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8 회)

제 3 장 어둠속의 동쪽

38

 

해풍에 탄 검실검실한 사내가 잔파도를 헤치며 노를 젓고있었다. 인사말삼아 몇마디 건네보았는데 사내는 손을 저었다. 아마도 영어를 모르는 중국인인것 같았다. 홍콩사람이라면 대개 영어를 안다. 그런데 영어를 모른다면 홍콩에서 오래 산 사람이 아니라는걸 의미했다.

김현철은 한숨을 내쉬였다.

바다 한가운데 그리 크지 않은 선박 한척이 잔물결에 흥떡이고있었다.

사내는 고무배를 그 가까이로 몰아갔다.

갑판우에서 던지는 줄사다리를 쥔 김현철이 잠시 주저하자 등뒤의 사내가 어서 오르라는듯 그의 어깨를 툭 건드렸다.

이젠 어쩔 도리가 없었다. 김현철은 하는수없이 줄사다리를 타고 갑판우로 올라갔다.

두명의 선원이 김현철을 힐끗 쳐다보고는 뒤따라 올라오는 사내와 반갑게 포옹을 하며 웃고있었다.

하긴 그들이 자기에게 별로 관심을 돌리지 않는것이 그에게는 편안했다. 선미쪽으로 내려간 그는 고정의자에 앉아 흰 거품이 이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대체 이 배는 어디로 가는가? 곽동수의 련락이 있을 때까지 바다 한복판에 떠있어야 하는가?)

이런 생각을 하며 안절부절 못하는데 누군가가 뒤로 타박타박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가슴이 후두둑 뛰였다.

(연희의 목소리가 아닌가! 그는 지금쯤 서울에 있어야 하는데… 꿈은 아니겠지?!)

기연가미연가하면서 고개를 돌렸다.

정말로 뒤에는 연희가 어줍게 웃으며 서있었다.

저도 모르게 반갑게 웃던 김현철은 인차 그런 자기에게 화를 냈다.

그는 고집스럽게 바다로 머리를 돌려버렸다. 연희만은 이 위험한 곳을 한시바삐 벗어나게 하려고 했는데 역시 실패한것이다. 어제 분명 비행장의 수평승강대로 들어가는 모습을 확인하였었다. 그런데 어떻게 이곳에 나타났는가?

곽동수가 신의가 없다고 욕할수도 있다고 한 말뜻을 이제야 깨달았다.

그는 연희가 이 배에 올라 김현철을 기다린다는것을 미리 알고있었던것이다.

연희가 다가와 옆에 앉았다.

김현철은 퉁명스럽게 말했다.

《날 속였군요.》

《미안해요. 실은 서울로 가려고 려객기 승강대까지 갔었는데 결국 돌아서고말았답니다. 엊저녁에 호텔로 돌아오니 동수오빠가 이곳 지형을 연구하고있더군요. 그는 어쩌면 김기자가 이 배편을 리용하는게 좋을것 같다고 했어요. 그래서 제가 동수오빠가 말리는걸 우겨가지고 이 배에 올라 기다린거예요. 모두 제가 벌린 일이니 다른 사람을 탓하지는 말아주세요.》

탓하기는커녕 김현철은 지금 연희를 꼭 껴안아주고싶은 충동을 가까스로 참고있었다. 이 위험천만한 곳을 떠나지 않고 자기를 기다려준 처녀, 위급한 순간마다 나타나 자기를 위안해주고 힘을 주는 천사와도 같은 처녀! … 이런 연희가 고맙기 그지없었다. 지금도 어쩌면 이대로 어떤 무서운 곳으로 끌려가버릴지 모른다고 불안해하고있을 때 이 처녀가 나타나 신심을 주고있었다. 이보다 더 어여쁘고 이보다 더 고마운 처녀가 어디에 있을가!

바로 이런 연희가 자기를 기다려주고 지금 나란히 앉아있다는 사실자체가 김현철에게는 넓은 바다를 통채로 안은것만큼이나 기뻤다. 그러나 아직은 위험천만한 홍콩의 바다에 떠있는것이다. 어떤 무서운 함정이 자기들을 기다리고있는지 알수 없다. 앞일을 장담할수 없기에, 도대체 어떤 폭풍이 불어올지 모르기에 그래서 더더욱 마음을 놓을수 없었다.

연희는 주저하며 다시 곱씹었다.

《정말 미안해요. 약속을 어겨서…》

김현철은 아득한 수평선에서 눈길을 떼지 않고 물었다.

《나와 함께 있는게 두렵지 않습니까?》

연희가 속삭였다.

《사실… 겁이 나요. 그렇다고 혼자 돌아갈수는 없었어요.》

《그래도 이왕 떠난 걸음인데 돌아갈걸 그랬습니다.》

《혼자 서울로 돌아가 무슨 일이 생기지 않을가 걱정하기보다는 이렇게 함께 있는게 더 편안해요.》

김현철은 연희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희다못해 파르스름해보이는 자위에는 피발이 번져있었다. 까만 눈동자에는 자기의 얼굴이 우습강스럽게 비껴있었다. 곱게 까풀진 눈귀에 붙은 속눈섭이 촉촉히 젖어있었다.

아마도 고무배를 타고 선박으로 다가오는 김현철의 모습을 발견하고 반가움에 젖어 어느 구석에서인가 눈물을 흘리고있었던 모양이였다. 이렇게 속이 여린 처녀가 오직 자기를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있다는 사실이 더욱 가슴이 달아오르게 했다.

김현철은 진정을 담아 속삭였다.

《고맙습니다.》

연희는 방실 웃었다. 상쾌한 봄하늘의 무지개같은것이 연희의 얼굴우에 비꼈다.

《그런 말도 할줄 아세요?》

《난 고마움도 모르는 목석인줄 알았습니까?》

《글쎄요. 그러나 어제 승용차안에서는 정말 미웠어요. 얼마나 내게 모질게 말했는지 아세요?》

《그랬습니까?》

김현철은 진심을 담아 말했다.

《사과하지요. 그때도 사실은 고맙다는 말을 먼저 하고싶었습니다.》

《그만하세요. 정색해서 그런 말을 하니 오히려 어색해요.》

연희는 얼굴을 살짝 붉혔다. 푸른 물결이 출렁이는 바다며 하늘을 즐겁게 날아예는 흰 갈매기들… 손톱 하나 다치지 않고 무사한 김현철을 보는것만으로도 좋았는데 그의 진심을 듣게 되니 기쁨은 배로 불어났다.

김현철은 지금 연희와 함께 안전한 곳으로 가고있다는것을 깨달은 후부터 자기나름의 사색을 쫓기 시작했다.

왕형사의 말대로 한다면 김춘옥이 살해되기 1년전부터 그의 죽음을 예고하는 일종의 음모의 서막이 열리기 시작된셈이였다.

김춘옥은 문태석을 동행랍치할 상태가 아니였다. 그것은 문태석이 싱가포르로 가기 전에 이미 죽어있었기때문이였다. 김춘옥을 제거하려는 음모가 사전에 계획되여있었더라도 그 장소가 홍콩의 자택이 아니였던것만은 명백했다. 그래서 문태석은 김춘옥의 불의의 죽음을 《랍치미수》씨나리오에 맞추기 위한 뒤수습을 하려고 출국날자를 부득이 연기하지 않으면 안되였을것이였다.

어느덧 선박은 홍콩섬의 어느 부두에 닿았다.

선창에 내린 선원들은 그들을 부두가의 어느 낡은 주택으로 안내했다.

김현철은 연희에게 TV를 켜주고는 주방으로 나갔다. 몸이 좀 으시시한데 더운 차라도 끓이려는것이였다.

그러나 물주전자가 달아오르는것을 보면서도 그의 생각은 한곬으로만 흘렀다.

다시 보건대 문태석의 출국이 하루 늦어진것은 김춘옥의 죽음과 련관되여있었다. 당시 홍콩을 뜨기 위해 출국수속을 마치고 비행기에 오르려던 문태석은 돌발적인 련락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이미 자기를 둘러싼 어떤 음모를 눈치챘던 김춘옥은 데리러온 사내들의 요구를 거절하고 그에 반항해나섰다가 죽음을 당한것이 거의 확정적이였다. 그러니 그를 살해한자들은 별수없이 문태석에게 련락하여 급변하는 정황을 알려주고 대책을 협의했을것이다. 당시의 특수한 형세속에서 시체운반은 무리였다.

따라서 문태석은 돌변사태에 대처한 준비를 갖추느라 출국을 하루 미루어야 했고 당시의 현장부재를 증명하기 위해 비행장에서 가까운 집이 아니라 호텔에 투숙했을것이다. 바로 각본을 뒤집게 한 이것이 《랍북미수》사건에 치명적인 모순을 남긴것이였다.

김춘옥의 죽음을 알게 된 문태석은 몹시 흥분상태에 있었다. 그것은 리도희가 처음 문태석을 만났을 때 그의 정신상태가 말이 아니였다고 한 증언으로 확인할수 있다. 그렇다면 문태석은 전문적으로 훈련받은 요원이 아니라 김춘옥이처럼 리용된 꼭두각시인것이 틀림없다. 혹시 그가 싱가포르에서 미국대사관에 먼저 뛰여들어간것도 그 어떤 무서운 위협과 공포에 질려 제땅이 아니라 미국으로 망명하는것이 더 안전하다고 생각해서였는지도 모른다. …

그때 별안간 연희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김현철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는 손에 들었던 주전자를 떨구며 다급히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방안에는 연희 혼자만이 있을뿐 그 어떤 침입자도 없었다. 하지만 연희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려있었다. 두손으로 입을 싸쥐고 와들와들 떨고있는 모습이 무서운 의혹을 자아냈다.

《무슨 일입니까?》

연희의 곁으로 급히 다가간 김현철은 그의 손을 꼭 쥐였다. 몹시도 차거웠다. 그 차거움이 그대로 김현철의 가슴을 오싹하게 했다. 그는 연희의 눈길을 쫓아 TV화면을 주시했다.

무성한 수림속, 오솔길 같은 작은 도로, 총탄에 벌둥지가 된 검은 승용차, 재빛연기, 너저분한 사람들의 시체, 땅바닥에 내배인 붉은 피자리와 떨어져나간 살점들… 얼핏 망가진 차의 번호판이 스쳤다.

김현철은 숨이 꺽 막혔다. 다름아닌 곽동수와 자기가 탔던 차였다. 그는 음향을 높였다. 방송원의 말소리가 들렸다.

《…해안거리 13번도로입니다. 방금전에 이곳에서는 테로분자들의 공격이 있었습니다.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승용차에 타고있던 두명의 남성이 사살되였다고 합니다. 경찰과 테로분자들과의 교전이 벌어져 5명의 테로분자전원이 죽고…》

연희는 손을 비벼대며 신음소리를 냈다.

《현철씨! … 이 일을 어쩌면 좋아요?》

김현철은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믿어지지 않았다. 어떻게 밝은 대낮에 이런 몸서리치는 일이 벌어진단 말인가.

암만 봐도 차량은 분명 자기들이 타고 갔던 그 차였다. 곽동수는 정말 잘못되였는가? 차안에서 두사람의 시체가 발견되였다고 한다. 왜 두사람일가? 자기는 배를 타고 이곳으로 왔으니 곽동수가 혼자 차를 몰았어야 한다. 피뜩 서로 부축하면서 미끄러운 돌층계를 오르던 곽동수와 늙은 왕형사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가 무슨 까닭인지는 모르겠지만 곽동수와 동행하였다가 변을 당한것은 아닐가? 그럴수도 있다. 그러나 방송원의 목소리를 들으며 김현철은 자기의 추측을 부정했다. 방송원은 차안의 두사람은 모두 외지인으로 현재 신원을 파악하는중이라고 보도했다. 왕형사라면 신원파악이 그렇게 오래지 않을것이다. 왕형사가 아니라면 대체 누구인가? 어쨌든 두사람중의 한사람은 분명 곽동수일것이다. 이 일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 죽지 않을수도 있는 사람이 자기때문에 애매하게 죽었다는 사실앞에 김현철은 눈앞이 아찔했다. 세상에 어쩌면 이런 참혹한 일이 생긴단 말인가!

김현철은 달아오르는 분노로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문태석《랍북미수》사건은 결코 과거사가 아니였다. 거대한 음모는 끝난것이 아니라 지금까지도 계속 이어지고있었다. 바로 저 불타는 차량이 이것을 증명하고있었다. 그렇다. 래일은 그놈들이 차량이 아니라 김현철자신을 겨누고 달려들것이다. 하지만 그는 절대로 물러설수 없었다.

주먹을 꽉 틀어쥔 그는 부르짖었다.

(이 흉악한 놈들! 내 기어이 네놈들의 죄행을 낱낱이 고발할것이다!)

날이 어두워지자 두명의 선원이 찾아왔다. 그들은 무뚝뚝한 표정으로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곽동수가 사라져버린 이 순간 무턱대고 그들을 믿는것이 께름직했지만 다른 방도가 없었다. 연희도 공포를 의식한듯 몸을 옹송그렸다.

이젠 곽동수대신 자기가 그를 지켜야 했다.

림기응변을 제일의 무기로 여겼던 김현철이였으나 지금은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그래서 선원들의 뒤를 따르면서 그는 한뽐가량 되는 과일칼을 슬그머니 소매에 감추었다. 좀 무디기는 했지만 없는것보다는 나을지도 몰랐다.

항구는 어둠에 잠겨있었다. 센 바람이 불었다. 파도가 선창을 때리며 철썩거렸다.

선원들은 작은 손전지를 비쳐가며 산더미같이 무져놓은 화물들의 사이를 빠져나갔다. 망망한 바다를 배경으로 큰 화물선 하나가 보였다.

화물선으로 다가간 선원들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다.

김현철은 겁에 질린 연희의 손을 꼭 쥐였다. 연희의 손은 아직도 얼음장같았다.

김현철은 힘주어 속삭였다.

《힘을 내요. 우린 반드시 돌아갈수 있습니다. 나를 믿으십시오.》

차거운 달빛아래 연희의 눈동자가 희망을 안고 반짝였다. 그는 김현철의 손을 꼭 쥐였다.

《우린 꼭 살아서 돌아가야 해요.》

연희가 그의 말을 되받아외웠다.

갑판우에서는 머리끝까지 고무비옷을 뒤집어입은 한 사나이가 기다리고있었다.

김현철이 올라서자 그가 천천히 다가왔다. 그리고는 말없이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김현철은 바싹 긴장해진 자세로 바라볼뿐 그에 응하지 않았다.

그러자 상대가 불쑥 비옷의 모자를 뒤로 벗어제꼈다.

김현철은 두눈을 의심하지 않을수 없었다. 뜻밖에도 곽동수의 둥근 얼굴이 눈앞에서 벙글거리고있었다.

《놀랐습니까?》 하고 물었으나 김현철은 얼이 나간듯 마주볼뿐이였다.

연희가 환성을 올리며 곽동수에게 매달렸다.

《동수오빠! 정말 오빠예요?! 우리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요?》

곽동수는 눈을 찡긋해보였다.

김현철은 가슴을 지리누르던 큰 바위덩이가 푸른 바다에 풍덩 떨어져버린것만 같았다. 그는 두팔을 벌리고 힘껏 부둥켜안았다. 곽동수도 그를 굳게 포옹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손끝 하나 다치지 않고 돌아와주어 정말 고맙습니다.》

김현철은 뜨겁게 달아오른 시선으로 곽동수의 몸을 살폈다.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압니까? 해안거리도로에서 벌둥지가 된 승용차와 테로분자들과의 충돌이 있었다는 실황보도를 보고 눈앞이 아뜩했습니다. 난… 정말이지 자신을 용서할수가 없었습니다. 만일에 나대신에 다른 사람이 목숨을 잃는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합니다! … 좀 봅시다. 어디 다친데는 없습니까?》

어둠속에서 곽동수는 씩 웃었다.

《괜찮습니다. 보는것처럼 멀쩡합니다.》

곽동수는 태연하게 웃었으나 정말 아무렇지 않은것은 아니였다. 그야말로 지옥에서 꿈같이 살아 돌아온것이였다.

《… 내가 별장을 떠나기 전에 왕형사는 누군가가 당신을 쫓고있다면서 자기 집에서 하루밤 묵고 가도 괜찮다고 권고하였습니다. 아마도 불길한 예감이 들었던 모양입니다. 내가 그냥 떠나자 왕형사는 자기의 옛 부하였던 한 형사에게 전화를 걸더군요. 별장지구로 통하는 해안거리를 주목하라고 말입니다. 마침 테로분자들의 습격이 개시되자 직승기를 타고 순찰중이던 경찰들이 때마침 나타나 나를 구원해주었습니다. 테로분자들은 모두 사살되였습니다. 하긴 설사 살았다고 해도 테로를 조직한자가 누구인지는 알아낼수 없었을겁니다. 경찰들이 나를 직승기에 옮겨태울 때 난 그들에게 부탁했습니다. 오늘 밤까지는 차를 타고 가던 두사람이 모두 즉사하였다고 거짓방송을 해달라고 말입니다. 처음에는 난처해했지만 왕형사의 이름으로 당부한다고 하자 나의 말에 동의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아마도 지금쯤이면 당신과 내가 살아있다는걸 눈치챘을겁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김현철이 곽동수의 손을 힘주어 다시 잡자 그가 물었다.

《이젠 진짜로 날 믿습니까?》

《그런 말이 어디에 있습니까. 나때문에 죽다 살아온 사람을 믿지 않는다면 누구를 믿겠습니까?》

《그렇다면 한가지 제의하겠습니다.》

곽동수가 말했다.

《앞으로 김기자가 무엇을, 어떻게 하려는지 나는 모릅니다. 그러나 당분간은 우리와 함께 있어야 하겠습니다. 뿔뿔이 흩어져있으면 더 위험합니다. 이미 목숨을 걸었던만큼 좋은 결말을 제눈으로 직접 보고싶습니다.》

그의 얼굴에 의미심장한 표정이 어려있었다.

《한가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어떻게 되여 희생도 무릅쓰며 우리들을 도와주는것인지 알수 없을가요?》 하고 김현철이 물었다.

예상치 못했던 질문이였던지 곽동수는 한동안 덤덤히 서있었다.

김현철은 정황에 맞지 않게 물은것 같은 후회도 없지 않았지만 지그시 대답을 기다렸다.

이윽고 곽동수가 무거운 입을 열었다.

《글쎄요, 일반적으로 정의와 량심을 위한다고 말한다면 거리가 좀 멀다고 할수도 있겠지요. 나는 당신들이 힘이 없고 가난한탓에 억울하게 모함을 당한 불행한 사람들을 위해 발벗고 나서는것을 보면서 생각이 많아지더군요. 불우했던 나자신의 과거를 돌이켜보며 동병상련의 감정도 느꼈고 이런 사람들을 도와주는것이야말로 지난날 본의아니게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 자신을 회개하고 량심적으로 살수 있는 길이라고 확신했답니다.》

김현철은 그의 대답속에 진심이 깃들어있음을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곽동수의 얼굴에 비분이 서리는것을 보면서 의아한 생각도 없지 않았다.

《더우기 저들의 흉계와 죄악을 덮어보려고 무고한 사람들의 목숨을 해치는것쯤엔 눈섭 하나 까딱하지 않는 악한들의 행위를 직접 겪고 내가 아는 폭력세계와는 대비도 할수 없는 권력에 미친 야수의 세계까지 체험하고보니 이런 이리떼들과는 계산하는 방식이 달라야 한다는것을 깨닫게 되였습니다.》

《?!》

《물론 나라고 왜 죽음이 두렵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 이 일은 의롭고 강직한 당신들을 돕는 과정인 동시에 불쌍한 민중을 롱락하고 학대하다 못해 죽음에로 가차없이 몰아가는 악당들에 대한 제나름의 보복전이나 같다고 할수 있을것입니다. 내가 인생에 두번다시 태여난다면 바로 이것을 위해서일것입니다. 지금까지는 나자신을 위해 폭력을 써왔다면 이제부터는 정의와 량심을 위해 나를 다 바치렵니다. … 간절한 부탁입니다만 인간의 탈을 쓴 철면피한 저 마귀들을 온 세상이 다 알도록 폭로해주십시오. 인간의 지성과 량심이 내릴수 있는 가장 무자비한 천벌을 받도록 말입니다.》

김현철은 진심으로 약속했다.

《감사합니다. 반드시 그 파렴치한 악당들을 파멸시키겠습니다.》

곽동수는 곧 서울로 돌아가게 된다고 하면서 배머리쪽으로 갔다.

그의 뒤모습을 미더운 눈길로 쫓던 김현철은 누군가가 살며시 손을 쥐는것을 감촉했다.

연희였다.

《정말 위험이 다 물러간걸가요?》

《그렇게 생각해도 될겁니다. 이젠 마음을 놓아도 되겠습니다.》

《우린 끝내 함께 돌아가는군요.》

《그렇습니다. 이렇게 함께 갑니다.》

김현철은 연희의 손을 감싸쥐였다. 두사람은 동시에 손에 힘을 주었다.

이 순간 그들은 행복했다. 드디여 모든 위험은 새벽안개처럼 가뭇없이 사라져버린것 같았다.

한쌍의 남녀는 오래도록 서로 손을 맞잡고 마주보며 서있었다. 물기를 한껏 머금은 밤바람이 불었다. 연희의 머리칼이 제멋대로 흩날렸다. 그래도 좋았다. 차거운 바다바람은 되려 상쾌한 기분을 더해주었다.

연희의 눈이 반짝반짝 빛나고있었다. 김현철은 그 눈동자가 마치도 진주보석처럼 아름답게 보였다.

정말로 모든것이 끝났다. 위험은 사라지고 곽동수도 살아있다. 그리고 연희의 눈동자는 야광석처럼 빛난다!

이 시각 김현철은 자기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나이라는것을 믿어의심치 않았다!

 

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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