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서《불멸의 력사》

  장편소설

 

                         석윤기

(제25회)

제 2 편

 

20

 

김책은 기다리기에 지쳐서 발구길까지 나와 서성거리다가 차광수의 모습이 저만치 나타나자 서둘러 마중을 나왔다.

《왜 이런데까지 나왔습니까? 사람의 눈에 띄울수도 있고 또 찬바람을 쐬면 좋지 않겠는데요.

차광수는 그의 초조한 마음이 짐작될수록 김일성동지를 만나지 못하게 됐다는 말을 어떻게 할가 하는것이 벌써부터 걱정스러워 좀 근엄한 어조로 말했다.

《허허허, 량해해주시오. 몸이 약해져서 그런지 암만해도 마음을 진정시킬수가 없군요. 내 잘하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은 하면서도 어느새 이 길까지 나와버렸습니다. 그래 김일성동지를 만나뵈웠습니까?

김책은 소탈하게 자기비판을 하면서도 다시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여 물었다.

《만나뵙고 오는 길입니다. , 산막으로 갑시다. 가서 이야기합시다.

《그래요?

하고 김책은 좀 게면쩍은 웃음을 입가에 짓고 어줍은 어조로 말했다.

《실은 차동무가 오면 그길로 따라서자고 산막집 로인에게 인사까지 하고 나왔지요. 역시 소부르죠아적인 조급성인가요?

차광수는 기가 막혀 너무나 진지한 김책의 얼굴을 돌아보며 걸음발을 늦추었다. 나이는 불과 두살 맏이라는데 워낙 뼈대가 굵고 외모부터 근엄한데다가 감옥살이에 덧친 어혈때문인지 퍽 겉늙어보이는 축이였다. 그런 사람이 마치 10대소년같은 초조감을 가지고 김일성동지를 만나뵈올 시간을 손꼽아기다린다고 생각하니 자기라는 인간이 너무나 몰인정하게 생각되였다. 그러나 한두마디로 서뿔리 비칠 말도 아니여서 그 말은 못들은체하고 다시 걸음발을 다우쳤다.

《산막주인령감이 그러는데 안도로 나가는 길에 부강촌이라는 반동소굴이 있다더군요. 어떻게 무사히 통과했습니까? 행인들은 모조리 잡는다던데요.

《바로 거기엘 다녀오는 길입니다.

차광수는 다시 기가 막힌 생각이 들어 뜻아니게 뚝뚝한 어조로 한마디했다.

《아니, 그건 어떻게 된 일입니까? 롱담이겠지요. 허허허, 혹시 관동군사령관의 증명서라도 가지고 다니는가요?

김책은 어처구니없다는듯이 중을 떠보았다.

《관동군사령관의 증명서따위가 뭐겠습니까. 실은 김일성동지께서 바로 그 부강촌에 계십니다.

차광수의 말이 롱담이 아니라는것을 깨닫자 김책의 눈이 비수처럼 번쩍했다.

《아니, 그건 무슨 말입니까? 설마하니…》

김일성동지께서 바로 그 동네를 혁명화하고 동만땅과 안도의 전반사업을 지도하시기 위해 아침에 나를 데리러 왔던 그 오정혁동무의 집에서 머슴을 살고계십니다.

김책은 대번에 기상이 험해지더니 차광수의 손목을 움켜잡았다. 감옥살이에 살이 다 빠져서 뼈만 남은것 같은 손인데 어찌나 아귀가 센지 바이스에 물린것 같았다.

《당신 똑똑히 말하오. 그래 혁명의 령수는 반동소굴에서 머슴살이를 하고 당신네는 신사차림으로 발구를 타고 다닌단말이요!

이게 너무나 기막힌 조선혁명의 현실이지요. 세계만방에서 다 혁명을 한다지만 혁명의 최고령수가 공작을 위하여 머슴살이를 한 실례는 없고 아마 앞으로도 없을것입니다. 김책동무, 이것이 우리 혁명의 현실이고 우리가 모시고있는 혁명의 지도자란말입니다.

차광수도 격해서 부르짖다싶이 말했다.

김책은 말없이 차광수의 얼굴을 뚫어질듯이 바라보더니 슬그머니 손을 놓으면서 낮으나 무게있는 어조로 말하였다.

《나는 아무것도 한일은 없지만 조선에 태여난 한개 공산주의자로서 당신에게 무엇때문에 이런 사태가 조성되였는지 그리고 혁명의 령수를 가장 위험한 반동소굴에서 머슴살이까지 하게 방치한 당신들의 립장은 무엇인지 해명해주기를 바라오. 나는 공산주의자로서뿐아니라 김일성동지를 우리 민족의 령도자로 받드는 한개 평범한 조선사람으로서 이것을 요구하오.

차광수의 대답여하에 따라서 당장 칼을 들고나설것 같은 험한 기상이였다.

《옳소, 질문 한번 잘했소. 그럼 내가 사태를 다 설명할테니 동무자신이 대답을 찾아내여보시오. 그리고 장차 우리는 이런 질문을 무수히 받게 되겠는데 앞으로는 동무가 력사의 그 질문앞에 대답해보시오.

차광수는 격해서 마주 부르짖고나서 부강촌에 조성되였던 사태와 지금 정황을 격렬한 어조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발구길에서 벗어나 산막으로 들어가는 오솔길에서는 나란히 걸을수 없으니 차광수는 길밖에 나서서 숫눈을 걷어차며 게걸음을 쳤다.

떠들썩한 목소리를 듣고 곰털등거리를 걸친 산막로인이 정지간문을 열었다. 가까운곳에 채벌장이 있을 때부터 일부러 산막을 꾸려놓고 산판인부들과 접촉해온 조직성원이였다.

로인은 먼길을 다녀온 차광수에게 뜨끈뜨끈한 정지간 아래목을 내주고 부엌에 내려가서 저녁차비를 하였다.

차광수는 비교적 긴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 저으기 마음이 가라앉아 침중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부강촌 한개 마을을 혁명화하는 문제만이라면 어떻게나 달리 해결할 방도도 있었겠지요. 그러나 명월구회의를 해놓고 당장 무장투쟁을 준비해야겠는데 그 전반사업을 지도하자니 동만과 안도의 련결점에 쐐기를 치고 들어온 바로 그곳에 혁명의 지도자가 나가지 않고는 안도의 사업과 동만각지를 비롯한 우리 혁명의 전반을 지도할수가 없었지요. 이게 말하자면 우리 혁명의 준엄한 현실이고 또 우리가 모시고있는 김일성동지의 풍모이지요. 김책동무의 뒤에 적의 특무가 달려있다고 할 때는 주저없이 김책동무를 만나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부강촌의 정세가 험해지자 자신의 신변이 위태롭다는 생각은 전혀 없고 이런데 김책동무를 데려와서는 안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그 눈구뎅이속에 우등불을 피워놓고 이처럼 장문의 편지를 써보내셨단말입니다.

차광수는 비로소 외투안주머니에서 네모나게 봉한 친서를 꺼내놓고 그우에 윤기 번들거리는 권총을 올려놓았다.

김책은 말없이 고개를 쳐들고 차광수의 눈을 살폈다. 총은 웬것인가 하는것이였다.

《읽어보시오. 읽어보면 다 알게 될겁니다.

하고 차광수는 시간을 주기 위하여 일어서서 외투를 벗어 말코지에 걸고 귀틀벽에 기대여 눈을 지그시 감았다. 사지가 매시시해지면서 까닭없이 서러운 생각이 치밀었다.

김책은 차광수의 설명을 듣는가운데 받은 충격이 너무 커서 한동안 권총과 편지를 함께 쥐고 어루만지다가 떨리는 손으로 봉한것을 뜯었다.

연필로 박아쓴 시원시원하게 흘러간 필체부터가 무슨 흡인작용을 하듯 그의 눈길을 끌어당겼다.

 

《김책동무,

여러가지 경로를 통해 동무의 소식을 듣고 꼭 한번 만나자고 했는데 이번에도 일이 여의치 않아 이렇게 한장 편지로 그리운 정을 대신하게 되니 내 마음을 리해해주기 바랍니다.

여러차례에 걸쳐 다년간의 옥중생활을 하였으니 건강은 물론 좋지 않겠지만 또다시 옥문을 나서자마자 혁명할 뜻을 굽히지 않고 투쟁선을 찾아다닌다는 소식에 접하여 충심으로 경의를 표하며 공산주의적인사를 보냅니다.

우리 함께 조선혁명의 완성을 위하여 손잡고 싸워봅시다.

지금 일제가 장기간의 준비끝에 마침내 9.18사변을 조작하고 전 만주땅을 강점했다지만 우리 혁명의 객관적정세는 결코 나쁘지 않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편지에서 조성된 정세와 조선인민이 진행해온 반일민족해방투쟁의 력사를 요약하시고 특히 최근에 이르러 그 투쟁이 폭동적성격을 띠고있는 점을 강조하시면서 이러한 정세하에서 앙양되는 대중의 폭력적투쟁을 조직화하여 무장투쟁에로 발전시키는것은 반일민족해방투쟁의 절박한 요구라고 지적하시였다.

《강도 일본제국주의침략무력을 격파하고 조국을 해방하기 위하여서는 맑스-레닌주의적전략전술에 의거한 조직적인 무장투쟁을 전개하여야 합니다.

조국의 해방을 누구에게 의탁하거나 구걸할수 없다는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 서로 목숨을 걸고 혁명에 나선것이 아닙니까?

계속하여 김일성동지께서는 일제의 만주강점으로 조성된 정세는 우리에게 대중적인 반일전쟁을 일으킬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것을 지적하시면서 그 근거로서 국민당통치의 와해와 일제통치기구가 아직 서지 못하여 전 만주가 무정부상태에 처하여있는 점과 중국인민들이 대중적으로 일어나 반일투쟁을 전개하고있다는 두가지 점을 드시였다.

《김책동무, 이처럼 정세는 오히려 우리에게 필생의 숙망을 실현할수 있는 조건을 성숙시켜놓고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때 우리는 즉시 무장대오를 조직하고 적의 무기를 빼앗아 자신을 무장하면서 자체의 무장력량을 확대발전시켜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조선의 국경지대와 광활한 만주의 유리한 자연지리적조건을 잘 리용한다면 적은 력량을 가지고도 적의 무력을 부단히 소멸약화시켜 최후승리를 달성할수 있습니다.

김책은 숨 한번 쉬지 않고 점점 눈을 더 크게 흡떴다. 가끔 으스레 저물어오는 뙤창가를 안타깝게 올려다볼뿐 그의 온몸은 그대로 편지지속에 빨려들것만 같았다. 마침내 그의 입에서는 중얼중얼 편지를 소리내여 읽는 소리가 울려나오기 시작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명월구회의에서 제시된 과업들을 요약해서 쓰시였다. 그중에서도 반일인민유격대를 조직하는 문제, 특히 그 성격과 조직방법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시고 다음과 같이 계속하시였다.

《사람과 무기는 무장력의 2대요소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방법으로 유격대를 무장시켜야 하겠습니까? 간단히 말해서 우리가 무장을 잡는 유일한 길은 우리의 손으로 원쑤들의 무기를 빼앗아서 자신을 무장하는것입니다. 우리는 이번 회의에서 <무장은 우리의 생명이다! 무장에는 무장으로!>라는 구호를 제기했는데 이러한 각오를 가지고 달라붙는다면 능히 자기가 멜 총은 자체로 해결할수 있을것입니다.

편지에는 계속해서 유격근거지를 창설하는 문제, 무장투쟁의 대중적지반을 닦을데 대한 문제 그리고 중국인민과의 반일통일전선을 잘 형성할데 대한 문제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시고 그 모든 과업들을 성과적으로 수행하자면 당조직사업과 공청사업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하시였다.

《김책동무, 나는 이상에서 우리가 명월구회의에서 토의결정한 기본내용들을 대체로 개괄했습니다. 내가 왜 오래동안 그리워하다가 모처럼 접촉이 이루어진 기회에 이처럼 긴 이야기를 썼겠습니까? 그것은 만일 김책동무가 우리의 견해에 찬성하고 명월구회의에서 우리가 결정한바를 지지한다면 그 내용을 기왕에 동무가 활동하던 북만땅에 가서 실천해달라는 부탁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허두에 이미 지적하였지만 우리는 무장투쟁을 조선의 국경지대에서 전개할뿐아니라 자연지리적조건이 유리한 광활한 만주의 도처에서 전개해야 합니다. 다른 민족군대의 지원도, 국가적후방도 없는 조건에서 맨손으로 그 누구도 걸어보지 못한 유격전쟁의 첫 걸음을 내디딘 오늘 한사람의 유능한 조직자, 혁명동지를 가지게 되는것이 나에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모릅니다. 나는 이러한 의미에서 북만에서의 유격대조직사업을 김책동무가 맡아주었으면 하는 희망을 가지고있습니다. 앞으로 북만에 조직될 유격대의 밑천으로서 내가 쓰던 한자루의 권총을 보냅니다. 우리가 구상하는 혁명의 대무력에 비해볼 때 이 한자루 권총은 너무나 약소한 감을 줍니다. 그러나 료원에 번지는 불길도 한점의 불씨에서 시작됩니다. 나는 이 총이 그러한 불씨가 되기를 희망하며 아울러 내가 김책동무에게 품고있는 혁명적우정의 신표로 리해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수차의 옥중고초에 상했을 건강을 특별히 잘 돌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의 투쟁에서 한사람의 유능한 조직자는 미래의 유격대대무력과 맞먹습니다. 자신의 몸을 개인의 몸으로 생각지 말고 간고하고 곡절많았던 우리 혁명의 최후승리를 위하여 진심으로 건강에 류의하시기를 바랍니다.

   혁명적경례

                          김 일 성

 

김책은 다 읽은 편지에 얼굴을 묻었다. 그의 어깨는 오열에 떨리였다. 가식없는 간명한 말속에 깃들인 김일성동지의 웅숭깊은 사랑과 깊은 리해에 목이 메여올랐다. 참된 인간이 평생의 지기를 만나면 그 자리에서 죽는것도 뉘우치지 않는것이다.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한목숨 바치자고 혁명의 길에 나서서 한걸음 내짚다가 감옥살이를 하고 두걸음 내짚다가 감옥살이를 하고 이렇게 피투성이 되도록 혁명의 가시덤불길을 걸어올 때 그 누가 김책의 심중을 리해해주었으며 그의 혁명적의지를 이처럼 값높이 사주었던가.

그는 편지에 전개된 생동한 사실과 선명한 강철의 론리, 글줄마다 맥맥히 굽이치는 조선혁명가로서의 긍지와 독창성에도 매혹되고 감동되였지만 아직 얼굴 한번 대한 일 없는 자신에게 혁명의 근본문제를 툭 터놓고 허심탄회하게 토론에 붙이시는 그이의 인품과 포옹력에 무조건적으로 머리가 숙어졌다.

구수하게 잘 퍼진 수수밥과 토장찌개를 올려놓은 개다리소반을 들고 산막로인이 올라올 때까지 김책은 생각에 잠겨있었고 차광수는 그의 사색을 방해하고싶지 않다는듯 귀틀벽에 등을 기댄채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저녁상을 물리자 격렬한 어조로 말을 시작하였다. 명월구회의에서 론의된 문제, 각지에서 무장대를 뭇고 무기를 빼앗아낸 실례들, 무장대에 받을 성원들을 적위대와 소년선봉대 혹은 로동자규찰대 같은 반군사조직을 통하여 단련시키고 검열한 경험도 소개되였다. 특히 김일성동지께서 각지에 내온 기층당조직들을 통하여 혹은 직접 육성하신 조선혁명군의 지도성원들을 파견하시여 유격전쟁준비사업을 통일적으로 지도해오신 방법에 대해서도 이야기되였다.

김책은 워낙 과묵한 사람이지만 한편으로는 속이 깊은 사람이라 일단 혁명에 관한 문제에 들어서서는 여간 끈끈하지 않았다. 그는 장차 자기가 홀로 사업에 부딪치게 될 경우를 생각하고 모든 문제를 밑창이 날 때까지 캐고들었다.

기나긴 겨울밤이 다 지새여 산속에 깊이 숨어있는 산막의 뙤창이 희연히 밝아올무렵에야 코구멍에 새까맣게 달라붙은 광솔그을음을 씻어내고 고콜불을 죽인 다음 자리에 누웠다.

눈이 깔깔해진게 드러누우면 인차 굳잠이 들것 같더니 정작 목침을 하나씩 나누어가지고 뜨끈뜨끈한 구름노전바닥에 등을 대니 다리만 쭉 뻗어질뿐 머리속은 새록새록 맑아지는것이였다.

《여보 차광수동무, 자오?

컴컴한 천정을 올려다본채 김책이 물었다.

《왜 그러오?

차광수 역시 같은 자세로 되물었다. 하루밤의 이야기끝에 두사람의 말투는 10년지기와 같이 변해버렸다.

김책은 어둠속에 차광수의 손을 더듬어쥐였다.

《아까는 내가 너무 격해서 그랬는데 량해하오.

《뭘말이요?

《무슨 말인지 못알아들었으면 됐소.

차광수는 그제야 발구길에서 김일성동지의 부강촌공작을 두고 목소리를 높이던 생각이 났다. 그는 피씩 웃으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사람두… 그따위 인사는 아주머니한테나 가서 하오. 혁명동지끼리 량해는 해서 뭘하오.

김책은 잠시 말이 없더니 혼자말처럼 중얼중얼 말하였다.

《당신네는 아직 젊어서 잘 몰라… 내가 당신보다 나이는 두어살밖에 더 먹은게 없지만 나는 간도공산당사건을 1차에서부터 4차까지 다 겪은 사람이요. 내가 27년에 간도공산당사건에 걸려서 한 3년 감옥살이를 하다가 나오니 원산총파업이요 광주학생사건이요 하고 도처에 폭동바람이 부는데 려비가 있어야지, 그래 공판때 나를 무료로 변호해준 허헌선생을 찾아가서 려비 1 20전을 얻어가지고 간도로 달려왔구만. 그때 나를 맞이한게 뭔지 아오? 아- 그건 피비린 땅이였소. 종파놈들이 애국심과 정의감에 불타는 우리 혁명가들과 인민들을 일제의 도살장으로 내몬 5.30폭동의 피바다였소. 나는 피눈물을 뿌리며 옷자락에 매달리는 처자권속들을 다 떼팽개치고 또 혁명의 길을 찾아떠났지. 녕안에 가서 돌아치다가 문득 카륜회의소식을 들었소. 당신은 그 회의에 참가했으니 내 심정을 모를게요. 나는 그길로 김일성동지를 찾아가려고 덤볐지. 그러다가 또 붙잡히고말았구만. 처음엔 할빈감옥에서 그다음 심양과 길림감옥에서 안타깝게 김일성동지를 그리워했지. 그런데 7년이나 역을 졌으니 언제 만나뵈옵겠소. 그러다가 이번에 이렇게 만나뵙게 됐단말이요. 인간이 공기의 혜택을 모르듯이 당신들은 늘 그분을 모시고있으니 혁명가들에게 있어서 진실한 지도자를 모시고있다는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가 하는것을 잘 모른단말이요.

차광수는 어둠속에 비죽이 웃었다. 김책은 이제 날이 새면 먼길을 떠나야 한다. 그렇지만 않다면 자기 역시 김일성동지를 만나기까지 동양3국을 헤매며 어떤 피눈물나는 길을 헤쳐왔는가 그리고 지금 안도와 동만땅 각곳에서 활동하고있는 청년공산주의자들이 다 어떤 길을 걸어서 김일성동지의 품으로 찾아왔는가 하는것을 터놓고싶었지만 그만두었다. 다만 김책의 고백은 그대로 이 차광수의 고백이기도 하다고 짤막하게 한마디 하고 그의 손을 더듬어잡았다.

《우리 서로 김일성동지를 잘 모시자.

이런 말없는 호소와 결의가 어둠속에 맞잡은 손과 손을 통하여 서로의 피줄속으로 오가는듯 하였다.

 

 

21

 

 

량강구의 거리는 살벌하였다. 군복소매에 상장을 단 우사령부의 반일병사들이 울분에 찬 눈길로 행인들을 쏘아보았다. 반일병사들에게 조금이라도 불순하거나 그들의 요구에 순종치 않으면 곧 공산당으로 인정되였고 우사령부의 장교들을 살해한 음모의 가담자로 인정되였다. 일반인민들속에서도 공산주의와 조선사람에 대한 감정이 격화되였다. 만일 행인들가운데 조선사람이라는것이 드러나고 더구나 의도적으로 중국옷으로 변장하였다는것이 판명되면 우사령부병사의 손을 빌릴것도 없이 모두매를 안길 형세였다.

안영호는 흥분한김에 량강구까지 단숨에 달려나오기는 하였으나 거리의 분위기가 하도 어마어마하여 적잖게 기가 꺾이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인공배양된 악감의 썩은 누룩덩이같은 그자들을 용서할수 없다는 의분이 그의 걸음걸이를 더 단호하게 만들기도 하였다.

소인방은 지난밤과 마찬가지로 그를 친절히 맞이하였다.

《나는 당신들에게 해명하고싶은게 있어서 왔습니다.

안영호는 소인방이 권하는 팔걸이의자는 돌아보지도 않고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우리도 해명하고싶은게 몇가지 있는데 피차 잘되였소. 어쨌거나 지금 당신의 신분이 다 드러나면 별로 재미가 없을듯 하니 떠드는것은 삼가는게 좋겠소. 그리고 점잖게 앉읍시다. 꼭 서서 해명할 문제가 생기면 그때 일어섭시다그려.

소인방은 창백한 얼굴에 쌀쌀한 웃음을 짓고 이렇게 말하며 다시한번 안영호에게 팔걸이의자를 권하였다.

네모난 상을 마주하고 놓인 그 팔걸이의자는 주인과 손님 두사람이 마주앉게 되여있는 자리였다.

지대현과 최용필은 서로 눈길을 마주치더니 누구에게라 없이 고개를 굽석하고 물러났다. 간밤에 짐작한대로 지대현이나 최용필이는 소인방의 한낱 종졸과 같은 존재에 불과하였다.

《그래 당신들은 무슨 목적으로 우리를 그 너절한 일에 끌여들였소? 우리를 속인 목적이 뭐요?

안영호는 솜을 두고 누빈 황갈색보위단복의 소매를 걷어붙이며 팔걸이의자에 일부러 거칠게 앉았다.

《허, 그건 이미 다 설명한것 같은데… 당신이나 나나 공산당을 반대해서 목숨을 내걸고 싸우자는 하나의 목적으로 결합된 사이가 아니요. 우리는 공산당을 없애는 일이라면 아무때나 뜻을 같이할수 있다고 말하지 않았던가요?

《난 당신한테 그런 말 한적이 없소.

《그건 나도 아오. 당신은 지대현씨에게 그렇게 말했지요. 나는 지대현씨와 일심동체라 지대현씨에게 한 말은 곧 나한테 한 말과 같이 생각하지요. 그래 당신의 생각이 오늘에 와서는 달라졌다는건가요?

소인방은 차거운 미소를 띠고 안영호의 격분에 후들거리는 모양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허튼소리 작작하오. 그렇다면 우사령부의 장교들을 사살한것은 무엇때문이요?

안영호는 상우에 한팔을 내짚으며 목청을 돋구었다.

《우리는 거기서 공산당원들의 모임이 있다는 확실한 통보를 받았던거요.

소인방은 선선한 표정으로 받아넘겼다.

안영호는 약이 오를대로 올랐다.

《여보, 당신 누구를 우습게 알고 이따위 수작이요! 그것이 우사령부장교들의 마장판이였다는것은 세상이 다 안다는데 당신이 그걸 몰랐단말이요?

《참 알고보니 그렇게 됐더군. 유감스럽게 됐소. 우리도 공산당이 모인다는 말에 흥분해서 좀 경솔하게 말을 옮긴감이 없지 않소. 그러나 당신네도 좀 심중해야 했을걸 그랬소. 이래나저래나 우리는 말을 한데 지나지 않지만 당신네들은 직접 사람을 죽이자는판인데 좀 신중했어야지요. 물론 이제는 깨여진 사발이니 새로운 말썽을 일으켜봐야 누구에게도 리로울건 없겠지만 어쨌든 사람의 목숨이 한둘도 아니고 쌍방이 다섯사람이나 죽였으니 공정하게 말해서 안영호씨로서도 깊이 반성해야 할 마당이라고 생각되오.

소인방은 말중간에 풀떡풀떡하는 안영호를 한손으로 가볍게 제지시키고 마치 배암이 참새새끼를 노려보듯 독기어린 눈길로 그를 위압하며 준비된 연설문이라로 읽듯 류창하게 말했다.

《개, 개자식! 우리는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

안영호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서 벌떡 일어나는참 옆구리에서 권총을 뽑아들었다.

《우사령부장교들을 쏘아죽인것은 네놈들이 아니냐? 도대체 네놈은 어떤놈이야. 당장 쏘아죽이고말테다!

소인방은 눈을 치떠 한번 얼굴의 아래우를 훑어보더니 시답잖게 말했다.

《앉으라구.

결김에 총을 뽑아들기는 하였으나 눈섭 하나 까딱앉는 상대를 보자 기가 꺾이였다. 그래도 그냥은 분을 가라앉힐수가 없어 권총자루로 상을 쾅 내리치며 소리를 질렀다.

《네놈을 쏘아죽이고말테다. 도대체 네놈의 정체가 뭐야?

《앉지 못하겠어!

소인방이 꽥 소리쳤다.

그러자 옆방에서 최용필이가 달려나왔다.

《소좌님, 불렀습니까?

《쓸데없는데 간참 말고 제 할일이나 해!

소인방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최용필을 내쫓았다.

안영호는 소좌라는 말에 정신이 떨떨해졌다.

《앉으라구. 그리고 그 장난감은 집어넣고…》

소인방은 다시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그리고는 골동기명들이 놓인 식탁밑에서 술 한병을 들고왔다.

《당신도 꽤 성미가 급하군. 일이 좀 꼬여서 신경에 거슬린 모양인데 어찌겠소. 큰일을 하느라면 작은 실수들도 있게 마련인게요. , 한잔 하고 기분을 가라앉히오.

소인방은 저쪽 차탁에서 차잔 두개를 한손으로 집어다 벌려놓고 술을 채웠다.

안영호는 시종 소인방의 거동만 쏘아보았다. 어딘가 배암같은 섬찍한 인상을 주었다. 방금 최용필이가 한 소좌라는 말은 무슨 소린가. 안영호는 점점 신경이 가드라들면서 이자앞에 서뿔리 나타난게나 아닌가 하는 위구심이 들었다.

소인방은 술잔을 거들떠보지도 않는 안영호의 태도에 대해서는 별로 타내지 않고 혼자 술 한잔을 기울였다.

《당신은 내가 누구인지 궁금한 모양인데 그게 특별히 비밀일것도 없소. 나는 관동군에 있는 니시자와소좌요. 그러나 나는 군직을 수치스럽게 생각하며 더구나 이런 음산한 놀음은 생리적으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요. 만일 인간이 자기 마음대로 자기가 하고싶은 일을 골라잡을수 있다면 나는 력사학자나 원예가가 됐을게요. 그러나 시절은 나를 공산주의의 길로 이끌었고 그다음은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가장 날카로운 전선에 나를 내다세웠소. 그것은 마치 당신이 순진한 좌익독서조의 성원으로부터 오늘 우사령부의 일선장교들을 일거에 네사람이나 암살한 부강촌의 보위단 단장으로 된거나 같소. 당신은 그 우사령부 장교들에 대해 아무런 개인적원한도 없고 또 우사령부의 장교들로 말해도 명목없이 살해돼야 할 근거는 없소. 그들이 사회로부터 비난을 받아야 할 일을 했다면 군복을 입고 밤낮 도박판을 벌렸다는것과 시대착오적인 반일전쟁에 가담하였다는것뿐이요. 그러나 우리의 숭고한 반공리념을 성취하자니 우사령부병사들을 반공의 길로 내몰기 위한 제물로 만들지 않을수 없었던거요. 영원한 대의를 위하여 소아를 희생하는것은 떳떳한 도리요. 뭐 크게 가슴아파할건 없소. , 술이나 한잔 들고 가슴의 아픔을 진정시키오.

안영호는 무릎다리가 안정을 잃고 후들거리는것을 느끼며 지그시 주먹에 힘을 주었다.

그는 앉으라는 거듭되는 권고도 들은척않고있다가 그닥 적당치 못한 계기에 부자연스럽게 걸상에 앉았다. 무릎마디가 떨려나서 선채로는 몸의 중심을 잡기가 힘들었던것이다. 앉으면 몸이 떨려나는것을 좀 감출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으나 움켜쥔채로 상우에 올려놓은 권총이 가락맞게 달가락소리를 내였다. 안영호는 온몸에 소름이 끼치는것과 동시에 자기라는 인간에 대한 수치를 느꼈다.

《나는 당신과 뜻을 같이 해본적도 없고 거듭 말하지만 죄없는 우사령부 장교들을 해친적도 없소. 나는 당신들의 악랄한 음모에 속아 위장물이 됐을뿐이요.

안영호는 발작적으로 부르짖었다.

니시자와는 말없이 술잔을 안영호앞으로 밀어놓더니 자기의 빈잔에 또 술병을 기울였다.

《도대체 당신은 무엇이 못마땅해서 악을 쓰는거요? 당신은 공산주의를 반대하지 않소?

《나는 공산주의를 반대하오. 그런데 그게 어쨌단말이요? 공산주의를 반대하는것과 죄없는 반일병사를 살해하는것이 무슨 상관이 있소?

《철이 없군.

니시자와는 혼자말처럼 중얼거렸다.

《뭐요?

안영호는 니시자와의 기분나쁠만큼 창백한 얼굴을 쏘아보다가 결김에 앞에 놓인 술잔을 단숨에 쭉 기울였다.

니시자와는 눈섭 하나 까딱않고 빈잔에 또다시 술을 채웠다.

《반공을 하자면 사람을 죽여야 하는거요. 자기의 순진한 도의감부터 무자비하게 목을 졸라버려야 하는거요.

하고 니시자와는 술잔을 들고 감상하듯 잔의 둘레를 따라 노란액체를 기울여보며 조용히 말했다.

《그건 숙명이나 같소.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기분과 정서를 품는 한은 사람을 죽여야 하는거요. 량심도 감상주의도 깨끗이 청산해버려야 하오. 실제조건을 봐도 그렇소. 오늘날 우사령부의 반일병사들은 매우 불철저하지만 반공의 립장에 서있소. 그러나 래일이면 그들은 틀림없이 공산주의자들과 한편이 되여 우리를 반대하는길에 들어설거요. 왜냐하면 조선공산주의자들이 가장 설득력있는 방법으로 그들에게 맹렬한 선전공세를 들이대고있기때문이요. 벌써 그 효과가 어느 정도 표면화되고있소. 이것을 그대로 방치한다면 앞으로 몇달사이에 당신이나 나나 공산주의자들을 단독으로 겪어야 할뿐아니라 우사령부의 반일병사들을 모두 적으로 대하게 될거요. 그래 당신이 이것을 감당해낼수 있겠소. 그러나 오늘 몇사람의 반일병사를 조선공산주의자의 명목으로 쏘아죽이면 우사령이하 그의 병사들은 영원히 우리의 수족이 되여 당신이나 나의 평생의 원쑤인 공산주의에게 복수를 해준단말이요. 당신이 여기에 대해 불만을 느낄 까닭은 하나도 없을듯 한데… 공산주의자들에게 짓밟힌 당신의 순결한 꿈과 사랑을 생각하시오. 그것은 그 어떤 류혈로써도 보상되지 않는 값비싼 희생이였소.

안영호는 가면같이 랭랭한 표정으로 앉아서 억양없이 중얼거리듯 하는 니시자와의 무시무시한 말을 마치 배암의 독을 쐬운 개구리와 같이 꼼짝달싹 못하고 들었다. 신성모독의 쾌감과 같은 어떤 나른한 허탈감이 온몸을 휩쌌다. 술의 독기가 번지는지도 몰랐다. 안영호는 기계적으로 또 한잔의 술을 기울였다.

《박일보의 송장이나 찾아주시오.

술잔을 소리나게 탁 놓으며 안영호는 자포자기가 되여 울부짖었다.

《당신은 아직 눈을 못떴군. 당신은 박일보가 당신네 동네의 보위단원으로 판명되는 경우에 그 결과가 어떻게 된다는것을 짐작못하겠소? 일은 될대로 다 된거요. 물은 이미 엎질러졌소. 당신은 쓸데없이 박일보를 찾는다고 돌아가다가 제 목숨을 끊지 말고 하루빨리 당신네 동네에 잠입한것이 분명한 김일성을 찾아내도록 힘쓰시오.

《흥.

하고 안영호는 이미 걷잡을수 없이 번지는 술기운에 혀가 뻣뻣해지는것을 느끼며 코웃음을 쳤다. 첫마디부터 자기를 아이취급하는 이자에게 자기의 우월성을 시위해볼 기회가 왔다고 생각한것이였다.

《이제는 다 알겠소. 당신은 김일성을 잡고싶어서 이런 흉계를 꾸몄지?

니시자와는 눈에 사나운 빛을 담고 말없이 안영호를 쏘아보았다. 그러다가 안영호에게 정통을 찔리웠다는것을 감추기 위하여 외면하였다.

《흥, 당신이 말 안해도 나는 다 안단말이요. 그러나 그렇게는 안될걸. 김일성은 아무나 잡을수 없단말이요.

《나는 잡을수 있다. 잡고야말겠다.》 하고 니시자와는 소리치고싶었다. 그러나 같잖은것한테 제속을 털어보이기가 싫어서 저려나는 왼쪽 무릎을 툭툭 쳤다. 그것은 바로 같은 목적으로 오가자에 잠입했다가 총을 맞은 자리였다.

《나는 물론 당신의 실력을 과소평가하지 않소. 사실 지난밤의 일만 해도 당신이 공연한 객기를 부려서 흉금을 터놓고 말할 분위기를 마사버렸기때문에 그렇지 나는 당신의 과감한 행동을 력사에 길이 남을 영웅적행동이라고 보고싶소. 이에 대해 나는 상급에도 보고할 생각이요. 나의 상급이래야 누가 있겠소. 사실은 제국의 실권자들이나 같은데… 그러니 안영호씨가 얼마나 중차대한 임무를 수행한다는것을 알만하지 않소.

안영호는 다시금 긴장을 느꼈다. 그러자 머리가 휘 내둘리였다. 니시자와의 말은 들을수록 이사이에 뭔가 끼인듯 께름하고 궁금한것을 보태주었을뿐이였다. 아무리 호집어파도 이사이에 끼인 찌꺼기는 빠지지 않고 피만 나오는 현상과 같은것이였다. 그것은 곪아나는 량심의 피고름이였다.

안영호는 니시자와와의 담판이 어떻게 끝났는지 통 의식하지 못한채 량강구를 떠났다.

어두운 밤길에 나서니 걷잡을수 없이 취기가 번져왔다. 그는 비틀거리며 입으로는 저도 뜻모를 소리를 중얼거렸다.

《모든것은 공산주의때문이야. 나한테는 책임이 없어. 나도 희생자야. 나도… 나도… 다 잃었단말야. 청춘도 사랑도 희망도… 그래서 나는 이렇게 거지꼴이 되고 백정질을 배웠지. 백정질을 배웠어…》

그는 취기를 과장하며 일부러 갈지자를 그렸다. 아무리 취해도 니시자와의 한마디말만은 생생하게 떠올라서 비틀거리는 그의 다리를 문득 멈추어세우군하였다.

《반공을 하자면 사람을 죽여야 하는거요. 자기의 순진한 도의감부터 무자비하게 목을 졸라버려야 하는거요.

그는 길우에 멍하니 서서 《…목을 졸라버려야 한다…. 목을 졸라버려야 한다…》 하고 외우다가 별안간 미친듯이 너털웃음을 웃으며 또다시 비틀비틀 갈지자를 그리였다.

《…졸라버려야 하지 않구. 그까짓 뭐가 돼서 못조른단말야.

이렇게 혼자 중얼거리던 안영호의 과장된 취기는 부강촌의 불빛이 저 멀리 보이고 바람결을 따라 어슴푸레 곡성이 들려오자 삽시간에 싹 가셔졌다. 섬찍한 생각이 들었다. 혹시 박일보네 집에서…

안영호의 추측은 맞았다. 다 찌그러진 수수대울바자를 둘러친 단간오두막에 살면서도 스산한 세상물정에 귀를 틀어막고살던 박일보네 집에 마침내 박일보가 우사령부에 매달렸다는 흉보가 전해진것이다.

마을이 가까와질수록 안영호는 걸음이 떠졌다.

《어떻게 할것인가. , 어떻게 할것인가.

그는 머리를 움켜쥐고 길바닥에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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