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서《불멸의 력사》

  장편소설

 

                         석윤기

(제26회)

제 2 편

 

22

 

안영호는 자기가 빚어낸 끔찍한 참극을 잊어보려고 만이틀동안 술을 퍼마시며 두문불출하였다. 그러나 곤두서는 량심의 몸부림은 달래일수 없었다. 그럴수록 무작정 술을 퍼마셨다. 식구들이 번갈아 말렸고 마감엔 새각시인 안해가 술을 더 가져오라는 성화같은 독촉에 얼굴을 싸쥐고 울었다.

보위단에서 차기득이가 몇번이나 찾아나왔지만 그는 움직일 차비를 안했다.

《그럼 어떻게 하라는건가요?

차기득이도 짜증을 내며 말하였다. 《지금 박일보네 집에서뿐아니라 동네사람들모두가 우리를 가만두지 않겠다고 벼른단말이우다. 우리 보위단에서도 공기가 좋지 않수다.

《뭐야?

안영호는 사납게 반문하고나서 눈을 지릅뜬채 앉은자리에서 건들건들 졸았다.

차기득은 입맛을 다시며 물러날수밖에 없었다. 그의 푸르죽죽한 입술도 조갈이 트고 밭은 이마는 더 바싹 올리붙었다.

마침내 사랑방에서 안윤재가 아들을 찾아나왔다.

《넌 대체 무슨 일처리를 그렇게 하고 다니느냐?

안윤재는 술독에 빠졌다나온것 같은 아들의 모양이 보기 싫어 저쪽으로 외면하며 물었다. 안영호는 그래도 애비앞이라고 전에없이 무릎까지 가드라뜨리고 꿇어앉았다. 그러나 중심이 바로잡히지 않아 언제 모로 넘어질지 모를 위태위태한 자세였다.

《내가 뭐 어떻게 한게 있습니까?

안영호는 방바닥의 한점을 내려다보며 가까스로 대척하였다.

《지금 동네가 소란스러워 못견딜 지경이다. 네가 박일보를 데리고나갔다가 죽였다는 말이 도는데 그건 어떻게 된 말이냐?

《그건 다 허튼소리란말입니다.

안영호는 한손을 쳐들어 강하게 부정하는 시늉을 해보이다가 몸이 옆으로 실그러지는바람에 이마를 상다리에 찧었다.

안윤재는 오만상을 찌프리고 소리쳤다.

《이 상 내가거라, 언제 가슴에 칼이 들어올지 모르는 형편에 술만 처먹다니… 시라소니같은놈!

안윤재는 무슨 결심을 내린듯 미닫이를 왁살스럽게 밀어제끼고 대청을 쾅쾅 구르며 마당에 내려섰다.

밤중에 안영호는 두번이나 토하더니 찬바람속에 한식경이나 서서 머리를 식히였다. 박일보네 집에서는 여전히 곡소리가 울려왔다.

《내 기어이 원쑤를 갚아주마.

안영호는 이사이로 낮게 중얼거렸다. 이틀동안의 독주때문에 살이 깎이여 칼날같이 사나와진 그의 얼굴에는 새파랗게 독이 풍기고있었다.

한밤중에 그는 총을 차고 말없이 집을 빠져나갔다.

이튿날 새벽이였다. 안윤재네 집 대문이 소리없이 열리더니 눈만 내놓고 목도리로 얼굴을 겹겹히 감싼 부금이가 빠져나왔다. 집안에서는 안영호가 끌어들인 보위단원들이 웅성거리고있었다. 부금은 대문에 기대서서 어둠이 그대로 얼어붙은것 같은 골목을 잠시 내다보다가 종종걸음을 쳐서 엇비듬히 마주서있는 정란이네 집으로 달려갔다. 오별장네 집은 괴괴한 침묵속에 잠겨있었다.

주먹을 들고 대문을 두드리려던 부금은 혹시 그 소리가 자기 집에까지 들릴가봐 허공에 손을 멈추었다. 가볍게 어깨를 대고 문을 밀어보았으나 끄떡도 하지 않았다. 어쩔바를 몰라 잠시 망설이던 그는 피뜩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 담장을 끼고 뒤울안쪽으로 종종걸음을 쳤다.

잎이 다 진 앙상한 수양버들 한그루가 막대기처럼 껑충하니 서있다. 부금은 나무밑을 더듬었다.  깡깡 얼어붙어서 무엇이나 쉽게 손에 잡히질 않는다. 한참 신고한끝에 돌맹이와 흙부스레기를 한줌 걷어쥔 부금은 담장안을 겨냥하여 하나씩 집어던졌다. 바로 그앞에 정란이의 방이 있었다. 다같이 엄한 부모와 어려운 오빠밑에서 장난궂은 소녀시절을 보낸 부금이와 정란이는 이런 방법으로 가족들 몰래 서로 만나서 나물바구니를 끼고 들에 나갈 약속도 하고 담장우에 손을 뻗쳐 오빠나 아버지 몰래 읽는 책들을 교환하기도 했었다.

돌멩이를 세개씩 던졌는데도 아무런 반응이 없어 좀 큼직한 얼어붙은 흙덩이를 집어던졌더니 와지끈하고 문짝이 미여지는 소리가 났다.

《누구야!

정란이의 맵짠 목소리가 울렸다. 부금은 가슴을 울렁거리며 이번에는 자그마한 돌멩이를 던졌다.

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미닫이를 열고 퇴마루에 나서는 기척이 느껴졌다.

《누구야?

이번에는 누가 들을가봐 조심스럽게 묻는 소리가 간신히 들린다.

《나야.

부금은 손에 남은 돌멩이를 버리고 벌써 곱아드는 손바닥을 털며 속삭였다.

《부금이냐? 무슨 일이야?

《좀 나오너라. 급한 일이 있어서 그래.

《무슨 급한 일?

《글쎄 얼른 나와. 아무도 몰래…》

잠시 응답이 없더니 미닫이가 도로 닫겼다. 부금은 나무밑에 쪼그리고 앉았다. 어쩐지 마음속이 쓸쓸하였다. 지금 정란이를 기다리는 그의 마음은 전같지 않았다. 둘사이엔 이렇다할 다툼질도 승강이도 없었지만 전날 스케트를 타러 함께 간 이후로는 왜 그런지 서먹서먹해졌다. 부금이자신도 이 집에 자주 발길을 하게 되지 않고 정란은 한번도 자기를 찾아온적이 없다. 그것이 최근에 동네에 형체없이 떠도는 어떤 분위기때문이라는것을 부금이도 느끼고있었다. 9.18사변이 터져 왜놈군대가 만주땅에 쳐들어오면서 세상은 살벌해졌다. 부강촌과 같은 벽지에도 총을 멘 보위단이 생기고 공산당을 잡아들인다고 사람들을 잡아넣고 치고받는 끔찍한 광경이 날에날마다 벌어지군하였다. 부금이에게는 그런 일이 왜 필요하고 누구에게 리로운것인지 도무지 리해할수 없었다. 더구나 그 일의 앞장에 나서서 그중 사납게 구는것이 자기 아버지와 오빠라는데서 그의 괴로움은 컸다. 오빠는 원쑤를 갚는다고 한다. 아버지는 가산과 집안을 지킨다고 한다. 그것이 어떻게 오빠의 원쑤를 갚는것으로 되고 가산을 지키는것으로 되는지 부금은 리해할수 없었다. 그는 그저 가뜩이나 왜놈들이 쳐들어와서 험악해진 세상에 왜 동네까지 부산스럽게 만들가 하는것이 안타까왔고 그런 가운데 동네에 단 하나뿐인 동무조차 사이가 벌어져가는것이 울고싶도록 슬펐다.

《무슨 일로 왔니?

버드나무아래 웅크리고 앉아 갈피없는 생각을 더듬고있던 부금은 어느새 소리없이 나타난 정란이가 이렇게 물어서야 흠칫 몸을 떨며 일어났다.

《얘 정란아, 큰일났다.

부금은 머리에 쓴 목도리끝을 꼭 붙잡고있는 정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뭘 그래?

정란의 목소리는 쌀쌀하였다.

《너희집에 누가 손님 왔니?

《아니.

《그럼 누구 소릴가?

부금은 의심쩍은듯 정란의 눈을 들여다보며 안타깝게 중얼거렸다.

《무슨 일이냐? 할 말이 있으면 어서 말해. 난 추워서 들어가야겠어. 집에 할 일도 많구…》

《넌 어쩌면 그렇게 랭정해졌니. 난 그래도 너희 집일이 걱정스러워 몰래 빠져나왔는데…》

부금은 울먹울먹한 목소리로 말했다.

《얘는 갑자기 왜 이래? 그럼 할말도 없이 새벽에 이렇게 서있는게 미친짓 같지 않니. 그리구 네가 별로 우리 집 걱정을 할건 없지 않니.

평소에 성미가 칼칼한 정란의 목소리는 더욱 맺고끊는듯이 박하게 울리였다.

부금은 기가 질려 잠시 고개를 숙이고 서있었다. 그러다가 힘없이 중얼거렸다.

《그렇구나. 이젠 너와 나사이는 다시는 가까와질수 없는 사이가 되였구나. 난 가겠어. 김일성이란분이 너희네 집에 있다가 오늘 아침 어디로 나간다고 하는데 난 혹시 그런분이 너희집에 손님으로 왔는가 했구나.

《얘.

하고 정란은 고개를 숙이고 돌아서는 부금의 어깨를 잡아세웠다. 그의 목소리는 전과는 달리 긴장을 띠고있었다.

《그건 무슨 소리냐. 좀 똑똑히 말해라.

《나도 그이상은 몰라.

부금은 돌아선채로 고개를 떨구며 소심하게 말했다.

《너도 보겠지만 우리 오빠는 요즘 좀 이상해졌어. 난 그때문에 너를 보기도 미안하구나. 난 이 방학이 빨리 끝나서 어서 학교로 돌아갔으면 좋겠어.

《학교에 돌아가면 마음이 편안할것 같니. 룡정은 너의 오빠같은 사람이 더 많다더라.

하고 정란은 격한 어조로 말하더니 이어 진정하고 물었다.

《그런데 김일성이란분에 대해서 누가 뭐라고 하던?

김일성이란 우리가 룡정에서 듣던 그 공산당 지도자가 아니냐? 그런데 그분이 부강촌에 왔는데 바로 너희집에 들렸다는구나. 우리 오빠는 그분을 잡겠다고 보위단원들을 내보내여 길목을 지키게 하고있단다. 오늘새벽에 너희집에서 누가 돈화쪽으로 떠난다고 그 차기득이가 와서 쑥덕거리더니 지금 준비를 하고있어. 난 아무래도 너희집에 온 손님인데 가만둘수가 없더구나. 그래 몰래 빠져나왔어. 그런 손님이 없다면 내가 공연히 덤볐구나.

부금은 돌아선채로 이렇게 말하고 반응을 기다렸으나 정란은 멍하니 서서 생각에 잠겨있었다.

그것은 실상 정란이에게도 너무나 충격적인 소식이여서 한순간 부금이의 존재를 잊어버린것이였지만 부금은 그 침묵에서 풀길없이 뭉친 적의를 느끼고 쓸쓸한 마음으로 동무곁을 떠났다.

정란은 타박타박 울리는 부금이의 발자국소리가 저만치 멀어졌을 때야 정신을 차렸지만 그때는 부금이의 모습이 이미 담모퉁이를 돌아서고있었다.

정란은 숨을 씨근거리며 입술을 감빨았다. 그는 부금이의 말을 듣자마자 그것이 바로 증손이에 대한 말이라는것을 깨달았다. 사실 정란은 증손이가 문자 그대로의 머슴군이 아니라는것은 진작 느끼고있었다. 딱히 어디서 그런 느낌을 받았는지는 그자신도 알길이 없었지만 아무리 허줄하게 차리고 막되게 굴어도 처녀인 그로서는 함부로 대할수 없는 그 어떤 기품과 위압이 느껴졌고 그를 데리고온 오빠의 거동에서도 류의해서 살펴보면 어색한것이 느껴졌다. 때로 정란은 무의식중에 그런 생각의 토막토막들을 추려내여 하나의 견해를 세워보려고도 하였으나 그것은 헛된 시도였다. 아무리 더듬어봐야 인상좋은 웃음, 누구에게나 정차게 구는 친절한 거동, 부지런하고 네일내일을 가리지 않는 근한 성미, 이런 막연한 현상들우에 굳이 이상한것을 보탠다면 이 겨울에 거의 날을 번지지 않고 산에 들어가서 나무를 해내리는것이며 전에는 집일에 손끝도 까딱 않던 오빠가 역시 산에 자주 드나들고 또 증손이와 자주 만나는 눈치가 느껴지는것이였다. 오빠의 성미가 전에없이 세차지고 동네에 야학을 벌려놓은것도 그러고보면 심상히 볼일이 아니였다. 그는 때로 기구한 운명에 쫓긴 고구려 미천왕이 비류강가의 어느 농사군집에서 머슴을 살다가 황성으로 돌아가기까지의 곡절많은 이야기를 그려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꿈많은 처녀가 외롭게 보내는 길고 지루한 겨울밤에 그려낸 환상에 지나지 않았다.

정란은 머리를 쳐들고 바삐 걸음을 옮겨놓았다. 어쩐지 자기 혼자 따돌리운것 같은 분한 생각이 났다. 오빠에게 분풀이를 하리라는 생각과 함께 한시바삐 진실을 확인하고싶었다.

수년전부터 동만의 청년학생들속에 그처럼 동경의 대상이 되여있던 유명한 청년지도자 김일성동지가 바로 자기 집 머슴 증손이라니-이런 기상천외의 일이 어데 있을것인가.

정란이가 두팔을 가슴에 모두어안고 흥분을 진정시키며 대문안에 들어서니 집안에는 너무나 일상적인 광경이 벌어지고있었다.

증손이는 함실아궁앞에서 버주기에 여물을 퍼담고있었다. 구수한 여물냄새와 함께 세차게 피여오르는 김을 피하느라고 저쪽으로 외면한 더부룩한 머리에 짚검불이 붙어있고 구부린 허리짬에 드러난 맨살은 퍼렇게 얼어있다.

정란은 방금까지 도사려먹은 마음이 저도 모르는사이에 김이 빠지는것을 느꼈다.

마침 안마당쪽에서 오빠 정혁이가 치솔을 입에 물고 기지개를 켜며 나왔다.

《오빠.

하고 정란은 옆으로 다가가서 새침한 목소리로 불렀다.

정혁은 한입 물었던 치약거품을 담장밑의 눈무지에 뱉으며 고개만 돌렸다.

《아이 또 아무데나…》

정란이가 잔소리를 할 차비를 하자 정혁은 듣기 싫다고 외면한채 바깥마당으로 걸어나갔다.

《아이 오빠.

정란은 황급히 그의 팔소매를 붙잡았다.

《왜 그래?

정혁은 비로소 볼멘 소리를 질렀다.

《오빠, 제발 소리치지 말아요. 저 오늘 우리 집에서 어디 먼데 가는 사람 있어요?

《있지.

김일성동지의 지시대로 미리 말발구가 떠난다는 말을 부모에게도 하고 보위단에도 알려놓은 정혁은 감출것도 없다는듯이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그게 누구예요?

정란은 또다시 긴장되는것을 느끼며 물었다.

《그건 왜 물어?

이번에는 정혁이가 눈을 똑바로 뜨고 되물었다.

《증손이지요?

《뭐야? 너 무슨 소리 들었구나? 너 어디 나갔댔니?

정혁은 누이동생의 손아귀를 무슨 바줄 휘감아쥐듯 움켜쥐고 도로 안마당 구석지로 끌었다.

《흥, 난 다 알아요.

끌려가며 이렇게 중얼거리던 정란은 그 한마디 말로써는 여태 속아살아온 자기의 분한 마음을 표현할길 없음을 안타깝게 생각하며 입술을 감빨았다.

한편 부금은 대문까지는 무사히 들어섰으나 자기 방문앞에서 오빠와 맞부딪치고말았다.

무심히 마당을 지나치려던 안영호는 성에가 내불린 목도리를 쓰고있는 부금을 보자 걸음을 멈추었다. 간밤부터 보위단제복에 혁띠로 허리를 졸라묶고 목갑총을 걸친 그의 행색은 겉보기부터 살벌했다. 지난 며칠간의 독주때문에 눈이 올빼미눈처럼 퍼렇게 꺼져들었는데 그속에서 송곳같이 날카로운 눈길이 찌르고들었다.

《너 어디 갔다오니?

안영호의 목소리는 첫마디부터 거칠었다.

부금은 당장 후려칠것 같은 그 목소리에 놀라 힐끔 돌아보았다.

《어디 갔댔냐말이다.

《왜 그래요? 바람쏘이러 갔댔어요.

부금이의 목소리도 전에없이 칼칼하였다.

《바람쏘이러?

하고 안영호는 누이동생의 수상한 행색을 아래우로 훑어보더니 다짜고짜로 따귀를 철썩 내갈겼다.

《이년, 바른대로 말해. 앞집에 갔댔지?

부금은 퇴마루에 머리를 박고 쓰러진채 잠시 기척이 없었다.

《말 안할테냐?

영호는 재차 발길질을 하려고 다리를 움씰거리다가 겨우 참고 헝클어진 머리카락채 뒤덜미를 잡아일으켰다.

부금은 피가 터진 입술을 다문채 가까스로 눈을 떴다.

안영호는 가슴이 철렁하였다. 그러나 내친김에 소리쳤다.

《바른대로 안댈테냐!

《오빠는… 미쳤어요.

부금은 이렇게 한마디 하고는 눈을 감았다. 눈귀로 가는 이슬이 내배였다.

《빌어먹을것!

안영호는 어쩐지 그 말 한마디가 자기의 과장된 도의심의 허위를 고발하는것만 같아 움켜쥐였던 부금이의 뒤덜미를 마치 잘못잡은 불달린 숯덩어리를 털어버리듯 놓아버렸다.

부금은 입귀에 번진 피를 한손으로 훔치며 눈물이 그렁해서 바라보았다.

《오빠, 제발 사람에게 악한짓을 하지 말아요. 모두 불쌍한 사람들이 아니예요? 오빠가 해치는 사람들은 모두 불쌍한 사람들이예요.

《뭐, 불쌍한 사람? 그럼 난 불쌍한 사람이 아니란말이냐. 나는 악한짓을 안당했단말이냐?

안영호는 악을 쓰듯 부르짖었다.

《오빠도 불쌍해요. 허지만 그 사람들이 오빠에게 무슨 해를 주었어요?

《너 도대체 그 사람들이란건 누구냐? 그걸 대, 그게 누구냐말이다.

《난 모르겠어요.

하고 부금은 고개를 숙이며 중얼거리듯 말하였다.

《그러나 오빠가 해치자고 하는 사람들은 다 좋은 사람들이고 불쌍한 사람들이군요. 생각해보아요. 오빠때문에 해를 입은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였어요? 그건… 오빠가 말하는 그 공산주의자하고는 너무나 다르지 않아요?

《너 어디서 무슨 말을 들었구나. 좋다. 이담에 보자.

안영호는 부금이로 해서 분명 무슨 사달이 났다는것을 확신하고 한번 주먹을 흔들어보인 다음 힝하니 바깥마당으로 달려갔다. 거기에 오늘 산으로 내몰려는 보위단원들이 기다리고있었다.

 

 

23

 

 

김일성동지께서는 한사코 앞을 막아나서는 오정혁을 뿌리치시고 발구를 메운 말을 동구길로 내모시였다.

정혁은 드러내놓고 말을 할수도 없는 집안에서 박두한 위험을 다 설명할길이 없어 같이 발구에 올라탔다.

어제 나무지게를 지고 산속에 들어가신 김일성동지께서는 바람결을 타고 그 골짜기에까지 들려오는 박일보네 집 곡소리때문에 반나절을 줄곧 괴로운 생각에 시달리시였다.

《이것은 무지와 몽매가 빚어낸 엄청난 비극이요.

그이께서는 안절부절 못하는 정혁의 무릎을 잡고 흔드시며 안타깝게 말씀하시였다.

《그런데 그 무지와 몽매의 비극이 동무와 내가 공작하는 이 부강촌에서 벌어졌단말이요.

이처럼 자책감에 잠겨 모대기시던 김일성동지께서는 비록 박일보가 그런 허망한 죽음을 당한것은 그자신의 잘못때문이고 그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은 안영호나 그 음모를 꾸민 왜놈특무기관에 있지만 이 사태의 진상을 밝히고 박일보의 불쌍한 유가족을 진정시켜야 할 책임은 우리 공산주의자들에게 있다고 하시였다.

우선 박일보의 시체를 찾아다 안장시켜야 하는데 그러자면 우사령과 친교가 있는 돈화의 류충제선생의 힘을 빌릴수밖에 없다고 하시면서 돈화에 나가실 결심을 하신것이였다.

오정혁은 그때부터 줄곧 그이를 만류하였으나 허사였다.

그런데 오늘새벽에는 또 정란이에게서 들은 말도 있어서 다시 완강하게 그이앞을 막아나섰으나 끝내 말발구는 동구길에 나서고말았다.

《그놈들이 이제는 눈치를 다 챘단말입니다. 그걸 부금이가 정란이한테 연통을 했다지 않습니까.

오정혁은 말고삐를 쥐신 그이의 손을 덧잡아쥐고 안타깝게 흔들었다.

《됐소. 알겠소.

하고 김일성동지께서는 정혁의 손을 슬그머니 밀어놓으시며 말씀하시였다.

《그렇다고 두려울건 없소. 사실 나는 그자들이 나타나지 않으면 내 발로 찾아가서라도 만나고싶었소.

《예?

정혁은 놀라서 엉거주춤 말고삐를 쥐였던 손을 놓았다. 어느새 말발구는 눈보라를 휘몰아올리며 푸르하강가에 나섰다.

《보시오. 박일보네 집 곡소리가 여기까지 따라오지 않소. 저 소리를 듣고서야 사람으로서 어찌 참을수가 있소.

김일성동지의 목소리는 격분에 떨렸다.

《불쌍한거야 사실이지요. 그러나 어찌 보면 그건 자업자득이라고 볼수도 있지 않습니까.

《어리석은 박일보의 립장에서 보면 그럴수도 있소. 자기의 계급적처지도 민족적립장도 모르고 원쑤의 간계에 넘어간 박일보나 그 동료들이 혁명에 끼친 손실에 비추어보면 응당 징벌을 받아 마땅하다고도 볼수 있소. 그러나 다른편으로 생각해볼 때…》

김일성동지께서는 말씀을 잠간 중단하시고 목을 둘러감은 목도리를 끌러놓으시였다. 돈화까지 단숨에 달려가실 차비로 단단히 싸맨것이 지금은 가슴에 끓어번지는 열때문에 갑갑해 못견딜지경이시였다. 그이께서는 말씀을 이으시였다.

《세상에 자기의 계급적립장과 처지를 자각못한 사람들이 박일보 한사람이겠소? 그래 그 모든 사람들이 어리석었던 죄로 하여 죽어야 옳단말이요?

공작상 필요때문에 늘 격정의 밑바닥에 눌러두지 않으면 안되였던 김일성동지의 목소리는 동네를 벗어나자 거침없이 높이 울리였다.

《그러나 박일보같은 경우가 흔하겠습니까.

오정혁은 어디서 보위단의 매복이 뛰쳐나올지 모르는 이 길을 기어이 막아야 하겠다는 생각때문에 그이의 말씀에 깊이 끌려들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렇소. 물론 이 일은 적들의 악랄한 간계에 걸린만큼 그리 흔한 일은 아닐거요. 그러나 어쨌든 일은 벌어졌소. 동무나 내 눈앞에서말이요. 나는 저 곡소리를 무심히 들을수 없소. 저 곡소리를 들으면서는 밥도 먹히지 않고 잠을 잘수도 없소.

김일성동지의 목소리가 너무나 격하게 울리는바람에 오정혁은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말을 찾을수 없었다. 더구나 어떻게 이 길을 막을것인지 아무런 궁리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자들이 나를 잡기 위하여 길목을 막고있다니 차라리 잘됐소. 나도 그자들을 만나보고 돈화로 나가겠소. 내가 류충제선생을 설복해내겠는지도 모르겠고 또 설사 류충제선생이 움직인다 하더라도 우사령이 그의 말을 들어주겠는지 지금은 알길이 없소. 만일 내가 이 일에서 성공하지 못하면 우사령이 부강촌을 몽땅 쓸어버리자고 할수도 있소. 그러나 우리로서는 해야 할 일을 다 해야 하오. 크지도 않은 동네에 이런 불상사가 나서 곡소리가 온 동네를 진동하는데 태반의 사람들은 어리석어서 그런다 치고 선각했다고 자처하는 우리들로서 모든 책임을 그들의 어리석음과 안영호의 편협한 복수심에 밀어맡기고 먼산의 불보듯 할수는 없단말이요. 그것은 사람의 도리가 아니요.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성의를 다하면 원쑤의 간계를 뒤엎고 부강촌의 정세를 뒤집을수도 있단말요. 우리는 진실을 가지고 마을사람들을 각성시켜야 하오. 정혁동무는 어서 돌아가서 조직에 받을 동무들과의 사업을 결속해야겠소. 어서 돌아가오. 내가 돈화에서 돌아오는 날 곧 부강촌에 조직을 내와야 하오. 그 길로 나는 동네를 떠나겠소.

오정혁은 이미 김일성동지의 결심이 움직일수 없이 확고하다는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이의 말씀대로 돌아갈수도 없었다. 일이 이렇게 된바에는 그이를 호위하여 자신도 돈화까지 갈밖에 없다고 마음을 다지였다. 그럴바에는 송남칠에게 뒤일을 부탁하고 올것을 그랬다는 생각도 들었다.

《자, 어서 내리오.

김일성동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며 말고삐를 잡아당기시였다. 그러나 오정혁은 재차 그 말고삐를 채며 《끼랴!》 하고 소리쳤다.

《정 그렇다면 나도 함께 가겠습니다.

발걸음을 멈추려던 말은 입귀를 아프게 파고드는 자갈을 짓씹으며 비명같은 소리를 지르더니 모둠발로 뛰기 시작하였다.

《웬일이요?

김일성동지께서 엄하게 돌아보시였다.

《나도 돈화까지 가겠습니다.

오정혁은 앞만 바라보며 계속 말고삐를 잡아챘다.

《동네에 할 일이 많은데 무엇때문에 동무가 돈화까지 간단말이요. 내리시오.

《못내리겠습니다. 내가 변변치 못해서 김일성동지를 이런 험한 동네에까지 나오게 했는데 이제 눈앞에 닥친 위험을 두고 나더러 발길을 돌리라는것은 평소에 김일성동지가 우리를 교양한 혁명적의리에 맞지 않습니다. 나는 이 위험이 가시기전에는 김일성동지의 곁을 떠날수 없습니다.

오정혁의 목소리는 격정에 떨리고있었다.

《사람두…》

김일성동지께서는 어이없으신듯 허거픈 소리를 내시더니 말씀을 이으시였다.

《그렇게 생각이 외곬으로만 뚫려서야 어떻게 복잡하고 곡절많은 혁명의 길을 한평생 걸어가겠소. 위험은 없소. 아무런 위험도 없단말이요. 우리 혁명이 맞서고있는 준엄한 현실과 진짜 원쑤들의 어마어마한 반혁명적계책에 비추어볼 때 또 세차게 흘러가는 우리 혁명의 도도한 흐름에 비추어볼 때 안영호같은게 다 뭐겠소. 그건 비구름을 차고 하늘로 치달아오르려는 룡을 향하여 분수없이 이를 가는 한낱 미꾸라지같은 존재에 불과하단말요. 그러니 마음 푹 놓고 내리오.

그러나 오정혁은 그이의 말씀을 못들은듯 말고삐만 채다가 불의에 낯색이 변하였다.

길이 구붓하게 휘여든 산자드락에 우등불이 피여오르고있었다.

길우에는 벌써 두놈의 보위단원이 총대를 뻗쳐들고 서있다.

오정혁은 그놈들에게서 눈길을 떼지 않은채 옆구리를 더듬어 권총의 안전장치를 풀었다.

김일성동지, 제발 여기서 내려주십시오. 저놈들은 내가 처리하겠습니다.

《처리는 무슨 처리, 그 총은 걷어치우시오.

이렇게 엄한 목소리로 눌러놓으신 김일성동지께서는 어느새 오정혁의 손에 잡힌 말고삐를 잡아채시며 채찍을 휘두르시였다. 말발구는 눈가루를 휘감아올리며 밋밋한 산자드락으로 치달아올랐다.

《어쩌자고 이러십니까?

《어쩔게 있소. 내 저놈들을 그냥두지 않겠소.

김일성동지께서는 발구우에 한절반 일어서시여 한손으로 말고삐를 채고 한손으로는 연신 채찍을 휘두르시였다.

우등불둘레에 웅기중기 둘러앉았던 네댓놈 되는 보위단원들이 우뚝우뚝 일어서고 저아래 길목을 지키고있던 두놈의 보위단원들도 무슨 비명같은 괴상한 소리를 지르며 산자드락으로 치달아올라왔다.

총대가 한꺼번에 여섯자루나 뻗치고선 우등불앞에 가서 말발구는 눈가루를 휘뿌려던지며 멎어섰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침착하게 말고삐를 사려서 발구채에 감아놓으신 다음 채찍을 들고 천천히 우등불곁으로 다가가시였다.

《당신이 날 잡으려고 기다린다는게 사실이요?

김일성동지께서는 표표한 기상으로 앉아있는 안영호를 향하여 곧바로 말씀하시였다.

《그렇소. 이제는 정체가 드러났다는것을 깨달은 모양이요? 제발로 찾아왔을 때는…》

안영호는 버릇대로 이기죽거리였다.

《뭐 어쩌는수가 없소. 당신이 하도 눈을 밝히니 감추어내는수가 있어야지. 그래 당신이 날 잡아서는 어떻게 하자는거요?

김일성동지께서는 채찍을 옆구리에 끼시고 우등불에 두손을 내대시며 무슨 의논이라도 거시듯 부드럽게 물으시였다.

오정혁은 긴장된 나머지 입안이 바싹 말라들었다. 방금 발구우에서 하시던 그이의 말씀으로 미루어보아 저렇게 부드러운 어조는 그야말로 폭풍을 배태한 정적인것이다. 저 부드러운 목소리밑에 천지를 들었다놓을 분노가 깔려있다는것도 모르고 안영호라는자는 분수없이 경망한 혀바닥을 놀리고있지 않는가. 오정혁은 저도 모르는 사이 다시금 옆차기의 권총을 더듬었다.

《당신을 잡아서 어떻게 하겠는가구? 하하하, 매우 흥미있는 질문이요.

하고 안영호는 딴에 호걸웃음을 터뜨리며 거들먹스럽게 말했다.

《자기말로가 궁금한 모양인데 이렇게 된바에는 못대줄것도 없소. 사실 공산당의 수령인 당신이 한개 촌보위단에 잡힌다는것은 좀 억울할수도 있겠지만 어찌겠소. 호랑이가 아이들의 덫에 걸릴수도 있단말이요. 결국 당신이 우리 부강촌같은 동네에 발길을 들여놓은것이 잘못이지. 그래서 이렇게 내 손에 걸려들었는데 나로 말하면 공산당에 대한 원한이 골수에 사무친 사람이요.

《최태현이한테 롱락당했다는것말이요?

김일성동지께서는 침착하게 물으시였다.

《다 아는구만. 그러니 서로 긴말을 할 필요가 없어서 더 좋군. 그래서 나는 내 원한을 푼 다음 당신을 우사령부에 넘겨주겠소.

안영호는 어쩐지 김일성동지의 너무나 태연자약한 태도에 위압되여 초조감이 치받쳤으나 부하들이 보고있는데 격이 떨어질것 같기도 하고 또 엄연히 총이 내 손에 있는데 두려울게 없다는 신심도 있어서 억지로 허세를 부렸다.

《그건 잘 생각한 일 같지 않소.

하고 김일성동지께서는 여전히 침착한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첫째로 당신은 나한테 풀어야 할 아무런 원한도 없을거요. 내가 공산주의자이기때문에 당신이 최태현이한테서 받은 불행의 앙갚음을 한다는것은 얼토당토 않소. 최태현이는 공산주의자가 아니며 당신이 중학생때 흉내를 낸것은 공산주의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화투장으로 신수패를 떼는것과 같은 소부르죠아인테리들의 심심풀이에 지나지 않소. 지금 최태현이는 중국관내에 들어가서 당신이 하고있는것과 비슷한 공산주의자흉내를 내고있소. 공산주의자란 몇권의 좌익서적을 읽었다고 해서 다 되는게 아니요. 그것은 공산주의위업을 위해서, 근로인민의 해방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치는것을 의미하오. 그래 당신이 공산주의를 위해 바친게 뭐 있소?

《내가 공산주의를 위해 바친것은 없다치고 지금 내가 무슨 공산주의자흉내를 내고있다는것은 무슨 말이요?

안영호는 저도 모르게 발끈해서 소리쳤다.

《당신이 문건과 삐라를 가지고 조선공산당원으로 가장해서 우사령부의 장교들을 사살한게 사실이 아니란말이요? 박일보가 우사령부의 병영앞에 공산당원이 되여 매달려있는게 사실이 아니란말이요?

《뭐, 뭐…》

안영호는 삽시에 낯색이 해쓱하게 질려서 벌떡 일어났다.

김일성동지를 에워싸고있던 보위단원들도 눈이 휘둥그래졌다.

《나쁜놈!

김일성동지의 입에서는 마침내 분노로 뭉친 규탄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네놈이 나를 우사령부에 데려간다면 우사령은 네놈부터 각을 뜨자고 할것이다. 네가 갈길은 왜놈의 특무한테 가는길밖에 없다. 내 그래서 불쌍한 박일보의 부모들을 위하여 박일보의 시신이라도 찾아주자고 나선 걸음에 너를 돈화의 왜놈들에게 데려다주겠다. 가겠느냐?

《모두 뭣들 하고있어! 체포해라!

안영호는 권총을 내들고 부하들에게 호령하였다.

그러나 보위단원들은 아직 증손이가 그렇게도 유명한 공산당 수령이라는 너무나 놀라운 사실에 얼떨떨해있는데다 눈앞에서 벌어진 사태가 그들의 상상을 뒤집어엎어서 처신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있었다. 거기에 불줄기가 쏟아지는것 같은 김일성동지의 눈빛과 위엄찬 목소리 그리고 칼로 베는듯 한 말씀의 선명한 론리에 위압되여 손발이 가드라져서 옴짝달싹을 못하였다.

《되지못한놈!

김일성동지께서는 채찍을 들어 안영호의 정수리를 면바로 겨누시였다.

《네가 한갖 철없는 중학생으로서 책 한권도 변변히 읽은것이 없는 주제에 감히 천하의 일에 간참하려 들고 기갈이 든 인민을 위하여 물 한모금을 떠바친 일이 없이 무위도식으로 제 일신의 안락만을 일삼아온 주제에 오늘은 감히 제 개인의 분풀이를 위하여 수많은 애국자에게 고통을 주고 나라를 광복할 싸움에 걸음마다 덫을 놓으며 마침내는 불쌍한 사람의 목숨을 희생시키고 나아가서는 왜놈들과 한패가 되여 조선사람과 중국사람사이에 전쟁이나 다름없는 류혈의 싸움을 빚어내였으니 네놈의 죄상을 일일이 꼽는다면 온 겨레가 달라붙어 네놈의 살점을 저며낸다 하더라도 오히려 죄가 남을것이다. 네 아무리 배운것이 없고 철이 없다 하더라도 이 엄청난 죄과앞에 몸서리가 쳐지지 않느냐!

안영호는 그이의 추상같은 목소리에 부들부들 살을 떨었다. 공포에 질린 그는 보기 흉하게 입귀를 이지러뜨리며 고래고래 소리질렀다.

《체포해라! 뭣들 하고있어! 어서 체포해!

《아직도 정신을 못차리겠느냐!

그이께서는 산천을 들었다놓는것과 같은 호령소리와 함께 발을 탕 구르시였다.

안영호는 얼결에 뒤로 비칠거리다가 강낭뿌리에 걸려 한쪽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그러나 인차 일어설 엄두를 못내였다.

《네가 공산주의자를 알기는 하느냐? 왕청 북하마탄에서 반동들에게 체포된 공산당원 김무동무는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손칼로 제 목을 찔러 혁명의 절개를 지켰다. 두도구의 녀공산당원 홍혜순동무는 아이를 업은채 총살을 당하면서도 혁명을 배반한 말 한마디를 하지 않았다. 홍혜순동무는 스물네살에 죽으면서도 전혀 슬픈 기색을 내지 않았다. 제 목숨을 마치면서도 희생이 된다고 생각지 않는것이 공산주의자이다. 네가 감히 공산주의를 아느냐? 공산주의는 너의 원쑤라고… 지금 너같은 무리들때문에 3,000여명의 공산당원들이 부당하게 체포되여있고 그중 수십명이 이미 야수적고문때문에 학살당했다. 이 천인공노할 만행에 너 안영호도 가담하였다는것을 똑똑히 기억하라!

안영호의 얼굴에는 감출수 없는 공포의 빛이 떠올랐다.

 김일성동지의 말씀을 자네들도 잘 새겨들어야 하네.

하고 오정혁이 앞으로 나섰다.

《기득이, 영택이, 자네들도 박일보를 죽이는 그 음모에 가담했지? 자네들이 우사령부의 장교들을 쏘아죽였지?

오정혁의 목소리도 비수처럼 날카로왔다. 차기득이와 영택이는 얼굴이 꺼멓게 죽어들면서 비실비실 몸을 사렸다.

《난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공산당 잡으러 간다기에… 사실 사람을 죽인건 우리가 아니요.

차기득이 이처럼 얼없이 중얼거리자 오정혁이 다잡고들었다.

《공산당은 무슨 원쑤가 져서 잡으러 간단말이냐? 자네들 이 김일성동지를 보아라, 김일성동지는 지금 온 조선민족이 우러러 받드는 혁명의 지도자이시다. 그러나 우리 부강촌사람들이 너무 몽매하다보니 그들을 깨우치려 우리 동네에 들어와서 머슴을 살고계신다. 철없는 아이들과 분수모르는 녀편네들의 갖은 시중을 다 들어주며 마감에는 저 안영호같은놈의 잔치떡까지 쳐주면서 우리 동네에 야학을 내오고 굴뚝같은 골통을 가셔내려고 애를 쓰고있다. 상범의 어머니 병을 고쳐주려고 이 엄동설한에 언땅을 파헤쳐서 수수뿌리를 캐내여 세끼 약을 다려 대접하고있다. 이것이 공산주의자다. 지금도 저 안영호는 박일보를 내다죽이고 알은체도 안하지만 김일성동지는 그 부모들이 너무 불쌍해서 시신이라도 찾아오려고 이 위험한 길에 나섰다. 그래 자네들이 이런분에게 백번 절하고 은혜를 고맙게 생각할대신 길목을 지키고 체포하겠다는것이 도리에 옳은가.

《우리는 그 증손이가 그런… 분인줄이야 몰랐지. 그저 공산당이라니까… 허참, 공산당이 그런분인줄이야 알았나…》

얽슴얽슴한 얼굴을 한 보기에도 어리숙해보이는 보위단원이 안영호를 못마땅한 눈매로 돌아보며 저쪽으로 외면하였다.

차기득이는 깊이 고개를 떨구었다.

《그런데 량강구에 공산당을 잡으러 간다는것은 도대체 어떻게 된 감투끈이요? 이거 뭘 알기나 하구 벼락을 맞아도 맞아야 할게 아니요.

차기득의 말에 총대를 뻗치고 섰던 담차게 생긴 보위단원이 제 총대를 탁 쳐서 눕히며 불평조로 말했다. 안영호도 차기득이나 김영택이도 찍소리를 못하고 엉거주춤 서있기만 하였다.

안영호의 귀전에는 새벽에 부금이가 눈물 젖어하던 말이 선명히 울려왔다.

《…오빠가 해치자고 하는 사람들은 다 좋은 사람들이고… 오빠가 말하는 그 공산주의자하고는 너무나 다르지 않아요.

김일성동지께서는 어이없는 웃음을 터치시였다.

《그야말로 죄는 천도깨비가 짓고 벼락은 고목이 맞는다는격이요. 그래 말을 해보시오. 나를 잡아서 우사령부에 넘기겠소, 아니면 나하고 같이 돈화에 가서 왜놈특무들에게 나를 넘기겠소. 나를 달라는것은 우사령이 아니라 왜놈특무들이요.

《우리는 아무데도 안가겠시다. 가겠으면 안영호 저나 가라지요.

담차게 생긴 보위단원이 생각해볼것도 없다는듯이 이렇게 웨쳤다.

안영호는 절망적으로 소리쳤다.

《이 변절자같은 자식!

그는 공허하게 눈을 희번덕거리며 어쩔줄 몰라 쩔쩔매다가 권총을 내댔다.

그때 한팔이 뻗쳐와 안영호의 손을 꽉 움켜쥐고 권총을 비틀어 빼앗았다. 시종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있던 차기득이였다. 그는 천천히 안영호의 멱살을 움켜잡더니 눈이 희슥희슥하게 깔린 산비탈에 태질을 하였다.

《이 악착한놈! 너때문에 우리 동네가 다 망했다. 이제는 너 죽고 나 죽자.

그는 술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며 안영호를 다시 덮쳤다.

보위단원 넷은 말릴 궁리도 않고 총대를 지팽이삼아 짚고서서 멍하니 구경하고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처참한 그늘이 비껴있었다.

《무서운 비극이요.

이렇게 외이시는 김일성동지의 목소리에도 처절한 음조가 비껴있었다.

그이께서는 천천히 발구를 행길로 끌어내리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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