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서《불멸의 력사》

  장편소설

 

                         석윤기

(제37회)

제 3 편

 

16

 

인간이 어떤 상태에 있을 때 미쳤다고 하는지 혹은 정상적인 상태와 미친 상태의 계선을 정확히 그을 정신과학상의 기준이 존재하기나 하는지 대단히 의심스럽다. 어떤 림상가들의 견해에 의하면 태반의 현대인들은 미친 상태에 있으며 그것은 또한 례외없이 비가역적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정상의 기준을 썩 낮추어서 인류를 정신병으로부터 간단히 구원하는 방법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

안영호의 경우 그자신은 말할것 없고 옆에서 보기에도 정상이라고 하기 어려운 언행들이 진작부터 적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를 미친 사람이라고 보는 사람은 없었던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누이동생 부금은 그가 부강촌에서 총을 차고 돌아칠 때 벌써 미쳤다는 견해를 가지고있었다. 그러나 부금이자신이 자살하고보니 과연 어느쪽이 미쳤는지 가늠하기는 점점 더 어렵게 되였다. 왜냐하면 모든 자살행위는 정신분렬현상이라는 전문가들의 견해가 있기때문이다.

안영호가 부금이의 시체를 찾으러 해란강을 오르내리다가 가야하와의 합수목부근 어느 벌판에서 해빙과 함께 떠내려오는 헌 누덕쪼박을 건져들고 《부금아, 부금아》 하고 목놓아 울 때는 진짜 실성한 사람같았다. 해란강상류에 사는 어느 게으른 녀편네가 지난 늦가을에 빨래를 하다가 잃어버린것인지 아니면 안영호가 구슬피 울면서 넉두리를 하듯 실지 부금이가 물속에 제몸을 던질 때 걸치고갔던 녀학생치마가 눈석이에 넘쳐나는 해란강의 황토물에 달반나마 부대끼며 가야하까지 흘러내리는 사이 그런 불성모양이 되였는지 알길 없었지만 어쨌든 부금이의 시체는 그의 념원과 같이 인간세상에 다시는 떠오르지 않았다. 영호가 그것을 똑똑히 의식한 그날은 날씨가 궂어 하늘에서는 마른벼락을 치고 한창 장엄한 눈석임물이 흘러가는 해란강우에는 비가 내리다가 진눈까비가 흩날리였다.

안영호는 그 진눈까비를 맞으며 감탕물이 뚝뚝 흐르는 헌 누데기를 가슴에 그러안고 목메여 부르짖었다.

《나때문에 너까지 이 꼴이 되였구나. 그래, 내가 너를 죽였다. 우리가 마지막 만나던 하숙방에서 네가 한 말을 두고 나는 생각했다. 부금은 공산주의물이 들지 않았는가고… 그래서, 그래서 너를 이렇게 죽여버렸구나.

안영호는 그 벌판에서 혼자 웨치며 울며 하다가 쓰러졌다. 이튿날 부근 동네사람들이 지나가다가 쓰러진 그를 발견하고 업고왔을 때 그는 심한 고열상태였다. 룡정에 실려와서 세창병원 입원실에 누워서도 그냥 그 누데기를 찾았다. 그것을 해란강하류의 어느 벌판에서 잃어버렸다는것을 알자 병원에서 뛰쳐나오려고 발버둥질하였다.

그먼저 정란이에게서 누이동생의 마지막날의 이야기를 전해듣고 강가에 벗어놓고간 운동화를 받아들었을 때 정란이가 한사코 넘겨주지 않으려는 유서를 자기에게 달라고 눈물을 흘리며 애원하는 안영호의 모습은 어찌 보면 한절반 죽은 사람같기도 하였다.

정란은 하숙에 찾아온 안영호를 깔끔하게 대하였다. 그는 평소에 안영호에게 가지고있던 감정도 있었지만 실제로 부금을 죽인 직접적인 하수인이 안영호라고 확신하고있었기때문에 그의 슬픔을 위안할 생각이 털끝만큼도 없었다. 오히려 조직의 비밀도 관련되여있었던만큼 마디마디 그의 가슴을 찌르는 비수같은 말만 골라서 하였다. 그리고 편지도 필요한 대목만 읽어주고 책상빼람에 깊숙이 건사하고말았다.

안영호는 처음에 묵묵히 그 편지를 들었다. 그다음 한번 더 읽어달라고 부탁했다. 두번째 들을 때는 제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쥐여뜯으며 턱을 와들와들 떨었다. 정란이가 다시 그 편지를 건사하려고 하였을 때 그는 울면서 정란의 손에 매달려 애원하였다.

《정란아, 그 편지를 나한테 주렴. 내 절대 비밀을 말하지 않을테니 부금이편지를 나에게 다오, .

정란이는 쌀쌀하게 거절했다. 사실은 편지이야기는 비치지도 말았어야 할것인데 그래도 부금이의 오직 하나인 오빠이기때문에 읽어주었다는것, 편지가운데는 조직의 비밀도 있고 또 당신이 일제특무기관과 련결되여있다는것을 부금이도 편지에 썼는데 그 후과를 어떻게 책임지겠는가고 하면서 정 무리한 요구를 하면 증거를 없애기 위하여 편지를 불사를수밖에 없다고 하는 정란의 말을 반박할 힘이 없었다. 안영호는 누이동생의 동무앞에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방바닥을 치면서 통곡하였다.

《결국 내가 너를 죽였구나, 가 말하듯이 너는 이 오빠와 같은 인간이 될수 없었기에 죽음의 길을 택하였구나. 네가 마지막으로 한 말이 똑똑히 생각난다. 너는 내 복수심이 정당하지 못하다고 했지, 자기를 위해서 사람을 죽이는것도 서슴지 않을만큼 악해진것이 무엇때문인가고 안타까이 물었지. 나는 대답할 말이 없어서 병든 너를 내치고 또다시 지긋지긋한 길을 떠나갔구나, 부금아, 부금아, 너까지 나를 인간으로 치부하지 않고 오히려 내가 원쑤로 생각하는 그네들만이 진실한 인간이라고 네가 믿는다면, 바로 그때문에 네가 열아홉 꽃나이에 죽지 않으면 안되였다면 나도 살아서 무엇한단말이냐.

안영호는 세창병원에서 닷새동안 누워있다가 허울만 남아서 퇴원하였다. 병원에 있을 때는 해란강에서 건진 누데기를 찾겠다고 그렇게 발버둥치더니 정작 병원문을 나서자 그런 생각은 까맣게 잊어버린듯이 곧장 안도로 떠나갔다. 그는 말을 하지 않았으며 행동은 랭기가 풍길만큼 침착하였다. 허울만 남은것 같은 창백한 얼굴에 눈만이 광적인 열기를 띠고 번쩍거리기도 하고 막막한 공허를 담고 침침하게 가라앉기도 하였다. 사람들은 그의 눈을 보고 아는 사람이건 모르는 사람이건 비실비실 피했다.

안영호는 부강촌앞을 지나면서도 제집에는 들리지 않고 곧바로 량강구로 나가 소인방 즉 니시자와를 찾아갔다.

마침 최용필이와 마주앉아 초조한 기색으로 무슨 쑥덕공론을 하고있던 니시자와는 문전까지 다리를 절룩거리며 달려나와 반갑게 맞이하였다. 최용필이도 간사한 웃음을 짓고 수인사를 하였으나 안영호는 말 한마디없이 니시자와가 끄는대로 방으로 따라들어갔다.

안영호가 자리에 앉자 니시자와는 최용필에게 짤막하게 몇마디해서 돌려보내고나서 두손을 맞비비며 맞은편에 앉았다.

《그래 몸은 어떻소? 몸살에 걸린게 아니요? 매씨의 불행에 대해서 나도 소식을 들었는데 참 안됐소. 그것도 정신적으로 큰 타격이 되였을게요.

안영호는 쓸쓸하게 미소를 지을뿐 말을 하지 않았다.

니시자와는 언젠가처럼 골동기명들이 놓인 식장에서 술병을 꺼내더니 차탁우에 잔을 벌려놓고 술을 채웠다.

《한잔 드오. 참 세상일이란 기구한거요. 워낙 음산한 시절이라 녀성들에게는 좀 견디기 어려울수도 있소. 어찌겠소. 그럴수록 우리 사나이들은 마음을 억세게 먹고 그들의 연약한 마음을 진정시킬수 있는 안정된 세상을 마련하기 위해 용기를 내야지.

안영호는 잠시 술잔을 들여다보더니 역시 말 한마디 없이 쭉 들이켰다. 니시자와도 술잔을 들고 절반쯤 마시고는 잔을 놓았다.

《한잔 더 하겠소?

니시자와는 술병을 들고 이렇게 물었으나 안영호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잔을 채웠다. 안영호는 또 말없이 그 잔을 깨끗이 비워버렸다. 이렇게 다섯잔째 술을 채우고나서 니시자와는 심중한 어조로 말을 꺼냈다.

《내 사실은 당신이 오지 않으면 최용필이를 룡정으로 내보내자고 했소. 지금 여기 일이 아주 맹랑하게 됐단말이요.

안영호는 무슨 일이냐는듯이 니시자와를 건너다보았다. 그의 눈은 독한 빼주를 반병가까이나 기울인 사람답지 않게 초롱초롱하였다. 다만 그 눈에 취기인지 광기인지 모를 이상한 광채가 번쩍거리고있었으나 니시자와는 초조한 나머지 그것이 어떤 위험성을 띠고있는것인지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는 조급한 어조로 말했다.

《당신네가 체포해보낸 허재률은 우사령부에 넘어갔소. 원래 당신이 허재률이를 장상민이한테 넘겨준것이 잘못이란말이요. 그때문에 장상민이까지 죽지 않았는가?

안영호는 무슨 소리냐는듯이 니시자와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왜 그런 소식을 가또중좌한테서 듣지 못했소? 넨장, 눈들이 멀었지, 그 장상민이의 마부가 푸르하기슭에서 주인을 까눕히고 허재률이를 빼냈단말이요. 장상민이의 총까지 빼앗아낸 그들은 곧장 소사하로 김일성을 찾아가다가 우사령부 병사들에게 붙잡혔소. 지금 김일성을 찾아오는 공산주의계렬의 청년들이 수십명이나 우사령부에 잡혔는데 이 사태가 그대로 계속되면 우리의 일은 순조롭게 될것이고 허재률이도 자연 우사령부에서 죽게 될것인데 사태가 그만 예상외의 방향으로 전환을 시작했단말이요.

니시자와는 시종 말없이 앉아있는 안영호를 상대로 긴 이야기를 늘어놓자니 속이 타들어와서 잔에 절반쯤 남아있는 술을 쭉 기울이고 호콩 한개를 입에 넣고 빠드득빠드득 짓씹었다. 안영호는 여전히 말이 없다.

김일성이 어제 우사령부에 들어갔소. 그로서는 이번 걸음에 조선혁명의 운명을 거나 다름없는 대용단을 내린거요. 사실 지금 형세로 보면 우사령이 김일성을 좋게 대할리가 없고 따라서 그의 운명이 대단히 위태롭다고 봐야 할것이지만 김일성이란 인물의 비범성을 고려할 때 절대 락관할 일이 못되오. 사실 우리는 여태 김일성을 대함에 있어서 보통인간의 상식을 가지고 저울질하다가 매번 랑패를 거듭했소. 그는 확실히 보통인물이 아니요. 그가 무엇을 믿고 범의 굴이나 다름없는 우사령부로 찾아갈 결심을 했는지는 알수 없으나 어쨌든 그의 이번 걸음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가에 따라서 만주와 조선의 정세는 대전환을 가져오게 될거요. 그가 범의 굴에 들어가서 범을 잡아내기만 하면 우리 제국은 한꺼번에 두 적수를 겪어야 하는만큼 결국 아시아에 대한 제국의 구상은 한장의 휴지로 돌아가고말것이고 그가 실패하는 경우에는 만주는 물론 중국과 나아가서는 씨비리를 포함한 전아시아가 제국의 수중에 들어오게 되는것은 시간문제일따름이요. 그래서 지금 연길에서 가또중좌도 당신을 찾고있고 후꾸다상도 관동군사령부에서도 당신을 찾고있소.

《나를 우사령부에 들여보내겠다는거지요?

안영호는 니시자와를 만난 이래 처음으로 입을 벌렸다. 그의 질문은 짧고 술을 마신 사람같지 않게 똑똑하였으나 왜 그런지 니시자와는 섬찍한것이 느껴져서 선뜻 대답을 하게 되지 않았다. 그러자 안영호는 그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뒤를 이었다.

《우사령을 설복할 김일성의 론리는 확고부동한거요. 거기에 대처해서 내가 우사령을 만나서 할수 있는 음모는 뻔한것이요. 전날 이 안영호가 진가유방에서 저지른 우사령부 장교들의 암살사건이 다름아닌 부강촌에 잠입했던 김일성의 지시에 의한것이며 거기에 참가했던 악당들이 지금 부강촌에 있다. 이것을 부강촌 보위단의 단장인 이 안영호가 보증할수 있다.― 우사령은 나의 아버지와도 면식이 있는만큼 그의 평소의 반공적립장에다 안윤재의 아들인 안영호가 이렇게 보증해나선다면 우직한 우사령은 앞뒤를 돌보지 않고 김일성을 해치자 할것이다, 당신들이 타산하는것은 바로 이런것이겠지요?

《그 그렇소. , 당신은 정말 머리가 명석하오.

니시자와는 전에없이 허둥거리며 대답하였다. 사실 안영호의 추리도 놀라왔지만 늘 봐야 신경질적으로 파들거리던 과민한 성격은 간데 없고 팔걸이의자에 깊숙이 몸을 묻고앉아 과묵하게 앉아있는 자세며 이따금 비수같은것이 번쩍거리는 눈빛이며가 다 전날의 안영호같지를 않아서 어쩐지 막 대하기가 서먹서먹하였다. 이런 침착성과 놀라운 추리력을 어디선가 본듯하였으나 당장 기억에 떠오르지 않았다. 다만 그런것이 어떤 종말의 낭떠러지에 선 인간에게서만 나타나는 초자연적인 현상이라는 어렴풋한 추측이 갈뿐이였다.

《당신은 나를 꼬여 하나의 죄를 짓게 하고 그것을 밑천으로 나를 강박해서 더 큰 죄를 짓게 하다가 마침내 오늘에 와서는 신성모독을 강요하는데.

하고 안영호는 침착한 어조로 조용히 말하면서 술병을 들고 자기 잔에도 채우고 니시자와의 잔에도 채웠다. 니시자와는 안영호의 말이 비위에 몹시 거슬렸으나 그의 말끝이 어디로 돌아갈지 알수가 없어서 꿈틀거리는 속을 누르고 기다렸다.

《자, 당신도 한잔 드오. 전날 당신의 말을 들으니 당신도 한때 공산주의를 신봉하다가 이런 스파이놀음을 하게 되고 마침내는 다리병신까지 되였다는데 그래도 당신은 팔자가 괜찮은편이요. 나는 깨깨 망했소. 망할대로 다 망해서 생각해보니 내가 한때 신봉했다고 생각한것이 과연 공산주의가 옳기는 옳았는가 하는 의문이 떠오른단말이요. 그래 당신이 신봉했다는것은 공산주의가 옳소?

《그게 이제 와서 무슨 상관이 있단말인가?

니시자와는 같잖은것한테 놀림을 당하는것 같아서 빽하고 소리쳤다. 안영호는 껄껄 하고 속빈 너털웃음을 웃었다.

《왜 소리치오? 내가 주정을 하는것 같아서? 아니면 내 말이 당신의 량심을 찔러서? 아니 당신에게 무슨 량심 같은게 남아있겠소. 그러나 나에게는 아직 량심이 남아있소. 내가 별안간 량심이요 뭐요 하니까 당신은 꼭 내 누이동생의 죽음때문에 갑자기 무슨 충격을 받았다고 단순하게 해석할수 있는데 그건 한마디로 말해서 일본륙군의 첩보소좌나 가질수 있는 속물적인 견해요. 당신은 밤낮 골을 싸매고앉아 음모를 꾸미면서도 내가 부강촌 뒤산에서 김일성과 마주섰을 때 왜 그를 잡지 못했는지 그걸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했소? 그때 내 손에 총이 있었고 내 부하들도 적지 않았소. 김일성은 오정혁이 하나를 데리고 맨손 맨몸으로 내앞에 서있었소. 그런데 나는 그앞에 무릎을 꿇었단말이요. 입으로는 악을 썼지만 속은 이미 무릎을 꿇었던거요. 그의 말은 너무나 옳았소. 그리고 부강촌에서 그가 내 눈앞에서 머슴을 살 때 보여준 그 행위는 말보다도 더 진실하였소. 나는 너무 때늦게 공산주의의 진실을 보았던거요. 내가 만일 당신같은 인간과 접촉하기전이였다면, 하다못해 량강구사건을 저지르지만 않았어도 나는 그자리에서 또다시 공산주의신봉자가 됐을지도 모르오. 그러나 내 손은 당신들때문에 너무나 어지러워졌지. 게다가 달리던 타성이 있어서 그자리에서 멈추어설수는 없었던게요. 그래 욱신욱신 쑤시는 량심을 달래느라고 술을 퍼마시다가 또다시 당신들에게 끌려가서 더러운짓을 저질렀소. 내 누이동생의 죽음은 잘못을 깨달은 그 즉시에 돌아서지 못한 내 우유부단한 성격에 대한 저주였고 타매였단말이요.

《알겠소, 알겠소. 당신 정말 취했구만?

니시자와는 안영호의 말이 어떤 무시무시한 진실에 육박하고있음을 뚜렷하게 느꼈으나 일단 이자리를 무사히 수습해야겠다고 생각하고 그를 얼리려들었다.

《취했을수도 있지. 그러나 걱정마오. 나는 이 길로 송강에 나가겠소. 나가서 우사령도 만나고 김일성도 만나겠소. 당신네들은 나를 신성모독에 나서도록 강박하는데…》

안영호는 또다시 술병을 쥐고 니시자와를 곧바로 쳐다보며 조용히 말했다.

《이젠 술 그만하오. 도대체 신성모독이란 뭐요?

《술을 그만하라면 그만하기요. 신성모독이 뭔지 모르겠소? 신성한것을 모독한단말이요. 그래 김일성이 우리 조선사람들에게 있어서 신성한 존재가 아니란말이요? 그가 있기에 태반의 조선사람들이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는게 사실이 아니란말이요? 죽은 내 누이동생은 공산주의자도 무산자도 아니지만 그도 김일성을 제일 존경했소. 그래서 당신들도 그를 없애자고 그처럼 악을 쓰는게 아니요?

《당신 확실히 취했구만, 오늘은 일을 치기 굴렀소. , 여기서 한잠 푹 자오.

니시자와는 안영호의 손을 잡고 구들쪽으로 끌며 독기어린 목소리로 소리쳤다.

《내가 취했다?

안영호는 병모가지를 단단히 틀어쥐더니 니시자와를 똑바로 노려보았다.

《나는 미쳤는지는 모르나 취하지는 않았다. 내가 병원에서 나와 곧장 여기까지 달려온 목적이 무엇인지 아느냐? 첫째는 너같은 독사를 없애치우는것이고 다음은 허재률을 만나 사과하는것이 내 목적이였다. 나는 너절하게 살았지만 내 누이동생은 순결하였으며 죽을 때까지 허재률이를 기다렸다는것을 말하고싶었다. 그러나 이제 네 말을 듣고보니 너의 요구대로 우사령도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니시자와는 안영호의 말이 결코 주정이 아니라는것을 느끼자 서둘러 옆구리를 더듬어 권총을 꺼내들었다. 그러나 그가 안전장치를 푸는사이 술병이 면바로 그의 정수리를 후려갈겼다. 니시자와는 쓰러지면서 방아쇠를 당겼으나 안영호는 민첩하게 몸을 피했다. 그는 쓰러진 니시자와를 깔고앉아 목을 조이였다. 사실은 목을 조일 필요도 없이 급소를 정통으로 얻어맞은 니시자와는 이미 숨져있었으나 안영호는 울대뼈가 부스러지도록 그냥 목을 움켜쥐고 조이면서 중얼거렸다.

《어때? 배신의 맛이? 하기는 네놈도 꼬임에 넘어가서 이 꼴이 되였겠지. 그러니 사람을 잘 만나는것이 얼마나 중요한것이냐. 나도 순진한 학생시절에 최태현이 같은 협잡군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이모양 이꼴이 되지는 않는것인데… 어쩔수 없는 일이지, 너는 한걸음 먼저 가라. 나도 뒤쫓아가마. 저승에서 만나 다시 조용히 너와 나의 인생을 총화해보자.

총소리를 듣고 집안의 드난군들과 최용필이가 달려들었을 때 피투성이가 된 안영호가 무엇인가 중얼중얼하면서 비틀비틀 걸어나왔다. 그들은 영낙없이 안영호가 니시자와의 총을 맞고 그러는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안영호가 대문밖으로 나간 다음에야 방안에 쓰러진 니시자와를 발견한 최용필이와 드난군들이 비명을 지르며 안영호를 잡으러 달려나왔으나 그때 안영호는 이미 거리에서 구경군들에게 포위되여있었고 게다가 때마침 차광수가 보낸 무장소조가 니시자와와 최용필이를 체포하기 위하여 최용필의 중국 음식점을 거쳐 소인방- 니시자와의 은신처로 은밀히 침투해들어왔다. 최용필은 그렇다는것을 느끼자 그자리에서 어디론가 주자를 놓고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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