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3 회)

제 3 장 어둠속의 동쪽

33

 

산책을 하려고 집문밖을 나서려던 장필성은 뜻밖의 사람들과 마주서게 되였다.

한사람은 검은 옷에 하얀 십자가를 건 신부였고 다른 사람은 수녀였다.

때아닌 낯선 교인들의 출현은 그를 어리둥절하게 하였다.

《무슨 일입니까?》

장필성은 신부와 수녀를 번갈아 보았다.

《이전에 명동일보사에서 기자일을 보시던 장필성이라는분을 만나러 왔습니다.》

신부가 말했다.

《접니다.》

그는 경계하는 눈빛으로 두사람을 주시했다.

《강정웅이라고 합니다.》

《아, 신부님에 대한 이야기는 익히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만나게 될줄은 몰랐습니다. 무슨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서 들어오십시오.》

장필성은 손님들이 들어올수 있게 문을 활짝 열었다. 그러면서도 그들의 얼굴을 슬쩍 살폈다.

웬 일인지 두사람의 낯빛은 밝지 못했다.

장필성은 결코 즐거운 일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방안에 들어와 쏘파에 앉은 손님들에게 그는 차를 대접했다.

그들이 차를 다 마실 때까지 침착하게 기다린 장필성은 은근한 어조로 물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저를 찾아오셨는지요?》

잠시 장필성을 여겨보던 강정웅은 웅근 목소리로 꼭지를 뗐다.

《1969년 겨울에 한 재일교포에 대한 공판이 있었는데 그는 이북간첩으로 판명되여 사형을 당했답니다. … 그 사람의 이름을 김지우라고 불렀습니다.》

장필성은 눈을 지그시 감고 묵묵히 듣고있었다. 그러나 그의 표정은 서서히 굳어져가고있었다.

강정웅은 그의 얼굴에서 눈길을 떼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그때 김지우씨를 담당하였던 변호사는 검사의 기소와는 달리 참으로 애매한 사건이였는데 무죄를 보증할 증인이 출석하지 않아 진실을 밝힐수 없었다고 하였습니다. 그 증인을 찾아간 피고인의 처도 공판을 앞두고 누군가에 의해 살해당했습니다. 시신은 이듬해 봄에야 찾아냈지요. 사망한 그 녀인이 찾아가던 증인은 장필성이라는 이름을 가진 기자였습니다.》

침묵이 흘렀다.

퍼그나 시간이 흘러서야 장필성은 문득 잠에서 깨여난듯이 눈을 떴다.

그리고는 물었다.

《차를 더하시겠습니까?》

《아니, 괜찮습니다.》

장필성은 신부의 눈을 빤히 응시했다.

《퍽 오래전의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왜 지금에 와서 그 사건에 대해 알고싶어하십니까?》

《사람은 죽어도 명예는 남습니다.》

《단지 김지우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서이다, 그 말씀입니까?》

《다른 뜻은 없습니다.》

장필성은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 왜 하필 교회에서 찾아오는겁니까? 지우는 무신론자였습니다.》

두사람의 시선이 부딪쳤다. 강정웅은 장필성의 얼굴에 분노가 서리는것을 느꼈다.

방안공기가 팽팽해지자 곁에서 듣고만 있던 수녀가 한마디 하였다.

《신부님은 제 일때문에 여기까지 오셨습니다.》

장필성은 얼굴을 찡그렸다. 날카로운 눈길이 옮겨지자 수녀는 머리를 숙였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라경숙입니다.》

《수녀님은 지우를 아십니까?》

《아니요. 서로 만난적은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왜 이 사건에 관여하십니까? 누군가의 부탁이라도 받으셨는가요?》

《아닙니다.》

《누구의 부탁도 없었고 지우와는 아는 사이도 아니라면 왜 오래전의 사건에 관심을 가지십니까?》

《제 아들때문입니다.》

장필성은 허거프게 웃었다.

《수녀님에게 아들이라… 괴이하군.》

라경숙은 차분한 어조로 계속했다.

《그애한테서 장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제 아들의 말로는 장선생님에게 많이 배운다고 하더군요.》

장필성은 얼굴을 다시 찡그렸다.

(대체 이 수녀가 무슨 말을 하고있지? 아닌밤중에 홍두깨라더니 불쑥 나타나 지우에 대해 묻더니만 이제는 웬 아들타령인가? 대체 오늘이 무슨 날인가? 왜 이렇게 골이 쑤시고 가슴이 답답할가?)

장필성은 머리를 세게 흔들었다.

《그 아들이 대체 누굽니까?》

잠시 침묵하던 라경숙이 나직이 외웠다.

《김현철입니다.》

《누구라구요?! 명동일보사 사회부의 김기자말입니까?》

장필성이 펄쩍 놀라며 되물었다.

《예.》

《김기자가 왜 이 사건에? …》

《그애는 제 친아들이 아니고 고아원에서 입양한 양아들입니다.》

《아니아니, 내가 묻는건 김기자가 지우와 무슨 상관인가 말입니다.》

장필성은 리성을 잃고 소리를 쳤다.

라경숙은 차마 그 정상을 못 보겠다는듯 고개를 돌렸다.

장필성은 소름이 끼쳤다. 불길한 예감이 머리를 쑤셨다.

(아니다, 아니다. 그럴수는 없지 않는가?)

강정웅이 흰자위를 번뜩이는 그의 모습을 보다못해 끼여들었다.

《옳습니다.》

《뭐가 옳다는거요?》

장필성이 항거하듯이 반문하였다.

강정웅은 그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지금 장기자가 예상하는것 그대로입니다.》

《그럴수 없소.》

《사실이요. 김현철은 바로 김지우의 친아들이란 말입니다.》

(미쳤다! 잔인하다! 정말 잔인하고 미친 신부다!)

장필성의 뺨은 중풍을 만난듯이 푸들푸들 떨었다. 그는 후들거리는 손을 간신히 들어올려 얼굴을 가리웠다.

《그럴수 없소. 그럴수 없소.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수 있는가?! … 그럴수 없다니까…》

장필성은 두손으로 얼굴과 머리를 싸쥐였다.

(이건 꿈이야. 나는 지금 악몽을 꾸고있어.)

그는 애써 방금 들은 사실을 부정하고싶었다. 그러나 눈앞의 두사람은 마치 성상처럼 굳어진 자세로 자기를 지켜보고있었다.

장필성은 숨을 거칠게 헐떡거렸다. 경련을 일으킨듯 온몸이 푸들푸들 떨렸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김기자가 김지우의 아들이라니?! 과연 이게 사실이란 말인가!)

강정웅이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의 손바닥에는 진정제가 놓여있었다. 그러나 장필성은 그 손을 밀어버렸다. 그리고는 고뇌로 일그러진 얼굴을 라경숙에게로 돌렸다.

《한가지 알고싶은게 있습니다.》

장필성이 간신히 내뱉았다.

《김기자가 어렸을적에 거리를 방랑한적이 있습니까?》

뜻밖의 질문에 어리둥절했던 라경숙이 궁싯거리다가 마지못해 대꾸했다.

《예.》

《바다에 빠진적도 있습니까?》

《예.》

온몸을 찢어발기는듯 한 고통이 장필성을 엄습했다. 인천의 방파제우에서 김현철이 하던 말이 노호하는 파도처럼 들려왔다.

… 《선배님이 제 생명을 마음대로 규정하십니까? 그럴 권리를 가졌습니까? 한 소년이 날바다에 몸을 던졌습니다. 죽자고 던진게 아니라 살자고 던졌습니다. 그애가 애오라지 바라보며 헤염쳐간게 뭔지 압니까? 썩고 쪼그라든 양배추 한쪼각입니다. 왜 소년은 그 양배추쪼각에 자기의 생명을 걸어야 했습니까? 누가 그렇게 만들었습니까? 대체 생명이란게 뭡니까? 누군가는 자기가 살자고 갓난아기를 성당에 버렸다고 합니다. 과연 어떤 생명을 구하기 위해 다른 생명을 희생시킬수 있다고 봅니까? 생명의 가치를 천평에 올려놓고 잴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

(어떻게 이런 일이… 장필성! 넌 천벌을 받았다. 끝내 천벌을 받았어!)

한동안 죄의식과 자신에 대한 분노를 씹어삼키던 장필성은 기진하여 물었다.

《김기자도 이 사실을 알고있습니까?》

《제 친아버지가 사형당하였다는 사실까지는 알고있습니다. 그러나 그 애가 존경하는 선배분이 이 사건에 련루되여있다는 말은 차마 할수 없었습니다.》

라경숙은 눈물이 글썽했다.

장필성은 땅이 꺼지게 한숨을 내쉬였다.

《김기자를 만나야겠습니다.》

《지금 당장이요?》

《예, 이건 신부님이나 수녀님앞에서 할 속죄가 아닙니다.》

《현철이는… 지금 이곳에 없습니다. 아마도 지금쯤 홍콩으로 가고있을겁니다.》

장필성은 다시 펄쩍 놀랐다.

《뭐라고 했습니까? 김기자가 어디로 간다고요?》

《홍콩입니다.》

《홍콩?!》

장필성은 멍한 눈길로 강정웅과 라경숙을 번갈아 보았다.

《죽습니다!》

《예?!》

《뭐라구요?》

《죽는다고 했습니다. 김기자가 홍콩에 가면 살아돌아올수 없습니다.》

《대체 무슨 말씀이십니까?》

라경숙은 너무 놀라 눈이 휘둥그래졌다.

《현철이는 신문사에서 긴급취재가 제기되여 간다고 했습니다.》

《아닐겁니다.》

장필성은 고집하며 전화기를 들었다. 신문사와 몇분간 통화를 하고나서 그는 긴장한 얼굴을 손으로 내리쓸더니 말했다.

《수녀님의 말씀이 옳았습니다. 김기자는 경제실무대표단의 수행기자로 홍콩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위험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말씀이 어디 있습니까? 대체 누가, 무엇때문에? 왜 아무런 죄도 없는 우리 현철이를 노린다는겁니까?》

라경숙은 파랗게 질려 빠른 말씨로 따져물었으나 장필성은 대꾸도 없이 서있다가 번개라도 맞은듯이 놀라며 다시 전화기를 들었다.

《누구냐? 연희냐?》

《예, 아버지.》

《어디에 있냐?》

《회사예요.》

장필성은 창황중에도 안도의 숨이 나갔다.

《그래, 그럼 됐다. 언제 오느냐?》

《그러지 않아도 전화를 하려던 참이예요. 회사일이 밀려서 한 사나흘 야근을 해야 할것 같아요. 밥은 식당에서 먹겠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 알았다. 날씨도 차지는데 몸간수를 잘해라.》

통화를 끊고난 장필성은 한동안 얼나간듯이 서있다가 다시 얼굴을 싸쥐였다.

세상에 이런 일이 있다니…

눈물이 주름진 두볼을 적시며 주르르 흘렀다.

자기의 씨를 받은 새 생명이 이 세상에 고고성을 울리던 그때에 장필성은 그 아이에게만은 떳떳한 아비로, 참된 스승으로 살고싶었다. 그런데 초기의 뜻은 어디로 가버리고 이런 너절한 처지에 놓였는가. 비굴한 탓으로 친우를 죽였고 진실을 오도하여 그 친우의 아들마저 날벼랑턱으로 떠밀어버리지 않았는가. 무슨 악마의 꾀임을 받아 인생이 이런 시궁창으로 나떨어져버렸는가!

장필성은 드디여 과거사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지금껏 누구에게도 지어 딸에게도 감추고 살아온 비화였다.

《… 나는 지금의 김기자보다도 더 애젊었던 20대시절에 그의 아버지인 지우를 만났습니다. 지우는 일본에서 사는 재일동포였는데 멋지게 잘난 청년이였지요. 그때는 60년대 초엽이여서 정말로 복잡다단한 시기였습니다. 신부님이 지우의 재판내용을 어지간히 파고드시였으니 이미 아시리라고 봅니다. 4. 19봉기가 있은 후 나라의 민주화와 통일을 바라는 민중의 념원을 반영하여 하루빨리 남북간의 협상과 교류의 실현을 주장하고 그것으로 민족의 진로를 밝히는 진보적인 경향을 가진 <하나일보>라는 신문이 태여났습니다.

나는 일이 잘되여 그 신문사의 도꾜특파기자로 일본으로 건너가게 되였습니다. 그곳에서 현지동포출신으로서 특파기자로 활동하고있던 김지우를 만난것입니다. 지우는 4. 19봉기이후 귀국하여 신문사를 창설한 정영수사장과 일본에 있을 때부터 뜻을 함께 나누던 동지였습니다. 나는 지우와 함께 비록 낯설고 물설은 이국땅에서 비록 고생은 많이 겪었지만 내 나라와 민족을 위해 참된 일을 하는것 같아 일이 힘든줄 몰랐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열정과 보람은 5.16군사쿠데타의 군화밑에 무참히 짓밟히고말았습니다.

하루아침에 총칼로 이 땅을 무참히 짓밟고 행정, 립법, 사법 등 3권을 완전히 탈취한 군사정권은 <하나일보>를 페간하고 정영수사장을 구속하였습니다. 독재의 칼날에 정영수사장이 처형되였다는 소식을 나는 지우와 함께 일본에서 들었습니다. 신문사가 페간된 후 나는 일본에 남아있을 리유가 없어 귀국하여 곧 다른 신문사에 취직하였습니다. 하지만 지우는 비록 뒤늦었지만 정사장의 무죄와 신문페간의 부정당함을 주장하여 해외에서 상소를 하고 집회도 벌리며 무진 애를 썼습니다. 하지만 원체 총칼밖에 모르는 군사깡패들에게는 마이동풍이 아닐수 없었지요.》

장필성이 무겁게 한숨을 내쉬였다.

《그렇게 몇해를 보냈는데 하루는 깊은 밤중에 지우가 나를 찾아왔습니다. 그가 서울에 온줄 모르고있던 나는 깜짝 놀랄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그는 임신중인 안해와 함께 왔었습니다. 그날 밤 우린 오래간만에 회포도 나누고 울분도 토로했습니다. 알고보니 지우는 정영수사장 부친의 부탁을 받고 서울로 온것이였습니다. 정사장의 체포와 함께 압수당했던 <하나일보>는 원래 여러 주주들의 투자로 설립된 신문사라 그의 부친이 지우에게 그 재산을 돌려받을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부탁했던것입니다.

원체 정의로운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곧은 성격이였던 지우는 곧 서울로 건너와 천방지축 뛰여다니며 노력하던 끝에 간신히 몰수당한 그 재산을 환부하라는 지시문이 발급되도록 하는데 성공하고야말았습니다. 그런데 지우는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이 기회에 비극적사건의 진상까지 밝혀내겠다는 립장이였습니다.

그는 정영수사장에게 가해진 사형과 신문사의 페간은 이 땅의 민주주의를 말살한 중대한 범죄행위라고 하면서 <하나일보>사건은 쿠데타를 통한 정권찬탈과정속에 계획된 비법적이며 의도적인 살인사건의 하나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재산문제를 기화로 정사장의 죽음에 대한 진상까지 파헤치고 온 세상에 폭로할 작정이였습니다. 나도 그때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고 맞장구를 쳤었습니다.

초기에는 재산을 되찾는 일이 잘 진척되는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후에 생겼습니다. 신문사의 재산은 5. 16쿠데타직후부터 사실상 중앙정보부에서 강압몰수해 사용해오던중이였는데 치안국에서 발급한 지시문을 받고 나왔다는 정보부의 계장이라는자는 구구한 말을 늘어놓으며 한달후에는 어김없이 반환하겠다고 약속해놓고는 리행하지 않았던겁니다. 한편 지우는 자기가 목적한바대로 정사장의 재판관계 서류들을 찾고있었는데 그 행처는 참으로 오리무중이였습니다. 어딜 가나 사건을 취급한 당사자가 아니면 그 서류를 보여줄수 없다고 거부를 당하는 판이였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지우로부터 재판기록문건을 찾을것 같다는 반가운 소식이 전해왔습니다. 나도 일이 잘되는가부다 하고 여겼습니다.》

장필성은 괴로운듯 잠시 말을 끊었다.

강정웅과 라경숙은 심중한 표정으로 귀를 강구고있었다.

《… 하루는 퇴근하여 집문앞에 이르렀는데 낯선 세사람이 다가오더군요. 두사람이 별안간 량옆에서 내 팔을 껴잡고 한사람은 내 이름을 확인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손에 수갑을 채우고 검은 승용차에 짐짝처럼 쑤셔넣었습니다. 그렇게 끌려간 곳이 남산중턱에 있는 중앙정보부였습니다.

어느 어두컴컴한 방안에 들어서니 두명의 수사관이 기다리고있었습니다.

나는 체포령장도 보이지 않고 련행한데 대해 강력히 항의했습니다.

그러자 한 사나이가 내앞으로 다가와 <간첩인 주제에 령장타령이냐?> 하며 무작정 귀뺨을 후려갈기더군요. 뒤미처 다른 사내도 끼여들어 나를 바닥에 무릎을 꿇게 한 다음 무작정 구두발로 막 걷어찼습니다. 쓰러지면 일으켜세우고 준비되여있던 야구방망이로 어깨며 허리며 할것없이 사정없이 내리쳤습니다. 고함을 지르면 수건으로 입을 틀어막고… 그렇게 초벌죽음을 당한 후에야 의자에 앉혔습니다. 취조는 이렇게 시작되더군요. 어려서부터 성장한 과정을 한사람이 묻고 또 한사람이 적어나갔습니다. 우물쭈물거리면 묻던자가 방망이로 가차없이 내려쳤습니다. 인간으로서의 인격은 완전히 상실했습니다. 인권은 더 말할것도 없고… 하나일보사에 입직할 때와 도꾜특파기자로 건너가 진행한 취재활동, 내가 발표한 기사들의 내용 그리고 정사장과 김지우와의 친분관계, 거래관계 등 깡그리 물었습니다. 그리고는 덮어놓고 도꾜에 있을 때 지우와 함께 비밀리에 이북에 갔다온 사실을 자백하라고 강요했습니다. 그런 일이 없다고 하자 그들은 나를 끌고 지하로 내려갔습니다. 거기에 취조하는 방이 두세개 있는것 같았습니다. 옆방에서 누군가가 취조를 받고있었는데 아마 지우였는지도 모릅니다. 나는 그가 나보다 먼저 이곳에 잡혀와있을것이라고 짐작하고있었으니까요. 열려있던 문을 꼭 닫게 한 후 나에게 고문을 가하기 시작했습니다. 세멘트바닥에 꿇어앉히고 포승줄로 두손목과 발목을 꽁꽁 묶었습니다. 그리고는 긴 막대기를 손발사이에 끼워 두 책상사이에 걸쳐놓더군요. 마치 도살장에서 네발을 묶어 매단 짐승꼴로 말입니다. 이렇게 해놓고는 내 얼굴에 수건을 씌우고 코구멍에 주전자로 고추물을 부어넣었습니다. 그러면서 <서울대학교의 인기교수도 이런 대접을 받다가 끝내 저승으로 갔지. 그래도 우린 끄떡하지 않아. 너 같은 놈을 파리같이 때려죽여도 그저그만이니까. 이북에 갔다온것만 인정하면 당장이라도 그만두지.> 하고 협박했습니다. 숨을 쉴수가 없고 정신이 가물가물한데 비명지를 기운도 점점 진해갔습니다. … 그냥 이렇게 고통받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죽겠구나싶었습니다. 정신을 약간 차리면 또 저들의 요구를 인정하라고 강요했고 거부하면 또 두들겨팼습니다. 무서운 생지옥이였습니다. 울고싶고 죽고싶었습니다. 그러나 죽을수도 없었습니다.》

장필성은 그날의 고통이 되살아오는듯 저도 모르게 짧은 신음소리를 냈다.

《수사관은 살아남겠으면 자백서를 쓰라고 하면서 종이를 던져주었습니다. 나는 별수없이 그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수사관은 가끔 쪽지지령문을 꺼내보면서 한자한자 자기가 부르는대로 쓰는것을 확인하면서 계속 불러주었습니다.

도꾜를 떠날 때의 정황, 유럽의 여러 국경들을 통과한 내용, 서유럽에 주재하고있는 이북대표부에 들어갔던 내용, 평양도착과 초대소생활, 간첩교육을 받은 내용… 악몽같은 주문을 지금 다 기억할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수사관이라는자가 불러주는대로 베끼다가 이렇게 생명을 값없이 내던지는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내가 평양으로 갔다는 날자를 보니 분명 그무렵 혹가이도의 어느 광산에서 왜정시기 징용자들에 대한 취재를 하고있었다는 기억이 났습니다. 나는 당시 광산에서 만났던 많은 동포들이 나의 행처를 확인할수 있고 또 그들중의 상당수가 서울에서 살고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자 수사관들이 퍽 난처해하는게 대뜸 눈에 띄였습니다. 그자들은 서로 쑥덕거리더니 어디엔가 급히 전화를 하는것 같았습니다. 그리고는 나를 독감방으로 보내더군요. 한 이틀이 지나서인가 다시 취조실로 끌려나가보니 처음 보는 사내들이더군요.

그들은 그때 혹가이도에 지우도 함께 있었냐고 따져물었습니다. 그렇다니까 좀 딱한 표정을 짓더니 <알고보니 당신 참 불쌍하더군. 당신 부인이 지병이 있어 지금 퍽 위독한 상태던데 빨리 나가봐야 하지 않겠소? 그런데 지우라는 당신의 친구가 혹가이도에 있었다는걸 증명하자면 당신말고도 여러 사람의 보증이 필요하니 기일이 오래 걸릴것이요.>라고 하면서 혹가이도에 지우와 함께 간것은 사실이지만 그때 그는 신문사의 재정문제와 관련하여 며칠동안 자리를 떴었다고 진술하라고 강박했습니다. 각자도생이라는 그의 꼬드김도 있는데다 안해의 병이 위급하다니 그가 원하는대로 쓰고 지장을 눌렀습니다. 내가 이북을 다녀온 간첩혐의에서 벗어난것만도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수사관은 <이곳에서 있었던 일은 국가안보를 위한 부득이 한 일이였으니 부디 량해해주시오.>라고 말하면서 자백서를 내밀었습니다. 그때 자백서의 말미에는 중앙정보부가 아니라 중부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은것으로 쓰라고 하였습니다. 시키는대로 쓸수밖에 없었습니다. … 그렇게 풀려나온 나는 처를 데리고 시골에 있는 처가집으로 갔습니다.》

장필성이 잠시 말을 중둥무이했다. 방안에는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런데 그후에 지우의 변호사라는 사람에게서 소식이 왔는데 지우는 간첩혐의를 끝내 벗지 못하고 재판에 회부되였다는것이였습니다. 그래서 내가 혹가이도에서 함께 취재를 한 사실을 가지고 증인을 서주었으면 한다고 부탁했습니다. 내가 한참 모대기고있을 때 웬 사람이 나를 찾아와 중앙정보부조사때에 당신은 김지우가 혹가이도출장중에 며칠동안 유럽려행을 다녀왔었다고 자백했는데 이제 와서 뒤집으면 징역을 살아야 한다고 위협하였습니다. 그때 전 정말 무서웠습니다. 다시 그 끔찍한 곳으로 끌려가고싶지 않았고 지긋지긋한 고문을 다시 이겨낼것 같지 못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그때 처의 병이 참 위독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나는 재판정에 출석하지 않기로 결심했고 변호사에게도 그렇게 알렸습니다. 그리고 지우가 혹가이도에 있었다는것을 증명할수 있는 여러 사람들의 이름을 대주면서 그것으로 위안을 삼았습니다. … 난 진심으로 모든것이 무난히 끝나주기를 기도했건만… 후일 재판소식을 들으니 증인으로 나선 사람들이 그가 혹가이도에 오기는 했지만 그후의 행처는 모르겠다고 거짓증언을 하였다는것입니다. 게다가 함께 그곳에 왔던 동료로서 그가 며칠동안 유럽으로 떠났었다는 나의 위증자백서가 막다른 궁지에 몰아넣어 결국 사형판결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세상에 어쩌면 이리도 거꾸로 된 판결이 있겠습니까. 나는 지우가 상소하면 증인으로 나설 결심을 하고 형무소를 찾아갔는데 이미 사형이 집행된 후였습니다. 재판이 있은지 사흘도 못되여 지우의 목숨을 앗아갔던것입니다. 나는 땅을 치며 통곡을 하고 후회를 했지만… 그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더이상 돌이킬수 없는 일이였습니다. … 》

 

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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