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0 회)

제 3 장 어둠속의 동쪽

40

 

날이 밝자 김현철은 곽동수를 찾아갔다. 곽동수는 밤새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는지 얼굴이 부석부석했다.

김현철은 자기와 연희를 보호하느라고 서울로 돌아와서도 편안히 휴식하지 못하는 그에게 진심으로 미안했고 감사했다. 때문에 조심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제 오늘 신문사에 다녀오려고 합니다.》

《꼭 가야 합니까?》

김현철이 반드시 갔다와야 한다고 하자 그는 잠시 무엇인가 골똘히 생각하는듯 하더니 몇가지 주의점을 상기시켰다. 그리고는 놓친것이 없는가를 따져보더니 마침내 머리를 끄덕였다.

《다녀오십시오. 다시 강조하지만 절대로 외딴 곳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거나 택시를 타지 마십시오. 신문사에 갔다가 곧장 여기로 돌아와야 합니다. 무슨 뜻인지 아시겠죠?》

《알만 합니다. 곧 이 모든것이 무사히 끝나리라고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밖으로 나가려던 김현철이 멈춰서며 물었다.

《연희씨는 어쩝니까?》

《회사에 휴가연장을 신청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도 당분간 이곳에 머무를테니 념려마십시오. 여기는 안전합니다.》

김현철은 연희가 머무르는 방으로 올라갔다. 문을 두드리며 그는 가슴이 울렁이는것을 어찌할수 없었다.

연한 화장을 한 연희의 밝은 모습이 그를 반겼다. 은근한 향기가 연희의 몸에서 풍겼다.

방안으로 들어선 김현철은 잠시 숨을 돌리고나서 품에 손을 넣었다. 그가 꺼내든것은 홍콩에서 가져온 귀중한 자료들을 넣은 봉투였다.

《만일에 내가 돌아오지 못하면 이 자료들을 언론계에 뿌리십시오. 언론과 소통이 잘 안되면 인터네트에 올리도록 하십시오.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합니다.》

연희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다가왔다.

《함께 가면 안되나요?》

김현철은 봉투를 넘겨주고는 연희의 얼굴을 뚫어지게 들여다보았다.

그에게 신심이 되는 말을 해주고싶었지만 잘 떠오르지 않았다.

김현철은 숨을 크게 몰아쉬고는 입을 열었다.

《꼭 돌아옵니다.》

《무사히 돌아오기를 빌겠어요.》

김현철이 문가에서 사라지자 연희는 가슴을 조이며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오전 8시를 가까이 하고있었다.

신문사의 아침일과는 이전처럼 국장의 조회로부터 시작되고있었다.

김현철이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는 이미 국장이 결속발언을 하고있었다. 국장은 그가 들어서는것을 보고도 못 본체 하였다. 동료기자들도 힐끗 쳐다보고는 저들끼리 수군거렸다.

조회가 끝나자 자기 방으로 돌아온 부장이 인사를 건네는 김현철에게 물었다.

《홍콩에는 잘 다녀왔소?》

김현철은 대답대신 밤새워 집필한 기사를 제출했다.

부장이 중얼거리며 제목글을 읽었다.

《<한 가족을 무참히 파괴한 랍북드라마> … 이건 또 뭐요?》

부장이 의아한 시선을 던졌으나 김현철은 우선 기사를 읽은 다음에 얘기를 계속하자는 시늉을 했다.

부장은 빠른 말씨로 읽어내려갔는데 목석이라고밖에 할수 없는 신경질적인 그의 코맹맹이소리는 기사를 집필한 당사자의 기분을 잡쳐놓기에 충분했다.

《… 문태석은 결혼한지 1년후인 1987년 1월 2일 밤과 1월 3일 새벽사이에 거주지인 홍콩의 살림집에서 김춘옥을 살해하였거나 그에 가담하였을 혐의가 있다. 그리고도 문태석은 1월 5일 싱가포르주재 한국대사관에 나타나 <북한공작원에게 랍치됐다가 탈출했으며 안해는 북한간첩이였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문태석이 랍치를 꾸몄다고 주장한 그의 안해는 남편이 홍콩을 떠나기 훨씬 전에 자택에서 죽어있었다. 당시 문태석을 만나본 사람들은 그의 진술에 의문을 표시하였고 이와 관련한 기자회견을 여는것이 부적절하다고 서울에 건의했다. 하지만 안기부는 1987년 1월 8일 저녁 문태석을 타이의 수도 방코크로 데려갔으며 그곳에서 기자회견을 강행했다. 다음날 김포비행장에 도착한 문태석은 <동거하던 북한공작원 김춘옥과 이북대사관에 의해 랍치될번 하다가 탈출했다.>는 내용으로 또다시 기자회견을 하였다. …

그후에도 안기부는 여전히 문태석을 이북공작원에 의해 랍치되였다가 극적으로 탈출한 반공투사로 추어올렸다.

1987년 1월 26일 김춘옥의 주검이 발견돼 홍콩경찰이 문태석을 용의자로 지목하고 수사협조를 요청하자 안기부는 이를 거절하였다. 그리고 김춘옥을 이북공작원이라고 증언했던 문태석은 안기부와 련결되여있는것으로 보아지는 신원미상의 인물들에 의해 마약중독자로 전락된 후 그로 인한 정신분렬증으로 현재 정신병원에 격리, 감금되다싶이 한 상태이다.》

부장은 잠시 숨을 돌리며 김현철을 슬쩍 치떠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빠른 소리로 읽어내려갔다.

《… 1987년당시 김춘옥에게는 어머니가 생존해있었고 남동생과 언니가 있었다. 우와 같이 간첩사건이 조작, 류포되고있는 동안 그의 유가족은 간첩련루자들로 모함을 받아 안기부에서 폭력적, 야만적조사를 받고 사회적으로 완전히 매장되였으며 오랜 세월 피땀을 흘려가며 애써 꾸려놓았던 생계는 통채로 무너져갔다. 어머니는 안기부에서 받은 치명적인 고문의 후과로 그해 사망했다. 그의 언니도 심한 취조를 받은 이후에도 전화를 도청당하는 등 계속 감시를 받았고 시댁식구들로부터 리혼을 강요당했다. 당시 고등학교 학생이였던 김춘옥의 조카는 이모의 괴이한 죽음에서 충격을 받고 신경쇠약, 우울증 등 정신이상증세를 보이다가 1987년 3월 한강대교에서 투신자살했다.

… 독재권력과 민주화세력의 대결이 절정으로 치달았던 1987년이라는 시대적정황속에서 정권연장을 위한 밑거름으로 활용하고저 간첩사건을 인위적으로 조작하고 여론화하는 과정에 김춘옥이라는 한 인간의 생명과 명예가 처참하게 짓밟혔을뿐아니라 그 유가족의 삶이 되돌릴수 없게 파괴된것이다. …》

원고를 끝까지 읽고난 부장은 얼빠진 표정으로 멍청히 앉아있다가 중얼거렸다.

《꽤 날카로운걸. 이전의 원고보다도 더 충격적이야!》

김현철은 때를 놓치지 않고 덧붙였다.

《이건 부정할수 없는 진실입니다.》

부장은 눈이 둥그래졌다.

《그래 홍콩에서 정확한 증거라도 쥐였소?》

《물론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글을 써냅니까.》

부장은 김현철의 강경한 태도로 보아 또 기각당하면 다른 신문사에 투고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감이 앞섰는지 그와 원고를 번갈아 보다가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그리고는 잠간 기다리라는 말을 남긴채 잰걸음으로 밖으로 나갔다. 오래간만에 열이 오른 부장의 모습은 김현철의 마음을 야릇한 기분에 휩싸이게 했다.

얼마후 국장의 방에서 돌아온 부장은 김현철에게 가까이 다가오라고 손짓했다. 그는 마지막문장들을 가리켰다.

《조대풍에게로 몰아. 조대풍이 대통령선거에 후보로 출마한건 이미 알테지? 요즘 민중의 항의여론이 이만저만이 아니요. 부덕한 정치인의 최후의 말로라고나 할가. 그런데 본인은 그걸 아는지 몰라.》

그리고 덧붙였다.

《홍콩에서 취재했다는 록음물과 자료들을 몽땅 가져오도록 하오. 자네 원고의 신빙성만 확인되면 곧 게재하겠네.》

부장의 방을 나서며 김현철은 금시 눈물이 나올것만 같았다. 김춘삼의 눈물에 젖은 얼굴과 연희가 한시도 잊지 못해하는 소연이라는 녀동무의 피맺힌 호소가 떠올라서였다. 한껏 격동된김에 두팔을 크게 휘저었더니 아직 채 낫지 않은 가슴뼈가 우직거리는듯싶었다.

방으로 들어서던 김현철은 문득 장필성의 자리에 낯선 젊은 사람이 앉아있는것을 보았다. 새로 입직한 기자인것 같았다.

그는 곧 장필성에게 전화를 걸었다.

《선배님, 현철입니다. 어제 홍콩에서 돌아왔습니다. 물론 연희씨도 함께 말입니다.》

몇초쯤 흐른 후에야 장필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사했다니 됐군.》

《홍콩에서 문태석랍북미수사건의 내막을 알아냈습니다. 증거도 확보했습니다. 방금 부장에게 원고를 제출했는데 당장 게재하겠답니다.》

《그래?! 정말 잘됐어.》

왜서인지 나른한 느낌을 주는 목소리였다. 이 사건의 진실이 밝혀진것이 그리 달가운것 같지 않았다. 하긴 자기가 중도반단한 취재였으니 괴로움도 없지 않을것이였다. 하지만 김현철로서는 크게 실망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가 다름아닌 연희의 아버지여서 그런지도 몰랐다.

《혹시 무슨 일이 있습니까? 아니면 어디 편찮으십니까?》

《아니, 아무것도 아니요.》

《그래도 걱정됩니다.》

《실은…》 하고 잠시 뜸을 들이던 장필성이 말했다.

《김기자를 기다렸소. 해줄 말이 있어서…》

《뭡니까?》

《후에 만나 얘기하지.》

《헌데 지금 전화로는 안됩니까? 전 몹시 알고싶은데요.》

《그게…》

잠시 말이 없었다. 통화가 끊어진 모양이라고 생각하는 찰나에 장필성의 목소리가 다시 흘러나왔다.

《실은 지우에 대한 얘기요.》

《누구요?》

《김… 지… 우!》

김현철은 숨이 뚝 멎는것 같았다.

《다시한번 말씀해주겠습니까?》

《김지우! … 그는 나의 기자인생의 첫 동료이자 막역지우였소.》

김현철의 목소리가 떨려났다.

《정말 저의 아버지를 잘 아십니까?》

《…》

장필성은 대답이 없었다. 김현철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말씀해주십시오.》

《누구보다도… 그 누구보다도… 난 자네 아버지에 대해 잘 아네. 미안하네. … 자네가 지우의 아들일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었네.》

김현철은 뺨을 적시는 눈물을 닦을념도 않고 물었다.

《지금 계시는 곳이 어딥니까?》

《집일세.》

《제 그곳으로 가겠습니다. 이제 곧 가겠습니다! …》

통화를 끊고난 김현철은 손수건을 꺼내 얼굴의 눈물을 훔쳤다.

그는 복도를 거쳐 곧장 승강기쪽으로 다가갔다. 승강기는 맨 웃층에 있었다. 그것이 내려올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도 아까웠다. 그는 황급히 계단으로 뛰여내려갔다.

현관앞에서 들어서는 사람과 부딪치기도 하면서 김현철은 급히 밖으로 나섰다.

마침 신문사정문앞에 택시 한대가 서있었다. 캡을 쓴 운전사가 누구인지 기다리고있었다.

김현철이 다가가자 운전사가 눈치있게 뒤문을 열었다.

다급히 차에 뛰여오른 김현철은 빠른 말씨로 장필성의 집주소를 댔다.

부르릉-

발동이 걸리며 쏜살같이 차가 달렸다. 그런데 신문사를 벗어나자 별안간 골목길로 꺾어들며 급제동을 하였다.

앞의자의 등받이에 의지하여 앞으로 쏠리는 몸을 간신히 억제한 그가 무슨 일인가싶어 머리를 쳐드는 순간 량옆으로 난데없이 웬 사내들이 날아들어왔다. 눈앞에서 불꽃이 벙끗 튕겼다.

머리와 턱을 연방 얻어맞은 그가 정신을 차릴새가 없이 사내들은 그의 량손을 제압하고 의자밑으로 등을 내리눌렀다. 그 순간 차는 다시 씽하니 골목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뒤쪽에서 아츠러운 소리와 탕탕 부딪치는 소리가 잇달아 들리는듯 했으나 김현철은 밖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알수 없었다.

한 녀석이 그의 얼굴에 검은 수건을 덮어눌렀다. 마취제를 묻혔는지 인차 정신이 혼미해왔다. 그런 속에서도 김현철은 어떤 일이 있어도 택시를 타면 안된다고 주의를 주던 곽동수의 말이 새겨졌다. 그의 말을 명심하지 못한것이 참으로 후회되였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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