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제1편 눈물의 백합꽃

40여년의 세월이 흐른 어느날

 

인생은 우연과 필연의 부단한 교차과정이라고 그 누가 말했었지만 오다까 요시꼬(야마구찌 요시꼬)는 그런 말에는 워낙 마음을 쓰지 않는 성미였다.

인간의 운명에 대하여 제나름대로 해석하고 그 어떤 오묘한 진리나 되는듯이 현학적인 문구로 명명화한 《격언》과 《경구》들이 얼마나 무수히 람발되여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현실인가.

바람에 갈리고 비에 씻긴다는 풍마우세의 기나긴 세월속에서 어언 70을 바라보는 황혼기에 이른 요시꼬에게 있어서 이 모든 인생철학들은 쓴웃음을 자아내는 한갖 미사려구에 불과한것이였다.

인생에 대하여 론하자면 적어도 그만한 체험이 있어야 하지 않을가.

그러나 지금 쏘파에 몸을 푹 잠그고 창밖을 하염없이 응시하고있는 요시꼬의 머리속에는 느닷없이 우연과 필연에 대한 그 격언이 새삼스레 되새겨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과연 이것이 우연이란 말인가, 아니면 필연이란 말인가.

아직도 처녀시절의 탄력있는 몸매와 미를 잃지 않았다는 정평을 듣고있는 그였지만 깊은 사색의 세계를 헤매는 커다란 두눈에는 인생풍파를 다 겪은 로년의 오뇌가 어쩔수 없이 짙게 슴배여있었다.

저녁 텔레비죤보도시간이였다,

집필하던 원고를 밀어놓고 객실로 나온 그는 머리도 쉴겸 텔레비죤스위치를 넣었다.

텔레비죤에서는 뜻밖에도 현지영화촬영을 위하여 나리다비행장에 도착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영화대표단의 소식이 특별보도되고있었다.

비행기에서 내리는 조선영화인들의 모습과 그들을 열렬히 환영하는 재일조선인들의 열광적인 물결, 수많은 기자들의 분주한 활동장면들이 펼쳐지는 가운데 텔레비죤화면은 높다란 승강대에 제일먼저 나서서 손을 흔드는 한 녀인의 모습에 특별한 초점을 박고있었다.

그 녀인의 얼굴을 포착하는 순간 요시꼬는 아! 하고 저도모르게 탄성을 내질렀다.

우아한 조선치마저고리에 산뜻한 봄외투를 걸친 문예봉이 그 인상깊은 그윽한 미소를 짓고 손을 흔들고있는것이 아닌가.

40여년이란 세월의 흐름도 그의 미모에는 자취를 남기지 못한듯 청초한 아름다움이 푸르른 하늘을 배경으로 눈부시게 빛나고있었다.

요시꼬는 너무도 큰 충격에 한동안 그자리에 굳어져버렸다.

이것이야말로 우연인가 아니면 필연인가.

그는 요즈음 인생의 대용단을 내리여 자신의 풍파많은 한생을 돌이켜보는 회상록을 쓰고있었다.

말하자면 그의 일생과 도저히 갈라질수 없는 인연으로 엉켜져있던 리향란과 깨끗이 결별하자는것이였다.

인위적으로 조작되고 과장된 그리고 여러모로 요란히 선전된 리향란의 실지인물인 자신의 지난날을 그대로 사람들앞에 내놓는다는것은 솔직히 말하여 고통스러운 일임에 틀림없었다.

꾸며진 환경에서 꾸며진 과업을 수행하기 위하여 있는 힘을 다한 자신의 희롱당한 반생에 대한 이야기이기때문이다.

일본과 도이췰란드, 이딸리아와의 3각군사동맹을 체결하였고 쓰딸린과의 쏘일중립조약체결에서도 대활약을 한 마쯔오까외상의 아들인 겡이찌로까지도 이미 1940년대에 벌써 그를 보고 국가의 정책에 리용당한 가련한 인생이라고 말했었지만…

허나 요시꼬는 주저하지 않았다.

특정한 시대와 특정한 정책에 롱락을 당한 사람이 악몽에서 깨여나 당시의 죄를 뉘우치면서 사태를 진실하게 말하는것도 하나의 행운이 아니겠는가.

항차 그는 《만영》(만주영화협회)의 녀배우로서 일본대륙침략정책을 옹호한 공범자로 기소되여 재판까지 받았던 몸이다.

그러니 더우기 력사앞에 반성과 속죄가 필요한것이다.

하여 그는 될수록 허심한 마음으로 과거를 거슬러올라 《소화》라는 그 력사적시대에서 리향란이 차지하였던 위치를 똑똑히 밝히려고 애쓰고있었다.

그런데 오늘 불현듯 그 시대에 동참하였던 문예봉이 일본에 나타난것이다.

과연 인생이란 우연과 필연의 교차라는 말이 맞지 않을가.

꾹 감은 요시꼬의 눈앞에는 색날은 화면처럼 희미해졌거나 두터운 망각의 휘장속에 가리워졌던 화폭들이 하나, 둘 선명하게 그려지기 시작하였다.

뙤약볕이 내려쪼이는 7월의 무더위, 시누런 군복을 입은 병정들의 무리에 초점을 맞추던 촬영기와 영화감독들의 고함소리, 배우들이 집단숙식하던 서울교외 지원병훈련소의 거무틱틱한 건물…

요시꼬가 문예봉을 처음 만난것은 일제의 전쟁열이 고조에 올랐던 1941년, 소위 《국책영화》로 요란히 선전되였던 《너와 나》의 촬영때였다.

일제의 전쟁정책수행의 일환으로 제작된 이 영화는 조선총독부와 륙군보도부가 직접 후원하고있었다.

하여 영화의 인기를 올리려는 심산으로 당시 이름있던 내외의 배우들을 다 끌어들이고있었다.

일본과 만주, 중국 관내에서까지 《5족협화》, 《일만친선의 꽃》으로 명성이 자자하던 리향란(요시꼬)을 특별초청하여 출연시킨것도 다 이런 야심때문이라 할수 있었다.

리향란이 맡은 역은 만주의 처녀역이였다.

특별히 빛이 나는 역도 아니였다.

그러나 리향란이 이 영화에 출연한다는 사실자체와 그의 광고된 얼굴이 영화의 인기에 필요하였던것이다.

요시꼬가 와보니 일본배우들은 물론 이름있는 조선인배우들도 많이 참가하고있었다.

일본배우들은 거의가 다 구면이거나 동무들인지라 요시꼬의 관심은 자연히 조선배우들쪽으로 쏠리였다.

특히 그는 조선에서 《은막의 녀왕》, 《백합꽃》으로 불리우면서 일본의 명배우 이리에 다까꼬와 대비되던 문예봉에게 눈길을 모았다.

연예인들에게 있어서 일종의 경쟁심리는 거의 본능적이라고 할수 있었다.

요시꼬의 눈에 비친 문예봉, 그는 확실히 한떨기의 백합꽃을 련상시키는 청초한 아름다움의 소유자였다. 심산속에 조용히 피여나 정갈함과 깨끗함의 상징인 흰빛을 눈부시게 뿌리며 아련하게 웃고있는 흰 나리꽃!

(정말 고상한 미를 풍기는구나!)

속으로 요시꼬는 감탄하였다.

《만영》에도 제노라는 미인들은 많았다.

《고전미인》 정효근, 《요염한 미인》 백매, 《활발한 미인》 하페걸 그리고 《금붕어눈 미인》 리향란…

그러나 문예봉의 아름다움은 특이하였다.

그저 아름답다는 느낌만이 아니라 상대방의 마음을 가다듬게 하는 그 어떤 깨끗함과 현숙미가 우러나오는 고상하고 아름다운 기품이 후광처럼 비껴있었다.

녀배우들에게서 흔히 볼수 있는 꾸민듯 한 인상과 요염기가 없는 진실한 인간적모습 그대로였다.

그 어디를 가나 과장된 평가와 박수갈채, 수많은 《숭배자》들속에 둘러싸이군 하여 본심과는 다르게 말하고 행동하는데 습관된 요시꼬에게 있어서 문예봉의 순수한 인간적모습은 하나의 이채였다.

그는 문예봉과 친밀하게 사귀고싶었다.

또 그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 당시 리향란의 눈길을 한번 받아보는것만으로도 무상의 행복을 느낀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전장의 어떤 병사들은 그의 사진을 오려 가슴에 간직한채 히노마루가 새겨진 수건으로 머리를 질끈 동이고 결사전으로 나가는 정도였다.

그러나 문예봉을 비롯한 조선배우들속에서 요시꼬의 존재는 희미한듯 내심 바라던 환대와 친절을 받아보지 못하였다.

더우기 문예봉의 태도는 쌀쌀하게 느껴지리만큼 무관심하였다.

세리푸작업(대사작업)때마다 일본말을 제일 류창하게 하여 칭찬을 받는 김신재만이 요시꼬를 따르며 그의 주위를 맴돌뿐이였다.

포동포동한 얼굴에 애교있는 웃음으로 하여 퍽 예뻐보이는 김신재에게 그는 동생과 같은 사랑스러움을 느끼였다.

허나 관심은 여전히 문예봉에게로 가있었다.

이러나저러나간에 그는 조선영화계의 별이 아닌가.

이번 영화에서도 그는 주요인물의 하나인 기시따 다로의 부인역을 맡고있었다.

그러나 문예봉의 연기형상은 요시꼬의 기대를 허물어뜨리였다.

동업자의 눈으로 볼 때 문예봉의 연기수준은 경탄할만 한것이 못되였다.

창조적인 열의보다도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수동적인 자세였다. 특히 대사작업시에는 눈이 딱 감기였다. 일본어가 서투르다는것은 말할수 없을 정도였다. 제작자들은 밤마다 대사록음때문에 야단법석을 떨었으나 조선배우들의 일본어수준은 좀처럼 올라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누구 하나 열성적으로 련습하는 배우도 없었다.

요시꼬는 속으로 머리를 흔들었다.

(반도인들의 연기수준은 역시 기대할만 한것이 못되는구나!)

어느날 촬영장인 경기고등학교운동장에서 문예봉을 만난 요시꼬는 동정삼아 말했다.

《예봉씨, 세리푸때문에 야단맞는것을 보기가 딱해요. 일본말이 그렇게도 잘 안되는가요?》

예봉은 잠시 말없이 그의 얼굴을 바라보기만 하였다.

무척 부드러운 눈매였으나 눈빛에만은 록록치 않은 그 어떤 기운이 서려있었다.

말없는 그의 눈길은 요시꼬를 약간 당황케 하였다.

《제 말이 기분거슬렸다면 용서하세요.》

예봉은 입가에 년장자다운 너그러운 미소를 그리며 대수롭지 않은 투로 응수하였다.

《아니, 기분나쁠것도 없어요. 향란씨야 그렇게 말할수 있지요.》

《왜요?》

가뜩이나 큰 요시꼬의 두눈이 더욱 둥그래졌다.

《향란씨야 일본인이 아니예요. 이 영화에 무척 마음을 쓸거예요.》

예봉은 여전히 웃는 얼굴이였다.

그러나 요시꼬는 웬일인지 가슴이 뜨끔하였다.

요시꼬는 황황히 부정하며 그의 손을 잡았다.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니구요. 이 반도땅에서는 그래도 명성이 높은 문예봉씨가 세리푸때문에 매일 야단맞는것이 딱해서 해본 말이지요.》

《고마와요. 그러나 나야 어디까지나 조선사람인데 일본말이 서툰거야 어쩌는수 없지 않아요?》

여전히 웃음기어린 그의 얼굴은 흔연한 빛이였다.

《일본말이나 중국말이나 다 능숙해서 어느 나라 사람인지 분간키 어려워하는 향란씨로서는 물론 리해 안되겠지만…》

순간 요시꼬는 말문이 칵 막히며 온몸이 화끈 달아올랐다.

그 언제인가도 이 비슷한 말을 들은적이 있지 않았던가. 누구한테서 이런 말을 들었던가?… 분주히 번져지는 추억의 갈피속에서 문득 영화평론가 스즈끼 사부로의 모욕적인 기사의 구절이 번개치듯 머리를 스쳤다.

《어떤 나라에서나 숭배자의 입이 얄밉다. 만주도 례외가 아니다. <만영>의 배우 리향란의 본성명에 대하여 여러가지 말들이 있었는데 나는 그가 일어와 중어가운데서 어느것을 더 잘하는지 모르지만 그는 장소와 정황에 따라 두 나라의 말을 재치있게 분별하여 쓰는 처녀이다. 한번은 내가 그에게 <아가씨의 신분을 말해줄수 없는가.>고 우둔한 질문을 했다. 그는 큰 눈을 데굴거리더니 <나의 신분을 어느 각도에서 말하면 좋을가요. 가짜를 말할가요? 진짜를 말할가요?>라고 되묻는것이였다.》

사부로는 사람들이 제일 흥미있게 보는 《영화순보》의 만화란에 조롱하는 필치로 이렇게 써갈겼던것이다.

그 글을 읽었을 때 얼마나 아연실색했던가.

사실 사부로의 돌발적인 질문앞에서 거짓말을 하기도 싫고 그렇다고 사실을 까밝힐수도 없어 두루 얼버무리였는데 이렇게 사정없는 조롱의 화살을 날렸던것이다.…

당시는 《만주영화계에 혜성처럼 나타난 존재》로,《일본, 만주, 중국 세 나라 말을 통달한 그야말로 흥성이는 아시아를 대표하는 <만주처녀>》로 일본에서 대대적으로 선전되고있을 때였다.

그런데 사부로는 어느새 그 현란한 선전뒤에 숨어있는 요시꼬의 변색된 정체를 간파하고 조롱의 실눈으로 코웃음을 쳤던것이다.

요시꼬는 그때 맥없이 신문을 내리우고 두눈을 꼭 감아버리였다.

사부로에 대한 분격보다도 자신의 애매한 처지에 대한 비애가 스르르 가슴을 적시였다. 안개같이 종잡을수 없는 인간으로 살고있는 자신이 한없이 슬펐고 고독감이 밀물처럼 온몸을 휩싸는것이였다.

사부로의 글은 그의 가슴을 찌른 일종의 독침이였다.

그런데 오늘 문예봉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이 왜 사부로의 그 독설로 공명되여 가슴을 때리는것일가?

문예봉의 말에는 사부로와 같은 힐난과 조소의 빛이 어려있는것도 아니였으며 일본어에 서툴수밖에 없는 자기의 립장을 그저 담담하게 설명한데 불과했다.

그런데 조선사람이 일본어에 서툰거야 응당한것이 아니냐는 그 도담한 배짱속에 국적불명인 요시꼬자신에 대한 타매의 감정이 보이지 않는 회초리처럼 숨겨져있는듯이 느껴지는것은 무엇때문일가?

항상 고국인 일본과 중국사이에 끼워 모순된 심리와 비애속에 시달리는 지나친 신경때문인가?

요시꼬는 정말 머리가 아팠다.

중국사람이 되려면 일본사람의 기질을 버려야 하고 일본사람이 되려면 중국사람들의 오해를 사야 했다.

두 나라사이에 끼워 줄곧 마음의 안정을 잃고 나만이 겪어야 하는 통증속에 시달리는 이 리향란은 과연 어떤 녀자인가? …

요시꼬는 제생각에 잠겨 예봉이가 눈인사를 하고 돌아선것도 감각하지 못한채 한동안 그자리에 못박힌듯 서있었다.

멀어져가는 문예봉의 단아한 뒤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면서 그는 중얼거렸다.

(역시 간단한 녀자가 아니구나!)

국민복으로 하여 온통 시누런 색갈투성이로 변해버린 운동장에서 유표하게 두드러지는 그의 흰 치마저고리가 눈이 시도록 시선을 잡아끄는것이였다.

썩 후날에 가서야 요시꼬는 문예봉을 비롯한 대다수의 조선배우들이 강제련행되다싶이 영화촬영에 끌려왔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였다.

그러니 만주에서까지 일부러 날아와 《국책영화》에 열성이던 중국녀자로 변신된 일본녀자 요시꼬-리향란이 그들의 눈에 어떤 모습으로 비쳐졌을것인가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리향란은 문예봉의 평범한 말속에 담긴 마디마디의 의미를 어렴풋이나마 헤아려볼수 있었다.

문예봉은 시대의 공기를 따라 무작정 리향란을 공감하여나서는 머리없는 녀인은 결코 아니였던것이다.…

그때로부터 세월은 멀리도 흘러갔다.

그 세월의 흐름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인생행로에 깊은 자욱을 남기기도 하고 또 모래불에 새겨진 발자취처럼 순간에 사라져버리기도 하면서 상봉과 리별의 무수한 년륜을 새기였다. 세월의 년륜과 더불어 망각의 이끼도 두터워진다지만 날이 갈수록 생동하게 살아나는 모습들도 있는 법이니 문예봉은 바로 그런 모습중의 하나였다.

어디를 가나 찬탄의 대상으로만 되여있던 자기를 미심쩍게 바라보던 그 의혹에 찼던 눈길은 왜서인지 일생 가슴에서 지워지지 않는것이였다.

1975년 7월 일본 참의원 의원, 환경청 정무차관으로서 자유민주당 유지의원단의 한 성원이 되여 조선을 방문하였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른 얼굴도 문예봉이였다.

무척 만나보고싶었다. 언제나 흐트러지지 않던 정숙한 자세와 수심이 어린듯 한 고요한 눈길, 단정하게 가리마를 타고 빗어넘긴 조선식머리와 흰 치마저고리…

그의 모습은 어떻게 변했을가?

그동안 그는 어떤 길을 걸어왔을가.

《소화》시대에 함께 산 동시대인으로서 피차에 가로놓였던 마음의 장벽을 넘어 허심탄회하게 어제를 회고하고 오늘을 즐기며 래일을 론하고싶었다.

그러나 체류일정이 거의 끝날무렵까지도 그는 문예봉을 만나고싶다는 청을 내지 못하였다.

그 리유는? … 한두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운 복잡한 문제였다.

그는 위대한 김일성주석님의 접견을 받은 후에야 자신의 우려감이 공연한것이였음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울렁이는 마음을 안고 문예봉과의 회견을 요청하였고 드디여 30여년만에 뜻깊은 상봉을 하였던것이다.

그런데 그때로부터 여러해가 지난 오늘 자기가 지난 세월을 거스르며 회상록을 쓰고있는 때에 뜻밖에도 문예봉이 일본에 나타난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필연이지.)

요시꼬의 눈앞에는 푸른 숲이 우거진 조선예술영화촬영소의 정원에서 문예봉과 만나던 정경이 어제런듯 감회깊은 추억의 물결속에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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