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8 회)

제 2 장 특종기사를 찾아서

18

 

박영준은 리기철이 준 돈으로 모나리자호텔의 방을 세내여 물산정보교류사라는 작은 회사를 꾸려놓았다. 국제적인 물산관련 정보를 교환하는곳이라고 간판을 달기는 했지만 실지로는 조대풍의 《대통령》당선을 위한 정보를 수집하고 여론몰이와 관련한 전술을 짜는 작전실이나 다를바없었다. 그는 대체로 이곳에서 자기의 정보원들에게 지시를 주고 결과를 보고받았다.

그날도 박영준은 여당과 야당들의 《대선》과 관련된 정보들을 파악하기에 바빴다. 그런데 서기가 홍정실이라는 녀인이 전화를 걸어왔다고 알려주었다. 박영준은 곧 련결하라고 하였다.

《박영준입니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요즘은 무척 바쁘신가 봅니다.》

《우리 일이 언제 한가한 때가 있습니까.》

《그래요? 그런걸 전 또 우리를 아예 잊으신가 했어요.》

《원 섭섭한 말씀입니다. 하긴 제가 일만 일이라고 통 시간을 내지 못해 죄송합니다. 근간에 한번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수화기로 상대방의 숨결이 높아지는 소리가 느껴졌다. 박영준은 이제 그가 전화를 걸어온 진짜 리유를 밝힐것이라고 생각하며 려송연을 입에 물었다.

아니나다를가 상대의 의중을 타진하는 홍마담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사장님께서 한사람을 좀 만나주셨으면 하는데 어떠실지요?》

《질투가 납니다. 누군데 우리 마담께서 이렇게 뜸을 들이실가?》

《원 사장님두, 사장님의 체면에 어울리지 않게 질투라뇨. 우연히 알게 된 기자예요. 전에 제가 말씀드린바 있지요. 거 87년도인가 홍콩에서 변을 당한 제 친구 김춘옥이 말입니다. 한 기자가 그 사건을 취재하면서 저한테 찾아왔는데 사장님이 시간을 좀 내주시였으면 해요.》

《홍콩에서 변을 당한 친구라? 김춘옥?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박영준은 말을 얼버무렸다. 그러나 그의 총명한 두뇌는 똑똑히 기억하고있었다. 이전에 홍마담에게서 자기 친구가 홍콩에서 북의 《녀간첩》으로 판명되였는데 살해당했다고 분명히 들은적이 있었다. 어느 술판에서 여담속에 섞여나온 소리였는데 그 좌석에서는 회사 사장의 가직을 달고있는터라 모르는척 해버렸다. 하지만 수많은 유력자들과 범상치 않는 인맥을 맺고있는 홍마담의 말마디들은 그의 머리속에 새겨있었다.

《사장님이야 워낙 일이 바쁘시니 그런 사말사까지 기억하실수 없겠군요. 그런데 말입니다. 저한테 민도진씨를 아주 잘 알고계신다고 하시지않았어요? 기자가 민도진씨에 대해 알고싶어하는군요.》

《영화제작자 민도진씨야 내가 잘 알지요. 그런데 어떻게 할가? 지금은 시간이 없는데… 해외출장이 예견되여있습니다. 그 기자의 명함을 알려주시면 후에 제가 련락하여 만나도록 하겠습니다.》

《예, 알았습니다.》

박영준은 홍마담이 알려주는 기자의 이름과 주소를 적었다.

(명동일보사의 김현철이라?! …)

전화가 끝난 뒤 려송연의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잠시 사색을 더듬던 박영준은 서기를 불러 김현철의 경력과 최근 활동정형을 알아보라는 지시를 주었다. 서기가 문앞에 이르렀을 때 박영준은 다시 불러세웠다.

《1987년초에 말야. 홍콩에서 살해된 녀간첩에 대한 기사들이 있어. 그와 관련된 모든 자료들도 파악해봐.》

서기가 나가자 박영준은 의자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닭털이 아무리 잘 날아다녀도 구경은 땅에 떨어지기마련이지.)

그는 흡족한 심정이였다. 가시 하나가 코끼리를 죽일 때도 있다고 하였다.

박영준은 홍정실에게서 홍콩에서 변사체로 나타난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 오랜 정보원으로서의 후각이 맹렬히 움직이는것을 억제할수 없었다. 그 당시로서는 그가 중동지역의 해외지부에서 활약할 때였다. 그래서 부지기수의 많은 사건들중에서 홍콩에서 일어난 사건의 내막을 속속들이 파악할수는 없었지만 그것이 1987년초에 일어난 사건이기에 범상치 않게 보고 주목하게 되였다. 아마도 세상에 알려진것보다 아직은 알려지지 않은것이 더 많을지도 모를 그 모든 사건들은 1987년에 있은 《대통령》선거전야를 분기점으로 하고있을것이다. 군부독재권력의 힘이 점차 쇠진해가고있다는것이 더는 비밀이 아닌 형편에서 《정권》을 유지하자면 비상수단들에 의거하지 않으면 안되는것이였다. 그러지 않아도 공안통치를 끝장내라는 요구가 사회전반에 걸쳐 울려나오고 거리와 대학들은 쉴새없이 항의시위, 련좌롱성, 시국선언발표로 소란스러운 판국이였다. 최루탄을 아무리 발사해도 효력이 없었고 민중은 최루탄규탄대회라는것도 벌려놓아 당국을 조소, 단죄했다. 시민단체들은 물론 야당들까지도 민심을 빗대고 로골적으로 《정권》교체를 주장해나섰다. 이에 대비해서 재집권을 위한 대본들이 암암리에 CIA의 비준을 걸쳐 완성되여있었다. 문제는 민중의 이목을 완전히 유도할수 있는 충격적인 사건들을 어떻게 마련하는가 하는것이였다. 가장 좋기는 현재의 군사《정권》을 연장하고 내외의 반항세력을 짓뭉개는데 절실히 필요한 북의 《위협》과 직접 관련되는것들이여야 했다. 당연히 수많은 사건들이 지하에서 은밀히 조작되였다. 그리하여 1986년말부터 다음해 겨울까지 끔찍한 사건들이 꼬리를 물고 터져나왔다. 그 사건들의 책임을 북과 가까스로 련결시킨것이 숨막히는 《6월위기》를 간신히 넘기고 군사독재《정권》의 《정통성》을 유지하는데 한몫했다. 그러나 급히 먹는 밥에 체한다고 어떤 사건들은 정황과 계기가 급변하는데 맞게 능란하게 조종하지 못해 실수가 련발하여 후각이 예민한 일부 계층들속에서 조작설과 위장설이 무수히 제기되였다. 대개 증거불충분이라는 구실을 걸어 개인 혹은 단체명의로 제기되는 공안사건관련소송건들을 물리치기는 하지만 언제, 어떻게, 누구에 의해 폭로될지 모르는 시한탄들은 너무도 많았다. 그래서 그런 요소들을 사전에 장악하고 제압하라는 내부지침까지 정해진 판이였다.

아마 홍마담이 말하는 《녀간첩》사건도 그것들중의 하나일것이다. 취중에서도 박영준의 오랜 첩보원다운 두뇌는 홍정실의 곁에 미끼를 묻으면 언젠가는 큰 리득을 볼수 있다는 예감을 안겨주었다. 정보를 얻어쥐자면 홀림수를 잘 써야 하는것이였다. 물고기를 잡으려면 미끼를 던져야 하듯이 큰 정보를 얻으려면 이미전에 작은 정보를 흘려야 하는 법이다. 그래서 박영준은 민도진이라는 미끼를 던져놓았는데 드디여 그 미끼를 물고 김현철이라는 기자가 나타났다.

박영준은 서기가 들여온 차를 마시며 생각을 모았다.

민도진은 해방전 황해도의 어느 지주의 서자로 태여나 보성전문학교를 졸업한 후 전동기를 비롯하여 몇대의 설비를 마련하여 벼짚으로 가마니와 새끼를 만드는 자그마한 공장을 차려놓은자였다. 당시 일제는 《대동아공영권》을 부르짖으며 중일전쟁에 몰두하면서 바야흐로 태평양전쟁을 꿈꾸고있던 때여서 그 공장에서 짠 가마니와 새끼줄은 전쟁물자수송에 필요한 군수용기로 리용되였다. 전쟁과 더불어 승승장구하던 민도진의 기업은 일제가 패망하고 나라가 해방된 후 적산으로 몰수되였는데 그는 기회를 엿보다가 공장에 불을 지르고 남으로 야밤도주했다. 서울에 있는 먼 친척네 집에 얹혀살던 민도진은 국방부의 장교모집에 통과되여 38도선가까이에 주둔한 부대에서 정훈장교로 복무하였다. 전쟁시기 인민군대가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의 길에 오르자 그는 북에서 도주해온 불량배와 깡패들을 긁어모아 고향으로 돌아가 온갖 만행을 저지르며 악명을 떨치기도 했다.

인민군대가 재진격으로 넘어오자 게릴라작전을 위해 구월산일대를 차지했던 그의 부대는 곧 괴멸되고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그는 전선을 넘어와 춘천방송국에서 《대북방송》을 담당했다. 리승만《정권》시기는 두말할것 없고 《유신정권》이 들어선 이후 당국의 반공선전이 최고조에 이르자 여기에 밥줄을 걸고 연명해갔고 《정부》의 두터운 후원을 받으며 나중에는 반공영화제작에까지 손을 뻗치기 시작하였다. 박영준이 민도진과 인연을 맺게 된것이 바로 그 시기였다.

당시 춘천에서 중앙정보부 요원으로 활약하던 박영준은 어느날 민도진을 도와 추석날에 그가 제작한 영화를 상영하게 하라는 상급의 지시를 받게 되였다.

그무렵 민도진은 반공영화 한편을 촬영하였는데 제작도중에 파산상태에 빠지게 되였다. 영화관들을 찾아다니면서 도움을 구걸하였으나 그 어느 영화관도 추석날에 피비린내가 풍기는 그의 영화를 상영하려 하지 않았던것이다. 그나마 영화라는것자체도 촬영만 끝내고 예술인들의 배척을 받아 록음은 하지도 못한 상태였다. 그는 최후로 중앙정보부의 고위층을 찾아갔으며 반공영화이므로 지원을 해달라는 간청을 했다. 그리하여 어떤 일이 있어도 추석날 반공영화를 상영하도록 하라는 긴급지시가 떨어지고 그 행동조 책임자로 박영준이 나서게 되였다.

박영준은 직접 영화관의 관리인측을 찾아갔다. 그러나 단번에 거절을 당하고말았다. 그 영화가 촬영은 끝났지만 록음이 안되였고 록음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것, 설사 록음이 끝났다 해도 추석에 상영하게 될 영화는 이미 계약이 완료되였으므로 죽었다 깨여나도 상영이 어렵다는 리유에서였다.

그러나 박영준으로서는 정보부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라도 목숨을 내대고 상급의 지시를 집행해야 할 처지였다.

그는 자기를 그런 궁지에 몰아넣은 민도진이 끝없이 증오스러웠으나 그가 아니라 자기를 위해서라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했다. 그래서 우선 영화관의 관리운영에 얽힌 부정자료부터 수사하였다. 당시는 암표상인들이 영화관들과 극장들에 득실거렸는데 그들은 대개 관리인측과 련관되여있었다. 그 영화관도 례외는 아니였다. 조사가 완벽해지자 박영준은 관리인을 만나 협박하였다. 울며 겨자먹기로 그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수 없게 된 영화관측은 추석이 열흘밖에 남지 않았는데 그전까지 록음하고 편집까지 완료하기에는 어림도 없다고 구실을 댔다. 박영준은 그야말로 속이 탔다.

알아보니 록음실의 일정과 계약이 꽉 차있어 이 영화를 록음하려면 30일이상 기다려야 하며 일단 록음에 들어간다 해도 적어도 열흘이상이 걸리게 되여있었다. 박영준은 더 지체하지 않고 록음실을 장악하고있는 깡패들을 정보부의 이름으로 협박하여 동원하였다. 록음실을 확보하자 또다시 그들을 리용해 화술배우들을 꽁져오다싶이 데려다가 밤낮으로 록음을 하게 하였으며 편집을 강행시켰다. 그런데 난사는 정말 끝이 없었다. 반공영화를 내놓고 광고하는 경우 관람객들이 얼마나 오겠는가 하는것이 문제였다. 제작까지 끝냈지만 영화관이 텅 비여 상영을 보장하지 못하였다는 사실이 상부에 보고되는것은 박영준으로서는 까무라칠 일이였다. 그래서 특유의 기질을 또다시 발휘하여 영화관측을 위협해 이미 내건 영화광고를 놔두고 당일에 왕청같은 그 반공영화를 대신 돌리게 했다. 그것으로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일단 관람석에 들어온 사람들은 상영이 끝날때까지 위생실에도 갈수 없게 출입문을 밖으로 단단히 걸어두었다. 그렇게 상부의 지시를 집행한 박영준은 높은 평가를 받았다. 금상첨화격으로 민도진으로부터 뢰물도 무둑히 받아먹어 들인품이상의 봉창을 하였다.

그후에도 민도진은 정보부의 지원금을 받아가면서 반공영화제작에 여전히 몰두하였으며 영화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박영준에게 고발하는 밀정노릇도 잘하였다. 그런자이였기에 중풍으로 이미 오래전에 급사하여 확인할수는 없으나 홍콩에서 암약한 북의 《녀간첩》과 관련된 영화도 안기부의 의뢰를 받아 제작하였으리라고 어렵지 않게 확신하는 박영준이였다.

기본은 김현철이라는 기자나부랭이가 그 사건의 진실을 어느 정도 알고있는가 하는것이였다.

박영준은 서기가 가져온 자료중에서 우선 김현철의 사진을 들고 용모를 찬찬히 따져보았다. 낯색이 하얗고 이마가 훤칠한게 제딴에는 주견과 고집이 강해보이고 웬간한 곡절에도 호락호락 굽어들 성격이 아닌것 같았다. 흔히 인간이란 타고난 관상이나 용모보다도 경력이 중요한 법이다.

박영준은 그의 경력자료를 들여다보았다.

춘천이라… 야릇한 미소가 입가에 어리였다. 그가 정보부 요원으로 오래동안 근무한 곳이라 생소하지 않아 무등 반가왔다.

고아로군… 하며 글줄을 따라 내려가던 그의 눈길이 성당과 라경숙이라는 이름에서 멎었다. 결코 생소하지 않은 이름이였다. 먼 옛날의 추억을 불러오는 방울소리가 그의 두뇌에서 달랑달랑 울리고있었다.

라경숙, 수녀라…

박영준은 자기의 문서고를 열고 누렇게 바래지고 너덜너덜해진 두툼한 수첩을 꺼내들었다. 춘천에서 리용하던 비밀수첩이였다. 한장한장 조심스레 넘기던 박영준은 중간쯤에서 라경숙의 이름을 찾아내였다. 화살표를 따라가니 최은경이라는 이름이 나타났다. 순간 그의 머리속으로는 산골짜기의 앙상한 나무가지들을 흔들며 윙윙 불어오던 찬바람소리와 어둠속에 삭정이가 밟히여 부러지는 소리, 고무신에 숫눈이 눌리우는 소리 등이 들려오고 야밤을 찢는 녀인의 비명소리가 잇달았다. 그리고 피비린내… 그러니 최은경이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이 라경숙이였다. 그리고 최은경의 아이가 그에게 맡겨졌다. 그런즉 바로 그놈이였구나. 김현철은 최은경의 아들이다!

휙- 하는 희열에 찬 묘한 휘파람소리가 박영준의 입에서 새여나왔다.

세상의 인연이란 참으로 갈피를 잡을수 없구나. 참 넓고도 좁은 세상이다.

 

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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