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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서《불멸의 력사》 장편소설
석윤기 (제32회) 제 3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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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상민이는 그날로 허재률이를 묶어서 안도로 떠나가고 안영호도 곧 연길로 나왔다. 처음에 안영호는 얼마간 농막골에서 배겨볼 생각도 했다. 그런데 그날밤으로 폭동군중이 또 쓸어들었다. 이튿날도 폭동의 물결은 찌지 않았을뿐아니라 오히려 더 거세찬 흐름을 이루어 간도천지를 휩쓰는가싶었다. 안영호자신의 목숨도 부지하기 어렵게 되였다. 그는 공산주의자들의 복수의 칼이 어느 어둠속에서 날아올지 모른다는 위협을 시시각각으로 느끼고 큰 마을의 경찰분서나 보위단을 찾아다니며 숨어있다가 마감에는 그 경찰분서나 보위단도 폭동군중에게 짓밟힐 형세라 더는 배길수가 없어 연길로 내뛰고만것이였다. 가또중좌는 그의 보고를 듣더니 허재률을 안도경찰에 넘겨준데 대해서는 별로 시비질을 하지 않았다. 장상민이가 범인을 어디로 끌고간다 해도 결국은 제 손아귀에 들어온다는 타산이였다. 그러나 안영호자신이 폭동을 일으킨 농민들속에 깊이 파고들어 그들의 내부를 와해시킬 공작을 벌릴 대신 몸을 피해다닌데 대해서는 무섭게 욕설을 퍼부었다. 안영호는 자기의 정체가 드러났기때문에 농민들을 만나면 그자리에서 자기를 쳐죽일것이라고 구구하게 변명했으나 가또는 제국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것이 그처럼 아까운가 하고 다궂다못해 마감에는 따귀라도 칠것처럼 덤비였다. 안영호는 울며 겨자먹기로 즉시 폭동지구에 다시 나가겠다는 맹세를 다지고 겨우 3일간의 말미를 얻어 명월구에 와있다는 부모들을 찾아보았다. 안윤재는 부강촌에서 도망치다싶이 하면서도 땅만 내놓고 꼴꼴한 세간붙이들은 다 걷어싣고와서 그것을 밑천삼아 고물상을 벌릴 준비를 하고있었다. 앞으로 세상이 평정되면 다시 부강촌에 돌아갈수도 있겠지만 세월이 계속 이처럼 자반뒤집기를 할 형편이면 오히려 땅을 처분하고 고물상에 힘을 기울이는것이 득책이라고 굵다란 중국수판을 데깍거리며 아들을 그 일에 끌어들이려고 설복하는 아버지를 볼 때 안영호는 구슬픈것을 느꼈다. 아버지의 하나밖에 없는 이 아들은 지금 헌병의 올가미에 걸려 폭동농민들의 쇠스랑과 괭이날이 찍겠다고 기다리고있는곳으로 제발로 찾아갈수밖에 없는 운명의 무거운 멍에를 지고있는데 아버지는 어수선한 시절이 뱉어놓은 넝마와 쇠붙이를 주어모아 돈벌이를 하자고만 하니 대체 그렇게 돈을 벌어서 저승에 지고가겠는가고 웨치고싶었다. 그러나 안영호는 아버지앞에서도 자기의 심정을 솔직하게 말할수 없을뿐아니라 그 생각자체가 아직은 막연한 인상이였고 갈팡질팡하는 상념의 쪼박에 불과하였다. 다만 한가지 자기가 이제는 아무리 발버둥쳐도 벗어던질수 없는 운명의 멍에를 뒤집어썼다는것만은 확고하였으며 그것은 오히려 외면하려 해도 어느쪽에서든지 그의 모든 생각을 압도하고 들었다. 그것은 아마도 최태현이와 섭쓸려다닐 그때부터 전제가 지어졌고 자기가 공산주의자들한테 속았다고 원한을 가진 때에 스스로 그 멍에를 쓴것 같았다. 그러나 그때는 생각만 있으면 그 멍에를 벗어던질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무리 벗어던지고싶어도 도저히 벗어던질수 없게 제손으로 제 어깨우에 든든히 붙들어매고 옭맺어버렸다. 그의 손에는 공산주의자들의 피, 조선민족의 피, 죄없는 중국사람의 피가 묻어있었다. 안영호는 아버지의 치사스러울만큼 검질기고 리기적인 타산에 침뱉고싶었지만 자기 운명의 멍에를 생각할 때 누구의 처신에 대해 가타부타할 처지가 못된다고 생각하고 곰상궂게 이야기를 듣다가 물러나왔다. 다시 폭동이 뒤설레이는 땅을 향하여 가는길에 룡정에 들려 누이동생 부금의 하숙을 찾았다. 부금은 혼자 썰렁한 하숙방에 자리를 하고 누워있었다. 이제는 개학기가 되여 함께 있는 동무도 올라왔지만 그애는 지금 학생운동에 관여하고있어서 하숙에 붙어있는 때가 드물다고 하면서 부금은 쓸쓸하게 웃고 자리를 갰다. 《너 어디 아프냐?》 안영호는 언제 한번 해빛을 본것 같지 않는 누이동생의 창백한 얼굴을 들여다보니 전부터 기침을 자주 하더니 페병에 걸린것이나 아닌가 하는 근심이 들어 다급히 물었다. 《별로 아픈데는 없어요. 그저 온종일 앉아서 이생각저생각 하다나니 머리가 아프고 허리가 아프군요.》 부금은 흐트러진 귀밑머리를 쓰다듬어넘기며 될수록 속을 감추려고 하였다. 《그렇다고 한창나이에 자리를 하고 누워있으면 되겠느냐. 거리에 나가봐라. 이제는 추위도 한물 물러나고 봄기운이 느껴진다. 차츰 사회의 질서도 잡혀간다. 그런데 시대의 첨단을 걸어야 할 고녀생이 이게 뭐야? 거리에 나가 바람도 쏘이고 활동사진구경이라도 다니려무나.》 부금은 일으켜세운 한쪽무릎을 치마폭으로 감싸고앉아 말없이 손톱여물만 썰고있다가 문득 생각난듯이 말했다. 《오빠, 시장하지 않아요? 국수 받아올가요?》 《일없다. 점심은 먹었다. 저녁이야 이제 나가다가 사먹으면 되지.》 《곧 떠나는가요?》 《그래, 오늘로 떠나야 한다. 일이 몹시 급하게 돼서 그런다.》 부금은 멍하니 오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 눈에는 알수 없는 불안과 초조가 깃들어있었다. 《어디루 가세요?》 《우선 농막골로 가보겠다만 그다음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농막골이라면 그 안도경찰에 있는 그 사둔댁에…》 《글쎄 우선은 그렇다고 말할수 있겠지.》 안영호는 긴 이야기를 하고싶지 않아서 적당히 말끝을 얼버무렸다. 부금이도 더 캐여묻지 않았다. 오빠가 속을 터놓고싶어하지 않는다는것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 이야기를 더 들추어서 받아낼 대답이 두려웠다. 안도경찰의 장상민이가 어떤 사람이고 지금 농막골어방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있다는것을 하숙에 있는 동무를 통해 대충은 알고있는 부금이였다. 얼마전에 허재률이가 급한 걸음으로 떠나가던곳이 바로 그곳이고 거기서 지금 벌어지고있는것이 공산주의자들이 지도하는 엄청난 규모의 춘황투쟁이라는것을 생각할 때 오빠가 바로 그 불을 끄기 위하여 뛰여다닌다는것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그때 허재률은 자기같은 녀자가 어떻게 살아나가야 하는가 하는데 대해 진심으로 걱정해주었고 오빠에게도 갱생의 길이 있을수 있다고 진심으로 말했었다. 나날이 옥죄여드는 생활의 압력에 비추어볼 때 그가 한 말은 너무나 추상적이고 각박한 현실과 동떨어진 말같이 생각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자기의 마음을 터놓을만한 동무도 가족도 다 잃다싶이한 부금에게는 그 말이 너무나 소중했다. 그는 룡정시내에 아는 사람도 적지 않고 학교동무들도 많았지만 그들을 피해다니며 허재률이와 헤여지던 해란강기슭을 저물도록 홀로 거닐었다. 그가 돌아올 날이 안타까이 기다려졌다. 그가 말하듯이 자기도 그 어떤 혁명가처럼 자기의 유족한 가정과 용감하게 인연을 끊고 무시무시한 총칼의 숲을 헤치며 혁명을 할수 있는 그런 녀자로 된다는것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온 겨레가 짓밟히고 헐벗은 세상에 자기네 일가만이 호의호식하며 지낸다는 죄의식에서 해방되고싶었다. 저와 같은 동무들이 다 나라의 독립에 대해, 무산자들의 해방에 대해 열변을 토하고 가두시위를 하고 계몽사업을 하는 때 저만이 외진 방구석에서 수틀이나 쥐고 한숨짓는 이 생활이 지긋지긋하였다. 하다못해 다정한 동무들로부터 원쑤취급을 당하고 전염병환자처럼 따돌리우지만 않아도 숨을 쉴것 같았다. 그런 제 마음을 동정하고 출로가 반드시 있을것이라고 확신에 차서 약속해준것은 오직 한사람 허재률이뿐이였다. 부강촌에 인단장사행색으로 나타나서 말만 번지면 목숨이 위태로운 공산주의자라는 말을 자기에게 터놓던 그 솔직하고 사내다운 성격이 밤마다 가슴에 육박해와서 잠을 앗아갔다. 《부금씨, 락망하지 마시오. 우리 혁명은 절대로 그런 인정없는 혁명이 아닙니다. 김일성동지께서 이끄시는 우리 혁명은 인간을 구원하자는 혁명입니다.》 해란강에서 헤여질 때 허재률은 이렇게 말하면서 인간으로서의 량심을 깨끗이 간직하라고 열렬히 당부했다. 그것은 부금에게 있어서 지옥에 떨어진자에게 드리워진 거미줄과 같은것이였다. 비록 가냘프지만 그 줄을 잡고 조심히 또한 꾸준히 올라간다면 참다운 우정과 희망, 밝은 생활이 있는 땅우에 올라설수도 있을것이다. 허재률이- 그는 자기가 인간으로서 갱생할수 있는 유일한 반연일뿐아니라 그가 처녀로서 안타까이 정을 품어온 유일한 사람이기도 하였다. 그는 초조하였지만 허재률의 소식을 은근한 가슴설레임속에서 기다렸다. 그런데 개학기가 되여 시골에 갔던 학우들이 올라왔다. 정란이도 올라와서 부강촌의 그후 소식을 전하였다. 부강촌뿐아니라 푸르허부근의 농민들이 폭동을 일으켜 지주들과 반동들의 집을 습격하는바람에 두 부모가 혼비백산해서 명월구로 도망쳤다는것이며 그 폭동에 기득이, 상범이 같은 보위단원들까지 가담해서 주인없는 집을 들이쳤다는것을 정란이는 마치 고발이나 규탄하는듯한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지옥으로부터 지상으로 아득하게 드리워진 한가닥 가냘픈 거미줄은 폭풍을 만나 금시 끊어질듯이 흔들렸다. 부금은 그날부터 몸져누워버렸다. 《오빠는 부강촌소식 들었어요?》 오래 끈 무거운 침묵끝에 부금이가 물었다. 그도 역시 그 어떤 대답을 듣기 위해서보다 오래간만에 만난 오빠와 이렇게 말 한마디없이 마주앉아있을수 없다는 어떤 의무감때문에 꺼내놓은 화제에 불과하였다. 오빠가 명월구에 가서 부모들을 만나고 온다니 부강촌소식을 들었을건 뻔한것이고 그가운데 다시 외우며 음미해볼 소식이란 단 하나도 있을수 없었다. 《정혁이란 자식이 동네를 쥐락펴락한다더라. 송남칠이가 뭐 농민협회 회장이 되고 그자식의 녀편네가 부녀회장이라나. 기득이, 상범이뿐아니라 그 영택이까지도 그자식들 꽁무니를 따라다닌다더라. 두고보자, 제놈들이 며칠이나 우쭐거리는가… 아저씨가 안도에 돌아가면 우선 부강촌빨갱이들부터 싹 쓸어버리겠다더라.》 부금은 번쩍 고개를 들었다. 오빠의 얼굴에는 살벌한 그림자가 비껴있었다. 그는 중얼거리듯 물었다. 《그 사둔아저씨가 또 안도로 돌아갔어요?》 《돌아갔다. 이번에 우연히 농막골에서 그 인단장사 허재률이를 다시 만나지 않았니. 허재률이가 후에 알고보니 거물이더구나. 아저씨는 허재률이를 잡자마자 중대사건이라고 당장 안도로 호송해갔다. 지금 안도에 김일성계통의 무장대가 욱실욱실한다. 그러니 허재률이를 잡아가면 그들을 잡아내는데 중요한 실머리가 될수 있다는거다.》 안영호는 제 말에 열중해서 부금의 창백한 얼굴에 피기가 완전히 가셔지고 입술이 파랗게 질려서 떨고있다는것을 느끼지 못하였다. 뒤늦게야 누이동생의 돌변한 표정에 주의가 미친 안영호는 놀라서 물었다. 《너 왜 그러니? 어디 아픈게로구나. 응?》 부금은 입술을 파들파들 떨며 자기 이마를 짚어보려는 오빠의 손을 쌀쌀하게 뿌리쳤다. 그리고 변한 낯색과는 달리 매우 침착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자리에 오빠도 있었어요?》 《있지 않구. 처음엔 나도 그 올가미에 허재률이가 걸려들줄은 몰랐지. 이랬거나저랬거나 그 사람은 우리에게는 은인인셈인데 정작 부딪치고보니 좀 안됐다는 생각도 들더구나. 그러나 가만 생각해보니 그사람이 부강촌에서 잡혔을 때 이미 신세갚음을 한셈이 아니냐. 그리고 지금 세상형편이 어디 개인사정을 돌아볼 경황이 있느냐. 그래 나도 함께 손을 쓸수밖에 없었다.》 안영호는 허재률을 장상민이에게 떼운 미련이 아직 없지 않았지만 누이동생과 마주앉고보니 자연히 말투가 변명조로 번지는것을 어찌할수 없었다. 《그렇군요. 오빠는 계산이 밝아졌군요. 사람에게 인정과 은혜를 베풀고 그것을 갚고 하는것도 그렇게 꼬박꼬박 회수를 따져가며 회계를 봐야 하는것이 이 세상일가요?》 《너 무슨 소리를 하니?》 안영호는 누이동생의 말속에 풍기는 날카로운 비난을 느끼고 발끈해서 쏘아붙였다. 《너 정말 호의호식하며 자라다보니 세상 쓰거운 맛을 통 모르는구나. 내가 그전날 공산주의자들때문에 롱락당한것은 이젠 말도 않겠다. 너 우리 집이 농민들에게 습격당한 소식도 못들었니? 그전에는 그렇게 고분고분하던 농민들을 누가 그런 강도같은 무리로 만들었는줄 모르겠니? 이번에 농막골 처이모부네 댁은 더 참혹하게 됐다. 그 폭동을 바로 허재률이가 꾸민거란말이다. 우리는 그자들과 피맺힌 원쑤라는것을 똑똑히 알아야 한다. 너 그 유토피아요 뭐요 하는 공상에서 눈을 떠라. 지금 세상이 어떤지 알기나 하니?》 안영호는 누이동생의 비난에 정도이상으로 세차게 반발하는것이 제몸 어느 구석에 알릴듯말듯 남아있던 인간적인것의 마지막연소라는것을 느끼지 못하고 열을 올려 웨쳤다. 부금의 창백하던 두볼에는 엷게 혈조가 번졌다. 그는 시종 말없이 듣고있었지만 차츰 가빠오르는 숨소리로써 그 이야기에 온 신경을 모으고있다는것을 보여주었다. 오빠의 이야기가 다 끝난 다음에도 부금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안영호도 형체없이 압박해오는 비난을 물리치기 위한 발버둥질처럼 열에 떠서 하던 이야기를 끝내고보니 비록 누이동생앞이지만 쑥스러운 생각이 나서 더 말할 재미도 앉아있을 재미도 없어졌다. 그가 떠날 의향을 표시하였을 때 부금은 비로소 쓸쓸한 어조로 말했다. 《오빠, 제 말이 오빠귀에 들어갈것 같지는 않지만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하겠어요. 오빠의 복수심은 정당하지 못해요. 오빠의 폭행과 그들의 폭행을 한저울에 달지 마세요. 그들은 어쨌든 잃어진 나라를 찾자고 그러는것이지만 오빠는 아무리 정당해도 자신밖에 생각하는것이 없지 않아요? 제 생각에는 오빠가 자기를 위해서 사람을 죽이는것도 서슴지 않을만큼 그렇게 악해졌다는것이 잘 믿어지지 않아요. 어릴 때 그렇게 부드럽던 오빠가 왜 이렇게 됐어요? 재물때문이예요? 아니면 누구의 부추김을 받았어요? 오빠, 저는 아직 어리지만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원쑤로 삼고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겠어요?》 부금의 말은 침착하고 정연하였으나 그의 두눈에서는 굵다란 눈물줄기가 소리도 없이 흘러내리고있었다. 그렇게 눈물이 흐르는데도 부금은 흐느끼지도 않았고 말소리를 떨지도 않았다. 그는 무엇을 결심하고 각오한 사람처럼 단정히 앉아서 말을 맺었다. 《오빠, 나는 오빠에게 하고싶은 말을 다했어요. 다시는 이런 말을 하지 않을거예요. 어쩌면 이것이 오빠가 사람들로부터 이런 말을 듣는 마지막기회일지도 모르지요. 저는 너무 피곤해서 좀 눕겠어요.》 부금은 말을 마치자 한쪽에 개여놓은 이부자리에 머리를 기대고 엎드렸다. 그렇게 엎드려서 우는지도 몰랐다. 《주제넘은 수작 하지 말아!》 안영호는 악을 쓰듯 내뱉었으나 부금이가 이불우에 쓰러지는바람에 더는 어쩌지 못하고 눈을 희번뜩거리며 이구석저구석을 쏘아보았다. 그러나 간소한 녀학생의 하숙방에는 그가 분풀이를 할만한 대상이 아무것도 눈에 뜨이지 않았다. 그는 상처입은 맹수처럼 어설픈 미닫이를 쩡 열어젖히고 간다온다 말도 없이 밀려드는 으스름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오누이는 이처럼 쓸쓸하게 헤여졌다. 이것이 마지막리별이라는것을 부금은 똑똑히 의식하고있었지만 먼길 떠나는 오빠를 내다보지도 않았다. 이튿날 거리에는 5족협화의 리념아래 새로 태여난 만주국의 건국 기념행사로 끓어번졌다. 부랴부랴 찍어낸 새로 만든 국기를 들고 새로 제정한 만주국가를 부르며 경축시위행진이 벌어졌고 공설운동장에서는 기념식전이 있었다. 5족협화라 하지만 이 행사에 참가한것은 일본인들이 태반이고 여기에 일본인이나 거의 같이 행세하고 거의 같은 취급을 받는 약간의 중국사람과 조선사람이 섞여있을뿐이였다. 누런 만주국국기와 일본국기를 손에 든 일본 장사군들과 위생복같은 일본식 앞치마를 두른 그 녀편네들, 홍중소학교의 코흘리개들로 이루어진 가두행진대렬이 번화한 가공서 앞거리를 지나 해란강다리에 이르렀을 때 다리밑에 사람들이 몰려들어 웅성거리고있었다. 《사람 죽었다.》 《자살이다-》 하는 소리가 가두행진대렬에까지 미쳐와서 수기를 흔들며 억지로 악청을 짜내던 노래소리는 저절로 숙어들고말았다. 《이건 뭐야, 재수없게. 자 주의를 딴데 팔지 말고- 씩씩하게 노래합시다.》 소학교훈도가 악에 받쳐 대렬 앞뒤를 오가며 한편으로는 만주국의 탄생과 같은 크나큰 경사에 찬물을 끼얹는 다리밑의 군중들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한편으로는 이 역시 만주국의 탄생보다는 그 무슨 자살자에 대해 더 관심을 가지는 미래의 만주국의 주인이 될 자기의 철부지제자들에게 역증을 터뜨리면서 만주국 국가를 선창하였다. 《천지에 새 만주가 있네, 새 만주가 있네… 자 하나 둘, 셋-》 다리우로 경축행렬이 지나가건말건 다리밑에서는 그냥 자살자를 두고 웅성거렸다. 자살자라고 하지만 강가에는 시체도 없었다. 강에는 아직 얼음이 두텁게 얼어붙어있었다. 다만 아낙네들이 빨래를 하거나 가까운데서 허드레물을 길어쓰기 위하여 꺼놓은 꽤 큰 얼음구뎅이가 입을 벌리고있었다. 얼음구뎅이속에서는 검게 보이는 물이 소용돌며 흘러가고있었다. 강기슭에 놓인 넓다란 빨래돌우에 녀학생 운동화 한컬레가 여기서 벌어진 사태를 말해주고있을뿐이였다. 그 신의 임자가 물에 빠져죽었다는것을 확정하는것은 제발 사람 좀 건져달라고 발을 동동 구르는 녀학생의 말이였다. 그의 손에는 그 신의 임자가 남기고갔다는 유서가 쥐여져있었다. 그러나 시신을 건질 방법은 없었다. 두텁게 얼어붙은 얼음밑으로 들어갔으니 해동이 되여 얼음이 풀릴 4월말이나 되기전에는 어쩔수 없는데 얼음밑이라 그때쯤이면 시신이 어디까지 흘러갈지 알수 없다는것이였다. 녀학생은 마침내 강가에 주저앉으며 《부금아-》 하고 울음섞인 소리로 불렀다. 그는 정란이였다. 새벽에 일어나니 머리맡에 옷고름매듯이 접은 편지 한장이 놓여있었다. 간밤에 괴뢰만주국의 창건을 반대하는 삐라를 붙이느라 늦도록 거리를 누벼다니다가 새벽에야 돌아와서 깜빡 한잠이 들었던 그는 이 편지를 가져온 사람이 첫새벽에 자기 방에 왔었다는것을 깨달았다. 편지를 펼쳐보니 부금이의 편지였다. 그는 놀라서 거리로 뛰쳐나왔다. 편지가운데 해란강이야기도 있어서 별 깊은 생각없이 강가로 달려나와 기슭을 한참 더듬어올라갔는데 어렵지 않게 부금이가 벗어놓은 신을 발견하였던것이다. 부금은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다정한 내 동무 정란아. 나는 너의 깔끔한 눈길을 생각할 때 이런 편지를 쓰고싶지 않았다. 나를 바라보는 너의 눈은 순결하고 그 눈길앞에 선 내 몰골은 너무나 어지럽구나. 어수선하고 흉한 내 마음속을 너에게도 감추고싶었다. 나는 소리없이 이 세상을 떠나 한시빨리 망각의 심연속에 깊이깊이 가라앉고싶었다. 그러나 열아홉해동안 고우나 미우나 나를 안아키워준 이 세상에서 내가 할수 있는 마지막 의무는 다해야 하겠기에 이 편지를 쓴다. 허재률씨가 체포되여 안도경찰에 끌려갔다. 그는 김일성선생님의 파견을 받고 농막골에 나가 활동하다가 자기 동지들을 구하려고 스스로 포승을 지고 끌려갔단다. 그이를 체포한것은 나의 오빠와 오빠의 처이모부인 장상민이라는 사람이다. 오빠의 말을 들어보면 그이를 연줄로 삼아 김일성선생님을 해치자는것인만큼 인차 처형하지는 않겠지만 어차피 그들의 수중에서 잘못될것은 틀림없는듯하다. 오빠의 뒤에는 일본헌병대와 그 무슨 정탐기관같은것이 있는듯한데 그에 대해서는 나도 짐작할뿐이다. 나는 너희들의 힘을 믿는다. 이 사실을 알기만 하면 어떻게 하든지 그이를 구원할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만일 후날 그이가 구원되여 네가 만날 기회가 있거든 피줄과 세월을 잘못타고난 불행한 한 처녀가 해란강가에서 열렬하게 당부하던 그이의 말을 믿고 마지막날까지 기다렸다는것을 전해주렴. 허재률씨는 김일성선생님께서 이끄시는 혁명이 결코 인정없는 혁명이 아니며 나같은 녀자한테도 갈길을 열어줄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기가 돌아오면 그에 대한 확정적인 대답을 주겠다고 약속했었다. 그이의 말은 내 희망의 전부였다. 정란아, 이것은 열아홉살처녀인 내가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간직한 아름다운 꿈이였다. 그이가 바로 내 오빠의 손에 의해 체포되여 죽음이 기다리는 무시무시한 철창으로 끌려갔다는것을 알았을 때 그리고 그 체포사건의 배경에 내 오빠의 끔찍한 형상이 그려질 때 나는 비로소 오빠라는 사람과 내가 한피줄에 련결된 오누이라는 참혹한 현실에 눈떴구나. 내가 이 세상에 살아나가자면 나도 오빠와 같은 인간으로 될수밖에 없다는 숙명을 느낄 때, 내가 원쑤로 치부해야 할 사람들이 너와 같은, 너의 오빠와 같은 그리고 허재률씨와 같은 사람이며 궁극에 가서는 나에게 공산주의자란 어떤 사람인가를 인식시켜준 김일성선생님과 같은 위대한분이라는것을 의식했을 때 나는 소리없이 이 세상을 떠나야 한다는 내 량심의 목소리를 들었다. 나는 재물은 넉넉하게 타고났지만 정신의 극빈자로 살아온 불행한 아이라 혁명가라고 본것이 너와 너의 오빠까지 합하여 도무지 네사람밖에 안된다. 그러나 그 네사람이 내가 이 세상에서 본 진실한 사람의 전부였다. 인간의 아름다운 마음과 뜨거운 사랑을 안타까이 갈구하던 나에게는 나의 오빠, 나의 부모까지도 합하여 이 세상 모든 사람보다도 그 네사람이 더 귀중한 사람들이였다. 그래서 나는 죽는다. 나를 찾지 말아다오. 누구에게 알리지도 말아다오. 죽은 다음에라도 내 시체를 끌어내놓고 세상사람들이 이러쿵저러쿵 떠들지 못하게 막아다오. 이것이 내가 이 세상에 바라는 모든것이다. 나는 비록 네 눈길을 두려워했지만 너의 순결한 마음과 어린시절의 우리 우정을 믿는다.
1932. 3. 1 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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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에 접어들면서 가끔 서풍이 불기 시작하더니 월말에 가서는 완연 바람새가 달라졌다. 메마른 서북풍뒤로 축축한 마파람이 불어와 푸르딩딩한 하늘과 꽛꽛하게 얼어붙은 대지를 부드러운 손길로 어루만졌다. 한낮이면 시꺼멓게 얼어붙은 두엄무지며 길가의 달구지바퀴자리에 물기가 번지르르해지고 겨우내 모진 칼바람에 뜯기다 남은 곰삭은 처마밑에 주렁주렁 매달린 고드름끝에서 진액같은 락수물이 뚝뚝 떨어졌다. 봄의 서기가 피여나는 땅, 만물이 개화를 향하여 미움도는 대지에 폭동의 큰물이 휩쓸었다. 인간세상의 동토대에도 봄이 오는것이다. 장강의 얼음이 갈라지고 심산의 눈이 녹아내리듯, 땅속깊이 박혀있던 성에가시가 어쩔수없이 서슬을 꺾고 대지를 휩쓰는 봄시위에 떠밀려가듯 춘황투쟁의 거창한 소용돌이는 수천년 계급사회의 칼바람에 얼어터지고 메말랐던 사람들의 가슴에 투쟁의 새움을 틔우며 온 간도땅과 두만강류역을 휩쓸었다. 이 위대한 봄시위의 뒤로 자연의 새움보다먼저 인간사회의 새움, 무장한 인민들이 나타났다. 혁명의 위대한 령도자 김일성동지의 통일적인 지도밑에 그간 공청과 반제청년동맹의 핵심들을 골간으로 추수, 춘황 투쟁을 통하여 단련되고 검열된 적위대원, 로동자규찰대원, 소년선봉대원들로써 무장대오를 꾸리는 한편 무기를 탈취하기 위한 과감한 투쟁을 벌려오던 각지의 혁명조직들에서는 김일성동지의 지시에 따라 일제히 비밀무장대를 소규모의 유격대로 편성하였다. 무장한 유격대오가 탄생하자 인민들의 혁명적기세는 하늘을 찌를듯하였고 원쑤들은 벌벌 떨었다. 한편 일제는 3월 1일에 괴뢰만주국을 조작하였으나 활화산천럼 불타오르는 인민들의 반일진출을 막기가 힘들어서 헐떡거렸다. 이다가끼대좌의 음모에 의해 일시 괴뢰만주국의 군정부대신겸 흑룡강성장자리에 들어앉았던 마점산은 그때 당시에 벌써 후꾸다 등이 불안한 예감을 느꼈던것처럼 한달도 못되여 가족까지 데리고 흑하로 달아나서 견결한 반일성명을 발표하였다. 일제는 9.18사변초기에 끌어들인 무력만으로 광활한 대륙을 타고앉기가 너무 베차서 추후로 근 2개사단 5만명이상의 무력을 새로 본국에서 끌어들였으나 1932년에 들어서면서 쌍성, 할빈으로 해서 북안으로 주하, 일만파로 해서 목단강으로, 의란, 가목사로 해서 흑룡강오지로 광활한 땅에 강점무력을 들이밀고보니 동만일대에서 료원의 불길처럼 타번지는 폭동의 불을 끌 힘이 관동군에는 없었다. 급해맞은 일제군벌두목들은 어쩌는수가 없어 가까이 있는 조선강점군을 폭동지구에 들이밀기로 작정하였다. 4월초에 들어서면서 각 신문들은 함흥, 회령의 부대들로 조직된 간도파견대의 출동정형에 대해 호외를 내면서 대대적으로 보도하였다. 내외의 여론은 끓어번졌다. 정세는 각지에 태여난 소규모의 유격대오를 하루빨리 장성발전시켜 본격적인 전투능력을 갖춘 유격대오로 확대강화할것을 절박하게 요구하였다. 이러한 력사의 필연적요구와 인민들의 절절한 념원을 온몸으로 감득하시는 김일성동지께서는 반일인민유격대의 창건준비를 위하여 실로 전례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시였다. 부강촌공작을 마치시고 소사하에 돌아오신 그때부터 근 한달동안을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시였다. 각지의 폭동과 무장대오준비, 무기탈취투쟁을 지도하시는 한편 안도에서 선참으로 창건하게 될 반일인민유격대의 성원들을 선발하시고 그들을 정치사상적으로 무장시킬뿐아니라 군사적으로 준비시켜야 하였다. 무기를 갖추어야 하였으며 그들에게 군복을 해입히고 식량을 대야 하였다. 그것을 위하여 차광수도 뛰고 계영춘이도 뛰고 박훈이도 뛰고 진한정이도 뛰였다. 무장대오의 지휘성원들뿐아니라 김정룡을 비롯한 안도구당의 간부들도 당장 태여날 유격대의 후방보장을 위하여 오금에 불이 일 지경으로 뛰여다녔다. 그런중에도 누구보다 수고가 많으신분은 강반석어머님이시였다. 말이 누구는 군복을 맡고 누구는 숙소를 준비하고 어느 조직은 식량을 해결하고 하는 식으로 분공이 되고 활동도 하였지만 결국은 그 모든것이 강반석어머님의 지도를 거치게 되고 태반은 직접 어머님자신의 손을 거쳐서 해결되였다. 그런데 어머님의 병세는 봄이 다가옴에 따라 심상치 않은 징조를 보이기 시작하였다. 모든 병이 환절기에 악화되게 마련이라지만 어머님의 병세는 그런 경우로만 보기 어려운 점이 너무나 많았다. 하기는 병이 아니라 한들 어머님께서 겪으시는 그 과중한 일거리를 맡아안는다면 비록 몸이 무쇠라 한들 견디여낼것인가. 김일성동지께서는 어머님의 이러한 병세를 뻔히 보시고 느끼시면서도 그것을 말릴 방도가 없으시였다. 말씀을 드려도 들으려 하시지 않는것은 물론이지만 실제상 어머님의 힘을 빌리지 않고는 새로 태여나는 우리 군대를 먹이고 입히고 재울 방도가 없었다. 오늘도 김일성동지께서는 무주툰에 나가시여 안도의 공청원들을 비롯하여 새로 선발된 무장성원들의 훈련과 학습을 지도하시다가 밤이 늦어서 오래간만에 토기점골댁에 들리시였다. 어머님께서 계시는 집이 지척에 있었고 이처럼 어머님곁에 오래 머무르시기도 이번이 처음이였지만 일이 너무나 겹쌓여서 이번에도 근 열흘만에 어머님을 뵈옵게 되였다. 그래서 어스름달빛아래 희미하게 드러나는 움막같은 집이 저만치 바라보이자 그이의 걸음걸이는 저절로 빨라졌다. 불그스레 불빛이 내비치는 엉성한 지게문에는 등잔아래 단정히 앉으신 어머님의 그림자가 어려있었다. 초조하던 김일성동지의 가슴은 갑자기 뭉클해지고 눈시울이 따끈하였다. 토방에 걸터앉으시여 신발끈을 푸시는 그이의 손은 가볍게 떨리였다. 한시바삐 유격대창건을 선포하고 전투를 벌리자, 원쑤들을 무력으로 치면 평생에 맺힌 어머님의 한도 풀어드릴수 있고 밤마다 병이 중하신 몸으로 군복을 지어내시는 저 수고도 덜어드릴수 있을것이다. 《아무래도 내 생각에는 최만득동무가 너보다는 잘 싸울것 같구나. 옷감이야 좀더 들면 뭐라니. 별걸 다 트집잡지.》 어머님의 조용한 목소리가 울리여왔다. 누구에게 하시는 말씀일가? 새삼스럽게 토방을 살펴보시니 허름한 짚세기 한컬레가 놓여있을뿐이다. 오늘도 동생은 공청사업때문에 아직 들어오지 않은 모양이다. 《어머님은 몰라서 그래요. 밥은 또 얼마나 먹는지 알아요. 이건 공사판이 아니라 군대란말이예요. 그런데도 어머님은 늘쌍 최만득이, 최만득이하면서 내건 뒤전으로 밀어놓지요.》 《이녀석아, 이젠 그만 재재거려라. 너 빨리 돌아가지 않았다가 또 욕먹지 않겠니? 요전에 박훈동무가 널 찾으러 왔다가 이번에 붙들면 아예 오가자로 내똘구고말겠는데 그때 나더러 절대로 말릴 생각 말라고 하더라.》 《헹, 제가 날 유격대에 받았나.》 지게문을 아무리 살펴봐야 범살무늬창살에는 어머님의 그림자만 어리여있을뿐 헹헹 코방귀를 뀌며 당돌한 소리만 탕탕치는 강영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형님이 오늘 뭐랬는지 알아요? 강영진동무는 총을 많이 다루어봐서 역시 다릅니다, 이것은 사격연습을 꾸준히 해서 자기 무기에 정통해야 한다는것을 말해줍니다, 이렇게 박훈대장이랑 차광수선생이랑 다 있는 자리에서 말씀했단말이예요. 그러니까 최만득아저씨가 얼마나 부러워하는지… 사실 지금 총이 다 돌아가지 않기때문에 속이 새까맸거던요.》 《이녀석아,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어?》 하고 김일성동지께서는 온화한 어조로 말씀하시며 지게문을 여시였다. 배를 깔고 엎디여 턱을 두손바닥우에 받쳐들고 어머님께서 지으시는 자기 군복이 완성돼가는것을 침을 삼키며 지켜보고있던 강영진은 화닥닥 놀라서 곧장 일어섰다. 천정이 낮은 좁은 방안에 꼿꼿이 서고보니 이제는 오가자에서 처음 만나던 때의 애숭이모습은 완전히 사라지고 무장성원으로 뽑혔다고 당당히 자랑할만한 어엿한 청년으로 자라났다. 하기는 오가자의 그 가을부터 벌써 해수로 두해가 지나갔다. 강영진의 성장은 어떤 의미에서는 자막대기같은것인지도 모른다. 어머님께서는 바느질감을 한옆으로 밀어놓으시고 오래간만에 들리시는 아드님을 따뜻한 미소로써 맞이하시였다. 그리고 잔뜩 주눅이 들어서 두손을 엇잡아 꼬아잡고 삐둘서하게 서있는 강영진을 돌아보시며 말씀하시였다. 《마침 잘 왔다. 내 저녀석때문에 군대에 찾아가자던 참이다.》 《왜 그러십니까?》 김일성동지께서는 어머님의 손을 잡아보시며 물으시였다. 《저런 녀석은 박훈동무 말대로 군대에서 내보내든지 해야지 글쎄 제 군복보다 최만득동무 군복을 먼저 지었다고 트집이 아니냐. 최만득동무는 부녀회동무들이 여럿이 모여서 한꺼번에 지으니 빨리 되지만 제것이야 내가 이일저일 하면서 짓자니 좀 떠진건데 그걸 가지고 생트집이구나, 제가 싸움을 하면 최만득동무보다 낫다느니 모두 최만득이 최만득이 하면서 자기는 돌아보지 않는다느니… 별 못된 소리를 다하지 않겠니. 그러나저러나 무슨 군대가 이렇게 규률이 없단말이냐. 밤마다 빠져나와서 나를 애먹이는구나.》 어머님께서 눈을 껌뻑껌뻑해보이시며 일부러 엄한 목소리로 송사를 하시니 김일성동지께서는 딱하다는 표정을 지으시며 말씀하시였다. 《참 야단났습니다. 지금 정식으로 유격대창건을 선포하자고 해도 저런 자유주의분자들때문에 주저하고있지 않습니까. 비밀무장대일 때는 몰라도 정식 유격대창건을 선포하면 어느모로 보나 손색이 없는 그쯘한 군대가 돼야겠는데 저렇게 조금만 칭찬해주면 우쭐해서 동무들을 깔보는자들이 있으니 지금 토론이 많습니다.》 김일성동지의 말씀속에는 아무리 엄하게 말씀하셔도 강영진에 대한 특별한 사랑이 감출수 없이 드러나있었다. 사실 강영진은 지금 선발된 무장성원들중에서도 그중 나이 어리지만 대렬동작에서나 사격에서나 리론학습에서나 단연 앞자리에 섰다. 거기에 약바르고 날래기가 이만저만이 아니여서 드센 박훈의 손아귀에서도 미꾸라지처럼 빠져달아나군하였다. 오늘만 해도 무주툰의 훈련장에서 토기점골까지 근 10여리나 되는데 어느새 저녁밥을 먹고 빠져나와서 이렇게 어머님 턱밑에 기여들어 응석을 부리는지 알수 없었다. 그이께서 그들과 헤여져서 오시다가 잠간 구당비서 김정룡의 집에서 지체하신것밖에 없는데 조화라 할밖에 없었다. 그렇기때문에 매번 그이께서는 강영진을 꾸중하시면서도 그에게 정이 쏠리시는것이였다. 아들들을 다 혁명사업에 몸바치도록 하시고 홀로 힘겹고 쓸쓸한 생활을 해나가시는 어머님의 아픈 마음을 감싸주는 말동무가 되여주는것이 고맙게도 생각되시였다. 어머님께서는 누구와도 이처럼 다정하고 허물없게 대하시지 않았다. 강영진은 버릇이 없을 정도로 어머님께 칭칭 감겨돌아가는가 하면 떼를 쓰고 응석을 부려서 때로는 바느질을 하시던 자막대기로 종아리를 치기도 하시였다. 그러면 영진이는 펄떡펄떡 뛰며 엄살을 부려서 마침내 어머님으로 하여금 웃으시지 않을수 없게 만들어놓군하였다. 지금도 잔뜩 어깨를 살구고 꺼부정하게 서서 힐끔힐끔 눈치를 살피는 꼴이 장히 우습강스러웠으나 어머님께서도 그이께서도 일부러 못본척하시였다. 《그새 몸은 어떻습니까?》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시 바느질감을 집어드시는 어머님의 신색을 조심스레 살펴보시며 말씀하시였다. 《요즘은 퍽 몸이 가볍다. 그래 일은 잘되여가느냐?》 어머님께서는 자신의 건강에 대한 이야기를 오래 끌고싶지 않으신듯 인차 다른 화제를 꺼내시였다. 《이제는 준비가 다 되여갑니다. 연길, 왕청쪽에서도 동무들이 모여드는데 대개 무장들을 가지고 찾아옵니다. 걱정은 왜놈들이 지금 간도땅에 또 새 무력을 들이밀자고 하는데 반일부대에서 이걸 막을 생각보다 우리를 더 경계하는것입니다. 우리 동무들이 무장을 메고 거리에 나서면 반일부대와 충돌이 일어날것 같습니다.》 《뭐니뭐니 해도 그게 야단이구나. 그 사람들의 마음을 돌려세울 방도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이렇게 말씀하시던 어머님께서는 그때까지도 일어선채 쭈밋거리는 강영진을 돌아보시고 웃음을 지으시였다. 《원, 못나기도 했다. 구들 꺼질가봐 그렇게 서있느냐. 어서 앉아라.》 《어머님, 전 돌아가겠어요.》 강영진은 좋은 기회라는듯이 꾸뻑 절을 하고 지게문을 열었다. 《아니 왜 그래? 나하고 같이 가자.》 《저…》 강영진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했다. 《오늘은 댁에서 주무십시오. 오늘도 철주동무는 송강거리에 나가서 돌아올것 같지 않다는데…》 《원 녀석두 별걱정 다하는구나. 갈테면 어서 가라.》 어머님께서는 영진이가 또 자기의 병세에 대해 무슨 말을 꺼낼것 같아 황황히 그의 말을 밀막아버리시였다. 《그럼 래일밤에 또 오겠어요. 그때는 꼭… 알지요, 어머님?》 강영진은 지게문밖에 문고리를 잡고 서서 한번 싱긋 웃어보이고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어머님, 신색이 좋지 않군요. 너무 무리하시는게 아닙니까?》 김일성동지께서는 얼추 군복꼴이 다 되여가는 바느질감을 매만져보시며 시름겹게 물으시였다. 《또 그 소리로구나. 내 몸은 내가 안다. 걱정 말아라. 지금 온 조선사람들이 그렇게 바라던 우리 군대가 태여난다는데 누군들 바쁘지 않겠니. 이런 일때문에 바쁘다면 그게야 락이고 약이지 이이상 더 신나는 일이 어데 있겠니. 일이 없다. 사람은 제가 하고싶은 일을 하면 힘든줄을 모르는 법이다. 내 걱정은 말고 지금 돼가는 형편이나 이야기해라. 그래 왜놈들의 행패가 몹시 심하냐?》 《그럴것 같습니다. 아직은 조선에 있는 군대를 간도파견대라는 명색으로 들이보낸다는 말들만 있는데 며칠후이면 무슨 소식이 있을것 같습니다. 그런데…》 김일성동지께서는 잠시 말씀을 중단하시고 어머님의 기색을 다시 살피시였다. 《왜 그러느냐? 무슨 일이 있었느냐?》 《별로 새로운 일은 아닙니다만 오동진선생이 또 평양 복심법원으로 끌려갔군요.》 《그래? 여태 신의주감옥에 계신다더니…》 강반석어머님께서는 바느질감을 한옆으로 밀어놓으시고 아드님의 얼굴을 살피시였다. 정의부 군사위원장으로서 6년전에 일제의 더러운 음모에 걸려 체포된 오동진은 일찌기 김형직선생님의 지도를 받들고 민족주의운동대렬의 통일과 공산주의운동에로의 방향전환을 모색해오던 열렬한 투사였고 신의있는 인간이였으며 강반석어머님일가와는 특별한 친교가 있는 사람이였다. 그가 체포되기직전에 김형직선생님의 부고를 받고 먼길을 달려와서 하늘이 무너지는것 같은 곡소리를 터치던 생각을 김일성동지께서도 어머님께서도 잊으실수 없었다. 《3월초에 신의주법원에서 재판을 했다는데 신문을 보니 오동진선생을 재판한다는걸 알고 아마 수천명군중이 재판소에 몰려가서 압력을 가한 모양입니다. 그런데다 오동진선생이 재판을 받는것을 단연 거절하고 재판관자리에 뛰여올라가서 그놈들을 호령했다지 않습니까. 신문에 심리를 단연 거부하고 노래까지 불렀다고 쓴걸 보면 오선생 성미에 아마 대단했을것입니다. 이렇게 되자 재판소를 꽉 메운 군중이 들고일어날 기미를 보인것 같습니다. 왜놈들은 부랴부랴 재판을 중지하고 저희끼리 우물우물했다고 하더니 지난 22일날 평양에 호송되였다는 보도가 났군요. 역두에서 만세를 고창했으며 여윈 얼굴에 미소를 짓고 친지들의 안부를 물었다고 기사는 짤막한데 용수를 쓰고 내리는 큼직한 사진을 받쳐실었습니다.》 어머님께서는 아드님의 입모습을 지켜보시다가 더는 이어질 이야기가 없다는것을 느끼시자 습관적으로 반짇고리를 끌어당기시였다. 《너의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도 독립군중에서는 그중 믿던 사람인데… 그놈들이 그예 사람을 못쓰게 만들 차비가 아니냐?》 《그렇겠지요. 지난날 그자들과 싸운것은 묻지 않는다 하더라도 지금 재판정에서까지 그놈들을 호령하는 사람을 무엇때문에 살려두겠습니까, 재판이란 그저 눈가림이지요.》 침묵이 흘렀다. 나누어진 이야기는 오동진의 소식이였지만 그것이 두분에게 불러일으킨 충격은 컸다. 지금도 서대문감옥에 계시는 삼촌이며 이미 옥중고혼이 된 김혁, 최효열의 얼굴이 떠오르시였다. 바깥에서 별안간 소란스러운 발자국소리가 들려왔다. 무거운 생각에 잠겨계시던 두분께서는 얼굴을 들고 눈길을 마주치시였다. 이제는 퍼그나 밤이 깊어서 여간한 일이 아니고는 외따로 떨어진 이곳까지 찾아올 사람이 없었다. 무슨 급한 일이 제기됐다는것을 느끼신 김일성동지께서 서둘러 지게문을 열어젖히고 바깥을 내다보시였다. 초생달은 이미 져서 엉성한 갈대가 밤바람에 설레이는것이 어렴풋이 느껴졌다. 급하게 옮겨놓이던 발걸음소리는 김정룡이네 집쪽으로 꺾어지는 길모퉁이에서 멎어서고 개울가어방에서 새로운 발자국소리가 들려왔다. 《누구냐? 철주 아니냐?》 김일성동지께서는 어둠속에 어렴풋이 드러나는 모습을 통하여 벌써 길우에 서있는것이 송강거리에 나갔다는 큰 동생임을 짐작하시고 이렇게 물으시였다. 《아, 형님, 마침 계셨군요. 큰일났어요.》 철주는 개울쪽을 한번 돌아보더니 급히 달려와서 토방에서 내려서시는 형님의 손을 덥석 잡았다. 《웬일이냐? 저기 오는것은 누구냐?》 《하연성동지예요.》 《뭐 하연성이?》 김일성동지께서는 깜짝 놀라 동생의 다음말을 기다리시다가 급한 발걸음소리가 다가오자 맞받아 달려가시였다. 《하연성동무,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왔소?》 그이께서는 하연성이 나타난것이 뜻밖이긴 하셨지만 무엇보다도 반가와서 손을 그러잡고 흔드시였다. 《사령관동지, 면목이 없습니다.》 하연성은 바른손에 쥐고있던 총을 옮겨잡고 그이의 손을 마주잡아흔들며 목메여 말했다. 그러더니 겨우 침착성을 회복하고 안부를 물었다. 《그사이 건강하셨습니까?》 《나는 아무 일 없소. 그런데 왜 기상이 이렇소? 총은 어디서 났소?》 《두만강나루에서 한자루 빼앗았습니다. 어머님께서는 계십니까?》 하연성이 이렇게 말하며 열린채로 있는 지게문쪽을 돌아보니 어머님께서는 상방에 한손을 짚으시고 어두운 바깥을 내다보고계시였다. 《게 누가 왔느냐?》 《예, 온성 하연성이가 왔습니다.》 하고 하연성은 한달음으로 달려가 총을 철주에게 넘겨주고 토방에 넙적 꿇어앉았다. 《이게 무슨짓인가? 일어서게, 혁명한다는 사람도 이렇게 인사하나? 그래 댁네는 잘 있고 정남이도 무탈한가?》 어머님께서는 하연성의 손을 잡아일으키시고 어깨를 어루만지며 집안소식을 물으시였다. 《예, 모두 잘들 지냅니다.》 하연성은 좀 갈렸지만 거침없는 목소리로 말하고 곧 김일성동지쪽으로 돌아섰다. 《우선 안으로 들어갑시다. 저녁은 했소?》 김일성동지께서는 불안한 예감을 느끼시였으나 희미한 불빛속에서도 하연성의 기색이 말이 아니였고 또 몹시 긴장된것이 알려졌기때문에 일부러 눙치시며 그의 손을 잡고 방으로 끄시였다. 《밥은 진한정동무한테서 먹고왔습니다. 사실은 오늘 아침절에 송강에 들어섰는데 뭘 좀 알아보느라고 시간을 지체했습니다. 마침 거리에서 철주를 만났기에 쉽게 찾아왔지 그렇지 않았으면 래일에나 올번했습니다. 어머님, 그사이 이사를 두번이나 하셨다지요? 얼마나 고생하셨겠습니까?》 하연성은 어머님의 축가신 모습을 뵈오니 왜 그런지 슬픈 생각이 밀려와서 코소리를 내며 고개를 숙였다. 《고생이야 내가 무슨 고생인가. 자네들 고생하는걸 보니 나한테 힘이 없는것이 한일세. 그건 그렇고 자네가 밤중에 달려든것을 보니 필시 무슨 중한 일이 생긴듯한데 그 일부터 먼저 의논하게.》 강반석어머님께서는 곁에 와 앉는 철주의 긴장된 낯빛과 어쩐지 겉늙은듯한 하연성의 얼굴을 번갈아 살펴보며 말씀하시였다. 김일성동지께서도 따로 말씀은 안하시고 하연성을 지켜보시였다. 하연성은 잠시 고개를 숙이고있더니 무겁게 입을 벌렸다. 《면목이 없습니다. 제가 각성이 없고 마음이 굳건치 못하여 큰 일을 저질렀습니다. 허재률동무가 체포되였습니다.》 《뭐요? 언제 그렇게 됐소? 좀 차근차근히 말하시오.》 김일성동지께서는 격하신 음성으로 급히 뒤를 다그치시였다. 하연성은 이번에도 잠시 고개를 숙이고있다가 힘에 겨운 짐을 지고 고개마루를 오르듯 숨을 씩씩거리며 더듬더듬 허재률의 체포경위를 말했다. 그는 비교적 앞뒤정황과 허재률의 의도가 충분히 짐작되게 구체적으로 말했으나 그 모든 사건의 전제로 된 자기 안해와 아이에 대한 이야기는 싹 빼버리고 농막골에서 벌어졌던 춘황투쟁에 대해서만 말씀드렸다. 그것이 여느때같으면 아무래도 이야기의 사개가 잘 맞지 않는 눈치를 어떻게나 챌수 있었겠지만 김일성동지께서도 강반석어머님께서도 지금은 허재률의 체포문제에 관심이 집중되여계셔서 다른 곁가지이야기들에 대해서는 다소 의문이 떠올라도 묵살하시고 뒤를 재촉하시였다. 《그래서 그 장상민이가 안도로 끌어왔다는것은 확실하오?》 《확실합니다. 오중화동무는 사건이 있은 그날로 조직을 발동하여 구체적으로 알아봤습니다. 저와 오중흡동무도 두놈중 한놈이라도 잡자고 그냥 뒤를 밟았습니다. 명월구에서 장상민이가 사람을 묶어가지고 가는 마차를 봤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럼 지금 안도경찰에 와있단말이요?》 《그런데 안도경찰에 없습니다.》 《뭐요? 그럼 어떻게 됐다는거요?》 김일성동지께서는 놀라서 물으시였다. 강반석어머님께서도 불안스러운 표정으로 이야기를 듣고계시다가 어떻게 된 일이냐는듯이 작은아드님쪽으로 눈길을 돌리시였다. 《오늘 진한정동무가 유력한 줄을 놓아서 서장을 만나보고 샅샅이 경찰서안을 뒤져봤는데 지금은 뭐가 뭔지 전혀 알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상한것은 푸르하근방에서 신사복을 입은자의 시체가 하나 나졌는데 암만해도 그게 안영호의 처이모부된다는 장상민이같다는 부강촌의 통보가 그 며칠전에 왔다는것입니다. 얼굴은 얻어맞아서 똑똑치 않고 증명서도 없지만 권총혁띠를 띠고있고 또 부강촌에는 그를 아는 사람이 적지 않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더는 질문을 하지 않으시고 하연성의 이야기를 듣기만 하시였다. 하연성을 응시하시는 그이의 눈길에는 복잡하게 뒤엉킨 이야기의 진실을 꿰뚫어보시며 날카로운 분석과 추리, 해부와 종합으로 천리밖에서 벌어진 사건의 진상을 드러내는듯한 섬광이 번쩍거리였다. 《그 장상민이가 허재률동무를 마차에 태워왔다는데 마차채 없어졌단말입니까?》 김일성동지께서는 오래간만에 짧게 질문하시였다. 《마차는 있습니다. 시체가 나진 골짜기에서 발견된 모양입니다.》 《장상민이가 마차를 타고왔다면 그건 문청룡이가 모는 마차겠는데 그 마부도 없어졌습니까?》 《글쎄요, 문청룡인지 뭔지 이름은 모르겠는데 아마 그런것 같습니다. 마부가 있다면 경찰서에서도 떠들지 않겠습니까?》 김일성동지께서는 그 말에 대답하지 않으시고 어머님께 말씀하시였다. 《제가 언젠가 말씀드린 그자리를 잘못타고났다고 하는 그 사람입니다.》 《그럼 그 사람도 허재률이가 잡히는걸 다 봤겠구만?》 강반석어머님께서는 벌써 아드님께서 생각을 어느쪽으로 기울인다는것을 짐작하시고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하동무.》 김일성동지께서는 잠시 생각에 잠겨계시더니 조용히 부르시였다. 《예?》 《이제 동무가 말하기는 그 고개마루에 동무들이 셋이 갔다고 했지요?》 《그렇습니다.》 《거기에 그 마부도 있었습니까?》 《예, 그자리에 장상민의 하인같은 청년이 한사람 있기는 있었습니다.》 하연성은 뭔가 불안을 느끼며 서둘러 대답하였다. 《동무가 혹시 나한테 다 말하지 않은 무슨 사연이 있지 않습니까?》 《…》 하연성은 깊이 머리를 숙일뿐 대답을 못하였다. 그러자 강반석어머님과 철주동생의 얼굴에도 몹시 놀라는 빛이 떠올랐다. 《좋습니다.》 잠간이지만 참기 어려운 침묵끝에 김일성동지께서는 무겁게 말씀하시였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이 이상 더 묻지 않겠습니다. 하동무는 오늘저녁 여기서 쉬시오. 나는 이제 나가봐야 하겠습니다.》 《아니 이 밤중에 또 어디로?》 하연성이 놀라서 한쪽 무릎을 일으켜세우고 어머님과 철주동생도 당황하여 그이를 바라보았다. 《내가 오래간만에 하동무를 만나서 국내이야기며 아주머니와 정남이이야기며 그리고 이번 춘황투쟁이야기도 더 들어보고싶고 그밖에 궁금한것도 많은데 그건 래일 듣기로 합시다. 송강에 나가 당장 알아보고 대책을 세워야 할 일이 있습니다. 허재률동무는 우사령의 부대에 붙잡혀갔습니다.》 《예?》 하연성이 벌떡 일어났다. 《내 보기에 사건은 아주 복잡하게 엉킨것 같습니다. 그 마부를 내가 좀 아는데 우리한테서 적지 않게 혁명적영향을 받았습니다. 그 사람이 아마 허재률동무가 체포되는 현장에도 있었다니 필시 무슨 결심을 했을것입니다. 그래서 장상민이와 체포된 허재률이를 마차에 태우고오다가 푸르하근방에 와서 장상민이를 까눕힌것 같습니다. 문청룡이는 그전에도 장상민이를 까겠다고 차광수동무한테 제기한적이 있고 이번에 농막골로 가면서는 마지막으로 갔다오겠는데 갔다오면 꼭 총을 메워주겠는가고 따졌답니다. 그러니 그 동무로서 충분히 그럴수 있습니다.》 어머님께서도 철주동지도 하연성이도 그이의 분석이 너무나 론리적이고 진실하게 울려와서 더는 물어볼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안도경찰에 있기보다 더 못합니다. 안도경찰은 아직 괴뢰만주국정권의 똑똑한 지시를 받지 못하고 왜놈군대는 아직 들어오지 않았기때문에 적지 않게 떨떨해있습니다. 그렇기때문에 진한정동무의 활동에 기대를 걸어볼수도 있는데 우사령부는 완전히 절벽강산입니다. 과연 허재률동무가 우사령부에 붙잡힌것이 사실인가 하는것도 알아보기 어려운 형편입니다. 벌써 우리를 찾아오던 동무들이 우사령부에 체포된것이 세건이나 보고되였지만 그 구체적인 사실도 아직 해명 못하고있습니다. 듣는 소문에는 우사령이 몹시 성급한 군벌이라는데 시간을 끌다가는 재미없을수 있습니다.》 그러시면서 그이께서는 서둘러 행전을 다시하고 신끈을 조여신으시였다. 이제는 아무도 그이를 말리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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