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서《불멸의 력사》

  장편소설

 

                         석윤기

(제33회)

제 3 편

 

8

 

허재률실종사건에 대한 김일성동지의 추리는 정확했다는것이 움직일수 없는 자료로써 밝혀졌다.

부금의 죽음과 그 유서도 부강촌조직을 통하여 그이께 전달되였다.

한편 돈화의 옥섬을 거쳐 오중화가 보낸 보고도 들어왔는데 거기에는 농막골에서의 폭동을 비롯한 왕청5구의 투쟁정형과 함께 고만녀의 영웅적인 최후와 허재률의 체포경위가 상세히 언급되여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허재률의 행방을 탐문하겠다고 꺼칠한 몰골로 송강거리에 나가 헤매다니는 하연성을 조용히 토기점골댁으로 부르시여 슬픔에 젖은 목소리로 고만녀에 대한 조의를 표시하시였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아주머니를 처음 보았을 때부터 혁명할수 있는 녀자로 믿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빨리 희생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아주머니는 렬사입니다. 아주머니의 그런 고상한 정신은 아마 우리 근로하는 인민들이 타고난 품성일것입니다. 우리 이에 대해서는 긴말을 하지 맙시다. 요란한 말로써 아주머니의 숭고한 행동을 말한다는것은 어쩐지 아주머니가 바라는 일 같지 않습니다. 하동무도 아마 그래서 그런 큰 슬픔을 당하고도 전혀 내색하지 않은것이 아닙니까?

하연성은 묵묵히 고개를 숙이고 그이의 손을 뜨겁게 잡았다.

사실 그이께서는 허재률이가 어떻게 됐는가 하는것만 확인하게 되면 하연성을 곧 두만강쪽으로 다시 내보내실 생각이였다. 그러나 그가 백주에 상탄나루에서 왜놈수비대원을 강속에 처박고 총을 빼앗아낸 그 심경이나 그길로 안도로 달려온 정상을 생각할 때 차마 곁에서 떼여 멀리 보내실수가 없었다. 그이께서는 어머님께 자신께서 생각하시는것을 죄다 말씀드리고 의논하시였다.

어머님께서는 잠시 생각하시더니 그렇다면 기회를 봐서 사람을 보내여 정남이를 데려오도록 하는것이 좋겠다고 말씀하시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정남이를 데려다 키우시겠다는 어머님의 후더운 정을 읽으시며 이 일을 어떻게 조처할것인가 생각하시였다.

바로 이러한 때 사람들이 가슴조이며 동향을 지켜보던 일제《간도파견대》의 《토벌》만행에 대한 첫 소식을 가지고 피투성이된 한 청년이 토기점골의 턱밑에까지 달려와서 쓰러졌다. 그것은 왕청에서 김중권이 보낸 첫 통보였다.

추후로 연길, 화룡, 훈춘 등지에서도 련이어 일제가 빚어낸 류혈적참극에 대한 보고가 들어왔다.

그것은 실로 력사에 전례없고 사람의 머리로써는 상상할수도 없는 무시무시한 인간살륙이였다.

1932 4 2일 오후 4시에 제기되여 그날 오후 6시에는 벌써 천황의 지시로 하달된 간도파견대조직에 관한 음모는 상상할수 없는 속도로 추진되였다. 함흥 74련대와 회령 75련대를 기본으로 하여 구성된 간도파견대는 75련대장놈의 통일적지휘하에 이튿날인 4 3일 이른아침에는 벌써 수송을 시작하였고 4일에는 부랴부랴 길회선철도연선을 중심으로 《작전》을 시작하였다.

《조선사람 100명을 죽이면 그중에 적어도 한명은 공산당원이 아니면 공청원》일것이니 조선사람은 사정없이 덮어놓고 잡아죽이라는, 일제의 속심을 솔직하게 드러내놓은 구호가 바로 이때 생겨난것이다.

간도땅은 일조에 피바다, 불바다에 잠겼다.

1932 4 6, 간도파견대 3,100여명이 대감자에 달려들었다. 당시 대감자에는 왕덕림의 구국군부대가 주둔하고있었으나 《토벌대》가 쏘아대는 대포소리에 놀라 천교령부근까지 내주고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불과 한개 중대도 되나마나했던 소규모의 유격대성원들이 저항했으나 놈들의 대포수자보다도 못한 낡은 보총 몇자루를 가지고는 대적이 되지 않았다. 놈들은 대감자를 반반히 불살라버리고 덕원리와 동일촌의 주민들을 닥치는대로 끌어내다가 학살하였다.

산으로 골짜기로 새까맣게 밀려가는 피난민들을 비행기가 달려들어 무차별적으로 폭격하였다.

그 옛날 독룡 강철이가 지나간곳은 초목곡식이나 말랐다지만 일제의 간도파견대가 지나간곳은 사람의 씨가 마르고 개, 돼지조차 울음소리를 그쳤다.

구가촌에 달려든놈들은 200여세대의 농가에 불을 지르고 주민들을 학살하다못해 45명의 공청원들을 집안에 몰아넣고 불태워죽였다.

골방골에서는 수십호의 농가를 모조리 불사르고 죄없는 농민들을 형체도 가려볼수 없게 총창으로 찔러죽이였다. 영창동에서는 5명의 조직원의 손바닥을 쇠줄로 꿰여 장작더미우에 세워놓고 석유를 뿌려 생화장하였다.

왕우구에서도 혁명군중 수십명을 농가에 가두어넣고 석유를 뿌린 다음 생으로 불태워죽였다.

로인들과 어린이들을 총탁으로 까죽이고 부녀들의 젖가슴을 도려서 죽이고… 실로 잔인하고 악착한짓이면 무슨짓인들 안하였으랴. 《토벌》의 불길은 겨우내 바싹 마른 산천초목에다 때마침 불어오는 봄바람을 타고 온 천지를 불태우듯 소리치며 번져갔다.

온 강토의 하늘을 뒤덮은 이 《토벌》의 검은 구름과 흩날리는 재티는 단순히 집이 불타고 낟알이 불타고 숲과 마을이 불타는것이 아니였다. 온 간도땅의 조선사람들을 화장하는 연기였다. 그래서 그 연기속에서는 사람타는 냄새가 풍기여 비위를 돋구었으나 간도파견대의 야수들은 코를 흐물거리며 너털웃음을 웃었다.

대두천과 가야허, 해란강의 물결도 사람들의 피로 흐리고 해토를 앞두고 질쩍했던 대지는 피로 질벅거렸다.

이 화장터, 푸주간같은 죽음의 간도땅에서 피맺힌 인민의 절규가 터져나왔다.

《무장을 들고 복수하자, 혁명만이 살길이다!

이리하여 반일인민유격대의 창건을 선포하고 공개적인 무장투쟁을 벌림으로써 일제침략자들의 야수적만행을 짓부시고 혁명군중을 보위하는것은 한시도 미룰수 없는 절박한 요구로 제기되였다.

불에 타고 그슬린 사람들, 총에 맞고 칼에 찔리여 피투성이 된 사람들이 김일성동지를 찾아와서 통곡을 터뜨리며 총을 잡게 해달라고 애원하였다.

그러나 일제의 간악성과 악랄성은 이에만 그치지 않았다.

놈들의 교활한 음모가들은 도시와 철도연선을 타고앉아 반일부대들이 차지한 농촌과 산간지역으로 《토벌》을 확대하면서 《민생단》의 주구들을 발동하여 《간도에서의 조선인자치》의 구호를 퍼뜨리게 함으로써 반일부대 우두머리들에게 조선사람에 대한 민족적반감을 불러일으켜 그들로 하여금 엄연한 현실을 바로볼수 없도록 눈을 가리워버렸다. 그리하여 조선사람들과 아직 전투력이 부족한 소규모의 유격대는 일제와 반일부대의 협공과 포위속에 들게 되였다.

안도지구에서도 두만강기슭과 화룡에서 산을 타고 곧장 안도로 찾아오는 사람들은 그럭저럭 무사히 빠져나왔으나 명월구쪽으로 해서 푸르하기슭으로 나온 사람들은 태반이 우사령부에 체포되였다. 일제의 간도《토벌》과 때를 같이하여 니시자와는 최용필이, 지대현이들을 발동하여 조선공산주의자들이 우사령의 부대를 공격할 준비를 갖추고있다는 요언을 대대적으로 퍼뜨려놓았다.

어느날 밤 별안간 한겨울에도 드문 세찬 바람이 불어 비애와 원한에 잠긴 대지를 깡깡 얼어붙이더니 그날부터 날씨는 계속 궂혔다. 어수선한 바람속에 흉한 소식이 날을 번지지 않고 소사하로 날아들었다.

일제침략군과 반일부대의 포위속에서 조선혁명은 질식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어느 한쪽을 테고 나가느냐 하는 심각한 국면이 조성되였다.

그사이 유격대창건준비사업의 본부나 다름없이된 김정룡의 집에서 혁명조직책임자들의 회의가 열리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이미 반일인민유격대창건준비가 완성단계에 들어섰다는것을 지적하시고 정세는 한시바삐 유격대창건을 내외에 선포하며 적들과의 공개적인 무장투쟁으로 이행할것을 절박하게 요구하는데 지금 당장 제기된 가장 큰 난관은 반일부대의 무분별한 적대행동이라고 말씀하시였다. 그러면 반일부대는 무엇때문에 덮어놓고 공산주의자들을 적대시하며 특히 조선사람들을 원쑤처럼 대하는가, 그것은 한편으로는 일제의 간악한 민족리간책동에 속은데 원인이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반일부대상층부가 정치적으로 깨지 못한데로부터 현시기 일제침략자들을 반대하는데 있어서 조중인민의 련합전선형성이 가지는 결정적의의를 깊이 느끼지 못하고있기때문이라고 말씀하시였다.

그러므로 현시기 복잡하게 뒤엉킨 문제를 푸는 기본고리는 반일부대상층부, 구체적으로 우사령과 담판을 해서 우선 안도지구에서 우사령의 부대와 앞으로 창건될 반일인민유격대와의 련합전선문제를 해결하며 그 경험을 동만의 전지역에 확대해나가는것이라고 강조하시였다.

여기까지는 회의참가자모두가 한결같이 공감하고 열렬히 호응하였다. 그러나 이 담판을 누가 진행하느냐 하는 문제에 이르러서는 론의가 분분해졌다.

우선 김일성동지께서 몸소 이 담판에 나서시겠다는데 대해서는 그 아무도 찬성하지 않았다.

《오늘 이 회의에서 제기된 자료만 봅시다.

하고 차광수는 흥분한나머지 흘러내린 안경을 밀어올릴 생각도 못하고 웨쳤다.

《우리는 아직 허재률동무의 생사조차 모르고있습니다. 전날 김일성동지는 부강촌에서 왜놈특무들의 모략에 걸려 애매하게 희생된 보위단원의 시체를 찾아오려고 우사령과 친교가 두터운 류충제선생을 보냈는데 그도 조선공산주의자들과 타협하면 어떠냐는 말을 꺼냈다가 하마트면 칼을 맞을번하였습니다.

최근에 연길, 왕청쪽에서 넘어오다가 붙들린 동무들이 다 무슨 근거가 있어서 체포되였습니까? 지금 우사령과 그 부하들에게는 조선사람이라는것이 곧 처형의 근거로 되고있습니다. 그것은 물론 방금 김일성동지가 분석한바와 같은 일제의 모략과 그들의 몰리해에 기인한것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를 헝클어진 실꾸리를 풀듯 인내성있게 잘 풀어나가면 어느땐가는 풀릴 문제일것입니다. 그것은 두말할것도 없이 그들의 리해관계와 우리의 리해관계가 완전히 일치하며 우리는 련합함으로써만 일제침략자들을 물리칠수가 있기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리해에 도달하기전까지는 그들은 계속 포악하고 무분별하게 나올것입니다. 그러한곳에 김일성동지 자신이 나간다는것은 시기상조이며 어떤 의미에서는 무모하다고도 볼수 있습니다.

어차피 어느땐가는 김일성동지가 직접 우사령과 최종적인 담판을 하는 때가 있을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이 우리에 대한 오해를 풀고 적어도 련합전선의 구체적문제를 토의할 사상적준비가 일정하게 이루어진 조건에서만 가능하다고봅니다.

《허허허, 그렇다면 그때야말로 내가 갈 필요가 어디에 있겠소. , 그러지 말고 실제상문제를 토론합시다. 하여튼 가기는 누가 가든 가야 할것이 아니요. 모두 말한것처럼 우리는 련합전선을 꼭 해야 한다고 일치하게 인정하고있지만 그들은 련합전선은커녕 우리를 만나기만 하면 잡아들이거나 죽이자는판이니 그들쪽에서 누가 찾아올리는 없지 않소. 그렇다고 지금같이 유격대라는것이 총을 메고 조선사람동네나 돌아다니기만 한다면 어느때에 가서 일제침략자들과 본격적인 전투를 해보겠소.

김일성동지께서는 가슴속에서 불이 이는듯하시였으나 말씀만은 온화하게 하시였다. 그이께서도 이 담판이 참으로 어려운 담판이라는것을 다시한번 통감하시였다. 우사령을 만나러 간다는것이 위험한것도 사실이고 어려운것도 사실이지만 우선 출발하기부터 이처럼 힘이 드는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고 뒤쪽에 침울한 표정으로 앉아있던 집주인인 구당비서 김정룡이 조용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이 담판이 매우 중요한만큼 김일성동지가 직접 갔으면 좋은점도 많다고봅니다.

《뭐요?

계영춘이 찢어지는듯한 목소리를 질렀다. 평소에 유순한 성미인 그가 이처럼 사나울 정도로 날카롭게 반응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못했기때문에 회의참가자들은 모두가 어리벙벙했다.

《왜 그러오?

김정룡이 하던 말을 중단하고 계영춘이쪽을 돌아보았다.

《동무는 어려운 문제만 나지면 김일성동지에게 다 밀어맡기고 우리는 뒤전에 앉아서 부녀회의 시중이나 받자는거요?

도대체 안도구당이 한게 뭐요? 사실은 이것도 통일전선문젠데 응당 구당이나 현당에서 책임져야 할 문제란말이요.

김정룡은 어이없다는듯 계영춘이쪽을 한참 바라보다가 암만해도 모르겠다는듯이 고개를 기웃하였다.

《내가 말을 계속하겠습니다. 이제 계영춘동무가 나를 비판했는데 그건 참 옳은 지적입니다. 사실 내가 떨떨해서 그렇지 우리 부녀회가 여러 혁명군들 시중을 잘 들면 좋은거지요. 그리고 우사령과 담판하는 문제가 구당에 책임이 있다는것도 백번 정당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우선 우리 구당에서 한번 쪼아보고 그 결과에 따라서 김일성동지가 나가는 문제를 다시 토론했으면 합니다. 내가 말하는것은 담판은 잘하는가 못하는가 하는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든지 할수는 있는 일인데 김일성동지는 한분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어려운 조건에서 혁명을 하자니 솔직한 말로 뻔히 알면서도 모험을 하는 경우가 없지 않은데 딱 한가지 모험만은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령도자 김일성동지의 신변에 대한 모험입니다.

김정룡의 소박한 말은 만장의 열렬한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전에없이 성급하게 나섰다가 립장이 난처하게 된 계영춘은 좀 게면쩍기는 하였으나 그런것쯤에 주눅이 들 사람이 아니였다. 그는 남달리 큰 목소리로 《옳소.》 하고 웨치며 열렬히 박수를 쳐댔다. 그리고 장내가 가라앉았을 때 정식 발언인지 혼자말인지 모를 소리를 하였다.

《참 농민들의 말이란, 그러면 그렇다고 솔직하게 말할게 아닌가. 그런데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김정룡동무가 간다 하더라도 구당비서다 하는 간판을 달고 가는것은 우사령의 감정을 자극하지 않겠는가, 그럴바에는 역시 유격대 대표자격으로 가는것이 좋겠는데 그렇다면 굳이 김정룡동무가 갈것도 없다는것입니다. 그래서 내 생각에는 나와 박훈동무가 진한범동무를 데리고 가는것이 어떻겠는가 하는것을 제기합니다.

아까부터 말할 틈을 찾지 못하여 움찔움찔하던 박훈은 계영춘의 입에서 자기 이름이 나오자 입귀가 헤벌어지면서 어떠냐는듯이 부리부리한 눈길로 장내사람들을 돌아보았다. 그의 눈길이 다시 꼿꼿해지고 입귀가 다물려서 긴장에 떨기 시작한것은 회의참가자들이 계영춘의 의견을 그닥 신통히 대하지 않는다는것을 느낀 때부터였다.

김정룡이가 나서서 제가 가겠다는바람에 아예 김일성동지께서 가시는 문제에 대해서는 다시 론의해볼 여지도 없는것으로 보는것인지 저마다 제가 가겠다고 나서는판인데 박훈이가 보기에는 어처구니없는 점도 없지 않았다.

《여보, 동무들.

그는 마침내 참을수가 없어서 좀 꿰진 소리로 말하였다. 평소 구령을 치는데 익달된 그의 목소리는 최근 더욱 강화된 군사훈련을 진행하느라고 석쉼하게 갈려서 대단히 위엄차게 울리였다.

《담판의 격도 생각해야 할게 아니요. 비록 김일성동지가 안간다 하더라도 명목은 김일성동지의 사절이라는 자격으로 나서야 하겠는데 그래 우사령이 아무나 가서 만나자면 만나나 낼것 같소? 영창에 잡아넣기나 좋겠소.

자기만이 적임자라는 의도가 로골적으로 풍기는 그의 말이 비위는 거슬렸으나 차광수는 사태를 바로 수습하기 위하여 지금은 일단 그의 의견을 긍정할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였다.

《박훈동무가 옳게 말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사령을 설복하고 납득시키겠는가 하는 각도에서 대표구성을 잘해야 합니다. 털어놓고 말해서 계영춘동무의 언변을 가지고는 우사령을 굽혀내지 못합니다. 내가 가겠습니다.

차광수의 확정적인 말에 장내는 조용해졌다. 계영춘이 혼자 좀 뿌루퉁해있을뿐 모두 그럴상하다고 생각하는 눈치였다.

차광수는 이로써 이 문제는 더 토의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듯이 그이의 표정을 살피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장내를 둘러보시더니 잠시 고개를 숙이고계시다가 결단성있게 말씀을 하시였다.

《동무들이 솔직하게 자기 의견들을 말했으니 나도 내 생각을 솔직하게 말하겠습니다. 지금 우리가 한개 지방군벌에 불과한 우사령과의 담판을 왜 이처럼 중시하고있는가? 그것은 지금도 일제야수들의 총검아래 죽어가는 우리 인민들을 무력으로 보위하느냐 못하느냐, 나아가서는 일제침략자들을 물리치고 우리 조국의 해방과 독립을 달성하느냐 못하느냐 하는 문제가 현시기 이 담판을 통하여 조중인민의 련합전선을 실현하느냐 못하느냐 하는데 크게 달려있기때문입니다. 그래서 위험을 무릅쓰고 이 담판을 진행하자는것인데 내가 꼭 가야 한다고 나자신이 주장하는것은 누구보다도 나한테 위험이 제일 적기때문입니다. 동무들, 생각해보시오. 허재률동무가 지금 우사령부에 붙잡혀있는데 그는 사업상 필요할 때는 제발로 경찰에 찾아가서 잡혔다가 나오군하던 동무입니다. 허동무가 말할줄 몰라서 잡혀있겠습니까. 차광수동무는 물론 우사령을 설복하고도 남을만한 리론이 있습니다. 그러나 차동무는 지하사업을 해왔기때문에 우사령은 차동무의 이름을 모를것입니다. 다른 사람도 다 같습니다. 우사령과 같은 사람과의 담판에서는 이런 점도 고려해야 합니다. 더우기 차동무나 다른 동무들이 중국말로 복잡한 담판을 성사시키기 어렵습니다. 이 일은 나에게 맡기시오. 아무리 우사령이 우둔하다 해도 함부로 내 몸에 손을 대지는 못할것입니다. 그래도 내가 가는것이 지금 조건에서는 제일 안전하다고 볼수 있습니다. 내가 박훈동무와 진한범동무를 데리고 가겠습니다. 진한범동무는 중국동무이니 안전한것이고 박훈동무도 중국관내에서 군관학교를 나왔고 독립군으로 활동하면서 이름도 난 동무이니 마구 죽이자고는 못할것입니다.

그이께서는 잠시 말씀을 중단하셨다가 숙연해진 회의장안을 돌아보시며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씀하시였다.

《물론 우사령과 담판을 진행한다는것이 위험한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어코 이 담판을 진행해야만 합니다.

위험을 두려워해서야 어떻게 혁명을 하겠습니까. 신심을 가지고 위험을 헤쳐나가야 합니다. 혁명이 요구하는데 갈길을 주저해서는 안됩니다.

그이의 말씀은 너무나 정당하고 또 사태의 진상과 엄중성을 정확히 반영하고있었기때문에 더는 다른 의견을 제기할수 없었다. 그러나 회의를 필한 다음에도 회의참가자들은 개운치 못한 가슴들을 안고 무거운 걸음으로 헤여져갔다.

 

 

9

 

 

회의가 끝난 다음 실무적인 문제들을 몇가지 토의하고 밤이 깊어서 댁에 오시니 동생들은 잠에 곯아떨어졌는데 며칠전부터 몸져누워계시던 어머님께서 단정히 일어나계시였다.

《오늘 또 무슨 일이 있었느냐?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네가 요즘 속을 썩이는 모양같다. 얼굴이 몹시 축갔구나.

어머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며 구들목에서 포대기를 씌워놓은 밥바리를 꺼내드시였다.

《저녁을 먹었습니다. 아이들이랑 같이 어머님께서도 넉넉히 잡수시지 괜한걸 남겼습니다.

《우리는 배불리 먹었다. 이제는 밤이 깊었는데 좀 출출하겠느냐. 한술 들어라.

어머님께서는 종시 상을 차리시면서 조용히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이제 유격대가 창건되면 언제 내 손에서 밥을 먹어보겠느냐.

《그럼 어머니도 같이 드십시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모자간의 정에 너무나 주려오시는 어머님의 정상이 가슴에 저리시여 덧저고리를 벗으시고 상앞에 나앉으시였다.

《그래, 나두 먹지.

어머님께서는 입가에 가냘픈 웃음을 지으시며 솥뚜껑을 여시고 이슬이 주렁주렁 맺힌 국대접을 꺼내여 상우에 올려놓으시였다. 김이 문문 피여오르는 국대접에서는 구수한 토장냄새가 풍겼다.

《어서 숟갈을 가지고 오십시오. 빈 그릇도 하나 가져오시구요.

김일성동지께서는 숟갈을 드시고 상을 내려다보시며 어머님을 재촉하시였다.

《먼저 들어라, 내 물을 떠가지고 갈테니.

어머님께서는 아드님을 돌아보시며 어서 들라고 팔을 들어 손짓하시였다. 사날째 자리를 하고 누워계시던 어머님의 수척하신 얼굴에는 오래간만에 밝은 빛이 어리고 행복한 미소가 깃들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입안이 헤여지고 피곤이 겹치기도 하시여 실상 무엇을 드시고싶은 생각이 없으시였으나 어머님의 간절하신 마음을 생각하여 밥 한술을 국에 마시였다. 노란 조밥이지만 콩이 듬숭듬숭 박혀 퍽 부드러워보였다. 상우에는 먹음직스럽게 잘 익은 김치가 한보시기 놓이고 간장종발이 올라있을뿐이지만 어디라없이 이 무서운 가난속에서도 아드님의 구미를 맞추어 한끼라도 깨끗한 끼니를 대접하시려는 어머님의 정갈하고 알뜰한 음식솜씨와 정성이 느껴지셨다.

시래기국에서는 들깨냄새까지 풍기였다.

《국이 맛이 있군요. 나는 저녁을 늦게 먹었기때문에 아무래도 남겨야겠는데 저 애들을 깨울가요?

김일성동지께서는 세상 모르고 잠든 동생쪽을 돌아보시였다. 아직 어린 나이에 벌써 혁명사업을 한다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뛰여다니는 그들이 대견하기도 하고 측은하기도 하시였다.

《그만둬라. 그 애들도 방금 저녁을 먹었다. 철주가 형이 래일 우사령한테 갈것 같다고 해서 모두 기다리다가 금시 잠들었다. 봄철이 돼서 그런지 요즘은 몹시 힘들어하는것 같구나. 잠이라도 실컷 자게 둬두어라.

《그럼 어머니라도 좀 많이 드십시오.

《오냐, 많이 먹는다.

어머님께서는 아드님이 마음 쓰지 않게 하자고 정말 빈사발 하나를 가지고 오시여 밥사발의 한쪽귀를 갈라내시였다.

김일성동지께서 국대접을 기울이시니 아무 말씀 없이 받으시였다. 어머님의 얼굴에는 방금까지 피여나던 화색은 사라지고 무슨 생각엔가 골똘하시여 이미 밥상머리에 앉아계신다는 의식이 없으시다는것이 확연히 알리였다.

어머님께서 무슨 생각을 하고계신다는것을 너무나 잘 아시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천천히 숟갈질을 하면서 말씀하시였다.

《어머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지금 우사령에 대해 험한 말들이 돌아가고있지만 내가 전날 류충제선생한테서 들은데 의하면 그렇게 사리에 무딘 사람이 아닙니다.

《글쎄 그건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만 그 사람을 만나기전에 무지막지한것들이 무슨 일을 칠지 알겠느냐. 차광수랑 김정룡동무가 걱정하는것도 그래서 그런다는구나.

어머님께서는 시늉만 하시던 숟갈질을 멈추시고 아드님을 이윽히 바라보시였다.

《글쎄, 위험이 전혀 없다고 말하기야 어렵겠지요. 그러나 어머니.

하고 김일성동지께서도 수저를 놓으시며 어머님을 마주 바라보시였다.

《이 길은 가지 않을수 없는 길입니다. 지금 우리가 총을 들자면 그에 앞서 기어코 이 문제를 풀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무턱대고 우리가 총을 들고나서면 농촌에서는 반일부대를 적으로 해서 싸움을 해야 하고 도시에 나가서는 왜놈들을 상대로 싸움을 해야 하는데 갓 생겨난 유격대가 이런 싸움을 해서는 승산도 없고 궁극에 가서 혁명을 승리할수 없습니다. 그렇기때문에 우리는 카륜회의에서부터 중국사람들과의 련합전선에 대한 문제를 중요하게 내세웠던것이 아닙니까.

《글쎄 그건 그렇다만 일이 순하게 돼야겠는데 그것이 잘되겠는지 걱정이구나.

어머님께서는 근심스러운 마음을 아드님께 엿보이기가 괴로우신듯 다시 숟갈을 밥사발로 가져가시였다.

《어머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버님께서도 완고한 독립군들을 설복하여 한데 묶어세우시려고 무수히 위태로운 걸음을 하시지 않았습니까. 사람이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나간다면 뚫고나가지 못할 난관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어차피 내가 풀어야 할 문제이고 또 이것을 풀어야만 우리 혁명의 전진이 있을수 있습니다.

어머님께서는 숟갈을 김치보시기에 갖다대신채 잠시 침묵을 지키시더니 이윽고 상을 저쯤 밀어놓으시였다.

《나는 네 앞길을 막자는게 아니다. 철주가 그러는데 회의에서 형이 누가 가는것보다도 자기가 가는것이 제일 위태롭지 않다고 말했다길래 내 혼자 생각에도 그것이 옳은 말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일은 지도자가 맡아나서는것이 옳기도 하거니와 내 생각에도 김일성이 왔다하면 그 사람들도 괄세하지 않을것 같다. 그러나 아무튼지 조심은 해라. 나는 네가 내 아들이 돼서 조심하라는게 아니다. 네가 이 일에서 실수하면 우리 혁명이 위태롭기에 이렇게 마음을 놓지 못하는거다.

《어머니.

김일성동지께서는 새삼스럽게 인자하신 어머님의 얼굴을 눈물이 그렁해서 바라보시였다. 부등깃보다 부드럽고 따사로운 어머님의 사랑만 못지 않게 나라와 겨레의 운명을 함께 걱정하며 사선을 함께 헤쳐가는 위대한 혁명동지로서의 뜨거운 믿음과 사랑이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어주었던것이다.

어머님께서는 심상한 모습으로 잠자코 계시더니 우사령곁에 지대현이가 늘 붙어있다는데 그런자를 조심해야 한다고 한마디 당부하시고는 상을 치우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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