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서 《불멸의 향도》

 

           장 편 소 설

 


 권  정  웅               

(제 24회)

 

제 14 장

 

 

김정일동지께서 길떠날 차비를 하시였다. 보위색잠바를 입고 모자도 옷장에서 꺼내시였다. 오래전부터 생각은 있었지만 오늘에야 비로소 길을 떠나게 되신것이다.

오진우가 튕겨놓은것으로 해서 《일당백》에 대한것이 항상 관심사로 되였던것인데 대덕산에 표식비를 세우고 이런저런 대책 몇가지를 세우는 정도로써는 마음을 놓을수 없으시였다. 하여 기회를 마련해가지고 분계선에 린접한 동해안의 어느 구분대에 들어가 실정을 료해하실 예정이시였다.

그이께서 나들문쪽으로 나서시는데 문기척소리가 나더니 오진우가 문득 나타났다.

《지금 막 떠나서 거기에 들리려던 참인데 이렇게 걸음을 하셨습니다.

《그야 응당 제가 와서 안내를 해야 옳지요. 다른것도 아니고 우리 일인데…》

《오늘은 <일당백>도 문제지만 산에서 싸우던 이야기를 좀 들어볼작정입니다.

《산에서 싸운 이야기요?》 그것은 참말 놀라운 일이 아닐수 없었다. 산에서 싸우던 이야기라고 한다면 그이께서 누구보다도 잘 알고계시지 않는가. 놀랍다는 표정을 보이면서도 오진우는 자못 즐거운 기분에 잠기였다. 그렇게도 간고했던 과거이지만 그것을 돌이켜보고 추억에 잠긴다는것은 언제나 가슴이 부풀어오를만치 긍지로운것이였다.

《기왕 이렇게 된바에는 한대 피우고 떠납시다. 지금 10시니까 아호비령을 넘자면 오후 3시나 4시쯤 될것 같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 담배를 권하시였다.

《그렇게까지 걸리겠습니까. 그런데 날씨가 좋지 않아서…》

《저는 괜찮습니다… 혹시 몸이 불편한거나 아닙니까?

《아닙니다. 아닙니다.

오진우는 손을 흔들며 거북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그때 전화종소리가 울리였다. 김정일동지께서 수화기를 드시였다. 명쾌하고 활기에 넘친 허담의 목소리가 울리였다.

허담이 그동안 쏘련을 비롯한 동유럽주재 외교대표들에게 부탁했던 신간도서들이 몇권 들어왔다는것을 알리는것이였다.

《수고하였습니다. 인차 나한테 보내주십시오… 참, 차후에 알려주자고 하던건데 마침 잘되였습니다. 전번에 부상동무랑 오백룡동지랑 제기하던 기념탑조각상문제 있지 않습니까.

《네, 그래서요?

《김일동지랑 만나서 그 일을 바로잡아놓았습니다. 명칭도 인민영웅탑이 아니라 보천보전투승리기념탑으로 하고 대오의 진두에 수령님의 영상을 모시기로 하였습니다.

《그렇습니까. 정말 기쁩니다. 고맙습니다.

감격에 겨운 허담의 목소리는 어느덧 물기에 젖어있었다.

비록 그새 말씀은 없었지만 기념탑이 력사적진실을 구현하게 된데는 그이의 숨은 로고가 이만저만 깃들지 않았음을 짐작하고도 남는 허담이였다.

《의례 저희들이 처리하여야 할것을 처리 못하고 김정일동지께 부담만 끼치니 면목이 없습니다.

《아, 그러지 마십시오. 조각단동무들과 만나 한번 토론해보았지요…

지금 기념탑의 주인공형상과 관련해서 론의가 구구하다는데 동무들의 결심이 어떤가고 물으니 그들은 외부에서뿐아니라 창작단내부에서도 의견이 통일되지 않아 골치를 앓고있다고 하면서 똑똑한 결론을 주는 사람이 없어 야단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말해주었습니다.

기념탑을 세우는데서 결론을 줄 사람은 과연 누구이겠는가?

여기서 누가 주인이겠는가 하는것인데 주인이란 바로 우리 인민이다,

탑을 세우는것도 우리 인민이 세우고 우리 인민이 대를 두고 혁명전통을 빛내가기 위해서이다, 때문에 그 결론을 얻자면 기념탑의 주인인 인민에게 물어보아야 했을것이다, 인민이라고 하면 범위가 너무 넓으니까 우선 다른데 가지 말고 오늘의 보천보사람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물어보면 그자리에서 명철한 대답이 나올것이 아닌가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1주일후에 회답이 왔는데 인민에게 물어보니 와와 소리를 지르면서 보천보전투를 직접 진두에서 지휘하신 김일성장군님을 모셔야 한다고 했답니다. 이제 오백룡동지를 만나면 그렇게 말해주면 되겠습니다.

허담은 탄성을 질렀다.

《참말 명철합니다. 인민이 주인인데 인민에게 물어보라. 정말 명안입니다. 전 기껏 생각했다는것이 어느 누군가를 불러다가 혼쌀을 내서 제대로 바로잡으려니 생각했었습니다. 인민이 주인인데 인민에게 물어본다… 참말…》

《아! 이러지 맙시다. 인민이 주인이라는것은 너무나 응당한것이 아닙니까.

이렇게 이야기가 번져가자 의자에 앉았던 오진우가 벌컥 일어났다. 아닌게 아니라 오백룡에게서 바로 어제인가 그 이야기를 들었는데 오늘은 직접 그이께 말씀드릴 생각까지 했던것이다.

《참, 잘됐습니다. 이젠 마음이 놓입니다. 큰 문제가 풀렸습니다.

《이러지 맙시다. 그거야 응당한것이 아닙니까.

《그렇지도 않습니다. 전 본인앞에서 듣기 좋게 말하자는것이 아니라 옛날 산에서 싸울 때 생각이 나서 그럽니다.

중일전쟁이 터지자 일제는 우리 조선인민혁명군에 대한 대대적인 <토벌>작전을 벌렸습니다. 그때 장군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곤난이 있으면 인민에게 의거하라, 모를것이 있으면 인민에게 물어보라, 인민들속으로 깊이 들어가라, 이것이 그때 우리의 구호였습니다.

인민들속으로! 이 구호를 가지고있었기때문에 우리는 그 어려운 조건에서도 굴하지 않았고 싸워이길수 있었던것입니다. 그러니 그때 수령님 생각과 꼭같으시다는 그것입니다.

오진우는 본시 말을 류창하게 하는 축이 아니였는데 이때만은 자기 의사를 거침없이 단숨에 내리외우는것이였다.

《아마 오백룡동무가 이 소식을 들으면 만세 3창을 불렀을것입니다. 먼저번 조각현장에 나가보고 너무나 기가 막혀 펄펄 뛰면서 어느놈이 이따위 작간을 하는지 당장 나서라고 소리까지 쳤다고 나한테 말했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 웃음을 터치시자 오진우도 따라 웃었다.

잠시후에 그이께서는 현관으로 나서시였다.

두대의 승용차는 잠간사이에 평양거리를 빠져서 동쪽으로, 동쪽으로 내달았다. 양덕고개를 넘어서자 험준한 산발들이 나졌다. 마치 자연이 신묘한 자기 재능을 자랑이라도 하려는것처럼 깎아지른 절벽을 내놓는가 하면 또 어떤데는 바가지를 엎어놓은것 같은 둥글둥글한 바위를 강바닥 한복판에 엎어놓기도 하였다.

굽이굽이 한나절이나 돌아오르니 아호비령마루가 나섰다. 여기는 동서를 가르는 분수령이다. 그런데다가 험준하면서도 기세좋게 남쪽으로 느물느물 물결쳐나간 산줄기들을 바라보노라니 어느덧 그 한끝이 남조선의 태백산이나 지리산까지 가닿게 되리라는 생각때문에 인차 시선을 뗄수 없게 되였다. 겸해서 여기에 오르게 되면 대체로 륙로를 택한 길손들이 로천식사로 즐기고싶어지는 좋은 지점으로도 되였다.

《그럼 속도 출출한데 어느 바위등에서 한끼 때볼가요?

오진우는 자못 즐거운 마음으로 저쯤 바라보이는 펑퍼짐한 바위등을 가리키였다.

《그렇게 합시다.

김정일동지께서 먼저 자리를 잡으시였다. 바위등은 꽤 넓어서 칠팔명정도 넉넉히 둘러앉을만하였다. 일행이라야 두명의 운전수와 오진우의 부관까지 합쳐 다섯명이였다. 부관은 차에서 점심보따리를 날라왔다. 오진우의 부인이 도중식사준비를 깐깐히 했다는것이 알리였다. 밥사발과 공기가 여러개이고 나박김치통 그리고 배추국도 있었다. 말그대로 집에서 큰 두리반에 차려놓을만한것을 그냥 모두 꾸려보낸셈이였다. 흰보자기를 펴놓고 다섯명분을 차려놓으니 웬만한 오찬회 못지 않은 차림이 되였다.

어리둥절해진 운전수에게 김정일동지께서 말씀하시였다.

《최동무, 우리것도 가져오시오.

운전수는 고개를 기웃해보이고나서 자리를 떴다. 이미 차려진것만 해도 넉넉하지 않는가 하는 눈치였다.

운전수가 들고온것은 자그마한 꽃보자기에 달랑하니 꾸린것인데 하나는 줴기밥이 들어있는 늄그릇이고 다른 하나는 파랗게 보이는 시금치무침이였다.

《자! 각자 식성대로 듭시다.

오진우는 보온병을 기울여 잔에 물을 따르며 손짓을 하였다.

이렇게 되여 이른바 《아호비령식사》가 시작되였다. 별로 진귀한것은 없었지만 대단히 유쾌한 자리였다.

식사를 한참 하시던 김정일동지께서 고개를 드시였다. 어머님 생각이 문득 나시였던것이다. 어머님께서는 해마다 봄이 오면 껍질까지 막 간 수수타개죽을 쑤어가지고 대성산이나 룡악산에 가서 나무밑이나 바위등에 앉아 야외식사를 하군하시였다. 그럴 때면 항일유격대에 참가한 녀투사들 네댓명을 꼭 데리고 함께 가시였다. 그자리에서는 산에서 싸우던 이야기를 하게 되였고 끝내는 처창즈이야기가 펼쳐지게 되군하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부관과 운전수들에게 우리에 대해서는 상관말고 어서 식사를 하라고 이르신 다음 오진우의 무릎을 잡아흔드시였다.

《부상동지! 저는 이렇게 야외식사를 하는 때면 문득문득 어머님께서 들려주신 처창즈이야기가 떠오르군 합니다. 어머님께서는 젖어든 눈급을 훔치시며 이제라도 처창즈골안의 임의의 땅바닥을 파보라, 그러면 굶어죽은 사람의 유골이 나올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한 사람도 투항하지 않았고 굴하지도 않았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을 상기하면 저는 유격대와 오늘의 우리 군대, 혁명적신념과 혁명적절개 이런것을 두고 생각하게 됩니다.

부상동지! 저의 물음에 하나 대답해주십시오. 몰라서가 아니라 그때의 체험담을 직접 들어보고싶어 그럽니다. 말그대로 전고미문의 그 형용키 어려운 고난속에서도, 그것도 10여년세월 대오는 오히려 강철같이 다져지기만 했습니다. 물론 림수산이나 리종락이와 같은자가 있기는 했지만 그런것도 문제로도 되지 않습니다. 어찌하여 분파하나 생기지 않았고 야심가도 나오지 않았으며 적진으로 도주한자도 없었는가말입니다. 이런 일은 공산주의운동력사에서 여태 있어본적이 없습니다. 그래 어떻게 되였습니까?

《하아!…》

오진우는 손을 흔들며 한옆으로 물러나 앉는다.

《저야 뭐 그저 따라다녔을뿐이지 그런걸 압니까. 그건 군사학도 아니고 철학도 아니며 더구나 예술도 아니지 않습니까.

이렇게 말하면서도 오진우는 한껏 긍지에 어려있었다. 물을 몇모금 마시면서 잠간 생각하는것 같더니 나직이 말을 떼였다.

《저야 그저 어려서부터 오늘 이때까지 혁명군대를 따라다녔을뿐이지 아무것도 한 일이 없습니다. 그리고 혁명이요 신념이요 하는걸 복잡하게 생각해본적도 없구요. 그저 내 마음이 내키는대로 했을뿐입니다. 그 마음이란 우리 부모형제를 살륙한 일제에게 앙갚음을 하자, 그리고 놈들을 다 내쫓고 조국을 해방해서 압박도 착취도 없는 행복한 사회를 만들자 그것이였지요. 저도 그렇고 우리 빨찌산들 거의가 <공산당선언>이나 <자본론>을 연구해서 공산주의자가 된것이 아닙니다. 우리 처지와 우리 생활이 그렇게 하도록 추동한거지요. 그렇다고 해서 계급적처지로만 10여년을 싸울수 있었을가요?

그의 목소리는 갈리여있었다. 말을 중단하고 한참동안이나 푸른 하늘을 바라보고있다가 그이께로 몸을 기울이였다.

《소설 비슷한 이야기를 하나 들어보겠습니까. 그러면 그때 이야기를 어느 정도 리해할수 있을겁니다. 그때 우리 부대에 나보다 나이 여섯살이나 우인 리봉준이라는 대원이 하나 있었습니다. 경상도에서 나서자라 부모와 함께 북간도에서 살다가 왜놈들 토벌에 집식구 전부를 잃고 유격대에 들어왔습니다. 령리하고 날파람있는 사람이다보니 싸움을 잘했지요. 그런데 곤난이 닥쳐왔습니다.

1940년을 넘기고나서 2차대전이 한창 벌어졌는데 수십만 관동군이 산을 샅샅이 뒤졌으니까요. 그래 우리는 주동적으로 소부대활동으로 넘어갔습니다. 리봉준이는 장백지구에 나가 공작을 하다가 꼬박 사흘동안 굶게 되였다고 합니다. 다리까지 부상을 당했구요. 그런데 하루는 같이 나갔던 동무가 신문 한장을 얻어왔는데 거기에는 일본외상 마쯔오까와 쏘련의 쓰딸린이 같이 찍은 사진이 나있었다고 합니다. 신문을 읽어보니 <쏘일중립조약>이 체결되였더랍니다. 이걸 놓고 땅굴속에서 며칠동안 토론하다가 리봉준이 먼저 여보, 나는 이길로 마을에 내려가고말겠소, 우리가 암만 산에서 고생해야 전혀 승산이 없소, 정세가 이런판인데 땅굴속에서 굶어죽을바에는 내려가서 우선 살고봐야 할게 아닌가, 이랬다지 않습니까. 그러니 같이 있던 동무는 아무말도 하지않고 이튿날 땅굴에서 나와 둘이 마을로 내려갔다고 합니다. 헤여질때에는 헤여져도 당장 걷지 못하는 부상자를 혼자 가라고 할수 없었다는거지요. 리봉준이 말하기를 총을 메고 한 10년 해봤으면 됐지 더이상 참고견딜 기운이 없다, 그러나 난 죽어도 적들의 개짓은 안한다, 하고는 부축을 받아 다리를 질질 끌며 인가있는데로 내려갔다고 합니다. 두사람은 해질녘에 어느 한 농가에 들어가 길가던 사람인데 하루밤 재워주시오 하니 방문을 열어잡고 한참동안이나 이쪽의 차림새를 살피고난 주인령감이 웃방으로 들어오소 하더랍니다. 산골짜기 외딴집인데 매우 가난해서 부엌에는 몇개의 사발과 물독이 있을뿐이였답니다. 아들은 다리 병신이고 며느리는 순수 촌아낙네더랍니다. 날이 어두어 강낭밥을 한그릇 먹고나서 식곤이 와서 누웠는데 주인령감이 올라와 리봉준의 손을 잡으며 보아하니 자네들은 산에서 내려온것같은데 솔직히 말하라, 나도 왜놈 보기 싫어 산중에 와서 사는 사람이다라고 하더랍니다. 그래 그렇다고 하니 구레나릇이 시꺼먼 로인은 무릎을 치면서 그렇다면 자네들은 김일성장군님의 소식을 알겠구만, 그래 장군님께서 건재하시오?… 그래 건재하다고하니 됐소, 그렇다니 숨이 나가오, 우리는 살았소 하며 팔소매로 눈물로 닦더라는겁니다. 로인의 말에서 충격을 받은 리봉준은 밤새 자지 못하고 고민했다고 합니다.

캄캄한 웃방에서 두 대원은 유격대에 들어와 10년 가까운데 그동안 보고 듣고 느끼고 체험한것을 다 털어놓게 되였답니다.

리봉준은 낫놓고 기윽자도 모르던 글장님이였는데 장군님께서 친히 글을 배워주었고 발싸개감는 법, 총다루는 법에 이르기까지 다 가르쳐주었다, 령을 넘어갈 때면 몸이 약하다면서 배낭을 자주 메다주시였다, 한자리에서 식사를 할 때면 언제나 몇숟가락씩 밥을 덜어주시였다, 그중에서도 잊혀지지 않는 일은 보천보전투를 하고 난 다음해 겨울 장질부사에 걸려 앓고있는 병실에까지 찾아오시여 이마를 짚어주고 손수 죽을 떠서 입에 넣어주시였던것이다, 리봉준은 백사천사 다 잊어도 죽을 떠서 입에 넣어주던 그 일, 이 세상에서 자기 어머니 아니고는 그 누구도 대신할수 없는것을 장군님께서 해주셨다, 이 사랑, 이 은정을 저버리다니… 이런것을 생각하며 리봉준은 밤새 울었다고 합니다. 아침밥을 들여왔는데 밥상에는 강낭밥에 닭이 한마리 놓여있더랍니다. 이 집으로서는 최대의 성의였습니다. 로인님이 하는 말이 나라찾느라고 고생을 하는분들인데 대접이 소홀하다면서 우리는 아무리 어려워도 김일성장군님만 믿고 살지요, 장군님만 계시면 우리 나라는 꼭 독립이 됩니다, 그러더랍니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남기고 다시 길을 떠났는데 령마루에 올라 리봉준은 땅에 털석 주저앉아 혼자 넉두리를 했답니다. 내가 항일유격대에 들어갈 때 누구를 믿고 들어갔나, 나는 공산주의를 믿기전에 김일성장군님을 믿었지, 내가 누구때문에 눈을 떴나, 장군님때문이지, ! 장군님! 장군님곁을 떠나서 나는 못산다, 설사 산다 한들 그것은 개짐승만도 못한 삶이다, 한참동안이나 주먹으로 땅을 두드리며 울다가 그길로 땅굴에 들어가 총을 파가지고 부대로 돌아왔답니다. 그길로 장군님을 찾아가 사실대로 솔직하게 말씀드렸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장군님께서는 나에게 한 말을 그냥 그대로 부대전원이 모인데서 말하라고 하는것을 내가 직접 들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그때 정 힘들어 혁명투쟁을 하지 못할 사람은 솔직하게 말하라, 그러면 집으로 돌려보내주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변절도주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내가 보탠것도 없고 던것도 없습니다.

오진우는 말을 끝내고나서 한숨을 길게 내쉬였다. 무거운 짐을 벗어놓은것 같은 기분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도 처절한 감정에 잠기여 아무 말씀도 없으시였다.

《리치는 명백하지 않습니까?》 오진우는 빛나는 시선으로 좌우를 둘러보고나서 계속하였다.

《예나 지금이나 수령님은 우리 마음의 기둥입니다. 이 기둥에 의지하면 꿋꿋이 나갈수 있고 그것이 없으면 자빠지거나 딴길로 가게 되는거지요. 굶어쓰러지면서도 투항하지 않은 처창즈사람들도 모두 이 마음의 기둥에 의지해있었던겁니다.

《옳습니다! 옳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손을 들어올렸다가 오진우의 팔을 덥석 그러잡으시였다. 그리고 크게 웨치시였다. 《어쩌면 저의 생각과 그렇게도 꼭같습니까. 감사합니다. 그런데 그 리봉준대원은 그후 어떻게 됐습니까?

《아쉽게 됐지요. 해방되는해 7월 소부대공작을 나왔다가 적들의 추격을 받아 두만강물에 가라앉아 시신도 거두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리봉준에 대해서는 누구나 오늘도 생생히 기억하고있습니다.

《아호비령식사》는 끝나고 차는 내리막길을 달리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생각이 더욱 깊어지시였다.

리봉준의 이야기는 혁명투쟁에서 리념문제 그리고 신념과 의리 그것은 자신께서 항상 중시하시고 기회가 있을적마다 제기한 수령에 대한 관점, 혁명은 수령에 의해 시작되고 수령에 의해 령도되며 수령에 의하여 승리하게 된다는 수령중심론을 더욱더 확고한것으로 되게 하였다.

승용차는 어느덧 원산을 지나 안변벌을 달리고있었다.

 

×

 

한쪽은 망망한 바다, 다른 한쪽은 푸른 산발, 참으로 선명한 대조가 이루어졌다.

《어?

바로 그때 자동차가 달려나가고있는 그앞에 인민군병사 하나가 나타났다. 총을 메고 한쪽 길가에 붙어서 달리고있었는데 무거운 배낭이 털썩거리였다. 다리를 저는것으로 보아 강행군훈련에서 락오된 병사 같았다. 앞서 가던 차도 그것을 띠여보고 속도를 흠뻑 늦추는것으로 보아 어떻게 할것인가 주저하는것 같았다.

오진우가 이런 경우에 어떻게 처신할것인가 하는것도 호기심을 자아내는 일이 아닐수 없었다.

아니나 다를가 차가 멎어서더니 문이 열리고 누런 령장이 저녁해빛을 받아 번쩍 빛을 뿌리였다. 쩔뚝쩔뚝하며 달려가던 병사가 발을 모으고 빳빳이 섰다.

다음 순간 이쪽차도 그뒤에 가 멈춰섰다.

오진우가 어느 부대인가 물었던 모양인지 병사는 《…3중대 1소대 2분대 전사 양기동!》 하고 대답하고있다.

《왜 떨어졌나?

《장령동지, 전사 양기동은 발에 물집이 생겨서 걷지 못해 떨어졌습니다.

《물집은 왜 생겼는가?

《발싸개를 잘 감지 못해서 생겼습니다.

《왜 잘 감지 못했는가? 방법을 배우지 못했는가.

《넷! 제가 부주의했습니다.

《이제 가야 할 목표는 어덴가?

《넷! 10키로쯤 가면 중대부가 있습니다.

《다 먼저 가고 혼자 떨어졌는가?

《그렇습니다!

오진우는 한눈에 모든것이 다 설명되고도 남음이 있는것을 끈덕지게 묻고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함으로써 전사의 각오와 의지를 타진해보고싶었던것이다. 그러면서 한편 오진우는 항일혁명투쟁시기 겨울에 도로기를 신을줄 몰라 김일성장군님께서 손수 신을 신겨주시였을 때를 상기하며 저도 모르는 사이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창유리를 내리우고 보고계시다가 문을 열고 전사에게로 다가가시였다. 그렇게 되자 전사는 앞서 한것처럼 발뒤축을 모아붙이고 차렷자세를 하였다.

《전사 양기동, 행군중에 있습니다.

《수고하오. 몇살이요?

18살입니다.

《고향은?

《평양입니다.

《평양 어데?

《모란봉구역입니다.

《배낭에는 뭐가 있어 그리 무겁소?

《화식도구가 있습니다.

《기왕 이렇게 된바엔 태워다주겠소.

《안됩니다.

《어째서?

《전사 양기동은 걸어서 목적지까지 도착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렇소. 옳소, 옳아! 명령이니까.

명령에 대한 무조건성, 그에 대한 태도는 탄복할만하였다. 비록 대오에서 떨어지기는 했지만 그 정신은 새파랗게 살아있어 믿음이 갔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흥미를 느끼며 또 물으시였다.

《그런데 왜 도와주는 전우가 없이 혼자 남았소.

《제가 필요없다고 하였습니다.

《그건 왜? 곤난할 때 도움을 받을줄도 알아야지.

《그렇게 하면 두사람의 락오자가 생깁니다.

《두사람이라… 하하하.

그이께서는 고개를 들어 호탕하게 웃으시였다. 설사 락오자가 되기는 했지만 그 정신에서는 흐리멍텅한데가 전혀 없고 누구에게 의존하거나 요행수를 바라는것도 아예 없었다.

그이께서는 전사에게 끝까지 명령을 지켜 중대에서 만나자는 말씀을 남기고 다시 차에 오르시였다.

잠시동안에 두대의 승용차는 중대부에 이르렀다. 행군대렬은 아직 8키로 지점에 있었다.

직일관이 나와 보고를 하였다. 중대 병실과 식당을 돌아보는 사이에 련대의 지휘관들이 나타났다. 불의에 닥친것으로 해서 이곳 지휘관들은 몹시 당황해하였으나 오진우는 군대에서 하나의 세포, 중대를 있는 그대로 그이께 보고드리게 된것을 무척 다행으로 여기였다.

언제나 그러한것처럼 오진우는 교양실을 매우 중시하였다. 교양실은 직관물은 물론 거기에 구비되여있어야 할 교양자료들이 다 갖추어져있었다. 그것이 잘 활용되고있다는것도 알수 있었다.

오진우는 세부에 이르기까지 파고들었다. 몇명의 병사들을 불러다가 정치학습노트도 뒤져보고 무기에 대한 숙련과 보관상태도 료해하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우선 먼저 지휘관들과 담화를 하시였다. 사단, 련대, 대대 지휘관들 50여명을 상대로 정치담화가 시작되였다.

첫째로 제기한 문제가 전후에 폭로된 반당종파분자들의 해독행위와 그 후과에 대하여 아는껏 말해보라고 하시였다.

이미 이것은 학습반들에서 취급되였기때문에 그닥 어려운것이 아니였다.

위급, 좌급 지휘관들이 섞여있었는데 맨먼저 젊은 중대장이 일어났다.

《제1중대장 김기덕 토론하겠습니다. 반당종파분자들은 우리 인민의 철천지원쑤인 미제에 대하여 적대시하지 말고 그들과 타협하여 우리 나라를 중립국가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우리 인민과 인민군대를 사상적으로 무장해제하려고 책동한것입니다. 그러기전에는 쩍하면 기계에서 밥이 나오는가 하면서 우리 당 경제정책을 비방하였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허리띠를 졸라매면서라도 자립적민족경제를 건설하려는 우리 인민을 시비하였습니다.

다음은 미제와 정전협정을 체결하였기때문에 군비에 투자를 하지 말고 인민생활에 다 써야 한다고 하면서 전후 생활이 곤난해하는 인민들에게 환심을 사보려고 책동하였습니다. 그리고 인민군대는 조선로동당의 군대가 아니라 국가의 군대, 통일전선의 군대로 되여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상에서 알수 있는바와 같이 반당종파분자들은 음으로 양으로 우리 당 정책에 도전해나서면서 끼리끼리 파를 형성하고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책동하였습니다.…》

중대장에 뒤이어 몇명의 지휘관들의 토론을 들어보아도 대체로 어슷비슷하였다.

다음은 당이 제시한 구호 《일당백》에 대하여 토론할것을 제기하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시간을 단축하기 위하여 이곳 련대장을 지명하시였다.

《련대장동무가 한번 <일당백>에 대해서 실지 자기 부대를 교양하고있는 그대로 말해보시오.

이렇게 되자 누구보다도 조마조마해 앉아있는것은 오진우였다.

그는 지휘관들의 모임때마다 강조하였고 특히 최근에는 그것을 줄기차게 재학습을 시키고있는중인데 실태가 어떤지는 알수 없었다.

몸이 다부지고 얼굴이 구리빛인 30대의 련대장이 자리를 차고 패기있게 일어났다.

《<일당백>, 이것은 우리 당이 인민군대앞에 제기한 가장 견결한 전투적구호입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덕산초소를 친히 현지지도하시면서 옛날에는 싸움을 잘하는 장수를 <일당백>이라고 하였는데 우리 인민군대모두를 <일당백>으로 만들어야겠다고 교시하시였습니다. <일당백>의 무적의 군대가 되자면 첫째로 모든 군인의 정치사상적준비가 잘 갖추어져야 합니다. 로동자, 농민으로 이루어진 조국의 아들딸들이 나라를 사랑하고 민족을 사랑하고 우리 나라 사회주의제도를 사랑하는 정신으로 무장되여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기본은 위대한 수령님께 충성하겠다는 사상적각오입니다.

《좋소. 그만.

김정일동지께서는 토론이 잘되였기때문에 더 오래 끌 필요가 없다고 보시였다.

그때였다. 멀리 내다보이는 중대정문쪽에서 노래소리가 들려왔다.

그이께서는 창문을 열고 내다보시였다. 행군대오가 씩씩하게 들어서는것이였다.

 

       내 조국 온 나라가 철벽의 요새다

       우리들은 일당백의 용감한 초병이다

       영광 영광의 길에 원쑤치던 승리의 총검

       오늘은 수백만 어깨에 빛난다 어깨에 빛난다

 

       내 조국 남녘땅에 원쑤가 있는 한

       우리들은 총창을 더 굳게 잡으리라

       …

 

한참동안이나 창밖을 내다보고계시던 그이께서 손짓을 하며 말씀하시였다.

《부상동지! 저기를 내다보시오. 바로 저기지요. 저기에 <일당백>이 있고 저기에 우리 당의 요구가 있는것이 아니겠습니까.

김정일동지께서는 창문에 다가서서 계속 행군대오를 내다보시였다. 200리 거리를 하루동안에 극복하는 강행군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들에게서 피곤해하는 기색이란 전혀 찾아볼수 없었다.

땅을 구르는 발걸음소리, 기운차게 내젓는 팔, 어깨우에 번뜩이는 총창! 실로 장쾌한 장면이였다. 비록 군무생활에서 작은 세부이고 흔히 있는 훈련과정이기는 하지만 이것도 하나의 목표를 성취했다는 의미에서 본다면 하나의 승리라고 할수 있는것이였다.

그이께서는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저 노래 <우리는 총창을 더욱 굳게 잡으리>는 당에서 만들라고 해서 얼마전에 새로 만든 노래입니다. 저 노래를 지금 전체 인민군대가 다 저렇게 부르고있습니까?

《네, 다 부르고있습니다.

오진우는 확신에 넘쳐 대답하였다.

《그렇다면 대단히 좋은 일입니다. 노래가 나온지 얼마 안되는데 다 부르고있다니 그 속도가 대단히 빠릅니다》

 

×

 

 

10시가 되여서야 예정했던 군부대에 도착할수 있었다. 이곳 부대에서는 사전에 련락을 받았기때문에 일체 준비가 다 갖추어져있었다. 군단장 한기주도 관하 사단, 려단의 장령들이 대기하고있었다. 한기주는 그이의 손을 잡고 놓지 못하였다. 그는 김정일동지께서 군부대지도를 시작한 초기, 60년대초부터 알게 되였고 평양에 올라오는 기회가 있는 때면 꼭꼭 들려서 군부대실정을 말씀드리고 사업상 조언을 요구하군하였던것이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언뜻 그가 장기를 매우 좋아한다는 생각이 떠오르시였다. 언젠가 그가 주장하기를 《명장에게는 약졸이 없다.》고 하는 수령님의 말씀을 생활에 적용해보기 위해 장기를 시작했는데 그게 매우 유익한 오락이라고 롱말을 했던것이다.

한기주는 인차 관하 군부대 실정을 설명하게 되였고 지도를 펴놓고 하나하나 대상을 짚어가면서 적들의 동향에 대하여 한시간정도 보고를 하였다.

일단 자기 의무가 끝났다고 보아질무렵 한기주는 《말씀해주십시오.》 하고 무턱대고 청을 드리였다.

어느때건 만나기만 하면 군사와 세계정치는 물론 흔히 들을수 없었던 일화들이 그이의 말씀속에서 거침없이 흘러나오군했던것이다. 그리고 여러모로 인차 잊혀지지 않는 인상적인 말씀을 많이 해주시였다.

오진우부상의 귀띔에 의하면 이번 걸음은 순수 《일당백》때문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김정일동지께서는 몇가지 질문을 하시였다. 관하 군부대에서 진행하고있는 정치사업에 대하여 그리고 전사들의 사상동향에서 주목할만한것들을 알아보시였다.

한기주는 이에 대하여 거침없이 말씀드리였다. 그이께서는 매우 만족해하시였다. 일단 대화가 끝나자 얼마간 동안이 생기였다. 그때 한주기는 좀 어색한 낯을 지으며 다시 말씀올리였다.

《어서 말씀해주십시오. <일당백>에 대하여서도 좋고…》

아닌게아니라 한기주의 제기는 그이께서 말씀하실 적절한 계기를 이어놓게 되였다. 그러지 않아도 그것에 대하여 말씀하시려던 참이였다.

《일당백》에 대하여 그 의의를 설명하란다면 누구나 막힐것이 없었다. 그것은 앞서 들린 하나의 중대실정을 보아도 잘 알수있었다. 하지만 그 의의를 확대시키고 그것을 군건설의 전략적견지에서 보게 되면 문제가 간단치 않았다.

그이께서는 탁자우에 놓은 담배갑을 한쪽으로 밀어놓으면서 옆으로 돌아앉으시였다.

《오진우동지! 이렇게 지휘관들이 모인 기회에 꼭 하고싶은 이야기가 있지 않겠습니까. 먼저 말씀하십시오.

《어서 말씀해주십시오. 제가 이자리에서 얼마간 첨부하고싶은것이 있다면 <일당백>이 어제오늘 제기된것이 아니고 항일무장투쟁시기부터 뿌리내린 깊은 연원이 있다는 정도입니다.

오진우의 말이 끝나자 장내에서는 곧 반응이 일어났다. 몇명의 고급군관들이 일제히 일어나 《어서 말씀해주십시오.》라고 제의하였고 일어나지 않은 사람들은 간절한 소청이라는듯 몸을 들썩거렸다. 기왕 이렇게 된바에는 이미부터 생각해오던것을 기탄없이 털어놓으리라 결심하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시였다.

《사실은 제가 조용한 기회에 여기 앉은 오진우부상이나 또 그밖의 지휘관들에게 수령님의 군건설사상의 알맹이를 말하려고 하던것입니다…》

그이의 시선은 오른쪽으로부터 방안을 쭉 훑어나가면서 모임에 참가한 사람들을 둘러보시였다.

《<일당백>, 글자로 세서 단 석자밖에 안되는 이 구호에는 두툼한 저서에나 담을수 있는 심오한 뜻이 담겨져있습니다. 동무들이 알고있는것처럼 우리 군대 하나가 적병 백이나 천을 감당할수 있게 되여야 한다는것인데 물론 그것이 옳습니다. 동시에 <일당백>에는 우리 당이 군건설분야에서 들고나가야 할 기본 사상과 원칙이 명시되여있습니다. 전쟁에는 사람과 그들이 지닌 무기가 참가하게 됩니다. 여기서 결정적인것은 전쟁을 직접 수행하는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전쟁의 운명은 원자탄이 결정한다고 하면서 핵시대에 있어서 사람이라는 존재는 순수 고기덩어리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고있습니다. 이것은 미제가 휘두르고있는 <힘의 정책>, 몽둥이에 겁을 먹은 미치광이들의 비명소리에 지나지 않는것입니다.

위대한 수령님의 주체사상은 이와 정반대로 말하고있습니다. 결국 무기도 사람이 만들며 사람이 그것을 다룬다고말입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고개를 돌려 오진우에게 그렇지 않는가고 물으시였다.

오진우는 간결하면서도 명철한 그이의 말씀에 감동되여 두손을 맞잡으며 고개를 끄덕여보이였다.

《옳습니다, 옳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열정에 넘친 어조로 뒤를 이어나가시였다. 힘을 주고 못을 쳐야 할 대목에서는 주먹을 휘두르기도 하고 또 때로는 온몸으로 형용을 하기도 하면서 표현하려는 뜻을 능란하게 보충해나가시였다.

어떤 사람은 전쟁은 인간의 본능이며 문명의 어머니라고 하였다. 또 어떤 사람은 전쟁을 다른 수단으로 수행하는 정치의 연장이라고 하였다. 또 다른 사람은 전쟁은 전쟁자체를 없애기 위한 최후수단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 어느 누구도 전쟁에서 인간이 노는 역할에 대하여 완벽하게 해명할수 없었다.

오직 위대한 수령님께서만이 전쟁승리의 결정적요인은 거기에 참가하는 인간의 사상정신상태에 있다는것을 밝힐수 있으시였다.

때문에 제국주의가 존재하는 한 전쟁자체를 반대해서는 아무런 의의가 없다.

문제는 전쟁을 회피할것이 아니라 맞받아나가 물리쳐야 한다. 이 승리의 열쇠가 바로 《일당백》에 있는것이다. 우리 나라는 령토가 넓지 못하고 인구도 많지 못한 상태에서 강대한 적과 맞다들게 될수 있다. 그러니 《일당백》이 아니고는 어느때나 승산을 세울수 없다. 항일혁명투쟁시기 100만 관동군과 맞선것도 그렇고 조국해방전쟁시기 미제를 위시한 16개 나라 침략자들과 싸울 때도 역시 그러하였다. 《일당백》만이 승리하는 길이며 우리가 살아나갈 길이다…

한참동안 숨을 죽이고 듣고있던 장내에서는 연방 감탄의 소리가 울리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종횡무진으로 동서고금의 전쟁론과 군건설리론 그리고 그에 관한 학설에 대하여 언급하고 수령님의 군사사상을 풀어나가시였다.

그이께서는 맨마지막에 《일당백》, 이것은 지구상에 제국주의가 존재하는 한, 우리 나라에 군대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들고나가야 할 우리의 백전백승의 무기라고 강조하시였다.

《동무들! 군대는 적을 치기 위한것이고 전쟁은 승리하기 위한것입니다. 전쟁에서 승리의 대용품은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것입니다. 승리하자면 <일당백>외에 다른것이 없습니다.… 현대수정주의자들은 심지어 군대를 비정치화, 비사상화해야 한다고 떠들고있습니다. 그것은 곧 당도 국가도 사회주의제도도 다 적들에게 넘겨주자는 말과 같은것입니다. 그런 현대수정주의자들이 당과 군대를 쥐고있는 한 그 앞날은 멸망이라는것외에 그 어떤 다른것이 결코 될수 없다는것은 불을 보듯 명백합니다.

현대수정주의자들의 책동을 단호히 저지시키지 않으면 피흘려 쟁취한 우리의 모든것을 다 잃게 될것입니다. 이런 점으로 볼때 이 김정일은 사상론의 주장자입니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수령님의 혁명사상을 높이 추켜들고 끝까지 나가야 합니다. 혁명적군대가 없으면 당도 국가도 사회주의도 없습니다. 때문에 당건설과 함께 군건설을 병진시키자는것이 우리의 확고한 의지입니다. 이런 사상을 지닌 군대는 김일성동지께서 창건하시고 이끄시는 우리 군대, 조선인민군뿐입니다. 때문에 우리 군대는 말그대로 수령의 군대입니다! 수령의 군대!

그이께서는 주먹을 높이 들어올리였다가 힘있게 내리후리시였다. 방안은 감격에 넘쳐있었다. 한참동안 침묵을 지키고있던 김정일동지께서 미소를 지으시며 다시 말씀을 이어나가시였다.

《너무 딱딱한 말만 해서 모두 긴장해진것 같은데 여담을 한가지 말해보겠습니다. 본인이 있는데 이런 말을 해서 안됐습니다만 사실이 그러니까 별일 없을것 같습니다. 여기 앉아있는 오진우부상은 얼마전에 대덕산에 올라가 질통으로 흙짐을 져서 <일당백>터를 닦았고 그후 비돌을 든든히 세웠습니다. 앉아서 지시만 해도 되겠는데 무엇때문에 등짐을 졌겠습니까. 부상동무는 등짐을 지고 눈에 덮힌 가파로운 길을 톺아오르면서 우리 인민군장병들의 가슴속에 <일당백>을 심어주기 위해 한걸음한걸음 들어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후에 제가 물었습니다. 등짐을 지면서 무엇을 생각했는가고 말입니다. 그러니 대답이 정말 걸작입니다.

눈이 온 비탈진 언덕, 길 아닌 길을 걸으면서 이 길에 <일당백>이 펼쳐져있고 이 길에 사회주의 내 나라를 지키는 의무가 깔려있다 이렇게 생각했답니다.

이렇게 이야기가 번져지자 오진우는 점직해서 고개를 떨구고 어쩔줄을 몰라하였다.

김정일동지께서 방안을 둘러보시고나서 계속하시였다.

《그렇게 합시다. 이제부터 여기 모인 지휘관동무들도 모두 <일당백>을 둘러메고 전사들의 가슴속으로 깊이 들어갑시다. 그러면 바위돌에 새긴것보다 더 큰 은을 낼수 있을것입니다. 전사들의 심장으로 들어가잔 말입니다… 그만하지요.

그이께서는 옆에 앉은 오진우의 등을 흔들며 끝을 맺으시였다.

 

×

  

모두다 흩어져갔다.

그이께서는 차광막을 친 객실의 조용한 방에 들어가 책상을 마주 하시였다. 가방에서 책을 꺼내 펼치시였다. 그것은 맑스-엥겔스선집이였다.

여기에서도 역시 평양생활이 줄기차게 이어져나갔다. 시선은 재빨리 글줄을 더듬어나갔다. 그러나 얼마간 주의를 집중해보았지만 글이 들어오지 않고 앞서 있었던 중대의 강행군과 뒤이어 지휘관들 모임장면이 자꾸 떠올랐다.

그이께서는 책상에서 물러나 방안을 거닐으시였다. 방금전까지 전쟁, 군대 그런것에 심취되여있다보니 그이께서는 그와 관련한 아득한 옛일을 회상하게 되시였다.

우리 강토에서 미제와의 판가리싸움이 한창이던 때 분명히 세는나이 열한살이였으니까 년도를 따지면 정전이 되기전해 여름이였을것이다.

그때도 지금처럼 밤이였다. 평양교외에 자리잡고있던 최고사령부에는 밤이면 많은 사람이 찾아오군하였다. 그중 대부분이 군대지휘관들이였고 간혹 정부의 책임간부들도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낮이면 낮에 맞고 또 밤에는 밤에 적합하게 일과를 짜시고 하루에 거의 20시간이나 사업을 하고계시였다. 그래도 그중 조용한 때가 밤이 깊어서 작전대앞에 서시는 그때였다. 벽에는 전조선을 한눈으로 바라볼수있는 대형지도가 걸려있고 작전대우에는 부분도가 쌓여있었다. 한쪽에는 당면한 전역이나 작전적대상을 료해할수 있는 세부도와 그에 따르는 문건들이 펼쳐져있었다.

어리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엄밀하게 세워진 요일별일과에 따라 생활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딴 방에 거처하면서 학교과정에 대한 학습을 하시였다. 그러다가 저녘시간이면 대체로 작전대가 놓인 이 방안에서 시간을 보내시였다.

문학, 수학, 물리, 음악, 체육 어느 과목 하나 소홀히 하거나 싫증을 느끼는것이 없었지만 그중에서도 사실상 학교과정안에는 없는 군사에 각별한 관심이 쏠리는것을 어쩌는수가 없으시였다. 그렇기때문에 새로운 군사용어를 하나 듣게 되거나 어떤 작전적구상에 대한 단편적인 이야기만 듣게 되여도 거기에 관심이 쏠리고 끝내는 그것을 해득하지 않고는 배겨내지 못할 정도로 군사지식의 깊은 골짜기에까지 끌려들어가게 되시였다.

수령님께서 작전적구상을 하실 때면 한시간이고 두시간이고 지도를 마주하고 서계시거나 아니면 방안을 거닐으시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럴 때면 그이께서는 몇시간씩 말 한마디 없이 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던 어느날 밤이였다.

밤이 깊을 때까지 작전대앞에 서계시던 수령님께서 손으로 지도우를 《땅》 하고 소리가 나게 내리치시면서 《됐다!》 하고 환성을 올리시였다.

그바람에 한쪽구석에 앉아있던 김정일동지께서 늬큼 일어나 작전대우를 살펴보게 되시였다. 눈에 띄는것은 아무것도 없었는데 맺히고맺혔던 고리가 통쾌하게 풀리였다는것만은 능히 알수 있으시였다.

천정에 닿을만치 두팔을 높이 드시였던 수령님께서는 그제서야 이쪽을 띠여보고 《됐어, 놈들을 함정에 몰아넣고 족쳐댈 방안이 떠올랐단 말이다.》라고 하시는것이였다. 그것으로 미루어보아 수령님께서는 통쾌한 이 순간을 어느 누구와 함께 이야기라도 나누고싶어하신다는것을 잘 알수 있으시였다. 하지만 김정일동지께서는 그저 웃음을 머금고 서있기만 하시였다.

방안을 잠시 거닐고계시던 수령님께서는 한쪽옆에 놓여있는 안락의자에 앉더니 《여기와 앉거라》 하고 손짓을 하시였다.

《밤이 깊었는데 졸리지 않나?》 하고 팔목시계를 보시였다. 새벽2시였다.

《나는 작전실에 불이 켜있으면 자꾸 와보구싶습니다.

《그래 날 닮은 모양이구나. 잠이 없는걸 보니.》라고 하시면서 수령님께서는 팔을 들어 일궈세우더니 키를 가늠해보시는것이였다.

《이제는 열살이지…》 하고 조용히 뇌이시더니 눈을 크게 뜨고 다시한번 그이의 쭉빠진 키를 가늠하시는데 수령님의 안색에는 세월이 이렇게 빨리 흐르는가 하는 놀라운 빛이 력력히 어려있었다.

《그러니 이제는 작전대에서 무엇이 나오는지, 거기서 왜 내가 머리를 짜고있는지 대강 짐작이 가겠구나. 그러니까 자지 않고 지키게도 되는거구.

수령님께서는 담배에 불을 달아 몇모금 빠는 동안 아무 말씀도 없으시였다. 하실 말씀이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나 할 말씀이 많으시기때문이였다.

《너도 잘 알겠지만 지금 우리는 세계에서 제일 강하다는 미국놈들과 맞서 전쟁을 하고있다. 벌써 만 2년동안 싸웠지만 아직은 끝이 나지 않았다. 지금 보면 한해나 둬해동안 더 싸워야 할것 같다. 하지만 우리는 꼭 이긴다. 어떻게 이기는가, 우리는 우리 나라와 우리 민족을 지키는 정의로운 전쟁을 하고있기때문에 이기고 전체 조선인민이 다 들고일어나 싸우기에 꼭 이긴다. 그렇지만 그것만으로는 꼭 이긴다고 담보할수는 없다. 묘술을 찾아야 하거던. 씨름 할 때 자기보다 크고 힘센 사람을 메치자면 수를 써야 하는거나 같은거다. 그래서 나도 밤을 새우고 또 너도 잠자리에 들지 못하는것이 아니겠니.

그건 그렇고 너는 나서 이날까지 남들과는 판판 다른 길을 걷고있단 말이다. 그게 무슨 말인가, 똑똑히 들어두어라…》

김정일동지께서는 의자를 당겨서 바투 다가 앉으시였다.

그러자 수령님께서는 오동통한 작은 손을 잡아 무릎에 놓고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사람이란 누구나 나서자라는 고향이 있기마련이다. 사람이 사는곳이란 모두 거리가 아니면 마을이 아니겠니, 그래서 출생지의 주소가 있고 번지가 있기마련이란다. 그런데 너는 주소도 번지도 없이 그저 백두산이라는것뿐이다. 유격대밀영에서 태여났으니까. 지구우에 지금 수십억의 인구가 산다지만 아마 혁명전쟁을 하고있는 군대의 숙영소에서 태여난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는지 모르겠다. 아마 모르긴 해도 몇사람뿐일게다. 낳자마자 어머니가 둘쳐업고 달려다니며 싸움을 했으니까. 다른 아이들처럼 고운 인형아기를 안아보거나 딸랭이를 흔들어보지도 못하고 자랐다. 이에 대해서는 너의 어머니가 말해주었을게다. 아마 기억이 나겠지만 네가 세상에 태여나 처음 본것은 나무숲이고 번뜩이는 총창이였다. 어머니의 자장가를 들으며 잠든것이 아니라 숲을 흔드는 바람소리, 우등불에서 장작이 튀는 소리를 들으며 잠들었다.

그러다가도 적들이 습격하는 총소리에 놀라 잠을 깨군했지. 넌 갓난애기때도 맘대로 버둥거리며 울어보지도 못했어. 적이 추격해올가봐 어머니가 입을 막군했으니까. 그래 그런지 내가 가만 보니까 너는 분명히 군사를 좋아하고있다. 자랄 때 노는걸 봐도 그렇고 지금처럼 작전대를 지켜서 밤을 새는걸 보면 군사에 남다른 관심이 있어. 하긴 전쟁의 불길속에서 태여나서 그속에서 자랐으니까 군사가 몸에 흠뻑 배여있을것만은 사실이겠지.

중국의 고사를 보면 맹자의 어머니가 자기 아들때문에 세번이나 이사를 했다는 말이 있다.

아이가 자라는 환경을 바꾸기 위해서였지.

그런 식으로 생각해도 너는 군사가 몸에 배고 군사를 즐기는것이 우연하다고 볼수 없다. 현대인은 정치를 몰라서는 안되고 정치를 하자면 군사를 알아야 한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차츰 알게 될게다》

까딱 움직이지 않고 수령님의 말씀을 주의깊이 듣고계시던 김정일동지께서는 온몸에 힘이 솟고 용기가 넘쳐나 가슴이 뿌듯해지시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어려서 말을 익히고 차차 지각이 드는데 따라 어머님께서 이러루한 말씀을 자주 해주시던 기억이 났다. 그러나 그때는 한갖 멀리 앞에서 가물거리는 희망이고 또 어머님자신께서 제일 친숙해진 군사지식을 습관적으로 말씀해주시는것으로만 알고계시였던것이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부풀어오르는 가슴을 안고 활달하게 일어나 말씀을 올리였다.

《꼭 군사를 배우겠습니다. 그래서 뜻을 이어나가겠습니다.

《옳다, 그래야 한다.

수령님께서 대견하게 바라보시다가 《잠간 거기 좀 있거라.》 하면서 자신의 집무실로 건너가시였다.

집무실은 작전실과 문 하나 사이인 다음칸에 있었다.

얼마간 있다가 다시 돌아오시였는데 붉은천에 싼 물건을 하나 들고오시였다.

자리에 앉으신 수령님께서는 붉은천을 펼치시였다. 그 천안에는 자그마한 권총 한자루가 들어있었다.

《자! 이걸 오늘 기념으로 주겠다. 무슨 기념인가. 우리가 지금 치르고있는 이 전쟁의 기념이다. 너도 이제는 이걸 다루어낼수 있을게다. ! 받아라.

김정일동지께서는 정면으로 마주서서 두손으로 받아드시였다. 크기로 보아 그닥 중량이 나가는것은 아니였는데 큰 바위돌이라도 올려놓은것처럼 팔에 무게가 실리였다.

《고맙습니다. 꼭 군사를 배워서 뜻을 이어가겠습니다.》라고 하면서 고개를 깊이 숙여 인사를 올리시였다.

두손으로 아드님의 어깨를 짚고 빛나는 눈을 잠간 들여다보신 수령님께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만면에 웃음을 지으시였다.

《그래 한껏 잘해보아라. 하자고 결심하면 꼭 되는것이니까. 벌써부터 생각이 없지 않았지만 오늘 문득 떠오르더란 말이다. 그걸 다루는 방법은 차츰 부관아저씨한테서 차근차근 배우도록 해라.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시한번 고개를 숙여 인사를 올리고 그것을 가슴에 꽉 눌러대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오시였다.

방바닥에 붉은천을 펴고 그우에 권총을 놓으시였다. 어려서부터 흔히 보아 눈에 익은 물건이였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지만 어머님께서는 요런 조그마한 권총을 차고 다니시였던것이다. 그리고 해방이 되여서는 어머님께서 이런 권총을 지니시고 언제나 수령님의 신변을 호위하시였다는것을 잘 알고계시였다. 하지만 문득 이때 그이께서는 그 어떤 신기한 느낌이 드시였다.

이것이 대대로 내려오는 권총이 아닌가.

할아버님께서는 수령님께 두자루의 권총을 물려주시였다고 하시였다. 오늘은 수령님께서 나에게 권총을 넘겨주시였다.

어리신 김정일동지께서는 권총을 두손으로 받쳐들고 한참동안이나 들여다보고있다가 그것을 가슴에다 갖다대시였다. 세상에 진귀한것 전부를 또는 보물단지를 한짐 걸머졌다 한들 이보다 더 기쁠수가 있겠는가.

그이께서는 바깥에 나가시였다. 별이 총총한 밤하늘을 보나 어둠에 덮인 밤나무숲을 보나 모두 자신을 부러워하는것 같았다…

회상에서 깨여난 김정일동지께서는 방안을 천천히 거닐으시였다.

지금와서 그때 일을 회고하면 수령님께서는 그날밤 혁명에서 근본문제를 구구한 설명이 없이 통채로 안겨주시였던것이다.

(! 총에 대한 뜻을…)

 

×

 

이튿날.

김정일동지께서는 귀로에 오르시였다. 오진우와 나란히 앉으신 그이께서는 어제부터 시작하여 아직 끝을 보지 못한 이야기를 마저 할 작정이시였다.

승용차가 산골짜기에서 빠져나와 평탄한 길에 나서게 되였을 때 그이께서 말씀을 시작하시였다.

《저는 이번 군부대를 같이 돌아보면서 당대표자회결정 관철을 위한 견지에서 많은것을 생각하게 되였습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이번 걸음이 매우 유익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때 그이께서는 간밤에 회상하게 되였고 또 그것으로 해서 사색의 세계에 깊이 잠겨들게 되였던 일을 생각하게 되시였다. 얼마간 시간이 흐른뒤에 그이께서는 미소를 지으며 계속하시였다.

《난 간밤에 총에 대해서 그리고 총과 혁명에 대해서 많은것을 생각하게 되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날이 밝았습니다.

《총에 대해서요?

오진우는 무의식중에 받아외우면서 의아한 시선으로 그이를 쳐다보게 되였다. 너무나 범상한 이야기가 아닌가. 하지만 언제보나 평범한 말씀속에 깊은 뜻을 담고있다는것을 알고있었기때문에 무심히 들어넘길수가 없었다.

《총이라면 우리 군대가 가진 그런것이 아니겠습니까?

《물론 그렇습니다.

《하긴 총을 두고 말하자면 저도 할 이야기가 많지만 이제는 그것도 심상한 일로 되고말았습니다.

《그러나 저의 경우에는 항일투사들과는 사정이 좀 다릅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는 항일유격대에 참가하게 된것이 총을 가지고싶다는 단순한 하나의 욕망때문이였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참말 어리석었던거지요. 하긴 그때 고작해서 열일곱살이였으니까요.

어느땐가 수령님께서도 말씀이 계셨지요. 소년선봉대시절부터 오진우만큼 총을 부러워한 사람은 없었다고 말입니다. 싸창꽁무니를 줄줄 따라다녔다고 하시면서…》

《기왕 말을 시작한김에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던 이야기를 하나 해보겠습니다.

오진우는 호기심이 흠뻑 동해서 그이쪽으로 몸을 기울이였다. 그이께서는 미소를 지으며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제가 열살나는 해 여름 지금 저 전쟁시기 최고사령부자리 건지리가 있잖습니까. 거기에 있던 어느날 밤입니다. 위대한 수령님한테서 권총 한자루를 기념으로 받은 일이 있습니다.

그때 수령님께서는 열네살나는 해에 아버님으로부터 시계를 선물로 받은 일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저한테는 왜 총을 주셨겠는가 하는것입니다. 그후에 저는 언제나 그 총을 생각하면서 군사를 성실히 배우고 군사를 무슨 일에서나 첫자리에 놓고있습니다.

잠간 동안이 생기였을 때 오진우는 무릎을 치며 가벼이 탄성을 올리였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내 언제봐야 당사업과 함께 군사에 대한 관심이 우리 군사전문가보다 몇배 더하다 했더니만, 옳습니다. 리해됩니다. ! 그렇군요.

그는 연방 고개를 끄덕이였다.

하지만 김정일동지께서는 이쪽 기분에는 관계없이 줄기차게 말씀을 이어나가시였다.

《이제 와서 그 총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생각되는바가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해보았습니다. 총은 무엇보다먼저 그것을 가진 사람의 신념과 의지를 말해주는것이라고 말입니다.

총은 변하지 않습니다. 총은 아무리 오래 두었다가도 방아쇠만 당기면 탄알이 나갑니다. 그 탄알은 용서가 없고 변함이 없이 무자비합니다.

사람은 변할수 있지만 총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런 총과 함께 다진 신념, 그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혁명투쟁을 총화한 하나의 준엄한 결론이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그이께서는 여기까지 단숨에 말씀하고나서 일단 중단하시였다.

한마디라도 놓칠세라 주의깊이 듣고있던 오진우는 놀랍기도 하고 그 의미를 단꺼번에 다 새겨낼수가 없어서 고개만 계속 끄덕이고있었다.

《변하지 않는 총! 옳습니다.

어제는 《일당백》 세 글자에 새겨긴 뜻을 가지고 혁명무력건설의 전략을 풀어주었는데 오늘은 총에 대한것을 가지고 혁명가가 지녀야 할 신념과 의지에 대해서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주시는것이다.

그이께서는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항일혁명투사들의 경우에는 수령님의 뜻을 말로써가 아니라 심장으로 받아들이였고 행동으로써 그것을 보여주었습니다. 문제는 후대들인 2, 3세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하는 그것입니다. 그런 각도에서 보아도 지금 우리 군대에는 전혀 빈틈이 없는것같습니다. <일당백>은 확고합니다. 수령님께 실태를 보고드리면 대단히 만족해하실것 같습니다.

《과분한 평가입니다. 그러니 그이상 더 바랄 표창이 무엇이 또 있겠습니까.

! 그렇게 깊은 뜻을 가진 그 총을 한생 몸에 붙이고 다니면서도 오늘에야 비로서 그것을 똑똑히 들여다보게 되였단말입니다. 그런 뜻을 담아 줄기차게 사상사업을 들이대겠습니다.

오진우의 말소리는 흠뻑 젖어있었다.

《일당백》, 이 짤막한 하나의 구호에 담겨진 수령님의 사상을 보위하기 위하여 그토록 속을 썩인것이 인정되고보니 감격이 컸던것이다. 어려서 항일무장투쟁에 참가하여 50고개에 접어든 이날까지 수없이 많은 인생의 고비를 넘어오면서도 완강한 의지를 잃지 않던 그였지만 진심으로 울려주는 한마디의 고무의 말씀에 그만 눈굽이 뜨거워났던것이다.

그는 슬그머니 수건을 꺼내 창밖을 내다보는척하면서 눈굽을 꾹꾹 눌렀다.

이렇게 되고보면 김정일동지 이분을 두고 항일혁명투쟁참가자들이 《백두광명성》이라고 부르게 된것이 얼마나 자연스럽고 지당한것이였던가를 다시 생각해보지 않을수 없었다. 40년대초 백두산밀영에 나갔던 통신원이 가져온 소식인데 백두산마루에 장수별이 떴다고 하였다. 그때로부터 대원들이 모인 자리에서는 《백두광명성》이야기로 꽃이 피군하였다. 그때 일을 두고 지금 생각해보면 온 누리에 광명을 준다는 그 표현과 상징이 얼마나 정당하고 자연스러웠던지…

오진우는 고개를 돌려 줄곧 앞을 내다보고계시는 김정일동지를 그윽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순간 오진우의 가슴속에는 막혔던 샘물구멍이 터지듯이 감격이 사품쳐올랐다.

애써 참으려도 하였지만 끝내 가슴에 차오르는 뜨거운것을 눌러내지 못하였다.

오진우는 창밖으로 머리를 돌리며 손수건으로 눈등을 눌러대였다.

《몸이 편찮은거나 아닙니까?김정일동지께서 오진우의 팔을 잡아흔드시였다. 《무리하는것 같습니다. 여기 어디 들려서 좀 쉬고갈가요?

《아니 아닙니다.》 오진우는 손을 흔들며 미소를 지었다.

《나이들고보니 찬바람을 맞으면 눈물이 나서…》

그러면서 오진우는 벌겋게 된 눈을 손으로 가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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