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 회)

13

 

리진미는 승용차경주에라도 나선듯 가속답판을 밟았다.

속도계의 바늘은 160키로메터를 넘어서서 파들파들 떨고있었다. 차체가 땅속으로 잦아드는것 같았다. 귀에서는 비행기가 리륙할 때처럼 웅웅 하는 소리가 들렸다. 길옆의 도로표식판들이 차창에 부딪칠듯이 달려오다가 새같이 날아가버린다.

이 길의 시작은 어디이고 끝은 어딘가. 나의 인생은 어디서 시작되여 어데로 가고있는가. 황막한 광야에 떠도는 먼지인가, 망망대해를 날으는 한마리의 바다새인가. 적막과 고독의 끝은 과연 어데일가. 인생의 거처지도 없이 무정한 세월에 도전한 이 방랑살이를 언제면 끝내는가. 조소와 비난, 여지없는 폭로가 만족이였다면 외로운 고독은 물러설줄 모르는 병마가 되였으며 쌓이고쌓인 스트레스는 때없이 병적인 발작을 일으킨다. 감정의 샘에서는 사랑이 아니라 의심과 불신, 증오만이 솟아난다. 신문의 지면만이 나의 이 심정을 대신하였다. 신문의 《노예》는 주인들이 던져주는 돈으로 만족하였으며 더 큰 만족을 주기 위해 맹수같이 먹이사냥에 나섰다. 나는 무엇을 위하여 사는가. 사람들이 공포로 전률하고 수치와 불명예로 목숨을 끊는 비극의 각본을 만들기 위해서인가. 그것이 악인가 선이였던가. 나는 분명 모른다. 모든 생명체들처럼 살기 위하여 진실 아닌 진실을 떠들며 정부와 파벌들과 신문업자들의 목적에 충실하고있다. 나는 언제 한번 오늘처럼 자신을 들여다본 일이 없다. 그러나 나는 나를 보고있다. 이것은 분명 상상도 못해본 일이다.

앞에 대형유개화물차의 형체가 금시 삼켜버릴듯이 나타났다.

리진미는 힘껏 제동판을 밟으며 조향륜을 오른쪽으로 꺾었다.

차체에서 솟구치는 검은 연기와 함께 후미가 뒤집힐듯 껑충 들렸다 내려앉았다. 화물차의 뒤에 달린 신호등이 확 덮쳐들다 서서히 앞으로 멀어져갔다.

승용차등받이에 몸을 털썩 기댄 그는 눈을 감아버렸다. 망막에서 오렌지색프리즘이 그 무엇인가를 가리우고있었다. 흐르는 땀을 닦을 힘조차 없었다. 천분의 일초사이에 찾아들수 있었던 죽음이 사라졌던것이다.

죽다니, 내가? … 안된다, 죽어서는 안될 나다. 치욕을 삼키며 눈을 감은 아버지의 림종이 나를 부르지 않는가. 얼마나 불쌍하게 이승을 떠난 어머니인가. 내 만약 부모들의 한을 풀어주지 못한다면 저승에 간대도 묻힐 땅이 없으리라.

망막의 오렌지빛이 바다색으로 변하면서 한 녀인의 모습이 청사진처럼 나타났다.

누구인가? …

등을 돌려댄채 움직이지 않던 녀인이 돌아선다. 어머니같은데 어머니가 아니였다. 《진미야…》 하고 찾아주지만 목소리는 사막의 모래음향같았다.

리진미는 손가방에서 담배를 꺼내 붙여물었다. 더는 자신을 지탱할수 없었다. 잊을수 없는 그날의 아픔이 담배연기처럼 쓰리게 눈굽을 허벼대고있었다. …

《야, 아버지! 이렇게 비싼걸 어데서 가져왔나요?》

13살 난 리진미는 손벽을 치며 기뻐했다. 방안구석에 값진 상품들과 옷가지, 약품들이 놓여있었다.

아버지는 어둑어둑한 기색으로 담배만 빨고있었다.

리진미는 꿈같은 현실을 확인하듯 매 물건들을 만지며 기쁨을 금치 못했다. 없는것이 없었다. 집식구들의 옷과 신발은 물론 값진 어머니의 약도 놓여있었다. 지어 고급술과 처음 보는 차까지 있으니 모든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병색이 짙은 어머니가 아래목에서 꽥 소리질렀다.

《이년아, 넌 뭐가 그리도 좋아서 그러느냐?》

갑자기 쏟아지는 욕설에 리진미는 새초롬해서 바라보았다.

《엄만 왜 그러세요. 어머니의 약이 생겼는데 좋으면 좋았지 나쁠건 또 뭐예요.》

어머니는 딸의 대꾸에 가슴을 치며 한탄했다.

《어이구, 나때문에 집안이 망해가는구나. 내가 죽어야 이꼴저꼴을 다 보지 않으련만…》

리진미는 어머니를 나무람했다.

《어머닌 그저 죽는 타령이야. 이젠 제발 그런 말을 마세요. 이렇게 비싼 약을 사온 아버지의 마음이 좋겠어요?》

구름우로 붕하니 떠가는듯 한 기분에 그는 고급차 한통을 손에 집어들었다.

《아버지, 내 인차 이 차를 끓일게요.》

어머니가 또 훈시질이다.

《그걸 제자리에 놓지 못하겠니.》

그러나 리진미는 벌써 잠자리처럼 부엌으로 내려갔다.

리민수가 안해를 진정시켰다.

《왜 그애보구 앙탈이요. 할 소리가 있으면 나한테 하구려.》

《어이구, 이제 성길아주버니가 알면…》

리민수는 갑자기 꽥 소리를 질렀다.

《그만하지 못하겠어. 인제야 엎지른 물인데 어떻게 담는단 말이요.》

《어이구, 그저 내가 죽을 년이지… 이 몹쓸놈의 병때문에…》

안해는 탄식어린 눈물을 흘리며 모로 돌아누웠다.

이때 문밖에서 사람소리가 나더니 문이 벌컥 열렸다. 온몸이 땀주머니가 된 고성길이 지팽이에 의지하며 들어섰다.

순간 리민수는 맹수를 만난것처럼 움쭉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얼굴은 벌써 거멓게 죽어가고있었다.

고성길은 들어서는길로 무작정 큰소리로 물었다.

《이 사람! 그게 사실인가, 임자가 자료들을 다 팔아버렸다는게 말이야?》

리민수는 풀썩 주저앉으며 머리를 푹 떨구었다.

진미의 어머니가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그는 무작정 설음부터 터쳤다.

《아주버니, 용서하세요. 이년이 다 죽게 되였다구… 어이구, 저 사람이 환장을 했지요.》

고성길의 눈길은 구석에 놓인 옷가지들과 약들에 쏠렸다. 순간 배신감에 가슴이 끓어번지는것을 금할수 없었다. 저도 모르게 리민수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야, 이 자식아. 아무리 그렇기로서니 그 자료를 팔면 어떻게 한단 말이냐. 그게 어떻게 얻은것인지 너도 잘 알지 않는가 말이야. 그래 다른 사람도 아닌 네가 어쩌면 몇푼의 돈앞에 무릎을 꿇고 짐승으로 변할수 있는가 말이야.》

고성길은 주먹으로 제 가슴을 들이쳤다.

부엌에서 차잔을 들고 들어서던 리진미는 굳어지고말았다. 고성길의 울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는 알수 없었다.

고성길은 그믐밤같이 암담한 기색으로 준절하게 꾸짖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네가 어쩌면 그런 비렬한짓을…》

《이 사람, 내가 죽을죄를 지었네.》

서리맞은 풀잎처럼 후줄근한 아버지의 모양새는 리진미의 눈가에 아프게 새겨졌다.

아버지는 무슨 잘못을 저질렀기에? …

《아주버니, 용서해주세요. 이 망할년때문에 아주버님의 피땀이 배인 그것을… 어이구…》

어머니의 장탄식에 고성길은 씩씩대며 억지로 분을 삭이고있었다.

《얘, 진미야. 거 끓인 물이라도 있으면 주려무나.》

리진미는 겁기어린 목소리로 주저하듯 말했다.

《저-어, 이 차밖에는…》

그들은 수도물이 나빠서 물을 끓여마시고있었다.

《그거면 됐다.》

고성길은 차잔을 받아 쭉 들이켰다. 팽팽하던 분위기는 그의 시원스러운 행동으로 차츰 주저앉는듯싶었다.

그러나 일은 그후에 벌어졌다. 몇초도 못 지나서 고성길은 손에서 차잔을 떨구며 고통스럽게 몸부림쳤다. 이어 방바닥에 쓰러진 그의 입귀에서는 거멓게 죽은피가 흘러나왔다.

《아주버니!-》

《이 사람, 왜 그러나. 응?》

급작스럽게 일어난 일에 당황하여 아버지는 그를 흔들었다. 그러다가 방바닥에 흘러내린 피를 보며 굳어졌다.

《독약?! …》

고성길의 죽음은 리민수로 하여금 새로운 고통과 절망속에 허덕이게 했다. 그는 시신을 내려다보며 억이 막혀 아무 말도 못했다. 눈가에선 진득진득한 물방울이 뚝뚝 무겁게 떨어졌다. 거멓게 죽어가는 아버지의 표정은 바라보기조차 무서웠고 금시 쓰러질것처럼 처량해보였다.

집안은 삽시에 폭풍을 만난듯 황량하고 어수선했다.

《여보, 무슨 도깨비가 들어서 그것들을 팔아버렸어요? 나 같은 숙맥이야 이제 죽으면 그만인데 무엇때문에 짐승같은짓을 했는가 말이요. 어이구, 그 마음씨 착한 성길아주버니를 죽인 죄 죽어서도 천벌을 받지 않나 보시우.》

아버지는 방바닥이 꺼질듯 한숨만 푹푹 내쉬였다. 그 어떤 모욕과 욕설이 쏟아진다고 해도 묵묵히 감수할 모양새였다.

《여보, 이게… 이게 어떻게 된 일이예요?》

부향녀가 엎어질듯 달려와 고성길을 부여안았다.

황망중에 리진미가 그에게 알렸던것이다.

너무도 억이 막혀 부향녀는 말을 못하고있었다.

김성진을 비롯해서 이웃사람들이 찾아들었다. 심상치 않은 죽음이여서 경찰을 부르라는 소리도 울려나왔다.

한동안 말이 없던 부향녀는 머리를 저었다.

《우리 명철이 아버진 돌아오지 못해요. 죽은 사람이 산 사람을 해치게 해서는 안돼요. 어떤 놈들이 그걸 바랄지 알겠어요? …》

리민수는 가슴을 치며 통탄했다.

《내가 나쁜 놈이요. 내가…》

부향녀는 손수건으로 남편의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았다.

《아, 그렇게도 고향에 가고싶어하던 당신이… 그 몸으로 조국에 보탬을 주자고 몸부림치며 살았건만… 속에 칼을 품은 원쑤가 있을줄은 정말 몰랐군요! …》

입술을 깨물며 터져나오는 오열을 참는 부향녀의 모습은 리진미의 가슴속에 지울수 없는 사진으로 새겨졌다.

과연 그 원쑤라는 놈은 누구일가? 누가 이런짓을 했을가?

종잡을수 없는 오뇌에 빠져버린 리민수는 점점 타락하기 시작했다. 친구의 비참한 죽음을 본 순간부터 그는 술의 만취로 순간순간을 지탱했다. 때로는 묘지에 찾아가 친구를 애타게 부르며 자신을 타매하기도 했다. 금시라도 무덤을 박차고 일어나 시원스럽게 한대 후려치기라도 한다면 이렇게까지 괴롭지 않을것이다.

집에 들어와서는 어머니와 어린 딸앞에서 가슴을 쥐여뜯으며 한탄했다.

《그래, 난 은혜를 배신한 놈이요. 몇푼의 돈에 조선사람의 넋을 팔아먹은 놈이란 말이야! 내가 죽였어, 성길이는 이 리민수가 죽였어! 아, 너절하고 비렬한 이 짐승같은 놈이 그를 죽였단 말이요!》

량심의 저주와 규탄앞에 무릎을 꿇고 방바닥을 내려치며 꺼이꺼이 참회하는 아버지의 목소리는 리진미에게 공포의 채찍으로 들씌워졌다.

어느날 저녁 아버지가 마당앞에 쓰러져있었다. 배를 그러안고 피를 토하며 몸부림쳤다. 얼마전 고성길의 죽음을 방불케 했다.

《아니, 여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예요?》

《아버지! 갑자기 왜 그러세요, 예? …》

모녀는 그를 방안에 눕히고 해독제를 먹였다. 하지만 좀처럼 피여나지 못했다.

리민수는 흐리마리한 눈빛으로 딸의 손을 꼭 잡았다.

《난, 그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 내가 아무리 돈에 환장이 되였기로서니 어찌 은인의 목숨까지 해칠수 있겠니.》

아버지는 한손으로 벽에 걸린 수묵화를 가리켰다.

리진미는 얼른 그걸 벗겨 그의 손에 쥐여주었다. 두손으로 힘겹게 수묵화를 어루만지던 리민수의 손이 굳어졌다.

《아? 끝내 가보지 못하고 죽는구나!》

리진미는 아버지를 부여잡고 안타깝게 물었다.

《도대체 누가 아버지를 이렇게 만들었나요?》

딸애의 눈물방울들이 자기의 얼굴에 떨어지는것을 감촉한 리민수는 다시 그에게 눈길을 돌렸다. 온몸이 나른하고 말할 기운마저 없었다. 몸안에 독기운이 점점 더 퍼지는것만 같았다. 두눈시울은 무겁게 아래로만 흘러내린다.

어떻게 하나 모든것을 알려주어야 하겠는데…

그는 마지막힘을 모아가며 겨우 입을 열었다.

《네놈이 <동양의 사꾸라>일줄이야…》

리민수는 더 말끝을 맺지 못했다. 안타깝게 입술을 놀렸지만 소리가 나가지 않았다.

《아버지, 그건 누구나요? …》

그는 리민수의 입에 귀를 바투 가져다 댔다.

그러나 이미 목구멍안으로 소리가 잦아들어가 알아듣기 어려웠다.

《아버지!- 죽지 마세요. 어서 눈을 뜨세요.》

리진미의 애절한 울음소리가 방안의 공기를 갈기갈기 찢으며 울려갔다. 눈도 감지 못하고 숨이 진 아버지, 자기의 잘못을 그토록 가슴아프게 질책하다가 돌아간 리민수이다. 세상에 대고 하고싶은 그 많고많은 말들을 응어리진 가슴에 그대로 품고 이국땅에서 숨진 아버지이다.

남편의 경솔한 행동과 죽음앞에 자신을 타매하던 어머니는 끝내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엄마, 죽지 마!》

어머니는 딸의 손을 꼭 잡았다.

《내가 죽으면 네가 혼자서 어떻게… 명철이네 집에라도 보냈으면 좋으련만…》

어머니는 큰숨을 들이키고나서 다시 말을 이었다.

《짐승도 낯짝이 있다는데 무슨 체면에…》

운명이 가물가물거리는 이 순간에조차 딸애가 살아갈 방도조차 알려줄수 없는 어머니의 심정은 찢어지는듯 아팠다.

《진미야, 이 에미를 용서해다오. 네가 이제 어떻게 살아가겠느냐?》

어머니는 끝내 가슴속에 딸애에 대한 걱정만을 안고 숨졌다. …

가슴아픈 날들을 더듬던 리진미는 피우던 담배를 재털이에 비볐다. 그의 눈가에는 그 어떤 섬광이 번뜩이였다.

《<동양의 사꾸라>!, 내 네놈을 기어이 찾아내고야말테다.》비행장을 나선 부향녀와 조성호는 택시들이 서있는 주차장으로 걸어갔다.

 

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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