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제1편 눈물의 백합꽃

상 봉

 

숲속처럼 고요한 조선예술영화촬영소의 정원이다.

키높이 자란 뽀뿌라나무들의 설레임소리가 시원히 가슴을 적셔주고 싱그러운 풀냄새가 향긋이 코를 찌른다.

아담한 정향나무밑 의자우에 두 녀인이 손을 맞잡고 앉아있었다. 서로의 얼굴들에서 젊은 시절의 옛 모습들을 그려보며 무량한 감회속에 잠긴 그들은 누구도 선뜻 입을 떼지 못한채 한동안 말없이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만큼 그들의 상봉에는 세월의 무게가 실려있다고 할수 있었다.

《30여년만이군요!》

문예봉이 먼저 말을 떼였다.

《정말 그래요. 세월이란 참…》

두 녀인은 또다시 푸르른 하늘을 향해 하염없는 눈길을 던지였다.

침묵속에도 말이 있는 법이다.

아마도 그들은 이 침묵속에서 서로의 마음을 나누고있는듯…

문예봉을 만나는 순간 요시꼬를 놀라게 한것은 너무도 변하지 않은 그의 젊은 모습이였다.

30여년전에 첫 인상으로 받아안았던 조선녀성적인 아련함과 정결하면서도 지성적인 기품이 더욱 세련된 미속에서 풍만하게 발산되고있었다. 아마도 그의 아름다움은 로년에 이르러 더욱 완성된듯싶었다.

어쩌면? … 요시꼬는 황홀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사람의 육체적로쇠는 정신적인 고민으로부터 시작된다고 한다. 하다면 문예봉은 기나긴 인생길을 줄곧 행복의 꽃보라속으로만 걸어왔단 말인가?

《문선생! 정말 놀랍습니다. 전혀 변하지 않았군요. 자연의 법칙도 문선생앞에서는 무력한가부지요?》

요시꼬는 놀라움을 숨기지 않았다.

그의 생각대로 한다면 문예봉의 젊음은 자연이 창조한 하나의 기적인것이였다.

《그래요? 저도 종종 그런 말을 듣는답니다.

우리 수령님께서는 저를 만나실 때마다 웃으시며 처녀처럼 젊다고 말씀하군 하신답니다.》

문예봉의 얼굴에 행복의 미소가 피여올랐다.

《아! 김일성주석님께서요!

《그래요. 물론 처녀처럼 젊은 마음으로 계속 예술활동을 잘하라는 고무의 말씀이시지요. 그러나 그때마다 저는 웬일인지 자기 딸의 장한 모습을 놓고 대견해하는 친아버지의 정을 사무치게 느끼군 한답니다. 사실 친아버지는 있었어도 아버지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전혀 모르고 살아온 저였거든요.》

문예봉의 음성은 어느덧 젖어들었고 그의 눈가에는 맑은 눈물이 고여올랐다.

이 순간 문예봉은 진정 수령님의 자애로운 모습과 우렁우렁하신 음성을 가슴사무치게 그리고있었다. 그것은 항시적으로 그의 몸과 마음을 달구는 감정이였고 삶의 원동력이였다. 아버지의 사랑을 모르고 살아온 그에게 있어서 위대한 수령님은 진정 친아버지이시였던것이다.

수건으로 눈굽을 훔치고난 문예봉이 미소를 지었다.

《오다까선생! 선생은 저의 이런 마음을 잘 리해하지 못하실테지요. 허지만 …》

《아니 문선생, 저도 충분히 리해합니다. …》

뜻밖에도 요시꼬의 흥분된 음성이였다.

일성주석님에 대하여서는 저도 느낀바가 많습니다. 참으로 인자하고 자애롭고 도량이 큰분이시더군요. 정말 태양에만 비길수 있는 위대하신 령도자이십니다.》

《아니, 오다까선생이 어떻게? …》

《이번에 조선을 방문하여 저도 주석님의 접견을 받았답니다. 사실 조선에 발을 들여놓는 첫순간부터 제일먼저 만나보고싶은것이 문선생이였는데 제가 복잡한 생각을 굴리다나니 이렇게 체류일정이 다 끝나가는 오늘에야 만나게 되였답니다.》

자책이 스민 얼굴을 들어 그는 미풍에 설레이는 소소리높은 뽀뿌라나무에 생각많은 눈길을 던지였다.

나무숲에서는 매미의 청높은 울음소리가 한여름철을 노래하는 자연의 선률인양 청아하게 울리고있었다. 그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이듯 잠시 침묵하였던 요시꼬는 말을 이었다.

《저는 조선에 오자부터 문선생을 만나보고싶었습니다. 그러나 감히 저의 처지로부터 청을 내지 못했지요. 어지러운 과거가 있고 또 쏘련간첩이였다, 미국간첩이였다 하는 오명까지 나돌았던 내가 문선생을 만나려고 한다면 본의아니게 문선생에게 해를 끼칠가보아 우려했댔지요. 거기다가 또 한가지는 문선생이 어떤 처지에 있는지 잘 알수도 없고 해서…》

《그래요? 지나치게 우려했군요. 호호호.》

문예봉이 맑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때에 그는 한결 더 젊어보였다.

요시꼬도 따라웃었다. 그러나 인차 그의 표정은 심각해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지나친 과민이였어요. 그러나 문선생, 사실 공연히 그런 생각을 한것은 아니랍니다.》

그는 추연한 기색으로 이런 사연을 이야기하였다.

1970년대초 중국과 일본사이에는 력사적인 중일공동성명이 발표되였다.

다나까수상과 주은래총리, 오히라 마사요시 외무상과 희붕비 외교부장 등이 공동성명에 서명하고 축배를 드는 력사적인 장면이 방영될 때 요시꼬는 TV방송원의 직분도 다 잊어버리고 그야말로 흥분과 격정에 휩싸여있었다.

그의 눈앞에는 두 나라사이에 끼워 줄곧 롱락을 당하던 리향란의 그림자가 얼른거렸던것이다.

중일간의 눈녹이를 알리는 이 력사적순간은 2중국적자였던 리향란의 운명에도 훈향이 스며드는 순간이였다.

이 눈녹이의 물결을 타고 그는 젊은 시절의 갖가지 추억이 깃든 장춘예술영화촬영소를 수십년만에 방문하는 기회를 가지였다.

이 촬영소의 전신인 《만영》에서 첫 음악영화 《신혼려행》, 첫 단편영화 《호화로운 단꿈》 , 첫 귀신영화 《원혼의 복수》의 주역으로 출연하였으니 이곳이야말로 새 만주국의 탄생과 함께 《리향란》이 태여난 의미깊은 곳이라 할수 있었다.

촬영소에서 그는 옛 시절의 배우들과 감격적인 상봉을 하였다.

《열렬히 환영한다》라는 표어곁에 서있던 그들이 우르르 달려나와 그를 얼싸안을 때 흘러간 세월의 무정함을 한탄하며 모두 눈물들이 글썽해졌다. 첫 영사막에 비쳐졌을 때는 모두 열예닐곱살의 애젊은 홍안들이였으나 지금은 백발의 로인들이였다.

촬영소를 다 돌아보고난 후 그들은 촬영소근방에 있는 남호식당에서 식사를 함께 하며 지난날을 추억하면서 회포를 나누었다. 그 과정에 모두는 피차 자기가 맡았던 역들보다 더 극적인 인생행로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음을 절감하였다.

그들과의 담화에서 요시꼬에게 특별히 충격을 준것은 《만영》시절의 배우들이 만주제국의 국가정책집행을 협력하였다는것으로 하여 일정한 곡절들을 겪은 사실이였다. 이 사실은 요시꼬에게 말할수 없는 비감과 허전한 감정을 불러일으키였다.

그 시절 《만영》의 중국인배우들은 그 어떤 정치적리념보다도 먹고 살기 위한 직업의식으로 영화에 출연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리향란이 250원이라는 높은 월급을 받으며 고급호텔에서 매일 승용차로 출퇴근할 때 중국인배우들은 고작 20~40원의 월급을 받았으니 그 차이는 하늘과 땅차이였다.

한식탁에서 식사하는 경우에도 요시꼬에게만은 쌀밥을 주었으나 중국인배우들에게는 잡곡밥(수수밥)을 주었다.

이런 차별이 동료들에게 미안하여 어느때인가는 《나에게도 잡곡밥을 달라.》고 들이대며 식탁에서 뛰쳐일어났던 일까지 있었다.

《만영》시절에는 이렇듯 민족적인 차별과 멸시를 받아온 그들이 새 정권하에서는 또 다른 정치적리유로 곡절들을 겪었다니 인간의 운명에 미치는 시대의 기류란 불가사의한 그 무엇이 아닐가.

요시꼬는 쓸쓸한 마음을 걷잡을수가 없었다. 하긴 누구를 동정할바도 못되였다.

요시꼬자신도 일제의 패망과 더불어 주구명단에 올라 수용소생활도 하였고 사형이라는 무시무시한 《괴물》과 줄타기를 하면서 군사재판정에까지 서지 않았던가. 간난신고끝에 겨우 귀국의 배길에 올랐을 때 뜻밖에도 자신이 불렀던 《야리향》의 구슬픈 노래선률이 방송으로 흘러나와 하염없는 눈물로 배전을 적시며 특이하였던 반생과 쓰라린 고별을 하는 그의 가슴을 더욱 아릿하게 후벼놓았었다.

귀국한 후 조국인 일본은 또 그를 어떻게 대했던가.…

요시꼬는 모든것이 허무하였고 모든것이 슬펐다. 인간의 운명은 어쩔수없이 시대에 롱락당하기마련인것이니 문예봉의 운명도 결코 달리될수는 없을것이다.

그 시절 《너와 나》 , 《사랑과 맹세》 등과 같은 국책영화에 출연하지 않은 조선배우들이 과연 몇명이나 되였던가.

요시꼬는 이런 복잡한 추리속에서 문예봉과의 상봉을 망설이였던것이다. 그러면서 요시꼬는 자기의 생각이 매우 현명하였다고 자부하고있었다. 묵은 상처를 다치지 않는것이 상책이다. 공연히 터뜨려 고통을 불러올 필요가 있겠는가.

나의 명예를 위해서도 또 문예봉을 위해서도.

그러나 일성주석님을 만나뵈온 후 그는 자기의 머리를 쳤다.

일성주석님과 그이께서 정치를 펴시는 조선에 대하여 자신은 너무도 모르고있었던것이다.

역시 강물은 건너보아야 그 깊이를 아는 법이다.…

《그랬댔군요.》

고개를 끄덕이는 문예봉의 얼굴에는 짙은 상념의 빛이 어렸다.

《하긴 그럴수도 있지요. 생활이란 역시 단순치 않으니까요. 더구나 선생이나 나는 두 시대를 거쳐온 곡절많은 구세대가 아닌가요. 여기 앉아계시는 장선생과는 다르지요.》

문예봉이 빙긋이 웃으며 뜻밖에 나에게로 화제를 돌렸다.

안내 겸 통역으로 자리를 같이하였던 나는 두 녀인의 극적인 상봉에 심취되여 자신을 잊고있었다. 그들의 이야기는 나에게 여직 내가 체험하여보지 못한 생활들에 대하여 깊은 생각을 불러일으키고있었다.

문예봉의 말대로 나는 그들이 한창 연예계에서 활동하던 1930~1940년대에는 태여나지도 않았던 30대의 새세대이다.

그러나 문예학을 전공한탓으로 그들의 이야기가 결코 생소한 분야는 아니였다. 그래서 더욱 흥미를 가지고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있었다고 할가.

문예봉, 그는 내가 철들기 시작하면서부터 화면으로 낯을 익힌 너무도 친근한 녀성이다.

예술영화 《붉은 꽃》, 《다시 찾은 이름》등에서 형상된 정깊고 소박한 농촌어머니의 모습, 《성장의 길에서》에서 이채를 띤 리지적이고 현숙하면서도 모성애때문에 고민하는 녀의사의 모순된 심리형상…

아마도 우리 세대는 그가 출연한 영화들을 보면서 꿈많던 유년기를 넘겼고 청춘기의 푸른 시절을 맞이하였다고 할수 있다.

우리 인민들에게 있어서 문예봉은 고결하고 부드러우면서도 외유내강한 조선녀성의 모습으로 떠오른다.

더구나 나는 문예학을 전공한 녀성학자로서 근대 및 현대문예사를 연구하다보니 조선영화사에서 그가 차지하는 위치도 남보다는 더 파악하고있다고 해야 할것이다.

해방전 우리 나라 민족영화의 성과작으로 꼽는 《아리랑》, 《임자없는 나루배》, 《춘향전》에서 문예봉은 《임자없는 나루배》와 《춘향전》의 주역을 훌륭히 수행하여 당대의 인기배우로 이름을 떨치였다.

당시의 잡지 《중앙》에서는 인기조선인 33인중의 한사람으로 문예봉을 꼽으면서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그전에 연극을 통해서도 보던 인물이나 영화화면에 나타난 얼굴은 더우기 단아하다. 순진하고 단아한 속에 지금까지 여러 녀배우들이 가져오던 상태를 버린듯 한 신뢰하고싶은 그 무엇이 있다.…

앞으로 순조로운 코스만 밟게 된다면 큰 선망을 받게 될것이다.》

이 글을 보면서도 내가 느낀바이지만 배우로서 문예봉의 특징은 예나 지금이나 단아하고 순진한 조선녀성적인 체취그대로의 진실한 연기에 있다고 해야 할것이다.

해방직후에는 새 조국의 첫 예술영화《내 고향》에서 녀주인공역을 수행하였으며 오늘에 이르기까지 《소년빨찌산》, 《신혼부부》, 《붉은 꽃》, 《다시 찾은 이름》, 《춘향전》, 《성장의 길에서》등 수십편의 영화들에 출연하여 관록있는 연기로 조선영화사를 빛나게 장식한 공로자이다.

오다까 요시꼬도 결코 생면부지의 인물이라고는 할수 없었다.

만주국시대때 그가 영화계에서 활동한 내용과 그 배후관계는 나도 어느정도 파악하고있었던것이다. 내가 몰랐던 뜻밖의 자료라면 일본관동군에 종군하여 위문공연을 한 가수이기도 했다는 사실이였다.

이런 배경을 가진 두 녀인의 상봉은 나에게 마치도 지나간 한 시대를 산 현실로 펼쳐놓을수 있는 력사의 한페지처럼 생각되였다.

수많은 력사적사실과 자료들을 일반화하여 몇마디로 집약화한 몇줄 안되는 력사책의 글줄뒤에는 얼마나 많은 인간들의 파란많은 생활과 운명의 력사가 비껴있는것인가.

그들이 겪은 기쁨과 슬픔, 사랑과 증오, 고뇌와 갈망 등 구체적인간들의 산 숨결을 호흡하면서 력사를 재음미해보고싶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문예봉은 우리 나라 민족영화와 운명을 같이한 살아있는 영화사라고 할수 있었다.

비운에 찼던 민족수난기와 영광넘친 로동당시대에 걸치는 우리 민족의 영화사는 조선녀인의 상징으로 되는 명망있는 녀배우를 떠올렸으니 그가 바로 문예봉이 아닐가.

나는 그들에게 의미심장한 뜻을 담아 말하였다.

자신들의 생활체험을 통하여 후대들에게 그 무엇인가 교훈과 경험을 남기는것이 선대 세대들의 의무가 아니겠습니까. 두 시대를 살아오신 선생님들의 체험담은 아마 후대들을 위한 좋은 글이 될겁니다.》

나의 말을 귀담아듣고있던 요시꼬가 서글픈 표정으로 말하였다.

《장선생의 말이 옳아요. 그래서 나도 지금 나의 반생을 돌이켜보며 회상록을 쓰려 하지만 력사앞에 부끄러운 그 무엇이 될가봐 겁이 납니다. 이렇든저렇든 나는 예술인으로서는 패배한 몸이고 너무도 어지러운 오명속에 반생을 탕진했거든요. 그러나 문선생은 다르지요. 인생출발의 첫 궤도에서부터 오늘까지 탈선하지 않고 영화계를 꿋꿋이 걸어왔으니 정말 부럽습니다. 아마 자신의 재능과 천분에 맞게 선택을 우선 잘하셨고 또 그만큼 의지도 강하셨다고 보아야지요. 그러나 나는 억지로 떠밀리우다싶이하여 예술계에 나섰댔으니 끝까지 지탱하지 못한거구요.》

문예봉을 바라보는 요시꼬의 눈에는 진정 부러움이 가득차있었다.

현재는 정계에 나서고있는 몸이지만 그것이 곧 행복은 아닌것이다.

생의 말년에 자기를 뒤돌아보면서 후회가 없을 때 그것이 진정 인간의 행복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자신은 너무도 후회가 많다. 황금시절에 비기는 값비싼 청춘을 헛되이 롱락당하고 잃어버린것이다.

요시꼬의 말을 음미하듯 한동안 말이 없던 문예봉이 조용히 입을 걸었다.

《요시꼬선생, 선생이나 내가 인생출발의 첫걸음을 떼던 그 모진 세월에 자기 재능과 천품에 맞는 선택이라는것을 할수가 있었을가요? 선생은 등을 떠밀리워 무대에 나섰다면 나는 강제로 끌려나오다싶이하여 그 길에 들어섰던 몸입니다. 떠밀리우나 끌려나오나 자기 의사가 아니고 강요에 의한것이였다는 점에서는 같지 않겠습니까?》

요시꼬가 놀란 눈을 흡떴다.

영화배우가 천직처럼 느껴지던 그도 결국은 스스로의 선택이 아니였단 말인가? 실로 놀라운 일이였다.

《그래요. 저의 가정환경이 강제로 나를 무대에 끌어냈다고 할수 있지요. 선생도 나의 목소리를 듣고 인차 느꼈겠지만 솔직히 말해서 내 목소리만 들어도 배우될 재목이 못된다는거야 뻔하지 않습니까.

오죽했으면 나의 은사인 라운규선생도 <애기목소리>라면서 연극에는 적합치 않으니 영화로 돌아서라고 권고했겠습니까. 그런데 또 영화감독으로 있던 박기채라는분은 글쎄 어느 잡지에 낸 글에서 나에 대해서 발성영화배우로서는 큰 기대를 가질수 없다고 평하지 않았겠나요.》

옛일을 회상하는 문예봉의 눈에 허구픈 웃음이 비꼈다. 소질도 없으면서 억지로 무대에 나섰던 아득히 흘러간 그 시절을 그려보는 그의 심정이 나의 가슴에 마쳐왔다.

나는 커다란 충격과 동시에 비상한 흥미를 느끼였다.

《그래도 문예봉선생님은 그 길에서 물러서지 않으셨지요. 그것이 귀중한게 아닙니까?》

문예봉의 부드러운 눈이 나를 향해 웃고있었다.

그런데 그 미소에는 학생을 대하는 선생과도 같은 너그러움이 깃들어있었다.

《참, 새세대이니 그렇게 생각할수 있지요. 사실은 물러서지 않은것이 아니라 그 시절에는 물러설수가 없었던거예요. 먹고 살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였으니까요.

어린시절 나의 별명이 무엇인지 아세요? <눈물녀>였답니다. 여기 앉아계시는 요시꼬선생은 일제의 군국주의정책에 희롱당한 반생이라고 젊은 시절을 슬퍼하신다면 나는 눈물로 흘러보낸 그 청춘시절이 정말로 아쉽답니다. 수령님의 품에 안겨서야 비로소 행복한 창조생활을 하면서 예술인으로서의 긍지를 가지고 보람찬 생을 즐길수 있었지만 눈물속에 잃어버린 그 반생을 생각하면 정말… 그 반생을 다시 찾아 수령님의 품에서부터 첫걸음을 새롭게 뗄수만 있다면 나는 하늘의 별도 따오겠어요.》

그는 절절하게 말하였다.

반생을 다시 찾을수만 있다면 그 무엇도 아끼지 않으리라는 문예봉의 마음이 진실하게 나에게 안겨왔다. 나는 생각하였다.

그들의 잃어버린 반생이 그에 대한 아픈 추억과 회상만으로 끝난다면 그것이야말로 실지로 반생을 잃는것이 아닐가.

행복한 생이나 불행한 생이나 제나름대로의 결론이나 교훈은 있기마련이다. 만약 문예봉이 자기의 일생을 글로 엮는다면 과연 어떤 인생의 결론을 도출할수 있을것인가?

아마도 그의 생은 눈물과 환희, 어둠과 빛이라는 두 극단에 대한 이야기가 될것이라고 나는 생각하였다.

나의 예감은 빗나가지 않았다.

록음우거진 아담한 정원에서 문예봉은 추억의 층계를 한계단, 두계단 밟아오르며 자기 한생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펴나갔으니 그것은 결코 한 녀인의 곡절많은 인생사만은 아니였다.

 

련재
[장편실화소설]백합꽃 (제1회)
[장편실화소설]백합꽃 (제3회)
[장편실화소설]백합꽃 (제4회)
[장편실화소설]백합꽃 (제5회)
[장편실화소설]백합꽃 (제6회)
[장편실화소설]백합꽃 (제7회)
[장편실화소설]백합꽃 (제8회)
[장편실화소설]백합꽃 (제9회)
[장편실화소설]백합꽃 (제10회)
[장편실화소설]백합꽃 (제11회)
[장편실화소설]백합꽃 (제12회)
[장편실화소설]백합꽃 (제13회)
[장편실화소설]백합꽃 (제14회)
[장편실화소설]백합꽃 (제15회)
[장편실화소설]백합꽃 (제16회)
[장편실화소설]백합꽃 (제17회)
[장편실화소설]백합꽃 (제18회)
[장편실화소설]백합꽃 (제19회)
[장편실화소설]백합꽃 (제20회)
[장편실화소설]백합꽃 (제21회)
[장편실화소설]백합꽃 (제22회)
[장편실화소설]백합꽃 (제23회)
[장편실화소설]백합꽃 (제24회)
[장편실화소설]백합꽃 (제25회)
[장편실화소설]백합꽃 (제26회)
[장편실화소설]백합꽃 (제27회)
[장편실화소설]백합꽃 (제28회)
[장편실화소설]백합꽃 (제29회)
[장편실화소설]백합꽃 (제30회)
[장편실화소설]백합꽃 (제31회)
[장편실화소설]백합꽃 (제32회)
[장편실화소설]백합꽃 (마지막회)

독자감상글쓰기
Change the CAPTCHA codeSpeak the CAPTCHA code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18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