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서《불멸의 력사》

  장편소설

 

                         석윤기

(제39회)

제 3 편

 

18

 

아무리 창고속이지만 해가 높이 솟아오르자 사람의 얼굴을 가려볼만큼은 밝아졌다. 밤새 소란을 피우던 쥐새끼들도 한동안 잠잠해졌다.

그대신 사람들은 전에없이 부산스레 서성거리였다. 오늘은 꼭 무슨 결판이 나질것 같은 예감이 들었던것이다.

안영호만이 짚북데기속에 머리를 쓸어박은채 일어날 궁리를 안했다.

허재률은 희미하게 떠오르는 그 몰골을 차마 눈뜨고 볼수가 없어 멀찌감치 문앞으로 피해앉았다.

바깥소식이 궁금하였다. 문짬으로 내다보니 웬일인지 오늘은 바깥분위기가 전에없이 삼엄하였다. 보초들에게 몇번이나 신호를 했지만 오늘따라 그들은 엉뎅이뒤로 손을 흔들어보이며 일체 말을 하지 않았다. 그들의 긴장된 표정만 봐도 무슨 일인가 있었다는 짐작이 갔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가. 지금 김일성동지께서 우사령과 담판하시기 위해 여기에 오신 이상 그보다 더 큰일이 있을수 없다. 혹시 바깥의 삼엄한 분위기가 그 일과 관련된것이라면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안영호라도 불리여나간다면 거기에 다소간의 기대라도 걸어볼수 있고 그 짬에 무엇을 좀 알아볼 틈도 생길수 있겠는데 웬일인지 안영호를 불러내갈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허재률은 입안이 바싹 말라들어서 문짬에 눈을 갖다대고 근 반나절이나 앉아 견디다가 마음을 달리 먹었다. 안영호를 추겨서 바깥에 내보내도록 하면 무슨 반응이라도 있을것이 아닌가. 그런데 안영호자체는 숨기도 없이 한쪽구석에 쓰러져있었다. 그 꼴을 보니 저것이 과연 온전한 정신을 가지고 똑똑한 행동을 하겠는지 믿음이 안갔다.

허재률이가 엉거주춤 일어나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망설이는데 별안간 여러 사람의 발자국소리가 울려왔다. 수감자들은 모두 눈을 번쩍거리며 문쪽을 지켜보았다. 안영호도 벌떡 일어나더니 저고리를 활활 털어서 팔소매를 꿰였다. 틀림없이 자기를 부르러 온것이라고 생각한것이다.

그런데 절커덕하고 자물쇠를 따더니 목갑총을 느직이 걸친 장교가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소리쳤다.

《모두 나와서 뒤마당에 모엿!

그처럼 바깥세상을 그리워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나오라니 모두 뗑해졌다. 왜 모두 나오라는가, 종시 일을 치자는것은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어 주춤거리는데 장교가 꿱하고 다시 소리쳤다.

《뭣들 꾸물거리는가. 뒤마당에 빨리빨리 가란말이다.

허재률은 어쨌든 부딪쳐볼판이다 생각하고 천천히 문밖으로 나갔다. 그뒤로 맨구석에 있던 안영호가 조급하게 달려나왔다. 그런데 장교가 그의 어깨를 탁 쳐서 뒤로 밀쳤다.

《너 부강촌 보위단장이지? 좀 기다려! 넌 딴데로 간단말야.

안영호는 두어걸음 비틀거리다가 떡 버티고서더니 풀썩 무너져앉아버렸다.

허재률은 안영호와 자기들을 갈라놓는데 대해 불안한 예감을 느끼며 입을 지그시 깨물고 장교가 이끄는대로 담장옆을 끼고 뒤마당이라는데로 나갔다. 그것은 전날 김일성동지께서 진한정과 함께 돌아보시던 그 마당이였다. 그때 장작을 패던 후방근무병들도 대렬동작훈련을 하던 병사들도 보이지 않고 지금 웬 조선청년들이 780명 우구구 모여들어 웅성거리고있었다.

《아니 광남이.

대뜸 창고안에 갇혀있던 팔구의 광산내기가 아는 사람을 발견하고 소리치며 달려갔다. 그 이름이 낯이 익어서 허재률이가 돌아보니 지난 추수투쟁때 기마경찰의 말코에 고추가루를 밀어넣어서 놈들의 대오에 큰 혼란을 불러일으키고 종당에는 총까지 빼앗아낸 김광남이였다. 그도 허재률을 알아보고 다람쥐처럼 사람들 짬을 누벼나왔다. 아는 사람은 그밖에도 여럿이였다. 주변에 총대를 들고 지켜서있는 우사령부의 장교, 병사들도 김일성동지를 뵈온후부터는 별로 딱딱하게 굴지 않아서 상봉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알고보니 그들은 연길지방에서 《토벌》을 맞고 조직에 강력히 제기하여 김일성동지를 찾아온 사람들인데 오늘새벽 푸르하기슭에서 우사령부 병사들에게 붙들렸다는것이였다. 어디서 새여나왔는지 우사령이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 무엇을 먹이겠는가, 당장 쏘아죽이라고 명령했다는 말이 그 짧은 상봉의 몇순간에 이 입에서 저 입으로 옮겨져서 워낙 영문을 모르고 하회를 기다리고있던 연길패들속에서도 새로운 웅성거림이 퍼져갔다.

소란이 퍼지자 그들을 둘러싸고있던 우사령부 경비병들의 낯빛이 긴장되였다.

《모두 조용해! 말 안듣는자들은 즉결 처단하겠다. 서로 말하는것을 금지한다.

장교가 목갑에서 권총을 쑥 뽑아들고 휘휘 내두르며 위협하였다.

허재률은 분위기를 보고 낯빛이 질렸다. 그는 아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속삭였다.

《동무들, 어떤 일이 있더라도 도발에 걸려들어서는 안되오. 우사령부에 지금 김일성동지께서 와계신다는것을 잊지 맙시다. 만일 이 마당에서 충돌이 벌어지면 그건 곧 김일성동지의 신변을 위태롭게 하는거요. 우리가 죽더라도 절대로 도발에 걸리지 말아야 하오. 이것을 아는 동무들에게 조용히 알려야겠소.

김일성동지께서도 지금 이 무시무시한 우사령부 한복판에 와계신다는것이 전해지자 자기들의 억울한 운명에 항거해보려고 웅성거리던 소음은 소나기를 맞은 불길처럼 가라앉아버리고 그대신 태풍을 배태한 비구름같은 무거운 침묵이 떠돌았다. 그속에서 간간이 알아들을수 없을만큼 낮으나 한끝에 있는 사람에게도 능히 알아들을수 있을만큼 짧은 속삭임들이 오고갔다.

《우리가 가만 있다고 해결될 문젠가?

《그래도 가만 있으라누만. 김일성동지의 방침이래.

김일성동지는 어떻게 되는가말이야?

《글쎄 그걸 어떻게 아나?

그러다가는 한참 침묵이 흐르고 그 침묵의 중압에 못견딘듯 이번에는 다른 구석에서 억눌린듯한 쉰 목소리가 속삭이는것이였다.

《우리는 죽더라도 김일성동지를 구원해야 될게 아닌가.

《그러니 맨주먹으로야 어떻게…》

《맨주먹이면 어때? 우리모두가 몸을 내대면 출로가 열릴지 알겠나?

미구한 폭풍을 예고하는 실바람같은 이런 불안한 속삭임소리가 퍼져갔다. 억눌린 불안과 절망뒤로 비장한것이 풍겨돌았다.

허재률은 다가오는 위험을 느꼈다. 이들은 앉아서 죽음을 기다리자고 안할것이다. 자기들은 죽더라도 김일성동지만은 구하겠다는 결심이 어느덧 780명 청년들의 짧은 속삭임과 말없는 눈짓들속에서 확연히 느껴졌다.

그것은 허재률자신의 심정이요 불쑥불쑥 치미는 충동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그 동기가 순결하고 정당하다 해도 김일성동지의 방침과 의도에는 맞지 않는것이다. 김일성동지께서 구체적으로 무슨 타산을 하시고 여기에 오셨는지 그것은 모르지만 어쨌든 우사령과 담판하자는 궁극의 목적은 조중인민의 련합전선을 형성하자는데 있을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불집을 일으키면 그것이 그이의 의도를 관철하는데는 말할것 없고 신변에도 리로울것이 없을것이다. 허재률은 더는 지체할수 없다는것을 깨닫고 목소리를 높였다.

《동무들, 당적리성을 발휘해야 합니다.

그러나 허재률의 말은 허두를 떼자마자 총대를 뻗쳐들고있던 경비병에게 제지당하고말았다. 그렇지 않아도 마당에 떠도는 비장한 분위기에 긴장될대로 긴장되여있던 경비병은 대뜸 총구를 허재률의 가슴에 내대고 절컥하고 격발기를 제꼈다.

《끌어냇!

장교가 권총으로 커다랗게 반원을 그려 끌어낼 방향을 지시하면서 소리쳤다. 그러자 문청룡이와 김광남이 그리고 창고안에 함께 갇혀있던 동무들이 우르르 곁에 모여들었다.

《동무들, 이러지 마시오. 이것은 김일성동지를 보위하는 행동이 아닙니다.

허재률은 비장한 목소리로 웨쳤다. 그러자 웅성거림은 더 크게 번져가고 우사령부의 경비병들은 더욱 긴장되여 모두 총대를 내대고 사격자세를 취했다.

이때 우사령의 사처와 련결되여있는 중문쪽에서 사람들의 말소리와 발자국소리가 울려왔다.

《아, 김사령이다. 김사령께서 오신다.

이런 짧은 웨침이 마당에 널려있던 우사령부 병사들의 입에서 터져나왔다. 그들도 근 100명 가까이나 되는 조선청년들이 어떻게 나올지 몰라 불안하던 차에 김일성동지께서 나오셨으니 마음이 놓이기도 했지만 바로 자기네 동료인 장청무를 구원해준 인정많고 호협한 젊은 장군님을 뵈오니 무턱대고 반가왔던것이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우사령부 참모장 류충제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시며 마당쪽으로 걸어나오시였다. 몇걸음 떨어져서 어제밤에 다시 그이를 호위하러 나타난 박훈이 따라서고 그뒤로 진한정과 두명의 참모 그리고 대대장이 따라왔다.

우사령부의 병사들은 장군님께서 지나치실 때 저마끔 경례를 붙이기도 하고 굽석 절을 하기도 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미소를 짓고 그들에게 일일이 손을 들어 답례를 하시였다.

그이께서 마당복판에 나서시자 허재률을 끌어가려던 장교도 경비병도 스스로 총대를 내리였다.

그러나 허재률은 너무나 큰 충격에 끌려가던 자세 그대로 서서 그이의 환하신 모습을 우러러보았다. 가슴이 뭉클해서 눈을 슴뻑거리니 축축한것이 눈시울을 적셨다.

(김일성동지는 무사하다. 그 누가 감히 우리의 한별을 건드린단말인가.)

이런 웨침이 터져나오려는것을 가까스로 눌렀다.

《아니 저게 누구요?

문청룡이가 허재률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김일성동지요. 김일성장군님이란말이요.

허재률은 자랑에 차서 말하였다.

《예? 저이가 김일성장군님이란말이요? 암만 봐도 증손인데… 참 꼭같은 사람도 있다…》

문청룡은 고개를 기웃거리며 연신 눈을 비볐다. 허재률은 문청룡이 왜 그런다는것을 짐작했으나 잠자코 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 말씀을 시작하신것이였다.

《동무들, 나는 여기 안도에 있는 조선사람입니다. 동무들중 혹 김일성이란 이름을 들은 사람이 있습니까?

《있습니다. 우리는 김일성동지를 찾아왔습니다.

수많은 청년들이 일제히 입을 모아 대답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청년들을 쭉 굽어보시며 미소를 지으시였다.

《내가 바로 김일성입니다. 동무들이 나를 찾아온 목적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유격대에 참군하려고 찾아왔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어떤가 물으시듯 류충제를 한번 돌아보시고나서 말씀을 이으시였다.

《그러면 내가 터놓고 이야기할것이 있습니다. 나는 어제 우사령을 만나서 우리 조선사람들이 반일인민유격대를 무어가지고 중국의 형제들과 힘을 합쳐 일제침략자들을 반대하여 싸우자는 문제를 가지고 담판을 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여기 중국동무들이 석연치 않아하는것은 동무들이 과연 일제와 싸울 결심을 가지고있는가, 총도 없이 무엇으로 싸우겠는가, 우리들에게 줄 총도 없거니와 혹 총을 주면 왜놈들이 악선전하듯 그 총을 들고 자기들을 쏘지 않겠는가 하는것입니다. 내 여기 우사령부의 참모장선생도 계시는데서 묻겠는데 동무들은 나와 함께 일제를 반대하는 치렬한 전투마당에 나서서 싸울 결심이 있는가, 맨주먹으로 나서서 왜놈들의 무장을 빼앗아메고 싸울 준비가 있는가 어디 대답해보시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알수 없는 와- 와- 하는 함성들이 마디마디 끊겨서 폭발적으로 터져올랐다. 중국사람들은 어리둥절했고 김일성동지께서도 말뜻을 가늠하실수 없어 고개를 기웃하시였다. 그러나 산발적으로 웨쳐대던 목소리는 얼마 안가서 곧 하나의 엄청난 화음을 이루어 분출하듯 솟구쳐올랐다.

《싸우겠습니다. 김일성동지와 함께 싸우겠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입가에 웃음을 지으시며 류충제를 돌아보시고 무엇인가 속삭이시였다. 류충제도 흡족한듯 크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윽고 그이께서는 손을 높이 드시여 군중의 목소리에 화답하시며 목청을 돋구어 말씀하시였다.

《나는 동무들의 결의를 믿습니다. 동무들의 숭고한 지향에 대해 나도 우사령에게 말하고 여기 참모장선생을 비롯한 우사령부의 지휘관들도 말할것입니다. 동무들이 맨주먹으로 일제를 치고 자신을 무장하여 성스러운 반일전쟁에 참가하겠다는 굳은 각오를 품고 안도로 찾아왔다는것을 알게 되면 우사령도 틀림없이 감동될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중국반일부대동지들과 련합전선을 형성하고 한전선에서 어깨겯고 싸우게 될것입니다.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사선을 헤치며 혁명의 길을 찾아온 동무들을 축하합니다.

김일성동지의 말씀에 한마당 모여섰던 청년들이 모두 가슴이 뭉클해져서 저도 모르는 사이 주먹으로 눈굽을 훔치였다. 언제 죽을지 모를 아슬아슬한 분위기속에서 매 초를 살을 깎는 긴장으로 보낸 그들은 이런 사지에서 김일성동지를 뵈온것만 해도 눈물이 나는데 그이의 격동적인 말씀까지 듣고보니 마치 천대받던 고아가 친어버이를 만난것 같은 심정이 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대렬로 다가오시여 한사람한사람 손을 잡아주시였다. 어디서 온 누구인지 물으시기도 하시고 《토벌》에 상했거나 어제오늘 시련을 겪으면서 부상을 입은 사람들은 그 정상을 일일이 물어보기도 하시였다.

허재률은 그이께서 다가오시자 고개를 숙이였다. 그이의 얼굴에서 한시도 떠날줄 모르는 부드러운 미소가 그의 가슴을 찔렀다. 과연 모든 위험이 사라졌는가. 그이의 말씀을 듣고 지금 모든 사람들이 감격하고 희망에 넘쳐 새롭게 결의를 다지고있다. 그런데 실상 그이의 말씀을 잘 새겨보면 결정적인 담판은 이제부터 하게 된다는것이 아닌가.

그이의 미소- 그것은 가장 어려운 때일수록 찬란하게 피여오르군하던 그런 미소였다. 정에 헤퍼서 그리도 눈물많던 우리의 한별이 중중첩첩한 난관과 위험을 맞받아나가며 저렇게 찬란히 미소지을 때 우리는 만권책을 읽고도 못깨칠 인간사회의 진리를 깨닫지 않았던가. 모든것은 인간을 위하여- 그리하여 우리는 인간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인간인 한별의 주위에 모여들었다.

허재률은 아까 따로 어딘가로 불려나간 안영호의 일까지 상기하니 그이의 밝은 웃음을 차마 정시할수가 없었다.

《아니 이거 팔구에서 말코에 고추가루를 밀어넣던 광남동무가 아니요? 그래 아버지는 잘 계시오?

사람들사이를 헤쳐오시던 김일성동지께서 어느새 김광남을 알아보시고 호탕한 웃음을 터치시였다.

김광남은 복잡한 사람틈바구니속에서도 꾸벅하고 절을 하더니 심드렁해서 대답했다.

《잘 있기는 한데 지금도 속새포 빼앗겠다는 소리만 하고 실지로는 전날 보위단을 칠 때 남이 떼가고 남은 칼 한자루를 빼앗아온것밖에 없어요.

《허허허, 50을 넘은 늙은이가 그만해도 대단하지. 그래 아버지와 의논하고 여기로 왔소?

김일성동지께서는 음밀한 이야기나 하시듯 조용히 물으시였다.

《그럼요. 사실은 아버지가 가라고 해서 왔어요. 같은 유격투쟁을 해도 직접 김장군부대에 가서 해야 한다고 몰래 내 등을 떠밀어주더군요.

《그래? 허허허, 알만하오. 우리 잘 싸워보자구.

김일성동지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며 김광남의 어깨를 한번 쳐주시고 걸음을 옮겨놓으시려다가 문득 한자리에 멎어서시였다.

《이게 누구요? 청룡이가 아니요?

이처럼 반가움에 넘치신 그이의 목소리가 울리자 문청룡은 너무 놀라서 숨을 흑하고 들이그었다.

《아니 그럼 진짜 증손이가?

《그렇소. 내 증손이요. 그런데 허재률동무는 어데 있소?

문청룡은 그냥 홀린듯이 만면에 웃음지으신 그이를 바라보며 어제날 다같이 머슴을 살던 증손이가 어떻게 되여 김일성장군으로 눈앞에 서계시는지 아무래도 리해할수 없어 눈만 껌벅껌벅하였다.

《내 여기 있습니다.

허재률이 고개를 숙인채 나지막하게 말씀드리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잠시 말씀없이 허재률의 심각한 낯빛을 지켜보시였다. 그이께서는 벌써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있다는것을 짐작하시고 껄껄 웃으시였다.

《얼굴색을 보니 격에 맞지도 않소. 밀짚모자는 어떻게 하고 그렇게 볼품없는 맨머리바람으로 서있소?

《량강구에 있는 영창에서 잃어버렸는데 곧 새것을 하나 구해서 쓰겠습니다.

《새것이 어울릴가? 아무튼지 밀짚모자도 중요하지만 본래의 허재률이,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그 허재률이를 되찾아야겠소. 여보 우리 일은 잘되여간단말이요.

하고 김일성동지께서는 허재률의 손을 더듬어잡으시고 힘껏 틀어쥐시였다.

김일성동지, 안영호가 우사령한테 불리여간것 같습니다.

허재률은 자기의 불안한 심정을 숨기지 않고 그이의 귀전에 속삭였다.

《알고있소. 지금쯤 우사령이 그를 심문하고있을거요. 박훈동무가 소식을 알아왔는데 안영호는 량강구에서 왜놈특무놈을 까눕혔다오. 그의 입에서 별다른 소리가 나올게 없을게요.

《안영호를 완전히 믿지 마시오. 아직 무슨 소리를 할지 모릅니다.

《해봐야 량강구사건이나 날조하겠지. 그러나 내 짐작에 그럴것 같지는 않소.

김일성동지께서는 잠시 말씀을 중단하시고 서계시더니 이윽고 혼자말처럼 조용히 계속하시였다.

《내 안영호이야기를 들었소. 인간이 어쩌면 그럴수가 있소. 인간이… 그러나 니시자와를 해낸것을 보면 그런 인간에게도 한쪼각 량심은 남아있었던것 같소. 그때문에 고민도 했겠는데 우리는 바쁜 일에 몰리고 원칙을 중시하다나니 인간세상에는 우연적인 개별현상도 있다는것을 놓쳤소. 그런 틈바구니로 부금이라는 가엾은 처녀가 빠져나갔소.

부금의 이야기가 나오자 허재률은 고개를 푹 숙이고 아이들처럼 발끝으로 땅을 후벼팠다.

이때 급한 발걸음소리가 달려들었다. 우사령의 젊은 부관이 긴장된 낯빛으로 마당을 살피더니 참모장에게 다가가서 몇마디 하고는 곧 김일성동지께로 달려왔다.

《김사령님, 지금 우리 사령님께서 친히 부강촌 보위단장의 목을 치겠는데 김사령님께서도 참석해주실것을 청하십니다.

《알겠소.

김일성동지께서는 침통한 목소리로 대답하시고 허재률을 돌아보시였다.

《뜻밖의 일이라고 볼것도 없소. 동무가 그네들 오누이를 구원하자고 속을 태웠지만 그들자신이 죽음의 길로 치달아가는것은 막을 길이 없구만.

김일성동지께서는 이윽고 무거운 걸음을 옮겨놓으시였다.

 

 

19

 

 

김일성동지께서 우사령이 기다린다는 사령부의 그의 방에 들어가시니 우사령은 고리눈을 딱 부릅뜨고 음울한 표정으로 등받이가 높다란 팔걸이의자에 앉아있었다. 그옆에 날이 시퍼런 청룡도를 든 전령병이 흙으로 빚어놓은듯 까딱않고 서있었다. 청룡도의 무시무시한 빛이 어려선지 전령병의 얼굴은 벌써 사색이였다.

《아, 김사령.》

우사령은 틀스럽게 앉아있던 자세를 허물고 가볍게 일어나더니 전에없이 부드럽게 말을 건넸다.

《이리 좀 앉으시오. 참모장도 앉고… 참, 내 이번에 김사령을 만나서 여러가지로 생각되는바가 많소.

김일성동지와 함께 온 류충제와 대대장이 자리를 잡고 앉자 우사령은 천천히 팔걸이의자앞을 오락가락 거닐며 생각깊은 목소리로 말했다.

《방금 그놈이, 그 부강촌 보위단장놈이 다 자백을 했소. 그놈의 말을 듣고보니 내 김사령한테 미안한 점도 많고… 하여간 내 그놈의 목을 쳐서 그 피를 억울하게 죽은 내 동생과 우리 장교들의 무덤에 뿌리고… 겸해서 김사령앞에 내가 사과하는 징표로도 삼자고 이렇게 청했소.

그 말의 억양에 따라 우사령의 낯빛도 더욱 음산해졌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의 말에도 낯빛에도 별로 관심이 없으신듯 묵묵히 생각에 잠겨계시다가 조용히 물으시였다.

《량강구에서 그 불행한 일이 어떻게 꾸며졌는지 다 해명됐습니까?

《다 해명됐소이다. 그런데 그 주모자놈은 그 안영호란놈이 제 손으로 죽이고 왔다니 나로서는 해볼데가 없게 됐지요.

《그래서 안영호를 대신 처단하겠다는것입니까?

《아니, 그런것만도 아니고…》

우사령은 너무도 당연한것을 새삼스럽게 물으시는 김일성동지의 의도를 잘 모르겠다는듯이 말을 더듬거리며 그이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다가 좀 게면쩍은듯이 외면하며 짤막하게 대답했다.

《그놈은 요물이요, 생각하면 김사령과 나사이가 이렇게 버그러진것도 그놈의 작간이 크단말이외다.

《그것이 바로 왜놈들이 노리는 점이였지요. 그러나 우리는 그놈들의 간계를 짓부시고 이렇게 리해하지 않았습니까. 진심이란 해빛과 같아서 그런 간사한 무리들의 잔꾀를 가지고는 가리우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제 새삼스럽게 또 사람을 죽여서는 뭣하겠습니까.

《아니, 김사령!

우사령은 놀라서 부르짖다싶이 말하였다.

《혹시 김사령께서 그자를 살리자는것은 아니외까? 그놈에게 그렇게 욕을 본 김사령께서…》

김일성동지께서는 잠시 쓰거운 미소를 입가에 짓고계시더니 조용히 말씀하시였다.

《사령님, 사람의 일이란 참으로 단순치가 않습니다. 안영호로 말하면 어리석었던탓에 제 나라와 제 겨레를 배반했을뿐아니라 종당에는 제 누이동생과 자신까지 죽음의 길로 내몰았습니다. 그가 평생에 못된짓만 해오다가 단한마디 옳은 말을 하고 옳은 일을 했다고 봐야 할 바로 그 순간에 죽어야 한다는것은 나로서는 역시 잘된 일로 보기 어렵습니다. 사령님, 우리들사이에 일시 맺혔던 오해와 불신이 풀려으면 됐지 이 즐거운 날에 굳이 살벌한 일을 또 빚어낼 필요가 있겠습니까.

김일성동지의 목소리는 어느덧 격정에 떨리시였다. 그이께서 안영호때문에 겪으신 곡경을 잘 아는 우사령과 류충제를 비롯한 우사령부의 지휘관들은 눈이 둥그래서 절절하게 말씀하시는 그이의 얼굴을 우러러보았다.

우사령은 한참이나 동안이 지나서야 벌떡 일어서더니 김일성동지의 손을 덥석 잡았다.

《김사령, 내 오늘에야 진정한 공산주의자란 어떤 사람인가를 알았소. 나 역시 어리석은 인간인데 김사령이야 그야말로 하해같은 도량을 가진분이니 나도 용납해주시겠지, 우리 저리로 갑시다. , 김사령같은분을 만난 내 마음이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소.

《사령님, 우리를 리해해주어서 정말 고맙습니다. 나도 사령님과 함께라면 일제를 얼마든지 쳐물리칠 신심이 생깁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아직도 청룡도를 쥐고있는 전령병에게 그것을 치우라고 눈짓하시고 우사령이 끄는대로 그의 사처로 걸음을 옮겨놓으시였다.

우사령은 사처의 마당으로 들어서자마자 술상을 차리라고 소리쳤다. 그리고 수선을 떨며 김일성동지를 상좌에 모시고 류충제를 비롯한 자기 수하 지휘관들도 자리를 정해 앉히였다.

자리가 정돈되자 그는 전에없이 진지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김사령, 어제 내가 무례한 행동을 했는데 용서해주시오. 사실 내 어제 벌써 느끼는바가 많았소이다. 그런데 오늘 그 안윤재아들놈의 죄까지 맡아나서는것을 보니 과연 김사령의 인품과 도량은 천고에 없던것이라 깊이 머리를 숙이지 않을수 없소이다.

《사령께서 너무 이러지 마십시오. 그러면 내가 오히려 거북하지 않습니까.

김일성동지께서는 가볍게 웃음을 지으시고 겸손하게 대척하시였다.

《아니요. 결코 지나친 말이 아니외다.

하고 우사령은 설레설레 고개를 저으며 말하였다.

《내 사실 고집불통이란 말을 듣는 사람인데 이제부터 김사령의 말이라면 다 곧이 듣겠소. 천하사람을 다 안믿어도 김사령만은 믿겠소. 나는 어제 벌써 김사령의 말에 너무 감동되여 그것을 감추기에 쩔쩔맸던거요. , 년세도 많지 않으신데 어떻게 그처럼 세상일에 밝으시오? 내가 겪은 불행까지 다 알고있고 지어 내 병사가 매를 맞는일까지 꿰뚫고있으니 김사령을 가리켜 우로는 하늘의 도리를 꿰뚫고 아래로는 땅의 리치를 통달했다고 칭찬하는 우리 참모장과 세상사람들의 소문을 이제는 믿겠소. 나는 사실 김사령같은분과 합작을 한다면 아무런 의심도 안가지겠소.

우사령은 천성이 솔직한 사람이라 여태까지 그처럼 완고하게 틀고앉았던 거만한 자세를 한순간에 허물어뜨리고 평생지기를 만난듯 삽삽한 어조로 말하였다. 그는 부관을 소리쳐 부르더니 술상이 왜 이리 늦느냐고 독촉하고나서 우선우선해서 말했다.

《여러 지휘관들도 다 들었겠지만 어제부터 김사령의 말씀을 듣고 내 눈앞이 이제는 환해졌소. 나는 여전히 공산당을 믿을 생각은 없소. 그러나 김사령의 말씀은 다 옳소. 사실 우리 부대에도 김사령과 같이 세상일에 밝은 사람이 한사람만이라도 있다면 얼마나 좋겠소. 듣자니 김사령의 휘하에는 유식한 청년들만 모여든다는데 우리 부대에는 맨 무식쟁이들만 쓸어드니 이것도 결국 웃물이 맑지 못하니 아래물이 맑지 못한 그 리치가 아닌지 모르겠소.

우사령이 이처럼 이마살을 찌프리고 개탄하는것을 보시니 거기에는 그의 진정이 어려있었고 또한 그의 사람됨됨이 결코 나쁘지 않다는 확신을 다시 가지시게 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너그러이 웃으며 말씀하시였다.

《그것은 공연한 말씀입니다. 여기 참모장선생도 앉아계시지만 류충제선생은 세상이 다 아는 유명한 학자이십니다. 사령님의 휘하에 어찌 인재가 없겠습니까. 우리는 다만 복잡한 정세속에서 싸움을 하는만큼 사람들을 꾸준히 공부시키고있을뿐입니다. 만일 사령님께서 희망하신다면 사람들을 가르칠만한 선생들을 우리가 보내줄수도 있습니다.

《이거 참 고마운 말씀이요. 뭐 선생까지 보내주지 않는다 해도 내곁에서 나를 도와줄 사람만 보내줘도 고맙겠소.

그러는 사이에 내당쪽에서 심부름군들이 나타났다. 전령병들과 호위병들까지 분주하게 나들면서 음식들을 날라들이였다.

방안에 김이 서리고 구수한 냄새가 풍기자 사람들의 얼굴은 한층 부드러워지고 말에도 스스럼이 없어졌다.

그런 분위기를 타고 류충제가 우사령곁에 다가가더니 기왕 사람이야기가 난김에 오래 끌것없이 진한정을 비서로 달라고 청해보라는것을 귀띔하였다.

우사령은 오래간만에 자기 참모장의 권고를 그럴듯하게 받아들이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쇠뿔도 단김에 빼렸다고 김사령이 모처럼 나한테 유능한 인재를 천거해주겠다고 약속했으니 후날에 미룰것없이 지금 이자리에 앉아있는 진한정씨를 나에게 주실수 없겠소?

김일성동지께서는 아닌밤중에 홍두깨 내대듯하는 우사령의 말에 다소 어리둥절하시였으나 그의 제기가 앞으로의 사업을 위해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있다고 인차 판단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당자의 의향을 알아보시기 위하여 진한정을 돌아보시니 그도 곧 그이의 의향을 짐작하고 가볍게 눈짓을 해보이였다.

《허허허, 사령님께서도 몹시 성미가 급하십니다. 그러나 나라를 위해 사람을 그리는 마음은 누구나 다 같은것입니다. 진한정씨는 중국사람이고 나와는 태여난 날도 고장도 다르지만 서로 나라를 위한 싸움의 한길에서 함께 싸우다 함께 죽기를 맹세한 평생의 지기로서 한시도 떨어져있고싶지 않지만 사령님의 뜻이 그러하니 이것은 전적으로 본인의 의향에 달려있는 일입니다. 진한정씨의 의사를 들어봅시다.

진한정은 이미 소사하회의에서 토의된대로 반일부대속에 많은 공작원들을 파견해야 할 필요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있었던만큼 자기야말로 그 앞장에 서야 하며 또한 이번의 기회가 더없이 좋은 기회라는것을 느끼고있었다. 그는 겸손한 어조로 말하였다.

《저는 한개 서생으로서 아는것이 없고 사령님의 사업을 도와드릴만한 수완도 없습니다만 사령님께서 저를 믿어주신다면 저로서는 그이상 큰 영광이 없겠습니다. 저는 다만 두분 사령님들께서 분부하시는대로 하겠습니다.

《좋소, 좋소, , 이런 경사가 어데 있겠소. , 술을 듭시다. 그쪽에서도 따르게.

우사령은 기분이 둥 떠서 한손으로 술병 쥔 소매를 걷어잡고 김일성동지의 잔에 정중히 술을 부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 술병을 받으시여 우사령의 잔에 술을 채우시였다. 두 술잔이 함께 기울어질 때 넓은 방안에서는 박수소리가 터져나왔다.

 

Twitter로 보내기 Facebook으로 보내기 Google로 보내기 네이버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Google+로 보내기 Evernote로 보내기 Reddit로 보내기
우리민족끼리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E-mail) : urimanager@silibank.com 홈페지내용에 관한 문의(E-mail) : uriminzok@silibank.com
Copyright © 2003 - 2013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
gotop
기사종합
 
도서, 잡지
 
영화, 음악
 
독자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