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6 회)

제 2 장 특종기사를 찾아서

16

 

신문쟁이들이 모여사는 집안이란 소란스럽기마련이다. 출입문이 쉴새없이 여닫기고 들어오고 나가는 사람들이 저마끔 전화기를 꺼내들고 찾고 부르고 묻고 대답하는 소리가 귀따갑게 들린다. 복도는 복도대로 조용할새가 없었다. 취재길이 바빠서 헤덤비는 사람, 교정지를 쥐고 쫓기우다싶이 걷는 사람, 상급의 호출을 받은듯 긴장한 자세로 발을 재게 놀리는 사람들이 서로 부딪치고 몸을 비벼대며 누비다보니 교통순경이라도 세워야 할 형편이였다. 오가는 통행자들은 하나같이 입부리가 사나운 기자들이라 방안통풍과 공기조화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시비질로부터 시작하여 온갖 불평이 그칠새가 없다.

우에다는 주먹질, 옆으로는 시비질, 아래로는 훈시질에 습관된 사람들속을 헤치며 복도를 걸어오던 김현철은 사무실 문어구에서 장필성과 마주쳤다.

《오늘 시간이 좀 있소?》

장필성이 먼저 말을 걸었다.

김현철은 저으기 긴장해졌다. 장필성의 표정이 전에없이 쓸쓸해보였기때문이였다. 그것이 걱정되여 그는 무례한줄 알면서도 되물었다.

《무슨 일이 있습니까?》

《아무것도 아니요.》 하고 대꾸하던 장필성이 아무래도 안되겠는지 입을 열었다.

《사실 오늘이 신문사에서 보내는 나의 마지막날이 될거요.》

《벌써요?》

김현철은 와뜰 놀라면서도 습관적으로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몹시 바쁜 모양이군.》

《아니, 저… 현지취재를 가려던 참이였습니다.》

《그럼 저녁에 시간을 내기 곤난하겠군. 다른 일이 없으면 식사나 함께 하려댔는데…》

그러는 장필성의 모습은 몹시 서글퍼보였다. 하지만 이미 취재계획을 치밀하게 세워놓았던 김현철로서는 매우 난처했다.

《미안합니다. 제가 오늘은 꼭 가야 할데가 있어서 그럽니다.》

장필성은 착잡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다가 은근히 물었다.

《혹시 그 랍북미수사건과 련관된건 아닌가?》

《예. 홍콩에서 죽은 김춘옥의 가족을 찾았습니다.》

《그랬군. 그래서 지금 그곳으로 떠나려던 길인가?》

《예. 그쪽에서 한사코 응하지 않는걸 손이야 발이야 거듭 빌어서 간신히 약속을 받아냈습니다.》

《그럼 동석식사는 후날로 미루어야겠군.》

잠시 말을 끊었던 장필성이 간곡히 당부하듯 말했다.

《부디 몸조심하게.》

김현철은 심중한 눈길로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선배님, 툭 털어놓고 솔직하게 말해줄수 없습니까? 그때 대체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장필성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혼자말처럼 뇌였다.

《그런자들이 있지. 어둠속에 숨어서 자기를 감추고있다가 별안간 뒤에서 덮쳐들어 멱을 물어뜯는 삵같은 놈들이…》

김현철은 다음 말이 이어지기를 기다렸으나 그는 긴 한숨을 내쉬고는 스적스적 멀어져갔다.

잠시 머뭇거리던 김현철은 취재가방을 내려다보았다.

(그래, 마음을 정했으면 더 주저하지 말고 가야 한다!)

목적지인 시골마을에 이른 김현철은 뽀얀 먼지가 폴싹폴싹 일어나는 산자드락길을 따라 걸었다.

한 십오분쯤 가니 큰 밤나무가 서있는 집이 보였다. 동네사람들이 가리켜준바에 의하면 그 집이 김춘삼의 집이라고 하였다.

바자문을 찌꿍 열고 들어서며 《계십니까?》 하고 물었으나 대답이 없었다. 뒤울에서 인적기가 느껴져 그곳으로 돌아가보았다.

낡은 흔들의자에 앉아있는 녀인의 뒤모습이 보였다.

《안녕하십니까? 처음 뵙겠습니다.》

김현철은 숨을 가다듬으며 인사말을 건넸다.

《전화를 걸었던 신문사 기자입니다. 김춘삼씨를 만나러 왔습니다.》

녀인이 흠칫 놀라는게 알렸다.

김현철이 곁으로 다가갈 때까지도 아무 미동이 없었다.

화장기가 없는 부석부석한 얼굴이였다. 그러나 김현철을 올려다보는 눈길은 올곧지 않았다.

녀인의 경계심을 늦춰주려고 김현철은 될수록 부드러운 어조로 말을 건넸다.

《어디가 편치않은 모양입니다?》

흔히 어떤 사람들은 기자가 취재를 왔다고 하면 공연히 긴장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 녀인처럼 침입자에 대한 방위자세 비슷한 행동을 보이며 불안해한다. 대개가 자기의 어떤 행동이나 말 한마디때문에 후날 좋지 않은 일이 생길수 있다는 우려감때문이다. 이럴 때면 친근감이 느껴지는 인사말로 대방의 속을 눙쳐주어야 한다.

형제나 친구처럼 친근감을 느끼게 하라, 불안감을 덜어주고 신뢰감을 안겨주라, 그때라야 대방은 마음을 진정하고 너에게 속을 터놓을것이다. 이것은 수모와 고생으로 이어지는 기자생활에서 가장 보편적인 취재묘리였다.

《혹시 무슨 병인지 제 도움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김현철이 다시 묻자 녀인은 마지못해 대답했다.

《좌골신경통을 앓아요.》

《안됐습니다. 하루빨리 완쾌되기를 바랍니다.》

《고마워요.》

《전 불청객은 아닙니다. 이미 온다고 전화를 했었습니다.》

김현철은 인상좋은 웃음을 지으며 너스레를 떨듯이 말했다. 녀인의 속이 좀 누그러지는것 같았다.

《우리 작은시누이에 대해 묻던 그 기자선생이시군요.》

시누이라고 부르는것으로 보아 김춘삼의 안해인 모양이다. 그런데 여전히 경계하는듯 한 어조였다. 그래서 더욱 살갑게 대응했다.

《예. 직업이 이렇다보니 은연중 실언하지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린 정말이지… 잊어버리고싶은 오래전의 일인데 왜 묻습니까?》

《뭔지 석연치 않아서 그럽니다. 가족측에서는 그게 사실이라고 믿습니까?》

《사실이고 뭐고 할게 있나요.》

어느결에 녀인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속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는 증거였다.

김현철은 녀인을 세심히 관찰했다.

정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대화를 원한다. 더우기 이렇게 제 몸을 건사하기 어려워 집에서 혼자 고독감에 시달리는 인간들은 조금만 위로해주어도 인차 마음속의 문을 열기마련이다.

그런데 이 녀인처럼 동정 몇마디에 얼굴이 달아오를 정도라면 속에 맺힌 응어리가 이만저만하지 않을것이다. 그 응어리를 풀어헤치는것이 바로 그가 바라고 온 목적이였다.

《우리 작은시누이가 간첩이라고 하면서 경찰서에서 얼마나 우리를 못살게 굴었는지 알아요? 아침저녁으로 달려들어 그가 맡기고 간 무전기랑 내놓으라고 하면서 긴 쇠꼬챙이로 벽장이며 마당주변까지 찔러보며 행패질했어요. 온 가족이 간첩련루자라는 손가락질을 받으며 마을에서 따돌림을 당했지요. 남편은 해외항해중이였는데 돌아오는 길에 곧바로 어디론가 행불되였다가 며칠쯤 지나서야 나타났는데 사람꼴이 아니였어요. 그러다가 갑자기 작은시누이의 시체가 나타났다고 떠들썩하더니 매일같이 드나들며 우리를 감시하고 들볶아대던 사람들이 그후로는 얼씬하지도 않더군요.》

한숨 돌리려는듯 녀인이 말을 끊었다.

김현철은 옆의 의자를 당겨다 바투 다가앉았다.

《직업을 잃고 간첩련루자가 되여버린 남편은 그때부터 매일 술에 취해있었지요.

우린 너무 억울해서 진상을 밝혀달라고 치안본부에도 편지하고 검찰청에도 청원했지만 그 누구도 우리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어요. 그런데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 기자선생이 혼자 어찌겠다는건지 모르겠어요.》

녀인의 반신반의하는 표정을 바라보며 김현철은 그를 안심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전 가족측의 슬픔을 잘 알고있습니다. 그리고 그 억울한 심정을 풀어드리고 진상을 밝히는데 도움을 드리려 합니다. 그래 시누이의 시체가 나타난 뒤로는 찾아온 사람들이 없었습니까?》

녀인은 서러운듯 한숨을 크게 내쉬였다.

《여러달 있다가 기관원들이라고 하면서 웬 사람들이 찾아왔었어요. 아마 홍콩당국에서 시누이의 시신을 어떻게 하겠냐고 문의해온 모양이예요.

그때 우리는 홍콩에 갈 엄두도 낼수 없는 처지라 알아서 처리하라고 했어요. 그러다나니 시누이가 쓰던 물건도 돌려받지 못했어요.》

설음에 겨운 녀인은 드디여 눈물을 떨구며 쿨쩍쿨쩍 울었다.

김현철이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여 쥐여주는데 뒤에서 터벅거리는 발걸음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저쯤에 웬 사내가 긴 연장을 둘러메고 오다가 멈춰섰다.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로 다가간 김현철은 《김춘삼씨입니까?》 하고 물으며 자기의 신분증을 내보였다.

해볕에 까맣게 탄 김춘삼은 몹시 피로한 기색이였다. 그의 작업복에는 소금기가 허옇게 내배여있었다.

《처에게서 전화왔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김춘삼은 신분증을 되돌려주며 말했다.

《집이 루추하지만 들어가십시다.》

방안은 쓸쓸하고 초라했다. 김현철에게 자리를 권한 김춘삼은 눅거리담배를 피워물었다.

《제가 오라비인줄 알고 찾아오신가본데 실상 전 세살아래의 남동생입니다.》

김현철은 저으기 놀랐다. 아까는 몰랐는데 무릎을 마주하고보니 나이는 사십줄이라지만 예순을 넘긴 늙은이처럼 겉늙어보였던것이다.

김춘삼은 말하기 괴로운듯 주저하며 담배를 몇모금 더 빨았다. 그러더니 차츰 마음이 진정되는지 말을 이었다.

《내가 어렸을 때 누이는 집을 떠났습니다. 식모로 말입니다. 그때는 부유한 집들에서 어린 소녀들을 식모로 데려다 쓸 때였습니다. 먹여주고 입혀주고 용돈을 좀 쥐여준다고 하면서 말입니다. 그후로는 도회지에서 뻐스차장을 하다가 식당업에 발을 들여놓았고 뒤이어 홍콩으로 갔습니다. 나도 누이사건이 있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수출선원이라고 들어보았는지… 외국선적의 배에서 일하는 선원들말입니다. 나도 그렇게 대양을 떠돌던 사람입니다. 가족과 헤여져 망망대해에서 여러달씩 피부색이며 식성이 다른 외국사람들과 섭쓸리는것이 견디기 어려웠지만 돈을 벌어야겠기에 참고 견뎌왔지요. 그런데 그 사건이 터진 이후에는 련루자혐의가 붙으면서 다시는 배에 오르지 못하게 되였답니다. 그래도 그 정도는 참을수 있는데… 제 어머니가 불쌍한걸 어떻게 합니까?》

김춘삼의 소처럼 크고 순박해보이는 눈가에 눈물이 글썽해졌다.

《… 전쟁직후 가정형편이 몹시 어려웠던 우리 어머니는 19살에 열살이나 우인 아버지와 결혼을 했답니다. 호구지책을 위한 결혼이였지만 아버지가 어머니를 무척 사랑해주셔서 초기에는 단란한 분위기에서 행복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로상에서 술에 만취한 미군의 찌프차에 치워 세상을 급작스레 떠나게 될줄 어찌 알았겠습니까. 그런데도 당국에서는 미군이 공무집행중이여서 아무 잘못이 없다는 판결을 내려 한푼도 보상을 받지 못했지요.

사랑하는 남편이 화장터의 한줌 재로 변한 뒤 어머니는 올망졸망한 어린 자식들을 데리고 허탈한 마음으로 시부모가 사는 이곳으로 오게 되였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모두 중병을 앓고계셨으니 집안일만 아니라 바깥일의 부담까지도 모두 어머니가 짊어져야만 했습니다.

가난이라는 생활의 위협은 우리모두를 질식시켜 죽음에로 떠밀었지만 어머니는 안깐힘을 쓰며 버텨내려 했지요. 어느날 저녁 종시 절망에 빠진 어머니가 아버지의 뒤를 따라갈 모진 마음을 먹고 강가에 서있는데 열살쯤 났던 춘옥누이가 어떻게 알고 따라나와 치마폭을 감아쥐고 울더랍니다. 모녀는 서로 붙어잡고 통곡했지요.》

김춘삼은 속이 답답한듯 다시 담배를 꺼내물었다.

김현철이 라이터를 켜서 불을 붙여주었다.

《고맙습니다.》

김춘삼은 긴 연기를 내뿜고나서 이야기를 계속했다.

《할머니가 먼저 병환으로 세상을 떠나고 두달후엔가는 할아버지마저 한많은 생을 하직했지요. 빈약한 살림에 장례까지 거퍼 치르다보니 재산이라고 남은것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황무지같은 돌산 하나뿐이였습니다.

이웃사람들은 돈이 얼마 되지도 않는 돌산을 팔아버리고 홀아비에게 재가해 살라고 권유했지요. 그러나 어머니는 그것이라도 자식들에게 넘겨줄 결심이였습니다. 잡관목과 잡초뿐인 돌산이지만 어머니는 주저하지 않고 달라붙었지요. 가시덤불을 베여버렸고 고목도 찍어냈습니다. 굳은 가시에 얼굴이 찢기고 손에 피멍이 들고 굳은살이 배겼지요. 앙상한 몰골뿐인 어머니의 몸은 자연히 쇠약해져갔습니다. 한해두해가 이렇게 한숨과 눈물속에 흘러가던중 어느해인가 춘옥누이가 집에 나들이왔던 먼 친척되는 녀인에게서 자기 동네의 한 집에서 식모애를 찾는다는 말을 듣고 그를 따라 도회지로 떠나갔습니다. 어머니라고 왜 귀여운 딸을 남의 집에 보내고싶었겠습니까. 그러나 가난이 원쑤라 누이는 열서너살밖에 안되는 몸으로 어린 식모의 길을 나설수밖에 없었습니다. 후에 들으니 누이는 밤이면 집생각이 나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눈물로 밤을 새우면서도 돈이 생기면 꼬박꼬박 모았다가 집으로 보내주었더군요.》

김춘삼은 잠시 말을 끊고 옆방으로 건너가더니 무엇인가 가지고 들어왔다. 세명의 처녀들이 찍혀있는 옛 사진이였는데 가운데사람을 가리키며 자기의 누이라고 했다.

김현철은 김춘옥의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뛰여나게 고운 얼굴은 아니였지만 순진하면서도 훤해보이는 형이였다.

《누이가 집을 떠난 후에도 어머니는 오직 돌산에 모든것을 걸고 미친듯이 걸구었습니다. 몇해동안 제대로 먹지도 입지도 못하며 고생하느라니 산머리에서 빈혈로 쓰러진적도 한두번이 아니였고 매일같이 먼길을 오가느라 지친탓에 로상에서 졸도하여 내가 부축해오기도 했답니다. 그런 어머니를 보고 사람들은 동정하다 못해 나중에는 비웃고 조롱했습니다. 홀아비한테 시집은 가지 않고 죽을 고생을 사서 한다고 말입니다. 한마디로 사람사는 꼴이 아니라 짐승생활 매한가지였지요.

그러나 고생끝에 락이 오고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고 몇년동안 피눈물을 뿌리며 고생한 덕에 돌산은 과수에 적합한 야산으로 걸구어졌고 어머니는 여기에 수입이 괜찮다는 포도나무와 복숭아나무를 심었습니다. 그리고 간작으로 수박과 도마도씨를 뿌렸습니다. 드디여 새싹이 나왔을 때 어머니는 나를 붙안고 어린애처럼 엉엉 소리내여 울었습니다. …》

김춘삼의 얼굴은 눈물로 뒤범벅이 되고말았다. 김현철도 눈굽이 쩌릿해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우리 집에도 얼마간의 수익이 생겼습니다. 어머니의 피눈물과 바꾼것이였지요. 하지만 큰 변화는 별로 없었고 거의나 이전 그대로였지요.

그사이에 누이는 식모일을 그만두고 서울에 올라가 뻐스회사에도 다녀보고 식당일도 해보면서 직업을 자주 바꾸었답니다. 그것을 안 어머니는 그동안 누이가 보내온 돈을 아껴쓰면서 남긴것에다 과일장사로 좀 번것까지 합쳐 도로 보내주었습니다. 그걸 밑바탕으로 해서 누이는 작은 수입품가게를 내왔었는데 몇달 운영하지도 못하고 사기군에게 속아넘어가 파산당하고말았습니다. 그때 어머니가 힘들더라도 집에 와서 함께 살자고 기별을 보냈지만 그냥 뻗치더군요. 아무래도 시골보다는 서울바닥이 돈벌이에 유리하다는거지요. 사실 그때 누이는 어떻게 하나 내 대학등록금을 마련해주려고 무진 애를 썼던겁니다. 그러다가 홍콩에서의 벌이가 괜찮다는 말을 듣고는 웬 사나이와 위장결혼하고 이국으로 떠나갔습니다. 당시 누이에게 위장결혼할 홍콩사람을 소개하고 줄을 놓아준 사람이 문태석이라는 사람이였는데 누이는 그가 씀씀이도 괜찮고 마음도 무던한 사람이라고 말하군 했습니다.》

김춘삼은 다시 담배 한대를 붙여물었다.

김현철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 위장결혼이란 당국이 장려하는 《국제결혼》이라는 퇴페적인 풍조를 리용하여 이 땅을 탈출하기 위한 기만결혼을 뜻하는 말이였다.

한때 광부, 간호원이라는 명색으로 수많은 청장년들을 눅거리로 외국에 팔아 《외화획득》에서 톡톡히 재미를 본 당국자들은 《국제화》의 시대적추세를 따른다고 하면서 《국제결혼》에 대해 요란스레 떠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외국인과의 결혼의 자유》라는 화려한 면사포일뿐 실은 가난하고 생활이 어려운 이 땅의 녀성들을 외국호색광들의 노리개로 내맡기는 기생수출이나 다름이 없었다.

가슴이 아픈것은 수많은 녀성들이 그것을 알면서도 극심한 생활난을 타개하고 가정을 살릴수 있지 않을가 하는 한줄기 희망을 안고 제 한몸을 내던지는 길을 택한것이였다. 그렇게 이국만리로 떠나간 녀인들중에는 사납고 횡포한 외국인《남편》들에게 맞아죽거나 버림을 받아 창녀로, 거지로 전락된이들이 적지 않았다. 김춘옥이도 홍콩으로 가기 위해 그 방법을 모색한것이였다.

김현철은 한숨을 길게 내쉬고 상대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종시 등록금때문에 대학진학을 포기한 나는 누이가 홍콩에서 보내주는 돈으로 겨우 해운학교에 편입할수 있었고 2년후에는 수출선원으로 해외에 나가게 되였지요. 물론 나나 어머니는 문태석이라는 사람을 만난적은 없었고 그후 누이가 그 사내와 결혼하였다는 소식을 들은적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애오라지 돈을 한푼이라도 더 벌어보겠다고 낯설고 물설은 이역만리로 떠나간 누이가 별안간 간첩이 되여 제 남편을 랍치하려고 하였다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올줄이야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나는 평소에 근면하고 성실하다는 평판을 받군 했는데 그것이 은을 내서인지 배에 오른지 얼마 안되여 보조기관장이 되였지요. 우리 배가 오스트랄리아의 어느 항구에서 곡물을 싣고 인천항으로 들어서고있을 때 나는 정말이지 반년만에 집에 돌아온다는 기쁨에 푹 젖어있었습니다. 그런데 불시에 입항정지명령이 내려진 후 작은 경비정 한척이 다가오더니 거기에서 내린 사복차림의 몇몇 사내들이 내 이름을 부르며 찾는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들은 나의 신분을 확인하고는 경비정에 옮겨태우기 바쁘게 다짜고짜로 손목에 수갑을 채우는것이였습니다.》

김현철은 여전히 숨을 죽이고 긴장해있었다.

《영문을 몰랐던 나는 처음에는 경찰서로 끌려갔다가 눈을 싸맨채로 어딘지도 모를 곳으로 옮겨졌습니다. 무슨 깡패같은 사내들에게서 무작정 심한 구타를 받은 뒤 터무니없는 자백을 하라는 강요를 받게 되였습니다.

그게 바로 안기부의 지하실이였고 나를 취조한 사람들이 안기부의 요원들이라는것을 미처 알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덮어놓고 우리 어머니를 간첩단의 두목으로, 제 누이는 해외망원으로 몰아붙였고 또 내가 여러 나라를 오가면서 이북사람들과 접선을 시도하였다는것을 인정시키려 하였습니다. 내가 거부하자 하루종일 물욕조에 머리를 틀어박게 하는가 하면 각목과 쇠파이프로 사정없이 매타작을 들이댔습니다. 나는 결국 그들이 시키는 말을 앵무새처럼 외우고 부르는대로 종이장에 쓰고 지장을 찍게 되였습니다. 가난때문에 바다를 떠다니며 사자밥을 지고 선원생활을 했는데 안기부는 그것을 나의 간첩혐의조작에 리용한것입니다.

내가 간첩이라는게 별게 아니구나, 이렇게 하루밤새에 만들어지는구나하는 생각으로 허탈감에 빠져있는데 어느날 나를 불러내더군요. 이젠 사형장으로 끌고 나갈 차례인가보다 하고 생을 포기하고말았습니다. 그런데 낯선 한 사내가 이곳에서 있은 일들을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는다는 서류에 지장을 누르라는것이였습니다. 죽으라면 죽고 살라면 살아야 할 처지였으니 지장을 찍고말았습니다. 잠시후에 눈을 싸매더니 밖으로 끌고 나가 차에 태우더군요. 그리고는 여러 시간동안 달리다가 어딘지 모를 곳에 나를 부려놓았습니다. 내가 눈을 풀고보니 우리 마을 귀퉁이에 있는 오물장이였습니다. 야밤삼경이라 주위는 쥐죽은듯 고요했는데 간신히 집으로 돌아와보니 가족이 다 모여있었습니다. 정말이지 그 정상이 말이 아니였습니다. 어머니는 늙으신 몸에 어찌나 매를 맞았는지 피를 토하며 아래목에 누워계셨습니다. 내가 들어서자 눈이 헐끔해진 처가 울음을 터뜨리고 그 울음소리에 눈을 간신히 뜬 어머니가 울먹이며 말했습니다.

<네 누이가 죽었다누나.>

나는 그때에야 홍콩에서 누이의 시체가 발견되였다는것을 알게 되였습니다. 너무 억울하여 눈물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경찰서를 찾아가 항의도 해보았으나 그들은 아직도 조사중이라고 하면서 혐의를 풀어주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취조중에 고문을 받은 어혈로 한달후에 한많은 이 세상을 뜨셨습니다. …》

김현철은 무어라고 위로할 말이 없었다.

《더하실 말씀이 없습니까?》

김춘삼은 무엇인가 생각하는듯 하더니 갑자기 어성을 높였다.

《솔직히 나도 내 누이의 행적에 대해 자세히 알지는 못합니다. 그때 안기부와 경찰에서 우리 집을 다 뒤졌지만 간첩이라는 증거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은것만은 명백합니다. 누가 내 누이를 죽였는지는 둘째치고라도 정말 누이가 간첩이였는지 명확히 밝혀달라고 간청을 해보았지만 당국에서는 아무런 조사도 하지 않고 덮어버렸습니다. 당시 신문들 역시 당국과 짝자꿍을 하면서 입을 맞추어 법석을 떨더니 왜서인지 한순간에 잠잠해지더군요. 참 더럽고도 무서운 세상입니다. …》

 

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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