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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서《불멸의 력사》 장편소설
석윤기 (제31회) 제 3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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령등에 올라설 때까지도 문청룡은 아무 영문을 모르고 두사람의 뒤만 따랐다. 그의 기분도 좋지 않았다. 이번에 농막골에 오면 어머니를 만나고 잘되면 모자간이 그길로 함께 안도로 가서 살길을 열어보자고도 했는데 주인놈은 오는날부터 잠시도 틈을 주지 않을뿐아니라 가만 보니 하는 일이 모두가 죽지 못해 살아가는 농민들을 잡아족칠 꿍꿍이뿐이다. 이게 송강 같으면 제꺽 그놈의 행동을 차광수에게 알리고 사등뼈를 부러뜨려놓겠는데 여기는 생소한 곳이라 누구에게 그런 말을 비칠만한데도 없었다. 오늘만 해도 주인놈의 식구들이 폭동군중에게 갖은 악담을 퍼부으며 피난을 갈 때 그들을 제손으로 실어다주었을뿐아니라 돌아와서는 어머니가 억울한 욕을 먹고 하마트면 손찌검까지 당할번하고보니 그런 수모를 당하고도 말 한마디 똑똑히 못하고 그냥 용서를 빌고있는 자기가 세상 못난놈이라는 생각이 드는것이였다. 전같으면 이런 생각도 안할것이였다. 그러나 부강촌에서 증손이의 말을 듣고 그후 다시 송강 마철전에서 안경쟁이 차광수를 만나 세상리치에 어느 정도 눈이 뜬데다가 간도일판이 와-와- 설레이는 폭동기운을 목격하니 세상에 벌레처럼 짓밟히면서도 지지리 못나게 궁상을 떨고있는것은 자기 한사람이라는 창피하고 분한 생각이 드는것이였다. 역시 증손이의 말과 같이 자리귀신이 있어서가 아니라 내가 너무나 못난탓인 모양이다.- 이렇게 생각하며 문청룡은 별치 않은 올리막을 전에없이 힘겹게 톺아올랐다. 앞에서는 안영호와 장상민이 그냥 수군거리던 말을 그치고 긴장해서 사위를 살피며 걷는다. 령마루에 올라섰을 때 안영호는 걸음을 멈추더니 장상민의 어깨를 눌렀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며 문청룡에게도 멎어서라는 신호를 하였다. 문청룡은 다 맞갖지 않아서 그자리에 털썩 주저앉고말았다. 그런데 늙은이 같기도 하고 아이같기도 한 흐느낌소리가 울려왔다. 끅-끅 막히다가 빈 바람소리같은 쉰 목소리가 한참씩 끌리군하는 그 소리는 얼핏 들으면 톱날을 세우기 위하여 줄칼질을 하는 소리 같기도 하고 늙은이가 숨을 모으는 소리 같기도 하였다. 문청룡은 영문을 몰라 목을 길게 뽑았다. 안영호와 장상민이도 긴장해서 소리나는쪽을 지켜보고있다. 잠시후 그들이 쑥덕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계집은 아주 죽었나?》 《그때 벌써 죽었댔소. 그런데 저 아이까지 잘못될것 같지 않소? 벌써 다섯시간은 잘되는데…》 《사람의 목숨이란 질긴거야. 저것 보라구, 아직 피덩지같은게 흙을 다 움켜먹지 않았어?》 《그래도 우리가 건사합시다. 아이는 우선 살려놓고봐야 하지 않겠소.》 《하긴 그것도 그래. 아이가 우리 손에 있으면 유리하지. 저런 계집의 시신을 거두러 오는놈이면 맨몸으로 올리가 없으니까말이야.》 장상민이 이렇게 말하며 잠시 생각하더니 《여보게.》 하고 문청룡을 불렀다. 그러지 않아도 괴이한 울음소리와 두놈의 주고받는 말이 하도 이상해서 소리나는데 가보려고 하던 문청룡은 성큼 다가갔다. 《자네 저걸 좀 안아오게.》 장상민이 가리키는 관목덤불밑을 바라본 문청룡은 너무나 끔찍한 광경에 흑하고 어깨를 가드라뜨리며 진저리를 쳤다. 무수한 발길에 짓이겨져서 희슥희슥한 눈과 진흙과 가랑잎이 마구 뒤범벅이 된 등성이에 웬 녀인이 랑자를 풀어헤친채 코를 땅에 박고 쓰러져있었다. 얼굴은 눈과 흙으로 매닥질을 한채 구겨박혀 모상을 가려볼수 없는데 그나마 어디서 흘러나왔는지 이쪽에 드러난 볼편에 질펀하게 피가 엉켜붙어 굳어져있었다. 허리에는 포대기가 띠를 띤채 흘러내리고 누덕누덕 기운 무명저고리와 물이 바래서 얼룩얼룩한 검정치마는 갈가리 찢어져서 퍼렇게 멍든 맨살이 드러나있었다. 어디서 어떻게 빠져나왔는지 두어살 될가말가한 어린것이 숨진 어머니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쓰러졌는데 자는것인지 지쳐서 쓰러진것인지 간흘적으로 흐느낌소리를 내다가 이따금 몸을 떨며 쉰 울음소리를 지르군하였다. 아이는 다행히 헤쳐진 포대기우에 올라앉아 어머니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있었지만 짜개바지사이로 드러나보이는 넙적다리는 먼눈에 보기에도 퍼렇게 얼어있었다. 문청룡은 정신없이 달려가서 아이를 안아일으켰다. 품에 안고보니 얼음덩이를 안은것 같은데 사람의 품에 안겨서도 어린것의 허리는 펴지지 않았고 눈도 감긴채로였다. 그래도 어린것은 그 숨모으는 늙은이목청같은 소리로 흐느끼며 울고있었다. 문청룡은 《얘, 얘, 눈을 떠.》 하고 몇번 흔들어보다가 그냥 가슴에 안은채 숨기없이 쓰러진 녀인의 몸을 흔들었다. 피비린내가 확하고 코를 찔렀다. 《여보시오. 여보시오.》 고개를 돌려놓으려고 손을 대다가 이미 굳어져가는 시신이라는것을 느낀 문청룡은 섬찍해서 손을 움츠리고 뒤를 돌아보았다. 《이리 와! 녀자는 죽은지 오랬어.》 하고 장상민이 인적기도 없는데 목소리를 죽이고 손을 안타깝게 흔들었다. 문청룡은 두놈을 찬찬히 쏘아보았다. 분명 그 어떤 무시무시한 죄악이 벌어지고있는 이자리에서 그자신 서뿔리 몸을 놀리게 되지 않았다. 그래서 저놈들도 함부로 말을 못하고 몸도 떳떳이 드러내지 못하는것이다. 문청룡은 숨이 간간해있는 어린것을 가슴에 꼭 품고 그들이 있는쪽을 피해서 령길로 내려섰다. 어쩐지 두놈곁에 가면 아이마저 죽여버릴것 같았다. 《이자식아, 어딜 가, 이리 가져오라는데…》 장상민이가 소리쳤다. 그러자 안영호가 그를 말리며 말했다. 《됐수다. 우리가 그쪽으로 갑시다.》 안영호가 먼저 다가오고 뒤따라 장상민이도 길을 내려섰다. 《좀더 있으면 아이도 죽겠어요. 빨리 갑시다.》 문청룡은 아직도 두놈의 의도를 잘 몰라서 아이를 품에 안고 추스리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일없어. 좀 울리라구. 이제 누가 이 애를 찾으러 올거야.》 장상민이가 턱짓을 하며 말했다. 《뭐요?》 문청룡의 눈길이 번쩍하였다. 그제야 이놈들이 아이를 미끼삼아 여기에 매복하고있다가 그 누군가를 잡으려 한다는것을 눈치챈것이다. 가슴에서 분노와 정의감이 끓어번졌다. 아이어머니의 시체를 앞에 놓고 다 죽어가는 피덩지같은것을 미끼로 삼아 또 새로운 살인을 꾸미다니… 그러고보면 저 녀자를 저렇게 짓이겨 죽인것도 이놈들이 아닌가. 문청룡은 분노에 살을 떨며 두놈을 번갈아 쏘아보는데 석재쪽으로 뻗은 릉선을 타고 저벅저벅 다가오는 발자국소리가 났다. 《온다.》 장상민이가 속삭이며 문청룡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날은 으슬으슬 저물어가고 쌀쌀한 저녁바람이 터져 피비린내를 풍기는데 길아닌 산비탈로 저벅저벅 다가오는 발자국소리를 들으니 문청룡도 무시무시한 생각이 들면서 가슴이 서늘해졌다. 그는 장상민이가 끄는대로 흐느끼는 아이를 품에 안은채 길 저쪽의 관목덤불뒤로 가서 숨었다. 잎이 다 져서 몽당비자루를 거꾸로 세운것 같은 개암나무덤불이였다. 《어디서 아이 울음소리가 나는것 같지 않소?》 발자국소리가 멎고 이런 말소리가 들려왔다. 《이 어방은 이 어방인데…》 이런 중얼거림이 뒤따르더니 다른 목소리가 《옳소. 정남이 울음소리요.》 하는 웨침과 함께 세 사나이가 한꺼번에 눈무지를 걷어차며 달려왔다. 그중 두사람은 녀인의 시신이 있는쪽으로 달려가고 한사람은 바로 장상민이와 안영호가 총을 내대고있는 관목숲쪽으로 다가왔다. 허름한 밀짚모자를 쓴 사람이였다. 그가 버스럭버스럭 눈덮인 락엽우로 이리저리 더듬으며 관목덤불 코앞에 다가왔을 때 장상민이가 그 가슴에 권총을 내대며 《손들엇!》 하고 소리쳤다. 안영호도 총을 들고 그 사람의 옆으로 돌아섰다. 그 사람은 불과 3m도 되나마나한 거리에서 앞뒤로 포위된셈이였다. 그러자 저쪽으로 더듬어가던 두사람은 우뚝 멎어섰다. 《음- 안영호 네놈이!》 밀짚모자를 쓴 사람이 가슴을 겨누고있는 총은 아랑곳없이 사위를 휘둘러보며 소리쳤다. 《저놈이요, 아까 강건너에서 경찰을 데려온놈이 저놈이요.》 하고 저쪽 두사람중에서 나이 어려보이는 더꺼머리청년이 앞으로 한발 나서며 말했다. 오중흡이였다. 《다가오지 말앗, 이제 한걸음만 다가오면 모두 쏘아죽이겠다. 허재률씨, 참 오래간만이요. 한데 이번에는 친구를 돌아볼 형편이 못되였소. 괜히 헛된 발버둥을 그만두고 점잖게 손을 드시오. 네놈도 손을 들어!》 안영호는 안해의 시체앞에서 분노로 몸을 떨며 서있는 하연성에게 꿱 하고 소리쳤다. 하연성은 분노가 타번지다못해 한순간에 시꺼먼 숯덩어리처럼 변해버린 무시무시한 형상으로 두놈에게 덮쳐들려 하였다. 그러나 너무 거리가 먼데다가 장상민이가 허재률이의 가슴에 권총을 갖다대며 소리쳤다. 《순순히 말 안들으면 쏜다!》 《여보, 이러지 마오.》 하고 허재률이가 밀짚모자를 벗어들고 답답한 가슴속에 바람을 몰아넣듯 슬슬 부치며 말했다. 《안영호씨, 그래 당신이 이 놀음을 벌렸소?》 《그렇소. 내가 벌렸소.》 《그렇다면 당신처지로서는 너무 엄청난 일을 저지르지 않았소? 나는 그래도 당신이 이렇게까지 악착한 인간인줄은 차마 몰랐구만. 당신이 이 죄악에 대해 어떻게 책임을 지겠소?》 허재률은 한걸음 다가섰다. 《설교는 그만하오. 세상일은 설교만으로 변경시킬수 없는거요. 너무 다가들지 마오. 쏘겠소.》 《다가가지 않을테니 순순히 아이를 내놓소. 당신이야 원래 겁쟁인데 이런 일을 어떻게 감당하겠소. 나는 어차피 당신들 손에 들었으니 어쩔수 없지만 아이는 내놓소.》 《훈시에 버릇이 된것 같은데 걷어치우오. 이제는 때도 늦었고 형세도 글렀소.》 하고 안영호는 차겁게 말했다. 《나도 끔찍한 살인놀음에 간참하기가 싫어서 당신들과 타협해보려고도 했소. 그러나 우리들사이는 이제는 타협할 길이 없소. 당신네는 폭동을 일으켜 우리 가족을 한지로 내몰았소. 설사 내가 가만있고싶어도 당신들은 나를 용납해주지 않을거요. 그럴바에야 결산을 래일로 미룰게 있소. 순순히 포승을 지오.》 《개자식!》 하고 저쪽에서 중흡이가 달려나오려 하였으나 허재률이가 손을 들어 그를 제지하였다. 《당신의 말도 일리가 있소.》 허재률의 말은 어디까지나 침착하였다. 《그런데 대체 저 량반은 누구요?》 그는 새삼스럽게 장상민을 돌아보며 물었다. 《희떠운 수작 말앗!》 장상민이 불끈해서 접어들려 하자 이번에는 안영호가 그를 제지하였다. 《아저씨, 좀 참으시오. 이분은 동만에서 이름있는 혁명가인 허재률씨요. 동지 김일성의 한팔이나 다름없는 큰 인물이요. 사실 나는 이런 큰 혁명가가 여기에 나타날줄 몰랐는데 참 뜻밖의 상봉을 하게 됐소. 허재률씨도 우리 아저씨를 알고 지내시오. 내 처이모부되는 장상민씬데 지금 안도경찰에 있소.》 《그럼 사리에 정 어둡지는 않겠는데 나는 이제 안영호씨가 소개한대로 당의 위임을 받고 여기에 파견되여온 공작원이요. 그러니 응당 당신들이 나와 만나 하고싶은 말이 있을거요. 그러나 저 두사람은 당신들의 사업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요. 더구나 피덩지같은 어린애야 무슨 상관이 있겠소.》 《그러니 두사람은 놓아보내란말이지? 그렇게는 안될걸. 나는 아침에 저 젊은이를 보았소. 보시오. 지금도 저자들의 눈은 순박한 농민들의 눈이라고 보기는 어렵단말이요.》 안영호는 분명 허재률의 제의를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는것을 느끼면서도 확신을 못가지는 그런 어조로 저쪽에 서있는 하연성과 오중흡의 분노에 이글거리는 눈을 두려움에 차서 바라보았다. 《죄없는 녀인의 시체와 죽어가는 젖먹이를 보고도 순박한 눈으로 당신들에게 웃음을 보내는 농민들은 없을거요. 툭 터놓고 말합시다. 나는 당신네 감옥같은것은 썩은 울바자정도로밖에 생각지 않으니 당신들의 요구대로 따라가겠는데 그대신 아이와 저 사람들을 돌려보내겠소 어찌겠소?》 허재률은 여전히 슬슬 부채질을 하며 다른 손으로는 숨을 씩씩거리는 하연성과 중흡이를 진정시키느라고 손짓을 하였다. 그때까지도 하연성은 어금이를 악물고 금시 터져나가려는 아우성을 필사적으로 참고있었다. 안영호와 장상민은 말없는 가운데 눈길을 마주쳤다. 장상민은 사실 저쪽에 떨어져있는 두사람이 이 사건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는지 모르는만큼 결단을 내리는것은 주로 안영호의 판단에 달려있었다. 안영호가 보기에는 저쪽 두사람도 분명 위험분자임에 틀림없을듯 하였으나 일을 너무 크게 버르집어놓고싶지 않았다. 허재률을 만나고보니 노새령에서의 이야기를 장상민에게 한것이 후회도 되였으나 이 역시 피할수 없는 운명인가부다 생각하고 침울하게 말했다. 《좋소. 그럼 우선 당신만 포승을 지시오. 다른 사람들이 움직이면 모두 무차별적으로 쏘겠소.》 안영호가 이렇게 말하며 허재률이에게 턱짓을 하였다. 허재률은 한걸음 나서더니 함께 온 두 동무를 돌아보았다. 《하동무, 내 친구로서 인사를 다 못차리고 가오. 량해하오. 아무리 괴롭더라도 우리의 위대한 목적을 위하여 지금은 참아야 하오. 중흡이, 자네는 하동무를 잘 도우게. 알겠나. 이 사실을 우리 사람들에게 알리게. 그러면 왜 우리가 기어이 혁명을 해야 하겠는가 하는것을 깨닫게 될걸세. 이건-》 허재률은 잠시 고개를 숙이고 생각하더니 잘라서 말했다. 《허재률이 개인의 말이 아니라 김일성동지의 위임을 받고온 파견원의 말이란걸 명심하게. 조직은 동무에게 중대한 책임을 지웠네.》 《여보 파견원동무, 조직내막을 너무 로출시키는게 아니요?》 장상민이가 옆구리에서 포승줄을 뽑아내며 쏘아붙였다. 《아닌게아니라 좀 서툴게 됐는데 어쩔수가 없구만. 가만두면 저 사람들이 당신들에게 복수하자고 당장 접어들것 같으니 나를 위해서도 그렇고 당신들을 위해서도 그렇고 뭐 그렇게 서둘러 죽을 필요야 있겠소. 또 이제 장례도 치러야 하고 아이도 길러야 하지 않겠소. 피차 모험을 하지 말자는거요.》 《흥, 이제 감방에 가서도 그렇게 혀바닥이 잘 돌아가나 보자.》 하고 장상민은 신경질적으로 포승을 지우려 하였다. 《아니.》 하고 허재률은 한손을 쳐들고 말했다. 《아이를 먼저 넘겨주오.》 《손부터 내밀어.》 장상민은 권총을 바싹 겨누며 소리쳤다. 《여보, 말같지 않은 소리 하지도 마오. 나는 포승을 지나 안지나 총앞에 섰으니 다른 말을 할수 없지만 당신들은 나를 묶은 다음엔 또 저 사람들을 묶자고 할수도 있단말이요. 내앞에서 아이를 넘겨주고 저사람들이 안전지대로 사라지기전에는 내 몸의 자유를 잃을수 없소. 정 싫으면 그만둡시다. 난 어차피 죽을 각오가 되여있으니 결판을 내보기오. 당신들이 총을 얼마나 잘 쏘는지 몰라도 우리 셋이 한꺼번에 덮치면 당신들도 무사치 못할거요.》 문청룡은 무시무시한중에도 속으로 경탄하였다. 겉보기는 허름한 막벌이군차림을 하고있는데 말은 얼마나 청산류수인가. 가슴에 두개의 총구멍이 겨누고있고 뒤에는 처참한 녀인의 시체가 있으며 또 숨넘어가는 아이가 원쑤의 가슴에 안겨있는데도 그의 말은 어디까지나 침착하고 류창하며 사리가 분명하였다. 깊은 속은 모르겠지만 김일성동지의 파견원이라니 과연 그럼직하다는 생각과 함께 철아닌 그의 밀짚모자까지가 범상치 않게 보였다. 이러한 생각은 어느 정도 안영호나 장상민에게도 들었다. 그들은 말없는 가운데 눈길을 마주쳤다. 벌써 굽어드는 그들의 마음을 읽고 허재률이 두 동무를 다시 돌아보았다. 《내 걱정은 하지 마오. 이 허재률이의 자유를 완전히 빼앗을만한 감옥을 왜놈들은 아직 만들어내지 못했소. 아주머니에게 동무들이 나대신 술 한잔씩 부어드리오. 우리가 총잡고 일어서는 날 그 대렬에 아주머니도 서있는것으로 생각하기요.》 억이 막혀 말을 못하고 서있는 하연성과 오중흡은 평소의 허재률의 말같지 않게 비장하게 울리는 말을 듣고 주먹을 움켜쥐며 살을 떨었다. 금시 무엇인가 터져나갈것 같이 분위기가 긴장될대로 긴장되였다. 장상민은 흰자위만 남은것 같이 보이는 겁질린 눈으로 마주선 허재률과 저만치 떨어져있는 두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며 엉거주춤 아이를 내밀었다. 안영호는 만일의 경우를 생각하여 한걸음 떨어진 곳으로 허재률을 밀어내고 그의 가슴에 권총을 겨누었다. 하연성은 묵묵히 목상처럼 서있기만 하였다. 자식과 동지를 바꾸는듯한 이 타협이 과연 옳은것인가 하는 몸부림이 사랑하는 안해의 시신앞에 선 이 사나이의 마음을 피투성이로 만들고있다는것을 리해하는것은 허재률이와 오중흡이뿐이였지만 그가 죽은 녀인의 남편이고 방금 숨이 넘어갈듯 한 아이의 아버지라는것은 안영호일행에게도 리해되였고 또 그의 침묵이 안영호나 장상민의 총때문이 아니라 허재률의 조직적인 지시까지도 포함한 너무나 리성적이고 자기희생적인 행동에 의해서 유지되고있다는것을 충분히 짐작할수 있었다. 그렇기때문에 그가 빨리 아이를 받아안을것을 안영호나 장상민이도 절실히 바랐다. 그러나 하연성은 입귀를 떨며 서있는것이였다. 《중흡이, 어서 받게.》 허재률은 하연성의 앙다문 입귀에서 피가 번져나오는것을 보고 소리쳤다. 《형님.》 오중흡은 비틀거리며 걸어나와 아이를 받아안으며 황소영각같은 소리를 터쳐놓았다. 《하동무, 아주머니를 생각해서라도 참기요. 제발 어서 가오.》 허재률은 분노가 그대로 굳어진것 같은 하연성의 무시무시한 형상을 보고 안타까운 어조로 말했다. 그러나 하연성은 아무 응대도 하지 않았다. 다만 우들우들 살을 떠는데 그것이 먼곳에서 다가오는 천둥소리같은 예감을 불러왔다. 과연 하연성의 부릅뜬 눈에는 이상한 광채가 번쩍거렸다. 안해의 짓이겨진 시신이 눈앞에 있고 사랑하는 안해를 그렇게 만든 원쑤가 눈앞에 있는데 하연성이가 과연 자기 목숨 아까운 생각이 들겠는가. 분노가 활화산처럼 불타오르는 그의 온 육신을 쇠바줄로 동이듯 어떤 복수행위도 못하게 움켜잡고있는것은 허재률의 말속에 마디마디 배여있는 당적리성의 목소리였다. 그러나 보매 하연성의 인내력은 한계점에 이른듯 하였다. 그를 안해가 누워있고 동지가 묶여가려는 이자리에서 제발로 멀어져가게 할 힘은 없다는것을 깨달은 허재률은 제가 성큼 돌아서서 안영호와 장상민에게 어서 가자고 두팔을 들어 흔들어보이며 말하였다. 《갑시다. 아무래도 우리가 가야겠소. 내 저아래 내려가서 묶이울테니 마음놓고 따라들 오시오.》 허재률이 앞장서서 비탈을 내려가니 장상민이와 안영호도 총을 겨누어든채 뒤를 따르지 않을수 없었다. 문청룡은 어쩔바를 몰라 잠시 망설이는데 여태까지 화석이 된것처럼 말없이 서있던 하연성이가 불쑥 한걸음 나서며 목메인 소리로 웨쳤다. 《허동무, 뒤일은 걱정마오. 내 기어이 송강에 찾아가겠소.》 허재률은 령굽이를 돌다가 그 소리를 듣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더니 히죽히 웃으며 말했다. 《정남이를 석재형님네 집에 맡기오.》 허재률의 얼굴은 웃고있었으나 그의 목소리에는 피눈물이 배여있었다. 《알겠소. 내… 걱정은 하지 마오. 나도 인간이요.》 하연성은 울음섞인 목소리로 울부짖다싶이 웨쳤다. 허재률의 모습이 령굽이로 사라지자 하연성은 그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대지가 부서져나가라 주먹을 움켜쥐고 땅을 내리쳤다. 문청룡은 터벅터벅 걸음을 옮겨놓다가 마치 그 주먹을 자기가 얻어맞은듯 흠칫하며 반달음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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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골에서 영굴로 넘어가는 향단의 깊숙한 골짜기에 고만녀를 묻었다. 일가도 친척도 없는 외로운 고만녀는 조상올 사람도 없었고 누가 나서서 묘자리를 잡고 장사를 주관해줄 사람도 없었다. 그가 이 세상에 남기고간 오직 하나의 살붙이인 정남이는 올해들어 겨우 세살에 잡혔는데 그나마 어머니가 원쑤들에게 짓밟혀죽은 참변을 그 어린 몸으로 함께 겪다보니 상주구실은커녕 그 역시 지금은 숨이 간간해있었다. 중흡이가 니마토와 즌개일판을 돌다못해 고작골까지 부녀회원들을 찾아다니며 젖동냥을 하였다. 장례는 조직성원들끼리 모여 간소하게 치렀다. 묘자리를 잡고 제주노릇을 한것은 오중화였다. 불면 날아갈것 같은 움막에 찢기고 터진 고만녀의 시신을 눕혀놓고 지금도 목이 쉬여 울어보채는 정남이를 번갈아안고 달래며 혁명동지들은 진심으로 뜨거운 애도의 눈물을 흘렸으며 불쌍한 조선의 딸, 조선의 안해를 위하여 신성한 복수의 무기를 잡으리라는 굳은 맹세를 다졌다. 오중화가 하필 가깝지도 않은 향단골짜기에 묘자리를 잡은것은 그로서 생각이 있었다. 재작년가을 김일성동지께서 두만강을 건너오시여 온성지구의 혁명조직을 지도해주시고 국내에서 첫 당조직을 내오시던 그 잊지 못할 나날에 고만녀와 깊은 인연을 맺으신곳이 향단골짜기였다. 김일성동지의 신변에 닥친 위험을 알리기 위하여 그때는 까막눈이 촌아낙네에 지나지 않던 고만녀가 깊은 밤에는 남정들도 다니기 저어하는 험한 산길로 맨발벗고 달려오던 그 모습을 오중화는 영원히 잊을수 없었다. 그런 고만녀를 통하여 중화는 인민의 힘과 슬기를 믿으시고 그것을 묶어세워 조선혁명을 이룩해야 한다는 김일성동지의 사상을 더 깊이 리해하게도 됐던것이다. 결국 고만녀는 그때 김일성동지를 보위하기 위하여 불어난 젖을 움켜안고 종일 굶겨둔 아이도 팽개친채 밤길 30리를 맨발벗고 달려오던 그때처럼 우리 혁명을 지키기 위하여 자기의 한목숨을 서슴없이 바쳤다. 그 역시 자기의 불쌍한 처지에 참으로 뜨거운 사랑과 동정을 부어준 김일성동지의 은덕에 보답하기 위한 그 녀자의 사무친 마음의 분출이였다. 오중화는 고만녀의 마음을 생각해서 그리고 그의 희생이 가지는 깊은 뜻을 아무 연고없이 땅속에 묻어버리는것이 아쉬워 고만녀와 온성의 혁명가들이 깊은 감회를 가지고 추억하는 향단골짜기에 고만녀를 묻고 그앞에서 고만녀처럼 김일성동지를 보위하며 우리 혁명을 보위하자는 맹세를 다지자는것이였다. 더운피 끓어넘치는 사나이들만이 모인 장례는 간소하였지만 무쇠덩어리같은 주먹을 부르쥐고 김일성동지와 혁명에 대한 충성의 맹세를 다지였고 눈물속에 기어이 보복하리라는 결의를 가슴마다에 새겼다. 《아주마이.》 하고 오중흡은 새빨갛게 두드러진 한무지 흙을 어루쓰다듬으며 목메여 부르짖었다. 《내 목숨 절반은 아주마이거오다. 내 정남이를 잘 키우겠소다. 살아서 고생도 막심하더니 죽어서도 편안히 눈감지 못할 아주마이를 생각하면 내 마음이 아파서 못견디겠소다. 내 이 가슴에 피가 한말이나 차있는데 이 피를 다 무엇하겠소다. 이 피를 아주마이처럼 몽땅 혁명에 바치겠소다.》 하연성은 그날 이후로 일체 말이 없었다. 아이가 보채서 다른 사람이 젖걱정을 하여도 돌아보지 않았고 묘를 어디다 쓸지 공론들을 해도 간참하지 않았다. 누가 그의 의향을 묻지도 않았다. 안해의 무덤앞에서 동지들이 추모하는 말을 하고 중흡이나 최춘국이같이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있어도 일체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의 감정과 언어는 그 노새령우에서 안해의 죽음과 함께 한순간에 불타버리고 그 어떤 인간정신의 숯등걸같은것으로 변해버린듯 하였다. 그의 행동은 엄청나게 비약되여있고 또 확고부동한것이여서 때로는 그 의도를 리해할수 없을 경우도 많았지만 대체로는 지나칠만큼 랭철하고 리성적이기도 하였다. 장례가 끝나자 오중화는 정남이를 안고 한걸음 먼저 강을 건너갔다. 그뒤로 한사람 두사람씩 서먹서먹한 인사말을 남기고 헤여져갔다. 지금 두만강류역일대와 온 간도땅이 춘황투쟁으로 뒤설레이고있는 때라 누구나 바빴다. 중흡이만이 이래나 저래나 펼치고 살던 살림살이의 뒤수습을 거들어줘야 하겠기에 하연성이와 함께 남았다. 두사람은 말없이 움막같은 집에서 뜬눈으로 하루밤을 새웠다. 동네와 멀리 떨어져서 외따로 서있는 초막이나 다름없는 이 오막살이에는 죽어나갔는데도 찾아올 이웃조차 없었다. 중흡은 말 한마디 없이 하연성이와 마주앉아 밤을 새자니 그것도 못할 일이라 차라리 살림살이나 거두어볼가 해서 코구멍만한 방안을 살펴보았으나 따로 건사하고 꾸릴만한 옷가지 하나, 세간붙이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런대로 솜이 너덜거리는 포대기며 함지박 같은것을 한데 걷어모으는데 벽에 기대앉아 완고하게 입을 다물고있던 하연성이가 말없이 세간붙이들을 밀쳐버렸다. 다 필요없다는것이였다. 하기는 그까짓것을 꾸려봤대야 어디 쓸모도 있어보이지 않았다. 별수없이 중흡이도 나앉아 맞은편벽에 등을 대고 기댔다. 이튿날아침에 제사에 쓰고남은 음식가지로 대강 요기를 한 두사람은 길을 떠났다. 역시 말없이 수걱수걱 걷던 하연성은 문득 걸음을 멈추더니 간다온다 말도 없이 집으로 되돌아갔다. 오중흡은 뭔가 잊어버린 모양이라고 생각하고 천천히 걸음을 옮겨놓았다. 잠시후 하연성은 전이나 다름없는 표정으로 뒤따라왔다. 신작로에 나섰을 때 오중흡은 별생각없이 뒤를 돌아보고 깜짝 놀랐다. 즌개 한복판에 외따로 떨어져있는 하연성이네 움막에 불이 달려 황황 불길이 솟구치고있었다. 《아니 저런!》 오중흡은 본능적으로 소리치며 달려가려 하였으나 하연성은 아무것도 못느끼고 못들은것처럼 지수굿이 고개를 숙이고 걷기만 하였다. 하연성이 자신이 비장한 결의를 다지고 혁명의 길을 떠나면서 불을 질렀다는것을 깨달은 중흡은 까닭없이 한숨이 새여나왔다. 최근 《공산당선언》을 보니 자본주의는 상품과 함께 자기의 매장자인 무산자를 시시각각으로 만들어낸다고 했는데 일제는 제 배를 불리기 위하여 날뛰다못해 저런 무시무시한 복수자를 만들어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두사람은 상탄에서 나루배를 타고 두만강을 건넜다. 하연성은 배에서 내리자 령으로 올라가는 길쪽으로가 아니라 쇠바줄을 건너띄운 세가닥말짱옆으로 해서 저만치 빨래돌이 놓여있는 강가로 걸어갔다. 그날 고만녀가 빨래를 하며 망을 보던 장소였다. 강가에 내버렸던 빨래가지와 빨래방치는 시신을 날라갈 때 함께 걷어갔는데 아마 지금쯤 즌개의 오막살이와 함께 재가 됐을것이다. 그러나 부연 강물이 쉼없이 철썩거리는 강가에는 박산이 난 빨래버치의 잔해가 여태 남아있어서 그날의 참변을 말해주고있었다. 하연성은 그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는 말없이 흘러가는 강물을 멍하니 바라보더니 무심히 깨여진 질그릇쪼박을 한웅큼 집어들었다. 그 쪼각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며 매만지다가는 시름없는 장난처럼 강물에 팔매질을 해서 집어던지군하였다. 중흡은 슬픔에 모대기는 그를 지켜보기가 여간 괴롭지 않았다. 고만녀아주머니의 참변이 자기때문에 빚어진것처럼 생각되여 더구나 하연성을 마주 대하기가 힘들었고 정남이의 울음소리만 나면 가슴이 발기발기 찢기는듯 하였다. 이제 혁명을 하겠다고 집에 불까지 쳐지르고 길을 떠난 사람이 안해가 변을 당한 자리에 와서 발길을 못떼는 모습을 보니 그가 겪고있을 슬픔이 그대로 제가슴에 번져와서 차마 한자리에 앉아있을수가 없었다. 《좀 앉았다 오시우. 난 한발 먼저 넘어가겠소.》 중흡은 그를 다만 얼마간이라도 혼자 있게 해주는것이 좋을듯 하여 이렇게 말하고 발걸음을 옮겨놓았다. 하연성은 들었는지 말았는지 고개를 들지 않고 여전히 질그릇쪼박을 시름없이 주무르다가 물속에 집어던지군하였다. 중흡은 혼자 터벅터벅 령길을 올라왔다. 무심히 돌아보니 강건너나루터에도 령길에도 인적은 보이지 않고 물소리만 출렁거린다. 하늘과 땅에 온통 원한과 슬픔만 가득차있는듯 하였다. 그날 고만녀아주머니가 잘못된 망보던 자리어방에 오니 가슴은 터질듯이 저려났다. 《어디 보자!》 중흡은 어금이를 우드득 갈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고만녀아주머니의 시신과 정남이를 미끼삼아 허재률이를 잡아가던 놈들의 악착한 형상을 머리속에 그리며 어떻게 하면 그놈들을 찾아낼것인가 궁리하였다. 보지 말자고 일부러 외면하고 걷는데도 눈길은 절로 어수선하게 짓이겨진 눈무지와 마구 헤집어놓은 가랑잎무지에 가멎었다. 바로 그자리에 고만녀아주머니가 누워있었다. 나루터에 있던 고만녀아주머니가 왜 거기까지 끌려올라와서 그놈들에게 짓밟혀 숨을 끊었는지 자세한것은 알길이 없었지만 그것이 자기때문이라는 짐작은 가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할수록 그자리를 무심히 지나칠수 없었다. 중흡은 부지런히 걸을 생각도 없어져서 털썩 길가에 주저앉았다. 그럴바에는 정남이 아버지가 마음을 가라앉힐 때까지 기다렸다가 함께 올것을 그랬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연성은 말은 한마디도 없지만 이길로 안도에 들어갈 생각인것 같았다. 원래 조직에서 토론될 때 그런 말이 있었다. 집을 떠나면서 불을 질러버린것은 이제는 다시 집일이나 가족생각을 싹 버리고 오직 김일성동지를 받들어 총을 잡고 싸우겠다는 굳은 결의를 다지고있다는 짐작이 갔다. 그렇게 무던하던 고만녀아주머니는 죽고 허재률형님은 잡혀가고 정남이는 어머니를 잃고… 그러니 하연성이가 무슨 말을 따로 할게 있는가. 기어이 총을 들고 원쑤와 싸울 길밖에 다른 무슨 길이 있는가. 그래서 그 형님은 말 한마디 없는것이다. 그래 총을 잡고 싸우지 않으면 살아갈 길이 없는것이 어떻게 하연성이 한 사람뿐이겠는가. 중흡이가 이런 생각을 끝없이 뒤집으며 입으로 혼자 중얼중얼하는데 량수천자쪽에서 저벅저벅하는 발자국소리가 울려왔다. 중흡은 행인을 만나는것이 싫어서 곧 자리를 털고 일어나려 하였다. 그런데 소나무가지사이로 시꺼먼 경찰제복과 어깨우에 솟은 총대가 번쩍거리는것을 보자 한순간에 머리속이 어찔해지는것을 느끼며 엉거주춤 일어나려던 허리를 도로 꺾고 앉았다. 저놈을 뒤따라 가리라- 순간에 이렇게 생각을 하면서도 중흡은 아직 자기가 생각하는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딱히 의식하지 못하였다. 다만 저 경관놈이 총을 메고 이 인적드문 호젓한 령길에, 바로 고만녀아주머니를 잊지 못해하는 오중흡이앞에 나타난것은 다 뜻이 있는 일이라고만 생각되였다. 경관놈은 다리를 절뚝절뚝하였다. 꽤 먼길을 걸은듯 하다. 그놈은 저만치에서부터 중흡을 띠여보자 본능적으로 총부혁을 움켜쥐고 아래우와 길좌우를 살피며 날카롭게 쏘아보았다. 그러나 그때 오중흡은 이미 자기의 몸가짐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것을 생각하고 평소의 그 유순하고 온화한 표정을 지으며 태평스럽게 앉아있었다. 경관놈은 그의 순박해보이는 외양에 믿음이 갔던지 인차 얼굴의 긴장을 풀고 앞을 지나치려 하다가 무슨 생각이 났는지 우중충한 산발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걸음을 멈추고 중흡에게 물었다. 《연지덕이가 여기서 얼마나 되는가?》 《고대오다. 한 20리 되나마나우다.》 《20리?》 경관은 기가 막히다는듯이 받아외우더니 무슨 뜻인지 코웃음을 가볍게 치고나서 아까보다 훨씬 심하게 다리를 절면서 오중흡이 옆에 앉았다. 코웃음을 치는것은 이런 날 이런곳으로 자기를 내보낸 그 누구의 처사가 얼마나 부당한가 하는것을 나타내는것이고 다리를 일부러 더 심하게 저는것은 자기가 오중흡이옆에 나란히 앉아서 쉴수밖에 없다는것을 리해해달라는 뜻인것 같았다. 무척 소심하고 치사스러운놈이였다. 그는 앉자마자 손수건을 꺼내여 산이 들썩 울리게 코를 풀고 그것을 주머니속에 도로 집어넣는데 얼마나 구겨지고 어지러운지 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났다. 경관놈은 잠시 주먹을 쥐고 무릎과 넙적다리를 툭툭 치더니 자기 다리에 감은 각반이 늦추어진것을 보고 서둘러 풀기 시작하였다. 작대기에 감긴것 같은 볼품없는 각반을 량쪽 다 풀어내여 정성스럽게 다시 감기 시작하자 그놈은 무슨 생각이 났는지 말을 꺼내였다. 《너 어디 사는놈이야?》 《남양덕에 사오다.》 《남양덕이? 거기 술집 있는가?》 《술집은 없소.》 《술집도 없는 동넨가?》 경관놈은 경멸에 찬 어조로 말하면서 각반을 다 친 한쪽다리의 맵시를 이쪽저쪽 제껴가며 살펴보았다. 그만하면 괜찮게 감겨졌다고 생각했는지 다른 한쪽 편상화의 끈을 죄이고 그우에 각반끝을 갖다댔다. 경관놈의 자세가 제일 꺼꺼부정해지는 때이다. 《술집은 없어도 살만한 동네오다.》 중흡은 이렇게 말을 붙이며 슬그머니 그놈의 옆으로 바싹 다가앉았다. 《술집도 없는데 무슨 재미로 사는가, 너희들은 투전이나 하는가?》 경관놈은 각반끝을 잡고 이미 감긴 장딴지를 아래우로 살펴보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우리 동네 청년들은 술도 투전도 모르오. 아는것은 혁명밖에 없소.》 이렇게 말하며 중흡은 그놈의 목줄디를 두손으로 움켜쥐였다. 그놈은 허망에 내놓인 두다리를 마구 버드럭거리며 발악하였다. 목에서는 울대뼈가 부스러지는 소리가 나고 눈이 튀여나올듯이 불거졌으며 입에서는 피가 터져나와서 꾸륵꾸륵하는 소리가 났지만 버드럭거림은 좀체로 멎지 않았다. 중흡이도 제정신이 아니였다. 《우리 동네엔 혁명하는 사람밖에 없다. 이자식아, 우리 동네사람들은 혁명밖에 아무것도 모른다. 날 잡아갈테면 잡아가봐라. 우리는 혁명을 할테다. 네놈들을 이렇게 죽이고말테다.》 마침내 버드럭거림은 서서히 가라앉고 마지막 경련을 일으키더니 편안히 늘어지고말았다. 오중흡이 한절반 정신이 나가서 헤덤비며 경관의 어깨에서 총을 빼앗아내고 그놈의 시체를 끌어다 숲속깊이에 던져놓고 나오니 웬 사람이 바로 자기가 앉았던 자리에 우두커니 앉아있었다. 중흡은 섬찍해서 어깨의 총을 내들었다. 그러나 그 사람은 돌아보지도 않고 앉아있더니 천천히 일어났다. 그의 어깨에도 총이 메여져있었다. 하연성이였다. 그는 걸음을 옮겨놓으며 오늘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칼을 떼라구. 얼마나 귀한것이기에 그냥 내버렸나. 우리 사람들의 목숨과 바꾼것인데…》 그리고는 고개를 푹 숙이고 스적스적 걸음을 다우쳤다. 중흡은 그가 나루가에 앉아있은것이 죽은 아주머니에 대한 애절한 생각때문이 아니라 총을 빼앗아내기 위하여 나루를 건너오는 경찰이나 군대를 기다리고있었다는것을 깨달았다. 중흡은 서둘러 방금 내다버린 경관놈의 시체에서 칼을 떼내여들고 하연성의 뒤를 부지런히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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