한 대목이 있었다.

기자: 가장 기쁠 때는 언제였어요?

문예봉: 기쁠 때라고는 없어요.

기자: 미인이라는 말을 들을 때에도 기쁘지 않아요?

문예봉: 그런 말을 들은적은 없었어요.

기자: 그럴리가 있나요.

기자: 가장 슬플 때는 언제였어요?

문예봉: 아마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가 그중 슬펐어요. 내가 바로 12살적에 세상을 떠났어요.

12살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고 문예봉은 천연스럽게 기자에게 대답하였다. 온갖 여론과 요언을 퍼뜨리는 보도계에 생활의 진실을 서뿔리 내비치는것처럼 어리석은짓이 또 어데 있으랴.

문예봉도 인제는 보도계와는 어떤 숨박곡질을 하여야 한다는것쯤은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러나 가슴은 한없이 쓰리고 아팠다.

장진골안에서 고생스레 살아가시는 어머니의 불쌍한 모습이 눈앞에 삼삼히 어려와 저도모르게 목이 메는것이였다.

기자앞이여서 태연한 표정을 짓고있었으나 가슴속에서는 슬픔의 눈물이 차올랐다. 세상에 대고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말했으니 이것이야말로 내가 진짜로 어머니를 매장하는짓이 아닐가.

그 어질고 부지런한 어머니, 봉건의 희생물이 되여 고생만 하시던 불쌍한 어머니! 아, 나는 왜 그리도 모질게 어머니와 절교하였던가.

후회란 항상 때늦은것이였다.…

흘러간 어린시절에 대한 문예봉의 추억은 항상 어머니의 눈물에서부터 시작되군 한다.

어머니의 이름은 오영금, 키가 훤칠하고 인물이 두드러지게 잘난 녀인이였다.

특히 새까맣고 윤기도는 치렁치렁한 머리태를 둘둘 감아 빗어올린 모습은 어린 예봉에게도 어머니가 참 멋있구나 하는 자랑스러움을 안겨주었다. 어머니에 비하면 예봉은 아직 풋병아리같았다.

노랑저고리에 빨간 치마를 입은 그는 숱이 적은 노랑머리채를 돼지꼬랑지처럼 매고서는 할아버지가 삼아준 모개신을 탈싹거리며 눈만 뜨면 배나무와 포도나무가 엉클어진 뒤뜰안으로 달려가군 하였다.

(언제면 열매가 떨어질가?)

고개를 잔뜩 제끼고 자기 키보다도 훨씬 높다란 나무들을 쳐다보며 그는 이런 공상에 곧잘 잠기군 하였다.

새큼달달한 포도와 시원한 배를 따서 어머니와 할머니, 할아버지와 삼촌들, 고모와 나누어먹으면 얼마나 좋을가. 아마 할아버지는 제일 크고 맛있는 배를 골라서 나에게 줄거야. 할아버지는 나를 제일 고와하니까.

저도모르게 어린 예봉은 방긋이 웃었다.

고모와 삼촌들, 사촌들까지 10여명이 넘는 식솔들중에서도 할아버지가 《애기야, 애기야.》하며 특별히 자기만을 귀애한다는 생각에 어깨가 으쓱해졌던것이다.

삼촌들의 말을 들으면 할아버지의 생일날에 태여난 첫 손녀이기때문이라나. [주체6(1917)년 1월 3일 출생]

여하튼 그때까지 예봉에게 있어서 아버지에 대한 표상은 전혀 없었다.

아니, 아버지가 꼭 있어야 한다는 생활상필요를 전혀 느끼지 못했다고 해야 옳을것이다.

집을 뛰쳐나간 아버지와 소박당한 어머니와의 사이에서 할아버지는 량팔로 어린 예봉의 보금자리를 마련하였던것이다.

예봉이가 아버지를 처음 본것은 6살되는 해였다. 할아버지옆에서 솔곳이 잠이 들었던 그는 잠결에 무슨 소리가 난듯 하여 눈을 펀뜻 떴다.

대통을 문 할아버지와 바느질감을 든 할머니앞에 웬 젊은 사람이 무릎을 꿇고 앉아있었다.

《그래 정신이 있느냐. 서울에서 딴살림을 하는것만도 기가 찬 노릇인데 집에까지 뻐젓이 첩을 데리고 와?》

할아버지의 노한 음성이였다.

《당장 서울로 돌아가거라. 난 너의 신식바람에 신물이 났다. 게다가 풍각쟁이광대놀음이 뭐냐. 어이구, 집안망신이지. 어서 썩 나가지 못해!》

할아버지는 대통을 탕탕 털며 돌아앉아버렸다.

《원, 착실한 며느리를 두고 쯧쯧, 정신이 나갔지.》

할머니도 기가 찬듯 혀를 찼다.

예봉은 그제야 그 사람이 자기의 아버지 문수일임을 어렴풋이 눈치채였다. 아버지가 서울에 가서 산다는 말을 들어왔던것이다.

그는 살며시 눈을 뜨고 아버지의 얼굴을 훔쳐보았다.

고개를 숙이고있어 잘 보이지는 않았으나 제낀 신식양복(세비로)이랑 입은것이 퍽 젊은 멋쟁이신사였다.

(우리 아버지가 저런 신사인가?)

놀라움과 의혹이 뒤섞인 감정으로 예봉은 오래도록 잠들지 못하였다.

아버지란 사람은 너무도 낯설었고 너무도 두려운 존재였다.

문수일이라 하면 1920~1930년대 우리 나라 연예계에서 일정하게 활약한 인물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머리가 명석하고 글씨도 잘 썼다. 그가 9살되던 해 제사집에 가서 《유세차감소고…》하는 축을 잘 읽어 그에 감탄한 문예봉의 외할아버지가 14살되는 자기 딸을 문수일에게 시집보냈던것이다.

그러나 원래 풍류객기질이던 문수일은 점차 자라면서 1920년대 우리 나라에서 돌개바람처럼 일어난 신극운동에 휘말려들었다.

라운규와도 교제가 깊었던 그는 당시 연극계에 뛰여들어 극단조직자로, 배우로, 무대감독으로 활약하였다. 이러한 그에게 자기보다 나이가 우인 처와의 부부생활은 생각만 해도 창피하고 진절머리나는 봉건적인 질곡이였다. 신식바람이 불던 시대의 공기를 따라 그는 《신녀성》이라는 리영자와 서울에서 딴살림을 폈다.

고정하고 완고하였던 예봉의 할아버지 문형섭은 문수일의 이런 행동을 난봉객의 방탕으로밖에 보지 않았다.

그는 자수성가한 사람으로서 장진(당시)에서 살 때는 사금을 채취한 돈으로 땅을 사서 당시에는 그래도 밥술을 떨구지 않았다.

그러나 일제의 악착한 《토지조사령》때문에 땅을 빼앗기고 이곳 주북이라는 곳으로 쫓겨오다싶이하였다.

당장 입에 풀칠할 돈 한푼 없는 가난한 살림에 많은 식구들이 오골오골 모여있다보니 그 정상이 말이 아니였다. 그리하여 비교적 개명하였다는 문수일이 먼저 집을 뛰쳐나갔던것이다.

가난한 극계에 몸을 담그다나니 문수일은 이런저런 명목으로 집에 손을 내밀기 일쑤였다.

언젠가는 이런 희비극도 있었다.

뜻밖에도 서울에서 문수일이 죽었다는 전보가 날아왔다. 너무도 청천벽력같은 소식에 얼이 빠졌던 문형섭은 허둥지둥 돈을 마련하여가지고 서울로 올라갔다. 아무리 속태우던 난봉객이였지만 어쨌든 아들이니 장례라도 푼푼히 치르어주자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서울역에 내리니 죽었다던 문수일이 히죽이 웃으며 다가오는것이 아닌가.

《?!…》

너무도 놀라 어리멍청해진 아버지에게 문수일은 천연스레 말하였다.

《아버지, 장례비는 가져오셨겠지요?》

그제야 정신을 차린 문형섭은 대뜸 호령하였다.

《이게 무슨짓이냐?》

《그렇게 됐어요. 돈이 정 급해서… 용서해주십시오.》

문형섭은 너무도 억이 막혀 말이 나가지 않았다.

격분으로 온몸이 후들후들 떨리였다.

그러나 문수일은 태연한 얼굴로 들어붙었다.

《아버지, 오죽했으면 이런 연극을 다 했겠어요. 마지막으로 한번만 살려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전 진짜 자살이라도 해야 할 형편이예요.》

아들의 뻔뻔스러운 말에 울컥 울기가 치솟아오른 그는 발을 구르며 소리쳤다.

《에끼, 이 불효막심한 자식, 보기도 싫다.》

그는 역스럽고 메스꺼워 가래를 진하게 톺아 뱉았다.

한때는 총명하고 잘 생긴 아들이 자랑스러운적도 있었으나 이 순간에는 모든것이 구역질났다.

류행을 쫓아 찰찰 기름을 바른 긴 머리카락을 불같은 눈으로 쏘아보던 문형섭은 차마 아들의 따귀를 갈기지는 못하고 품안에서 돈뭉치를 꺼내 뿌려던졌다.

《다시는 집에 발길질을 말아. 인제부터 넌 내 자식이 아니다!》

그때부터 문형섭은 아들을 애써 잊으려 했고 문수일 또한 한동안 집에 발길질을 하지 않았다.

물론 그때 문수일은 극단의 일로 그런 희비극을 연출했지만 역시 그의 인간됨과 기질이 표현된 세부라고도 할수 있었다.

타락적이고 어지럽던 당시의 사회풍조가 아마 문수일을 이런 인간으로 만들었을것이나 그의 이런 인간됨은 후에 문예봉의 운명에 무거운 음영을 던지였던것이다.

이 극단에서 저 극단으로 류랑하며 서울에서 무대생활을 하던 문수일이 무슨 일로인지 한밤중에 첩을 데리고 오래동안 발길을 끊었던 집에 들이닥치였다.

밤중에 어린 예봉이가 잠에서 깨여났던 바로 그날밤이였다.

그이튿날부터 예봉의 집에서는 이상한 생활이 흘렀다.

아침일찌기 일어나 뒤뜰로 달려가려던 예봉은 건넌방마루밑에 놓인 두컬레의 신발을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그가 여직껏 보지 못하던 까만 남자구두와 흰 녀자구두가 가지런히 놓여있는것이 아닌가. 후에야 깃또구두라는것을 알았지만 그때에는 그저 너무도 현란하여 한동안 멍하니 바라보고만있었다.

이때 방문이 배시시 열리더니 한 녀인이 마루우에 나서서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켰다. 해반주그레한 얼굴에 눈초리가 좀 매서운 젊은 녀자였다. 그는 마당에 서있는 어린 예봉을 한번 힐끗 쳐다보고는 아무말없이 방문을 탁 닫으며 들어가버리였다.

(어제 할아버지가 말하던 그 첩이라는 녀자구나!)

예봉은 본능적으로 그 녀자에게 반감을 느끼였다. 그는 그 녀자가 사라진 방문을 쏘아보았다.

《예봉아, 넌 뭘하고있느냐?》

가시물을 버리러 나온 어머니가 그를 띠여보고 물었다.

그는 어머니에게로 달려갔다.

불이 잘 들지 않아 부엌에서는 연기가 꾸역꾸역 밀려나오는데 어머니의 머리카락에는 허연 재티가 수북이 내려앉아있었다.

연기에 짓물려서인지 아니면 울었는지 두눈은 시뻘겋게 부어있었다.

《엄마! 울었나?》

철없이 예봉은 물었다.

《얘가, 울긴 왜 울어? 연기가 나서 그렇지.》

어머니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래두…》

어린 마음에도 어머니가 불쌍해보였다. 말쑥하게 차려입고 하품을 하던 요염한 녀인과 허줄한 무명옷을 입고 연기속에서 밥을 짓고있는 어머니를 대조해보니 가슴이 뭉클해났다.

예봉은 어머니의 치마폭에 꼭 매달리며 소곤소곤 말하였다.

《엄마, 저 녀자에게는 밥을 주지 말라. 배고프면 갈게 아니야.》

 철없는 딸의 말에 어머니는 어이없는 웃음을 지었다.

《그러면 못쓴다. 너의 작은어머니인데…》

《피- 작은어머니는 무슨 작은어머니, 첩이래.》

《얘, 너 그게 무슨 말이냐.》

어머니는 황급히 딸의 입을 막으며 방쪽을 돌아보았다.

그래도 예봉은 종알거렸다.

《첩이란 나쁜 사람이야. 그러니까 할아버지가 욕했지. 어제밤 난 다 들었어.》

그는 큰 비밀이나 대주듯 어머니귀에 대고 속삭이였다.

《엄마, 인제 아버지가 그 첩이라는 녀자를 데리고 갈거야. 할아버지가 어제밤 당장 나가라고 소리쳤거던.》

어머니를 위안하려는 어린 딸애의 마음이 눈물겹도록 영금의 심정을 울리였다. 남편이 서울에서 딴살림을 폈다는 말은 들었어도 시부모공대를 극진히 하면서 두 딸을 키우느라면 다시 돌아올 날이 있겠지 하는 한가닥의 희망을 걸고 고추당추 맵다하니 시집살이보다 더 매우랴 하는 이 생활을 쓰다달다없이 해온 그였다.

그런데 어제밤 남편이 새색시를 데리고 덜컥 집에 들어설줄이야.…

그야말로 그에게는 된매보다 더한 타격이였다. 어서 물러서라는 말없는 통고장이 아닐가.

마음같아서는 당장 집을 뛰쳐나가고싶었으나 두 딸이 발목을 잡았고 마음어진 시아버님이 목에 걸렸다. 또 친정으로 간다 해도 무작정 시집으로 다시 쫓을것이다. 한번 넘은 시집문턱은 살아서는 넘지 못한다는 아버지의 봉건도덕과 륜리가 그를 용납하지 않을것이였다.

기나긴 밤을 뜬눈으로 새운 오영금은 새벽이 되자 치마끈을 더욱 단단히 조여매고 부엌으로 나섰다. 14살에 시집을 와서 수두룩한 어린 삼촌들을 다 등에 업어키워 살림을 냈고 두 딸을 낳아키우며 시부모를 모시고있는 당당한 이 집의 며느리인데 내가 왜 밀리운단 말인가.

사실 14살에 9살난 문수일에게 시집을 와서 그가 겪은것은 고생뿐이였다.

할머니가 젊어서부터 계속 아이를 낳다나니 일손이 모자라 일을 시킬 목적으로 며느리를 맞았다니 더 말해 무엇하랴.

시집온 첫날부터 그는 어린 남편의 오줌시중에다가 오롱조롱한 삼촌들까지 등에 업어 키우면서 두 아이를 낳아 길러야 했다.

그가 얼마나 심한 고역에 시달렸는가를 보여주는 하나의 일화가 있다.

둘째딸을 낳은 직후에도 그는 산후몸조리도 못한채 애기를 업고 방아를 찧었다. 그러다나니 대출혈을 일으켜 그만 기절하여 쓰러졌다.

너무도 급한 나머지 할머니가 인두로 출혈부위를 지지는 원시적인 방법을 써서 겨우 지혈을 시켜 목숨을 구해냈던것이다.

이 하나의 사실로써도 예봉의 어머니가 얼마나 고생스럽게 시집살이를 하여왔는가를 잘 알수 있다.

그러나 봉건도덕에 물젖은 영금은 자기 운명에 항거할줄 몰랐고 고스란히 그 희생물이 되는 길을 택했던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매일 세끼 묵묵히 밥을 지어 겸상까지 해서 남편과 영자에게 받쳐올렸다.

문수일과 리영자는 오영금이 해준 밥을 먹고는 산에 올라가 산보하는것으로 하루해를 보냈다. 영자의 빨래며 온갖 뒤치닥거리를 다 예봉의 어머니가 하였다.

그러는 아버지와 서모가 미워 예봉은 죽을 지경이였다. 더우기 희디흰 아사저고리에 세루치마를 산뜻하게 입은 서모가 깃또구두를 달깍거리며 경멸의 빛을 띠우고 어머니에게 무엇을 시킬 때면 격분으로 하여 그는 눈물이 다 글썽해지군 하였다. 아버지는 미우면서도 두려운 공포의 대상이였다. 그의 얼굴을 보는것조차 끔찍하였다. 문수일도 자기에게 예봉이나 화봉이라는 딸이 있는지 없는지 전혀 관심조차 없었다.

어쩌다 예봉이와 마주치면 눈살을 찌프리고 흘겨보았고 2살짜리 화봉이가 울면 시끄럽다고 어머니에게 화를 내였다. 그런데도 할아버지는 그들을 쫓아내지 못하고있었다.

이 역시 어린 그에게는 수수께끼였고 할아버지의 처사가 못마땅하였다. 사실 천성이 어진 문형섭은 문수일을 쫓아낼만큼 손탁이 세지 못하였다.

어질고 부드러운 할아버지의 품에서 어리광을 부리며 천진스럽게 자라던 예봉은 삽시에 찬서리를 맞은듯 후줄근해졌다.

너무도 리해할수 없는 복잡한 가정생활이였다. 그는 어느덧 말없이 속으로 생각하는 눈치꾸러기로 변해버렸고 가슴은 의혹과 증오에 시달려 차디찬 얼음장으로 변한듯 했다.

문예봉에 대하여 내가 들은 말은 성격이 매우 내성적이며 차다는 평판이였다.

일생 그 누구에게도 선뜻 정을 붙이지 못하고 차게만 느껴지는 내성적인 성격은 아마 이런 그의 가정환경에 바탕을 두고있었을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문수일이 서모를 데리고 집에 온지 이럭저럭 1년이 지났다.

처음에는 별스럽던 그들의 존재도 어느덧 10여명이나 되는 이집식구들속에 용해되여 영자를 죽어라고 미워하던 할머니조차 작은 며느리쯤으로 인정하는듯 했다.

흰눈이 펄펄 날리는 음력 정월 어느날 할머니는 처음으로 시어머니로서 영자에게 일을 시켰다.

추운 겨울에 할아버지가 신을 솜버선을 기우라고 천과 솜을 내놓았다. 영자는 두말없이 공손히 할머니의 분부대로 일감을 집어들었다.

그러나 천생 버선이라는것을 기워보지 못한 그였다. 그는 하루해가 가도록 천과 솜을 주물렀으나 버선을 만들수가 없었다.

저녁에 할머니의 방에서 노성이 터졌다.

어린 예봉은 살그머니 문틈으로 할머니의 방을 엿보았다.

몸을 움츠린 영자가 쫓기듯 구석에 웅크리고앉았는데 할머니가 량에 천쪼박을 들고 흔들어대고있었다.

《야, 이것을 버선이라고 해놓았느냐?》

어떤 때는 할아버지도 꼼짝 못하는 할머니이다.

할머니는 천쪼박들을 영자에게 뿌려던지며 통탄했다.

《솜은 솜대로, 안은 안대로 기운 버선이 세상에 어디 있어. 아이구, 기가 막혀라. 저런게 다 녀자라구.》

야단을 치던 할머니는 방문을 홱 열어제끼며 문수일의 방에 대고 소리쳤다.

《아애비야, 이리 오너라.》

기가 죽은 문수일이 까투리 기듯 하며 할머니앞에 나타났다. 이미 제방에서 다 들었던것이다.

《더 긴말할게 없다. 당장 저년을 내보내라. 우리 집에는 저런 며느리가 필요없어. 어디서 광대질이나 해먹던 년을 차가지고 와서… 어서!》

그러고도 성이 풀리지 않은 할머니는 우르르 건넌방으로 건너가더니 영자의 보따리와 트렁크를 마당으로 마구 쥐여던졌다.

영자는 입을 옥물고 눈물만 쥐여짰다.

문수일이 할수없이 영자의 짐을 주섬주섬 집어드는데 할머니가 재차 불호령을 내렸다.

《아애비는 어디에도 못 간다. 인제부터 집에 남아서 처자권속을 착실히 거느려라.》

문수일은 몸이 굳어진채 어찌할바를 몰라했다.

어린 예봉은 너무도 시원하여 춤을 추고싶은 심정이였다. 드살이 세서 할아버지보다는 덜 좋아하던 할머니였으나 그 순간에는 어떻게나 돋보이는지 그는 할머니품에 와락 안겨 마음껏 어리광을 부리고싶었다.

사실 버선 하나 못 깁는것이 집에서 내쫓을 리유로는 되지 않는다. 아마도 영자에 대한 할머니의 불만이 쌓이고쌓였다가 그대로 폭발하였거나 아니면 언제든 집에서 내보낼 생각을 하던차에 이를 계기로 단호히 할머니가 강행했다고 보아야 할것이다.

여하튼 영자는 내쫓긴셈이였다.

예봉은 영자가 없으니 어린 마음에도 막 날아날것만 같은 기분이였다. 그는 맨먼저 어머니방으로 달려갔다. 어머니가 없었다. 부엌문을 열었다.

부엌 안구석에 어머니가 쭈그리고앉아 눈물을 훔치고있었다.

이 기쁜 날에 어머니는 왜 울가? 어린 예봉은 머리를 갸웃거렸다.

어머니의 복잡한 심리를 가늠하기에는 아직 너무도 어린 그였다.

그로부터 3일후, 갑자기 문수일이 정신착란을 일으켰다. 밤새 헛소리를 치고 울고웃으며 정신없이 이리저리 집안을 쏘다니였다. 그의 눈에서는 이상한 광채가 번뜩이는듯 하여 보는 사람마다 소름이 끼쳤다. 잠자리에서 몸부림치다가는 닥치는대로 마스며 발광질도 하였다. 더럭 겁이 난 부모들은 의원을 불러온다, 무당을 불러온다 하며 병구완에 바빴다.

어느날 문형섭이도 잘 아는 의원 하나가 와서 맥을 보더니 뜻밖의 진단을 하였다.

《상사병이네.》

《상사병이라니?》 문형섭이 의아해하였다.

《서울간 녀자때문에 너무 심사를 해서 생긴 병이라니.》

남편의 이마에 댈 물수건을 짜던 오영금은 그 소리에 그만 손이 굳어지고말았다.

수건을 대야에 뚤렁 떨군채 그는 자기 방으로 뛰여들어 어푸러졌다. 목메인 흐느낌이 터져나왔다. 처음에는 소리를 죽여가며 흑흑 흐느끼다 나중에는 엉엉 소리를 내여 통곡하였다. 참고참았던 설음이 그만 뚝을 밀어던진 강물처럼 터져나왔다. 그래도 남편이라고 어느때인가는 자기 품으로 돌아오리라 믿었었다. 그 한가닥의 믿음을 마음속기둥으로 삼고 이날이때까지 고생스런 시집살이를 뻗쳐왔는데 그의 심장속 어느 구석에도 자기에 대한 생각은 티끌만치도 없는것이였다. 얼마나 그 녀자가 그리웠으면 저렇듯 정신이상에까지 걸렸으랴. 그는 슬펐다. 그리고 억울하였다. 예리한 칼날로 찌르는듯 심장이 쿡쿡 아파났다.

어머니의 통곡소리에 예봉이 뛰여들어왔다. 방 한구석에서 울고있는 어머니를 본 예봉은 덩달아 눈물을 흘리며 어머니에게 안겨들었다.

《엄마, 왜 그러나?》

예봉을 꼭 그러안은 영금은 막혔던 물목이 터진듯 서럽게 통곡을 하였다. 모녀는 서로 그러안은채 섧게섧게 울었다.

그 울음으로 연소되는 오영금의 가슴은 바작바작 재가 되여 타들어가고있었다.

오영금이 갑자기 품에서 예봉을 밀어던졌다. 그러더니 부리나케 부엌으로 내려가는것이였다. 겁이 더럭 난 예봉도 쫓아내려갔다. 당반에서 무슨 단지를 꺼내든 오영금이 머리를 돌려 예봉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이 무섭게 번뜩이였다.

《예봉아, 화봉이를 잘 돌봐라. 인제 엄마가 죽으면…》

목이 메여 말끝을 흐린 영금은 입술을 푸들푸들 떨다가 서슬단지를 헤치기 시작하였다. 눈물이 앞을 가리워 잘 보이지 않았다.

《엄마야!》 예봉은 어푸러지며 어머니의 손목에 매달렸다. 오영금은 세차게 딸을 밀치며 서슬단지를 입에 대였다.

그는 죽음으로 남편에게 항거하려 했고 저주로운 세상살이를 끝장내려 했던것이다.

그러나 하늘도 이 가련한 녀인의 마지막몸부림마저 마땅치 않게 여겼는지 사정없이 그를 배반하였다. 예봉의 아우성소리에 할머니와 삼촌댁이 뛰여들어 서슬을 마시고 늘어진 오영금을 둘쳐업었는데 그바람에 불행중다행으로 마셨던 서슬을 몽땅 토해버렸던것이다.

《하늘이 도왔구나.》

할머니는 안도의 숨을 내쉬였으나 오영금의 눈으로는 하염없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소리없이 방울방울 떨어져 얼굴을 적시던 눈물!

 그는 자기의 질긴 목숨을 저주하였고 남편을 저주하였고 자기의 신세를 저주하였다. 세상에 대한 온갖 저주가 다 그의 눈물에 담겨져있었다.

어머니의 눈에서 흘러내리던 그 진한 눈물!

그 눈물속에 비낀 비애의 깊이를 다는 몰랐어도 어린 예봉은 본능적으로 아버지란 인간에 대한 세찬 증오로 가슴을 끓이였다.

어머니의 눈물과 함께 어린 예봉의 유년도 끝이 났다. 아니 아름답고도 행복한 유년시절을 그는 무참하게 빼앗기였던것이다.

아지랑이 아물거리는 봄날의 동화세계에서 온갖 세상만물을 아름답게 느끼고 사랑하게 되는 그 소중한 유년시절을 짓밟힌채 그는 너무도 일찌기 얼음장처럼 차겁고 흙탕물처럼 어지러운 세상살이에 내동댕이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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