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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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장망을 쓴 여러대의 포차들이 와르릉거리며 장춘에 있는 동북민주련군 길료군구사령부로 접근해왔다. 두터운 장갑판에 붉은 오각별을 새기고 굴뚝같은 포신이 세로 얹힌 포차들은 사람들에게 위압감을 주었다. 마을 조무래기들이 호기심에 뛰여나왔다가는 요란한 발동소리에 간담이 졸아들어 울바자뒤에 숨고 저자바구니를 옆구리에 낀 아낙네들은 두귀를 틀어막고 도망치듯 골목으로 피해들어갔다. 하도 우람찬 무쇠덩이가 굴러오니 오금이 저려드는것이다. 붉은군대 포차였다.

기세좋게 질주해오던 포차들은 사령부앞에 멈춰섰다.

선두차에서 군관 한명과 하사관 한명이 뛰여내렸는데 하사관이 먼저 보초병에게 다가갔다. 손세를 써가며 뭐라뭐라 서툰 중국말을 건네자 애젊은 보초병은 의사소통이 생각보다 잘되는것이 기뻤던지 함빡 웃었다.

《우리 사령원동진 작전회의중입니다. 그러나 보고하겠습니다. 붉은 군대동무들이 왔는데야… 사령원동지는 기뻐하실겁니다. 잠간 기다리십시오.》

화강석으로 된 2층건물에서 우람진 체격의 민주련군지휘원이 바삐 걸어나왔다. 주보중이였다. 황록색의 군복은 색날았어도 장년줄에 든 그의 위품을 돋구는데는 지장이 없다. 엇가로 멘 싸창이 군인다운 인끔을 부각시키는것 같았다. 작전토의중이여도 쏘련군대표가 왔다는 보고를 받고 회의를 미룬채 마중나온것이였다.

참모장 진광과 주보중의 안해이며 군구사령부직속 장춘방송국 방송원인 왕일지, 부관 현주영이 뒤따랐다. 주보중은 보폭이 큰 걸음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포차곁에서 서성거리던 붉은군대의 늙수그레한 군관이 얼굴을 돌렸다. 웬일인지 그리 밝은 기색은 아니였다.

《아, 찌모쎈꼬동지! 어떻게 이렇게 기별도 없이 왕림하셨습니까? 오셨으면 들어오실노릇이지.》

로어에 능한 주보중이 유쾌한 롱조의 인사말을 건넸다. 왕청주둔 경비사령관으로 있다가 원동전선군참모부에 소환되였던 찌모쎈꼬는 다시 장춘주둔 쏘련군사령부에 배치되여왔다. 붉은군대가 동북에서 철수하게 된 조건에서 차후 중국공산당과의 련계를 보장하기 위해 전선군참모부에서 취한 조치에 따른 조동이였는데 찌모쎈꼬자신이 앞으로도 중국에 남아 중국동지들에게 전술적인 도움을 주고싶다고 주동적으로 제기한것도 고려된것을 주보중은 알고있었다.

찌모쎈꼬는 장춘에 그리 오래 머무르지 않았으나 국민당군의 기도와 일본군패잔병들, 토비부대들의 움직임에 대한 군사정보를 많이 제공해주었을뿐아니라 그에 대처할 작전전술적조언을 주군 하여 주보중을 크게 도왔다. 그 과정에 그들사이에는 친분도 두터워졌다.

《찌모쎈꼬동지! 환영합니다.》

왕일지도 반가와서 볼우물이 패이도록 웃었다. 그가 반가와하는데는 남다른 사연이 있었다. 동정심이 많은 찌모쎈꼬는 장춘방송국일을 성심껏 도왔는데 한번은 방송설비부속품을 구해오려고 모스크바에까지 사람을 보낸적도 있었다.

주보중은 큰손으로 찌모쎈꼬의 손을 잡고 자기 방으로 끌어들이며 여느때의 그답지 않게 세심성을 보였다.

《여보 부관! 거 뭐 좀 특색있는게 없겠나? 우리 따거가 있었으면 기막힌 교즈를 대접하는건데…》

련합동을 두고 하는 말이였다.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이 부르던 별칭이 이제는 그렇게 아주 굳어져버렸다. 그 련합동은 탄장(련대장)으로 임명되여 얼마전에 사평으로 파견되였다. 적을 제압하고 북상해오는 팔로군을 마중하려면 동북지세에 밝을뿐더러 불의에 조성되는 정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할수 있는 지휘관이 있어야겠기에 주보중이 그를 떠밀어보낸것이였다.

찌모쎈꼬도 물론 련합동의 음식솜씨를 알고있다. 그러나 오늘은 어인 일인지 온 군구사령부가 귀빈처럼 환대하는데도 주빗주빗하면서 열적은 표정만 지었을뿐 웃을줄 몰랐다. 주보중을 마주보기조차 죄스러운듯 시선을 발치에 내깔고 시름겹게 외우는것이였다.

《주사령원동지! 용서하십시오. 명령받은 군인으로서 저도 어떻게 달리 처신할수가 없군요.》 겨우 말꼭지를 떼고는 한참 갑자르다가 내처 말했다. 《난 붉은군대사령부의 의사를 전달하려고 왔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지금 국민당이 우리 정부에 강경히 항의하기때문에 국제적으로 복잡한 문제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합니다. 우리 사령부에서는 귀군이 장춘에서 100키로메터이상 물러서달라는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정부의 립장이…·》

《뭐요?》

주보중은 경악하여 부지중 큰소리를 질렀으나 억이 막혀 더 말을 잇지 못했다. 자기가 꿈을 꾸고있지 않나 하는 착각마저 들었다. 몽중에 당한 일이래도 몸서리칠 일이다. 그것이 착각이 아닌 현실인것을 깨달은 다음에는 격분이 머리가죽을 치뚫을듯이 솟구쳐올랐다. 방금전의 절친한 감정은 간데온데없이 사라져버렸다. 적의에 가까운 눈길로 찌모쎈꼬를 뚫어지게 쏘아보았다. 분노가 극도에 달하면 할말도 못하게 된다는것을 립증하듯 아무 말도 못하고 입술만 푸들푸들 떨었다. 한참만에야 분통을 쏟아내는 노성이 터졌다.

《대체, 도대체 무엇때문에 싸워보지도 않고 물러서야 한단거요? 이 땅이, 이 도시가 어떻게 찾은거길래?! 그래 당신들은 나의 전우들의 피에 절은 이 땅을 국민당에 선사품으로 내던지자는건가!》

초보적인 례의에도 심히 어긋나는 언행이였으나 상대는 이미 랭정해졌다. 리성을 잃지 않으려고 모지름 쓰는듯 입술을 짓씹던 찌모쎈꼬는 설명조로 침착하게 응대했다.

《다시 알려드리지요. 지금 국민당이 우리 정부가 저들과 맺은 쏘중우호동맹조약과 얄따협정을 비롯한 국제협약을 위반하면서 귀군을 도와준다고 항의하고있습니다. 만약 이런 분쟁이 국제화되면 미국을 비롯한 련합국과의 관계가 매우 복잡해질것입니다. 하여 우리 사령부는 장춘을 내여주고 철수할것을 귀사령부에 요구합니다. 물론 몹시 거슬리겠지만 량해해주시길 바랍니다. 나도 괴롭군요.》

《제길!》 주보중은 격해서 가슴을 쾅쾅 두드려댔다. 《피흘려 찾은걸 거저 내놓으라는건 이 염통을 내놓으라는거나 같소! 당신들한텐 손톱만큼한 도의도 없소? 대체 어떻게 돼서 그런 엄청난 양보를 우리한테 강요하는가 말이요.》

찌모쎈꼬는 벨료뜨까(채양없는 군모)를 제껴쓰고 따발총을 가슴앞에 걸멘 하사관에게 눈짓하고 물러섰다. 하사관은 쏘련군사령부의 명령서를 두손으로 펼쳐 주보중에게 내밀었다. 화가 돋은 주보중은 왼손으로 밀어버렸다.

《하여튼… 주사령원동지! 나를 리해해주기 바랍니다.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저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군요. 하지만 혁명가의 이 가슴속에 끓는 정이야 어딜 가겠습니까. 저도 정에 사는 인간입니다.》

찌모쎈꼬는 날렵하게 거수경례를 붙이며 되돌아섰다. 그러나 주보중은 몰풍사나울 정도로 큰소리를 내질렀다.

《정은 무슨… 우리 일에 상관이나 마시오! 대일전장에서 함께 싸운 우정이 그렇게 가벼운것인줄은 정말 몰랐소그려!》

쏘련군대표들은 군말않고 떠나갔다. 포차에 오르는 찌모쎈꼬의 모습은 처량해보이기까지 했다. 와르릉거리며 멀어져가는 포차들을 창문너머로 망연히 바라보던 주보중은 주먹으로 창턱을 내리쳤다. 투박한 널판자로 된 창턱우에 놓여있던 법랑고뿌가 공처럼 튀여올랐다가 마루바닥에 뗑그렁소리를 지르며 나떨어졌다.

(이게 무슨 꼴인가! 저항도 못해보고 물러선다는건 말이 안된다! 못 물러서!)

하지만 그것은 주관에 불과했다. 중국공산당 중앙에서도 쏘련군의 요구를 주동적으로 받아들이고 당분간 양보하여 유리한 기회를 기다리라는 지시를 떨구었던것이다. 주보중은 부걱부걱 끓어오르는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얼마후 그의 부대는 장춘에서 철수하여 길림으로 후퇴하지 않을수 없었으며 또 얼마후에는 안도근방의 관마산으로 옮겨가야만 했다. 국민당군의 대대적인 진공이 개시된 후에는 길동분구가 있는 연길까지 후퇴했다.

찌모쎈꼬가 그후에 남만군구사령부의 군사고문으로 조동되였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주보중은 그의 개인적인 헌신성에는 감동되면서도 참기 어려울만치 불만스러운 모순된 감정을 체험했다. 그러나 그 시각에조차 전쟁의 국면에 얼마나 파국적인 형세가 조성되고있는가를 다는 알지 못하고있었다. 예상할수 없었던 사태가 저 멀리 남쪽 사평계선에서 빚어지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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