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 회)

제 2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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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 전날(정월 초이튿날)의 한낮이였다.

네명이 들게 되여있는 너렁청한 입원실을 홀로 지키다가 하도 갑갑하여 밖에 나온 전태윤은 바깥에서도 마음을 진정할수 없어 해빛쪼이기를 하는둥 마는둥 하다가 병동에 들어와버리였다.

텅 빈 호실(다른 세명은 설전에 퇴원하여 부대로 돌아갔다.)에 다시 들어와서도 도무지 들썽한 마음이 가라앉지 않아 부대쪽하늘을 바라보며 오래도록 창문곁을 떠나지 못했다.

벌써 열흘째 눈앞에서 떠날줄 모르는 사단장의 얼굴이 다리며 가슴에 심한 타박상을 입고 달포나마 침상에 《포로》된 그의 마음을 그토록 안절부절하게 만드는것이였다.

(무엇때문에 얼굴빛이 그렇게 어두웠을가?

훈련을 내밀면서 방어공사를 완성하는 문제를 놓고 차부상과 생긴 불일치가 더 격화된게 아니였을가?)

지난해 말, 보위성에서 조직한 군사지휘관회의에 참가하러 오는 참에 병원에 들렸던 사단장을 바래워준 다음부터 내내 떠나지 않는 생각이였다. 땅크기동훈련에 대한 보위성비준이 어떻게 되였는가고 묻는 태윤의 물음에 《그럭저럭…》하고 어물쩍 넘기면서 부대일은 걱정말고 병치료에 전념하라고 말머리를 돌리는 사단장의 심중한 얼굴빛에서 시작된 의문이였다.

사람의 성격을 색갈로 표시할수 있다면 리두익은 재빛에 쪽빛 그리고 보라빛이 알릴듯말듯하게 엇갈린 그런 미묘한 색갈의 성격이라고 말할수 있었다. 재빛같이 대체로 어둡고 쓸쓸한가 하면 쪽빛처럼 눈부실만큼 밝고 명랑한 색갈도 언뜻언뜻 나타났고 그런 가운데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그 속내를 대중할수 없는, 보라빛같이 아리숭한 측면도 없지 않았다.

그런데 그날의 인상이 바로 그런 보라빛을 나타내고있었다.

부대사업의 선후차를 놓고 사단장의 결심과 차엄봉부상의 요구가 서로 엇갈리고있다는것은 태윤이도 모르지 않았다.

그것은 부대가 쌍운리로 배비변경한 뒤 얼마 안 있어 차엄봉상장이 부대사업에 관심하면서부터 생긴 마찰이였다.

그때 한쪽은 아직 내놓고 말은 안해도 땅크훈련장건설과 방어공사 등 부대전투준비와 직접 련결된 사업부터 먼저 내밀자는것이요, 다른 한쪽은 병사들의 생활조건부터 우선 풀어야 한다는것이였다.

그런데 전자의 결심이나 후자의 요구나 어느것 하나도 후렬에 놓을수 없으리만큼 절박한 문제들이였다. 또 그렇다고 동시에 다같이 밀고나가기엔 로력과 자재, 시간이 엄청나게 모자랐다.

이와 같은 조건에서 처음 태윤은 새로 온 부상의 요구에 어느 정도 속으로 동감했었다. 뭐니뭐니해도 군인들의 생활부터 안착시켜놓고봐야 한다는 그의 요구가 훨씬 더 현실적이라고 생각된때문이였다. 게다가 전군적인 부대꾸리기보여주기사업에 내세워주겠다고 하지 않는가? 그 기회를 리용하여 전군적인 지원을 받으면 자재문제 같은것도 쉬이 풀릴수 있을게 아닌가?

그래 기회를 봐서 리두익에게 부상의 의견을 고려해볼것을 말해주려던 때에 자신의 그러한 견해가 당의 요구에 부합되는것인가를 따져보게 된 계기가 불쑥 마련되였다.

어느날 저녁 늦게까지 계속된 협의회때였다.

부대 주요지휘관들이 다 참가한 모임이 끝날무렵, 부대장이 이제 곧 땅크훈련장건설과 갱도공사를 동시에 시작할수 있게 각 부문에서 사전준비를 갖추어야겠다고 예비지시를 주자 한규석참모장이 언권을 요구하고 일어섰다.

《보위성에서 병영꾸리기시범단위로 내세우고 밀어주겠다는데 당분간 다른것은 뒤로 미루고 그에 보조를 맞춰주는것이 리롭지 않겠는지…》하고 그가 소심한 말투로 반대의견을 내놓자 태윤은 리두익의 태도부터 살폈다. 자기도 줄곧 생각하면서 기회를 찾던 첨예한 문제가 드디여 상정된것이였다.

《그것이 참모장동무 자신의 의견이요? 아니면 누가 시킨거요?》

리두익이 작전탁 맞은켠에 선 참모장을 똑바로 건너다보며 랭정한 어조로 따지고들었다.

《아니, 저… 제 생각입니다.》

《동무의 생각이라면 내 한마디 합시다.》하면서 참모장더러 앉으라고 손짓하고난 부대장이 계속했다.

《동무들, 어디 생각들 해보시오. 금방 새 진지를 차지한 병사가 당장 공격해올 적들로부터 제 한몸을 의지하고 싸울 전호를 팔 생각부터 하는게 아니라 잠자리부터 마련해놓고 보자는건데… 이게 도대체 맞는 소리요?》

잠시 말을 끊고 일어서는 리두익의 얼굴에 얼핏 떠올랐던 랭랭한 기운이 엄엄하면서도 단호한 빛으로 심각해졌다.

《부대가 최고사령관동지의 명령에 의하여 새로운 작전지역으로 옮겨앉은 조건에서 있을수 있는 정황에 대처할수 있도록 모든 력량을 총동원, 총집중하여 싸움준비를 한시바삐 갖추는것은 혁명의 수도 평양의 안전을 책임진 우리 105땅크부대의 사명으로 보나, 오늘 당의 요구로 보나 미룰수 없는 초미의 문제요. 그런것만큼 부대사업을 여기에 집중하고 조직전개해나가야겠소. 이상이요.》

그날 협의회에서 태윤은 말없이 앉아 듣기만 했을뿐이였지만 부대장에 대하여 그리고 리두익이라는 거울에 비추어진 자기자신에 대하여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였다.

그해(1958년) 3월에 있은 조선로동당 제1차 대표자회 정신을 받들고 인민군대내 모든 군사과업수행과 활동에서 당적사상체계를 철저히 세우기 위한 투쟁이 줄기차게 벌어지고있던 때였다.

바로 그러한 때 당적원칙이 대쪽같이 결바르고 모든 사고와 행동을 철저히 당의 요구에 립각하여 설계하고 전개하려는 자세가 백지에 자를 대고 그은 먹선처럼 뚜렷한 지휘관을 전쟁때부터 근위부대로 전통이 있는 외아들땅크부대 지휘관으로 파견하여주신 수령님의 의도가 가슴 묵직히 새겨지면서 배비변경이후 복잡다단한 부대사업에 대하여 가졌던 자신의 종전견해들을 하나하나 따져보게 되는것이였다.

한마디로 부대사업의 주타격방향을 싸움준비에 정하는가, 아니면 병영꾸리기와 같은 물질생활개선에 정하는가 하는 문제는 어느것이 더 현실적인가 하는 실무적인 문제이기 전에 오늘의 정세를 어떻게 보느냐 하는 적과 평화에 대한 관점문제 즉 전쟁관점에 대한 문제인 동시에 우리 인민군대의 사명을 무엇에 중점을 두고 보느냐 하는 심각한 정치적문제였다.

리두익부대장이 속으로 무르익혀가는 결심속에는 정전은 결코 완전한 평화가 아니며 인민군대는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싸움준비를 더욱 다그쳐 피로써 쟁취한 혁명의 전취물을 총대로 수호하고 조국의 완전자주독립을 이룩해야 한다는 우리 당의 전쟁관점, 총대관이 보이지 않는 초석처럼 든든하게 안받침되여있었다.

반면에 차엄봉부상의 독선적인 요구속에서는 일부 나라들에서 떠들고있는 《평화공존》타령의 메아리가 울려나오고있는것이였다.

(이것은 심각한 문제다. 왜냐하면…)하고 태윤은 매우 심중한 자세로 이 문제를 생각했었다.

(궁극에 가서 그것은 군대가 군대로서 기본사명인 적과의 싸움을 포기하는 길에 떨어지게 되기때문이다! 군대, 특히 혁명군대로서 이보다 더 심각하고 중요하며 수치스러운 타락은 없다. 그러면 이러한 타락은 어디서부터 오는가?)

태윤은 그들- 빨찌산출신의 두 지휘관을 산모습 그대로 앞에 그려놓고 랭정하게 주시해보았다. 모양이 달랐다. 모양에 앞서 풍겨오는 체취가 달랐다. 리두익- 자기의 부대장한테서는 화약냄새, 생눈냄새, 우등불냄새, 풀뿌리 삶는 냄새 등으로 련상되는 빨찌산체취가 그대로 풍겨온다. 하지만 차엄봉- 보위성 부상한테서는 그러한 체취가 덜 풍긴다. 아니, 전혀 없어져간다고 볼수 있다. 대신 그가 몇년 가서 공부하다 온 나라의 빠다냄새, 흘레브냄새, 향수냄새 같은것이 진하게 풍겨온다. 그는 말한다.

《사회주의는 제국주의를 이겼다. 사회주의를 눈에 든 가시처럼 여기며 당초에 그것을 없애버리려고 청소한 쏘련을 사면포위하고 덤벼들던 제국주의가 오늘날에 와서는 인구와 령토와 경제면에서 더는 무시할수 없는 세력으로 승승장구한 사회주의와 평화적으로 함께 살지 않을수 없게 되였다. 속으로는 미워도 할수 없다. 이것은 사회주의의 승리다.》

말은 멋있다. 듣기도 좋다. 어찌 나쁘겠는가? 승리했다는데… 전태윤도 그때문에 처음엔 뿌듯한 긍지를 가지고 들었었다. 그러나 아니였다. 아직은 승리가 아니였다. 승리의 로상에 있음은 사실이지만 혁띠를 풀어놓고 《만세!》를 부르자면 아직 멀고 멀었다.

그런데도 제국주의자들이 드디여 손들었다고 보면서 혁띠를 늦춰놓고 군화끈을 풀어놓는 이 자만도취, 이 자고자대…

무장으로 혁명을 지켜선 군대가 제국주의위협도, 전쟁의 화약내도 인식 못하게 하는 이러한 현훈증에 물젖게 되면 사회주의의 운명은 어떻게 되겠는가? 리두익동지는 이미 벌써 그 냄새를 맡고있는것이 아닐가하고 태윤은 그날 생각하였다. 그러자 두 지휘관의 대립을 그때껏 같은 빨찌산출신 군사지휘관으로서의 자존심문제로 단순하게 보아온 자기의 견해가 협소하고 어리석은것으로 느껴졌었다.

(이것은 원칙문제다.)하고 태윤은 다시금 곱씹었었다.

(그러므로 요구하는 사람의 직권이나 목소리의 높낮음에 따라 행동할것이 아니라 당적원칙이라는 자로 문제의 옳고그름을 재여보아야 하며 그래서 당적원칙에 부합되면 무조건 끝까지 실천하는것, 온 부대를 그러한 정신으로 무장시키는것, 이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리고 그 중요한 과제가 바로 나에게 맡겨져있다.)

이것이 그날 전태윤이 새로 정립한 사업과 생활, 사고와 행동의 지침이였고 기준이였으며 자기의 과제였다.

그 기준에 따라 태윤은 땅크훈련장을 비롯하여 각 병종 훈련장꾸리는 사업과 방어공사를 제일선과업으로 내세우고 당적으로 힘껏 떠밀어주면서 반토굴식림시병영건설은 자신이 직접 맡아나섬으로써 군사일군들이 전투훈련과 전투준비를 완성하기 위한 사업에 전적으로 머리를 쓰고 뛰여다닐수 있도록 하였었다.

그리하여 오늘에 이르렀는데 이번에는 훈련이 우선이냐 병영꾸리기가 기본이냐 하는 문제를 놓고 또다시 차엄봉부상과 대립되였다. 이제 이 문제는 새해전투조직을 최고사령부에서 직접 조직지휘하는 여름철전투사격경기를 중점에 두고 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보위성에서 조직하는 병영꾸리기보여주기사업을 중점에 두고 짜느냐 하는 문제로 심각하게 분석되고있었다.

(이런 때 부대 정치부장이라는 사람이 달포가까이 병원침상에 누워있으니 사단장동지가 얼마나 힘들겠는가. )

태윤은 아직 붕대를 풀지 못한채로 있는 옆구리와 허벅지의 상처부위를 주먹으로 쿵쿵 두드렸다. 하루에도 몇번씩 이렇게 두드려본다! 다행히 뼈를 상하지 않은 허벅지는 아픔을 참아낼만 하지만 갈비뼈가 넉대나 부러진 흉곽부위는 뼈속을 후비는듯 한 아픔이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줄달음한다.

아직 멀었다는 소린가? 멀긴 뭘 멀어?… 다 나았다. 암, 낫구말구! 달포가 어디 짧은 기간인가? 전쟁땐 몸에다 파편쪼각을 서너개 품고서도 신음 한번 내지 않고 적진에로 돌격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해이됐어. 태윤이, 너한테도 어느새 평화바람이 들었단 말이야!

눈을 꾹 감고 다시 쿵! 때려보았다.

각오하고 때려서 그런지 아픔이 덜해졌다. 약하게 다쳤는가? 이를 사려물고 힘주어 때렸다. 《윽-》저도 모르게 신음이 터졌다. 저 듣기에도 처량한 신음이다! 문 있는데서 무슨 소리같은것이 났다. 누가 들여다보는가 하는 생각으로 돌아보았다. 아무도 없다. 문도 닫겨있다. 다시한번 더… 문 두드리는 소리를 가려들은것은 이때였다.

태윤은 주먹을 허공에 들어올린채 굳어졌다.

똑똑똑… 《계십니까?》이번에는 문 두드리는 소리와 찾는 소리를 분명히 알아들었다. 이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다.

《예.》옆구리를 때리던 손을 내리우면서 태윤은 대답했다.

문이 가볍게 열리면서 고급중학교 학생복차림의 학생이 들어섰다. 해가 남쪽으로 제일 멀어진 계절이라 정오무렵인데도 넓은 창문으로 흘러든 해빛이 방안깊숙이 비쳐와 문가에 선 방문자의 전신을 환히 비쳤다. 그래서인지 영채와 준수함이 어울려 엄하면서도 눈부시도록 환한 빛을 발산하는 그 매혹적인 표정에 금시까지 울울하던 마음이 확 밝아지는것 같았다.

《안녕하십니까?》

엉거주춤 몸을 일으키는 태윤을 향하여 가볍게 목례를 하고난 매혹적인 표정의 그 학생이 《105땅크사단 정치부장동지이지요?》하고 스스럼없이 물으며 그에게로 다가왔다. 그런데 해빛이 비쳐드는 구역을 벗어났음에도 눈부신 그 빛은 그냥 다가온다. 빛은 학생의 안광에서 수시로 뿜어나오는것 같았다. 볼수록 매력적인 그 모습에서 눈길을 거두지 못하며 태윤은 뒤늦게야 그렇다고 대답했다.

《나는 남산고급중학교 학생입니다.

정치부장동지를 만나보고싶어 잠간 들렸습니다.》

자기 소개와 찾아온 연유를 말하는 품이 오랜지기와 나누는 이야기처럼 스스럼없는데 영채 빛나는 눈빛이며 인정 넘치는 표정이며 퍽 친근하게 느껴진다. 어디선가 인상깊이 새겨둔 눈빛이며 표정이다. 어째선지 눈길을 땔수 없는 그 존안에 자신을 잊은듯 그냥 벙벙해 앉았던 태윤은 이번에도 《나를요?!》하고 한호흡 늦게야 반문했다.

《예, 실은 여기 병원에서 치료받고계시는 박달동지한테 왔던김에 이렇게 들렸습니다.》

《박달동지를요?!》

저도 모르는 사이 두번째로 튀여나간 반문이였다.

혁명투사 박달동지가 병원 어디엔가 입원해있다는 소리를 들었으나 만나보진 못했었다. 상태가 몹시 위중하다는 소리에 생사람을 그처럼 악착하게 두들겨팬 야수같은 일제교형리들을 욕하며 먼걱정만 했었다.

그런데 이처럼 젊디젊은 고급중학교 학생이 그한테 면회를 왔다고 하는것이다. (친척인가? 아니다. 이자 분명 《박달동지》라고 불렀다. 그렇다면? 가만있자!)

다시 보아도 분명 고급중학교 학생복차림이였다.

속으로 기웃하는 순간 편듯 뇌리를 때리는 생각이 있었다.

(박달을 이처럼 《동지》라고 스스럼없이 부를 고급중학교 학생은 없다. 다만…)

《수령님께서 설날 아침에 105땅크사단동무들이 어떻게 새해를 맞는지 모르겠다고 하시면서 사단정치부장이 병원에 올라와있다는데 리두익사단장이 혼자서 힘들것이라고 걱정하시였습니다. 그래서 왔던김에 만나보고 가자고 이렇게 들렸습니다.》

별안간 태윤의 눈앞에서 섬광이 일었다.

그이- 김정일동지를 알아본것이였다.

《아니, 그럼?!… 처음부터 혹시나 하면서두 설마 하는 생각에 착각했나 했댔습니다. 10여년세월이 흘렀는데도… 난 김정숙어머님을 다시 뵈옵는줄 알았습니다. 그때 어머님과 함께 저 송신동에 있는 우리 땅크훈련장에 얼마나 자주 나오셨습니까?》

《예, 우리 어머님께서는 땅크부대와 만경대혁명학원에 그 어디보다 많이 가셨습니다. 내 기억에만도 땅크부대에 서른번은 더 가신것 같습니다. 》

《옳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병원에서 뵈올줄은…》

《가만, 정치부장동지, 한가지 미리 말씀드릴게 있습니다.》

《예?!》

《나에게 경어를 쓰지 마십시오. 난 학생입니다. 그러니 여느 고중학생 대하듯 해주십시오. 그래야 나도 얘기하기가 편합니다.》

《하지만 그렇게야 어떻게?…》

《나는 수령님을 가장 몸가까이 모시고 공부하는 이 나라의 한 아들로서 오늘 105땅크사단에 대한 수령님의 기대와 관심이 얼마나 높으신가 하는것을 전해드리자고 왔습니다. 그러니 편하게 얘길 합시다. 부탁입니다. 》

《정 그러시다면…》

겸허하면서도 엄격하신 그이의 요구앞에 어쩌는수 없이 손을 들고서도 태윤은 《참, 기억나시오?》하고 높임말을 더욱 친근하게 써가며 그 시절의 잊을수 없는 추억의 실꾸리를 풀었다.

어리신 김정일동지께서 어머님과 함께 만경대 증조할아버님께서 터밭에서 손수 키우신 마라초를 가져다 친히 말아 불까지 붙여주시던 일, 수령님을 모시고 땅크훈련장에 나왔다가 류경수동지와 함께 자기네 땅크에 오르셨던 일, 땅크를 꽝꽝 몰고가서 미국놈들을 모조리 족쳐달라고 고무해주시던 일… 그 일들을 승조원들은 전쟁때에도 늘 잊지 못했다고 하면서 그는 말했다.

《그때 저는 장탄수였습니다.》

《그리고 중대당세포위원장이였지요?》

《아니, 그건… 어떻게?!》

《대대장은 김충렬동지였구요. 황순희어머니한테서 들었습니다. 내가 서투른 솜씨로 말아드리는 마라초를 맛나게 피우던 장탄수가 그때 중대당세포위원장이였구 지금은 105땅크사단 정치부장을 한다고 말입니다. 그래, 상처는 어떻습니까?》

김정일동지께서는 그의 낯빛을 찬찬히 눈여겨보며 물으시였다.

화제가 불쑥 그 방향으로 꺾어드는 바람에 어지간히 당횡해난 태윤은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는 쿵쿵쿵 뜀뛰기를 해보이고 상체를 움씰움씰 흔들어보이다가 주먹으로 가슴을 쾅 때렸다. 그런데 이상하다. 아까는 숨 넘어갈듯 한 아픔이 전신을 누볐었는데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다. 그는 몸을 쭉 펴보이며 거의 웨치다싶이 했다.

《이젠 다 나았습니다. 랠모레쯤 퇴원할가 합니다.》

《아닙니다. 적어도 열흘은 더 안정해야 합니다. 이건 병원군의동지들의 말입니다.》

《이런 참, 손금보듯 확 꿰뚫고 왔군요.》

태윤은 자기에 대하여 미리 다 알고오신 그이의 자상하심에 감탄하는 한편 아직도 열흘씩이나 병원신세를 더 져야 한다는 실망감으로 하여 모순된 감정에 빠졌다. 그리하여 순간에 어깨가 축 처져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참, 그때 소대장을 하던분은 어떻게 되였습니까?》

김정일동지께서는 갑자기 소침해진 그의 의기를 돋구어주려는듯 화제를 돌리시였다.

《김충렬동지의 말에 의하면 김일성종합대학을 다니다 나온 민청원소대장으로 글이랑 잘 썼다던데요?》

《한찬보! 우리 소대장동무 말씀입니까?!》태윤은 대번에 활기를 되찾고 얼굴이 밝아졌다. 《전쟁이 끝난 다음 대학공부를 마저 하고 평양에서 시인이 되였다는 소릴 들었는데 아직 만나보지는…》

《105땅크사단출신 작가라면 시를 잘 쓸것입니다.

글이란 무엇보다 체험의 산물이니까요. 나는 방금 항일혁명전쟁이 낳은 불굴의 혁명작가를 만나보고 오는 길입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이렇게 시작하시고 잠시 끊었다가 문득 갈려드는 어조로 말씀을 이으시였다.

《내가 오늘 박달동지를 문안오게 된데는 사연이 있습니다.

우리 학교 생물소조원동무들이 온실에서 키운 첫물도마도를 어떻게 하면 더 의의있게 쓸수 있을가 토론하다가 수령님께 올리기로 결정하고 그 분공을 나에게 주었습니다. 수령님께서는 그 지성품을 받고 우리 동무들에게 고맙다는 자신의 인사를 전해달라고 하시고는 새 세대 민청원들의 땀과 정성이 깃든 이 도마도를 병원에 입원해있으면서도 우리 후대들에게 남길 혁명전통에 대한 글을 쓰느라 최후의 힘을 다하여 고군분투하는 박달동지한테 가져가는것이 좋겠다고 하시였습니다.》

《수령님께서요?!》태윤은 경건해지는 마음으로 움쭉 일어섰다.

창문께로 다가가신 김정일동지께서는 방금 다녀온 병동을 이윽토록 바라보시다가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더욱 격해지신 어조였다.

《침상에 누운채로 원고지를 펴놓고 글을 쓰는 그 모습…

우리 동무들의 지성과 수령님의 사랑이 어린 도마도를 받아들고 감동을 금치 못하며 내앞에서 한창 쓰던 글을 읽어주시는데 내용도 내용이지만 불굴의 그 정신력앞에 머리가 숙어졌습니다.

옥중에선 교형리들한테 갖은 악형을 다 당하면서도 지조를 굽히지 않음으로써 혁명을 지켰고 지금은 혼신의 마지막힘을 다 바쳐 새 세대들을 항일의 혁명전통으로 교양하기 위한 교과서를 쓰는것으로 혁명의 피줄기를 지켜가는 불굴의 그 모습앞에 눈물이 나지 않는다면 그런 사람은 혁명가는 고사하고 우선 인간이 아닐것입니다.》

태윤은 자기도 의식하지 못하는 힘에 이끌려 그이곁으로 몇걸음 다가섰다. 그러며 무엇인가 말씀드리려고 했으나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심장이 툭툭 박동치는 가슴속에서는 무슨 말인가 울리는데 그것을 끄집어낼수가 없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태윤의 심정을 읽으신듯 그의 손을 꽉 잡고 말씀을 이으시였다.

《박달동지를 보니 류경수동지 생각이 났습니다.

이런 때 류경수동지가 곁에 있었으면 한몫 했을것입니다.

1956년에 최창익, 박창옥이 같은것들이 뒤골방에서 우리 혁명의 근본을 허물어보려고 할 때 최현, 류경수동지들이 인민군신문과 전선신문들에 수령님을 옹호하는 글을 직접 써내는 한편 인민군협주단 창작가들을 발동하여 <김일성원수께 드리는 노래> 와 같은 음악폭탄을 만들도록 하였습니다. 하여 총대와 함께 글로써도 혁명을 지켰습니다.

류경수동지가 지금 있으면 박달동지처럼 산에서 싸우던 회상글도 앞장서 쓰고 당중앙을 받들고 지켜가는 우리 인민군전사들의 신념을 담은 노래도 짓도록 하였겠는데 그를 잃은것이 참 분합니다.

그래서 더욱 애석합니다.》

전태윤은 더이상 침묵하고 서있을수가 없었다. 하여 자기로서도 읽어낼수가 없는 가슴속의 불같은것을 그대로 쏟아놓았다.

《우리 105사단 땅크병들은 류경수동지의 피타는 노력으로 태여난 <김일성원수께 드리는 노래>를 우리 사단의 노래로 부르고있습니다. 그리고 내 이제 온 평양시내를 발칵 뒤져서라도 우리 땅크사단출신 시인인 한찬보동물 찾아내여 제2의 <김일성원수께 드리는 노래>를 짓도록 추동하겠습니다.

옛 세포위원장의 이름으로 아니, 우리 사단의 첫 사단장인 류경수동지의 이름과 근위 서울제105땅크사단 전체 장병들의 이름으로 명령하겠습니다. 》

《그 명령에 류경수동지의 전우인 이 김정일의 부탁도 포함하여 전하십시오. 》

《알겠습니다. 》

절절하신 당부, 호기찬 대답에 호탕한 웃음이 뒤따랐다.

호젓한 기운이 서렸던 방안공기를 흔드는 그 웃음속에 태윤의 손을 잡고 김정일동지께서는 말씀하시였다.

《난 여기로 오면서 105땅크사단 정치부장동지가 조용한 성격에 지성인형의 정치일군일것이라고 상상했었습니다.》

《그렇습니까? 지성으로 말하면… 우리 사단장동지야말로 지성인형의 군사지휘관입니다. 그래서 머리 숙어질 때가 많구 또 많이 배웁니다. 난 그저 이렇게 직통배기입니다.

솔직한 말로 그때문에 실망을 주었을가봐 지금 두렵습니다.》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지금 내 생각을 그대로 말하면 땅크를 타고 전쟁의 불바다를 헤쳐온 전쟁로병이 확실히 다르다! 이겁니다. 정치부장동지의 온몸과 넋에서 땅크소리가 막 나는것 같습니다.》

《그렇습니까? 이거 참 다행입니다. 그렇다니 저도 기쁨니다.》

또다시 호젓하던 방안공기를 휘젓는 호탕한 웃음…

《자, 그럼 이젠 사단에 대하여 이야기해봅시다.

수령님께서 105땅크사단 장병들의 준비상태에 대하여 몹시 알고싶어하십니다. 》

김정일동지께서는 그의 팔을 잡고 침대쪽으로 이끄시였다.

 

×

 

그날 오후 2시.

련광정앞 아빠트에 있는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시문학분과에 전에 있어본적이 없는 일이 벌어졌다.

3층에 위치한 창작실의 나들문을 열고 복도에 불쑥 들어선 웬 상좌가 《우리 105출신 시인선생이 여기 있다지요?》하고 어방없이 큰소리로 창작실이 생긴 이래 그 누구도 감히 다쳐보지 못한 정적을 여지없이 짓부셔버렸던것이다. 그러나 상좌의 목소리만 쩌렁쩌렁 복도를 울리며 턱자없이 크게 공명되여 돌아올뿐 반응이 없었다. 좁다란 복도 량통의 꼭 닫겨진 여러개의 문들중 맨 안쪽문이 열린것은 몇순간 지난 뒤였다.

《내가 105출신이요!》

문을 반쯤 열고 대답하던 사람의 입에서 별안간 환성이 터졌다.

《이게 누굽니까? 세포위원장동무가 아닙니까?!》

문 닫을념도 못한채 큰소리치며 달려오는 그에게 상좌는 몸가짐을 바로하고 정중히 거수경례를 붙였다.

《소대장동지, 그새 건강하셨습니까?》

강단이 느껴지는 몸집에 눈정기가 또렷한 그는 시인-한찬보였다.

난데없는 고함소리와 없는것처럼 조용하던 시인한테서 튀여나오는 기꺼운 환성에 놀라 문을 열고 내다보던 머리희슥한 로시인들이 한폭의 그림을 련상시키는 숭엄한 그 모습에 마음들이 뭉클해져 소리를 죽여가며 문들을 닫았다.

《보다싶이 이렇게 건강합니다.》

군살 한점 없어보이는 몸을 빙그르르 돌리며 시인은 대답했다. 그제서야 귀밑에 붙였던 손으로 갱핏한 시인의 몸을 쭉 내리훑으며 상좌 전태윤은 눈물이 글썽해졌다.

《건강하다니 다행입니다.》

《그런데 날 어떻게 찾아왔습니까?》

《어떻게라니요?… 옛 세포위원장이 입당보증을 준 105땅크사단출신 당원에게 중요한 당적분공을 주려고 이렇게 찾아왔지요.》

우선우선한 표정속에 진심을 담아 하는 그 말을 어떻게 리해해야 할지 몰라 시인은 잠시 뗑한 기색이였다.

《예?! 당적분공이요?》

그러자 태윤은 곧 어조를 바꾸어 곡진한 투로 말했다.

《소대장동지의 도움을 받자고 왔습니다.》

《세포위원장동무 부탁이라면야… 자, 들어가 이야기를 나눕시다.》

《쉿, 누가 들으면 안됩니다. 밖에 나가서 좀…》

문안에 발을 들여놓기도 전에 분공이요, 도움이요 하다가 《쉿.》소리를 해가며 무작정 밖으로 잡아끄는 그를 벙벙한 눈으로 쳐다보던 시인이 할수 없는듯 자기 방에 들어가 겉옷을 입고 나왔다.

이리하여 위훈높은 105땅크사단의 옛 소대장과 중대당세포위원장은 대동문밑으로 해서 대동강변으로 나갔다.

소한밑이라 대동강은 이편 기슭에서 저편 대안까지 꽝꽝 얼어붙었다.

한창 방학때여서 널판자와 가죽으로 신을 만들어붙인 스케트에 외발 혹은 두발짜리 썰매에다 나무를 깎아만든 팽이… 갖가지 빙상운동기구에 유희기구들을 재간껏 갖춰들고나온 학생들로 유리처럼 반듯한 얼음이 금시 꺼질것만 같았다.

《참 좋은데서 글을 쓰는군요, 소대장동진.》

약간 쩔뚝거리는 걸음새로 한발 앞서가며 오구작작 끓어번지는 아이들을 바라보던 전태윤이 부러움에 젖은 투로 하는 말이였다.

《그래 내가 도울것이 무엇입니까?》

오래간만에 옛 전우와 만나 풍치좋은 수도의 강변길을 걷는다는 기꺼운 감회보다 여기까지 끌고나와 받아야만 하는 당적분공이 무엇일가하는 호기심에 더욱 끌린 시인이 물었다.

《시인한테 뭘 부탁하겠습니까? 노래지요.》

《노랠요?!》

《예, <땅크병들의 노래>. 아니, 차라리 우리 <105땅크사단의 노래>라고 하는편이 더 정확할겁니다.》

《 <105땅크사단의 노래>요?!》

《그렇습니다. 이제부터 내가 하는 말은 어디 가서 옮기지 말고 그저 듣기만 하십시오. 그러면 당장 우리 사단으로, 소대장동지의 청춘시절이 흘러간 정든 부대로 달려가자고 할겁니다.》

 

×

 

그다음날 저녁무렵.

그들 두 전우는 눈갈기를 뽀얗게 일으키며 고속을 놓아 달리는 낡은 군용찌프차를 타고 묵천으로, 105땅크사단으로 가고있었다.

차에는 그외 한사람 더 타고있었다.

한찬보와 나란히 뒤좌석에 앉아가는 중위였다. 해사한 낯빛에다 안경테속의 뎅그런 눈이 겁많은 처녀의 용모를 련상케 하는 중위는 다섯달전에 평양사범대학을 졸업하면서 군복을 입고 인민군출판사에 온 기자였다.

그가 묵천행을 같이하게 된데는 한찬보의 충동이 컸다.

어제 대동강변에서 나는 이야기과정에 최현, 류경수동지들이 중량감이 있는 글까지 썼다는 사실을 알게 된 시인은 자못 놀라와했다.

《난 그들을 일생 총밖에 모르는 전형적인 무관들로만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글까지 쓰셨다니…》

《놀랍지요? 그러나 사실입니다.

소대장동진 일찍 제대되였으니 못 봤겠군요. 1956년 5월 9일부 군보에 <김일성원수님을 정치사상적으로, 목숨으로 옹호보위하는것은 인민군군인들의 숭고한 의무>, 이런 제목의 론설이 실렸는데 필자는 민족보위성 부상인 최현동지였습니다. 그보다 하루전인 5월 8일, 제1집단군신문에 <위대한 수령 김일성원수님의 령도는 우리 당과 인민의 모든 승리의 결정적담보>라는 론설이 실려 집단군산하 군인들의 눈길을 모았는데 그 필자가 바로 집단군사령관인 류경수상장이였습니다. 그 글들을 보고 이 항일로장들이 제때에 좋은 글들을 써냈구나 하고 감탄했는데 우린 몰랐습니다.

그 글들도 그렇구 세상을 들었다놓은 <김일성원수께 드리는 노래>두 방금 얘기해드린 광명성대장의 의견을 받고 한것이였다는걸 말입니다.》

《나도 처음 듣습니다.》

《지금 저 벌가리아에 대사로 나가있는 항일투사 림춘추동지도 혁명전통에 대한 좋은 글을 쓰고있다고 그분은 말씀하시던데 내 생각엔 그 아바이도 아마 그이의 영향을 받고 그 일을 하는것 같습데다.》

《음- 나도 들은 소리가 있습니다.

내 동무 하나가 인민군출판사에 있는데 얼마전 의미심장한 말을 했습니다. 지금 빨찌산아바이들이 수령님으로부터 글쓰기과제를 직접 받고 회상글 잘 짓는 기자들한테 찾아와 글짓기훈련들을 받는다구요.

그 동무한테도 누가 벌써 손을 뻗쳤는가 봅디다.》

《누구?》

《딱 찍어말하진 않는데 최현동지인것 같습디다.》

《음- 늦었군! 소대장동지, 내 그래서 왔습니다.

우리 105땅크사단 력대지휘관들치고 이름나지 않은 빨찌산이 있었습니까? 지금 사단장인 리두익동지만 해도 본인이 입이 무거워 말은 안해도 공적이 많은분인데 어떻게 해서라도 글을 쓰도록 곁에서 도와드려야 할텐데 나야 어디 글을 압니까?

거기다 류경수동지와 최현동지가 인민군협주단 창작가들을 추동하여 만든 <김일성원수께 드리는 노래>와 같은 음악폭탄두 류경수동지의 고향이나 다름없는 우리 105사단에서 나와야 될터인데 이걸 누가 하겠습니까? 105땅크사단출신 시인이 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래서 왔단말입니다. 좀 도와주시우.》

《좋습니다. 아니, 그보다 먼저 고맙습니다. 아직은 문단에 이름올리지 못한 105땅크사단출신 시인을 생각해주어서 말입니다. 내 꼭 신임에 보답하리다. 그리고 글폭탄, 노래폭탄을 만드는 전투에 한사람 더 인입합시다.》

《누굴? 아하! 최현동지가 달라붙었다는 인민군기자동무?

좋지요. 래일 오후 느지막해서 출발합시다. 차는 내가 대겠으니 기자동문 소대장동지가 맡아야겠습니다.》

노래도 그렇고 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글도 105땅크사단에서 먼저 장훈을 부르려는 전태윤의 속심에 의하여 이루어진 문인들의 묵천행이였다. 아니, 그보다 군대는 항일빨찌산들이 발휘한 불굴의 혁명성을 제1전투식량으로 삼아야 한다는 김정일동지의 뜻을 전적으로 받듦으로써 여름에 있게 될 전군적인 전투사격경기에서 그 덕을 단단히 입어 전례없는 쾌승을 올려보려는데 그 진속이 있었던것이다.…

찌프차는 어느덧 명원군과 묵천군경계를 넘어서고있었다.

《빨리 밟소, 오늘만은 과속해도 욕하지 않을테니…》

차보다 앞서달리는 마음에 이끌려 그러지 않아도 만속을 놓고 달리는 운전수를 괜히 다몰아대던 태윤은 뒤켠으로 홱 몸을 돌려앉았다. 두 문인이 두런두런 나누는 이야기가운데 리두익동지의 《처벌받은 노루고기사건》이라는 말을 귀결에 들은것이였다.

《그건 무슨 소립니까?》하고 그는 물었다.

《이 기자동무의 말이…》하고 한찬보가 자그마한 눈속에 반짝거리는 웃음을 머금고 대답했다.

《리두익사단장동지 소년중대시절얘긴데 1939년도 가을엔가 보초근무를 서던중 300메터가 넘는 숲속에서 어슬렁거리는 노루를 단방에 쏴넘어뜨린적이 있답니다. 리두익동지가 그렇게 소문난 명사수였답니다. 》

《명사수인건 사실입니다. 한데 <처벌받은 노루고기사건>은 뭡니까?》

태윤이 긴장과 호기심이 엇갈리는 마음으로 재촉했다.

《그렇게 노루는 멋지게 쏴잡았는데 그때문에 숙영지에서는 금방 쳤던 천막을 거둔다, 한창 끓는 강냉이죽기마를 들어낸다, 일대 소동이 벌어졌답니다. 보고를 받으신 사령관동지께서는 고기는 다음날 동무들이 끓여먹도록 하고 가죽은 노루를 쏴잡은 리두익동지에게 주도록 하시면서도 규률을 어긴데 대해서는 처벌을 주셨답니다. 중대마다 찾아다니며 자기의 잘못을 비판하고 용서를 비는 처벌이였답니다.》

《그래 그렇게 했겠구만, 우리 사단장이…》

《어디라고 안합니까? 벌써부터 자기의 잘못을 느끼고있었던것만큼 달게 받고 중대마다 찾아다니며 용서를 빌었답니다.》

《그게 답니까?》

《다면 <처벌받은 노루고기사건>이라고 할것까지 안되지요. 일은 이것으로 끝나는가싶었는데… 다음은 동무가 계속하는게 좋을것 같구만.》

한찬보가 곁에서 시물시물 웃는 안경쟁이에게 말꼬리를 넘겨주었다.

《이건 림춘추동지를 취재할 때 들은 이야긴데 아마 이제 그의 회상기로 곧 세상에 나갈겁니다.》

이렇게 말머리를 잡은 중위가 들려준 뒤부분은 다음날 아침식사시간에 일어난 사건이였다.

사람들이 모이면 그중에 남의 일을 두고 시까스르기 좋아하는 축들이 한둘은 꼭 있는 법이다. 사건은 두익의 덕으로 생각지 않던 고기국을 먹게 된 대원들중 몇몇 구대원들이 식탁에 마주앉아서도 제가 쏴잡은 고기국에 숟가락을 대려고 하지 않는 두익이가 들으라는듯 눈을 끔벅거리며 주고받은 즉흥재담때문에 터졌다.

《이거 오늘 국이 과연 별맛이구만!》

《우리 두익이 처벌받은 노루고기국이니까.》

《두익이 명사수는 명사수야. 300메터도 넘는 거리에 있는 이놈을 단방에 쏴잡은걸 보지.》

《그보다는 이놈이 운이 나빴지. 이름난 빨찌산명사수앞에 제발로 찾아올건 뭐겠소.》

《욕하지 말고 먹어주기나 하라구요. 얼마나 고마운 노룬가.》

《고맙기야 노루보다 처벌을 받으면서까지 우리에게 이렇게 푸짐한 고기국을 선사해준 두익동무가 더 고맙지.》

그러나 이미 두익은 그 자리에 없었다. 순하면서도 팩하기 잘하는 내심적인 그의 성격에 익살군들의 그 재담을 들어줄수가 없어 숟가락을 놓고 나가버린것이였다. …

《잘못했군!》안경쟁이중위의 이야기를 숨죽이고 듣고난 태윤의 입에서 절로 튀여나간 말이였다.

《누가 말입니까?》한찬보가 그를 보며 물었다.

《아니, 아니요. 내 혼자소리요.》

그러며 앞을 향하여 돌아앉던 태윤은 눈덮인 길섶에 나서서 차를 지나보내는 웬 녀인의 모습을 돌아보다가 운전수에게 물었다.

《성국이 어머니가 아니요?》

《사단장동지 아주머니가… 맞는것 같습니다.》

《차를 세우고 뒤로 후진하오.》

운전수가 변속을 채 바꾸기 전에 아이를 등에 업은채 총총걸음을 놓는 화순의 모습이 환하게 앞을 밝힌 전조등빛에 드러났다.

시계를 보니 신의주행 렬차가 묵천역을 지나간지 이슥하다.

태윤은 묻지 않고도 그가 어디 왔다가는 길인가를 알수 있었다. 성국이가 이번 방학에도 집에 오지 않은 모양이였다. 그래서 쌍운리소재지앞에까지 마중왔다가 홀로 돌아가는 길일것이다. 지난해 여름방학때도 그랬었다.

(잘못했다, 학원에 들려 강제로라도 싣고왔을걸.… 한시바삐 부대로 갈 생각만 앞세우다보니 그걸 미처 생각 못했구나!)

차를 그냥 지나치는 화순을 불러세우는 태윤의 마음이 갑절 더 무거워졌다.

 

련재
[총서 《불멸의 향도》]력사의 출항 (제1회)
[총서 《불멸의 향도》]력사의 출항 (제2회)
[총서 《불멸의 향도》]력사의 출항 (제3회)
[총서 《불멸의 향도》]력사의 출항 (제4회)
[총서 《불멸의 향도》]력사의 출항 (제5회)
[총서 《불멸의 향도》]력사의 출항 (제6회)
[총서 《불멸의 향도》]력사의 출항 (제7회)
[총서 《불멸의 향도》]력사의 출항 (제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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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서 《불멸의 향도》]력사의 출항 (제1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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