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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서《불멸의 력사》 장편소설
석윤기 (제21회) 제 2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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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림짐작으로 송강거리를 향해 한식경이나 헤매던끝에 소사하마을이 저만치 바라보이는 큰길에 나섰다. 피곤과 시장기가 한꺼번에 엄습해와서 송강까지 가댈것 같지도 못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소사하의 조참위를 찾아가야 한다는 강박관념같은것이 그의 발길을 인적없는 들길로 내모는것이였다. 장철하는 겨우 낯익은 소사하길에 들어섰다. 그러나 날이 어슬어슬 저물어와서 그런지 길이 서툴어서 동네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소사하로 말하면 몇해전까지만 해도 스스럼없이 드나들던 동네였다. 그때는 이고장이 다 정의부 안송총관부의 관할하에 있었기때문에 그가 나타나면 동네사람들이 군자금 등급을 낮추거나 얼마간 말미를 달라는 청을 가지고 뻔질나게 찾아왔었다. 찾아오는 사람마다 빈손으로 오는 법은 없었다. 오늘 강반석녀사로부터 자기의 반드라운 처세가 결국은 나라와 겨레를 배신한 길이였음을 여지없이 까밝히우고 그 옛날 거드름을 부리며 드나들던 동네를 바라보자니 더깨앉은 량심의 때를 돌비누로 벗겨내고 그우에 소금을 뿌리는것처럼 얼얼하였다. 과연 그 조참위라는 사람을 만나서 무슨 말로 군자금을 받아달라고 할것인가. 장철하는 워낙 짧은 겨울해가 흐린 날씨때문에 더 빨리 저물기를 재촉하는 바람 세찬 눈길우에 망연히 서버렸다. 이제 소사하에 가면 누가 자기를 반갑게 맞이해줄것인가. 장철하는 길가에 오금을 꺾고앉아 담배 한대를 붙여물고 으스러져가는 초원과 먼 산발을 시름없이 바라보았다. 가는 눈발을 머금은 바람이 불어왔다. 몸도 마음도 다 지쳐서 새삼스럽게 바람기가 맵짜게 느껴졌다. 어쨌든 가까운 인가에 들려 몸이라도 좀 녹일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일어서는데 소사하쪽에서 마차 한대가 바람을 맞받아 달려왔다. 막 걸음을 떼려던 장철하가 주춤해서 서있는데 마차는 바로 그앞에 와서 멎어섰다. 《아니 장형이 웬일이시오?》 마차문이 열리기 바쁘게 이런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술기운을 풍기며 껄껄하게 갈려나오는 그 목소리도, 풍막에서 내미는 얼굴도 첫 순간에는 낯설게 느껴져서 어정쩡해있는데 마차안의 위인이 안타깝다는듯이 두툼한 외투로 감싼 제 가슴을 툭툭 치며 《나 지대현이요. 정신이 이상해진게 아니요?》 하고 소리쳤다. 그제야 상대를 알아본 장철하는 이런 때 이런곳에서 하필이면 이런 인간을 만난것이 께름하였으나 노상 찌프리고만 있을수도 없어서 한걸음 앞으로 나섰다. 《아니 지형이 웬일이요? 내 안윤재한테서 듣자니 너무 일이 바빠서 잔치에도 못온다고 하던데 어떻게 되여 이런 벽지에까지 소풍을 다니시오?》 《소풍이 다 뭐요?》 하고 지대현은 길우에 껑충 뛰여내렸다. 《지금 죽고싶어도 죽을 짬이 없는 형편이요. 내 일전에 정미소차릴 이야기를 하지 않았소? 그 밑천을 대줄 소인방씨께서 암만해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지 오늘 같이 나와보자고 해서 이렇게 나오지 않았소. 그런데 안도성안에서 우사령이 또 기다리고있단말이요. 내 손에 쥔것 없이 뭘 좀 해볼가 하니 이렇게 체면불고하고 가랭이 찢어지게 뛰여야 한단말이요.》 《그럼 그 정미소를 소사하에 차리자는거요?》 장철하는 별로 흥미도 없었지만 인사삼아 한마디 물으면서 대체 이런 인간에게 뒤를 받쳐주겠다는 소인방이라는 인간은 어떻게 생긴자일가 하고 마차안을 슬쩍 곁눈질해보았다. 뜻밖에도 풍막안에는 흑공단 겨울다부산자를 입은 해말끔하게 생긴 젊은 사나이가 두팔을 소매안에 엇갈아지르고 앉아있다가 장철하의 눈길에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알은체를 하였다. 장철하는 까닭없이 당황해지는것을 느끼며 이게 어떻게 된 영문인가 하듯이 지대현을 돌아보았다. 전에 지대현이 귀띔하는 말을 통해서는 그의 뒤를 받쳐준다는 량강구의 중국인장사군이라는 사람이 적어도 지대현이와 동년배나 된 사람이고 또 량강구 같은 촌거리에서 돈푼이나 긁어모은 사람답게 꽤 굳고 완고한 인간으로 인상이 박혀있었다. 그런데 정작 눈앞에 나타난 인간은 어느 모로 보나 개명한 인간이요 그것도 지나칠만큼 젊다. 저런 나이에 남의 기업의 뒤받침까지 해줄만 한 돈을 제힘으로 모을수는 없다. 그렇다면 선대에서 물려받은것이라고 봐야 하겠지만 장철하가 알기에 량강구에는 그럴만 한 재력을 가진 부자가 없었고 지대현의 말을 통해서도 그런것을 들은적이 없었다. 《참, 장형도 만난김에 인사나 나누시오. 내 전에 장형이야기도 한바가 있소.》 지대현은 장철하의 놀라는 기색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이렇게 얼버무리며 갑삭갑삭 마차문으로 다가가 놀랄만큼 정중한 태도로 마차안의 소인방이라는 사람에게 중국말로 말하였다. 《내 전날에 말한 교하의 장철하씨입니다. 내 말을 듣고 전부터 한번 인사를 했으면 좋겠다고 하댔는데 한번 만나보지 않겠는지요?》 장철하는 대번에 낯을 찌프렸다. 자기가 지대현의 말을 듣고 그런 인간과 사귀여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꿈에도 가진적이 없거니와 더구나 새파란 젊은것과 대등하게 인사를 건네여도 모르겠는데 처음부터 한수 접고들뿐아니라 지대현이 놀아나는것이 구종군이나 다를바가 없다. 자기가 하인배처럼 굽신굽신하는 지대현이같은 인간의 친구로서 새파란 젊은놈과 통성을 한다는것이 구역이 나서 참을수가 없었다. 그런데 마차안의 소인방이라는 젊은이가 뜻밖에도 사뿐하고 마차밖으로 뛰여내리더니 례절바르게 먼저 두팔을 맞잡고 거퍼 읍을 하였다. 《유명한 장철하선생을 만나뵈옵게 되여 영광이올시다. 소인은 호남 개봉사람 소인방이올시다만 평소부터 선생님의 명성을 익히듣고 늘 마음속으로 한번 가르침을 받았으면 하는 소원이 간절하던차에 이렇게 문득 만나뵈오니 그야말로 갈증에 시달리던 사람이 맑은 샘물을 만난듯, 밤중에 길을 잃고 산속을 헤매이던 길손이 등불을 만난듯 반가운 마음을 무엇에 비길지 모르겠습니다.》 소인방은 약간 그늘이 비낀 해맑은 얼굴에 상냥한 웃음을 짓고 류창하게 말했다. 장철하가 늘 듣던 동북사투리와는 달리 세련된 관내의 억양에다 말하는 품이 또한 어느 문집에서 베껴온듯이 격식바른것이여서 듣고있는 사이 어리둥절해졌다. 그바람에 응당 짝을 맞추어야 할 인사가 적잖게 소홀히 된감이 없지 않았다. 《난 장철하요. 나도 무척 반갑소.》 장철하가 지나치게 투박하게 뗀듯한 인사말을 어떻게 잇대여야 할지 몰라 망설이는데 지대현이 옆에서 또다시 체통에 어울리지 않는 간사한 목소리로 소인방에게 말했다. 《추운 날씨에 감기 걸리겠습니다. 어서 마차안으로 올라가시지요. 나는 이 장형과 잠간 몇마디 할말이 있습니다.》 장철하가 보기에 지대현이 젊은놈앞에서 비굴할만큼 굽신거리는것은 그자의 돈주머니에 명줄이 매였으니 어쩔수 없는 일이라치고 더욱 해괴한것은 소인방의 지대현에 대한 태도였다. 과거처지나 오늘의 지체 그리고 나이로 봐도 지대현이가 자기와 그렇게 차이나는 점이 별로 없겠는데 자기에 대해서 그처럼 깍듯이 대하던 소인방이 지대현에 대해서는 마치 하인다루듯 하는것이였다. 《내 걱정은 마시오. 나도 장선생과 몇마디 하고싶은 말이 있소.》 그리고는 장철하를 향해 상냥한 웃음을 지었다. 《날이 저무는데 이제 소사하에 들어가시면 묵을만한 집이 있습니까?》 《예, 전날 자주 드나들던 고장이라 태반이 친지들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이 옆동네까지 왔다가 그냥 지나칠수가 없어서 옛날 뜻을 같이 하던 사람들과 하루밤 회포나 나누자고 찾아가는길이지요.》 《참 좋은 일입니다. 장선생께서 소사하에 친지가 많다니 한가지 묻고싶은데 내 보기에 그곳에 정미소를 차린다는것이 아무래도 묘책같질 않군요. 헌데 이 지대현씨는 내 생각을 통 리해하지 못한단말입니다.》 장철하는 어떻다고 대답을 해야 좋을지 몰라 지대현을 돌아보았다. 지대현의 놀아나는 모양이 아무리 역겹다 하더라도 어쨌든 친구명색인데 지망지망히 말했다가 정미소를 차려보겠다고 안달이 난 그에게 랑패를 가져다주는것도 차마 못할 일이였다. 지대현이 제먼저 그런 눈치를 채고 조급히 두사람 이야기짬에 쐐기를 치며 나섰다. 《정미소가 이 어방에 자리를 잡으면 내도산 서쪽변두리와 백하의 줄기를 따라 널린 논밭의 낟알은 거지반 다 빨아들일수가 있겠다고 소인방씨도 전날에는 자세가 매우 적극적이였지요. 그런데 최근 이 일대에 조선공산주의운동의 본거지가 자리잡았다는 소문이 떠돌면서 자꾸 고개를 기웃거리기 시작한단말이요. 오늘은 백번듣기보다 한번 보느니만 같지 못하다고 이처럼 함께 시찰을 나왔는데 허, 일이 공교롭기란…》 하고 지대현은 어처구니없다는듯이 헛김을 내불면서 말을 이었다. 《그놈의 동네에 마침 공청연예대라는것이 와서 북을 치고 창가를 불러대면서 빨갱이선전을 들이대는게 아니겠소. 소인방씨가 너무 놀라서 질색하는것도 무리는 아니란말이요. 헌데 장형으로 말하면 이 고장은 잘 아는 고장이요 또 여기 공산당 수령과도 친분이 두터운 사이니만치 물정에 밝은듯 한데 생각이 어떠시오, 소사하에 큰 정미소를 차려서 장차 기업활동에 랑패가 없겠소? 혹 부강촌같은데 차리면 어떻겠는지…》 장철하는 두자가 이 찬바람 부는 로상에 자기를 불러세운 까닭을 비로소 짐작하였다. 그것이 어느 정도 가라앉으려던 역겨운 생각을 되살리였다. 《헌데 내가 공산당 수령과 친분이 두텁다는것은 어떻게 하는 소리요?》 장철하는 부리부리한 눈을 맞바로 뜨고 정색해서 물었다. 《장형, 달리 생각지는 마시오.》 하고 지대현은 소인방의 눈치를 슬쩍 살피더니 찌글사한 웃음을 입가에 짓고 속삭이듯 말하였다. 《년전부터 여기 안도일판을 소연하게 만들고있는 장본인이 김일성 즉 김성주라는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일이 아니요. 소사하구장이 말하는걸 들어봐서는 요즘 공산당이 드세차게 놀아나고 그에 따라 안도경찰이며 우사령군영의 기찰이 또한 심해져서 여기서 량민들이 살아가기가 조련치 않겠더란말이요. 그 사람도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겠다고 드러내놓고 말하더군.》 《그럼 나보고 물어볼것도 없지 않소. 물어봐야 나도 그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다고 훈수할 말이 없소. 김성주에 대해서는 그 사람이 지금 어데 있는지 나도 잘 모르오.》 장철하는 이 화제를 오래 끌면 끌수록 기분나쁜 소리나 듣게 될것 같아서 퉁명하게 잘라서 말했다. 그런데 지대현은 미련한 상에 간사한 웃음을 짓고 넌지시 바라보더니 뚱딴지같은 소리를 물었다. 《그럼 김성주가 집에 와있질 않단말이요? 그 어머니가 신병이 위중하다던데…》 장철하는 까닭없이 찔끔하였다. 《그건 어떻게 하는 말이요?》 《어떻게 할게 있소.》 하고 지대현은 선선해서 대답했다. 《장형의 말이 이 옆동네에 있는 친지를 찾아왔다니 나는 의례 김성주 모친 문병을 왔을것이라고 짐작했지요. 그렇다면 김성주는 응당 만났으리라고 봐서 하는 소리지 별건 아니요.》 《흥, 그렇다면 당신이 내 뒤를 캔다는 소린데…》 장철하가 낯색이 변해서 말을 더듬거리자 소인방이 두사람 사이를 가르고 나섰다. 《허, 두분께서 공연한 말시비를 하십니다. 우리 같은 기업가들이야 그까짓 정치가 어떻게 되건 상관이 있습니까? 그저 장사판을 전쟁 한복판에 차려서는 랑패를 보기가 쉽기때문에 이것저것 재게 되는것이지요. 사실 안할 말로 장사를 크게 하자면 노상 전쟁판을 피해다녀서만도 안될줄 압니다. 내 친구들가운데는 지난 10년간 관내의 군벌전쟁바람에 망한 사람도 없지 않지만 반면에 돈더미에 올라앉은 사람도 적지 않단말입니다. 나 역시 그런 전쟁의 덕을 적잖게 본 사람입니다.》 장철하는 새삼스럽게 소인방의 웃는 얼굴을 넌지시 살펴보았다. 자기가 의심쩍게 생각한다는 눈치를 어느새 채고 자기 신분이나 경력의 빈구석을 메꾸기 위하여 아닌보살하고 얼림수를 논다는것을 느낀 장철하는 겉보기는 해말끔한 애숭이지만 지대현이같은 메돼지에 대면 어느모로 보나 상전대접을 받을만 하다고 생각하였다. 《나는 그런 부면에 깊은 연구가 없소. 나도 교하땅에 자그마한 정미소를 차리고있지만 그건 소인방씨나 이 지형과 같은 원대한 포부를 가지고 시작한 일이 아니고 그저 싸움터에서 물러나앉은 늙은 병사가 입에 풀칠할길이 없으니 벌려놓은 밥벌이수단에 불과한것이요.》 《허- 무슨 겸손의 말씀을…》 하고 소인방은 진중한 목소리로 그런 나약한 생각을 하지 말라고 격려하면서 잇달아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말하였다. 《장선생의 생각은 마치 옛 선비들이 속세의 시시비비를 외면하고 한가로이 산수를 즐기는 고상한 풍미가 느껴집니다만 좀 비현실적인것 같기도 합니다. 장선생이 아무리 어지러운 세상을 등져봐야 저쪽세상편에서 선생과 깨끗이 인연을 끊어주자고는 안할것입니다. 여기서 교하땅이 얼마나 멀다고 여기서 터진 전쟁의 불찌가 교하땅에 미치지 않을것 같습니까. 그러나저러나 이 어방에 벌써 유격대가 생겨나서 돌아간다는 소문이 파다한데 혹시 장선생은 이번 걸음에 그 사람들을 만나보지 못했습니까?》 장철하는 또다시 가슴이 띠끔했다. 토기점골뒤산에서 목격한 차광수네의 사격훈련장면이 떠올랐다. 《보기는 뭣을 본단말이요. 나는 그런 소문도 들은길이 없소.》 이렇게 지나칠만큼 푸접없이 잘라던진 장철하는 어쩐지 추운 로상에서 같잖은것들한테 주물리우고있다는 생각이 떠올라 불끈해졌다. 《헌데 당신네들은 정미소를 차린다고 하면서 별걸 다 캐러 다니는구려. 대체 백하줄기의 낟알을 다 끌어들이겠다느니 전쟁판이 어떻고 유격대가 어떻다니 하고 잡도리를 하는것을 보니 정미소도 굉장한 정미소를 차릴 차비같은데 그렇게 되면 나같은 방아간집주인은 그 세찬 바람을 맞아서 기둥뿌리가 흔들리우지 않겠소.》 《무슨 말씀을…》 소인방이 좀 어색해지자 지대현이도 장철하의 심기가 편치 않다는것을 눈치채고 구슬리러들었다. 《장형은 공연한 걱정을 하지 않소. 나로 말해도 그렇고 이 소인방씨로 말해도 그렇지 않소. 이런판에 새 기업을 차리겠다고 돈을 밀어넣자니 자연 재는것이 많아질수밖에 없지 않겠소. 공연한 역증을 내면서 그러시우.》 《나는 역증을 낸것도 없소.》 하고 장철하는 퉁명스레 한마디 하고 더는 그들의 이야기에 말려들지 않았다. 지대현네와 헤여져서 이제는 땅거미가 진하게 깔려드는 눈길을 혼자 터벌터벌 걷게 되였을 때 장철하는 문득 저자들이 정미소때문에 다닌다는것은 공연한 수작이고 실은 유격대에 대해 렴탐하러 다니는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번개같이 떠올랐다. 그러고보면 백가지가 다 수상하다. 물론 지대현이로서는 정미소에 구미가 동할만도 하다. 그러나 따지고보면 그것도 고개가 기웃거려지는 점이 없지도 않다. 안도일판에서 침과 뜸으로 명주부소리를 듣는 그로서 물주를 업고 무슨 기업을 차릴 생각이 있다면 약방이나 병원 같은것을 차리는것이 훨씬 자연스러울것이다. 그러나 지대현이같은것은 다음문제다. 암만해도 그 소인방이란 젊은놈이 놀아나는 꼴이 보통인물같지를 않다. 장사군이라는것은 멀쩡한 수작이고 정미소밑천을 대주겠다는것도 있을법하지 않는 말이다. 돈이 남아돌아간다면 이 어수선한 시절에 중국사람답게 전대에 단단히 쑤셔넣고 허리에 두르고 자든가 할일이지 담보없는 생소한 조선사람에게 돈을 돌려준다는것이 암만 봐야 이상하다. 그렇게 벌이가 좋다면 제돈을 가지고 제가 정미소를 차릴것이지 아무런 경험도 없는 인간에게 돈을 밀어넣는다는것 또한 수상쩍다. 어디 그뿐인가, 돈을 대주었으면 주었지 물정이 소연하다고 제입으로 동네를 물색하러 다닌다는것은 상식으로써 리해하기 어렵다. 그러고 보면 그자가 첫눈에 벌써 배암같은 인상을 주는것이 썩 기분이 좋지 않았었다. 그런가위에 지나치게 정중하고 지나치게 화려한 첫 인사가 만주 한구석에 박혀있는 장사군으로서는 격에 어울리지 않았었다. 그렇다면 소인방이라는 인간은 과연 무슨 인간인가. 그자가 헤여질 때 마차를 타는것을 보니 다리를 살룩살룩 저는것 같았다. 기분이 그닥 좋지를 못해서 투박한 인사말 한마디를 남기고 돌아서자 다시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기때문에 찬찬히 살필 기회가 없었지만 어느결에 그자가 다리를 전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런자가 김성주의 행방에 대해 관심을 가진다?… 유격대의 소재지를 은근히 물어본다?… 그렇다면 이것은 영낙없는 렴탐군이다. 장철하는 무겁던 머리가 개이는 대신 온몸이 가드라들만큼 무거운 압력과 긴장을 느끼였다. 무의식중에 뒤를 돌아보았으나 어느새 마차는 광야의 연한 눈보라가 삼켜버리고 소사하의 불빛이 지척에서 불그레한 광망을 던지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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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봄은 다가오고있었지만 날씨는 여전히 맵짜고 음산하였다. 련일 하늘은 흐리고 당장이라도 터질듯 하였으나 눈 한점 오지 않는 메마른 겨울이였다. 신경통이 없는 사람조차 몸이 지긋지긋해나는 2월초순 어느날 후꾸다의 부름을 받은 니시자와는 소사하일판을 돌아치던 마차를 타고 소인방이차림 그대로 돈화에 갔다. 후꾸다도 막 기차에서 내리는길이였다. 그러고보니 기별을 띄운것은 그가 봉천을 출발하기 전인것 같았다. 늘 들군하는 《나고야려관》의 2층 구석방에서 니시자와와 마주앉은 후꾸다의 기분상태는 그리 좋은 편이 못되였다. 《나는 인차 연길로 떠나야겠기에 용건부터 말하겠다.》 니시자와의 길다란 보고를 참을성있게 듣고있던 후꾸다는 겉으로는 조용하지만 어딘가 역증이 억눌려있는듯 한 어조로 말을 시작하였다. 《우리는 언제나 국책수행의 요구에 비추어볼 때 능력이 부족하고 노력이 부족한것을 통감하는바이지만 이번에 나는 무엇보다도 연구가 부족하다는것을 절실히 느끼였다. 우리는 공부를 안하는것이 큰 병집이다.》 이렇게 후꾸다가 늘 하기 좋아하는 중학교 교원과 같은 훈계로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얼마 가지 않아서 인차 동강나고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흐르더니 불쑥 왕청같은 말로 이어졌다. 《오래전부터 이다가끼상이 주선해오던 만주실력자들의 회의에서 마침내 만주건국준비위원회격인 동북행정위원회가 나왔다. 아마 머지않아 만주국의 탄생을 보게 될것이다.》 그것은 아닌게아니라 충격적인 소식이였다. 니시자와는 단둘이 마주않은 휑한 방안에서 누구에겐가 자기의 놀라운 심정을 표현하고싶었으나 후꾸다는 가느다란 물부리에 권연을 찬찬히 끼워넣는데 온 정신을 팔고있었다. 그러면서 그는 중얼거리듯 말하였다. 《이다가끼상의 일솜씨를 배워야 한다. 그는 확실히 선이 굵은 모사이다. 마점산이 작년가을에 흑룡강군을 편성하고 치치하루에 웅거하여 눈강 철교를 폭파한다 어쩐다 할 때는 참으로 9.18의 장거가 어찌될지 모를번한 형세였다. 그때 2사단장 다몬 지로가 마점산을 치겠다고 얼마나 열을 올렸는가. 이다가끼상이 마점산의 형벌 되는 늙은 군벌 장경혜를 데리고 가서 결국 마점산을 설복하는데 성공했다는것은 작년 9월 18일 하루밤에 북대영을 점거한것만 한 공적이라고도 말할수 있다. 물론 마점산같은 인물이 종국적으로 우리와 손을 잡겠는가 하는것은 나로서는 너무나 의문의 여지가 많기는 하지만말이다.》 후꾸다가 기분이 나쁜 원인은 바로 이다가끼의 일이 너무나 잘되고 또한 론쟁의 여지없이 그 공이 큰데 있었다. 륙사를 같은기에 나온 같은 대좌로서 거의 같은 종류의 음모가로 활동하면서도 그자신이 말한바와 같이 이다가끼의 일은 선이 굵고 덩어리져있으며 판이 큼직큼직한것이였다. 그에 비해서 자기가 꾸민 일들은 어딘가 자드락자드락해보이기도 하고 눈에 잘 띄우지도 않을뿐아니라 사람들에게 내놓고 말하기 거북한 구석들이 많았다. 그나마 성공인지 실패인지 명백하게 선이 그어지지도 않았다. 후꾸다는 물론 제국을 위하여 묵묵히 주추돌을 고이는 조약돌이 되기를 스스로 원한 사람이였다. 그러나 이제는 나이도 들어가거니와 그지간 그 음산하고 피비린 사업에 자신의 모든것, 지어 안해의 목숨과 누이동생의 순결까지 바치고도 다른 사람이 단 며칠사이에 이룩한것을 당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쓸쓸한 감회가 차오르는것이였다. 《동북행정위원회라면 역시 중국의 한부분이라는 견해를 완전히 청산 못했군요.》 니시자와는 후꾸다의 그닥 시원치 못한 기분을 생각하여 될수록 이다가끼의 성과를 깎는 방향으로 화제를 돌려보았다. 《철없는 소리 말게. 그네들이 아무리 꼭두각시라 하더라도 역시 만주에서는 실력가들이고 또 세상이목도 고려해야 하는거야. 지금 단계에서는 적당한 명칭이지.》 《거기엔 어떤자들이 망라되였습니까?》 니시자와는 후꾸다의 병적이리만치 국가적인 립장이 또 나타난다는것을 느끼자 고집할만 한 의견도 아니기때문에 제꺽 철수하고 다른 말을 꺼냈다. 《역시 늙은 장경혜를 위원장으로 하고 료녕성장 장석의, 열하성장 탕옥린, 흑룡강성의 마점산, 그다음 몽고대표, 호론바이르대표가 참가하고 심양시장 조춘백이도 끼웠지. 물론 우리가 들여앉힌 길림성장 희흡이도 참가하고… 아마 앞으로 만주국이 나오면 그 사람이 큰자리를 차지할거야.》 후꾸다는 자기가 흡수한 희흡이를 강조함으로써 만주국건국놀음에서 주역을 이다가끼에게 떼우기는 했으나 자기의 역할도 노상 무시할것은 못된다는 점을 암시하면서 물부리를 입귀로 돌려물었다. 가느다랗게 쪼프린 눈귀로 파란 담배연기가 시름겹게 기여올랐다. 《이런 정세하에서 우리 공작의 요점이 어데 있느냐 하는 문젠데…》 조용히 명상에 잠겨있는것 같던 후꾸다는 불시에 자세를 바로 잡고 본론을 끄집어냈다. 《간밤에 이다가끼와 이시하라가 나를 찾아와서 밤을 새웠다. 그들은 확실이 오늘의 제국을 대표할만 한 재사들이고 큰 구상들을 가지고있는 인물들이다. 아마 그들은 성공할것이다. 그러나 동북행정위원회가 나오고 만주국이 불일 고고성을 올릴 이 마당에 그들은 성공에 취해있는것이 아니라 가장 심각한 고민에 빠져있다. 역시 그들이 범상치 않는 인물이라는것을 말해준다.》 니시자와는 후꾸다의 이야기가 어디로 번질지 짐작할수 없어 가만히 들을만 해있었다. 후꾸다는 니시자와의 어떤 반응을 기다리지도 않는듯 자기 말만 계속하였다. 《목하 만주정세에서 기본은 공산주의세력과 만주의 반일세력의 련합문제이다. 만일에 김일성이 제국의 방대한 무장으로써도 허물수 없는 그 대중의 신망과 천재적인 령도력으로써 붕괴되여가는 구동북군내의 반일세력까지 수습하여 제국을 반대하여 련합전선에 들여세우기만 하면 만주국구상은 모래우에 지은 성곽에 불과할것이다. 그런데 김일성은 이미 대중을 쟁취하였다. 지금 두만강류역을 비롯한 국경일대와 간도 조선인거주지역을 중심으로 한 광범한 지역에서 폭동이 준비되고있다. 다른 한편 왕덕림휘하군대들과 련합하기 위한 공산당 공작원들의 활동이 매우 활발하다. 이러고 볼 때 모든 위험은 김일성에게서 나온다는 결론을 강조하지 않을수 없다. 나는 그를 추격하자고 백방의 수를 다 썼다. 우리가 조선인정치범들을 석방해놓고보니 예상대로 태반이 김일성을 찾아갔다. 우리 사람들이 뒤를 따랐지만 김일성계통의 조직에서 빼돌려버렸다. 우리가 제일 주목하고있던 김책은 아직 룡정어방을 돌고있고 기도대위가 뒤를 따르고있으니 그 선에서는 아직 기대를 걸수 있겠지만 너무 시간을 끄는것이 문제이다. 그런데 자네도 김일성이 웅거하고있는 본거지에 들어가서도 아직 암중모색으로 사방을 돌아치고만 있으니 김일성과 같은 인물을 그렇게 바다를 뒤져 바늘을 찾아내는것과 같은 방법으로 찾아낼수 있겠는가?》 여기서 후꾸다는 일단 말을 끊고 니시자와를 이윽히 바라보았다. 겉보기는 여전히 온화하였으나 주글주글한 눈시울속에서 끌날같은 눈길을 느낄 때 니시자와는 자기의 이마빡에 금시 구멍이 뚫리는듯 한 착각을 느끼며 소심한 어조로 말했다. 《혹시 그가 안도지방을 단념하고 딴곳으로 간것은 아닐가요?》 《아니다. 결코 그럴수 없다.》 하고 후꾸다는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니시자와, 김일성이 안도에서 직접 유격대를 조직한다는것은 그네들의 명월구회의결정이란말이다. 이것은 확실한 정보이다. 우리가 안도지방에 약간의 위험을 조성했다고 해서 피해가겠는가? 그는 결코 그런 인물이 아니다. 나는 반대로 김일성이 우리가 겨눈 칼끝으로 더 다가온것으로 보고있다.》 《그건 어떻게 하시는 말씀인가요?》 니시자와는 당황해서 물었다. 후꾸다는 눈길을 돌리지도 않고 말을 이었다. 《니시자와, 자네도 김일성을 잘 알지 않는가? 그는 피해가거나 에돌아가는 형의 인물이 아니다. 우리가 그의 뒤를 조이기 위해 안도땅에 함정을 팠으니 그는 바로 그 함정을 메꾸려고 안도에 나타났다고 봐야 하지 않겠는가. 지난날을 생각해보자. 우리가 조중인민을 분렬시키기 위하여 돈화와 교하의 폭동을 리용하려했을 때 그는 바로 그곳에 나타났다. 우리가 할빈에서 일을 꾸미자고 하자 그는 할빈에 나타났다. 우리의 주목이 간도에 집중되자 그 역시 간도에 왔다. 그는 우리가 조성한 위험을 피해가는것이 아니라 맞받아왔다. 이것이 내가 본 지도자로서의 김일성의 특성의 하나다.》 《너무 론리적인것 같군요. 실증자료는 없습니까?》 니시자와는 조심조심 미타한 소리를 해보았다. 《지금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다른 대답이 나오기 전에는 우리는 이 가설에 근거해서 행동해야겠다. 그가 안도땅에 온것이 사실이고 유격대가 행동하고있는 소사하일대에 있는것이 사실이라면 부강촌을 한번 뒤흔들어놓는것이 결코 무익한 일로는 되지 않을것이다.》 니시자와는 아직 영문을 몰라 멀뚱멀뚱 처음부터 같은 자세, 같은 어조로 말을 계속하는 후꾸다를 지켜보았다. 후꾸다는 여전한 투로 말을 이었다. 《우리가 우리 군대를 들이밀수도 없고 또 우리 군대를 들이밀어봐야 그가 잡히자고 한자리에 있지 않을것은 뻔한데 이런 조건에서 우사령을 격동시켜 부강촌 보위단이 스스로 우리 품에 기여들게끔 올가미를 만들어야겠다. 그러면 불가피하게 그 사태를 수습하자고 그 누군가가 정면에 나설것이다. 이러한 사건을 잘 꾸미면 그야말로 꿩먹고 알먹는 격이 될수 있다. 알겠는가, 니시자와, 아까도 말했지만 공산주의자들과 반일부대들사이에 계속 부절히 쐐기를 쳐야 한다. 이것은 제국이 장차 만주대륙을 경영하는 기본방침이다. 말하자면 우리가 제창하는 5족협화의 뒤면이란말이다.》 《그런데 잘 모르겠군요. 부강촌에 우려되는 점이 있으면 그것을 수습하면서 안으로부터 조여들어야지 일이 잘못되여 실지 우사령이 토벌을 들이대기라도 하면 우리의 함정자체가 없어질것 아닙니까?》 니시자와는 늘 신중론을 주장하던 후꾸다가 짜증끝에 발작을 일으킨것이나 아닌가 하고 눈을 끄먹거리며 물었다. 《바보로군.》 하고 후꾸다는 그 옛날 견습시절의 니시자와를 훈계할 때 같은 어조로 말하였다. 《부강촌에 바로 그가 나타났단말이다.》 《설마… 혹시 무슨 증거라도 있는가요?》 《증거는 아직 없다. 다만 부강촌이… 말하자면 우리가 김일성을 겨누고 묻은 그 칼날이 차츰 우리쪽으로 돌아서고있다는 현상이 있을뿐이다. 방금 자네 보고를 들어봐도 요즘 부강촌에는 공산당이 얼씬을 안했다고 한다. 최근 한달동안에 통행인 하나 잡은것이 없다. 이것은 김일성이 다른 련락선을 세웠다고 해설할수도 있다. 그럼 일반주민은 어떻게 됐는가? 이 농한기에 한달동안 세개 현을 련결하는 도로교차점에 통행인이 하나도 없었다는것이 말이 되는가? 이것은 말하자면 부강촌의 보위단이 이미 속이 궁글었다는것을 말해준다. 부강촌에 야학도 나왔다. 총을 찬 지주와 경작조건때문에 맞서고 농량을 내라고 들이대는자도 있다고 한다.》 니시자와는 자기가 보고한 내용외에도 후꾸다가 많은 자료를 렬거하였지만 흉벽을 두드리는 흥분때문에 그런것 저런것 눈치채지 못하고 뻥해서 차츰 사납게 변해가는 후꾸다의 악마적인 랭담한 얼굴만 지켜보았다. 《니시자와, 어떤가? 분명 안도에 있어야 할 김일성이 종적을 감춘 사실과 부강촌일대를 우리가 특별히 주목하는 점 그리고 김일성의 류다른 수법 등을 고려할 때 나는 바로 그 부강촌에 그가 들어가박혔다는 판단을 내렸다.》 후꾸다는 마침내 흥분해서 목소리가 쉬였다. 화로우에 펼쳤던 살이 빠진 길다란 손가락이 후들후들 떨리였다. 그 흥분에 전염이라도 된듯 니시자와도 살이 떨리기 시작하였다. 《다른 증거는 없는가요?》 《없다. 아직은 없다. 내 륙감이 있을뿐이다. 그러나 니시자와, 내 륙감은 틀린적이 없다. 김일성과 우사령부 사이에 쐐기를 치기 위한 충격적인 사건을 하나 꾸며야겠다. 그렇게 되면 알쪼가 있을것이다.》 후꾸다는 바싹 니시자와의 귀결에 입을 갖다대고 숨가쁘게 수군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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