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8 회)

제 6 장

1. 아끼꼬와 도미꼬

 

22일 아침, 도꾜에 건너온 무라야마는 모리형사로부터 이마무라의 종적을 끝내 찾지 못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아끼꼬가 도미꼬의 손에 왜 붙잡히게 되고 어떻게 죽었으며 함께 랍치되여갔던중에 이마무라만은 어떻게 살아났는지 그것은 살아남은 이마무라만이 밝힐수 있는 일이였다.

모리는 무라야마의 련락을 받은 즉시에 이마무라의 기숙사와 집을 비롯해 그가 있을만 한 곳은 다 뒤져보았으나 그의 그림자도 찾을수 없었다고 보고했다.

하네다비행장과 나리다비행장의 출국명부를 다 뒤졌다.

거기에서 이마무라가 10월 3일 베이징으로 출국했다가 10월 16일 나리다비행장을 통해 다시 도꾜로 돌아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마무라가 틀림없이 타이로 간 도미꼬를 뒤따라갔다고 가정해보자. 복수를 벼르며 그 녀자를 뒤따라간 이마무라가 근 보름동안 타이에서 무엇을 했으리라는것은 그동안에 죽은 니시하라와 도미꼬의 살인사건이 명백히 말해주는게 아닌가. 그렇다면 자기가 도꾜에 얼굴을 다시 드러내는것이 곧 죽음과 련결된다는것을 모르지 않는 이마무라가 기어이 다시 도꾜로 돌아왔다는것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무라야마는 이 순간 자기를 랭정히 쏘아보는 그 누군가의 눈길, 정신적감응이 강렬한 차거운 그 눈길을 다시금 섬뜩하게 느꼈다.

수사의 진로를 놓고 고민에 잠길 때마다 형체없이 나타나 자기의 인간적량심을 투시하는듯 날카롭게 번뜩이며 쏘아보는 그 눈길…

그 눈길에서 받은 계시때문인지 과거력사문제를 놓고 치렬한 론전을 벌렸다는 아끼꼬와 도미꼬의 사연을 구체적으로 알아보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무라야마는 도꾜대학을 찾아갔다.

학자풍이 완연한 늙은 사학과 학부장을 만나 과거문제에 관해 아끼꼬와 도미꼬가 제출했다는 론문을 열람하려 한다며 각근히 부탁했다.

사학과 학부장은 교무행정의 젊은 녀자를 찾더니 그가 가져온 두권의 론문을 무라야마에게 내주었다.

아끼꼬의 론문제목은 《사죄와 망언의 심리-전후 일본인의 이중인격해부》였고 도미꼬의 론문은 《일본의 해방전쟁과 그 력사적당위성》이였다.

학부의 교무실 한켠구석에 앉아 두 론문을 시간을 들여 다 읽어본 무라야마는 학부장을 다시 찾아가 만났다.

《후꾸다선생, 이 두 녀자가 일본의 과거사문제를 놓고 그렇게 격렬한 공개설전을 벌렸다던데요.》

《아, 그 공개토론회를 말하는군요. 지금도 치렬한 론전을 벌리던 두 녀자의 모습이 삼삼합니다.》

학부장은 무라야마에게 그때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려주었다.

… 도미꼬가 도꾜대학 강사로 취임하면서 가지고 온것은 새로 만든 력사교과서수정안 검정본이였다.

그 개정교과서를 사학과 교수들과 대학원생들에게 배포한 며칠뒤 학부강당에서는 도꾜대학 교수들과 학생들의 찬반의견을 듣는 토론회가 열렸다.

여기에는 대학의 하스미 시게히꼬총장이 나오고 《새 력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니시오회장까지 초빙되였다.

아시아 각국과 일본의 진보적지식인들의 항의가 드세게 일어나던 때여서 토론회는 니시오회장과 도미꼬, 그를 지지하는 교수들을 한편으로 하고 교과서개정을 반대하는 교수들과 대학생들을 한편으로 해서 전례없이 달아오른 열기속에서 격렬하게 진행되였다.

넙적한 얼굴에 눈시울이 처지고 다 빠진 대머리에 몇오리 안 남은 총센 머리칼이 숙붙지 않고 일어나 설렁이는것이 황량한 마가을 들판을 련상시키는 니시오회장은 툭 불거진 두눈을 띠룩띠룩 굴리며 묵중하게 강당을 둘러보는것이 력사의 흐름에 반역의 불을 켜들고 일어설만큼 기가 살아 뛰는 눈길이였다.

니시오회장이 먼저 이번에 개정하게 된 력사교과서의 내용들을 조항별로 렬거한 뒤 바람을 몰아가는것 같은 열찬 걸음으로 도미꼬가 연단에 나갔다.

그가 입은 진한 보라색달린옷과 검붉게 상혈된 녀자답지 않은 퉁투무레한 얼굴이 무척 어울려보였다.

그는 어딘가 야멸차면서도 조소하는듯 한 눈길로 장내를 내려다보며 침착히 입을 열었다.

《지금 온통 사죄로만 일관하고있는것이 대동아전쟁에 대한 세계 각국의 요구이고 시각입니다. 그러나 이 사죄론리에 앞서 과연 대동아전쟁이 우리가 사죄해야 할 그런 전쟁인가 하는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우리가 왜 아이들에게 력사를 교육합니까. 바로 제 민족의 자랑스런 력사에 대한 긍지를 안고 우리 일본의 앞날을 개척해나가게 하기 위한 포부를 주고 신심을 주기 위해서가 아닙니까?

그런 우리가 무엇때문에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모르는 과거의 온갖 불미스런 이야기들을 자꾸 끄집어내여 순진한 우리 아이들에게 꼭꼭 씹어 먹여주며 잊지 말라고 가르치는 자학적인 행위를 계속해야 하는겁니까? 안됩니다. 아이들이 배우는 민족의 력사는 영광스러워야 하며 그러자면 력사부터 바르고 당당하게 바로세워놓아야 합니다.

난 이것이 우리 일본력사학자들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명백히 말하건대 대동아전쟁은 우리 일본이 유미의 침략으로부터 아시아각국을 수호한 정의의 해방전쟁입니다.

이번의 교과서를 놓고 여러 나라가 일본의 아시아침략이라고 하는것을 아시아진출로, 해방전쟁으로 규정한 그 력사적당위성에 대해 제일 의견이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모임>은 오늘 이 문제를 놓고 여러분과 충분히 의견을 나누려 하는것입니다.》

도미꼬는 자, 우리의 론리에 과연 반박할 자신이 누가 있는가 하는듯 한팔을 연탁에 얹은채 유유히 청중을 둘러보았다.

잠시 고요가 흘렀을 때 강당의 중간쯤에서 한 처녀가 일어섰다.

《아, 아끼꼬!》

몇사람의 입에서 환성비슷한 탄성이 터졌다.

사학과적인 수재이고 자존심 강하면서도 례절밝은 이 처녀를 학부의 누구나가 선망의 눈으로 대했다.

우익과 진보가 맞대결하는 마당에 로처녀인 도미꼬의 진한 보라색달린옷이 풍기는 독선을 맞받아 산뜻한 회색양복차림의 아끼꼬가 단연코 일어난것이 어찌 보면 토론회의 성격이 그대로 담긴듯싶었다.

기대와 성원의 눈길을 안으며 연단으로 올라선 아끼꼬는 장내를 둘러보다가 맨 뒤좌석에 앉은 이마무라를 발견했다.

토론회에 꼭 오겠다고 하더니 방금 달려온 모양이였다.

가슴이 기쁨으로 후드득 뛰였다.

눈길이 마주치자 맨 뒤자리라 이마무라는 주저없이 손을 저어 흔들며 잘하라고 고무해주었다.

아끼꼬는 그에게 알릴듯말듯 눈인사를 보냈다.

《끝끝내…》

이렇게 말머리를 뗀 아끼꼬는 높뛰는 가슴을 애써 누르며 조용히 이어나갔다.

《아시아의 수많은 나라들과 일본의 많은 국민들이 그처럼 강력하게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새 력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은 력사적사실을 완전히 전도한 새 개정교과서를 만들어냈습니다.

이 교과서에서 제일 문제시되는 부분은 바로 방금 도미꼬강사가 렬거한 일본의 전쟁목적부분입니다.

이 전쟁목적에 대한 해석이야말로 일본의 지난 력사의 성격을 규정하는 알파이고 오메가라고 할수 있습니다.

개정교과서에는 일본의 전쟁목적은 아시아를 유미의 지배로부터 해방시키고 대동아공영권을 건설하는것이였다고 선언했습니다.

영국과 프랑스, 네데를란드 같은 나라들이 마치 울바자없는 동네에 몰려들어와 아시아의 힘없는 나라들을 먹으려 했기때문에 일본이 나서서 그들을 구축하고 아시아를 구원했다고 썼습니다.

교과서는 조선을 <병합>한 사실도 바로 같은 론리에서 출발했습니다.

개정교과서는 조선을 <병합>한 리유에 대해 별로 리득될것도 없는 조선을 유미렬강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병합>했으며 세계는 그 당시 <일한병합>을 아시아평화를 위한 최상책이라며 지지했다, 이것은 세계사의 필연이였으며 우리는 아무것도 사과할게 없다, 입이 열개라도 사과를 해서는 안된다고 썼습니다.

이 부분을 읽고있노라면 마치 조선이 침략자에 의해 강점된 식민지가 아니라 자선가의 은혜를 입은 나라 같은 착각이 들게 됩니다.

여러분도 보았겠지만 개정교과서에는 식민지지배에 의한 조선인민의 고통이나 피해에 대해서도 전혀 언급이 없습니다.

이 교과서에는 1895년의 명성황후암살도 명성황후와 대원군과의 정권싸움의 결과로 날조했으며 3. 1봉기와 간또대진재당시 무죄한 수만의 조선사람들을 잔인하게 학살한 내용도, 수백만의 조선사람들이 징용, 징병으로 끌려와 노예보다 더 가혹한 처지에서 학대당하고 학살당한 사실도 일언반구 없습니다.

특히 이 교과서에서 간과할수 없는것은 20만의 조선녀성들을 끌어다 성노예로 처참하게 유린하고 릉멸한 일본군위안부내용을 전부 빼버린것입니다.

물론 <새 력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조직된 자체가 력사교과서에 일본군위안부내용이 들어가는것을 막겠다는 목적에서 출발한것인만큼 이미 예견했던것이지만 이 위안부내용이 빠진 검정본이 나오자 저기 계시는 니시오교수님과 도미꼬강사님을 비롯한 이 <모임>의 성원들은 박수를 치며 우리 운동의 성과라고 자축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말하며 아끼꼬는 주석단에 앉아있는 니시오와 도미꼬를 바라보았는데 장내가 삽시에 술렁거렸다.

《방금 도미꼬강사는 일본의 아시아침략을 유미렬강들의 침략으로부터 아시아 여러 나라들을 보호하고 구원하기 위한 해방전쟁이였다고 강변했는데 저는 그의 말을 들으며 아시아라는 한 마을을 련상했습니다.

유럽이라는 딴 마을의 강도들이 이 아시아마을에 쳐들어오자 누가 청하지도 않았는데 일본집의 사람들이 총과 칼들을 들고 우리가 아시아의 당신들을 지켜주겠소 하며 나섰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한다는짓이 조선집에 들어가서는 그 집안의 국모가 되는 황후를 칼로 쳐죽이고 그 남편인 고종은 독살시키고 딸들은 다 위안부로 끌어갔습니다.

중국이란 집에 쳐들어가서는 남경이란 안방에서 그 집에 피난와있던 수십만의 사람들을 쏴죽이고 찔러죽이고 돌아가며 겁탈했습니다. 필리핀이란 집에서, 인도네시아, 먄마… 아시아의 가가호호 모든 집을 이렇게 도륙내고 나중에는 온 마을을 대동아라는 일본땅으로 만들고 사람들도 다 일본사람으로 개종하지 않으면 노예로 만들겠다고 접어들었습니다.

다급해난 마을사람들은 오히려 딴 마을의 강도들이 더 낫겠다고 생각하여 그들과 손을 잡고 일본의 승냥이들을 때려잡아 묶었습니다.

그리고 더러는 교수형에 처하고 더러는 앞으로 사람답게 사는가 지켜보겠다면서 살려놓았습니다.

그런데 그 살아난 사람들, 그 후예들이 세월이 흐르자 우리는 그때 정말 해방전쟁을 했다고 강변해나서고있습니다.》하며 아끼꼬는 니시오와 도미꼬를 다시 돌아보며 물었다.

《니시오회장님! 도미꼬씨! 이것이 당신들이 말하는 해방전쟁이 아닙니까?》

《뭣, 뭣이야?!》

점점 얼굴이 시뻘개지던 니시오회장은 이렇게 내뱉으며 불거진 두눈을 지릅뜨고 연단의 아끼꼬를 쏘아보았다.

도미꼬의 두눈에서도 불꽃이 튕기고 피터지게 깨문 입술은 분노를 못 참아 바르르 떨렸다.

아끼꼬는 격정을 애써 누르며 강당안의 청중을 향해 돌아섰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력사란 과연 저 사람들이 말하는 그런것이겠는가? 후세들이 자기 리익에 맞게 조작하고 뜯어고칠수 있는 활자뒤에 숨은 유령, 잉크를 찍어 침략을 진출로 쓰면 진출이 되고 일본군위안부는 없었다 하고 쓰면 없었던것이 되는 그런 교과서 몇권이 곧 력사가 되는것이겠습니까?》

그러자 강당에서 와- 끓어오르는 항의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아니요. 그건 력사가 아니요.》

《력사의 외피를 쓴 위조화페요.》

《가소롭다, 니시오! 도미꼬!》

그러자 또 한쪽에서 몰강스런 소리들이 맞받아 튀여나왔다.

《저 사람들, 일본사람 맞는가?》

《일본군위안부인정은 칼로 제 얼굴 긋는 행위다. 인정해선 안된다.》

그 모든 소란을 밀막듯 아끼꼬가 한손을 쳐들자 장내는 점차 진정되였다.

아끼꼬는 긴숨을 들이그으며 침착하게 계속해나갔다.

《제가 갓 대학에 입학했던 때인 1995년 8월 15일 당시 무라야마총리는 특별담화를 발표하여 식민지지배와 침략으로 많은 아시아나라들에 다대한 손해를 주었다, 나는 의심할 여지도 없는 이러한 력사적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진심으로 오와비(사죄)의 마음을 표명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자민당을 비롯한 극우익정치인들은 곧 들고일어나 무라야마의 사죄는 총리 개인의 사과이지 일본정부의 사죄가 아니라고 강변하면서 국회결의에서 침략이 아닌 침략적행위(침략적으로 보이는 행위)와 반성이 아닌 반성의 념(반성을 지향하는 마음)이라는 표현으로 할것을 고집해 결국 관철시켰고 무라야마총리의 담화의 의미를 퇴색시켜버렸습니다.

수천만 아시아인민을 학살하고 아시아대륙을 피바다에 잠그었던 대죄를 놓고 잘못한것으로 보이는것 같은데 정말 잘못했는지는 모르겠다, 확실한 반성이 아니라 반성하는쪽으로 마음이 가고있다는 식으로 묘연하고 아리숭하게 문제의 본질을 희석시켜가는 이 말의 롱간, 언어의 희롱.

생각해보십시오. 한 나라 정부의 수반으로 임명된 총리의 모든 공식적인 발언과 일거수일투족이 국가를 대변하는 발언이고 행동이고 표현일진대 그의 발언이 어떻게 개인의 사죄가 될수 있단 말입니까.

총리의 발언도 저들에게 리로우면 당국의 발언이 되고 불리하면 개인의 발언이 되는, 원칙도 정의도 없는 이 무지막지한 극우익정치인들은 또 총리가 했다는 발언의 오와비라는 말은 사과라는 말이지 절대 사죄라는 표현이 아니라고 주장해나섰습니다.

아시아 각국이 무라야마총리가 사죄했다고 발표한것을 일본이 사죄가 아니라 사과였다는 억지주장을 고집함으로써 그 이후부터 이 오와비라는 말은 하는쪽은 사과, 받는쪽은 사죄라는 식으로 끝없는 설전을 벌리는 유희의 대명사가 되고말았습니다.

진정한 사죄의 마음이 있다면 과연 이렇게 말 한마디를 가지고 장난할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그 사죄뒤끝에는 반드시 그 사죄를 도로 아미타불로 만드는 우익막료들의 망언이 집요하게 계속돼왔습니다.

간교하고 교활하게 끝없이 번복되는 이 사죄와 망언은 오늘 전쟁범죄에 대한 일본인의 속다르고 겉다른 혼네와 다떼마에 즉 이중인격, 이중심리의 적라라한 반영입니다.

그런데 일본인들자신은 진실과 거짓, 반성과 망언의 이런 이중성이 가지는 위험성을 전혀 투시하려 하지 않고있습니다.

특히 사죄문제에서 지금 이 <교과서모임>을 뒤에서 떠받들어주는 자민당 아베관방부장관이나 나까가와경제산업상을 비롯한 우익정치인들은 인구의 80프로에 달하는 전쟁을 겪어못본 전후세대에게 지난 전쟁을 사죄하라는건 무리한 요구라고 하면서 사죄는 할만큼 했으니 더이상 사죄문제를 강박하지 말라고 말하고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일본의 전후세대들도 지난 시기 일본의 피해를 입은 아시아인들에게 철저히 사죄하는 립장에 서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물론 전후세대의 사죄문제는 전쟁세대의 사죄와는 다른 문제입니다.

그것은 할아버지, 아버지들이 전세대에 저지른 잘못에서 교훈을 찾는 사죄, 전세대의 잘못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가 아니라 전세대의 잘못을 다시 답습해서는 일본이 바른길로 갈수 없으며 우리 전후세대는 다시는 그런 길로 가지 않겠다는 바른 력사관정립의 사죄로서 앞날의 일본을 책임진 사죄입니다.

아버지가 옆집에 저지른 죄에 그 아들이 선친의 잘못을 미안해하고 용서를 비는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춰야 할 초보적인 인지상정(사람이 가지는 보통의 마음)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이런 솔직하고 겸허한 사죄와 반성이 오히려 전후세대가 아시아의 평화와 우호를 다져가는 길에서 더 강렬하게 진행될 때에만 일본이 앞으로 아시아와 세계의 책임적인 일원이 될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아끼꼬의 반론이 끝나자 니시오에 동조하는 몇몇 사람을 내놓고 일제히 박수가 터졌다.

연단을 내린 아끼꼬가 제자리로 돌아오는데 맨 앞줄에 앉아있던 은발의 한 교수가 일어났다.

《저 역시 이 교과서를 도저히 용납할수 없습니다.

결국 이 교과서가 노리는것은 우리 일본을 다시 전쟁하는 나라로 만들자는것이고 순진한 우리 아이들이 앞으로 다시 타국을 침략하는 전쟁에 기쁘게 떨쳐나서게 하자는것입니다.

이런 교과서를 어떻게 우리 아이들에게 줄수 있겠소. 독소가 강한 교과서입니다. 니시오회장! 우린 반대요. 당장 이 교과서 철회하시오.》

《니시오회장!》

도수높은 안경을 낀 다른 한 교수가 또 일어나며 석쉼한 목소리로 니시오를 불렀다.

《난 당신이 쓴 <국민의 력사>도 읽었소. 그게 이 개정교과서의 원본이지. 그걸 다 읽고 내가 내린 결론은 지금 당신이 자기 전공과 맞지 않는 이상한 놀음을 하고있다는거요.

난 당신이 전기통신대학 문학교수에 불과하면서 무엇때문에 이런 력사개정놀음에 뛰여들었는지 리해되지 않소. 돌아가시오.

력사는 직류를 교류로 변조시키듯 자기의 필요성에 의해 그 내용을 바꿀수 있는 물리학이 아니며 더우기는 허구와 추상으로 꾸밀수 있는 소설이나 연극은 더더구나 아니요. 픽션(허구)은 당신의 그 문학으로 돌아가 잘 발휘해보는게 어떻소?》

니시오회장은 토론회장에 흐르는 준절한 분위기에 잘못 응수하다가는 체면만 깎이울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는지 두툼한 입술을 꾹 다문채 얼굴이 붉어져 디룩디룩하는 눈길로 천정만 쳐다보았다.

사회를 맡은 사학과의 늙은 학부장이 나왔다.

《방금 도미꼬강사와 아끼꼬대학원생이 설전을 통해 이번의 개정교과서를 놓고 자기들의 주장을 전개했는데 보다싶이 과거사문제를 놓고 극과 극에 서서 일본인의 의식구조를 파헤치고있다고 볼수 있습니다.

과거 전쟁에 대한 문제에서 오늘 일본은 이들의 각이한 주장처럼 두 세력으로 갈라져있습니다.

하나의 세력이 일본의 전쟁책임인정과 2천만의 아시아 각국 희생자들에 대한 사죄, 미군점령기에 만들어진 전쟁포기조항 9조를 명시한 평화헌법수호를 주장한다면 다른 한 세력은 영미에 대항한 대동아전쟁의 정당성, 300만의 일본영령에 대한 추모, 미국의 군정시기 강요로 만들어진 평화헌법개정을 주장하고있습니다.

호헌론리 대 개헌론리, 사죄의 론리 대 영령의 론리로 요약할수 있는 이 두 론문을 통해 대동아전쟁을 직접 체험하지 않은 전후세대의 시각으로 일본의 과거사를 각각 다르게 분석평가하고있는데 두 발표자의 론리를 더 전개하실분이 있으면 나와주십시오.》

《내가 발언하겠소.》

창문가에 있는 좌석에서 조춘일이 손을 들고 일어났다.

그가 사람들사이를 헤집고 나오는데 수군거리는 소리가 그의 귀에까지 들려왔다.

《저 친구 누구야?》

《조춘일이 몰라?》

《아, 저게 입부리 맵기로 유명한 죠센징 그놈 아닌가.》

《맞네.》

로골적으로 내뱉는 말들을 들으며 조춘일은 비싯이 입가에 조소를 띠우고 연단에 나와섰다.

장내를 한바퀴 둘러보고나서 맵짠 어조로 입을 열었다.

《방금 아끼꼬씨도 말했지만 영국과 프랑스가 먹을것 같아 내가 먹었다는 론리는 여우와 곰이 먹을것 같아 내가 먹었다는 승냥이의 론리와 같은것으로서 아시아에 끼친 일본의 잔인성과 야수성은 실상 영국이나 프랑스, 네데를란드 같은 서방의 침략자들을 훨씬 릉가해 세계를 전률케 했습니다. 이자 누군가도 점잖지 못한 언행으로 나를 불렀지만 나는 조선사람입니다.

우리 조선을 일본이 강점하고 40여년간 저지른 악행은 필설로 이루 표현할수 없는데도 일본은 지금 내놓고 조선에서 나쁜 일만 한게 아니라 좋은 일도 했다고 력사를 우롱하고있습니다. 천만의 말씀!》

조춘일은 연탁을 탁 치면서 불꽃튀는 눈으로 장내에 대고 웨쳤다.

《지금 이 연탁에 조선과 일본의 수천년에 이르는 력사적인 관계를 놓고 프레스로 눌러본다면 아마 신음소리, 피, 눈물, 통한의 분노와 저주만이 울려나올것입니다.

나는 아시아에 끝없는 불행만 가져다준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일본은 로씨야정복에서 패하고 징벌을 받은 나뽈레옹이 류배됐던 그 헬레나섬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2차대전의 징벌로 무기형을 받고 4개의 섬에 갇혀 세상사람들의 훈육과 교도속에서 장기형을 치르고도 아직 조금도 교화 안된 전과자, 옛시절의 꿈을 돌이키며 자기를 지켜보는 아시아동네사람들의 눈길이 둔감해질 때를 기다려 속에 품은 칼을 보듬고있는 재범우려가 농후한 상습전과자들의 나라, 제가 보는 오늘의 일본은 바로 이런 일본입니다.》

《저 자식, 너무하지 않아?》

장내에 와- 끓는 소요가 일어났다.

《왜? 듣기는 좀 거북해도 얼마나 신랄하고 정곡을 찌르는 옳은 소리들인가?》

《일본의 죄악을 현지에서 체험하겠다고 류학온 친구라네.》

《글쎄 어쩐지… 재범우려가 농후한 상습전과자라? 허, 기니스기록집에 오를 표현이군.》

조춘일이 내려오자 강당 맨 뒤좌석에 앉아있던 이마무라가 일어나 《사회!》하고 주석단에 대고 소리쳤다.

《저는 정경과 대학원생 이마무라입니다. <모임>이 만든 개정교과서에 대한 토론회가 진행된다기에 방청으로 참가했는데 언권을 주신다면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학부장이 머리를 끄덕였다.

《오늘 이 자리는 누구든 자기 의견을 개진할수 있는 토론마당입니다. 개의치 말고 어서 나오십시오.》

연단에 나선 이마무라의 눈길은 첫 순간에 강당 중간의 아끼꼬에게 갔다.

아끼꼬는 머리를 끄덕이는것으로 잘하라는 성원을 보낸다.

《앞서 토론들에서 밝혀진것처럼 이 개정교과서는 전쟁의 목적을 해방전쟁으로 규정한데로부터 응당 따져물었어야 할 전쟁의 책임문제를 피해갔습니다.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이 문제가 반드시 토론되여야 한다고 봅니다. 전쟁은 56년전에 끝났지만 우리 일본은 이 전쟁의 최종적인 책임처리를 오늘도 못했습니다.

그로 인한 후과가 지금 얼마나 막대합니까.

대동아전쟁의 정신적인 살균처리를 깨끗이 못한 첫째 과오는 바로 전쟁범죄의 원흉인 <천황>을 처벌하지 않은것입니다.》

그러자 한쪽구석에서 우- 끓는 소리가 나며 《말도 안되는 소리 말라.》, 《<천황>은 책임밖의 신적존재다.》하는 소리가 튀여나왔다.

그런 소동을 예견했던지 이마무라는 개의치 않고 의연히 계속했다.

《도미꼬강사는 가는 곳마다에서 아시아 2천만 희생자에 대한 추모에 앞서 3백만 영령에 대한 추모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력설하고있습니다. 3백만 영령의 추모라고 하지만 실상 그의 이 발언리면에는 오늘 온 아시아가 규탄하는 야스구니진쟈참배를 합법적인 행사로 정당화하자는 정부와 극우익의 음흉한 기도가 들어있습니다.》

도미꼬는 그 소리에 머리를 홱 돌렸다.

《무슨 말을 하는거예요? 극우익의 음흉한 기도라니… 듣다듣다 보자 하니 당신들 정말 이렇게 나와도 되는거예요?》

새파랗게 질린 도미꼬가 소리치며 발딱 일어서자 옆에 앉았던 니시오회장이 끄잡아당겼다.

《아, 아, 많이 듣던 소리 아닙니까? 도미꼬씨! 마저 들어봅시다.》하며 니시오는 이마무라에게 눈길을 돌렸다.

《헌데 이마무라씨! 야스구니진쟈참배가 극우익의 기도라는건 어떤 뜻에서 하는 말인가요?》

《예.》

이마무라는 머리를 끄덕이며 응수했다.

《회장님도 아다싶이 수상과 정부각료들의 이 진쟈참배에 대한 내외의 규탄은 1978년 도죠를 위시한 수급전범자들의 위패를 진쟈에 합사한 다음부터 일어났습니다.

그러면 정부가 도꾜전범재판에서 처형된 전범자들의 위패를 왜 야스구니진쟈에 합사했는가 하는것입니다. 이에 대해 회장선생과 도미꼬씨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에 도미꼬가 오연히 고개를 쳐들며 대답했다.

《그 문제는 복잡하게 생각할것도 없어요. 전 생각해요. 1946년 도꾜전범재판에서 판결받고 처형된분들도 결국은 모두가 아시아해방전쟁의 희생자들이 아닌가고?》

《바로 그겁니다. 14명의 수급전범자들의 위패를 명치유신이후 일본을 위한 전쟁에서 죽은 근 300만 전사자들과 합사해놓으면 그들은 자연히 전쟁을 계획하고 도발하고 수백만 국민을 죽음터로 끌고간 책임에서 벗어나게 되며 그들을 전범자로 처형한 도꾜전범재판이 잘못된것으로 되는것입니다.

지난 전쟁의 최고책임자인 <천황>이 이미 도꾜극동재판판결에서 벗어났고 도죠를 비롯한 14명의 수급전범자들까지 전쟁의 희생자로, 영웅들로 된다면 아시아와 전세계인민들에게 그처럼 참혹한 피해를 가져다준 전쟁의 책임은 결국 물을데가 없어지는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일본은 저 <새 력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측이 바라는것처럼 해방전쟁을 치른 국가, 참회할것도 뉘우칠것도 하나 없는 영웅적인 성전국가로 되는것입니다. 이런 교과서로 일본력사를 배운 아이들이 앞으로 자라 또다시 총을 들고 새로운 해방전쟁에 나서리라는것은 뻔하지 않습니까?》

사리가 명백하고 론리정연한 이마무라의 토론에 장내는 숨소리마저 잦아든듯싶었다.

《때문에 전후 <천황>을 전쟁의 책임을 물어 처벌하지 않은것이야말로 일본이 진정한 민주국가로 가는 항로에서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최대의 실책이였습니다.

전쟁을 최종결정하고 끌고간 최고책임자인 <천황>을 전쟁책임에서 제외하다보니 전후 최초의 히가시구니내각이 내놓은 <1억 총참회론>처럼 전쟁의 책임이 일본국민모두에게 있다는 어처구니없는 소리까지 나오게 되였고 도죠와 같은 전쟁의 괴수들을 영웅으로, 2천만이 넘는 아시아인민이 희생되고 아시아 각국에 헤아릴수 없는 참혹한 피해를 가져다준 침략전쟁을 해방전쟁으로 미화하는 저 <새 력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같은 듣기에도 부끄러운 단체까지 나와 학계와 민심을 어지럽히고있는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십시오. 력사를 새로 만들겠다는 발상을 공공연히 할수있는 나라, 이것도 이 지구상에 우리 일본만이 아니겠습니까.》

장내에는 일시에 박수소리가 터지고 니시오회장과 도미꼬에 대한 조소와 비난의 목소리가 사방에서 울려나왔다.

얼굴이 수수떡처럼 붉어진 니시오회장과 도미꼬는 토론회가 채 끝나기도 전에 황황히 일어나 달아나다싶이 사라지고말았다.

《후- 일본대학들의 정치학과 력사학은 곯을대로 곯은셈이군.》

《저 우익의 무리들- 뿌리깊은 저 종처를 어떻게 하면 도려내겠는지. 부끄럽소.》

토론회에 참가했던 교수들과 대학생들은 깊은 생각들에 잠겨 이런 말을 나누며 헤여져갔다.

토론회가 끝난 뒤 이마무라가 아무리 아끼꼬를 찾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지나가던 한 녀대학생이 방금 푸르딩딩한 도미꼬가 토론회가 끝나자바람 아끼꼬를 찾더니 그를 데리고 대학구내의 산시로련못쪽으로 갔다고 알려주는것이였다.

이마무라는 은행나무가 꽉 들어찬 련못쪽으로 부지런히 걸었다.

나무가지들사이로 련못에 채 못미처 있는 이끼돋은 큰 바위앞에 도미꼬와 아끼꼬가 마주서있는것이 멀리 보였다.

그쪽에서 짱짱한 도미꼬의 목소리가 울려왔다.

《뭐? 재범우려가 가득한 상습전과자? 민비암살이 어쨌어? 내 알아봤어. 알고보니 너도 센징의 퇴물에 불과한 년이더구나.

그래서 조선이 <합병>됐던게 그렇게 가슴아팠니? 흥.》

도미꼬는 코웃음쳤다.

《왜? 언젠가 저 이시하라 신따로씨가 말했지. 조선인들아! 우는소리 말아! 일본의 조선<합병>은 력사의 필연이 아니였더냐고!

그게 왜 필연인지 넌 아직 모르겠니?

유럽의 근대화를 받아들여 수십만의 신식군대와 철갑함대를 가지고 청나라와 로씨야를 견주던 일본이였어.

그토록 욱일승천 힘이 뻗치던 신생일본에 쇄국의 소라껍질속에 박혀 온 나라 통털어 1만 불과한 화승대군대를 가지고 나라를 지키겠다던 조선이 얼마나 가엾었겠어! 오죽했으면 일진회장 리용구가 한 함대의 해군도, 한 부대의 륙군도 없는 조선을 지켜줄것은 일본국밖에 없다고 <합병청원서> 를 냈겠어? 일찌기 <정한론>주전파였던 사이고 다까모리씨가 그랬지.

정예 두개 련대만 달라. 내가 끌고들어가 조선을 먹어치우겠다고. 조선은 그런 주인없는 고기덩이였어. 그걸 왜 안 먹어? 안 먹는게 비정상이지. 알겠어? 신따로씨가 왜 력사의 필연이라고 했는지?》

광기어린 도미꼬의 목소리에 비해 여전히 차분한 아끼꼬의 대답이 울려왔다.

《한 나라가 힘이 유약하다고 강권으로 압박하고 군대를 들이밀어 국모를 살해하고 그 나라를 <합병>하는것이 력사의 필연이라는 그런 소리가 오늘의 이 도꾜대학 강사의 입에서 당당히 나온다니 정말 일본이 지금 어디까지 왔는지 참 개탄하지 않을수 없군요.》

《뭐라구?》

도미꼬의 눈에 파란 불이 일었다. 발끈 고개를 쳐드는 그의 목에 피가 뛰는 힘줄이 대줄기처럼 살아났다.

《그래, 그래… 적어도, 적어도… 우리 일본에 득이 된다면 그가 한 나라 황후든 그 하내비든 상관없이 죽여야 했고 그래서 죽였어.

야마도족을 위해 그 민자영은, 그년을 센징의 정조를 다 모아 제를 지낸거야.》

도미꼬는 이를 갈며 속에서 뻗치는 광기를 다 모아 아끼꼬를 손가락질 했다.

《뭐? 20만 성노예? 네년이 아까 그 자리에서 말 잘했어. 옳아!

그건 조선종족의 명을 끊어버리기 위해서 더 촉진시켜야 했을 훌륭한 방책이였어. 일본을 위해선 20만이 아니라 200만을 다 끌어다 녀자로서 말살해버렸어야 했어. 대동아전쟁의 제일실책은 그걸, 그걸 못한거야!》

토론회장에서 곤죽을 먹은 도미꼬는 제정신이 아니였다.

두 눈빛이 이상하게 번뜩이고 빨간 아래입술을 하얀 이가 송곳처럼 옥물었다.

《그렇게 두 세대만 지났어도 조선은 종족으로서의 명이 끝장나는거였어. 일본에 흡수되든가 멸살되든가 조선은 그랬어야 했어. 언어니 풍속이니 문화니 그모두, 그모두를…》

잔인하기 이를데없는 독설이였다.

이마무라는 심장이 비틀리우는것 같은 아픔을 느꼈다.

저것이 바로 일본정치를 주도하는 극우익분자들의 속심인것이다.

더는 그대로 들을수 없었던 이마무라는 《잠간만!》하며 머리우에 드리운 버드나무가지를 젖히며 련못가로 나섰다.

《당신, 이마무라…》

불시에 나타난 자기를 보고 흠칫 놀라는 도미꼬에게 이마무라는 분노에 차서 웨쳤다.

《도미꼬! 당신 같은 인간이 력사학자의 탈을 쓰고 학문을 희롱하고있으니 정말 개탄하지 않을수 없소.》

《뭐라구?! 이, 이… 야마도족의 넋을 파는 년놈들!》

이렇게 소리치는 도미꼬의 두눈에선 경멸과 증오의 불이 더 격렬하게 타번졌다.

《아끼꼬, 이마무라, 너희들 뭐 그렇고 그런 관계라면서?》

도미꼬는 이를 갈며 이윽토록 쏘아보더니 《흥, 어디 두고보자!》하며 홱 돌아서 도고한 자세로 련못을 에돌아 길쪽으로 걸어갔다.

《…》

아끼꼬는 도미꼬가 사라진 뒤에도 한동안 그 자리에 서있었다.

이마무라는 그런 아끼꼬의 손을 잡아끌었다.

《아끼꼬! 더 맞설 필요가 없어. 력사를 학문이 아니라 정치의 리용물로 료리하는 협잡군들. 보다싶이 론리로 통할 인간들이 아니잖아.》

《저도 알았어요. 저들이 자기들의 주장이 억지다짐이란걸 몰라서 저렇게 광란하고있는게 아니란걸.》

도미꼬의 악담에 분격을 참지 못해 빨갛게 상혈된 얼굴을 들며 아끼꼬는 말했다.

《조선과 중국… 과거 일본에 의해 피해입은 나라들이 한결같이 반대하는데도 기어코 외곡된 새 력사교과서를 만들어 내놓는 저 도미꼬나 그 <모임>것들의 행동이 이 동북아시아평화에 얼마나 혹심한 피해를 가져다주는지 이마무라씨는 다 모를거예요.》

아끼꼬는 공원의자에 힘겹게 주저앉았다.

이마무라도 그옆에 함께 앉았다.

아끼꼬가 처연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지금 저 유럽에는 <유럽의 력사>라는 통합교과서가 있어요.

1992년 프랑스의 도르슈트라는분이 도이췰란드를 비롯한 13개 유럽나라의 력사교원들과 토론해서 유럽의 력사를 총괄하는 공동교과서를 만들기로 했어요. 그래서 지난 2차대전을 비롯해 오랜 기간 서로 적대해 싸웠던 나라들이지만 함께 모여 진지한 토론과 합의끝에 교과서를 완성했어요. 그  <유럽의 력사>는 현재까지 전세계 25개 국어로 출판됐거던요.

력사문제인식을 모든 나라가 한 교과서로 하게 되니 나라는 각각이여도 력사교육에선 어떤 문제점도 생길게 없게 됐지요.

이런 노력이 이미 유로라는 단일화페를 만들었고 이제 곧 유럽공화국을 창설하겠다는 그들의 주장에 중요한 밑받침이 될수 있는게 아니겠어요?

한 인간의 노력이, 한 력사학자의 정의의 일념이 한 지역의 안정에 얼마나 큰 역할을 해낸거예요? 한 인간의 장거였다고 할수 있어요. 이마무라씨! 우리가 왜 력사학을 학문으로 공부해요?

바로 일본이 세계의 정의에 합치되는 옳바른 교훈과 향방을 찾고 나가도록 하는데 조그만 받침돌이나마 되자고 력사를 전공한게 아니예요?》

《음, 그 도르슈트씨! 참 감동적이구만.》

《저도 그래요.》

《그런데 그 도르슈트씨가 재작년에 우리 일본에 왔었거던요.》

《그래, 어떻게?》

《력사교과서를 놓고 문제가 얼키고 설킨 동아시아나라들을 두고 도르슈트씨는 생각이 많았던것 같아요.

그래서 유럽에서의 경험을 살려 제3자의 객관적인 립장에서 일본과 조선, 중국과 대만 등 동아시아나라들의 공동력사교과서를 만들어 이 지역안정에 도움을 주겠다는 결심을 안고 지난해에 조선과 중국 그리고 우리 일본을 찾아왔던거예요.》

《그래서?! …》

《그런데 자기 아집과 배타적인 편견이 강한 일본의 주장에 부딪쳐 끝내 단념하고 돌아가고말았어요. 그를 앞장에서 중도반단케 만든게 바로 저 니시오와 도미꼬의 <새 력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패들이였어요.》

그들은 이런 이야기를 나누며 산시로련못에서 나와 아까몽 옛 정문쪽으로 걸어내려갔다.

그때 경적소리가 뒤에서 났다.

돌아보니 하늘색의 신식《도요다》 한대가 내려오고있었다.

승용차가 속도를 늦추며 그들의 옆을 천천히 지나갔다.

이상한 예감에 살펴보니 운전대를 잡은 도미꼬가 차거운 눈길로 옆에 앉은 목이 실한 상고머리에게 눈짓으로 그들을 가리킨다.

그러자 그자는 허리를 낮추며 자세히 기억이라도 하려는듯 뚫어지게 지켜본다.

이마무라는 독벌레가 얼굴을 서물거리며 지나간 느낌이였다.

뱀눈같은 차거운 그 눈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다음날 저녁 이마무라가 기숙사에 들어가니 그의 앞으로 소포가 하나 와있었다. 펼쳐보니 시퍼렇게 날이 선 칼이였다.

아끼꼬에게 전화를 거니 그에게도 꼭같은 소포가 왔다고 했다.

무라야마는 사학과 학부장에게 물었다.

《그 토론회있은 날이 언제입니까?》

학부장은 가만히 생각을 더듬더니 《그게 금년 여름 8월말이였습니다. 아끼꼬가 저에게 찾아와 <선생님, 엊그제있은 토론회의 대답으로 받은겁니다.> 하며 그 소포를 내놓더군요.

처녀가 그런 협박을 받고보니 무서웠던지 얼굴이 창백했습니다.

그의 애인인 이마무라군도 자기가 받은 소포를 함께 가져왔는데 여간 분개한 얼굴이 아니였습니다.

<선생님, 학문을 탐구하는 토론회를 놓고 이럴수가 있습니까?>

이마무라군은 틀림없이 도미꼬의 사촉을 받은, 그때 함께 차를 타고 왔던 우익패거리들의짓이라고 규탄하더군요.》

《그래서 그 칼을 어떻게 했습니까?》

《경찰을 불러 진상을 이야기하고 그들에 대한 보호문제를 당부했지요.》

《음.》

이해초부터 일본경시청은 손바닥의 손금무늬를 자동적으로 대조하는 《장문자동식별체계》를 운용했는데 저녁에 돌아온 사다께는 아끼꼬가 피살된 후 이마무라에 의해 그 소포의 칼문제가 다시 상정되여 경찰이 령치품으로 가지고있던 그 칼을 정밀하게 감정했으나 그 어떤 장문이나 지문도 찾지 못했다는것이였다. …

무라야마가 도꾜대학에서 돌아오자 이마무라와 함께 북조선대표단의 사업을 함께 조사한 모리형사가 그 내용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보고했다.

《그들의 뒤를 샅샅이 캐보았으나 그 어떤 자료도 찾을수 없었습니다. 법정체류기간 그들은 어떤 이상한 행동도 한것이 없고 특정한 그 누구와 만난 일도 없었다는것이 확인되였습니다.》

모리의 보고를 옆에서 듣고있던 사다께가 고개를 들더니 《과장님, 솔직히 말하면 이 사건은 어떤 나라의 정예공작원들이 행한 사건이라는 냄새가 덜 나는것만은 사실입니다.》 하고 말했다.

무라야마도 사다께의 판단에 긍정이 갔다.

북조선의 소행이라던 관방부장관의 장담이 완벽하게 부서져나간셈이였다.

《한국》의 반일인물들이나 조직폭력단체들의 소행설도 그자신의 판단과 분석에서의 중대한 오유였다.

이마무라!

이제 와서 사건의 주모자의 한사람이 일본인 이마무라라는것을 무라야마는 거의 확정하다싶이 속으로 넘겨짚고있었다.

그때 사다께가 심중히 무라야마를 쳐다보았다.

《저도 이마무라가 사건의 혐의자가 옳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과장님! 우린 실상 이마무라가 10월 3일부터 10월 16일사이에 일본을 떠나 그 어딘가 갔다가 돌아왔다는것만 확인했을뿐입니다. 그가 타이로 도미꼬를 따라 갔다는것도, 분명 거기서 그를 죽이는 범행을 저질렀다는것도 우리의 가설에 불과할뿐입니다. 우린 그것을 물증으로 증명해야 합니다.》

무라야마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옳소. 그걸 증명하는 길은…》

그것은 이마무라를 한시바삐 붙잡는 길이였다.

웅카라는 자정이 넘어 오래간만에 택시를 타고 집으로 들어갔다.

집가까운 유보도에서 내려 걷느라니 거리의 전광판이 벌써 새날의 날자와 시간을 알리고있었다.

《2001년 10월 23일 0시 45분》이라는 날자와 시간밑에 초를 가리키는 수자가 날름거리는 뱀의 혀같은 불꽃을 반사하며 순간마다의 시간을 새겨간다.

웅카라는 느닷없이 자기가 쉰고비가 지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바쁜 시각에 나이셈은 웬 하는 자조적인 생각에 씁쓸히 웃었으나 힘들구나 하는 생각은 어쩔수 없었다.

젊었을 때는 몰랐으나 사건수사로 20여년을 이렇게 눈코뜰새없이 들볶이며 살다보니 조금이라도 긴장을 늦추면 세월의 밀린 피곤이 한꺼번에 온몸을 파고든다.

어느덧 집이 가까이 보이니 아까 전화를 했을 때 정말 오늘 들어오는가 되묻던 젊은 안해의 토라진 목소리가 귀전에 되새겨진다.

새로 맞은 후 언제 한번 흠뻑 시간을 내여 려행 한번 가보지 못한 미안한 녀자다.

이런 생각을 하니 저절로 걸음이 빨라졌다.

(또 잔뜩 입이 부어 토달거리겠군.) 하고 예상하며 들어서는데 문전에서 기다리던 안해가 반겨맞는다.

목욕을 하고 안해와 단란하게 마주앉아 식사를 했다.

찬을 밀어놓으며 이것 드세요, 요것도 좀 하며 입에까지 넣어주는 안해가 여간 미쁘고 사랑스럽지 않다.

사건해결에 대한 압박감과 스트레스에 잔뜩 질려있던 피곤이 한꺼번에 하늘로 날아가는 쇄락한 기분이였다.

(두주간의 질곡을 이렇게 쇄신시켜주다니…)

극도의 피곤이 몰렸던 웅카라는 잠자리에 들자 정신없이 잠에 빠져들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웅카라는 비몽사몽간에 길게 울리는 전화종소리에 눈을 떴다.

또 찾아드는 불면증의 리듬인가 해서 돌아눕는데 전화종이 다시 길게 울렸다.

전화를 걸어온것은 뜻밖에도 츄홍따이였다.

《부장님! 이거 밤늦게 미안합니다.》

《아, 츄홍따이사장…》

웅카라는 츄홍따이문제로 신경이 잔뜩 예민해있던 때인만큼 순간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오래간만이요. 츄홍따이사장, 그런데 이 깊은 밤에 무슨 일이요?》

《부장님! 저에게 래일 시간을 좀 낼수 없으신지요?》

《아, 아무리 분망해도 츄홍따이사장 만날 시간이야 만들어야지. 그런데 무슨 일인가?》

《제 긴히 드릴 이야기가 있습니다. 래일 오후 우리 싸칼리정박장에서 만나는게 어떻습니까?》

《싸칼리정박장?》

《예, 부장님 혼자와만 단독으로 만났으면 해서 그 장소를 택했습니다.》

(음, 혼자만 와달라? …)

웅카라는 긴장해졌다.

《무슨 긴한 사연 같은데… 전화로는 말 못할 이야긴가?》

《예, 그렇습니다.》

《알겠소. 내려가는데 시간이 걸리니까 오후 5시에 거기서 만납시다.》

《부장님, 그럼 기다리겠습니다.》

전화를 끝내고도 그는 한참 침대에 앉아있었다.

사건의 인물들과 깊이 얽혀든 주요용의자의 한사람으로 지목되는 츄홍따이가 수사가 결정적인 고비에 이른 때 수사책임자를 만나자고 제쪽에서 먼저 찾는 이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웅카라는 잠이 말짱 깨버렸다.

며칠전에 만났을 때 의미심장하게 웃던 츄홍따이의 그 눈길이 마주왔다.

(이 인간이 대체 무슨 일때문인가?)

무슨 일인가 꼭 벌어질것만 같은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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