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서《불멸의 력사》

  장편소설

 

                         석윤기

(제28회)

제 2 편

 

26

 

우사령은 봉술의 명수였다. 무슨 작대기건 부지깽이건 그의 손에 일단 막대기만 잡히면 그 어떤 설화검도 리화창도 날카로움을 겨루지 못하였다. 두팔로 봉의 한가운데를 잡고 바람개비처럼 빙글빙글 돌리며 적진으로 육박할 때는 마치 산이 허물어져 사태져내리는듯 하였고 한끝을 잡고 적의 가슴팍을 찌를 때는 번개가 고목을 들이치는 기상이였다. 비발처럼 날아드는 화살을 머리우에 쳐떨구며 올리뛰고 주저앉고 앞으로 나가다 뒤로 돌아서는 형국은 마치 락화가 분분한듯 눈앞이 어지러울 지경이였다.

우사령은 성격이 급하고 메마른 편이나 위선을 몰랐고 허식을 싫어해서 장점을 추어주면 아이들처럼 기뻐하였고 단점을 건드리면 당장 낯색이 변하였다. 그는 내놓고 천하에 자기의 봉을 당할자가 없다고 하였으며 봉술은 무예18기의 으뜸이라고 하였다.

지대현은 바로 우사령의 이런 성격을 리용하여 그의 턱밑에 기여들었다.

우사령이 훈련교관을 상대로 한참 봉을 휘두르고나서 전령병이 받치고선 쟁반에서 엽차 한잔을 쭉 들이키고 물에 추긴 수건으로 얼굴이며 가슴팍의 땀을 훔치고 나올 때 대청 한끝에 앉아있던 지대현은 한숨을 후- 내쉬였다.

《지선생은 어째 한숨을 쉬시오. 정미소일에 무슨 랑패를 보았소?

우사령은 깨진 징소리같은 거치른 목소리로 물었다. 이런 때 그의 기분을 한번 더 거슬리면 살인이 나기가 쉬운것이다.

《아니올시다. 제 지금 사령님의 신묘한 무술을 보고 상산 조자룡이 너무 일찍 죽은것을 한탄하던중입니다.

《허허허, 이 령감이 또 말재간을 부리는군. 내 아무리 봉술에 능하다 한들 조자룡의 창이야 당하겠소. 혀바닥에 침도 안발린 그따위 엽쓸한 가마에 사람을 태울 생각은 하지도 마오.

우사령은 짜장 불쾌한듯이 소리쳤다. 그러나 그의 내심은 데쳐놓은듯 흐물흐물하였다.

그것을 뻔히 알면서도 지대현은 가장 송구한 표정을 짓고 몸을 가드라뜨리며 고개를 숙이였다.

우사령의 소박하고 단순한 가슴에서는 지대현에 대한 련민의 정이 나날이 쌓여졌으며 마치 손미치지 않는 등을 긁어주는 살뜰한 계집처럼 자기 마음의 이구석저구석을 긁어주는 지대현을 언제나 곁에서 떼놓을수 없게끔 정이 쏠려버렸다. 우사령이 보기에 지대현의 중요한 우점의 다른 하나는 아무리 막 다루어도 노할줄 모르며 설사 노했다 하더라도 전혀 아무런 위험이 없는것이였다. 사실 이런 어수선한 세월에 사람의 노염을 사서 위험하지 않기란 쉽지 않은 일이였다.

지대현은 밤마다 우사령을 침대에 눕혀놓고 침을 주런히 꽂고 부황단지를 빈자리없이 매달아놓은 다음 때로는 한숨에 섞어, 때로는 눈물젖은 목소리로 그를 력사에 드문 영웅호걸로 괴여올렸다.

우사령은 요즘같이 울적할 때에는 지대현이 없이는 하루도 견디기 어려울지경이였다. 그의 아첨은 독주와 같이 우사령의 풀길없는 원한을 달래여주는것이였다.

지난번 량강구에서 다섯번째 동생을 잃은 다음부터 우사령의 마음은 슬픔에 짓눌려 추설줄 몰랐다. 일체 부대일에 얼굴을 내밀지 않았고 병영들에 나가는 일도 없었으며 돈이나 훈련에 대해 아랑곳을 안했다. 세명 남은 결의형제들이 슬픔을 나누러 찾아왔지만 만나주지도 않았다. 우사령자체도 일본군대가 머지 않아 안도쪽으로 나온다는 소문이 떠도는데 이렇게 맥을 놓고 앉아있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때로는 술도 마셔보고 때로는 봉술훈련도 하고 때로는 가수들을 불러 경극의 한대목을 들어보기도 하였지만 마음의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량강구 진가유방에서 마장을 놀다가 괴한들에게 죽은 다섯번째 동생은 불쌍한 고아로 떠돌아다니던것을 우사령자신이 직접 기르다싶이하여 소대장으로까지 발전시킨 사람이였다.

워낙 우사령은 부대의 군률을 엄하게 신칙하였다. 태반의 병사들이 살길을 찾아 헤매다가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그에게 고용된 사병이나 다름없는것들이라 언제 훈련이나 교육을 통해 군대의 면모를 유지하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잘하면 금품으로 상을 주고 잘못하면 몽둥이로 다스렸다. 원래 문란했던 구동북군관하의 군벌군대들이 규률을 유지하는 방법은 그 군벌의 개성에 따라서 각이했지만 그런중에 우사령의 군대가 무섭고 군률이 엄하다고 소문이 난것은 봉건적인 태형까지 동원하여 무너져가는 기강을 세워보자고 애를 쓰는 그의 아귀센 통솔력때문이였다. 그는 자기가 제정한 질서나 명령을 위반했을 때는 그 정도에 따라 영창에 며칠 가두어두거나 곤장을 몇대씩 때린다는것을 미리 제정해놓고 어김없이 그대로 집행하였다.

이처럼 엄한 군률속에서도 유독 다섯번째 동생의 소대는 늘 부대에서 그중 말썽을 많이 빚어내였지만 우사령은 그것을 매로 다스리려 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우사령의 비위를 거슬릴가봐 오히려 그 소대가 가장 우수한듯이 말하군하였다. 우사령도 그 소대가 우수하지 않을뿐아니라 가장 문란한 소대라는것을 잘 알고있었지만 부대의 모든 사병들이 자기를 두려워하기때문에 자기네 결의형제까지 두둔한다는것을 알고 흡족해하였다. 그러나 최근에 동생의 행동이 너무 방자해지고 투전에 정신을 못차리는것이 도가 넘는다고 생각되여 몇번 불러서 당장 도박에서 손을 떼라고 울렀다메였다. 만일 다시 마장을 주무르는것을 보면 손목을 잘라놓겠다고 위협하였다. 그러나 동생은 그 위협을 건성으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도박장출입을 계속하더니 마침내 변을 당하였다.

우사령은 자기가 진작 좀더 따끔하게 그를 단속하지 못한것을 후회하였다. 그리고 자기의 그 여물지 못한 성미를 공산주의자들이 악용해서 동생을 죽였다고 생각했다. 그럴수록 공산주의자들이 미웠다. 그는 동생을 장사지낼 때 다진 맹세대로 기어이 원쑤를 갚으리라고 마음을 도사려먹고있었다.

사령의 기분이 울적해있으면 그것이 곧 부하들에 대한 화풀이로 표현되기때문에 우사령부 장병들에게 있어서 그의 울적한 기분상태는 곧 재앙이였다.

그의 마음을 달래기 위하여 마누라와 몸종들은 물론 부관, 전령병들도 애를 썼고 참모들과 대대장들이 그가 좋아하는 놀음놀이를 연방 벌렸다. 지대현이도 우사령의 좋아함직한 말들을 준비해가지고 날을 번지지 않고 찾아왔다.

오늘도 사령부의 지휘관들이 짜고 평소에 우사령의 봉술을 시험하는 적수로 지목되고있는 훈련교관에게 미리 주의를 주어서 부대본부에 잇달린 사령의 살림집 앞마당에서 시합을 벌린것이였다.

보매 시합과정은 그럴듯하게 흘러가서 우사령은 승부에 열중하였으며 적수의 급소를 연거퍼 세번이나 찌르자 흡족하여 껄껄 웃었다. 그리고 지대현의 아첨에도 퍽 활기있게 응수하는듯 하였다.

그러나 땀기가 가라앉고 쌀쌀한 바람이 목덜미를 스치자 그는 벼락같이 소리쳤다.

《내 덧저고리 어쨌느냐? 눈치없는것들!

안에 새하얀 양털을 받친 흑공단 덧저고리는 바로 옆에 시립하고있는 전령병이 어느때든지 입을수 있게 차비하고있었지만 그는 일부러 못본체 역증을 냈다. 우사령부의 간부들은 한숨을 내쉬였다. 오늘 또 사령의 성미를 겪을 일이 아득하게 생각되였던것이다.

이런 때 돈화에서 류충제선생이 찾아왔다고 전갈이 왔다.

《뭐 류충제? 아니 류충제선생이 나를 여태 잊지 않았군.

우사령은 방금 야단을 쳐서 어깨에 걸친 덧저고리를 벗어팽개치며 벌떡 일어났다.

《어디 있어? 어서 모셔들이지 않고 뭣들을 꾸물거리느냐.

우사령이 덤비며 소리치는것을 보자 전전긍긍해있던 부하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류충제는 평소에 우사령이 존경심을 가지고 이름을 꼽는 많지 못한 사람중의 한사람이라는것을 그의 부하들도 알고있었다. 명색없는 집안에서 태여나 오늘은 만여명의 장병을 거느린 사령까지 되였지만 워낙 학문이라는것과 인연이 먼 우사령이였다. 그러면서도 사람이 투미하지 않는 그는 사리에 밝았고 시세를 내다볼줄 알았으며 의협심이 강했다. 그는 자신이 무식하였으나 식자들과 사귀기를 즐겨하였다. 류충제도 그렇게 사귀인 사람이였다. 지금은 안도 산골에 들이박히고보니 식견이 있는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고작 글귀나 안다는것이 지대현이같은 위인인데 우사령이 보기에도 지대현은 한갖 어리광대로나 대하기 좋을뿐 더불어 천하사를 론의할만한 재목이 못되였다.

류충제가 나타났다는 소식은 마치 갈증에 시달리던 길손이 맑은 물소리를 들은것이나 같았다.

우사령은 신뒤축을 꺾어신으며 안마당을 가로질러 앞마당으로 나갔다. 때마침 엄엄한 위병소가 있는 대문간쪽에서 족도리같은 모자를 쓰고 비단다부산자를 입은 류충제를 당직장교가 안내해 들어왔다.

우사령은 달려나가 두손을 맞잡고 거퍼 머리숙여 절하며 반갑게 인사를 하였다.

《류충제선생께서 이렇게 래림하실줄을 몰랐소이다. 그간 옥체건강하셨소이까?

《나는 건강하거니와 사령님께서도 갈수록 건강이 좋아보이니 참으로 다행한 일이외다. 그간 국사를 위하여 얼마나 수고가 많으십니까?

류충제는 비단다부산자소매사이에 두손을 맞잡고 연신 허리를 굽혔다.

《그런데 어떻게 먼길을 걸어나왔소이까?

한참 인사가 끝났을 때 우사령은 류충제의 행장이 너무나 단출한것이 이상하여 물었다.

《돈화에서 여기까지 걸어서야 어떻게 나오겠습니까? 이 앞까지는 마차를 타고왔는데 그다음은 요소요소에서 파수들이 지키고서서 마치 죄인다루듯 하는판에 마차를 탈수가 있어야지요. 내 이번길에 우사령의 위명이 얼마나 무서운가 하는것을 통절히 느꼈소이다. 허허허.

류충제는 스스럼없이 웃었다.

우사령은 당장에 얼굴이 벌개졌다.

《아니 나를 찾아온다고 했는데도 마차에서 끌어내리더란말이외까?

《더 이를 말씀이외까? 안도땅에 비록 백만호가 있다 한들 이 류충제가 지기로 삼은 사람은 오직 우사령 한분이라 이 소란한 시절에 옛 정의가 하도 그리워 이처럼 먼길을 떠나와가지고 우사령의 진영에서 우사령의 이름을 대지 않을 법이 있겠소이까?

《괘씸한것들!

우사령은 안마당으로 들어가던 발걸음을 멈추어세우고 부하들을 향해 소리쳤다.

《오늘 근무를 선것들을 죄다 불러서 조사해보고 그가운데 귀한 손님을 소홀히 대한자들은 장교, 사병을 가리지 말고 영창에 쓸어넣으라.

《아하, 사령님께서 이러지 마십시오.》 하고 류충제는 우사령의 소매를 잡고 가만히 속삭였다.

《나를 생각하여 이러신다면 제발 이제 명령을 철회하시든가 아니면 나를 돌려보내든가 해주시우. 내가 량강구에 들어오면서 벌써 우사령휘하 장병들의 위세가 당당하고 그 군률이 엄엄함을 보고 속으로 과시 우사령이구나 하고 존경하는 마음이 간절할뿐이였는데 나로 인해서 사령님의 명령을 충실히 집행한 군사들을 벌한다면 장차 그들이 싸움터에서 어찌 우사령의 군령을 충실히 받들기를 바라겠소이까. 나는 내 일신의 수고보다도 우사령과 그 휘하장병들이 나라와 백성을 위하여 공을 세우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간절하기에 한갖 졸병이 으르딱딱거릴 때도 예, 예 하고 마치 저자의 천한 장사군이 길림독군이라도 만난듯이 굴었소이다. 다른것은 그만두고 내가 타고온 마차안에 무엇을 좀 가져온것이 있으니 군졸을 시켜 그것을 날라오게 하고 말먹이를 좀 내주게 하면 되겠소이다.

류충제는 손세를 써가며 좀 과장된 표현으로 우사령을 달래였다. 그의 말속에는 엇구수한 맛도 있고 은근히 격동시키는 선동력도 있고 또한 오랜 교원생활에서 터득된 설득력도 있어서 우사령은 인차 성미를 눙쳤다.

일시 긴장되였던 우사령의 측근부하들도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우사령은 호기를 부려 참모들과 대대장들을 함께 살림집으로 청하고 한편으로는 류충제선생을 환영하는 연회를 준비시켰다.

류충제가 가지고온 선물도 그 자리에서 공개되였다. 돈화특산품인 진주팔찌 한조와 산삼 두뿌리가 정교하게 세공된 라전칠함속에서 나오자 군복을 입은 축들은 입을 쩍 벌렸고 우사령의 마누라는 거의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다. 거기에 또 술 한말을 오지병에 갈라넣어가지고 왔다. 이 모든 물건들은 다 서향이가 마련한것이지만 류충제는 그런 내색을 전혀 보이지 않고 그저 약소하나 성의이니 받아달라고 극히 겸손하게 말하였다.

우사령은 감격하여 연신 류충제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궁도에 지기를 알아본다는 말의 참뜻을 알겠소. 요즘같이 어수선한 세월에 옛 정의를 잊지 않고 먼길을 찾아와준것만 해도 감격스러운데 이처럼 나라에 진상할 극상등선물까지 마련하였으니 참으로 이런 우정이 어데 있겠소. 류충제선생이야말로 고금에 드문 신의의 모범이요.

우사령의 말에 박수갈채가 터져올랐다.

연석에는 기름진 안주와 향기로운 술이 넘치고 아름다운 말이 도도한 흐름을 이루어 거침없이 흘러나왔다.

우사령은 술에 취하여 류충제의 허리를 그러안고 연신 자기의 변함없는 신의를 맹세하였다. 류충제는 곧 자기이며 류충제를 노엽히는것은 곧 자기를 노엽히는것이라고 말하였다. 그의 부탁이나 청이면 목숨을 내놓는 한이 있더라도 기어이 들어줄것이라고 맹세하였다.

류충제는 거나하게 취해서 일이 순조롭게 될것 같다고 내심 기뻐하였다. 다만 얘기를 꺼낼 계기가 오기만 기다리고있는데 마침 우사령이 슬픔에 떨리는 목소리로 하소연을 하였다.

《내가 스물전에 총을 들고 나서서 어언 20여년을 싸움터에서 보내니 내 가슴에 피멍이 들 슬픔을 한두번만 겪었겠소. 그런데 이번에 조선의 공산당원들이 내 부하들을 습격하여 똑똑한 장교들을 한꺼번에 네사람이나 쏘아죽인것과 같은 일을 당하기는 처음이요. 싸움터도 아닌 집안에서 이런 변을 겪다니 내 너무 원통하고 분해서 며칠은 침식을 전페하였댔소. 그중에는 내 다섯번째 동생아이까지 들어있단말이요. 류선생, 이 원한을 어떻게 갚으면 좋단말이요.

《그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외까? 내가 듣건대 조선사람들은 다 일제를 반대하고 그가운데서도 공산주의자들은 중국사람들과 힘을 합쳐 일본침략자들을 반대하자고 한다던데…》

《그건 모르는 말씀이요. 우리 중국땅에 일본놈들을 끌어들인것은 조선의 공산당이요. 작년에 만보산에서 있었던 사건을 보지 못했소이까? 내 년전에 라자구에 갔다오는길에 조선폭도들이 우리 중국사람들을 때려잡고 가산에 불지르는것을 똑똑히 보았소이다. 그들은 간사한 무리들이라 입으로는 별별 유리한 소리를 다해서 우리같이 어리숙한 중국사람들을 꼬여가지고는 사지판으로 끌고간단말이외다.

《허- 이게 무슨 말씀인지… 그래 사령님의 부하들이 공산당한테 해를 입었다는 무슨 증거라도 있소이까?

《있구말구요.

우사령은 열이 올라서 공산당테로분자들중 한놈이 사로잡혔는데 그놈의 몸에서 증거문건이 나왔다고 말했다.

류충제는 이미 김일성동지로부터 들은 말씀이 있는지라 별로 놀라지 않고 말했다.

《그거야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쉽게 날조할수 있는것이 아니외까? 증거라고 한다면 그 습격만행에 참가한자의 자백이 있다든가 아니면 객관적으로 그자들을 공산당으로 증명할만한 자료들이 있어야지요. 내 생각에는 공산당에서 사령님과 같은 반일인사들과 련합할것을 열렬히 주장하고있는데 그들이 무슨 목적으로 그런 악착한 살인행위를 했겠는가 하는것입니다. 혹시 이것은 왜놈의 특무기관에서 조작한 음모가 아닐가요?

별안간 우사령의 숨소리가 높아졌다. 류충제를 바라보는 그의 눈길에는 사나운 불빛이 이글거렸다. 술기운까지 번진 그의 불깃한 눈알에는 증오가 끓어번졌다.

그는 술잔과 안주접시가 란잡하게 널린 상을 부서져라고 내리쳤다. 술병은 곤두박히고 접시들은 껑충 뛰여올랐다가 박산이 났다. 술과 안주가 뒤범벅이 된 술상처럼 화기롭던 술자리도 대번에 란장판이 돼버렸다. 우사령은 거치른 목소리로 웨쳤다.

《선생은 내앞에서 공산당을 두던하는데… 나는 여기서 류선생에게 경고해야겠소. 나는 이미 공산당을 두던하는자가 있으면 그자리에서 아무 수속절차를 거치지 않고 누구든지, 설사 대상이 자기 상관이라 하더라도 쏘아죽일것을 명령하였소. 이 명령은 부대안에서뿐아니라 주둔지역의 모든 주민들에게도 해당되오.

넓은 방안은 삽시에 공포분위기로 얼어붙었다. 류충제는 안색이 변하였다. 우사령의 말은 결코 술기운때문도 아니고 일시적인 흥분때문도 아니였다.

류충제는 비로소 자기가 띠고온 사명이 얼마나 중대하고 또 얼마나 어려운것인가 하는것을 사무치게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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