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 회)

14

 

무로우는 자기의 승용차를 주차장에 세웠다. 후견인의 차는 벌써 기다리고있었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무로우는 내심을 감추고 머리숙여 인사했다.

《허, 자넨 이 늙은이를 한증시켜줄 심산인게로구만. …》

후견인은 민망스러운 눈길을 던졌다.

《선생님, 미안합니다. 사실은 급한 일을 마무리하느라구…》

무로우는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닦으며 변명했다.

후견인은 리해된다는듯 머리를 주억거렸다.

《난 또 임자가 때아닌 봄바람에 취했는가 했지. …》

무로우는 얼굴을 붉혔다.

《저?어 선생님, 그건 사실…》

후견인은 손을 내저었다.

《됐네, 됐어. 사내야 응당 그럴수 있지. 그런데 일이 잘 안된다면서? …》

《예, 좀…》

무로우는 그가 탄 삼륜차를 밀었다.

《락심말라구. 쉽게 얻은 사랑은 대신 깊이가 얕지. 그래서 내 오늘 자네의 심기를 돌리려구 여기 야스구니진쟈로 부른거네.》

《선생님, 고맙습니다.》

《임자 같은 젊은이들이 기운을 잃지 말아야 돼. 그래야 이 나라가 주름살을 모르게 되지.》

10만여평방메터의 부지를 차지하고있는 《야스구니진쟈》는 담장으로 둘러막혀 외부와 격리되여있었다. 정문앞에는 기념문이 세워져있고 뒤마당에는 참배궁 등 기본건물이 있다.

그들은 진쟈의 대문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앞에는 10여메터의 높이로 된 초롱모양의 돌탑이 세워져있었다.

후견인은 거기에 새겨진 비문을 스님이 념불외우듯 중얼거리며 읽었다.

《황운을 위해 목숨을 바쳐 충성다한 용사들을 추모하며 그들의 업적을 널리 찬양한다.》

글줄들이 마음을 흡족하게 한듯 그의 얼굴에는 환한 웃음이 흘렀다.

《그래그래, 이들이 아니였다면 오늘의 우리 일본이 있을수 없지…》

후견인은 이곳을 찾을적마다 늘 이 비문을 깊은 회억속에 읽군 했다.

돌탑은 1935년에 세워진것이다. 밑부분에는 16개의 부각상이 새겨져있었다. 대부분이 《남경점령》 등 해외침략전쟁과 관련된것들이였다.

마당안에는 크고작은 나무들이 꽉 들어차있었다. 록음이 짙어 진쟈는 언제나 시원한감을 주고있었다.

후견인은 흰모래우에 굴러가는 삼륜차에 앉아 진쟈의 건물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면서도 마치 자기가 이곳의 신관이라도 된듯 말이 많았다.

《임자도 이 진쟈에 대한 력사를 잘 알고있을테지?》

《선생님, 제가 어찌 그것을 모르겠습니까.》

무로우는 어줍게 웃어보였다. 사실 그는 얼마전부터 이 《야스구니진쟈》에 대한 참배를 새로운 안목으로 투시해보기 시작했다. 일본의 오랜 침략사를 보여주는 전시장이나 같은 이곳이다. 바로 이곳에서 후견인과 같은 고위정객들은 물론 력대 수상들도 구 일본의 야망을 재생할 일념을 굳혔다. 그러나 그것은 세계의 규탄과 지탄을 면치 못하고있었다. 일본인이라는 관점에 서서 생각해봐도 그렇고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기원하는 인류의 목소리에 비추어볼 때도 매우 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때문에 우리 일본인들은 파쑈의 광신자들을 제 뿌리로 인정하고 그 즙을 빨아 숨쉬며 의식을 자래워야 하는가? 이것이 정말 옳은 처사일가?

후견인은 등뒤에서 현실에 대한 이상야릇한 감정에 시달리는 무로우의 심리를 느끼지 못했다.

《그래, 그래… 일본인이라면 그걸 몰라서는 안되지.》

무로우는 《야스구니진쟈》의 력사에 대해 더듬어보았다.

《야스구니진쟈》는 명치유신이 있은 다음해인 1869년 《초혼사》(혼을 부르는 사당)라는 이름으로 이곳에 설립되였다. 여기에
는 야마또민족의 첫 조상이라고 하는 아마데라스 오미가미(천조대신)를 비롯한 신무천황(1대 천황), 명치천황 그리고 하늘신, 바다신 등 이름을 다 외울수도 없는 갖가지 귀신들을 다 모여놓고 제사를 지내군 했다.

그때로부터 10년후인 1879년에는 사당의 이름을 지금과 같이 《야스구니진쟈》로 고쳐부르게 하였다. 《야스구니》라는 말은 나라를 편안하게 해준다는 뜻을 담고있었던것이다.

이때부터 여기에는 명치시대로부터 1945년의 패망에 이르기까지의 네차례의 큰 침략전쟁 즉 청일전쟁과 로일전쟁,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에서 죽은 약 250만 전몰자들의 위패가 보관되여있었다.

후견인은 갈림길에서 지팽이로 2층짜리 건물인 유치관을 가리켰다.

《저기로 가자구.》

유치관은 1882년에 일본의 근대사를 전하기 위한 목적으로 세워진 건물이였다. 전후에는 《야스구니진쟈》 보물관으로 개칭되였다가 1986년에 《유치관》이라는 명칭을 달았다. 1만 1 200평방메터인 여기에는 20여개의 전시실이 있었다. 메이지유신때부터 제2차 세계대전이 종결될 때까지 일본의 침략전쟁사와 관련한 자료들이 전시되여있다. 전시실들에는 일본이 관여한 전쟁을 고대부터 차례차례 시대별로 나누고 그림판과 여러가지 군품들을 통해 당시의 상황을 보여주었다.

하나하나의 전시품들과 자료들에는 일본의 반인륜적인 행위와 침략사가 응축되여있었다. 실로 이 유치관은 일본침략자들에 의해 쓰러진 수많은 나라 인민들의 피가 고인 하나의 절규장이였다.

그러나 일본의 극우보수세력은 이곳을 저들의 《애국의식》을 고취하고 침략전쟁의 의식을 가다듬는 장소로 리용하고있었다.

후견인은 전시실을 돌아보며 아무 말도 없었다. 대신 미간을 쪼프리고 짙은 감회에 잠긴 그의 눈빛과 표정이 언어를 대신하고있었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희여멀쑥하고 주름발들이 적은 안면근육은 순간순간 변하고있었다. 때로는 그늘을 실어오기도 하고 잔뜩 인상을 찌프리기도 했다. 흐릿한듯 하나 정기를 머금은 그의 눈동자에서는 무엇이라고 딱히 감을 잡을수 없는 빛이 발산했다.

이윽고 그들은 마지막 전시실들을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야스구니의 신들》이라는 제목하에 전몰자들의 인물사진 3 000여장이 전시되여있었다. 그 사진들에는 지배층인물들이나 장군들만이 아니라 오장, 사병, 군속 등 다양한 계층의 인물들이 있었다. 또한 도죠와 같이 수급전범자로 처형당한자들도 있었다. 일본에서는 이 파쑈광신자들을 《전쟁영웅》으로 괴여올리고있었던것이다.

한동안 회억속에 잠겨있던 후견인의 입은 다시 열렸다.

《이 글들을 명심해서 새겨두라구!》

그가 가리키는 글줄들은 《우리들의 현재는 선인의 죽음우에 건설된것》이며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이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라고 쓴 설명문이였다.

《알겠습니다.》

무로우는 속으로 길게 탄식했다.

아, 결국 이 일본도 인디안들의 피바다우에 일떠서고 타민족에 대한 침략과 략탈로 비대해진 저 미국과 다름이 없는 나라가 아닌가. 언제까지 인간의 피로 얼룩지고 평화의 교살자, 살인자로 락인된 전범자들을 조상모시듯 하며 살아야 하는가!

하지만 후견인은 지금 그것을 계속 강박하고있었다.

《임자는 이곳에 묻혀있는 우리 일본의 영웅들을 언제나 잊지 말아야 하네. 야마또민족의 번영과 천황페하를 위해 순국한 그들의 념원을 말일세.》

후견인은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탄식조로 말했다.

《나는 이젠 늙었어. 고목이거던. … 남은것이란 이 허울뿐이야.》

그는 시구절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이제 가면 속세의 산꼭대기로부터

    갈 곳은 미륵보살의 곁뿐이니

    무슨 큰 락이 있으랴

 

    래일부터 두려운이도 걱정할이도 없이

    잠잘 곳은 미륵보살의 곁뿐이니

    무슨 큰 근심이 있으랴

 

깊은숨을 들이킨 늙은이는 무로우를 돌아보았다.

《이게 누구의 시인지 아나?》

《알고있습니다.》

《그래… 우리 일본의 특등공신이신 도죠 히데끼께서 스가모형무소에서 운명하시기 전날에 지은것이지. 나는 이 시를 특별히 사랑하네. 왜냐면 여기에는 한줌의 재로 변한다 해도 머리를 숙이지 않고 끝까지 싸운 그분의 사무라이정신이 깃들어있기때문이야.》

무로우는 요즘처럼 자기가 이 늙은 후견인에게서 멀어지는듯 한감을 느껴보기는 처음이였다. 돈의 부족으로 대학공부마저 포기하려 했던 자신을 구원해준 늙은이였다. 그의 도움과 후원으로 오늘은 나라의 력사정책을 주관하는 자리에까지 머리를 내밀게 되였다. 그의 은혜는 일생을 다해 갚아도 못 갚을 값비싼것이였다. 그래서 그는 후견인의 주장과 요구를 무조건 숭배했으며 소경처럼 따랐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지성과 세계관적안목은 변하고있었다. 자기가 하는 력사외곡이 얼마나 위험천만하고 자신이 력사의 죄인으로 락인될수 있다는것이다. 그렇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자기의 그릇된 설교와 학술적인 리론은 지금 국민들의 의식을 마비시키기 시작했던것이다. 자연히 그는 호미난방의 처지에 놓였다. 생활의 률조는 이미 량심을 잃어버리게 했고 그 량심을 되찾자니 후견인에 대한 도덕과 의리가 발목을 묶었다.

후견인의 설교는 계속되였다.

《우리가 말하는 사무라이정신이란 뭔가? 그것은 바로 시비를 따지지 말고 천황페하께 충성하는것, 설사 력사의 죄인이 된다고 해도 꺼리지 말아야 한다는 이것일세. 우리 세대가 그러했네. 대동아공영권을 위해 모든것을 다 바쳤지.》

후견인은 두눈을 감고 깊은 감회에 잠겨있는듯싶었다. 그러면서도 계속 자기의 말을 이어갔다.

《이젠 임자네들이 그 넋을 이어가야 하네. 자기의 요구를 위해서는 별의별 수단을 다 쓰는게 우리 일본인의 기질이고 전통이야. 사람이 때로는 짐승보다도 더 포악하고 악착할 때도 있어야 하네.》

그는 콜록콜록 페장을 들어내는듯 한 기침을 깇었다.

《선생님, 몸도 불편하신데 이만 돌아가는게 어떻습니까?》

후견인은 머리를 끄덕거렸다.

무로우는 뱀장어구이전문식당으로 후견인을 안내했다.

조용하고 아늑한 방에 자리를 정한 그들은 뱀장어구이와 청주를 청했다.

후견인은 틀이로 천천히 료리를 씹으면서 그 맛을 가늠하는듯 했다. 이윽고 이마살이 쭉 펴지며 만족한 미소가 피여올랐다.

《그래그래, 씹으면 씹을수록 맛이 더 독특하거던. 아마 이런것을 맛보는 재미에 사는게 인생인가 보네. 허허…》

기분이 퍽 좋아진 후견인의 모습에 무로우도 기뻤다. 혹시 그의 입맛을 흐릴가봐 저으기 가슴을 조였던 그였다.

《선생님, 어서 술을 드십시오.》

무로우는 잔을 두손으로 받쳐들고 그에게 내밀었다.

후견인은 사양하지 않았다.

《임자가 오늘 내 구미를 잘 맞추었구만. 이 뱀장어구이는 영양가가 높고 그 맛이 또한 남달라 사람들의 수요가 높지.》

《선생님, 하지만 이 료리는 웬만큼 돈있는 사람들도 먹을 엄두를 못 낸답니다.》

늙은이는 저가락으로 료리의 토막을 들고 들여다보았다.

《그래, 가치가 있을수록 입에 넣기가 더 힘들지. 그러나 꼭 먹어야 하겠다고 생각한 사람한테야 다르지. 수단과 방법이라는게 괜히 있나.》

그는 다시 고기토막을 입에 넣고 씹었다.

《무로우군, 임자도 알다싶이 이 료리가 비싼것은 그만큼 여기에 많은 품이 들었기때문일세. 모든것은 로동력의 가치에 그 상품가치도 정비례하지 않나.》

늙은이는 청주를 한모금 마시고는 뱀장어료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다.

일본에서 이 료리가 이처럼 값이 나가는것은 그만큼 훌륭하고 또 료리하기가 어려운 까닭이였다. 일류급의 료리사는 촉기가 빠르고 전망이 있어보이는 젊은이를 조수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2년동안 숯불을 피우는 요령부터 배워준다. 다음은 3년동안 양념하는 방법과 대나무꼬챙이에 뱀장어를 꿰는 요령을 가르친다. 또 3년이라는 기간에 숯불에 물고기를 익히는 기술을 습득시킨다. 이 기간이 끝나면 최종적인 시험을 거쳐 그를 뱀장어구이료리사로 받아들인다. 이렇듯 한명의 료리사를 키우는데 숱한 품을 들여가며 직업적교육을 준다. 이런데로부터 료리는 그 맛이 독특하고 또 값이 비싸며 수요 또한 높은것이다.

《무엇이나 쉽게 얻은 리익은 그 순간에 국한되지만 어렵게 얻은 리득은 영원한 가치를 가지는 법일세. 지금 우리 일본이 세계면전에서 주먹질을 당하면서까지 력사를 수정해나가는 원인도 그런 리치에서이지.》

후견인은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심중한 기색을 지었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기름기가 흐르는 얼굴에는 고뇌가 흘렀다.

《앞길이 창창하고 기세가 등등하던 우리 대일본제국이 무엇때문에 이렇게 음지의 좀벌레처럼 남의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하는가? 왜 보란듯이 우리의 력사를 제 마음대로 보충하고 수정하지 못하는가 말일세. 그것은 바로 패전국이라는 그 쓰디쓴 오명때문이 아니겠나.》

늙은이는 잔에 부어놓은 술을 쭉 들이켰다.

무로우는 후견인의 이러한 흥분을 몇번씩이나 목격하였다. 그는 항상 지난날에 대한 추억과 못 이룬 일본의 국사에 대해 울분을 터치군 했다. 늙어가는 육체와 상반되는 길을 걷는 후견인의 《충군애국》이였다.

무로우는 조심스럽게 자기의 견해를 꺼내놓았다.

《선생님, 그렇지만 정의와 불의도 한계점이 있지 않습니까.》

늙은이는 그의 물음앞에 어처구니없다는듯 랭소를 지었다.

《명심하라구. 정의와 진리라는것도 다 각자의 리익으로부터 출발하는걸세. 실용적인것은 설사 그것이 불의라고 해도 정의로 되는거야. 그래서 수단이 중요한것이 아니라 목적이 중요하다는 말도 있는거지. 력사란 승자에게만 있는것이거던.》

무로우는 아연감을 금할수 없었다. 후견인이 말하는 실용주의가 지금 지구상에 얼마나 엄청난 후과를 미치고있는가. 개인적인 실례만 놓고봐도 자기의 이전 안해가 그러했다. 가정이라는 큰집에서 오직 자기의 리익만을 추구하였다. 나중에는 파멸이라는 흠집을 남겨놓았다.

후견인은 담담한 표정으로 잔을 들었다.

《그 대표적인 나라가 바로 미국이네. 뉴른베르그국제군사재판소와 도꾜극동군사재판소에서는 평화를 파괴하는 침략전쟁을 계획하고 준비한자와 전쟁수행에 책임이 있는자를 전범자라고 규정했네.》

잔에 든 술을 쭉 들이키고난 늙은이는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우리 일본의 충신들이 전범자로 락인되여 아까운 목숨을 잃었지. 그래, 그때 극동군사재판석에 누가 앉아있었나? 바로 세계최초의 원자탄으로 수십만의 우리 일본인들의 목숨을 앗아간 미국일세. 그러나 누구 하나 그네들에게 전범자라는 말을 하지 못했네. 왜 그러겠나? … 그건 그들이 패전국이 아니라 소위 <전승국>이기때문이지.》

후견인은 잠시 숨을 돌리고나서 자기의 격한 심정을 다소 늦추었다.

《전범자의 규정에는 평화적주민들에 대한 살륙, 학교와 병원을 비롯한 대상들에 대한 공격과 집단살해죄가 명백히 씌여져있는데도 말일세. 지금도 그들은 자기들이 일으킨 지난 50년대 조선전쟁의 책임을 회피하고있지. 그때 미국은 얼마나 많은 조선사람들을 죽였나. 세균탄을 뿌리던 나머지 나중엔 또다시 원자탄까지 사용하려고 했지. … 하지만 누구도 저 미국을 전범자로 규정하지는 못했네. 1968년 유엔총회에서는 전범죄와 인류를 반대하는 범죄에는 시효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특별협약을 채택했네. 이에 비추어본다면 미국도 우리 일본처럼 전범자로 취급되여야 했어. 그러나 누구도 그네들을 국제재판무대에 올려세우려고 하지 못하지. 그건 그들이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강하기때문이야.》

그는 한쪽입귀를 실룩거리며 쓰겁게 웃었다.

《세상은 바로 이런거네. 강자에겐 죄를 묻지 않고 약자에게만 죄를 따지는게 세계정치사란 말일세.》

무로우는 늙은이의 잔에 술을 부었다.

후견인은 흐뭇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임자들 세대에 정말 무거운 짐이 실려있네. 대동아공영권에 바쳐진 우리의 피를 이어 자네들이 그 념원을 실현해야 하거던. 가능하면 다시 칼을 빼들줄도 알아야 하네.》

늙은이는 동안을 두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나는 임자가 일전에 TV에서 한 말을 듣고 몹시 탄복했네. 부향녀의 가슴에 비수를 내댄 그 담력에 내가 사람을 헛키우지 않았구나 하는 긍지가 생기더란 말이야.》

《그거야 선생님이 곁에서 일깨워주신게 아닙니까.》

무로우는 비록 이렇게 말은 했지만 자신에 대한 수치감은 지울수가 없었다. 그는 자기의 경솔한 행동으로 너무도 귀중한것을 잃었다. 단지 조선녀성인 부향녀에 대한 울분에서 리성을 줴버리고 한 행동이였다. 그러나 하루에와의 관계는 영원한 결별의 수치를 보았다.

《저, 무엄하지만 선생님께 한가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후견인은 순순히 그의 청을 수락하였다.

《어서 그러라구.》

잠시 갑자르는듯 하던 무로우는 이윽고 입을 열었다.

《선생님은 왜 지성병원 원장에 대해 그토록 품을 기울이시는겁니까? 그가 이제 살면 몇년을 더 살겠다구 말입니까?》

늙은이는 잠시 무로우의 표정을 살펴보며 야릇한 미소를 띠웠다.

《임잔 늙은이들을 허술히 대하는 버릇이 있는것 같구만.》

무로우는 얼른 무릎을 꿇었다.

《선생님, 용서하십시오. 제 말뜻은…》

늙은이는 호방한 기색으로 그의 손을 잡았다.

《그러지 말구 어서 편히 앉으라구. 나도 이젠 인생을 다 산 몸이 되고보니 그런 말을 듣는게 편치않아서 한 말이니 새기지는 말라구.》

그는 무로우가 편히 자리를 고쳐앉는것을 보고서야 말을 이었다.

《자넨 이런 말을 들어본적이 있나?》

무로우는 머리를 쳐들고 후견인을 바라보았다.

《고목일수록 강하다!》

《저-어 그건? …》

《우리 일본의 계집들은 순하디순한 양과 같다면 조선녀자들은 야생말이나 같네. 잘 길들이지 못하면 어느때든 그 사나운 뒤발에 채울수 있지. 부향녀! 그는 비록 육체는 늙었어도 정신만은 강대같은 녀자일세. 어떤 지탱점이 그의 허리가 그렇게 곧도록 해주는지 모르겠단 말이야.》

후견인은 긴숨을 내긋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잘 알아두라구. 그는 총련의 1세에 속하는 세대야. 전통은 꼭 계승을 낳는 법이지. 그가 제 남편의 력사론문을 완성해서 우리 일본을 비난하고 또 오늘날에는 우리의 독도령유권을 한사코 막아나서고있네. 꼭 신발안에 든 모래알과 같은 존재지.》

《선생님, 설사 그가 아무리 목청을 돋군다고 해도 지금 조선은 물론 세계의 각국에서 울려나오는 우리 일본에 대한 비난에 비하면야 너무도 보잘것없지 않습니까.》

늙은이는 무로우를 바라보며 쓰겁게 웃었다.

《무로우군, 멀리서 날아오는 화살이야 뭐 무서울게 있나. 오히려 코앞에서 날아오는 화살이 목숨을 더 위협하는 법이야. 난 왜 그런지 그년이 더 두려운 존재로 보이거던. 손톱에 박힌 가시를 허술히 대하다가 손가락을 자르는 격이 되지 않을가 하는 우려감이 사라지지 않는단 말일세. 해묵은 나무일수록 쉽게 굽혀들지 않는다네.》

《잘 알았습니다.》

무로우는 후견인의 우려가 례사로운데서부터 오지 않는듯 한 예감이 들었다.

후견인은 다시 저가락을 들었다.

《참, 듣자니 임자가 그의 딸과 남다른 인연을 가지고있다면서? …》

무로우는 어색한 표정으로 얼굴을 붉혔다.

《그래, 어쩔셈인가?》

무로우는 잠시 주밋하더니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해서 전 하루에를 사랑합니다. 그렇지만…》

《허, 임자가 계집 하나때문에 고민하는걸 보니 그가 퍽 미인인 모양이지?》

무로우는 대답대신 머리를 숙였다. 자기의 고민을 보이고싶지 않았다.

《중년들의 사랑이라! … 참 철학적이야.》

후견인은 잠시 숨을 고르는듯 하더니 옛 시구를 외웠다.

 

    …

    술에 취해 미인의 무릎을 베고 누웠다가

    깨여나니 천하가 내 손에 쥐여있도다

 

시를 마친 그는 무로우를 바라보며 넌지시 웃음을 지었다.

《자고로 <미인과 대권을 쥐는것>, 이것은 우리 사무라이선조들의 전통일세.》

《선생님의 뜻을 알만 합니다. 그렇지만 그는 이미…》

《허허, 조롱속에서 나온 새란 말이지. 너무 걱정말라구. 내가 도와주지.》

무로우는 황송하여 무릎을 꿇고 후견인에게 꾸벅 절을 하였다.

《선생님, 정말 고맙습니다.》

그를 바라보는 후견인의 얼굴에는 음흉한 기색이 비껴들었다.

부향녀! 네가 이제 두번째 타격을 어떻게 이겨내는가 보자! 내 기어이 너의 피를 야금야금 말리울테다!

《자, 그럼 오늘은 이만 헤여지자구. 앞으로 일이 있으면 주저말고 찾아오라구.》

《고맙습니다.》

식당에서 나온 두대의 승용차는 서로 반대방향으로 달렸다.

후견인이 탄 승용차는 국회청사가 있는쪽으로 향했다.

운전사가 늙은이에게 조용히 물었다.

《무로우군에 대한 선생님의 성의는 정말 각별하십니다.》

후견인은 실눈을 한채 등받이에 몸을 기대였다.

《지식인들을 홀시하는 집안에 미래가 없는 법이야. 히틀러의 경우만 놓고보아도 그렇지.》

그는 잠시 동안을 두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가 물리학자인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명망높은 과학자들을 유태인이라고 배척하지 않았더라면 그의 운명도 달리될수 있었지. 히틀러가 미국보다 먼저 원자탄을 손에 넣었더라면 우리 일본도 전패국의 수치를 당하지 않았을거란 말이네.》

늙은이는 세계를 대표하는 이름있는 과학자들과 문학가들의 이름을 꼽아내려갔다.

《어느 시대나 다 당대를 대표하는 사람들이 많았지. 그속에는 정치가도 있고 과학자, 문학가들도 있었네. 생각해보라구. 그들중 어느 인물들이 오늘날까지 세계무대에 자기의 뚜렷한 얼굴을 남기고있는가를 말이야.》

그는 량미간을 쪼프리며 앞창을 주시했다.

차는 거리를 누비며 살같이 달리고있었다. 가로수들과 아빠트들이 빠른 속도로 달려오다가는 간 곳없이 사라졌다.

《맑스나 엥겔스의 철학리론들이 아무리 유명하다고 해도 그것이 모든 사람들의 절대적인 환영을 받은건 아니지. 그들이 내놓은 <공산당선언>이나 <자본론> 같은것들은 어디까지나 무산계급에 관한 리론으로밖엔 남아있지 못했네. 그렇다면 헤겔이나 포이에르바흐의 철학은 또 어떤가? 이것은 각자는 다 자기의 계급적처지와 환경, 리해관계에 따라 받아들일수도 있고 배척할수도 있다는것을 의미하지. 그러나 과학과 문학은 그렇지 않아. 어느 시대, 어느 계급의 손에 의해 발견되고 창작된것이라도 사람들은 그것을 다 탐독하고 생활에 활용하려 하거던. … 아무리 유능한 정치가라 해도 온 우주를 다 안을수는 없는거야. 다만 과학과 문학은 그 모든것들을 다 담을수 있지.》

운전사는 늙은이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과학과 문학을 량겨드랑이에 낀 정치가만이 자기의 명성을 떨칠수 있거던. 자기 머리가 나쁘면 남의 머리를 리용해서 리익을 챙길줄 아는게 진짜 현자이고 정치가야.》

운전사는 감복한 표정을 지었다.

《선생님의 말씀은 참 고견이십니다.》

《사회라는것도 같은거야. 누구나 다 평등한 사회는 그 발전이 항상 더딘 법이네. 빈부차이가 심한 나라일수록 그 나라의 경제는 빨리 발전되거던. 그것은 생존경쟁의 마당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으려는 인간들이 자기의 두뇌와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양하기때문일세.》

늙은이는 다시 차창밖으로 흘러가는 거리를 내다보았다. 거리에는 오고가는 행인들로 꽉 차있었다. 건물마다에는 여러가지 광고들이 너저분하게 붙여져있었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생존경쟁에서 승리자는 오직 비상한 두뇌를 가진 지식인들일세. 국가도 한 통치자의 국한된 사고나 결심에 의해서가 아니라 바로 그들에 의해서 유지되고 발전하게 되는걸세.》

그는 오늘의 현실은 독재적인 정치방식으로는 더이상 전진시킬수 없다는것을 실감하게 되였던것이다. 이전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시대가 바로 오늘이다. 사람들은 누구에게 얽매이지 않고 자기의 의사와 요구를 실현하려고 갖은 노력을 다하고있다. 여기에 독재의 칼이라는것은 참으로 시대착오적인 사고방식이 아닐수 없다. 오직 그들이 추구하는 욕망을 충족시켜주면서 거기서 자기의 정치적목적을 이룩하는것이 현실적인 정치방식이다. 무엇이나 강요해서 하는 일은 일시적인 성과는 있을수 있으나 후에는 꼭 속이 빈 껍데기로 남아있기마련이다. 이제는 남을 일시키려면 먼저 그에게 선의를 베풀어야 하는 시대이다. 자기에게 리득이 없는 일을 누가 하겠다고 하겠는가. 남을 움직이려면 자기가 먼저 움직여야 하는것이 오늘이다.

이 늙은이는 지금껏 자기가 살아오면서 보고 듣고 느낀것들을 종합해서 이런 결론을 가지게 되였다.

《참, 일전에 내가 말한것은 다 알아봤겠지?》

느닷없는 물음에 운전사는 잠시 기억을 더듬더니 대답했다.

《예, 그 <보라매>라고 하는 탐방기자는 분명 20여년전에 죽은 리민수의 딸 리진미가 틀림없습니다.》

후견인은 등받이에 기대여 두눈귀를 접었다.

《리민수의 딸이란 말이지.》

《예, 현재 그의 동향과 행동을 보면 분명 부향녀의 가정에 대한 복수심으로밖에는 달리 볼수 없습니다.》

《제 집안의 복수때문이라… 하긴 그 야생적인 성격으로서는 십분 그럴수 있지. 그렇지만 그를 방심해서는 안되겠네. 난 어쩐지 그년이 꼭 우리의 덜미를 물어메칠것만 같은 예감이 든단 말이야.》

《선생님의 말씀을 새겨안겠습니다.》

늙은이는 머리를 끄덕이며 몸을 일으켰다. 운전사의 뒤덜미에 대고 속삭이듯 말했다.

《우리가 그년을 써먹어야겠네.》

《어떻게 말입니까?》

《한번 놀래워보라구. 그렇게 되면 그가 우리 일을 많이 도와줄지 알겠나?》

운전사는 그의 의도를 간파한듯 입이 귀밑까지 째지도록 미소를 지었다.

《알겠습니다. 제가 직접 그 일을 조직하겠습니다.》

《그리구 하루에를 회사에서 해고해버리도록 지시하라구.》

《예-에? … 그 녀자는 무로우군과…》

《그렇지만 부향녀가 고생스럽게 키워온 딸이기도 하지.》

《예, 알만 합니다.》

《인제야 임자들도 내 의도에 따라서는것 같구만. 그리구 부향녀가 력사자료들을 구할수 있는 모든 출로를 말끔히 차단해버리라구.》

《예, 이미 대책을 취했습니다. 그래서 <나까이리력서>도 빼내온게 아닙니까.》

《후-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부향녀가 두려운 존재란 말이야.》

《선생님, 아예 그 늙다릴 죽여버리는게 어떻습니까?》

후견인은 머리를 가로저었다.

《아니다. 무작정 잡아당기면 줄기는 끊을수 있지만 뿌리만은 남아있는 법이지. 문제는 부향녀가 고통속에 몸부림치다가 제풀에 무너지는것을 보고 다음 세대가 스스로 기를 접게 해야 하네. 알겠는가?》

《예, 선생님의 고명을 받들겠습니다.》

그제서야 후견인은 마음이 놓이는듯 두눈을 감았다.

《저, 선생님. 그런데 불미스러운 일이 생겼습니다.》

늙은이는 두눈을 흡떴다.

《무슨 일이기에 그러나?》

《다름이 아니라 히사즈네선생님께서 몹시 고민하는것 같습니다.》

《왜, 몸이 불편하다던가?》

《그런것 같지는 않습니다. 저, 이건 좀전에 보내온 그분에 대한 자료입니다.》

운전사는 문건봉투를 내밀었다.

늙은이는 시답지 않은 기색으로 그것을 받아들고 읽었다.

그의 숱진 눈섭이 벌레처럼 꿈틀거렸다.

《허, 어제날 대일본제국의 륙군장교가 이젠 로망을 하시는구만. 차를 그의 저택으로 돌리라구.》

후견인은 불쾌한듯 이마살을 찌프리며 문건을 옆자리에 던졌다.

그 량반도 이젠 늙었어. 대륙을 활보하던 그가 그런 몹쓸 병을 만나다니…

 

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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