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 회)

제1장 불안한 계절

 8

 

상춘은 진급시험공부에 바빴다.

그동안은 협박장때문에 마음안정도 약간은 잃었지만 그가 가르치는 아이의 입학시험준비때문에도 공부할 시간을 제대로 가지지 못했다. 세시간씩 학습시켜주던것을 시험이 림박해서는 정한 시간없이 거의 아이에게 매달려있어야 했다.

아이의 재능이나 성적으로 봐서는 3류, 4류의 중학도 어려울텐데 그 집에서는 1류중학교에다 원서를 내고 70점이상만 확보해달라는 아이어머니 민녀인의 강압적인 부탁이였다.

아무튼 입학시험은 지나갔다. 아이는 자신이 있다고 했다. 아이의 입학여부는 상춘의 앞으로의 가정교사자리와 등록금에 직결되는 일이였다. 마음의 부담으로 되였으나 잊어버리고 이제는 자신의 공부에 전심해야 되였다.

오래간만에 도서관과 집사이만을 왕래하며 공부의 시간을 짜냈다. 협박장은 시간이 감에 따라 머리에서 희미한 사건으로 퇴색되여갔다. 밖에서 선거전이 고조되는대로 테로사건이 련발했으나 굳이 마음에 두지 않았다.

밀렸던 학습장도 정리하고 교과서와 지정된 신간도 읽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시간이 아쉬웠다. 상춘으로서는 시험이나 념두에 두고 하는 공부라면 학습장만으로도 과히 부족을 느끼지 않았지만 그것은 공부하려는 학생의 태도가 아니였다.

시험은 그자체가 대학생활의 목적이 아니며 대학에서 학문하는데 있어서의 하나의 리정표에 지나지 않는것이다. 평소에 참다운 공부를 하였다가 시험때에는 다만 그것을 정리하는 정도에 그치는 여유있는 학문의 태도가 그는 소망이였다.

시험과목은 학년말이 되여서 많기도 했고 새로 시행되는 《민법》도 한과목 끼웠다. 《한국》이 독립국가라 하면서도 지금까지 일제가 남겨놓은 《조선민사령》과 8. 15직후에 미군정이 발표한 법령 21호를 그대로 존속시킨자체가 우스웠지만 이번에 제정된 《민법》은 과연 얼마나 우리 민족의 고유한 풍습과 생활감정을 반영하였는가. 그런것을 참고하기 위해서도 상춘은 《경국대전》을 비롯한 고문헌들을 껴들어보게 되였다. 문헌에서 보는 제도와 풍습 같은것을 더 확증하기 위하여 어머니에게 묻기도 했다. 어머니는 그 년령으로 보아서 상춘이 알지 못하는 대한제국 말기의 촌에서의 문물제도와 풍속을 소상하게 알고있었다. 그러한 모자간의 이야기에서도 어머니는 아들의 깊어가는 공부와 넓어지는 관심을 느끼면서 그의 성장을 대견한 눈으로 보게 되였다.

상춘은 또 대학에서 원익홍박사가 열을 올려서 강의하는 미국의 《권위》있는 학자인 로스토우교수의 《경제발전》과 《사회변천》에 있어서의 《경제성장단계론》에 주목을 돌리였다.

주로 맑스의 학설을 반대하는것으로서 《반공산당선언》이라고까지 하며 대학에서 반공교육과 관련해서 특별강좌로 되여있지만 그것을 들을수록 공격의 대상으로 되여있는 맑스의 유물사관이란 도대체 어떠한 학문인가, 그 저서는 물론 참고서조차도 구경을 할 길이 없어서 전혀 금단의 학문으로 되여있는것만큼 그 공격은 오히려 미지에 대한 호기심과 학구심에 자극만을 주었다.

많은 고전과 새로운 학설들도 읽었다. 스미스 애덤의 《국부론》도 읽었다. 그러나 중요하게는 맑스의 저서를 한권도 얻어볼수 없었다. 결국 비교연구가 되지 않는 로스토우나 토인비의 일방적주장만을 중학생같이 주입받는것으로 되였다.

학생들은 맑스의 《자본론》이라는 방대한 저서가 있는줄은 알고있다. 그가 대단한 수염의 주인공이라는것, 애연가라는것, 박해와 가난속에서 《자본론》 제1권을 완성했다는 사실, 그가 하이네를 좋아했다는 약간의 세부를 알뿐이였다. 그러나 학문에 대한 그의 말은 학생들사이에 유명했다.

《학문은 높은 봉우리와 같아서 피곤을 모르는 사람만이 정복할수 있다.》

그의 저서는 한권도 보지 못하지만 그 말이 학도들에게는 매우 교훈적이여서 상춘은 난관이 있을 때마다 그 말이 머리에 떠올랐다. 집의 가난한 살림, 앞으로 닥쳐올 등록금문제(비록 그것이 학문적인 문제가 아닌 생활처지의 문제라 할지라도), 모두 상춘앞에 우뚝우뚝 솟아있는 험한 봉우리들이였다.

상춘은 여러가지 책들을 탐독했다.

《들어라, 양키들아-꾸바의 소리-》라는 책도 읽었다. 그 책은 직접 혁명을 수행한 당사자들의 양키들에 대한 분노의 절규와 해방의 희열과 불퇴전의 열의를 일부나마 엿볼수 있게 하였다. 서한형식으로 되여있어서 하루밤사이에 다 읽어버렸다. 미국인자체도 저들의 침략성을 부인하지 못하며 미국식민주의정책을 숨기지 못하고 미제국주의의 죄악상을 드러내놓은 책이라고 볼수 있었다.

꾸바에는 이미 혁명이 일어났다. 까스뜨로의 더부룩하고 랑만적인 턱수염이 눈앞에 얼밋거렸다.

선규가 찾아왔다. 그는 대학에도 제대로 나오지 못한다. 상춘이 펴놓은 책들을 부러운 눈으로 뒤적거리며 쓸쓸하게 중얼거렸다.

《어머니가 계실 때도 내 학비를 보태주신건 아니지만 말야… 그래도 마음의 지주는 되였거던. 지금은 집에 들어가면 허전하고 어디에 마음을 붙일데가 없어 앉을수도 설수도 없이 방 한가운데 서서 있게만 돼. 유정(그의 누이동생)이가 차라리 날보고 이것저것 떼라도 써주었으면 좋겠는데 요것이 사뭇 내 눈치만 보고있거던. 울고싶어도 울수도 없어… 대학을 그만두고 그애를 위해서 생활인이 될가도 해봐. 그러다가 다시 공부할셈 치고…》

상춘은 듣고만 있었다. 선규의 딱한 사정이 그의 가슴으로 뿌듯하게 밀려들어왔다. 선규는 원래 대살진 몸이 더욱 꺼칠해서 많지도 않은 수염이 조금 자랐건만 유난히 그것이 눈에 띄였다.

《아무튼 학년말시험이나 치고보지.》

《공부를 했어야지.》

《넌 공부 안해도 뭐…》

《답안이나 쓰라면 어떻게 되겠지만 어느 정도 강의이외의 공부란게 있어야 시험장에 들어갈 마음의 자세가 되는건데 자체의 그것이… 굉장히 파는군.》

《괜히 뒤적거려, 시간이 역시 부족이야.》

선규도 학문에 있어서는 상춘과 같은 진지한 태도를 가지고있다.

그는 강의이외에 많은 서적을 특히 어머니가 앓아누워있는 동안에 읽지 못했을뿐아니라 앞으로도 그 가망이 없음을 한탄했다. 그는 친구의 공부에 방해될가 념려해서인지 오래 앉아있지 않고 책만 몇권 빌려가지고 총총히 나가버렸다. 마음의 안정을 잃고있는것이다. 그의 불안정이 상춘에게까지 전염되여 그도 책을 읽고는 있으나 자주 유정의 가엾은 얼굴을 책장우에서 보게 되였다.

장자울에서 사람들이 올라왔다. 그들은 서울에 와서 시간이 있으면 어머니를 찾아오는 수가 있지만 그날은 다섯사람씩이나 함께 왔었다. 경태도 왔다. 어머니가 고향에 살 때에 바로 이웃에 살면서 가장 친히 지내던 사람이면서 한번도 어머니를 찾아온 일이 없던 사람이다. 그가 혼자도 아니고 여럿이 같이 왔을 때에는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고 상춘은 짐작했다.

상춘은 그날이 가르친 아이의 입학발표의 날이여서 오전강의는 결강을 하고 그 중학교를 거쳐 오후강의만 받으러 나가던 참이였다.

《상춘인가?》

경태는 집에 들어서자 첫눈에 보는 상춘에게 이쪽에서 인사할 사이도 주지 않고 시골사람특유의 큰 목소리로 반갑다기보다 시비라도 걸듯 다가섰다.

《동네가 망했네. 동네가 망했어.》

그는 발로 땅을 구르며 동시에 머리에 썼던 낡은 중절모를 벗어 무릎을 쳤다. 중절모의 테가 굴레를 벗어났다. 그래도 시원치 않은지 그는 또 자기의 가슴을 쳤다.

방에 있던 어머니도 갑작스런 소리에 나와서 어쩔바를 몰랐다. 도시 영문을 모를 일이였다.

《상춘 어머니, 동네가 망했습니다.》

아무리 하소연이라도 남의 집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그렇게 격해지는 경태를 다른 사람들이 진정시켰다.

《이 사람아, 조금 참고 얘길 해야 아시지.》

그러자 경태는 눈에 불이 이는듯 사나운 눈으로 그들을 보며 떠들었다.

《이 집에 들어서니까 난 가슴이 메여져 그러네.》

정말 그것은 어머니를 믿는 표시였다. 그는 어머니와 누구보다도 친했다. 그는 자분자분한 이야기로 자기 감정을 말할줄을 모른다. 북받치는 감정을 그대로 쏟아놓는것이다. 그런만큼 그것은 더 사람의 가슴을 치는 힘을 가졌다. 상춘은 가슴이 뿌듯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나 그렇게 순하디순한 사람이 그토록 격분하지 않으면 안될 일이 있다고 동정과 공감부터가 앞서는것이였다.

《용서하십쇼.》

격한 행동으로 먼저 울분을 발산시키고야 마음이 가라앉는듯 한숨을 쉬며 어머니의 손을 더듬는 경태의 손등에는 굵은 눈물방울이 떨어졌다.

《동네가 망했습니다. 살다살다 이런 꼴을 보고 살아야 합니까?》

《무슨 일이 또 생겼수?》

어머니는 조심스레 이미 벌어진 사태를 듣기가 괴로운듯 물었다.

《또 그놈들입죠.》

함께 온 사람들이 일시에 대답을 했다.

장자울에는 산과 들을 하나 넘어서 미군의 기지가 있다. 기갑사단이라고 한다.

미군이란 말은 만행이라는 말과 동의어로 통할만큼 그동안 장자울에서만도 무수히 그것을 겪어왔다.

옛날부터 살던 집을 빼앗긴 농민들, 가을이 되면 빨갛게 익는 감나무를 잊지 못해 기지에 들어갔던 아이를 감나무에 챙챙 결박해두고 이틀을 내버려둔 놈들이다. 닭을 꿩이라고 사격연습삼아서 쏘아가기는 례상사로 되여서 지금은 새벽을 알리는 닭도 씨를 말려놓은 양키들이다.

녀자들을 어떻게 했다는 사건은 오히려 마을의 수치로 알고 차라리 말을 내지 않으며 절치부심, 같은 하늘을 쓰고사는 그 하늘을 원망해보는 마을사람들이였다.

그날 경태네 집에서는 그의 처남결혼식초례를 벌리고있었다. 일찍부터 부모가 없어서 경태내외가 부모노릇을 하는만큼 그로서는 두번 없는 경사였다. 어머니도 그 신랑을 알고있다. 초례청에는 맑은 날이였지만 모든 천지의 부정을 가려서 차일을 치고 마을의 남녀로소가 모였다. 축복과 웃음과 익살이 교차되는 가운데 경건하게 백년해로의 기러기가 날아가서 중매의 치마폭에 숨고 청실홍실이 늘여지며 잔이 오고갔다.

《웃지 말게, 첫딸 낳네.》

그래도 신랑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색시는 연한 화장밑에 얼굴이 빨개졌다. 그것은 경태네 경사일뿐아니라 마을의 경사였다. 신랑신부에게 있어서는 일생에 꼭 한번밖에 없는 순간이였다.

이때 두명의 미군이 카빈총을 메고 들어섰다. 그렇게 여러번 그들의 만행과 피해를 받아온 사람들이지만 그들앞에 당황을 보이지 않고 례식을 진행하고있었다.

그들로 하여 례식을 중단할수 없는 일이였다. 그들도 눈이 있어 보면 알것이다.

그들의 나라에서도 결혼식은 있을터이며 그것이 얼마나 일생일대의 경사인줄도 짐작할것이다. 그들도 사람이라면 말이다.

이국의 풍습이 신기하여 구경을 할수도 있다. 불청객이지만 구장이 나가서 아는체도 했다.

두 군인은 신기한 눈으로 보고있더니 한놈이 초례청으로 들어서며 다짜고짜 신랑의 사모를 벗겨 저의 머리에 얹고 색시를 향하여 지어낸 목소리로 불렀다.

《쌕씨!》

《저를 어쩌나!》

거기까지 이야기를 듣던 어머니는 깜짝 놀라며 손으로 치마폭을 쳤다.

상춘도 등으로 전률이 지나가는것을 느꼈다. 흙봉당에 걸터앉아서 애꿎게 담배만 빠는 경태의 수염이 가늘게 떨렸다. 그 사실을 띄염띄염 엮고있는 사람의 더딘 말솜씨가 미웁도록 답답했다.

미군이 《쌕씨!》하는 그 순간 신랑의 주먹이 그자의 턱주가리를 갈겼다는 말을 듣고야 상춘은 답답하게 괴여오르던 가슴이 확 틔였다.

 

미군들은 총을 어깨에서 떼였다. 마을청년들이 날쌔게 그놈들의 손을 비틀어 꺾어 총을 빼앗아 격발기와 총알을 뽑고 멀리 팽개쳐버렸다. 마을청년들가운데는 제대군인들이 있어서 총을 다룰줄 알았던것이다.

미군은 두들겨맞고 쫓겨갔다. 신랑은 그놈을 죽이고 저도 죽겠다고 했지만 여러 사람들이 그를 말렸다. 오히려 일생의 액땜으로 치면 된다고 신랑을 위로해주었으며 뜻밖에도 쓰러졌던 신부가 정신을 차릴뿐아니라 입술을 깨물고 꼿꼿이 초례청에 서서 례식을 끝냈던것이다. 그 녀자도 그 더러운자들의 침입으로 자기의 일생을 망치고싶지는 않았던것이다.

언제나 당하는 만행이였다. 례상사로 알고 잔치술들도 먹었다. 신랑도 유쾌하게 손님들을 대하기는 했으나 마을은 불안한 가운데 어두워갔다.

밤에 미군들이 무리를 지어 습격을 해왔다. 경태네 집을 부수고 가장집물, 신부의 옷가지를 발로 짓밟고 신랑과 청년들 세사람을 랍치해갔다.

어제 밤의 일이였다. 마을사람들은 경찰지서로 가서 그 사실을 고발했다. 그러나 지서주임은 되려 그들을 욕하기만 했다.

《미국사람이 구경삼아 한번 써본걸 가만두면 되잖아?》

경태는 참을수가 없었다.

《여보쇼, 당신이 조선사람이면 사모가 어떤건줄이나 알고나 하는 말이요?》

《뭐가 어째?》

주임은 경태를 잡아끌어 뺨을 치고 정갱이를 걷어찼다. 정갱이에서 피가 흘렀다.

 

사람들은 경태더러 어머니에게 그 터진 자리를 보여드리라고 했으나 경태는 담배만 빨면서 보이지는 않았다.

《내가 못난 놈이지, 그깟놈을 때려눕히지 못하고 아이들이라고 여기와서 자랑하겠나?》

마을사람들은 어디에 대고 호소할데가 없어서 한번도 그런 일로 재미를 보지 못했지만 그래도 《국회》의원이라 하여 권세환을 찾아 새벽차를 타고 와서 장충동 집으로 갔던것이다.

권세환은 찾아간 사람들에게 하품을 씹어가면서 핀잔을 주었다. 미국사람은 그들이 하는대로 내버려두면 된다는것이였다. 뭣때문에 건드려가지고 미국사람의 만행, 만행하느냐, 그들은 쾌활한 민족이 돼서 장난삼아 그래보는건데 혹시 그것이 지나쳐 실수도 있지만 그것을 야단난듯이 뭐하러 이렇게들 왔느냐, 자기가 경찰서장한테 전화를 해서 잡혀간 사람들을 곧 나오도록 하겠다. …

그들은 너무나 억울한 나머지 지서에도 갔었고 권세환도 찾아갔던것이다.

상춘은 그들의 심정이 리해되였다. 그들의 무엇인가 끊어지지 않는 미련이 자기 집을 찾아온것이다. 아버지때로부터 형님때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편에 서주었던 일을 그들은 오래도록 가슴에 품고있다. 특히 일제때에는 오원필이 마을사람들에게 이야기해준 일성장군님의 전설적이야기며 인민들에 대한 친어버이사랑같은 이야기와 8. 15후에는 상백이 그들에게 들려준 북의 토지개혁 같은 이야기, 6. 25때에는 직접 자신들이 북농민들과 같이 그이께서 주신 땅을 받아 생전처음으로 땅있는 농민으로 되던 감격들이 그이에 대한 무한한 흠모의 정으로 되여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일성장군님의 존함을 부르고싶은 심정이 저절로 어머니네 집을 찾게 되는것이였다.

상춘은 무슨 말을 할지 몰랐다. 아직 그는 그들을 위로하고 힘을 돋구게 할 말을 찾지 못했다. 다만 무엇인가 해야 될 말이 있을듯싶은데 가슴만 답답하며 하나의 명확한 구절로는 되지 않았다.

경태는 그렇게 울분을 터뜨리고야 조용한 기분으로 돌아가 보통의 인사를 했다.

《학교는 잘 다니나?》

《네.》

《학교 잘 다니게. 학교 다녀서 이런 억울한 세상을 어떻게 바로잡아야 우리 시골사람들이 살아가지 이대론 못사네. 고향 와보게. 미군뿐인줄 아나, 관청이란 <관>자가 붙은데 도둑놈, 불한당들이 얼마나 많은가. 요샌 <대통령>선거라고 가관이야.》

상춘은 웬 일인지 그들옆에서 빠져나가는것이 죄송스럽고 현실을 외면하는것 같아서 얼른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시간 늦는다고 가라는 어머니의 말을 듣고야 집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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