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2 회)

제 3 장 어둠속의 동쪽

42

 

 김현철은 간신히 눈을 떴다. 무엇에 얻어맞았는지 골이 빠개질듯이 아파났다. 머리를 쥐여보려 하는데 팔이 강직된듯 움직일수 없었다. 몸을 뒤척였다. 그제서야 그는 자기가 꽁꽁 묶이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어 꿈같이 벌어진 일들이 련상되기 시작했다.

자기가 탄 검은 택시가 굽인돌이에서 급정거를 했다. 그때 낯모를 두 사내가 량옆에서 뛰여올라 급소를 타격하고 수건으로 코와 입을 틀어막았다. … 그 다음은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 아직은 죽지 않았어!)

김현철은 마치도 다른 사람이 겪은 일처럼 랭정하게 생각하려고 애썼다. 숨이 가빴다. 입을 테프로 봉인해놓았던것이다.

그는 눈을 쪼프리고 주위를 살폈다. 캄캄했다. 한점의 빛도 보이지 않는 암흑속이였다.

심한 갈증으로 목이 타들었다. 그는 마른침을 삼키고나서 이곳이 어딜가 하고 가늠해보았다. 눅눅한 지린내같은 누기냄새가 짙었다. 그리고 바닥이 축축했다. 서걱거리는 모래알들이 느껴졌다. 어느 지하창고인것 같았다.

김현철이 몸을 바로세워 앉으려는데 불쑥 전등불 하나가 켜졌다. 여느때 같으면 뿌옇게 느껴질 정도로 촉수가 낮은 불이였으나 오래동안 어둠속에 있던 그는 눈이 부셨다.

(얼마나 지났을가?)

대체 자기가 이곳에 얼마나 있었는지 전혀 가늠이 가지 않았다. 하루인지, 이틀인지 아니면 단 몇시간이 지난것인지… 도무지 알수가 없었다.

철문이 삐걱삐걱 소리내며 열렸다.

검은색양복을 입은 사내가 뚜걱뚜걱 걸어들어왔다. 그뒤를 따라온 두 젊은 녀석이 김현철을 억지로 일으켜 딱딱한 나무의자에 앉혔다. 그리고 그의 입을 막았던 테프를 뜯고는 밖으로 나갔다.

일시에 모든것이 고요해졌다. 안에는 두사람뿐이였다.

그중의 한사람인 장년의 사나이, 리기철은 김현철의 주위를 천천히 돌면서 자기의 승리를 즐기고있었다. 이제 몇가지만 마저 처리하면 시끄러운 이 모든것이 끝난다.

《김현철기자!》

드디여 리기철이 말을 꺼냈다.

《오늘 운수가 참 좋다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오늘은 당신의 인생에서 제일 불우한 날이요. 왜냐하면 어쩌면 오늘 당신이 죽을수도 있으니까.》

이렇게 서두를 뗀 리기철은 시까스르기 시작했다.

《당신은 이렇게 날 만나는게 불쾌하겠지만 난 참으로 기쁘오. 어쩌면 당신이 홍콩에서 죽지 않은게 더 고맙기도 하오. 날 이래저래 골탕먹이던 당신을 내 손으로 직접 처리할수 있게 되였으니까! 그러나 살 기회가 영 사라진건 아니요. 이제부터 당신이 대답하는 한마디한마디가 당신의 고귀한 생명을 한시간한시간 줄일수도 있고 반대로 늘일수도 있다는것을 명심하오.》

몸이 묶여 거북스러운 자세를 간신히 유지하고있던 김현철은 쓰겁게 말했다.

《우린 초면인것 같은데 몹시 무례하군요.》

리기철은 코웃음을 쳤다.

《도도하군!》

그는 가지고 온 종이장을 펼쳐들고 읽기 시작했다.

《… 문태석은 결혼한지 1년후인 1987년 1월 2일 밤과 1월 3일 새벽사이에 거주지인 홍콩의 살림집에서 김춘옥을 살해하였거나 그에 가담하였을 혐의가 있다. 그리고도 문태석은 1월 5일 싱가포르주재 한국대사관에 나타나 <북한공작원에게 랍치됐다가 탈출했으며 안해는 북한간첩이였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문태석이 랍치를 꾸몄다고 주장한 그의 안해는 남편이 홍콩을 떠나기 훨씬 전에 자택에서 죽어있었다. … 왜? 꽤 잘 쓴 기사인데 필자선생은 왜 얼굴을 찡그리는가? 오- 신문사에 있어야 할 원고가 내 손에 있는게 놀라워서? 하긴 기사를 제출한지 두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그게 내 손에 있으니 놀라는게 당연하지. 이게 바로 힘의 론리요. 강자는 나고 약자는 당신! 강약이 부동이라는 말은 당신도 잘 알테지?》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의자를 가지고 들어와 리기철의 뒤에 바투 가져다놓고 나갔다.

리기철은 그 의자를 당겨 김현철의 앞에 바싹 다가앉았다.

《이젠 감이 가오? 자기가 어떤 처지인지?》

김현철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앞을 쏘아보았다.

(두시간이라고? 두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다고?)

무척 많은 시간이 흐른줄 알았는데 두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말이 놀랍기만 했다. 바로 그 두시간전에 제출한 기사원고가 이자의 손에 들려있는것이였다. 이것은 신문사에도 이미 이자들의 검은손이 뻗쳐있다는것을 말해주고있지 않는가. 말끝마다 소위 언론의 자유와 독자성을 부르짖는 이 땅에서 어떻게 이런 처참한 일이 빚어진단 말인가.

결국 장필성의 말은 정확했다. 그는 언론이 왕관을 쓰지 않은 제왕이라고 하지만 그건 빛좋은 개살구라고, 이 사회의 언론은 권력의 하수인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었다. 그 말은 너무도 자명한 말이였다. 이렇게 언론의 정의와 량심이 권력과 돈에 유린당하고있는 속에서 사회는 완전히 질식되여가고있는것이 아닌가.

그러나 아직 한가닥의 희망은 남아있었다. 바로 연희였다. 그가 이제 김현철이 하려던 일을 마무리짓게 될것이다.

김현철은 시간을 끌기 위해 태연하게 물었다.

《당신은 대체 누구요?》

《내가 누구인지 궁금하오? 직위와 이름 석자가 그렇게 중요한가? 나는 김현철이라고 불리우는 기자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앞으로의 미래까지도 당사자보다 더 잘 알고있는 사람이요. 당신이 어떻게 이 세상에 태여났고 어떤 환경에서 자랐으며 앞으로 어떤 비참한 죽음을 당하게 되겠는지도 잘 알고있는 사람이란 말이요. 내가 상기시켜주건대 당신은 아직 죽지 않았고 죽지 않을수도 있소. 내 말에 고분고분 응한다면 말이요!》

김현철은 역증이 나서 그의 너스레를 잘랐다.

《당신이 1987년에 문태석랍북미수사건을 조작했소?》

리기철은 픽 웃었다.

《참 놀랍군. 지금도 그게 궁금한가?》

김현철은 직방 찔렀다.

《당신이 이전 안전기획부의 해외담당 국장이였던 리기철이요?》

뜻밖의 질문에 리기철이 흠칫했다. 갑자기 그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그것을 보며 김현철은 자기의 판단이 옳았다는것을 깨달았다.

《맞구만. 언젠가 꼭 한번은 당신을 만나려고 했소.》

김현철을 지그시 노려보던 리기철이 조롱조로 말했다.

《힘을 가지면 관대해질수도 있지. 그래, 내가 리기철이요. 그새 긴 시간이 흐른것 같지는 않은데 꽤 많이도 알아냈군… 그런데 말이요. 나를 알아보았다는것이 지금의 당신 처지에서는 더욱 리로울게 없다는걸 알아야 하오. … 그건 그렇고 당신은 참 총명하오. 당신이 생각하는바와 같이 문태석랍북미수사건을 고안하고 추진한것은 바로 우리 안기부요. 왜 그래야만 했는지 알고싶지 않소?》

그는 마치 사형수앞에서 자비를 베푸는듯 한 어조였다.

김현철은 목마름보다도 이자의 넉두리같은 말에 더 신경이 갔다.

《그건 사실 서막에 불과했소. 문태석 그 얼뜬한 녀석이 처음부터 일을 그르치지만 않았어도 꽤 들을만 한 심포니를 연주하는것이였는데… 그때는 정권연장을 눈앞에 두고있었는데 소위 민주화라는 욕구를 내세우며 독재청산과 정권교체를 주장하는 민중시위가 그칠새 없었지. 그러니 반공을 국시로 삼고있는 우리로서는 군사정권의 장기집권을 위해서라도 소요군들의 눈과 입을 일거에 틀어막을 드라마가 절실히 필요했던거요. 하다면 리념과 제도의 차이로 하여 방대한 무력이 호상 대치하고있는 이 분렬된 반도땅에서 민심을 가장 크게 자극할수 있는것은 무엇인가? 그건 국가안보와 직결시켜 사람들의 운명과 신경을 하나로 옭아매는거지. 북의 남침설은 바로 이럴 때 필요한것이 아니겠소?!

1987년의 정권연장을 위한 반북, 반공을 주제로 한 대교향악의 서곡은 실은 그 훨씬 전부터 준비되여온거요. 시작도 그만하면 괜찮은셈이였지. 그런데 주역을 놀게 되여있는 김춘옥이가 우리의 요구를 거부하다가 황천객이 된데다가 문태석이까지 얼간망둥이가 되여버린 바람에 불협화음이 울리기 시작했소. 게다가 작전진행도중에 겁을 집어먹은 그자는 어리석게도 미국으로 망명하려고 싱가포르주재 미대사관으로 뛰여들었지. 그야말로 세상리치를 너무도 모르는 햇강아지의 어리광질이 아닐수 없었소.》

리기철이 담배를 한대 꺼내물었다. 마치 지난날의 어떤 즐거운 일을 추억하는듯 눈가에 흡족한 미소까지 어리고있었다.

《우리의 계략들이 CIA의 지시와 검토, 비준속에 작성되고 집행된다는것쯤이야 이미전부터 알고있었어야지. 어디 그 작전뿐인가! 중앙정보부시절부터 안기부로 흘러오면서… 아니지, 친미반공을 통치리념으로 삼고 태여난 이 대한민국에서 진행되여온 모든 반북공작씨나리오들이 미국에 의해 기획되고 그의 지휘통솔아래 실행되여왔다는 사실이야 지각이 있는 인간이라면 어렵잖게 깨달을수 있는 상식이 아니겠소. 결국 그자는 이 고유한 생리를 깨우치지 못한탓에 미대사관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되여버렸소. 그후 미국어른들의 차후동의를 얻어 그자의 랍북미수와 관련한 인터뷰를 열고 어설픈대로 반북공세의 막을 올렸소.

거기까지는 그럭저럭 괜찮게 흘러갔다고 할수 있겠지. 그런데 인터뷰의 효과를 극대화해나가는 과정에 미련하기 짝이 없는 치안본부녀석들이 박종철고문학살사건을 일으키는 바람에 일이 튀여나가기 시작했소. 그해 년초부터 들끓기 시작한 정국이 무슨 바람을 탔는지 잠시도 식을새없이 맹렬한 반정부기류로 흐르다보니 품들여 준비한 간첩사건들은 아무런 맥도 못 추고 태풍을 만난 가랑잎처럼 날려가버리고 5공이 6공으로 바뀌는 불운도 겪게 된거지. 그 위기를 제때에 수습하지 못한것으로 하여 나도 역시 책임을 지고 물러나지 않을수 없었지. 그래서 랍북미수사건은 그 주인공으로 내세웠던 문태석을 정신병원으로 쫓아보내여 사회와 아예 격페시켜버리는것으로 서둘러 결속해버린거요. 만일 그때 모든게 계획대로 되였다면 우린 오늘 이런 습기찬 지하창고에서 이렇게 마주앉지 않았을거구 랍북미수극의 비밀은 후날 당신이 아니라 샬로크 홈즈와 같은 전설같은 탐정이 나타난다고 해도 밝혀낼수 없는건데… 참, 아쉽게 되였지. … 자, 그럼 이젠 당신의 차례요. 인정도 품앗이라는데 중요한 비밀을 다 털어놓았으니 나도 당신에게서 나에게 필요한 정보들을 들을 권리가 있겠지?》

김현철은 증오의 불길이 펄펄 이는 눈길로 리기철을 쏘아보며 부르짖었다.

《미친놈!》

리기철의 얼굴에 잔인한 미소가 피여올랐다.

분노에 찬 김현철의 노성이 터져나왔다.

《너희들의 그 추악한 반북모략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억울한 루명을 쓰고 참혹한 죽음을 당했다! 그의 일가친척들도 인간의 삶이 여지없이 파괴당했고 처절한 인생길을 걷고있다! 또 이 땅우엔 외세가 바라는 동족간의 불신과 대결이 세기를 이어오고있다! 그래, 이게 너희들이 바라는 세상이냐?》

김현철의 절규가 뜻밖이였던지 일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던 리기철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하긴 당신의 처지고보면 그럴만도 하겠군. 당신의 아버지라는 김지우! … 그도 빨갱이로 몰려 교수대에 매달렸으니까!》

온몸을 결박당한 김현철은 솟구치는 격노로 몸부림쳤다. 이 사악한 인간백정들이 아버지를 음모의 제물로 삼고도 모자라 우롱까지 하고있는것이였다.

하지만 리기철은 코웃음을 치며 눈섭 한오리 까딱하지 않았다.

《내가 알고싶은것은 두가지야. 첫째, 문태석이 정신병원에 있다는 사실을 누가 알려주었는가?》

《모른다!》

《불손하군. 모를수도 있겠지만 태도는 너무 오만방자해. 이런 장소에서 그런 태도는 당신에게 리로울게 없지.》

이렇게 씨벌이던 리기철이 다른 질문을 하였다.

《홍콩에서 대체 어떤 자료를 쥐였기에 이런 기사를 써냈는가? 또 취재한 자료들은 어디에 있지?》

김현철은 더이상 말을 듣는것마저 역겨워 고개를 돌려버렸다.

《말하기 싫다?! 그러나 이것만은 털어놓아야겠는데…》

리기철이 그의 약을 올리기 시작했다.

《꽤 비싸군. 당신이 침묵한다고 우리가 안타까와할줄 아는가? 당신의 입만 틀어막으면 문태석랍북미수사건과 관련된 안기부의 개입은 영원한 추측으로만 남아있을걸. 다시 권고한다. 홍콩에서 가져온 그 자료를 내앞에 내놓고 조용히 사라지라구. 그리고 더이상 이 사건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약속만 하면 당신의 생명을 담보하겠다니까.》

김현철은 주먹을 불끈 쥐였다. 뱀처럼 교활하고 여우처럼 간특한자였다. 생명의 유혹에 견디기 힘들어하는 인간의 심리를 리용하여 자기를 회유하려 하고있다. 그러나 간교한 이자도 모르는것이 있었다. 바로 김현철이 죽음을 각오하고 이 자료를 얻어낸 진짜 리유를 모르고있는것이였다.

하긴 이런 권력의 하수인들은 열백번을 죽었다 다시 태여나도 모를수밖에 없는노릇이였다.

《어쩌면 당신의 말이 옳을수도 있소.》

김현철이 수긍하는듯 한 태도를 보이자 리기철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그는 귀맛이 동하는듯 더 바투 다가앉으며 다음 말을 재촉했다.

《그래서?》

김현철은 또박또박 씹어 말했다.

《그러나 당신은 너무도 모르고있소. 내가 왜 그 기사를 썼는지 아는가? 돈을 벌자고? 아니면 이 세상에 이름을 날리자고? 천만에! 그건 천인공노할 죄를 짓고도 반성할줄 모르는자들에게 주는 경고였소. 그리고 이 땅을 피로 적신 독재의 죄악을 영원히 잊어서는 안된다는것을 민중들에게 알리는 경종이였소. 지금은 남의 일 같지만 이런 암흑의 세상을 끝장내지 않으면 누구나가 언젠가는 김춘옥이 될수 있고 그의 가족처럼 된다는것을 일깨워주고싶었던거요. … 나를 죽이겠다고? 그럴수 있겠지. … 그러나 나를 죽여도 진실을 감출수는 없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지기마련이요. 왜 그런가? 그것은 바로 우리 민중이 바라는것이니까. 내 엄숙히 말하건대 당신들이 아무리 갖은 발악을 한다 해도 우리 민중은 6.15가 일으킨 민족공조, 민족대단합의 열풍으로 외세에 의해 강요된 피눈물나는 동족대결의 암흑시대를 기어이 끝장내고야말것이요. 이것이 바로 우리가 바라는 진정한 정의이고 참다운 진리인것이요.》

리기철은 펄쩍 놀라는가싶더니 금시 삵의 눈으로 김현철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적수공권인데다가 온몸이 꽁꽁 묶여있는 그가 아직은 위험하지 않다고 보았는지 손바닥을 툭툭 털며 일어났다.

《말할 재미가 없군.》

그는 김현철이 더는 한마디도 할수 없게 테프로 입을 봉인했다.

그리고는 주머니에서 김현철의 손전화기를 꺼내들었다. 그의 얼굴에 잔인한 웃음이 떠올랐다.

《장연희씨?》

리기철의 목소리는 소름이 돋을 지경이였다. 김현철은 몸부림치며 소리치려고 했으나 흘러나오는것은 미세한 신음소리뿐이였다.

《장연희씨가 맞습니까? 이런 울고있군요. … 김현철기자는 살아있습니다. 손톱 하나 안 다쳤습니다. … 그래그래, 약속하죠. 단지 연희씨가 내 요구 하나만 들어주면 됩니다!》

 

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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