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서《불멸의 력사》

  장편소설

 

                         석윤기

(제36회)

제 3 편

 

14

 

류충제는 대사하고개밑에 있는 빈집에서 김일성동지와 진한정을 만나자 펄쩍 뛰다싶이 반가와하였다. 그리고 전날 박일보문제때문에 우사령을 만나러갔을 때의 전말을 자세히 이야기하고 그후 돈화로 돌아갔지만 우사령의 간청이 하도 성화같은데다 자기가 보기에도 무식한것들만 우사령주변에 있다나니 잘못하면 그 부대가 통채로 토비화될 념려도 없지 않아서 결국 자기가 붓대를 꺾고 우사령부로 옮겨앉지 않을수 없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부황단지를 붙여주던 그 침쟁이가 죽어버렸다고 슬픈 어조로 덧붙였다.

그는 김일성동지께서 우사령을 만나러 떠나셨다는 이야기를 듣자 저으기 난색을 지어보이며 자기가 공산주의자들과 련합해야 한다는것을 말하였을 때 우사령이 체면도 례절도 다 짓밟고 무섭게 날치던 모양을 다시 상기시키면서 이 일이 성사되기는 극난한 일이라고 말하였다. 그러면서도 일성동지께서 조중인민들이 단결해서 일제를 쳐야 하지 않겠는가고 열렬히 호소하시자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섰다.

《이게 이를테면 상말로 말해서 모가지에 여벌이 없이는 말을 떼기도 어려운 일인데 김사령이 이런 험지로 위험을 무릅쓰고 들어온 그 의기를 생각해서라도 내가 가만있을수 없지. 지금 우사령은 안도성안에 있네. 나도 지금 그 사람을 만나러 가는길인데 함께 가세. 내 힘껏 주선해보겠네.

이리하여 김일성동지의 일행은 류충제와 함께 다시 송강거리로 들어서게 되였다.

이튿날아침에 류충제는 우사령을 먼저 만나서 교섭을 하겠다고 들어가더니 이야기가 순조롭게 풀리지 않는지 한낮이 다 되도록 감감 소식이 없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진한정과 함께 성문 위병소에서 기다리시는사이 허재률의 이야기를 하시였다.

《허동무가 량강구 아니면 여기 어디 잡혀있을듯한데 우사령과 이야기를 시작하기전에 알아볼 방법이 없겠는지 모르겠소?

《그야 어디 있으나 마찬가지가 아닐가요? 우사령이 어떻게 나오겠는가 하는것이 문제지 허동무가 어디 있는가 하는것이야 무슨 큰 문제겠소?

진한정은 위병소에 드나드는 우사령네 병사들앞에 체면도 있는것만큼 겉은 흔연한체하고있었지만 마음속은 몹시 긴장되여있어서 이야기에 깊이 끌려들지 않았다. 실은 김일성동지께서 지금 새삼스럽게 허재률의 이야기를 꺼내신것도 평소의 진한정답지 않게 안절부절 못해하는 그의 마음을 눙쳐주시려고 그러시는것이였다.

《우사령이야 후하게 나오겠지. 아무렴 먼길을 찾아온 손님에게 그만한 호의도 베풀지 못하겠소. 나는 우사령을 그렇게 생각하고싶지 않소.

김일성동지께서는 미소를 지으시고 확신에 차서 말씀하시였다.

《글쎄 그렇다면 얼마나 좋겠소. 그러나 어떨는지… 류선생이 이처럼 시간을 지체하는것이 좋은 징조같지를 않소.

《원 별소릴, 혹시 알겠소. 우리를 영접할 잔치차비를 하느라고 시간이 지체되는지…》

《허허허, 과연 천하를 쥐락펴락하는 장부의 배심이 다르긴 다르오.

진한정은 마침내 속궁근 웃음소리를 내며 중얼거렸다. 그바람에 잔뜩 가드라졌던 그의 안색에도 한점 화색이 돌았다.

위병소에는 우사령의 사처와 성문을 지키는 한개소대가량의 경비인원들이 교대교대로 드나들며 쉬기도 하고 자기도 하는데 김일성동지께서 기다리시는 방은 워낙 순찰병들의 대기실이였다. 그 방옆에 경비를 책임진 당직장교의 방이 있고 그 다음은 침실과 주방이 잇달려있는 모양으로 코고는 소리와 기름냄새가 이곳 대기실까지 풍겨왔다.

대기실 출입문의 반대편에 뙤창이 나있는데 그 안쪽은 위병소의 마당이였다. 지금은 살았는지 죽었는지 분간할수 없는 시꺼먼 버드나무줄기가 한그루 서있을뿐 살풍경한 마당이였다. 그 마당 저끝에 시꺼먼 창고같은 토피집이 길다랗게 누워있었다.

《저게 무슨 집 같소? 저기 어디 허재률동무가 갇혀있는게 아닐가?

김일성동지께서 드나드는 사람이 없는 틈을 타서 슬쩍 안마당쪽을 눈짓해보이며 말씀하시였다.

《글쎄 출입문에 자물쇠를 해단거며 저네 병실 한가운데 따로 보초를 세워놓은것으로 보면 수상쩍은데…》

《우리 한번 나가보기요.

《보여줄가?

《보자고 할판이지.

김일성동지께서는 성큼 일어서시였다.

사병 서넛을 데리고 주사위를 놀고있던 얼굴이 벌거이들이들하게 생긴 당직장교는 방금 내던진 주사위를 퇴색하고 쭈그러진 둥글테군모로 씌우고 움켜안듯이 두손으로 꾹 누르며 불시에 방안에 들어서신 김일성동지를 당황한 기색으로 쳐다보았다.

《재미들을 보는데 방해를 해서 안됐소.

김일성동지께서는 스스럼없이 말씀을 건네시였다.

《무, 무슨 일로?

당직장교는 자기네 참모장이 사령을 찾아온 귀한 손님이라고 귀띔하고 들어간만큼 대낮에 주사위놀음을 벌린것이 마음에 켕기는듯 허둥거리며 물었다.

《뭐 별일은 없소. 그냥 노시오. 내 심심해서 안마당을 좀 거닐었으면 좋겠는데 문이 어느쪽으로 나있는지 몰라서 그러오.

《문이요?

당직장교는 주사위를 덮은 군모를 한손으로 누른채 고개를 들고 이쪽저쪽을 살피더니 무슨 판단을 하기도전에 코고는 소리가 울려오는 옆방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문은 저쪽으로 나있는데, 지금 안내할 사람이 없어서…》

《안내할 사람은 필요없소. 그저 바깥바람을 좀 쏘이고싶어서 그러니 그냥 노시오. 우리끼리 마당에 나가보겠소.

김일성동지께서는 흔연히 웃으시며 진한정을 돌아보고 나가보자고 눈짓하시였다.

마당은 창을 통해 내다볼 때나 다를바없이 살풍경하였다. 영창같아보이는 건물은 에스키모같은 털옷으로 무장한 보초가 서있어서 가까이 다가가기도 어려웠다. 다만 방안에서 보기보다 다른것은 그 죽었는지 살았는지 분간하기 어려운 버드나무옆에 통로가 나있어서 그리로 빠지면 저편에 또하나 그만한 마당이 있었다. 지금 그 마당에서는 한개분대가량의 인원이 제식훈련을 하고있고 담장밑에서는 후방근무성원인듯한 대여섯명의 사람들이 장작을 패고 무슨 낟알마대같은것을 메나르고있는데 웃동을 걷어붙인 그들의 외모를 봐서는 군인인지 사민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도끼모태옆에 자그마한 접이걸상을 놓고앉아서 앙증스러운 담배주머니가 달린 곰방대로 뻐금뻐금 담배연기를 날리며 대톱을 슬금슬금 당기고있는 중년사나이는 어느 모로 보나 군인같은 인상을 주지 않았다. 그와 마주앉은 짝패 역시 우에는 등거리 같은것을 걸치고 아래는 검은 홑바지를 입고 퍼더앉은 품이 이런 거리에서 흔히 만나는 막벌이군같은 인상이 강하였다. 하기는 우사령부대라는것이 대체로 그러한 막벌이군이나 살길이 막힌 농민들의 집단일것이였다.

《여기가 대대병영이로군.

김일성동지께서는 사위를 둘러보며 말씀하시였다.

《그런것 같소. 아마 우사령의 사처로 가자면 큰길로 가지 않고도 이쪽 어디로 후문과 련결되여있을수 있소.

《그럴수 있지.

진한정은 흥심없이 사위를 살펴보더니 속이 컬컬한지 담배 한대를 꺼내물고 성냥을 찾느라고 아래우 주머니를 뒤졌다.

《허, 성냥을 어디다 두고왔나. 위병소에 두고왔나…》

그는 뒤지던 옆차기에 한손을 찌른채 중얼거리더니 톱질군들쪽으로 슬금슬금 다가갔다.

그때 도끼모태주변에는 톱질을 하던 두사람외에 군복을 입은 애젊은 병사 하나가 울상이 되여 다가가고 이어 마대를 나르던 사람들도 서로 무언가 쑥덕거리며 저마다 담배대를 들고 모여든다.

진한정은 스스럼없이 그들에게로 다가가더니 담배불을 얻어붙이고는 그자리에 눌러앉아 그들과 이야기판을 벌리였다. 성미가 싹싹하고 부드러운 그는 아무데 가서나 붙임이 좋아서 초면의 사람들과도 곧잘 어울렸다. 아마 담배불을 붙이러 간김에 우사령부의 분위기라도 알아보자는 속셈일것이다.

김일성동지께서 창고의 생김새를 세세히 살피시며 마당을 두바퀴째나 도셨을 때 진한정이 다 타들어간 권연의 재를 툭툭 털며 다가왔다.

《세상에 별일이 다 있군.

그는 입안에 담배가루라도 들어갔는지 퉤퉤 침을 내뱉으며 중얼거리였다.

《웬일이요?

김일성동지께서는 무심히 도끼모태쪽을 돌아보시며 물으시였다.

《보오, 저렇게 울고있지 않소.

진한정이 도끼모태 한옆에 쭈그리고앉아 눈물을 훔치고있는 군복입은 애젊은 병사를 눈으로 가리켰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눈물짓고있는 병사를 중심으로 무언가 근심에 싸여 웅성거리는 반일병사들쪽을 그냥 지켜보시며 진한정의 다음말을 기다리시였다.

《오늘 래일 형이 매를 맞아 죽게 됐다는군.

《그건 왜?

《창고보초를 잘못서서 도적을 맞혔다는거요. 저사람네는 형제가 함께 입대해서 1년째 한부대에 있는데 형은 나이가 마흔이나 된데다 몸이 약해서 골골한다는군. 그런데 늘 비여있다싶이하던 창고경비를 나갔다가 여느날같이 생각하고 좀 졸았는데 일이 안될라니까 그날 낮에 어느 토호가 섬겨바친 밀가루를 두포대나 도적맞혔다오. 당장 총살하라는 명령이 내린걸 돈을 찔러넣고 중간에 사람을 내세워서 사정사정하여 겨우 곤장 쉰대로 형벌을 한등급 낮추기로 했는데 워낙 그 형이라는 사람이 약골이다나니 곤장 쉰대를 맞으면 죽는다고 저렇게 울고있구만.

《아니, 용서해줄바에는 깨끗이 용서해줄것이지 곤장으로 때려서 죽인다는것은 총살하는것보다 못하지 않소?

김일성동지께서는 금시 죽어가는 사람을 눈앞에 보신듯 이렇게 큰소리로 말씀하시였다.

《그러게말이요. 뭐 우사령의 성미가 완고한데다가 규률은 대단히 엄하게 세우자고드니 어쩔수 없는 모양이요. 어쨌든 총살은 총살이고 매는 매니까… 그만큼 용서를 받는데도 적지 않은 돈을 썼다오. 이제 대대장에게 마제은으로 쉰냥만 찔러주고 사정을 하면 아예 탕감을 받지는 못해도 영창쯤으로 한등급 더 낮출수 있을것 같은데 돈을 구할수 없다는군. 더구나 지금은 어느 정권이 들어설지 모르기때문에 합대양도 길림관첩도 봉천표도 통하지 않고 꼭 은이라야 통한다니 답답한 일이요. 진작 알았으면 나라도 도와주겠는데 지금 내 수중에 마제은이 있어야지. 돈화에 기별을 한다 해도 이제는 시간이 모자라는구만.

진한정은 안타까운듯 입맛을 다시더니 손가락을 지지게 된 담배꽁초를 역증스럽게 내던졌다.

《그 사람 이름이 뭐라오?

김일성동지께서는 잠시 생각하시다가 물으시였다.

《장청무라던가…》

《가만 그럴것 없이 시간도 넉넉한데 같이 가서 이야기를 좀더 들어봅시다. 그래도 무슨 출로가 있겠지. 사람이 그렇게 허무하게 죽을수야 있소.

김일성동지께서 막 걸음을 옮겨놓으시려는데 위병소의 문이 덜컹 하고 여닫기더니 류충제가 숨을 헐떡거리며 달려왔다.

《김사령, 어서 나 좀 봅시다.

그의 허둥거리는 말투며 표정으로 봐서 벌써 일이 심상치 않다는것을 누구나 느낄수 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도끼모태쪽으로 가시려던 걸음을 멈추실수밖에 없었다.

류충제는 두손으로 그이의 손을 덥석 잡았다.

《김사령, 그만 돌아가는게 좋겠네. 잘못하다가는 무슨 일이 날지 모르겠네.

그는 채머리를 가볍게 흔들며 아까보다 더 겁기어린 목소리로 창황히 말했다.

정황이 몹시 위급하다는것을 그의 말보다는 김일성동지의 손을 잡고도 우들우들 떠는 그의 팔이 더 웅변적으로 말해주고있었다.

《어떻게 됐습니까? 자세히 좀 말씀하십시오.

김일성동지께서는 입가에 웃음을 지으시고 여전히 떨고있는 류충제의 손을 따뜻이 감싸쥐시였다.

《어떻게 되나마나, 내 저번에도 한번 겪었지만 그 사람은 공산주의다 하면 무작정 펄펄 뛰는 위인일세. 내 전날 경험이 있기때문에 이번에는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기분을 돌려세워서 이야기를 시작하자고 잘 구슬렸지, 허 참.

류충제는 비로소 좀 진정이 되는지 어처구니없다는듯 혀를 한참 차더니 말을 이었다.

《내가 력사이야기도 꺼내고 오늘의 중국형편이야기도 하고 나중에는 요즘 항간에 우사령을 어떻게 말하는가 하는 소문까지 꾸며내여 한참 이야기를 하니 귀가 벌쭉해서 듣지를 않겠나. 그래서 본이야기를 꺼냈지. 그랬더니 웬걸 내내 웃고있던 위인이 별안간 벌떡 일어나더니 청룡도를 쑥 뽑아들고 대뜸 상우에 놓여있는 벼루집을 벼루채 단칼에 베여던지지를 않겠나. 나도 얼이 훌 빠졌지만 같이 앉아있던 사람들이 모두 사색이 돼서 벌떡 일어났지. 그런 사람들앞으로 그 두쪽이 난 벼루집을 훌 집어던지면서 우사령이 하는 말이 자기앞에서 조선사람이나 공산주의자들과 련합하자는 말을 꺼내는 사람이 있으며 이 벼루집과 같이 될것이니 그리 알라고 하지 않겠나. 뭐 더 말해볼 여지가 없네.

《그래서 물러나오는길입니까?

김일성동지께서는 류충제의 기가 돋힌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시며 말씀하시였다.

《물러나오지 않으면 별수 있더라구. 여보게 김사령, 제발 돌아가게. 그 사람이 부대안에 세워놓은 군률만 봐도 해괴한것이 많지만 아무도 말을 못하네. 우사령의 고집을 지금 꺾기는 힘드는 일일세.

김일성동지께서는 류충제의 손을 쓰다듬으시며 빙그레 웃으시였다.

《왜 웃나?

《선생님, 일본제국주의를 타승하는것과 우사령의 고집을 꺾는것과 어느쪽이 더 힘들것 같습니까?

《그야…》

류충제는 대답을 망설이다가 노여운듯이 김일성동지를 마주 바라보았다.

《그런즉 기어이 만나겠다는건가?

《그렇습니다. 나는 벼루집이 두쪽으로 났다는 정도가 아니라 생사람이 죽었다는 사실도 알고있습니다. 그러나 이 일은 우리 두 나라를 위하여 기어이 성사시켜야 할 일이기때문에 위험이 있을줄 알고 찾아온것입니다. 장부가 한번 마음다지고 떠난 걸음을 소문만 듣고 돌아선다면 후세사람들이 손가락질하지 않겠습니까.

《허, 일은 될대로 다된 일이로군. 한쪽에는 벼룩을 주먹으로 때려잡을 위인이 있고 한쪽에는 의를 위하여서는 촌보도 드티지 않겠다는 김사령이 있으니 이 일을 어찌하면 좋단말인가.

류충제는 하늘을 우러러 통탄하더니 마침내 마음을 다지고 결연히 말했다.

《알겠네. 김사령의 결심이 그렇다면 내 늙은 목숨을 아껴서 무엇에 쓰겠나. 김사령의 뜻을 그 사람에게 전하겠네.

류충제는 이윽히 김일성동지와 진한정의 얼굴을 말없이 지켜보더니 발길을 돌렸다.

류충제가 저만치 사라지자 진한정이 근심스러운 어조로 속삭였다.

《일없겠소?

《일이 있어도 하는수 없는 일이 아니요. 그러나 괜찮을거요. 내가 여태 사람들을 만나본 경험에 의하면 겉으로 웃으면서 속으로 음흉수를 쓰는 인간들보다는 차라리 이런 류의 사람들을 설복하기가 더 쉽소. 한번 부딪쳐보기요. 간대로 그 벼루집같이야 되겠소.

《하여간… 신중하게 행동하는게 좋을것 같소.

진한정은 김일성동지를 이 길에서 물러서게 할 힘도 리론도 없는만큼 만일의 경우에는 제 한몸을 내대서라도 그이를 막아나설밖에 없다고 속으로 비장한 결심을 다지는것이였다.

 

 

15

 

 

우사령은 사처의 안마당에 총과 창 그리고 울긋불긋한 기발들로 무장한 호위병들을 한가득 늘어세워놓고 정방의 좌우에 주요 지휘관들과 참모들을 거느리고앉아서 김일성동지의 일행을 어마어마하게 맞이하였다.

우사령이 앉은 뒤벽에는 《죽기로써 일제에게 저항하기를 맹세한다》는 현판이 붙어있었다.

호박색의 비단평복을 걸친 우사령은 뒤벽에 의지하여놓은 큰 팔걸이걸상에 틀스럽게 앉아있는데 팔선탁을 가운데 두고 짝을 맞추어놓은 또하나의 팔걸이걸상은 비여있었다. 원래 팔선탁 뒤에 놓여있어야 할 긴 걸상은 왼편 벽면에 붙여놓고 참모들과 지휘관들이 앉았다. 우사령의 자리에서 좀 떨어져 앉아있던 류충제가 으리으리한 호위병들사이를 름름한 자세로 걸어오시는 김일성동지를 맞이하려고 일어섰으나 우사령이 엄한 기색으로 눌러앉히는바람에 주저앉고 그대신 문가에 앉아있던 젊은 부관이 토방아래로 내려가서 경례를 하였다.

얼핏 보매 우사령의 울퉁불퉁한 얼굴에는 종잡기 어려운 표정이 깃들어있었다. 자기가 그쯤 칼부림까지 했으니 웬만한 사람이면 의례 혼비백산해서 도망칠줄 알았는데 웬걸 만면에 부드러운 웃음까지 짓고 찾아오시는 김일성동지를 보니 꽤 놀란것만 틀림없으나 그것을 애써 감추려 하다보니 마치 생콩이라도 씹은듯한 상을 짓고있었다.

그가 류충제에게 특별히 각박하게 대하는것은 아마 자기가 이 담판문제를 두고 어떤 립장을 취했으며 청룡도를 얼마나 무섭게 휘둘렀는가 하는것을 자세히 전하지 않았다고 의심하는데서 온것인듯하였다. 이러구러 류충제의 호인다운 얼굴은 어두웠으나 김일성동지께서는 벌써 단순하고 천진하게까지 느껴지는 우사령의 무관기질이 리해되시자 차라리 말하기가 수월하리라는 생각이 드시였다.

김일성동지께서 활짝 열어젖힌 문을 지나 방안에 들어서시자 우사령은 그러지 않아도 살집이 좋은 몸집을 마치 한톤무게나 되는듯 힘겹게 일으켜세우고 그이를 맞이하였다.

그러자 류충제가 서둘러 일어나서 소개의 말을 하려들었다. 그러나 운을 떼자마자 우사령이 뻔한 소리를 해서는 무엇하느냐는듯이 그의 말을 중둥무이하고 제말을 꺼냈다.

《나라고 귀가 먹은줄로 아오. 나도 김사령의 명성은 들은바 있소. 나는 김사령이 많은 호위병이라도 거느리고 올줄 알았는데 이렇게 단신으로 온것만 봐도 김사령의 담력과 또 김사령이 나의 신의를 믿는다는것을 리해할수 있소. 참으로 반갑소.

우사령은 두손을 맞잡고 가볍게 고개를 숙여보인 다음 맞은편의 자리를 권하였다. 류충제가 아무래도 김일성동지와 가까운 사이같으니 이 문제에서는 그를 믿지 못하겠다는 우사령의 속심이 더 명백히 드러났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적진깊이 홀로 들어선셈이구나 하는것을 느끼실수록 부드러운 웃음이 떠오르시였다.

《젊은 사람을 이처럼 륭숭하게 맞아주어서 황감합니다. 실은 왜놈이 만주땅을 침범한이래 저 북대영의 함락으로부터 참담한 소식만 들어오다가 남호두에서 우사령이 항일구국의 기치를 들고일어나 일제대군을 크게 격파했다는 소식을 듣고 사령님을 한번 만나보는것이 소원이더니 이처럼 가깝게 대하게 되니 반갑기가 그지없습니다.

《허허허, 과한 말씀이요. 어서 앉으시오. 어서 앉으시오. 내 원래 싸움판에서 굴어난 사람이라 손님대접이 소홀할수 있는데 량해하시오. 참모장도 이리 나앉고 대대장도 나앉고 모두 나앉으시오.

우사령은 그이께서 남호두싸움을 크게 평가해주시자 대번에 기분이 좋아져서 일부러 드티여놓았던 긴 걸상이며 작은 걸상들을 팔선탁곁으로 다가붙이도록 수선을 떨었다.

《그래 김사령이 나를 긴히 만나 의논할 일이 있다는데 그 이야기나 제꺽 들어봅시다.

모두 자리를 잡고앉자 우사령은 또다시 급한 성미를 드러냈다.

《그렇게 합시다. 사실 그지간에 사령님을 만나서 하고싶은 이야기가 쌓이고쌓여서 이제는 두어깨로 지고 일어나기도 어려울 지경이 되였으니 무엇을 지체할것이 있겠습니까. 중하고 큰 이야기가 많지만 우선 급한 용건부터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어서 말씀하시오. 나도 하고싶은 이야기가 많은데 김사령의 말씀을 들어보고 차츰하겠소.

우사령은 정작 담판이 시작되자고 하자 낯색이 긴장해졌다. 그러자 정수리가 모나게 바투 깎은 머리며 코밑에 짧게 기른 수염이며 투실투실한 몸집까지가 다 밭아지면서 융통성이 없는 고집덩어리같은 인상을 자아냈다.

《중국속담에 산에 올라가서 범을 잡기는 수월하지만 남에게 청을 들이기 위해 입을 벌리기는 어렵다고 합니다.

《그 무슨 돈이 소용된다는 말씀같은데…》

우사령은 대번에 난색을 지으면서도 잘 믿어지지 않아서 물었다. 속담은 분명 돈꾸기가 힘들다는것을 말한것이지만 아무러면 이처럼 험한 분위기속에서 초면의 이국 장수에게 돈꿀 이야기부터 꺼낸단말인가. 하기는 지금 사방에서 일어난 군대들이 다 군자금때문에 쩔쩔매고있으니 혹시 군자금을 돌려달라는 말일수도 있다- 우사령은 그럴수록 표정이 굳어져서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자 쭝긋해보이던 코수염이 길다랗게 늘어난 인중우에서 풋밤송이가시처럼 부르르해졌다.

《허허허, 짐작이 맞았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내가 난을 겪는 나라앞에 신의를 지키자고 하니 지금 당장 마제은 쉰냥이 있어야겠는데 나는 사령님의 호의를 믿고 빈손으로 오다나니 용처돈도 가진것이 없거니와 돈과 바꿀만한 총 한자루, 칼 한자루 못가지고왔습니다.

《허허허, 돈이란 요사스런 물건이라 장수들이 지니고 다닐만한것이 못되지요. 대체 그 쉰냥을 무엇에 쓰자는것이외까?

우사령은 별로 많지 않은 액수에 다소 낯색이 풀려서 팔선탁우로 몸을 기울이며 의논조로 물었다. 돈 쉰냥으로 간단히 호의를 보이고 시끄러운 문제를 피할수만 있다면 크게 아까울것도 없다는 태도였다.

《실은 사령님의 경비실에서 기다리는 사이 매를 맞아 죽게 되였다는 병사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매 한대값이 한냥이라 사정을 들어보니 그 매가 하도 귀해서 욕심이 나는김에 도합 쉰냥어치를 내가 모두 사기로 흥정을 하고왔습니다.

《아니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시오?

우사령의 낯빛은 다시 긴장되고 그자리에 끼여앉은 다른 사람들의 얼굴에도 놀란빛이 어리였다.

진한정은 아차하고 혀를 깨물었다. 자기가 공연한 소리를 해서 일을 한층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것이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미소를 지으시고 조용히 말씀하시였다.

《그 매 임자는 장청무라는 여기 성안경비를 보는 대대의 사병입니다. 그는 항일구국을 하겠다고 동생을 데리고 사령님의 군영을 찾아온 젊지 않은 사람인데 창고경비를 서다가 무경각하게 졸아서 귀한 밀가루를 두포대나 도적맞혔답니다. 천하에 군률이 엄하기로 소문난 사령님의 군영에서 그런 일을 저질렀으니 총살당한들 누가 감히 원한을 가지겠습니까. 그러나 관후하신 사령님께서 그들 형제의 가긍한 정상을 헤아리시여 응당 총살할것을 곤장 쉰대로 형벌을 탕감해주셨다니 이것은 세상에 소문을 낼만한 어진 처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알아보니 그 사람은 워낙 약질이다보니 곤장 쉰대를 맞으면 틀림없이 목숨을 잃을 형편이라 모처럼 사령님께서 베푸신 관용이 빛을 잃을가 두려워 내가 그 매를 사서 사령님의 뜻을 빛내이자고 마음먹었습니다.

《흐, , 흐》

우사령은 팔선탁을 두드리며 호걸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눈물이 찔끔 솟도록 웃고나더니 비단옷소매로 눈귀를 훔치고 말하였다.

《참으로 재미있소. 김사령이 내 군영에 와서 매를 샀다니 이것은 력사에 남을만한 일이외다. 여보게 대대장, 내가 뭐라던가? 자네가 하도 사정을 하길래 모른척했는데 김사령 말씀을 듣고보니 곤장을 치는것이 오히려 총살하는것보다 못하지 않는가!

우사령은 그이의 구수한 이야기에 흥미를 느꼈지만 한편으로는  어쩐지 자기의 약점이 드러난것 같은 생각도 없지 않아서 류충제옆에 앉은 대대장을 향해 엄하게 소리쳤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저는 다만…》

《음- 대대장이 제 잘못을 알았으면 됐다. 긴 설명은 필요없어. 군인이 입이 다사한것은 싸움에서 용기가 부족하다는 증거야. 김사령이 이미 그 매를 사서 한편으로는 우리 군대의 규률을 세우고 다른편으로는 우리 군대의 수효를 채워주었으니 내가 주인으로서 신세를 지고있을수야 없지 않느냐. 자네가 그 매를 몽땅 공으로 넘겨버려야겠네.

《알겠습니다, 사령님.

대대장이 벌떡 일어나서 대답하자 우사령은 흡족해서 고개를 끄떡거리며 그이께 다시 말을 건네였다.

《어떻소이까 김사령, 이렇게 되면 돈을 꾸고 말고 할것이 없지 않소이까?

《더 이를 말씀입니까. 우사령께서 일을 처결하시는것이 어찌나 시원한지 나는 범을 잡으러 산으로 올라가기보다 더 힘든 일을 하느라고 흘렸던 땀이 한꺼번에 다 말라버렸습니다.

《허허허.

우사령은 다시 호걸웃음을 터치고 방안에 가득 모여든 지휘관들도 모두 웃었다. 서리발돋힌 긴장이 떠돌던 방안에는 어느새 훈풍이 불어 화기가 넘치고 류충제며 진한정의 안색도 저으기 풀리였다.

우사령은 기분이 좋아서 부관을 시켜 차를 내오게 하였다. 따뜻한 김과 향긋한 차냄새까지 떠돌자 방안의 분위기는 더욱 누그러졌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이런 좋은 분위기를 타고 기본문제를 꺼내시려고 하였다.

이때 우사령이 차 한모금을 맛보더니 웃음띤 얼굴로 넌지시 말하였다.

《내가 잘못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참모장이 말하기는 김사령이 나를 만나자는것이 우리와 공산당과 합작하는 문제를 협의하자고 한다는데…》

하고 우사령은 다시 차잔을 입술에 갖다댔다가 놓고 부관을 향하여 《그것을 가져오게.》 하고 분부하였다.

부관이 벌떡 일어나더니 넓다란 정방의 간막이 저쪽에 있는 귀중품장에서 두쪽으로 짜개진 벼루집을 가지고왔다. 방금전에 류충제가 공산주의자들과 련합하는 문제를 꺼내자마자 우사령이 단칼에 베여던졌다는 바로 그 벼루집이였다.

우사령은 부관이 무슨 귀중품처럼 소중히 내미는 볼품없는 벼루집을 팔선탁우에 올려놓더니 껄껄 웃었다.

《이걸 보시오. 이것은 아침까지만 해도 내가 애용하던 물건인데 내앞에서 공산당과 련합하자는 말을 꺼내는 사람을 징계하기 위하여 이렇게 한칼에 베여버렸소. 이것을 귀중품장에 잘 간수해두라고 한것은 앞으로도 내 결심에 조금도 드팀이 없으리라는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요.

화기가 떠돌던 방안은 또다시 얼어붙은듯 싸늘해졌다. 칼을 찼거나 총을 찬 지휘관들이며 방 안팎에 늘어선 호위병들의 얼굴에는 자기네 두령의 말 한마디에 금시 살기가 피여올랐다.

류충제와 진한정의 낯색도 질렸다. 오직 웃음을 가시지 않고있는것은 이야기를 꺼낸 우사령당자와 두쪽이 난 벼루집을 어루만지시는 김일성동지뿐이였다.

《흑단목으로 만든것 같은데 아까운걸 못쓰게 만들었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대패질을 한듯 미끈하게 베여진 칼자리를 유심히 살피며 말씀하시였다.

《이런 아까운 물건을 베여던진 사령님의 뜻을 알만합니다. 내가 듣자니 그 옛날 조조가 류비의 용맹을 두려워해서 후날의 화근을 없애기 위하여 미리 죽여버리자고 술자리에 청했을 때 조조의 뜻을 짐작한 류비가 때마침 울린 우뢰소리에 질겁한척하고 상밑에 기여들어가서 조조의 마음을 놓게 하고 겨우 죽음을 모면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나도 그 흉내를 내면 사령님의 마음을 흡족하게 해드릴수 있겠지만 우리는 장차 서로 싸우기 위해 계략을 꾸미는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일제를 반대하는 한길에서 손잡고 나아가야 할 동지이며 형제이기때문에 입을 봉하고있을수가 없습니다.

우사령의 입가에 떠돌던 자신만만한 웃음은 서서히 사라졌다.

그대신 풋밤송이 가시같은 코수염이 날카롭게 곤두서서 금시 누구를 찌를듯이 독기를 풍기였다.

《기왕 사령님께서 공산당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으니 한가지 물읍시다. 사령님이 그처럼 공산당을 적대시하는 까닭은 어데 있습니까? 혹 무슨 책이라도 보고 그러십니까?

《책은 무슨 책, 지금 세상사람들이 공산당을 욕하지 않는 사람이 있소? 온 세상이 다 욕하니 나도 공산당을 나쁘게 생각하는것이요.

우사령은 볼부은 소리로 물건이라도 메치듯 투박하게 말하였다.

《허허허, 그러니 사령님자신의 판단은 아니란 말씀이신데 그렇다면 나도 말하기가 좋겠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흔연히 웃으시며 말씀하시였다.

《내 판단이 아니라니?

우사령은 날카롭게 반문하였다. 그러나 김일성동지께서는 그에는 개의치 않으시고 정색하신 어조로 말씀을 이으시였다.

《사령님 말씀대로 지금 공산당을 욕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첫째 제일 요란스럽게 떠들어대는것이 일제침략자들입니다. 다음으로 입에 거품을 물고 공산당을 욕하며 공산당을 잡자고 악을 쓰는것이 장개석입니다.

《어찌 장개석이만 그런단말이요. 공산당을 쳐없애라는것은 국민당의 결정이요.

우사령은 눈을 부릅뜨고 팔걸이걸상에서 몸을 솟구었다.

《국민당이 손문선생의 지도하에 있을 때는 <련쏘, 련공, 부조공농>의 3대정책을 내놓고 공산당과 손을 잡았습니다. 그때 중국형세가 얼마나 좋았습니까. 지금 장개석은 일제가 나라를 침략하는데도 그것은 돌아보지 않고 공산당만 치라고 하니 국민당안에서도 뜻있는 사람들은 다 그를 버리고 항일구국의 길에 나서고있습니다. 오죽하면 손문선생의 부인까지 장개석을 규탄했겠습니까.

우사령은 놀라서 류충제쪽을 돌아보았다. 류충제는 크게 고개를 끄떡거리며 말하였다.

《김사령의 말씀이 옳습니다. 장개석은 정치적야욕을 채우기 위해 한때 손문선생의 유지를 이을것처럼 가장하고 군권을 틀어쥐였습니다. 그러나 일단 권리를 쥐자 자기의 언약도 개인적의리도 다 헌신짝처럼 저버리고 민족을 반역하는 길에 들어섰습니다.

우사령은 모를 소리라는듯이 고개를 기웃하였다.

《그런 사정은 너무 먼데 일이여서 나는 잘 모르고 알고싶지도 않소. 어쨌든 조선공산당이 일본놈들을 우리 땅에 끌어들인것은 사실이 아니요?

《사령님, 일제를 반대하여 싸우기를 맹세한 사령님이고 사령님휘하에 수많은 반일병사들이 있으며 나라의 운명이 그들의 싸움여하에 크게 달려있는만큼 싫더라도 그런 사정을 잘 아셔야 합니다.  일본을 누가 끌어들였는가? 지금 중국의 뜻있는 사람들은 장개석을 가리켜 문을 열고 도적을 맞아들인 반역자라고 말하고있습니다. 실례로 지금 이 시각에도 일제와 제일 용감하게 치렬하게 싸우고있는 전선의 하나가 상해입니다. 일제가 동북땅을 강점하자 전중국에서 항일의 기운이 료원의 불길처럼 타올랐습니다. 9.18사변이 일어나자마자 나흘후에 중국공산당에서는 전국을 향하여 일제를 타격하라고 호소하였습니다. 이 호소에 맨먼저 호응해나선것이 상해의 10만명 학생들과 상해부두로동자들이였습니다. 상해의 80만명 로동자들은 장개석에게 대표를 파견하여 왜놈과 싸울 무기를 공급해달라고 했습니다. 장개석은 질겁해서 지금 <항일을 준비중에 있다>고 인민들을 얼려넘기고는 그 얼마후인 12 17일에는 국민당당부앞에 모여 항일할것을 요구한 3만명의 학생들에게 총질을 해서 100여명의 학생들을 상하게 했습니다. 장개석이 이처럼 배신적으로 나오니 일제는 상해에 있는 저희네 령사집에 저희손으로 불을 지르고 그것을 구실로 상해와 우숭에 침입했습니다. 지금 이 시각에도 상해인민들과 채정개장군 휘하의 19로군 장병들은 영웅적으로 싸우고있습니다. 그런데 장개석이 어떤 립장을 취하고있습니까. 일제는 10만명의 군대와 수많은 비행기, 군함으로 쳐들어오고있는데 맨주먹이나 다름없는 19로군 병사들과 로동자, 학생들을 도와줄대신 상해시내의 항일회들을 해산시키고 19로군을 철거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저런 괘씸한!

우사령이 저도 모르게 손바닥으로 팔선탁을 치며 울부짖다가 곧 자기 기분을 로출시킬 때가 아니라는것을 깨달은듯 입을 다물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삼거웃처럼 뒤엉클어진 혁명정세를 론하시자니 자연 젊은 가슴이 끓어오르시여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일어서시였다. 그이께서는 팔선탁앞을 오락가락하시며 두팔을 안타까이 흔들어보이시였다.

《그런데 우리가 맞서고있는 일제는 얼마나 교활하고 악독합니까. 방금 말씀드린 상해이야기도 그렇지만 왜놈들은 언제나 침략의 구실을 만들기 위하여 제손으로 불을 질러놓고 제입으로 불이야 하고 소리치는 수법을 쓰고있습니다. 몇해전에 왜놈들은 세차례나 산동에 쳐들어갔는데 놈들이 말하는 소위 이 <산동출병>이라는것을 어떻게 조직했습니까. 왜놈들은 제놈들 특무들에게 중국옷을 입혀 제남시내에 있는 일본거류민들의 상점을 털고 부녀자를 강간하고 불을 질렀습니다. 그래놓고 저네 거류민들을 보호한다는 구실밑에 군대를 들이밀었습니다. 두번째 산동출병때 왜놈들은 제남에서 1만여명의 중국사람들을 학살하였습니다.

《음, <제남참안>이야기로군, 나도 류참모장한테서 들은바 있소.

우사령은 귀에 익은 소리가 들려오니 저도 정 세상일에 어둡지는 않다는듯 한마디 께끼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고개를 끄떡여보이신 다음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그때도 장개석은 일제의 편에 서서 왜놈들을 반대하여 일어선 중국군대를 탄압하였습니다. 공산당을 욕하는자들의 정체는 바로 이러합니다. 그럼 조선사람이 일제놈들의 앞잡이가 되여 그놈들을 끌어들였다는것은 무슨 말인가? 작년 4월에 왜놈들은 9.18사변을 조작할 준비로서 만보산사건을 꾸몄습니다. 그놈들은 만보산에 있는 조선사람들의 농사를 도와준다는 명목으로 기여들어 중국농민들의 농사를 못쓰게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되여 중국사람과 조선사람 사이에 분쟁이 일어나서 불상사가 여기저기서 발생하였습니다. 왜놈들이 만주로 쳐들어오겠는데 중국사람과 조선사람이 서로 반목해서 싸운다면 그놈들에게 얼마나 유리하겠습니까. 놈들의 검은 배속을 꿰뚫어본 조중 두 나라 공산주의자들이 만보산사건의 내막을 인민들에게 알려주고 화해를 시키기 위하여 애쓰는 사이 시간이 갔습니다. 그사이에 왜놈들은 또다시 저희네 특무들에게 중국군대의 옷을 입혀 만철철도 한귀퉁이를 파괴해놓고 저희네 철도를 중국군대가 파괴했다고 트집을 잡아 9 18일 한밤중에 북대영을 공격한것입니다. 다른 실례도 있습니다. 일제는 9.18사변을 도발하여 만주를 강점하자 조선인정치범들을 다 석방하는척하였습니다. 이것은 중국사람들에게 조선사람이 일제의 편이라는 인상을 주어 서로 싸우게 하자는 계책입니다. 그럼 실제 조선사람 정치범을 석방했는가? 그놈들은 소문만 그렇게 내놓고는 중요한 사람들을 되잡아들이고 한편으로는 중국옷을 입힌 밀정들을 시켜 암살해버렸습니다. 이러한 실례는 허다합니다. 조선공산당이 왜놈들을 끌어들인다는 말은 성립될수가 없습니다. 사령님도 들었겠지만 지금 왜놈들은 광활한 만주땅을 한꺼번에 다 타고앉자니 아름이 차서 헐떡거리는데 동만땅에서 지난 가을부터 지금까지 조선농민들이 추수, 춘황 투쟁을 벌리고있습니다. 이것을 탄압하기 위하여 왜놈들은 조선에서 간도파견대라는것을 무어가지고 조선사람들이 사는곳에 들여보내여 악착한 <토벌>만행을 감행케 하고있습니다. 그렇게 <토벌>을 맞아 집을 잃고 가족을 잃은 조선청년들이 안도에 우사령이 있고 김일성이 있으니 의거해서 왜놈들과 목숨걸고 싸워보겠다고 찾아오는것입니다.

《음- 허지만말이요, 허지만.》

우사령은 이야기가 갑자기 안도에 나타난 조선청년들에게로 번지자 장히 앉음새가 거북한듯 육중한 몸을 이리저리 비틀어 고쳐앉으며 말했다.

《조선공산당이 중국사람들의 낟가리에 불을 지르는것을 내눈으로 봤단말이요. 그뿐인줄 아시오. 조선공산당이 중국사람을 죽이라는 명령도 내렸단말이요. 나한테는 증거가 있소.

《알만합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미소를 지으시고 조용히 자리에 가앉으시여 차잔을 입에 가져가시였다. 너무나 태연하고 침착하신 그이의 모습을 우사령은 말할것 없고 방안에 가득 들어앉은 사람들이 마른 침을 삼키며 지켜보았다.

《나무를 보고 숲을 못본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령님은 큰 군대를 거느린 장수일뿐아니라 지금 만주땅에서 항일구국의 기치를 쳐든 많지 못한 항일지도자의 한사람입니다.

천하의 형편이 어지러운 때 사령님과 같은 큰 영향력을 가진 어른이 개인의 감정과 나라의 리익을 혼동하지 말며 진실과 간계를 정확히 가려보는것은 우리 두 나라의 국운을 바로잡는데 큰 힘으로 될것입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무슨 말인가 해서 두팔로 팔걸이를 짚고 몸을 앞으로 기울이는 우사령을 똑바로 바라보시며 절절한 어조로 말씀을 이으시였다.

《물론 지난날 조선공산주의자들속에는 나쁜놈들도 있었고 어리석은자들도 있어서 좌경적인 모험행동을 저지른것도 사실입니다. 그때문에 재작년 5월에는 사령님께서도 봉변을 당하였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복잡한 투쟁과정에 우연히 발생한 일시적인 곡절이지 조선의 공산주의자들의 견해를 반영한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오늘 장개석이 그처럼 배신적인 친일매국의 길로 나서고있지만 그가 중국사람들의 의사를 대변하고있지 않은것과 같습니다. 또한 나는 우연히 사령님의 결의형제 한사람을 비롯한 사령님휘하의 우수한 장교 네사람이 나쁜놈들에 의해 암살된 불행한 사건이 있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나는 이에 대해 깊은 애도의 뜻을 표시합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사령님의 아픈 마음을 어떻게 하면 위로하겠는지 생각이 떠오르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조선공산당연변당부의 지시에 의해 저질러졌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조선공산당연변당부란 도대체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나는 이것이 일제특무기관에서 조작한 음모라는것을 알고있으며 여기에 가담한자들까지 알고있습니다. 그러나 사령님과 같이 통이 큰 어른께서 그런 자질구레한 증거까지 있어야만 사태를 리해할것은 아니기때문에 그런 준비는 하지 않고 오직 성의만을 가지고 찾아왔습니다. 사령님, 우리는 일시적이며 우연적인 오해를 풀고 손을 잡아야만 왜놈을 반대하는 큰 싸움을 벌릴수 있고 승리할수 있습니다. 실제적으로 생각해보십시오. 지금 왜놈들은 안도에 사령님을 비롯해서 큰 반일세력이 있고 지형도 험준하기때문에 아직 손을 뻗치지 못하고있지만 머지 않아 여기도 침입해들어올것이 틀림없습니다. 이미 그런 구체적인 준비를 하고있다는것을 우리는 잘 압니다. 만일 우리가 손을 잡고 더 나아가서 통화, 집안 일대에 웅거해있는 정초, 당취오같은 장수들, 량세봉부대 같은 조선독립군들과도 힘을 합치며 저 동녕, 왕청일대에 있는 왕덕림군단의 산하 각부대들과도 련합해서 넓은 전선을 형성한다면 능히 일제를 쳐물리칠만한 힘을 만들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우리가 서로 의심하고 반목한다면 두 호랑이가 싸울 때 반드시 한마리는 상하는 법이라 일제와 싸움을 해볼 겨를도 없이 불행을 겪는 조선사람과 중국사람만 상할것입니다. 사령님, 지금이야말로 대세를 똑바로 가려보고 나라와 겨레를 위하여 자기의 책임을 다해야 할 때입니다.

김일성동지의 어조는 격정으로 떨리였다. 명철하고 단순소박한 론리도 우사령을 압도했지만 사람의 심금을 잡고 흔드는 그이의 진정에 우사령의 마음도 흔들리지 않을수 없었다.

그러나 옳은것을 옳다고 선뜻 시인해버린다면 무엇때문에 그를 완고한 고집쟁이라고 하겠는가.

우사령은 김일성동지의 물샐틈없는 론리와 반박할수 없는 사실적자료, 절절한 호소와 완벽한 선후책이 자기의 온몸을 칭칭 감고도는것을 느끼자 마치 밤송이를 깔고앉은듯 진정을 못하고 몸을 이리저리 뒤틀었다.

때로는 저도 모르는 사이 김일성동지의 도도한 변론에 심취되여 입을 하 벌리고있다가 흠칫해서 일부러 오만상을 찌프리고 어딘가 속이 말째다는 시늉을 해보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때 대문간에서 사람이 들레는 소리가 정방에까지 울려왔다.

우사령은 마침 좋은 구실이 생겼다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게 대체 무슨 소란이냐?

대대장 한사람이 황급히 달려나가더니 잠시후 고개를 기웃거리며 돌아와서 우사령의 귀전에 대고 속삭였다.

《웬 녀석이 사령님을 만나겠다고 찾아왔습니다.

《어떤 녀석이기에 함부로 나를 만나자고 찾아와?

우사령은 첫마디에 꽥 하고 소리쳤다.

《그래서 쫓아보내자고 하는데 사령님은 자기 형이라고 하면서 기를 쓰고 뻗댑니다.

《나를 형이라? 그게 어떤 녀석이야?

《조선녀석인데 부강촌 보위단장이라고 합니다.

《부강촌 보위단장이면 안윤재가 아닌가? 안윤재를 몰라?

《저도 압니다. 그런데 이건 젊은 녀석인데 하는 말을 들어보니 그 안윤재의 아들 같습니다.

《안윤재의 아들이면 나를 왜 형이라고 한단말이냐?

《그러게말입니다. 뭐 남의 장단에 춤을 추는것이 꼭 자기와 같다나요.

《뭐 내가 남의 장단에 춤을 추어?

우사령은 너무나 기가 막혀 방안을 한번 둘러보더니 깨진 징을 치듯하는 어칠한 소리를 힘껏 내질렀다.

《괘씸한놈 같으니, 당장 잡아넣어!

《네, 그러지 않아도 잡아넣으라고 하였습니다.

《오늘은 모처럼 김사령을 만나서 내 흉금을 터놓고 이야기를 해보자는데 어떤놈이 감히 내 문전에 찾아와서 내 약점을 건드린단말이냐. 듣자니 요즘 부강촌은 공산화돼서 불온한 일이 잦다는데 후날 내가 직접 그놈을 문초해보겠다. 헌데 김사령, 내가 지금 속이 좋지 않아서 그러니 이야기를 후날로 미루지 않겠소?

김일성동지께서는 모처럼 제곬으로 들어선 담판이 뜻밖에 나타난 안영호로 하여 중단되고 장차 또 어떤 곡절을 그리게 될지 모를 형편이라 마음속이 불안하시였으나 흔연히 우사령의 청에 동의하시지 않을수 없었다.

담판은 래일 또 보자는 식으로 어정쩡하게 중단되고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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