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9 회)

제 2 편

제 5 장

3

 

리정은 어데론가 가고있었다.

물, 물을 찾아가고있었다. 불도가니속에 들어갔다가 나온듯 몸이 홧홧 달아올랐다. 공장에서 북쪽으로 반시간가량 올라가면 여기저기서 흘러내리는 산골물을 잡아둔 크지 않은 공업용저수지가 있었다. 물가에 이르러 검싯검싯한 물면을 바라보자 리정은 발끝에서부터 끓어오르는듯 한 흥분을 느끼였다. 지금계절에는 누구도 들어서기 저어하는 북방의 산골물이였다. 그리고 깨끗한 물이였다.

리정은 옷을 벗었다. 흔히 사람들이 억센 사나이의 모습을 상상하듯 구리빛의 가슴이 아니라 하얀 어깨가 물면에 비쳐졌다. 계집애같이 희다고 바다가마을아이들의 놀림가마리가 되기도 했던 추억이 살아났다. 최수광에게 한번도 이겨보지 못한 소시적의 씨름경기가 생각났다. 그는 오늘 또 졌다. 씨름경기에서는 그를 이길수 없다는것을 인정해야 했다. 한번 심호흡을 깊이 하고나서 리정은 번쩍 뒤번져지는 물고기처럼 허공에 몸을 날렸다.

첨벙!… 물기둥이 거의나 솟지 않았다.

(만점짜리다!)

리정은 전률과도 같은 쾌감을 느끼였다. 그것은 해풍속에 자라난 바다소년이 어느날 드디여 구명대를 끼지 않은 알몸으로 검푸른 바다물에 뛰여들었을 때 느꼈던 감정과 같았다. 피부가 칼로 베듯 짜릿해왔다. 물속으로 뛰여들 때 생긴 기포가 꼬리를 물고 물면으로 치솟아올랐다. 리정은 수심깊이 자맥질해들어갔다.

(조금만 더… 더!… 그래, 이제는 못 참겠다.)

《푸어!》

물밖으로 몸을 솟구치자 눈앞에서 해빛이 부서졌다.

리정은 숨을 들이쉬고 다시 자맥질해들어갔다. 귀안이 멍멍하고 숨이 꺽 막혔다. 언제인가도 이렇게 숨막혔던적이 있었다.

누이 리순이 찾아왔던 때였다.

최수광으로부터 심장이 얼음덩어리가 됐다는 비판을 받던 그때였다. 리정은 자신을 돌이켜보았다. 최수광의 비판이 지어 고맙게까지 느껴졌다.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불효한 용서를 빌었었다.

그때 아버지는 뭐라고 했던가.

《내가 널 키우면서 한사코 공부를 하라는 말은 하면서도 공부를 해서는 무엇에 바쳐야 하는지 심어주지 못한것 같구나. 너는 차를 타는 간부이기 전에 과학자다. 그저 과학자가 아니라 사회주의과학자다. 너는 기껏 나 한사람에게 효도를 하려고 하지만 진짜 신념을 가진 과학자는 사회주의에 효도를 한다. 나라에서 배워준 지식으로 가정을 돌보겠다고 하는것은 병사가 총을 가지고와서 제집을 지키겠다고 하는것과 무엇이 다르냐? 정아, 정신차려라.》…

《푸어!》

입술사이로 찬바람이 뿜어나오는것 같았다.

물속에선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리더니 물밖에서는 최수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리정은 기슭으로 나왔다. 물이랑이 점차 잦아들자 물면에 얼굴이 비쳐졌다. 눈가에 주름살이 잡힌 모습이였다. 그를 이렇듯 늙게 한 세월이 오늘 하루동안에 흘러간것 같았다.

(이제는 어떻게 할것인가?)

리정이 망설이고있는데 뒤에서 인기척이 났다.

강인하고 단호한 기품이 느껴지는 발자욱소리였다.

《옷을 입소.》

연형묵의 목소리였다. 돌아보니 그가 바위처럼 서있었다. 기우는 해빛을 등지고있어 얼굴빛은 똑똑히 가려볼수 없었으나 배군처럼 두발을 넓게 벋디디고있는 모습이라든가 거친 숨소리에서 격렬한 흥분이 느껴졌다. 리정은 묵묵히 그의 말을 따랐다.

《이걸 받소.》 연형묵이 손을 내밀었다.

철근을 용접하여 자루를 맞춘 큰 메였다.

《책임비서동지, 이건…》

《동무가 물러섰다며?》

리정은 그 말뜻을 알아차렸다.

《어쩔수가 없었습니다, 책임비서동지. 내 이 심장이 얼마나 차졌는지… 저 찬물속에 들어갔는데도 아무 일 없지 않겠습니까. 내가 지금껏 련하, 련하 하면서 공장사람들앞에 너무했던것 같습니다. 그리고…》

리정은 다음말이 잘 나오지 않아 갑잘랐다. 《또 그리고 책임비서동지앞에서도 면목이 없습니다.》

《뭐요?!》 연형묵이 성큼 다가섰다. 《련하가 어떤 련하요? 동무의 련하요? 아니면 연형묵의 련하요? 장군님의 련하란 말이요. 련하는 장군님의 피줄을 이어받은 살붙이야! 그 누구의 감정에 따라서 휘친거리는 집단이 아니란 말이요. 그런데 동무는 련하를 무슨 꼴로 만들었는가. 동무한테 박송봉이 남기고간 수첩이 있지?》

《예, 있습니다.》

《이리 내놓소. 동문 그걸 가지고있을 자격이 없소.》

《책임비서동지, 그 수첩은…》

《알고있소, 장군님께서 그 수첩에 동무에게 보내시는 친필을 적으시였다는걸. 그래서 더우기 자격이 없다는거요.》

《이것만은… 못 내놓겠습니다.》

《내놔야 해!》

《책임비서동지!…》

리정은 두손으로 자기 가슴을 감쌌다. 고패치는 박동이 심장에서가 아니라 품속에 간직한 수첩에서부터 울려오는것 같았다.

《장군님께서는 동무에게 앞으로 자신과 꼭 만나게 될것이라는 의미심장한 친필을 주시였소. 그것이 얼마나 큰 믿음인지 동무는 알고있소? 그건 적당한 기회에 동무를 부르시겠다는 약속이 아니요. 자신께서 가시려는 곳에, 우리 혁명의 미래가 부르는 그곳에 동무가 서있어야 한다는 요구였고 기대였소. 그걸 아는가?》

연형묵의 발밑에서 락엽들이 부스러졌다.

《동문 어렸을 때 늘 어머니의 품에서 잠을 깨여 아침을 맞이했겠지? 하지만 나나 박송봉이는 그러지 못했소. 일찍 부모를 잃고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다가 북데기속에서 눈을 뜨면 고달픈 아침해가 보이군 했지. 난 지금도 다를바 없다고 생각하오. 장군님께서 계시지 않는다면 우리 인민모두가 어린 연형묵이처럼, 박송봉이처럼 남의 집 마구간에서 거적때기를 쓰고 눈물에 젖어 하늘을 올려다보는 인생을 살게 될거란 말이요. 그래서 우리 인민은 그이를 운명의 하늘로 믿고 따르는것이요. 사장동무, 어디 좀 말해보오. 동문 정말 우리 장군님께서 어떤분이신지 몰라서 물러섰소?》

리정은 고개를 떨어뜨렸다.

연형묵의 눈길을 마주볼수 없었다.

《알만 하오.》 하고 연형묵이 말했다. 《동무도 법동농민과 태성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랐겠지? 그들 역시 수령님을 한번도 만나뵙지 못한 사람들이였소. 그렇지만 자기 수령을 심장으로 느낄줄 알았던거요. 장군님께서 아시는 일군이 된다는것은 결코 그이를 몇차례나 몸가까이 만나뵈왔는가 하는 셈으로 결정할수 없소. 열백번을 만나뵈왔어도 그분의 기억속에 없는 사람이 있고 만나보지 못한 사람이라도 그분의 심장에 소중히 간직된 일군이 있소. 언제인가 장군님께서는 동무를 불러다가 만나볼수도 있지만 그런 인위는 만들고싶지 않다고 하시면서 리정은 일을 하다가 만나고싶은 사람이라고 하시였소. 동무만이 아니라 일군이라면 누구나 그이앞에 일로 구면이 되여야 하오. 그게 진짜 장군님께로 가는 길이요.》

연형묵의 말은 마디마디 리정의 심장을 찔렀다.

장군님의 마음속에 산다는것은 무엇인가.

장군님가까이로 간다는것은 무엇인가.

진정 장군님께서 기억하시는 일군이 되려거든 얼굴이 아니라 해놓은 일로 구면이 되여야 한다. 그런 신념이 가슴에 든든히 자리잡고있었더라면 이렇게 주저하지도, 물러서지도 않았을것이다.

박송봉이 희생된 후 자기를 북천으로 부르시던 장군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CNC라는 한마디 말이 얼마나 무겁고 값비싼것인가를 알아야 한다고, 자고 깨면 저절로 밝아오는것 같은 매일매일의 아침이 어떤 애국의 삶들을 간밤에 묻고 오는것인가를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시던 장군님의 음성이 가슴에 사무쳐왔다.

(그런데 나는 뭔가? 나는 감히 장군님께 투정질을 한것이다.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을 다 치워주어야 장군님께서 가리키시는 길로 갈수 있다고 투정질한것이 아니란 말인가. 내가, 이 리정이가…)

연형묵이 잠시 마음을 진정하고 물었다.

《한대 물겠소?》

리정은 평시에 담배를 그닥 즐기지 않았지만 뭐든 독한것을 마시고싶어 손을 내밀었다. 정작 받아들자 피울념은 하지 않고 손가락사이에서 그냥 굴리기만 했다. 담배대가 툭 터져나갔다.

애국가의 첫 구절이 생각나오?》

《예, 생각납니다.》

《난 자주 고난의 행군때를 돌이켜보군 하오. 그때는 얼마나 어두웠소? 집도, 공장도, 사람들의 얼굴도… 자고 깨여도 또 밤일것만 같던 그런 때였소. 그런 우리에게 장군님께서 빛을 주시고 희망을 주시였소. 그이께서는 자신의 심장을 태워 어둠을 몰아내시였소. 바로 그이가 우리의 매일매일의 아침이였소. 그이를 바라보며 우리는 일나가고 노래를 부르고 래일을 확신하였소. 숨죽었던 공장들이 살아나고 집집에 웃음이 피였소. 그러나 아침은 맞이하는 사람에게는 환희이지만 불러오는 사람에게는 고뇌이고 희생이였소.》

리정의 눈굽은 뜨겁게 젖어들었다.

장군님 생각에서였다. 우리의 기계공업이 고난속에서 무섭게 솟구쳐 일어나 CNC화에로, 새 세기에로 줄달음쳐온 력사를 더듬어볼수록 리정은 련하의 성장과 더불어 장군님께 너무도 험한 고생만 끼쳐드린것같아 가슴이 미여졌다. 련하만이였던가. CNC라는 말조차 몰랐던 북천에서는 어떠했던가. 안시학과 권하세, 온덕수는 또 어떠했던가. 이런 사람들을 한사람, 한사람 깃처럼 다듬으시여 래일을 향해 달려가는 조국의 나래로 삼아주신 장군님이시였다.

《리정이, 장군님께서는 조국과 혁명의 장래를 걸고 CNC화의 길에 나서시였소. 그 길에서 이 나라의 아침을 부르고계시오. 그 아침은 그림이나 글이 아니요. 현실이여야 하오. 알겠소?》

리정은 자기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깨달았다.

《책임비서동지, 용서하십시오. 제가 그만… 정신이 흐려졌댔습니다. 공장으로… 저는 공장으로 가야 하겠습니다.》

《그래, 동무가 장군님의 뜻을 확신한다면 자기 할바를 하시오. 동무의 힘이 모자란다면 내가 도와주겠소. 같이 가기요.》

연형묵이 다가와 리정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자, 동무도 내 어깨를 겯소. 어서!》

《책임비서동지…》

리정도 연형묵의 어깨우에 손을 올려놓았다.

그러자 리정은 대지에 든든히 뿌리를 내리고 서있는 거목에 몸을 기대인듯 마음이 평온해지는것을 느꼈다.

《좋구만, 과학자에게 의지하니 정말 좋아! 하하하!》

연형묵의 웃음소리가 적막하던 골짜기를 흔들었다.

서로 어깨를 단단히 붙인 그들은 걸음을 맞추고 때로는 걸채이기도 하면서 지름길을 따라 공장으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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