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서《불멸의 력사》

  장편소설

 

                         석윤기

(제22회)

제 2 편

 

14

 

옥섬은 차광수가 느닷없이 말달구지를 몰고 나타나서 이사짐을 싸라니 영문도 모르고 많지도 않은 보따리들을 올려놓았다. 이사짐을 싼대야 돈화에서 올 때 꿍져가지고온 보따리들을 소사하에 와서 이집저집 옮겨다닐 때마다 풀어보지도 못한채 그대로 들고 이고다닌것이 아직도 그대로 있기때문에 품갈것이 없었다.

그래도 차광수는 무슨 큰일이나 치르듯이 덤비며 돌아갔다. 달구지에 절반도 되나마나한 세간붙이들을 기계새끼 한퉁구리를 다 풀어서 단단히 동이자 앞자리에 포단을 깔고 거적을 둘러쳐서 바람막이를 만들더니 옥섬이더러 타라고 하였다.

《아니, 왜 그래요? 어디로 가게 그래요?

《그런건 여기서 묻지 마오. 내 이제 가면서 다 이야기해줄테니…》

차광수는 뚝뚝하게 대답했다.

옥섬은 전에없이 엄엄하게 굴뿐아니라 말도 붙이지 못하게 하는 그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짐을 꾸리는 잡도리가 벌써 간단한 길을 가는 걸음이 아니라는것을 말해준다. 가면서 말해준다는것은 같이 간다는 말 같은데 그래서 일부러 저렇게 퉁명스레 구는것일가…

《어느쪽으로 가요?

《그런것은 묻지 말라고 하지 않소.

《아니, 길을 떠나면서 동서남북을 묻지도 못해요?

옥섬은 만만찮게 항변했다.

《가면서 대준다고 하지 않소. 다 필요해서 그러는것이니 그리 아오.

차광수는 좀 당황한 투로 말했다.

《가는곳은 몰라도 좋아요. 그러나 어머님께 인사를 드리고 가야 할게 아니예요.

《어머님은 지금 계시지 않소. 이젠 떠납시다.

차광수는 침울한 어조로 말하며 고삐로 말잔등을 가볍게 쳤다.

말뜻을 인차 새길수가 없어 잠시 어쩔바를 모르고 서있던 옥섬은 달구지바퀴가 삐걱거리며 몇바퀴 굴러나자 종종걸음을 쳤다.

《아니, 간밤에도 신열이 높아서 신고하셨는데 아침부터 어디로 떠나셨어요?

《동무의 일이 걱정스러워 한걸음 먼저 떠나셨소. 같이 가자고 아무리 말씀드려도 듣지 않으시니 무슨 까닭인지 모르겠소.

차광수는 시무룩해서 말했다.

그제야 옥섬이도 입을 다물어버렸다. 어쩐지 어머님의 생각을 알듯도 하였다. 혹시 자기네 두사람을 이사핑게대고 길동무해서 함께 걷게 해주고싶으신것이 아닐가. 사실 돈화에서 안도로 온 후로는 차광수와 단둘이 만나기란 쉽지 않았다. 옥섬은 어머님댁이 아니면 늘 부녀회원들속에 섞여있었고 소사하의 주인집에도 아이어른해서 두간방에 아홉식구나 되다보니 혹 일때문에 찾아왔다가도 우선 조용히 이야기를 나눌만한 자리를 찾을수가 없었다. 차광수편은 더하였다. 김일성동지께서 부강촌에 들어가신 다음에는 유격대를 꾸리고 다지며 각지의 조직들을 지도하는 모든 일이 그의 어깨에 실렸다. 차광수는 그야말로 눈코뜰새없이 팽이처럼 돌아가야 했다. 옥섬은 그런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있었고 리해도 하였다. 그러나 어쩐지 자기에 대한 관심이 차츰 멀어지는듯 하여 토라지는 마음을 감추려 하지도 않았다. 어느땐가는 일부러 찾아온것을 몹시 놀란듯이 대하며 《어떻게 되여 나같은것을 다 찾아오셨어요?》 하고 물었더니 차광수는 성이 나서 《철없이 굴지 마오. 이게 어느땐지 알기나 하오?》 하고 소리쳤다.

강반석어머님께서는 젊은이들의 사이에 뒤꼬이는 야릇한 마음의 파동을 낱낱이 꿰뚫어보신듯 때로 원호미방아를 찧는다든가 함께 군복을 짓게 되면 옥섬이가 알아듣도록 지금 차광수가 얼마나 바삐 돌아가는가. 그 사람에게 속썩일 일이 얼마나 많은가 하는것을 지나가는 말같이 들려주시고 한편 차광수를 만나서는 혁명하는 사람이 그렇게 차서는 못쓴다, 항차 희생된 전우의 누이동생인데 일삼아 찾아가서라도 위로를 해주고 돌봐야 하지 않겠는가 하고 타이르군하시였다.

옥섬은 이번에 길을 떠나면 그나마 차광수를 비롯해서 낯익은 사람들을 만나기가 더 어렵게 된다는것을 알고있었다. 아직 어디로 갈지 딱히 질정이 되지는 않았지만 최만득, 강영진이가 와서 리경락이네가 체포되였다는 소식을 전한 후부터 복잡한 문제가 많이 제기되였다. 리경락이는 조직의 중요비밀을 너무나 많이 알고있는 사람으로서 그의 혁명적지조를 아무리 믿는다 하더라도 원칙상 비밀련락소들을 그대로 유지하기가 어렵게 되였다. 실지 장춘, 공주령에서 몇개 련락소가 로출되기도 하였다. 그것을 우연한 사건으로 보기는 어렵게 되였다. 더구나 김일성동지께서 부강촌공작을 하시면서 혁명사업전반을 령도해나가시는 어려운 조건에서 그이의 지시와 그이께 올리는 보고가 전달되는 련락소들을 잘 꾸리는 문제는 사활적인 과제로 제기되였다. 차광수는 김일성동지께서 부강촌에 들어가신 직후부터 시간과 정력의 많은 부분을 련락소개편사업에 바치고있었다.

그중에서도 제일 어렵고 긴급한것이 돈화에서 진한정을 경유하기로 된 련락선을 개편하는 문제였다. 김일성동지께서 길림일대를 중심으로 해서 활동하실 때부터 간도지방과의 련계를 보장하는 련락선의 하나가 통해있던 그곳은 진한정이 안도로 나온 다음에도 여전히 중요통로로 예견되여있었다. 하루아침에 그 련락소를 철페한다는것은 어려운 일이였다.

일전에 오정혁이를 통하여 돈화련락소를 개편할 안을 성숙시켜보라는 김일성동지의 말씀을 전달받은 차광수는 오랜 생각끝에 강반석어머님과 사전토의를 하고 옥섬을 다시 돈화로 보낼데 대한 문제를 당과 공청지도성원들의 회의에 내놓았다. 어머님께서는 옥섬을 그런 위험한 일에 끌어넣는것이 좋겠는가고 거듭 걱정하시였고 조직의 지도성원들도 차광수의 뜻밖의 제기에 놀랐다. 그러나 옥섬에게 이미 그러한 사업을 한 경험이 있고 그것이 또 돈화에서 진행한 사업이였기때문에 여러모로 유리하다고 내우기는 차광수의 주장을 꺾을수 없어 찬성은 하면서도 옥섬이당자가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하는데 대해 걱정하였다. 옥섬이가 혼자서 외로와한다면 어찔것인가, 그것은 우리가 최효열의 전우로서 차마 못할 일이 아닌가 하고 계영춘이조차 신중한 태도를 취하였다.

《원칙상 동의한다면 그렇게 합시다. 지금 혁명정세가 감상주의에 사로잡혀있을것을 허용하지 않소.

차광수는 전에없이 결론을 서둘러하고나서 옥섬이당자와의 사업은 자기가 어머님과 의논해서 진행하겠다고 맡아나섰다. 그리고는 송강거리에 나가있는 진한정과 토론하여 주서향에게 사람을 한걸음 먼저 띄우고 하면서 그럭저럭 며칠을 끌더니 오늘 불쑥 옥섬의 이사짐을 달구지에 처싣고나선것이였다.

《어머님께서 어디에 계신다는거예요?

옥섬은 달구지가 소사하동네를 벗어나서 벌판에 나서자 앞뒤를 둘러보며 다시 물었다.

《송강에 나가셨소.

《아니 그럼 내가 송강에 나가요?

《아니.

《그럼 왜 어머님께서 송강에 나가셨어요?

옥섬은 점점 영문을 몰라서 옆으로 차광수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차광수는 선뜻 입을 벌리지 못하고 성에가 내불린 안경을 매만지다가 대답하였다.

《옥섬이를 바래주자구… 그리고 하루밤 같이 자면서 해주고싶은 이야기도 있고 옷가지도 좀 장만해주시겠다는군.

《아니, 내가 어디로 가게요? 송강보다도 더 멀리 가요?

옥섬은 놀라서 부르짖다싶이 물었다.

《그렇소. 돈화로 다시 가야 하오.

차광수는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돈화요? 그 먼데 나 혼자 가란말이예요?

옥섬은 아까보다 더 날카롭게 소리쳤으나 차광수는 습관적으로 말잔등을 고삐로 가볍게 후리며 묵묵히 걸을뿐이였다.

《난 싫어요. 난 안가겠어요. 아무도 없는 그런데 무엇때문에 나를 보내는거예요?

그래도 차광수는 말이 없었다.

옥섬은 숨을 가쁘게 톺으며 따라갔다. 아무런 대답도 없이 그냥 걷기만 하는 차광수역시 숨소리가 높아졌다.

송강 20리길의 절반도 못왔는데 길옆에 둔덕같은 등성이가 나타나자 차광수는 옆차기를 더듬으며 와- 와- 하고 말을 그리로 끌고갔다.

《좀 쉬여갑시다.

옥섬은 여태 약이 올라 남의 안색을 살필 겨를이 없었으나 별안간 억눌린 그 무엇을 터쳐놓듯 하는 차광수의 갈린 목소리를 듣고서야 그 역시 이 문제때문에 몹시 괴로와한다는것을 눈치채고 한결 마음이 누그러졌다. 지금 옥섬이에게 기어이 해명하고싶은것이 있다면 차광수가 무엇때문에 자기를 먼곳에 떼버리려고 하는가 하는것이였다. 혁명과업이야 어차피 하는것이고 또 자기로 말하면 지금 형편에서는 혁명을 하지 않고는 살아나갈 기력이 나질것 같지도 않았다.

등성이에는 동네에서 진흙을 파간 자리가 우묵하게 패워 그속에 눈이 그득히 쌓여있고 한옆에 우등불자리가 있었다. 차광수는 거치른 동작으로 달구지에 깔았던 거적을 집어서 우등불자리옆에 내던지더니 타다가 남은 숯등걸이며 삭정이들을 주어모아 불을 피우기 시작하였다.

허리를 잔뜩 구부리고 후- 후- 입김을 불어 연기를 피워올리는 차광수를 한참 어이없이 내려다보던 옥섬은 혼자말처럼 말했다.

《벌써부터 불을 피워서 길은 언제 가자는걸가…》

《동무가 안가겠다니 그러는것 아니요.

차광수는 불시에 얼굴을 들고 안경을 번뜩이며 말했다.

《어마, 내가 언제 안가겠다고 했어요?

옥섬은 이 순간에 정말 자기가 안가겠다고 말한적이 없는것처럼 생각되였다. 사실 아까 말한것은 못가겠다고 했다 하더라도 진심은 그것이 아니라 자기를 멀리 떼버리자는 차광수의 심사가 리해되지 않아서 일부러 앙탈을 부린데 지나지 않았던것이다.

《앉소.

차광수는 그 말은 더 캐볼 필요도 없다는듯이 거적을 불가까이 끌어다 펴놓고 말다만 담배를 다시 말았다.

앉으라고 거듭 독촉하듯 옥섬을 올려다보는 차광수의 눈에는 진정이 어려있었다.

옥섬은 까닭없이 자기가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며 가슴이 구슬퍼졌다.

바람새가 일정치 않아 연기가 때로 쪼그리고앉은 옥섬에게로 쏠리면 차광수는 손부채질을 해서 연기를 다른쪽으로 쫓아주군하였다.

《옥섬동무, 정말 내 마음을 모르겠소?

두툼하게 말아문 담배가 손에 잡히지 않도록 타들어갔을 때 차광수는 불쑥 말했다.

옥섬은 대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잠자코 삭정이끝으로 불밑만 헤집고있었다.

《지도성원들의 회의에서 이 문제가 론의되였을 때 모두 옥섬동무가 선뜻 가겠다고 나서겠는가 하는것을 걱정했소. 그러나 나는 무작정 맡아나섰소. 나는 현재상태에서는 임무가 제일 무겁고 또 위험하기도 한곳에 내가 못간다면 동무라도 보내야만 조직앞에서도 동무들앞에서도 얼굴을 들고다닐수 있다고 생각했던거요.

《그건 무슨 말이예요?

옥섬은 고개를 떨구며 낮게 속삭이듯 물었다. 어떤 예감이 두개의 집개날처럼 가슴을 꽉 물고들었다. 그것을 의식할수록 얼굴이 화끈거리고 손끝이 떨려났다. 혹시 얼굴이 이처럼 달아오르는것은 우등불때문이 아닐가, 그래서 옥섬은 귀밑머리를 쓸어넘기며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 이글이글 타번지는 화경같은 눈이 자기를 쏘아보고있는것을 보았다. 후둑 하고 가슴속에서 숨이 끊어지는것 같은 충격이 왔다.

《그래 내 마음을 정 모르겠단말이요?

이런 거치른 목소리와 함께 더운 입김이 확 풍겨오더니 억센 손아귀가 바람앞의 초불처럼 가냘프게 떨리는 옥섬의 손을 불달린 삭정이채 움켜쥐였다.

옥섬은 당황하여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리면서도 손을 뽑아낼 생각은 못하고 그우에 머리를 묻어 사나이의 손에 잡힌 제손을 감추려고 하였다.

날씨는 흐렸으나 밝은 대낮이였고 등뒤로 동뚝처럼 뻗어간 등성이가 있을뿐 시원히 트인 눈덮인 대지가 펼쳐져있었다. 다행히 사람그림자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왜 이래요?

옥섬은 얼마후에야 겨우 정신을 수습하고 손을 뽑으려 하였으나 차광수는 놓아주지 않았다. 어깨를 살구고 말없이 모지름을 쓰며 팔을 비틀수록 차광수의 손아귀에는 점점 힘이 더해지면서 땀기가 번져갔다. 동시에 옥섬은 제몸도 마음도 그에게로 끌려가는것을 느끼며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 흐리마리해지는 정신을 두들겨깨우듯 열기띤 목소리가 고막을 쳤다.

《내가 옥섬동무를 생각하는것이 동무가 제일 귀중한 또 제일 친했던 용감한 혁명전우의 누이동생이라는것때문만인줄 아오? 나도 처음에야 그래서 동무가 귀중했지. 효열동무가 희생된 다음에는 그런 생각이 더 간절했던것도 사실이요. 만일 나한테 그런 생각밖에 없었다면 나는 이번 련락소를 개편하는 중대한 문제를 놓고 생각할 때 동무의 이름은 셈에 넣지도 않았을거요. 그것이 옳은 일인지도 모르겠소. 아마 그렇게 해야 사람의 도리에 맞는거겠지.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할수 없었소. 왜 그런지 나는 진작, 솔직히 말하면 고유수에 있을 때부터 동무를 그렇게만 생각할수 없었소. 그래서… 어떤… 나의 개인적인 불순한 동기가 있어서 동무를 고유수에서 동만으로 데려왔는지도 모르겠소. 그래 동무가 그걸 여태 몰랐단말이요? 내 가슴이 어떻게 끓어번지고있다는것을 못느꼈다는거요?

차광수는 옥섬의 손을 놓고 학생복우에 껴입은 달구지저고리채 제 가슴을 움켜쥐고 흔들었다.

옥섬은 화끈거리던 얼굴이 부드럽게 펴지고 세차게 두근거리던 가슴도 진정되였다. 그러리라고 짐작하면서도 밤마다 병이 들만큼 의심에 시달리던 그것이 사실이라는것을 확인하게 되자 가슴은 이미 조용한 바다처럼 넓고 시원하게 틔여서 고르롭게 오르내렸다.

거치른 열정의 멀기가 아무리 태질을 해도 사랑하는 녀자의 마음은 한없이 깊고 부드러워서 그 끝간데모를 깊이에 그 모든 열정을 소리없이 받아안고 묻어버리는것이였다.

《그런데 왜 나를 보내자는거예요?

옥섬은 다시 삭정이를 집어들고 우등불을 헤치며 조용히 물었다. 그 여유있는 목소리를 듣자 차광수는 약이 오른듯 외면하더니 다시 담배를 붙여물었다. 그리고 먼 산발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 마음이 지금 얼마나 타는지 짐작이나 하오? 김일성동지가 부강촌으로 들어간 다음부터 나는 솔직히 말해서… 정말 동무에게니 말이지 나는 하루밤도 잠들지 못하오. 어찌다 쪽잠이라도 들면 흉한 꿈을 꾸오. 김일성동지를 그런 위험속에 보내놓고 내가 신수펀펀해서 돌아간다고 생각하면 정 못견딜 지경이요. 물론 그것때문에 내 책임과 죄책감이 덜리는것은 아니지만 나자신을 그 어떤 위험앞에 들이대고싶은 충동을 하루에도 몇번씩 느끼군한단말이요. 왜 나한테는 좀더 위험하고 좀더 중한 일이 차례지지 않는가 하고 막 안타까울 지경이요. 그래서 일부러 거칠게 해보려고 하다가는 김일성동지가 무엇때문에 부강촌에 들어가서 머슴까지 살게 되였는가 하는 근본이 생각나서 정신이 번쩍 들군한단말이요.

차광수의 고백속에서는 살을 저미는것 같은 신음소리가 섞여나왔다.

옥섬은 고개를 숙였다. 자기가 너무 제 생각에만 옴해서 혁명을 잊어버리고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광수가 기회만 있으면 혁명에 대해서만 말하니 그는 그저 혁명밖에 모르는 사람으로 알았지 그런 괴로움에 시달리고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하기는 김일성동지께서 계시지 않는 지금 그가 누구보고 자기의 개인적인 고민에 대해 터놓을수 있겠는가, 그것은 개인적인 고민도 아니다. 그러나 그의 립장에서 볼 때 김일성동지에 대한 그 충성심은 그 누구와 나눌수도 없고 그 누구가 대신할수도 없는 고민일것이다.

그는 언젠가 고유수에 있을 때 우리 혁명이 이기고 지는것은 복잡한 리론문제도 정세의 변화때문도 아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김일성동지의 안부여하에 달려있다. 그렇기때문에 혁명에 충실하라고 말하는것은 곧 김일성동지께 충실하라는것이고 혁명을 보위하라는것은 곧 김일성동지를 보위하라는것이라고 하면서 김일성동지께서 건재해야 오빠의 투쟁도 우리의 혁명위업도 영생한다고 말했었다.

돈화에 나와서 목단강기슭의 야학선생네 집에 홀로 있게 됐을 때 당황해지는 심정을 호소했더니 다정한 목소리로 타일러준 말도 그 말이였다.

《옥섬동무, 혁명이 굉장히 어려운것인가 생각지 마오. 조선혁명은 곧 김일성동지라는것만 명심하면 아무리 복잡한 문제도 쉽게 풀리는거요.

이제 생각해보면 차광수가 그러한 말을 한것은 자기에게만도 아니였다. 그는 기회있을 때마다 모든 사람들에게 그것을 열정적으로 말했다. 그리고 모든 사업을 그것을 위한데 귀착시켰다. 그런 그가 김일성동지를 부강촌에 보내놓고 얼마나 모대기고있으리라는것이 이제는 제 심정처럼 느껴졌다.

《그럼 진작 그렇게 말하지 않구…》

옥섬은 곧장 일어나서 갈것처럼 송강쪽으로 뻗은 길을 돌아보며 말했다. 약간 투정기를 섞어 한 말이지만 거기에는 처녀로서 쉽게 드러낼수 없는 다감한 감정이 섞여있었다.

그러나 차광수는 피뜩 돌아보더니 또다시 담배를 붙여물었다. 불달린 삭정이를 조그만 깔대기모양의 마라초에 갖다대는 그의 얼굴빛은 컴컴하게 흐려있었다.

《진작 말하라고?

후- 하고 담배연기를 한숨과 함께 내뿜으며 그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동무에게는 모든게 다 그렇게 쉽구만. 하기는 동무 오빠가 그런 태평이였지.

하고 한참 머리를 떨구고있던 차광수는 불시에 울부짖듯이 말했다.

《내 마음은 그렇게 편하지를 못하단말이요. 어머님을 설복하는데 이틀이 걸렸소. 조직의 결정을 받는데는 반시간도 못걸렸소. 그다음 그것을 동무에게 말하기 위해서 한밤중에 세번이나 동무를 찾아갔댔소. 그러나 그냥 돌아서고말았소. 나도 인간이요. 동무를 돈화로 떠나보내는게 나한테는 쉬운 일인줄 아오. 나도 인간이란말이요.

차광수는 싸움이라도 걸듯이 옥섬을 쏘아보았다.

옥섬은 부드럽게 웃었다. 그리고 가볍게 눈을 흘기며 조용히 말했다.

《이제는 다 알아요. 다 안다는데두 그래요. 정말 무슨 성미가 그래요? 그럼 난 편안하게 지낸줄 알아요.

차광수는 눈을 한번 치떠보더니 듣고싶지도 않다는듯이 외면하며 중얼거렸다.

《동무가 가서 해야 할 일이 간단한 일이 아니요. 진한정동무의 집은 벌써 놈들이 주목하고있소. 주서향동무네 집이라고 무심히 볼 놈들이 아니요. 그러나 지금 형편에서 그보다 더 안전한곳에 련락소를 꾸릴수도 없게 되였소. 김일성동지는 이번 통신에서 봄과 함께 간도일판을 폭동으로 휩쓸도록 조직사업을 할데 대한 과업을 제기했소. 감옥에서 나온 중요한 동무들이 아직 있는데 그들을 보호할 대책을 세우라는 지시도 있소. 앞으로 그와 관련된 통신련락이 동무를 거치게 되오. 이건 사실 동무에게는 아름찬 일이요. 그러나 위험하고 중요한 그만큼 내가 못가는 형편에서는 동무를 보내자고 결심할밖에 없었소. 내가 동무 이름을 안찍었다 해서 그 누구도 나무라지 않을것이요. 오히려 어머님께서는 왜 하필이면 불쌍한 아이를 그런데 보내자고 하느냐고 나를 나무라시더군. 이제 김일성동지가 이 보고를 들으면 역시 비판할지도 모르겠소. 그러나 김일성동지를 대신해서 그 누구도 부강촌에 들어갈수 없었던 우리 혁명의 이 기막힌 실정앞에서 나는 그이의 전사로서 이렇게라도 하지 않고는 량심을 달랠수가 없소. 옥섬동무, 내 말을 리해하겠소?

《알아요. 너무 속을 썩이지 말아요. 난 이제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떠날수 있어요. 그리고 거기 가서도 마음이 든든할거예요. 여기 있으나 거기 가나 늘 못보기는 같지 않아요.

고개를 숙인채 조리있게 또박또박 말하는 옥섬의 옆얼굴을 차광수는 유심히 살폈다. 자기는 이처럼 괴로움에 시달려 숨이 가쁜데 가냘픈 몸매를 한 옥섬이에게는 어쩌면 이처럼 모든 일이 맺고 끊듯이 선명하고 또 그것을 거침없이 표현할수 있을가 하고 놀랍게 생각하였다. 최효열의 체포소식을 듣고 그를 빼돌리려 공주령에 갔을 때 장정들도 지기 힘들 낟알짐을 지고 상냥하게 웃던 모습이며 왜놈들의 총을 빼앗아놓고 목단강기슭의 버드나무밑에 찾아와서 토라진 소리를 하던 옥섬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러고보면 옥섬을 돈화의 련락소에 박아넣기로 한 결정은 어느모로 보나 옳았는지 모른다.

《엥히, 무슨 판인지…》

차광수는 아직도 절반이나 남아있는 담배꽁초를 불속에 훌 집어넣고 발로 눈을 걷어찼다. 우등불을 끄자는것이였다. 눈가루는 뿔뿔이 흩어질뿐 마음먹은대로 우등불에 끼얹어지지 않았다. 그 거치른 동작을 지켜보던 옥섬은 진흙을 파낸 자리에 수북이 쌓인 눈을 두손으로 한웅큼 움켜다가 우등불에 조용히 올려놓았다. 불길은 삽시에 칙- 칙- 소리를 지르며 죽어갔다. 다시 한웅큼 쏟아부으니 김같은 연기만 피여오를뿐 불은 깨끗이 죽어버렸다.

차광수는 길에 나서서야 다시 침착성을 회복하였다.

송강에 가면 지금쯤 진한정동무의 애인이 와있을거라고 하면서 이제부터는 중국옷을 입고 주서향동무의 먼 친척으로 행세하면서 량강구를 빠져나가야 한다는 말을 했다. 강반석어머님께서 미리 송강에 나가시여 그 준비사업을 해놓으셨을거라는 말을 들었을 때야 옥섬은 비로소 실무적으로 자기가 수행해야 할 임무가 얼마나 중하고 또 위험한것인가 하는것을 몸으로 느꼈다.

차광수는 옥섬을 기어이 달구지에 태웠다. 그리고 자신은 그옆에 붙어 걸어가면서 유격대가 정식으로 발족하는 날이면 자기가 또다시 이처럼 달구지를 꾸며가지고 데리러 가겠다고 그의 마음을 달래였다.

 

 

15

 

 

차광수는 진한정이 림시 거처하고있는 중국사람의 집에 옥섬을 곧장 데리고가는것이 자연스럽지 못한것 같아서 먼저 송강물산객주집으로 데리고 갔다.

차광수자신은 진한정으로부터 돈화의 련락망을 옥섬이에게 인계시켜주고 미구에 도착할 주서향이와 함께 안전하게 출발시킨 다음 명월구로 해서 연길 왕청쪽으로 건너갈 생각이였다.

이번에 오정혁이 가지고온 통신에도 지적되였지만 다가오는 봄철을 앞두고 농민들의 생활은 나날이 핍박해지는데 폭동적성격을 띠여가는 그들의 투쟁기세를 잘 조직화하여 항일무장투쟁개시의 계기점으로 삼을데 대한 김일성동지의 지시가 모든 지역에서 딱딱 정확하게 집행되는것은 아니였다. 무장로선으로 준비하는 문제가 농민들의 대중투쟁과 분리되여 소수의 비밀무장대가 대중우에 기름방울처럼 떠돌아다니는 현상도 있고 한쪽에서는 대중투쟁을 조직한다는 명목밑에 무장탈취를 위한 투쟁을 비롯해서 무장대를 꾸리는 사업이 소극적으로 진행되는 현상도 있었다. 왕청에서는 조직중에 있는 소규모 유격대와 반일부대사이에 언제 충돌이 일어날지 모를 정도로 분위기가 첨예하다는 리광의 보고는 김일성동지의 큰 우려를 자아냈다. 원래 명월구회의에서 반일부대와의 사업을 잘할데 대한 문제가 중요하게 강조되였고 그를 위하여 반일부대가 많이 집결되여있는 왕청지구에서 그들과의 사업을 잘할데 대한 구체적인 과업을 받고 김중권이와 함께 떠나간 리광이였다. 어떤 난관앞에서도 동요하지 말고 명월구회의결정을 철저히 관철할데 대한 김일성동지의 지시는 그때 련락원을 통해 직접 리광이와 김중권이에게 내려갔겠지만 그것만 가지고 마음을 놓을수가 없어 직접 리광을 만나서 실정을 료해하고 대책을 토론하자는것이였다.

차광수는 길을 서둘렀다. 그런데 진작 안도땅을 떠난줄 알았던 장철하 여태 물산객주집에 묵고있다가 문전을 나서는 그를 도로 객주집으로 끌었다.

《웬일입니까? 여태 돌아가지 않았습니까?

차광수는 한쪽소매를 잡힌채 놀라서 물었다.

《이사람, 떠들지 말게. 내 떠난다 떠난다 벼르면서 여태 떠나지 못하고있는것은 자네를 만나기 위해서네.

《네? 그럼 며칠씩 기다릴것도 없겠는데요…》

《그것도 그렇긴 해, 허지만 웬일인지 소사하쪽에 다시 발길을 들여놓을 용단이 내려지지 않더군. 그것도 생각하면 다 내 사람됨됨이 옹졸한탓이겠지.

장철하 딴사람처럼 풀이 죽어서 이렇게 말하더니 객방이 오히려 부산스럽다고 하면서 뒤울안으로 갔다. 장작가리옆에 오금을 꺾고 앉은 장철하 담배 한대를 붙여물더니 말없이 땅바닥을 가볍게 두드리며 마주앉기를 권했다.

《무슨 일입니까?

차광수는 어쩐지 긴장되는것을 느끼며 엉거주춤 허리를 구부리고 앉았다.

《내 이거 잘못 생각하는지 모르겠네만 그날 토기점골에서 떠나오다가 소사하근방에서 지대현이를 만났네.

차광수는 말없이 마주보기만 했다. 장철하 마음속에서는 어마어마하게 생각했던것이 정작 입밖에 내서 말하자니 불시에 그처럼 요란을 떨 내용이 없는것 같아 초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대현이를 자네들도 알테지? 좀 종잡기 어려운 인간일세. 헌데 그 사람에게 동행이 있더란말일세.

하고 장철하 소인방을 만나서 인사를 나누던 일이며 그들이 소사하에 정미소를 차리겠다는것이며 스치고 지나는 말처럼 슬쩍 비쳤지만 그들이 실상 제일 큰 관심을 가진것은 김성주일가와 비밀무장대의 동향이더라는 말을 자세히 이야기하고나서 덧붙였다.

《그 사람이 말은 호남 개봉사람이라고 하고 그만한 나이에 그쯤한 재력을 가지게 된 래력도 은근히 풍기데만 나한테는 그것이 그럴상스럽게 들리지 않더군. 그러나저러나 나하구는 별반 상관되는바도 없길래 일단 헤여졌지. 허나 혼자 곰곰 생각해보니 그자들의 언행이 하나부터 열까지 다 수상쩍단말일세. 그것들이 필시 성주 그 사람의 뒤를 캐고있는것이 틀림없네. 그리고 그 소인방이 호남 개봉에서 왔다는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네. 그리고보니 어디서 한번 본듯한 생각이 나거던. 여기 나와서 잘 생각해보니 성주가 교하에 왔을 때 그 사람 뒤를 따르던놈이 그놈이였네. 그때 성주와 중국음식점에서 헤여져나오다가 꼭 저렇게 생긴놈을 그 골목길에서 만났네. 그야 내 기억이 잘못될수도 있지. 허나 그 녀석이 중국사람이 아니라는것은 어느모로 보나 내 느낌이 정확할걸세. 그렇다면 그게 무슨 인간이겠나? 차광수 이사람, 내 말을 듣나?

《듣습니다.

《그래 뭐 짚이는게 없나? 내가 허황한 소리 하는것 같지는 않나?

《그런것 같지 않습니다.

차광수는 침울한 목소리로 긍정했다. 그러자 장철하 가볍게 한숨을 내쉬더니 얼굴의 긴장을 다소 풀고 다시 담배를 붙여물었다.

《사실 내가 이 말을 하는것이 분수없는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고 느껴지는바가 분명 있는데 그냥 훌쩍 떠나갈수도 없고… 며칠동안 잠을 청하지 못하고 생각했네.

《그렇다면 진작 우리들에게 만나자고 기별을 하실걸 그랬습니다.

《기별을 하기야 뭘, 내가 잠간 토기점골을 다녀왔더면 되는 일이지. 이제는 길도 알았겠다 하니 소풍삼아 마차를 타고 담배 한대피울 사이면 다녀오겠는데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는군. 사람이 나라앞에 죄를 짓고는 살수 없다는 생각이 가슴에 사무치더군. 그러나 부강촌에 그 사람이 가있고 지대현인즉 부강촌을 자주 드나드는 사람인데 그자의 뒤에 틀고앉아있는것이 틀림없는 왜놈의 특무라고 생각하니 이제는 지어놓은 죄야 어떻든 이것을 알리고 빨리 손을 쓰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 앞서더군.

《선생님, 고맙습니다. 그러니 그놈들이 선생님을 믿고 조심성없이 군것은 큰 실수였군요.

차광수는 가슴이 후더워지는것을 느끼며 부드럽게 말했다. 장철하 쓸쓸한 표정으로 담배연기를 날리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뭘, 내가 자네들의 군사를 보기전에 또는 성주자당의 엄한 깨우침을 받기전이였다면 큰 실수라고 볼것도 없겠지. 내 이제니말이지만 나 역시 지대현이 그자와 촌분도 다른 점이 없는 인간이였네. 그런데 성주자당의 말씀을 듣고 성주 그사람이 일으키자는 군대를 내 눈으로 보고나니 내가 생각하던것이 얼마나 큰 잘못이였는가 하는것을 어느정도는 깨달아지네. 나는 성주가 말하던것이 그대로 다 이루어지겠는가 하는데는 여태 믿음이 덜 가네만 조선이 아주 망한것은 아니며 오히려 어떤 의미에서는 조선의 얼이 더 억세게 태동하고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네. 그러나저러나 그것은 딴 문제고 내가 더 반성해봐야 할 문제이네. 급한것은 성주를 구하는 일이네. 만일 내 짐작이 전혀 허망한것이 아니라면 어서 손을 써야 하지 않겠나?

《손을 써야지요. 그래 선생님은 장차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차광수는 허리를 일으키며 물었다.

《일단 교하로 돌아가겠네.

하고 장철하 담배불을 끄고 손을 털며 일어섰다.

《이제는 마음이 퍽 가벼워져서 길을 떠나기가 어렵지 않을것 같네.

《그럼 편안히 다녀가십시오.

《잘 있게, 내가 성주자당을 다시 뵙지 못하고 떠나겠는데 내 인사를 전해주고 겸하여 내 심정도 좀 말씀드려주게.

《념려마십시오. 그리고 우리와도 싸움의 길에서 다시 만나게 될는지 알겠습니까.

《그렇게 된다면 여북 좋겠나.

하고 장철하 어설픈 웃음을 지었다.

그는 그날밤 소사하의 조참위를 만나 유격대원호금으로 적잖은 돈을 맡겼다는 말은 비치지도 않았다.

차광수는 장철하 헤여지자 그길로 서문장거리의 마철전으로 찾아갔다. 그곳은 김일성동지와 련결되여있는 련락소였다. 소인방의 정체가 무엇인지 아직 똑똑치 않다 하더라도 어느모로 보나 위험인물인것만은 틀림없는데 그자가 소사하일대와 부강촌을 주목하고있다는 사실을 시급히 김일성동지께 알려야 할것이였다.

마철전에는 송강뿐아니라 주변농촌의 생활이 반영되고 사람들이 끓이는곳이라 련락을 취하기도 편리하고 반일선전을 하기도 좋은곳이였다.

차광수는 마철전 한옆에 세워놓은 네개의 마주대 틀안에 말을 들여다세워놓고 고삐를 매였다. 사위를 살펴보니 마소나 달구지는 보이는것이 없는데 낯익은 승용마차 한대가 서있었다.

현 경찰 장상민의 마차라는것을 알아본 순간 차광수는 눈에 불이 일었다.

차광수는 언젠가 그놈을 처단해버리리라 속으로 생각하고 그놈의 동향을 구체적으로 살필데 대한 과업을 송강의 공청조직에 이미 주었었다.

그런놈이 무슨 일로 마철전에 나타났는가. 혹시 무슨 냄새라도 맡은게 아닌가싶어 제절로 닫기게 용수철을 달아놓은 출입문을 슬그머니 열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마주보이는 마철매대에는 마철전 주인 송경후가 방수포앞치마를 두르고앉아 입귀로 연신 해바라기씨를 까뱉으면서 무슨 쟁기자루를 깎고있었다. 마철전에 잇달린 야장간쪽에서는 벼림질소리가 나는데 마치소리보다는 사람의 목소리가 더 많이 울려나왔다.

컴컴한 구석을 유심히 살펴보니 구당비서 김정룡이 박아넣은 공청원 김춘길이 모루앞에 앉아있고 낯모를 청년이 메를 들고 서서 모루우에 놓인 감빛으로 달구어낸 낫가락이 다 식어가는데도 그냥 이야기에 정신이 팔려있다.

《내가 안경쟁이를 한두사람만 안다구 자네 말 한마디면 제꺽 알아차린단말인가?

이러한 김춘길의 말에 차광수는 주춤 해서 문을 닫을가 하다가 얼핏 보매도 장상민은 없는것 같아 아예 집안으로 들어섰다. 김춘길이가 말하는 안경쟁이라면 틀림없이 자기 이야기겠는데 무엇때문에 알지도 못하는 청년과 그런 이야기를 하는가.

《안녕하십니까?

하고 차광수는 송경후앞으로 가서 인사를 하였다.

《오, 차선생이 오셨소? 요즘은 발걸음이 뜸합니다.

송경후는 하던 일을 계속하면서도 반색을 지었다.

《하는일 없이 바빠서 그럽니다.

차광수는 대장간쪽을 옆눈으로 살피며 대답했다.

《그러고보니 일이 잘되는갑시다.

송경후가 일이라고 말하는것은 곧 유격대사업인것이다. 그 역시 한때 독립군으로 총을 메고 돌아가던 사람이라 조선군대가 새롭게 태여난다는데 대해 무심할수가 없는것이다. 그래서 성의있게 유격대의 일을 도와나서기도 하였다.

《일이 잘되기야 뭘… 헌데 저 사람은 보지 못하던 사람인데 웬 청년입니까?

차광수는 잔메질을 몇번 하다가 김춘길에게 무엇인가 그냥 졸라대는 모루앞의 청년을 눈으로 가리켰다.

《저 경찰에 있는 장상민의 마부지요. 저녀석이 오늘은 물볼기를 맞자고 저러는지 주인을 어디다 팽개치고 저렇게 늑장을 부리는군요.

《자주 옵니까?

《웬걸 어찌다 마철을 씌울 때나 나타나지요.

차광수는 마철을 고루는척하고 매대우를 더듬으며 그쪽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자네 그 안경쟁이한테 나를 인도해주기만 하면 내가 한턱 쓴대두 그래, 그리구 귀띔해줄 소식도 있고…》

《그까짓 소식이나 해서 내가 뭘해. 그런데 안경쟁이는 왜 찾는거야? 눈이 성한 사람도 많은데 하필이면 안경쟁이를 찾을건 뭔가말야?

김춘길이가 생먹은 소리를 하자 장상민의 마부 청룡은 안타깝다는듯이 메를 들고 낫가락을 몇번 짓조기더니 수군수군 말했다.

《내가 팔자를 고치자구 그런다지 않아. 사실대로 말하면- 내가 얼마전에 부강촌에 갔단말이야.

《뭐 부강촌? 부강촌엔 왜 갔댔어?

김춘길은 놀라서 성급히 물었다.

《그것보라구. 궁금하지?

하고 청룡은 비죽이 웃으며 눈을 끔쩍끔쩍하였다.

《궁금하긴 넨장.

김춘길은 자기가 덤볐다는것을 깨닫고 제꺽 눙치며 심드렁한 목소리로 잇대였다.

《부강촌 보위단장네 집에 잔치가 있다더니, 뭘 얻어먹을가 해서 찾아갔겠군. 냄새는 잘 맡는다.

《냄새가 다 뭐야, 그 집이 바로 사둔집인데…》

《누구네?

《우리 주인의 처조카딸이 그 집 며느리가 됐단말이야.

《그것참, 그러니 정말 천정배필이로군, 부강촌 보위단장이 일본사람들앞에서는 장상민이보다 더 등수가 높다던데… 그러니 청룡이 자넨 왜놈이 들어오기만 하면 어느 줄을 타든 팔자를 고치겠군.

김춘길은 이처럼 롱으로 상대를 구슬리면서도 실상 마음속으로는 천하맹물단지 같던 인간이 왜 갑자기 소사하의 안경쟁이를 찾으며 또 부강촌 갔다온 이야기는 무슨 심산으로 꺼내놓을가싶어 궁금하기가 짝이 없었다. 그러나 어쨌든 상대가 악질반동의 마부인데다 부강촌까지 갔다왔고 그끝에 차광수를 찾는것만큼 무조건 심중하게 대하지 않을수 없었다. 서뿔리 속을 뽑자고들었다가 도리여 낚시에 걸릴수도 있다고 생각한 김춘길은 부강촌이야기같은것은 들을 재미도 없다는듯이 딴전을 부렸다.

《자네 요즘은 자리귀신하고 좀 친했나?

《그게 글쎄 잘되지 않아서 그러지 않아. 돈을 벌어서 코아래진상이라도 좀 할가 했더니 이번에 부강촌에 가서 듣자니 그따위 귀신은 없다는군. 그래 그 소사하 안경쟁이한테 물어보자는거야. 그 사람 좀 만나게 해달라구. 증손이는 자네한테 말하면 제꺽 대줄거라고 하던데 자네는 남의 사정을 통 알아주지 않는군.

《증손이가 누구게 그래? 증손이한테 들었으면 제창 그 사람한테 물을것이지 아무 영문도 모르는 사람 찾아와서 이 성환가? 남은 바빠죽겠는데…》

《쳇, 나를 영 숙맥으로 생각하는군. 나도 이 마철전이 말편자만 신기는데가 아니라는걸 안단말이야.

청룡은 시뜩해서 한마디하고는 메자루를 모루우에 훌 집어던졌다. 메는 낫가락과 함께 땅바닥에 툴렁하고 굴러떨어졌다.

《자식, 버릇이 나쁘다. 마철전에서 말편자만 신기지 않으면 뭘 한단말야. 너 장상민이한테 무슨 소릴 들었어?

《그건 대줄수 없어. 전 고슴도치처럼 도사리고앉아서 내 속만 뽑겠다구? , 어림없는 소리.

청룡이가 밸을 부리자 김춘길은 좀 난처해졌다.

《그럼 내가 소사하에 사는 안경쟁이를 딱 하나 아는데 그 사람을 대달라는가?

김춘길은 한걸음 물러서서 이렇게 말하며 굴러떨어진 낫가락을 집게로 집어 모루우에 올려놓았다.

《하여간 대줘보지. 그게 증손이가 말하는 안경쟁이면 나도 할 말이 있을것 아닌가.

하고 청룡이가 땅바닥에 굴러난 메자루를 도로 집어들려는데 다른 손이 먼저 와서 메자루를 잡았다.

《소사하 안경쟁이는 왜 찾소? 내가 소사하에 사는 안경쟁인데…》

하고 차광수는 손바닥에 가볍게 침칠을 하며 청룡을 돌아보았다.

《아, 언제 왔습니까?

춘길이가 먼저 알은체를 하였다.

《이사람 춘길이.

하고 차광수는 달구지저고리의 자락을 량옆으로 갈라놓으며 침으로 손바닥을 추기고 메자루를 움켜쥐였다.

《마철을 어떻게 신겼기에 전번 장날 신긴게 벌써 발톱이 쩌개지게 하나? 내가 달구지임자한테 얼마나 땀을 뽑혔는지 아나?

《저번 장날이야 내가 마철을 신겼나요? 선생이 제손으로 신기구선…》

춘길이는 억울하다는듯이 발명을 하며 청룡이쪽을 눈짓하였다.

《그럼 더하지 않나? 그래도 값은 제대로 다 받았지? 그런데 이 사람은 누구기에 나를 찾는가?

차광수는 눈을 더부럭더부럭하며 자기를 뜯어보는 청룡을 일부러 시답잖아하는듯 한 눈길로 훑어보았다.

《저 경찰에 다니는 나리의 마분데 갑자기 소사하안경쟁이를 만나야 팔자를 고치겠다고 그러지 않아요? 요즘 소사하에 선생말고 또 안경낀 사람이 생겼나요?

《웬걸, 구장 김상률씨와 방아간집 령감이 돋보기는 끼지만 나같은 진짜 안경쟁이야 아니지.

《그럼 차선생이 옳구만, 청룡이, 자네 만나자는분이 바로 이분일세. 소사하에서 야학선생을 하는분이야. 인사를 드리게.

문청룡은 굽석하고 절을 하였다. 그러면서도 어딘가 석연치 않은 표정이였다. 사실 청룡이가 부강촌에서부터 머리속에 그리며 만나기를 원했던 안경쟁이는 이렇게 젊은 나이에 달구지저고리나 입고 제손으로 마철을 신기려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적어도 자기가 모시고다니는 주인 장상민이보다 훨씬 틀진 사람이였다. 아무리한들 사람들에게 사주팔자를 청하는대로 고쳐줄만 한 힘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따위 마철전같은데 드나들며 대장쟁이하고 허물없이 이야기를 주고받는 일은 없을것이였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상한것은 메자루를 움켜쥐고 춘길이가 번지는대로 메질을 능숙하게 해대는 막로동에 몸이 밴듯 한 이 안경쟁이에게서 장상민이보다도 더 어려움을 느끼게 되는 그것이였다. 게다가 청룡은 저나 비슷한 동무들끼리 실없는 소리나 지껄이라면 주변이 꽤 좋은편이지만 정색해서 인사를 차리자면 말을 어떻게 떼야 할지 몰랐다.

청룡이가 어색하게 서서 뒤더수기를 긁적거리자 차광수는 인차 그의 순박성을 꿰뚫어보고 엄한 표정을 눙치며 춘길이에게 말했다.

《봐하니 이사람도 팔자를 고치기가 쉽지 않겠네. 자네 우리 말을 매여놓았으니 마철을 좀 신겨주게. 그사이 이사람 이야기나 들어보게…》

춘길이는 제꺽 눈치를 채고 잡은것을 찾아들면서 청룡을 차광수쪽으로 슬쩍 밀쳤다.

《그 집 성씨를 어떻게 부르오? 그렇게 장승같이 서있지 말고 메질이나 좀 하오. 그래 소사하에 나같은 안경쟁이가 있다는 말을 어디서 들었소?

차광수는 보매 자기보다 나이도 아래지만 잔뜩 주눅이 들어버린듯 한 상대와 쉽게 가까와지기 위해서 일부러 반말을 쓰면서 허물없이 대했다. 그것이 청룡이에게는 확실히 좋은 인상을 준듯하였다.

《난 청룡인데… 선생님 이야기를 부강촌에서 들었어요.

청룡은 조심스럽게 메질을 하면서 말했다.

《메질을 그렇게 떡반죽 주무르듯 하지 말고 맵짜게 조기오.

하고 차광수는 모루우에 낫가락을 번져놓으며 말했다.

《청룡이라… 그런데 부강촌에는 내 아는 사람이 없는데…》

《그렇게 한쪽만 조기면 가위처럼 엇날이 서서 안돼요.

청룡은 좀 대답이 궁해서 머뭇거리다가 차광수의 대장솜씨가 한심하다는듯이 메자루를 짚고 중얼거렸다.

《안되면 다시 달쿠면 될것 아니요. 옜다, 다시한번 구워보자.

하고 차광수는 낫가락을 집어서 소탕에 치고 슬슬 풍구질을 하며 아까 질문을 되풀이하였다.

《그래 부강촌에서 누가 내 말을 하더라구?

《증손이라구 그 마을 누구네 집에 머슴산다는데…》

《청룡이와 잘 아는 사이요?

청룡은 여기서 잠시 쭈밋거렸다. 자기가 증손이와 잘 아는 사인가 아닌가 하는것은 별로 생각해볼것도 없이 명백하였다. 그런데 정작 따지고보면 한마디로 모른다고 말해버릴 사이라고 보는것도 사실과 맞지 않는것 같았다. 그럼 생판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말 한마디를 듣고 팔자를 고치겠다고 돌아간단말인가.

청룡이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는데 차광수가 대답을 독촉하듯 고개를 들고 바라보았다. 번쩍거리는 안경알너머로 곧추 바라보는 차광수의 눈길은 몹시 엄하게 느껴졌다.

청룡은 얼결에 대답했다.

《그야 잘 아는 사이지요.

《그래?

차광수는 고개를 숙이려 하다가 도로 쳐들었다.

청룡은 당황하였다. 사실은 잘 아는 사이라는 말끝을 맺을 때쯤에 벌써 이크, 내가 이거 무슨 소리 하나 하는 생각이 떠올랐었다. 그러나 이미 쏟아진 물이라 그 말을 도로 입안에 주어담을수는 없었다.

사실 크게 거짓말 한것도 없지 않느냐 하는 생각이 다시 든 청룡은 배심을 든든히 차리고 차광수를 마주 쳐다보았다.

그 눈길이 차광수에게는 마음에 들었다.

이 친구 봐라, 나를 업어넘기자고… 물론 김일성동지가 일부러 소개해보낸 사람이니 소홀히 대할수는 없지만 거짓말재간이 얼마나 되는지 좀 떠볼밖에 없다. 이렇게 생각한 차광수는 알만 하다는듯이 고개를 끄떡거리며 다시 물었다.

《그래도 누구네 집에서 머슴을 사는지 모르는걸 봐서 그렇게 가까운 사이는 아닌 모양 아니요?

《누구네 집에서 머슴을 사는지 모른다고 내가 말했던가요?

청룡은 한순간 얼굴이 벌개졌으나 그쯤한 일에 기가 꺾일 위인이 아니였다.

《그렇다면 그건 사실이지요. 나는 증손이가 부강촌에서 머슴을 산다는것만 알지 누구네 집에서 머슴을 사는지 그건 모른단말입니다. 뭐 내가 모르는게 증손이가 어떤놈의 집에서 머슴을 사는지 그것만 모르는줄 알아요. 우리 아버지도 남의 집에서 머슴을 살다가 쫓겨났다지만 나는 그놈의 집이 어데 있었는지조차 모르지 않아요. 머슴을 살다가 쫓겨나고 신작로가 지나가는바람에 땅을 떼우고 그다음 경찰에 붙들려가서 매를 맞고… 뭐 그러루한 말을 듣기는 했지만 난 그게 어디바루서 일어난 일인지조차 모른단말입니다. 그래도 우리 아버지야 우리 아버지지요.

《허허허, 청룡이 말을 듣고보니 내가 실수했군. 사실 잘 아는 사이지만 그중에도 모르는것이 있을수 있지.

하고 차광수도 허거프게 웃었다. 그러면서도 이 젊은이와 장차 어떻게 사업해야 할것인가 하는 실머리를 잡기 위해서도 몇가지 사실은 밝혀보지 않을수 없었다.

《그래 그렇다면 증손이에 대해 잘 아는것은 뭐요? 증손이가 어떻소?

《증손이요?

청룡은 되묻고나서 눈을 더부럭거렸다. 아까는 얼결에 거짓말 한마디를 해놓고 함정에서 빠져나오듯 덮어놓고 이말저말 주어섬겼지만 이번에는 함부로 말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좋지요. 남의 사정을 알아주거던요.

차광수는 고개를 기웃하였다.

《그다음 또?

《그다음 또 뭐더라… 사람이 속이 시원히 틔였어요. 머슴살 사람이 아니지요. 그런데말입니다.

하고 청룡은 갑자기 심중한 표정이 되여 사위를 살피더니 차광수의 귀전에 대고 수군수군 말했다.

《이건 선생만 알고있소다만 그 사람이 공산당같애요.

《공산당?

차광수는 긴장하여 되받아넘기고나서 나지막하게 물었다.

《그건 뭘 보고 그러오?

《사실 이건 나도 똑똑히는 몰라요. 내가 증손이와 가까운 사이기는 하지만 사귄지가 그리 오래지는 않지요. 나도 처음에는 그 사람이 우리나 같은 머슴군인가 했댔지요. 그래서 이말저말 마구 하다가 정신차려 들어보니 다르거던요. 나중에 당책쟁이 이야기랑 하는걸 보니 여간내기가 아니더란말입니다. 머슴군이 유식한건 공산당이지요. 정미소에 다니는 내 동무 만춘이도 무당이나 당책쟁이를 욕하지요. 만춘이도 공산당이거던요.

《<추덕취>정미소에 다니는 그 더퍼리말이요?

《잘 아시누만요. 만춘이도 걸핏하면 사주팔자라는건 없고 예수나 부처를 믿는것은 다 미신이라고 우기지요. 가만 생각해보니 증손이가 하는 말도 어딘가 비슷한것 같은데 증손이가 하는 말은 참 그럴상해요. 만춘이가 말할 때는 잘 믿어지지 않던게 증손이 말을 들으니 귀가 번쩍 열리지 않겠어요. 그런데 우리 주인이 변덕을 부리는바람에 그만 헤여졌어요. 후에 가슴답답한 일이 있으면 여기 와서 소사하 안경쟁이를 찾으라고 대주더군요.

차광수는 청룡의 말을 통해 부강촌에서 대개 무슨 일이 있었으며 김일성동지께서 청룡이에게 기대하시는것이 무엇이겠다는 짐작이 갔다.

《그러니 지금 가슴이 답답하겠소?

《뭐 딱 지금 가슴이 답답한것도 아니지만 늘 속이 무직하지요. 그리고 어쩐 일인지 증손이 말이 잊혀지지를 않거던요. 요즘 맞갖잖은 일이 많아서 속이 한창 괴이더라니…》

《맞갖잖은 일이라는게 뭐요?

《허참, 맞갖잖은 일이 한두가지게요?

청룡은 어처구니없다는듯이 차광수를 한번 치떠보더니 퉁명스럽게 말했다.

《한번 남의 마차를 끌고다녀보라요. 빨리 가면 들춘다고 야단, 천천히 가면 굼벵이라고 야단… 하루에 내가 말새끼보다 더 매를 많이 맞는단말이우다. 때리는것도 말새끼야 나 한사람이 때리지요. 내가 때린다는것도 그게야 때리는건가요. 꾀를 못쓰게 어루만지는거지요. 그러나 우리 주인놈이나 추월이년이 때리고 꼬집는건 악착스럽단말이우다. 다 자리를 잘못 잡아서 그렇지요. 같은 마부라도 저 농막골 큰집에 사는 재일이는 신수가 펀펀한데… 하긴 증손이는 그렇게 생각하는게 다 당책쟁이한테 속아서 그런다고 합디다만…》

차광수는 슬슬 풍구질을 하면서 청룡이의 하소연을 주의깊이 들었다. 그러나 그의 표정은 겉보기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수 없었다.

청룡은 차광수의 무표정한 태도에 안달이 났다. 그는 차광수가 자기를 아주 숙맥으로 봐서 그렇게 원두막쟁이 쓴외보듯 한다고만 생각하였다.

《남의 염통곪는게 제 손톱눈 곪는것보다 못하다더니 참.

하고 청룡은 어디서 들은 속담을 그럴듯 하게 인용하고나서 좀 쓰거운 표정을 지었다.

《이보게 청룡이, 남의 염통이 곪는것이 아니라 제 염통이 곪는단말이요. 바로 청룡이자신의 염통이 곪는데 손톱눈이 곪는다고 생각하거던. 그 추월이라는것은 뭐요? 그건 아마 장상민의 첩년이겠지, 그래 그따위것들한테 매를 맞는것도 참을수 없는 고통이지, 그러나 그쯤은 참을수도 있소. 나라와 민족이 다 망한 다음에는 조선사람으로서 매를 맞으면서라도 살아갈수 없단말이요.

《그래서 나도 생각이 있단말이우다. 들어보지도 않구선…》

청룡은 차광수가 자기 말을 우습게 대하지 않는다는것을 깨닫자 다시 기세가 올라서 냅다 엮기 시작했다.

《내 이제 그놈의 집에서 아주 나오기로 작정했수다. 기왕 남의 집을 살바에는 그따위 여우새끼같은놈한테 매여살겠어요.

《어디 갈데는 있소?

차광수는 이야기가 뜻밖의 방향으로 돌아가는바람에 떨떨해서 물었다.

《그걸 좀 대달라고 찾아왔지요.

《내가?

《그럼요.

차광수는 이야기가 점점 우습게 번져간다고 생각하면서도 아무튼 김일성동지께서 이 사람을 보내신셈이니 소홀히 할수 없다는 판단밑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생각해보기요.

《생각해보다니요. 이제는 나와버렸는데 생각할 새나 있어요?

《벌써 나왔소? 마차는 있던데?

《마차채 나왔수다. 더러운놈의 자식, 갈자리만 작정되면 그놈의 마차 어디 도랑창에 구겨박고말겠수다.

《아니 대체 왜 그러오?

차광수는 일이 심상치 않다고 생각되여 새삼스럽게 물었다.

《더는 못살겠어요.

하고 청룡은 차광수에게 대들듯이 말했다.

《오늘만 해도 그렇지요. 아침에 처남네 집에 가자고 해서 포목상에 가니 부강촌에서 조카사위라는게 나와있더군요. 한 열흘 처가집에서 놀다가겠다고 뭘 잔뜩 꿍져가지고 왔더군요. 아제비 조카끼리 거기서 실컷 지껄였으면 됐지 그걸 데리고 또 추월이년의 집으로 가자는게 아니겠어요. 마차안에서 하는 수작이라는것은 그저 공산당 잡는다는 소리뿐이지요. 이름은 생각 안나는데 아주 굉장한 사람의 말이 부강촌에는 무엇이 꼭 박혀있다고 했다나요. 김일성이 소사하에 없다는것이 무심히 볼 일이 아니라지요. 그 자식이 하는 수작을 들어보면 김일성이라는분이 부강촌에서 꼭 저네 목줄기를 움켜쥐고있는것 같단말이우다.

차광수는 풍구질하던 손을 멈추었다. 저놈들이 무슨 눈치를 챈게 아닌가? 방금전에 하던 장철하의 말이 머리속에 엇섞여 돌아갔다.

《추월이란년의 집에 가더니 아제비조카가 술상을 마주하고 앉아서 그년이 아양을 떠는것을 보고 놀아난다는데 그게야 속이 메스꺼워서 볼수가 있어요. 그런데 난데없이 우사령부에 가서 지대현이를 데려오라는거지요. 지대현이를 알아요?

《좀 알지. 침놓는 주부령감말이지?

《헹, 침놓는 주부가 다 뭐요.

하고 청룡은 코방귀를 내불며 말했다.

《장상민이가 말하는데 그건 겉뿐이고 실상은 왜놈군대의 뭐래요.

《그래?

차광수는 그 역시 비슷한 짐작은 하고있었으나 이처럼 확정적인 자료를 쥐고보니 그자가 부강촌에 자주 드나든다는 일을 심상하게 볼수 없었다. 역시 지난날 부강촌의 정세가 그처럼 험악해진것도 왜놈들의 작간이 있었던때문이고 오늘 김일성동지의 사업에 난관과 위험을 조성하는것도 결국은 줄을 사방에 늘여놓고 깊숙이 숨어있는 독거미같은 왜놈들의 음모가 있기때문이였다.

《그래서 어떻게 됐나?

차광수는 감질이 나서 이야기를 재촉하였다.

《어떻게 될게 있어요? 우사령부에 갔다가 우둔한 보초놈에게 매만 죽도록 얻어맞았지요.

《매는 왜?

《처음에 보초한테 가서 지대현선생을 만나게 해주십사 하니까 덮어놓고 없다질 않아요. 그래서 나으리나으리 하고 괴올리니 좀 높은 상관이 나오는데 반장이라나요. 생기기는 그렇게 사납게 생기지 않았는데 지대현을 만나겠다니까 당장 눈꼬리가 험하게 째지더니 그런 개새끼는 없다고 소리치지 않아요. 다시 나으리를 괴여올리며 간곳이라도 대달라고 빌붙었더니 옳지 네놈도 지대현이처럼 알랑거리는구나, 조선놈은 다 같은 종자들이다. 우리 우사령부 병사들이 고생하는게 다 이런 간사한 무리들때문이다, 실컷 때려주자 하고 소리치지 않겠수다. 그옆에 할일없이 돌아가던 왈짜들이 한꺼번에 대여섯놈이 우르르 덤벼드는바람에 하마트면 육신이 다 제가끔 흩어질번했수다. 겨우 마차를 빼여 도망쳐오니까 자 이번에는 장상민이라는게 또 반편이라고 따귀를 치지요. 추월이란년이 양양거리지요. 그러더니 이번엔 무슨 생각이 났는지 아마 지선생은 량강구에 돌아갔는지도 모른다는게 아니겠수다. 그러니까 장상민이가 그럴수도 있다고… 당장 량강구에 가서 날저물기전에 지선생을 모셔오라는거지요. 여기서 량강구가 몇십리기에 날저물기전에 갔다온단말이우다? 더러워서 곧장 이리로 오고말았지요. 사실 난 여기서 선생을 만났으니말이지 그렇지 않다면 춘길이한테 길을 물어서 소사하로 찾아가자고 했던거우다.

《그래?

차광수는 그제야 눈등이 퍼렇게 이물린 청룡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며 그의 손을 잡았다.

《그런데 그놈들이 무엇때문에 지대현을 그렇게 급히 찾는가? 그 첩년이 어데 앓기라도 하나?

《앓긴요. 아까 말하지 않았수다. 암만봐야 부강촌에 공산당이 박혀있는것이 틀림없는데 그걸 똑똑히 캐보자는거지요.

차광수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벌써 문제의 륜곽은 뚜렷해졌다. 김일성동지의 신변에 위험이 다가오고있다. 이것은 일반적인 위험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김일성동지를 겨누고 조여드는 위험인것이다.

《어허 추워!

하고 춘길이가 귀바퀴를 매만지며 점방안으로 들어왔다. 어느새 마철을 다 신긴 모양이다.

《청룡이.

차광수는 풍구의 손잡이를 꾹 밀어놓고 힘주어 말했다.

《우리 손잡고 일해보자구.

청룡은 오랜 침묵끝에 울려나온 심중한 목소리에 마른침을 삼켰다. 그도 차광수에게서 무슨 말이 떨어질가 하고 긴장되여있었던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장차 어떻게 살아가는가 하는 문제를 그렇게 앉은자리에서 판을 갈라낼수는 없네. 그러니 나도 더 깊이 생각해보고 청룡이도 더 깊이 생각해보는것이 좋을듯 하네.

《나는 생각할대로 생각해봤는데요.

청룡은 미타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나도 알겠네. 하지만 이제 당장 장상민이네 집을 뛰쳐나온다면 갈데도 문제지만 여태까지 그렇게 수모를 받다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그렇게 도망치듯 하겠나? 앞으로도 그놈한테 매여살 형편이면 모르겠지만 그놈하고 인연을 끊는다는 마당에야 할 말 다하고 보란듯이 당당하게 나와야지.

《하긴 그것도 그래요. 그런데 그놈이 당장 지대현을 데려오라니 야단이 아닌가요. 그리고 밸대로 하면 그놈을 좀 패주고싶지만 그놈한테도 총이 있고 그 조카놈한테도 총이 있수다.

《총이 있으면 더욱 좋지 않나.

하고 차광수는 청룡의 손을 덥석 잡았다.

《지금 청룡이가 갈곳은 손에 무장을 들고 왜놈들과 싸우는 길밖에 없어. 요즘 왜놈들과 그 앞잡이들을 치고 조선을 독립시키자고 조선청년들이 사방에서 들고일어난다는 말을 못들었나?

《역시…》

청룡은 제 짐작이 맞았다는듯이 고개를 끄떡거렸다. 어떤 불안에 흐려있던 그의 눈빛은 삽시에 개여 번쩍거렸다.

《그런데 이 일은 간단한 일이 아니야.

하고 차광수는 신중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제 청룡이가 전한 말들은 다 중요한것들이야. 그러니까 그 내막도 더 똑똑히 알아보고 그다음 그놈에게서 나올 때는 총을 빼앗아가지고 나와야 하네. 이것은 혼자서 하기 힘들걸세. 그러니까 그 만춘이랑도 잘 의논해서 일을 꾸며야 하네.

《알겠수다.

청룡이는 활기가 되살아나서 기운차게 대답했다.

《그대신 오늘 나하고 한 이야기들은 일체 하지 말아야 하네. 부강촌이야기도 지대현의 이야기도, 다만 오늘밤 늦더라도 량강구에 가서 지대현을 데려다주고 그놈들이 무슨 꿍꿍이를 하는가 하는것을 잘 살펴서 나한테 알려주게.

《지대현이를 데려와요?

청룡은 난처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하겠나? 그 집에 얼마간이라도 붙어있자면 그놈이 시키는 일을 아예 잘라먹을수야 없지 않나.

《매를 맞는거야 데려와도 맞고 안데려와도 맞는건데 그따위 너절한놈 데려다주고 욕먹을게 있수다? 더구나 그놈이 그렇게 나쁜놈이라면…》

《아니야, 그놈들이 무슨 수작을 하는가 하는것을 꼭 알아내야 하네. 그래서 데려오라는거야. 지대현을 데려오는것은 우리를 위해서 필요한 일이야.

《그래요?

청룡은 영문을 잘 모르겠다는듯이 중얼거렸다.

얼마후 차광수는 청룡을 먼저 량강구쪽으로 떠나보내고 춘길이에게 그를 잘 교양할데 대한 과업을 구체적으로 준 다음 총총히 거리로 나왔다.

부강촌 김일성동지께 비상사태를 알리며 다가오는 위험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대책을 세우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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