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서《불멸의 력사》

  장편소설

 

                         석윤기

(제40회)

제 3 편

 

20

 

이러한 날이 기어이 오고야말리라는 금강석같은 신념을 목숨보다도 귀중히 불타는 가슴에 부둥켜안고 아득한 세월의 비바람, 눈서리를 헤치며 혈전의 광야를 넘어온 사람들이 토기점골등판에 줄을 지어섰다. 그 길우에 청춘을 불살라 우등불을 삼고 사랑을 장사지낸 눈물로 허기를 에우며 오직 하나의 소원, 조국의 자유와 인민의 권리를 지켜줄 인민의 군대를 건설하기 위하여 피를 바치였다. 살을 저미고 뼈를 깎았으며 모든 희망, 모든 열정을 깡그리 그 길에 바쳤다. 부모도 형제도 자식도 애인도 다 바치고 다 버렸다. 울어도 그것을 위하여, 웃어도 그것을 위하여, 죽어도 그것을 위하여, 그리하여 이날 1932 4 25일은 마침내 왔으며 그 길우에 부모와 형제, 안해와 자식을 바친 오직 혁명밖에 모르는 억센 인간들이 조선인민의 자유와 권리를 지킬 위대한 사명을 띤 총을 들고 새움이 돋기 시작하는 이깔나무숲속에 줄을 지어섰다.

조선의 넋을 싣고 동서로 굽이쳐흐르는 압록강과 두만강이 시원을 둔곳, 네개의 백하와 두개의 송화강이 젖줄기마냥 뻗어내리는 천지를 신비의 만년설속에 품고 수수만년 무수한 세계전변의 풍상속에 말없이 서있던 백두산도 이날의 참뜻을 영원히 새겨두려는듯 푸른 하늘 흰구름우에 머리를 높이 들었다.

봄시위가 시작되여 골짜기마다 눈석임물이 와- 와- 소리치며 흘러가고 간도《토벌》의 초연내가 떠도는듯한 아직 차거운 봄바람이 겨우내 사나운 눈보라와 싸우기에 지친 엉성한 숲을 어루만진다.

겉보기는 유난스러울것 없는 이 봄날 총을 잡고 근엄한 자세로 대렬에 서있는 반일인민유격대원들의 얼굴에는 이 등판에 총잡고 서기까지 그들이 헤쳐온 운명의 만단사연이 비껴있었다.

우사령의 요청으로 그의 비서로 공작하게 된 진한정이와 함께 연길에서 건너온 일부 성원들을 데리고 별동대로서 우사령부대에 남아있게 된 허재률이도 이날에는 새로 지은 반일인민유격대 군복을 입고 대렬에 섰다.

그는 지나간 날을 옴니암니 캐기를 싫어하는 극히 현실적인 인간이였다. 그가 온성 고향땅을 떠나 이 등판에 오르기까지 헤쳐온 길은 남달리 멀고 파란곡절로 가득차있었지만 모험과 기발한 사건들에 익숙된 그는 방금 우사령부에서 죽을번하다가 풀려나온 일도 기억이 아리숭하였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맥락없이 사람들의 얼굴이 자꾸만 눈앞에 떠오르는것이였다.

종파분자들이 일으킨 돈화폭동의 소식과 김혁의 체포소식까지 한데 합쳐 교하에서 공영의 최후를 알고 비분에 잠겨 숨가쁘게 달려오신 김일성동지께 어떻게 보고를 해야 할지 몰라 쩔쩔매던 북산 약왕묘지하실과 주인없는 고총이 널려있던 옥황각뒤의 산기슭이 떠오른다. 그 길로 저녁차를 타고 고유수에 갔을 때 최효열이 이시가와무기상점에서 빼낸 마지막 권총을 가지고 나타났었다. 그 권총을 지금은 이 대렬의 누가 차고있는가. 그날밤 공영소조대신에 누가 국내에 나가겠는가 하는 문제를 두고 토론할 때 저마다 비장한 결의를 다지며 불같이 일어나던 얼굴들, 카륜회의에서 무장투쟁을 하자고 결정한것이 2년전이다.  그 무장투쟁의 꿈을 안고 첫 싸움에 나섰던 김혁이, 공영, 최창걸, 최효열이 이미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김형권동지는 아직 옥중에 갇혀 생사조차 알길이 없다. 이날을 위하여 미모의 녀공청원 한영희도 죽었다. 소박하면서도 무던한 마음씨를 지녔던 고만녀아주머니도 원쑤의 손에 죽었다. 죽은 사람이 어찌 그들뿐이랴.

그런데 락천가 허재률의 눈앞에는 그 모든 얼굴들이 웃는 얼굴, 희망에 넘친 얼굴로만 떠오르는것이였다.

부금의 얼굴도 떠올랐다. 그 역시 해란강기슭에서 자기의 당부를 듣고 얼핏 내비쳤던 그 밝은 표정으로만 그려졌다. 그는 무엇때문에 그렇게도 일찌기 그렇게도 값없게 자기 목숨을 끊어버렸는가. 만일 그에게 신념만 있었더라면 전민이 무장을 잡고 일제를 칠 위대한 반일전쟁이 개시된 이때 우리 혁명에 그가 들어설 자리가 없겠는가. 신념이란 목숨보다도 귀중한것이다. 그러기에 김일성동지를 모신 우리 혁명의 첫 세대들은 죽으면서도 무장한 오늘의 조선을 뚜렷이 내다보며 웃었던것이다. 우리의 신념, 그것은 곧 김일성동지이시다. 죽으면서도, 피흘리면서도, 철창속에서도, 무인지경 벌판에서도 우리는 오직 김일성동지만을 믿고 이 등판까지 꾸준히 걸어왔다. 김일성동지를 만난것이야말로 오늘 이 대오에 선 모든 사람의 운명을 결정지은 기본요인이였다.

그래 문청룡이 방금전에 가만히 속삭이듯이 자리를 잘 잡는것이 미신이라고 그렇게 한마디로 웃어버릴 일이 못되는지도 모른다.

지금 문청룡은 조직적세련도 군사훈련도 적게 받은 자기가 유표하게 두드러져서 축잡힐가봐 대단히 긴장되여 마치 땅속에 뿌리내린 사람처럼 까딱도 않고 서있다. 리영배, 김철희, 리신건, 김만춘 등 김일성동지께서 키워내신 안도청년들이 키순서로 서있는가운데 오가자의 최만득, 고유수의 김정삼, 팔도구의 김광남 그리고 온성 하연성의 얼굴도 보인다. 그다음은 좀 사이를 두고 중대장 박훈을 선두로 2중대 대원들이 서있다.

지난 한달은 날씨도 음산하더니 오늘은 하늘도 높이 개였다. 하연성의 얼굴에 막막하게 떠돌던 검은 구름도 씻은듯이 가시고 불붙는듯한 눈빛이 먼 하늘가를 더듬고있다. 혹 고향땅 향단골짜기에 누워있는 안해와 마음속 이야기라도 나누는것이나 아닌지. 그옆에 서있는 최만득의 표정이 오히려 심각하다.

1중대장 계영춘의 옆에는 반일인민유격대라는 글자가 수놓아진 기발을 든 기수가 서있고 그옆에는 참모장 차광수, 그뒤로 유격대의 첫 나팔수가 된 강영진이 서있다. 오늘은 구당비서 김정룡이도 군복을 입고 지휘부성원들이 선곳에 함께 섰다. 유선아도 그속에 섰다. 반일인민유격대의 첫 녀대원이 된 그도 이미 지방공작임무를 맡고있었지만 강반석어머님께서는 그의 너무나 간절한 소원을 헤아리시여 어쩌다 들리신 아드님께 창건날만은 그에게도 군복을 입혀 대렬에 세워주자고 간청하셨던것이다. 그리고 자리보존하고계시던 무거운 몸을 일으키시여 손수 그 녀자의 군복을 지어주시였다. 김혁이도 못입고 가버린 군복, 한영희도 못입고 가버린 군복, 너무나 군복입은 자식이 보고싶어 딸자식에게 남복을 시켜 키운 아버지의 소원까지 깃든 진정한 조선인민의 첫 군복을 오늘은 유선아가 입고 서있다. 가죽띠에 달린 권총집에는 그가 외로운 적구 려순으로 떠나던 날 김일성동지께서 안겨주신 권총이 들어있다.

그는 지금 자기 마음속을 랭철히 들여다보고있었다. 나는 내혼자 서있는것이 아니라 김혁이의 대신으로, 한영희의 대신으로 내가 이자리에 서있는것이 아닌가. 그런데 나는 원쑤들과 총질을 하며 려순을 빠져나올 때 눈물도 깡그리 말라버렸는가. 내 가슴은 기쁨에만 설레이니 내가 그 사람들을 잊기라도 했단말인가. 그런데 그는 지금도 줄곧 김혁이와 마음속말을 주고받으며 한영희와 속삭이기에 옆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도 의식하지 못할 지경이였다.

영접나팔소리가 랑랑히 울려퍼졌다. 이태전 오가자의 버들숲에 울리던 강영진의 나팔소리가 오늘은 백두산줄기 뻗어내린 여기 소사하 토기점골등판에 높이 울린다.

신록이 움트는 연두빛 숲속길로 반일인민유격대 사령관 김일성동지께서 걸어나오시였다.

《차렷!

차광수의 약간 갈린듯한 구령소리가 쩡하고 메아리쳤다.

《우로 봣!

반일인민유격대의 기발은 머리를 숙이고 전대오는 자기들의 모든 운명을 의탁한 위대한 사령관을 다함없는 경모의 마음을 안고 영접했다.

차광수는 거수경례를 붙이고 정보로 걸어나가 보고를 드리였다.

《사령관동지, 반일인민유격대는 창건사열을 받기 위하여 정렬하였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보고를 받으신후 대렬을 향하여 돌아서시였다.

《동무들, 력사적인 반일인민유격대 창건을 축하합니다.

짤막하면서도 무한한 감회가 어린 그이의 목소리가 울리자 전대오는 일제히 산이 떠나갈듯한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만세! 만세! 만세!

가슴을 힘껏 내밀고 온몸에 넘쳐나는 격정을 한꺼번에 터쳐놓는 그 만세소리는 우뢰와 같이 험준한 산줄기에 메아리쳐갔다.

만세소리가 가라앉자 김일성동지께서는 대렬앞을 천천히 걸어가시며 유격대원 한사람한사람을 사열하시였다. 실로 이 대륙의 력사적과제와 이 민족의 피눈물 얼룩진 기원을 그 하나하나의 얼굴에서 읽으시는듯한 느낌이 드시였다.

유선아는 그 아름다운 용모와 재기발랄한 품성, 천품을 타고난 음악적재능을 다 돌아보지 않고 무엇때문에 아직 바람사나운 이 등판에 섰는가, 농사밖에 모르던 어리무던한 농민 최만득은 왜 외로운 아버지와 사랑하는 안해를 버리고 이 언덕으로 달려왔는가. 하연성은 안해를 희생시킨 대가로 총을 빼앗아메고 이 등판에 찾아와서 장차 무엇을 이룩하자는것인가. 여기 이자리에 선 그 누구에겐들 피맺힌 가슴속 웨침과 기구한 운명의 곡절이 없을것인가. 그것은 여기 모인 매 사람의 가슴에만 맺혀있는 기원도 운명도 아니다. 오늘 이 등판에서 이룩된 력사적사변을 눈앞에 그리시며 아버님께서는 벌써 봉화리에 계실 때부터 수수밭을 보시고도 조선군대를 생각하시였다. 지금도 감옥에 계시는 삼촌과 외삼촌은 오늘 이 등판에 이처럼 름름한 조선의 혁명군대가 서있는것을 짐작이나 하실것인가. 여기로, 이 등판의 오늘을 위하여 김혁, 최창걸, 최효열, 공영을 비롯한 용감하고 슬기로운 우리의 전위투사들이 선혈을 휘뿌리며 길을 닦았다. 반일인민유격대가 태여날 이 력사적인 지점에로 조선혁명을 전진시킬 그 진군로를 닦았다.

응당 이 산등에 오르시여 우리모두의 대렬경례를 받으셔야 할 어머님께서는 너무 축가신 안색을 첫 건군을 하는 군인들에게 보이고싶지 않으시여 저 랑랑한 나팔소리, 우렁찬 만세소리를 다만 바람결에서나 들으실것이다.

김일성동지의 가슴에서는 눈물겨운 감회가 차오르시였다.

그이께서는 마침내 사열을 마치시고 대렬앞의 중심에 솟아있는 바위등에 오르시였다.

《동무들!

오늘 우리는 일제를 반대하는 무장투쟁을 벌려 강도 일본제국주의자들을 타도하고 조국광복의 력사적위업을 달성하기 위하여 반일인민유격대를 창건하게 됩니다.》

그이의 연설은 격정에 넘쳐 마디마디 떨리면서 론리로 새겨지기전에 심장으로 파고들었다.

그이께서는 반일인민유격대 창건의 력사적환경과 필연성, 그 준비과정을 개괄하시고나서 진정한 혁명적무장력으로서의 반일인민유격대의 성격을 특징지으시고 그 목적과 사명을 뚜렷이 밝히시였다.

그리고 격동된 어조로 반일인민유격대 창건의 크나큰 력사적의의에 대해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반일인민유격대를 창건함으로써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운동의 주류인 무장투쟁을 직접 담당하고 이끌어나갈 원동력을 마련하게 되였으며 일본제국주의침략자들에게 결정적인 타격을 주고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투쟁을 더욱 높은 단계로 발전시켜나갈수 있게 되였습니다.

반일인민유격대의 창건은 일제의 식민지노예의 처지에서 신음하고있는 조선인민에게 큰 힘과 용기를 안겨주고 그들로 하여금 반일투쟁에 떨쳐나서도록 함으로써 반일통일전설로선과 맑스-레닌주의당창건방침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에서 새로운 국면을 열어놓게 될것입니다.》

커다란 격동의 물결이 꼿꼿이 서있는 전대오에 퍼져갔다.

반일민족해방운동의 주류인 무장투쟁을 직접 담당하고 이끌어나갈 원동력-

간명하면서도 더없이 적중한 이 형상적표현은 유격대원들의 크나큰 자부심과 함께 기울어진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두어깨에 걸머지고 일어서야 한다는 크고도 무거운 사명감을 절감하게 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계속하여 무장투쟁을 본격적으로 벌려나가는데서 제기되는 과업들을 조목조목 밝히시고나서 불같은 호소로써 연설을 맺으시였다.

《동무들!

우리는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개척하여나갈 자랑스러운 반일인민유격대의 첫 성원들입니다.

조국과 민족의 전도는 전적으로 우리들이 어떻게 싸우는가에 달려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애로와 난관도 뚫고 조국과 민족앞에 지닌 임무를 훌륭히 수행하여야 하겠습니다.

모두다 조국광복의 력사적위업을 이룩하기 위하여 혁명의 붉은 기치를 더욱 높이 추켜들고 일제를 반대하는 무장투쟁을 힘차게 벌려나갑시다.》

또다시 산천을 뒤흔드는 우렁찬 만세소리가 터져올랐다. 사령관동지의 호소에 대답하는 유격대원들의 이 충성의 맹세는 미구에 끝없는 하늘로, 광막한 대지로, 대륙과 대양으로 퍼져가 아직도 세기적인 잠에서 설깨여난 광범한 인민대중의 가슴에 우뢰와 같은 거대한 메아리를 불러일으켰다.

그것은 진정 우뢰소리였다.

인간세상에 죄악이 차넘치고 사람들의 원한이 사무치면 하늘이 노하여 천둥소리를 지르고 번개를 치며 벼락을 내린다는 소박한 생각은 수수만년 짓밟히고 뜯기우고 억눌려온 인민들이 풀길없는 억울한 사연을 하늘에 대고 하소연해온 갈구와 념원의 산물이였다.

이놈의 세상 벼락이나 쳐라고 세기를 두고 사람들은 가슴을 두드리며 웨쳤다. 물을 떠놓고 빌고 향을 피워놓고 빌었다. 동서고금에 우뢰를 부르는 시는 얼마나 많았고 우뢰의 신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그러나 그 많은 신들은 인민들의 피터지는 절규에 귀도 기울이지 않았다.

피눈물과 몸부림속에 무수한 세월이 흐른후에야 인민들은 그 빌어먹을놈의 신에게 귀도 눈도 없을뿐아니라 신 그자체가 없다는것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인민자체가 제손으로 우뢰를 만들기 시작하였으니 자연에서의 우뢰가 무거운 공기와 가벼운 공기가 어울릴 때 생기는 강한 상승기류에서 터져나오는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세상의 우뢰도 압제자, 략탈자들의 억압과 탄압에 견디지 못한 인민들의 쌓이고 맺힌 울분이 걷잡을수 없는 상승기류가 되여 마침내 혁명의 우뢰를 불러왔던것이다.

반일인민유격대의 탄생- 그것은 조선인민의 세기적인 분노가 뭉쳐 터져오른 우뢰였으니 진정한 혁명의 뢰신- 김일성동지께서 혁명의 원쑤들을 징벌하기 위하여 마련하신 벼락이였다.

 

×

 

거리와 마을에 흉흉하게 떠돌던 간도파견대의 끔직한 《토벌》소식의 뒤로 희한한 소문이 나돌았다.

때는 곡우를 지나 립하를 앞둔 때라 농사차비때문에 부지깽이도 뛰여야 할 형편이였건만 농민들은 쟁기를 집어던지고 똑똑한 소리를 들어야 일도 손에 잡히겠다고 이집저집 알만한 집들을 찾아다니다못해 그럴만한 연줄을 따라 몇십리씩 품을 놓는 사람도 많았다. 연길, 화룡, 왕청에서는 말할것 없고 지어 안도땅에서도 바로 코앞에서 벌어진 일을 두고 양초구사람은 소사하로, 소사하사람은 대사하로 혹은 송강거기로 나떠서 돌아갔다. 동남촌의 한 늙은이는 반일인민유격대가 창건된 토기점골이 불과 10리안팎에 있었지만 의관정제하고 반나절품을 팔아서 송강 서문밖의 송경후마철전까지 찾아나왔다. 아니다다를가 마칠전에는 얼핏 보매도 그러그러한 궁금증을 풀러나온 사람들이 10여명이나 모여들어 수군거리고있었다.

《허, 저기 마침 동남촌 늙은이가 오는군. 일은 그 토기점골 어디바루에서 났다는데 동남촌에서야 알겠지, 대체 백두산에서 조선군사들이 벌을 덮고 내려왔다는데 령감님께서도 보셨소?》

《아니 이건 아닌밤중에 무슨 홍두깨요? 난 요즘 구들 뜯을래기 통 출입을 못하다가 바깥바람을 열흘만에 쏘이오.》

동남촌늙은이는 엉겁결에 적당히 둘러대고 사람들의 눈치를 살폈다.

《령감님, 이러지 마시오. 본것을 본대로 말했다 해서 누가 고가질할가봐서 그러시오? 또 고자질을 하니 어떻단말이요? 할테면 실컷 해보라지요. 여보시오, 령감님.》

하고 그 중늙은이는 바싹 다가앉더니 목소리를 낮추고 수군수군 말하였다.

《듣자니 이제는 안도경찰도 백두산에서 조선군사가 내려온것때문에 부들부들 떤답네다. 벌써 그 과장질을 해먹던 장상민의 모가지가 귀신도 모르게 훌 달아났다질 않나요. 흥 이런판에 어느놈이 감히 고자질을 한단말이요?》

《그런즉 그 댁에서는 뭐 좀 들은 소리가 있는가본데 우선 그 말부터 듣고봅세다.》

동남촌늙은이의 능청스런 흥정에 상대는 기가 찬듯이 입을 허하고 벌렸다가 이어 눈귀를 조프리며 씽긋 웃었다.

《허 이 령감님이 벼루기 간 내먹겠군. 허지만 이게야 그렇게 각박하게 회계를 따질것도 없지. 지금 여기서 각자 들은 소리들은 저마끔 달라서 도무지 의합이 되지를 않는단말이웨다. 저 사하촌동갑이가 들은 소리는 조선군대가 대포를 기수없이 끌고와서 내도산에다 걸어놓고 꽝-꽝- 갈겨대는통에 흥륭촌어방은 말할것 없고 강건너 조선땅에서도 장밤 잠을 못잤다는데 여기 마철전 송경후씨 말은 대포는 보지 못했다는거고 그런가하면 저 대장쟁이 춘길이는 우리 군대가 백두산에서 내려온것이 아니라 조선청년들이 왜놈들을 쳐눕히자고 유격대라는 혁명군대를 무은것이라고 하는데 그건 철없는 젊은이의 말이라 내 듣기에도 경우에 통 맞지 않는 말이란말이웨다. 어떻거니 군사가 아무 소문도 없이 하루아침에 평지돌출을 할수 있단말이웨까? 아무래도 백두산같이 잡인이 범할수 없는 깊숙한곳에서 몇십년 도를 닦지 않고야 한나라의 군사가 그렇게 불쑥 솟아날법이 없지요. 송경후씨가 잘 알지만 나도 한때는 독립군밥을 좀 먹은 일이 있어서 군대문서에 정 깜깜이는 아니웨다. 헌데 또 저 푸르허마을형님이 말하기는.》

하고 이야기군은 저쪽구석에 앉아 곰방대를 빨고있는 암팡지게 생긴 염소수염의 늙은이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그 조선군사를 일으킨 장수가 어느 우뢰울고 번개치는 날 하늘에서 룡마를 타고 백두산으로 내렸다질 않소. 말은 분명 그렇게 났는데 아무리 한들 지금 세상이 어느때웨까? 하늘에서 비행기를 타고 내렸다면 몰라도 룡마를 타고 내렸다니 모를 소리란말이웨다. 헌데 그것만이 아니라 그날 그 장수가 내리는 번개불에 치여서 이웃마을 부강촌의 보위단장이 한절만 미쳐버렸다질 않겠소. 자, 이래놓으니 이야기를 도무지 종잡을수가 없단말이웨다.》

《종잡을수 없으나마나 그 부강촌 보위단장이 번개불에 치여서 미쳤다고 하는것은 그 썩 전날 이야기라는데 자꾸 그러는군.》

하고 멍구렁배낭을 진 늙은이가 담배대를 휘저어대며 나앉았다.

《내가 량강구에 갔다가 그 부강촌 보위단장이 왜놈자객의 총을 맞고 죽은걸 명월구로 실어갈 때 내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는데두 그러는군. 그게 벌써 열흘전 일이야. 허니까 백두산장수가 룡마를 타고 내린건 그다음 이야기라니까...》

《흠, 그렇댔군. 여기서는 이야기들이 그렇게 돌아가는군.》

동남촌늙은이는 여전히 능청을 떨다가 이제는 들을 소리 다 들었으니 제 보따리도 들출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슬금슬금 가운데로 나앉으며 헛기침을 한번 톺았다.

《우리 동남촌에 돌아가는 이야기는 그런 소문따위가 아니지요. 우리게서는 그 조선장수가 옛날장수처럼 구집지레한 수염이나 기르고 고리눈을 부릅뜬따위 장수가 아니라 흰 얼굴 붉은 입술에 정기 넘치는 눈을 가진 미청년인데 성함을 김일성장군이라고 일컬은다질 않소.》

《성함을 김일성장군이라고 해요?》

마철전의 사람들은 눈이 휘둥그래졌다. 여태까지 그야말로 무슨 전설이야기를 듣듯이 제나름의 막연한 형상으로 그려보고있던 사람들이 성함까지 듣고나니 자기들의 생활에 현실적으로 미쳐오는 커다란 파문을 느끼며 모두 앉음새를 고치였다.

이러한 이야기는 장거리에서, 객주집에서, 복덕방에서, 들길에서, 사랑방, 안방 어디라없이 사람들이 모이는곳이면 아무데서나 벌어졌다.

이야기에는 나래가 돋쳐 추위와 기아에 가드라들고 천대와 무권리에 주눅든 가슴들에 환상과 동경의 세계를 펼쳐놓았다. 그것은 벌써 옛말을 듣던 소년시절에 잃어버린 정신령토우에 재생의 봄이 오는것이였지만 새움이 두꺼운 지각을 뚫고나오는 산고와 같은 목마른 안타까움이 동반된 간절한 기다림이기도 하였다.

백두산에서 내도산까지 조선군사가 한벌 깔렸다면 본 사람이 있을것이 아닌가. 번개가 치고 우뢰가 우는 가운데 김일성장군님께서 룡마를 타고 내려오셨다는데 어느날의 번개를 말하는가. 이 봄에 와서 우뢰친 날이 하루이틀인가.

이런 풀릴길 없는 의문을 안고 드바쁜 농사철도 잊어버린듯 이 사람 저 사람, 이 동네 저 동네를 찾아다니는 사람들앞에 마침내 5월 1일이 왔다.

이날 반일인민유격대는 붉은기를 선두로 나팔을 불며 보무당당히 안도현성안을 행진하여 5.1절경축식장으로 나갔다.

반일인민유격대 사령관 김일성장군님께서 백마를 타시고 대렬을 사열하러 나오셨을 때 이미 유격대는 인산인해를 이룬 군중속에 묻혀있었다.

군대의 의식은 장엄하면서도 모든 대렬동작이 일치하지만 비조직군중의 움직임은 천태만상이다. 사령관동지께서 영접보고를 받으시고 두부모처럼 반듯하게 늘어선 종대들을 사열하러 백마로 돌아드시자 군중가운데 한 로인이 유격대원들과 함께 정중히 무릎을 꿇고 인사를 올리였다. 그런가 하면 어떤 젊은이는 빽빽히 조여선 군중사이를 숨가쁘게 누비며 그이께서 사열하시는 걸음을 일일이 따라갔다. 머리가 파뿌리같이 센 할아버지가 꼬부랑지팽이끝에 감싸쥐고있던 명주수건으로 벌겋게 짓물린 눈귀를 연신 찍어내며 목메여 말하였다.

《고생끝에 락이라더니 나라님께서 저렇게 젊으시니 이제는 우리 백의동포의 앞날도 창창하겠군. 천도가 무심치 않다는 말이 빈말이 아니였어. 참으로 빈말이 아니였거던.》

사열끝에 가두시위행진이 시작되자 유격대와 함께 온거리의 사람들이 떨쳐나서 유격대의 나팔소리에 발맞추어 붉은기를 따라 대하처럼 거리를 누벼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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