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서 《불멸의 향도》

 

           장 편 소 설

 


 권  정  웅               

(제 20 회)

 

제 11 장

  

 

, 눈이 내리고있다.

바람 한점 없는 캄캄한 밤하늘에서 눈이 내리고있다. 무게가 잔뜩 실린 향나무가지에도 발이 빠질만큼 두텁게 쌓인 보도우에도 그리고 언제나 검게만 보이던 지붕들에도 하염없이 눈이 내리고있었다.

비가 오면 앞날을 생각하게 되고 눈이 오면 추억에 잠기게 된다는 말이 있지만 어쨌든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밤이였다.

창가에서 물러나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집무탁에 앉아 담배에 불을 붙이시였다. 책상에는 여러가지 서류들과 신간도서들이 놓여있지만 거기에는 관심이 가지 않고 오늘따라 여러가지 생각을 더듬게 되시였다. 크고작은 문제들이 각이한 양상을 띠고 나타나지만 그중에서도 며칠전에 있은 엄한정과의 담화만은 계속 뇌리에 갈마들면서 무시로 신경을 자극하고있다.

한낮처럼 밝은 이 정의로운 로동당시대에 자기 마음에 없는 연극을 담당할수 없다는것으로 해서 연출가가 벌목공으로 옮겨가지 않으면 안되는 일이 생겨났고 며칠전에는 보천보전투승리기념탑문제때문에 허담이 찾아왔던것이다. 이렇듯 비정상적이고 불미스러운 사건들이 모두 높은 직책상 권위를 걸고 감행되고있다는 거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었다.

이러저러한 현상들을 요약해보면 결국 혁명과 건설에서 당의 령도적역할문제에로 귀착되고있음이 명백하였다.

우리 당이 창건된지 어언 20. 그동안 준엄한 조국해방전쟁을 겪었고 혁명도상에는 적지 않은 난관과 곡절도 있었다.

국제공산주의운동의 견지에서 볼 때에는 다른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복잡한 문제들이 제기되였고 현재도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때문에 김정일동지께서는 내외의 정세를 종합분석한데 기초하여 우리 당이 명실공히 자기 사명을 다하게 하자면 어떻게 해야 할것인가를 생각하게 되시였다.

당이라고 할 때 그에 대한 해석이 여러가지가 있다. 정당의 조상은 영국이라고 주장한 정치학자 바카의 견해도 있고 정당은 의회주의자들이 낳은 사생아라고 한 미국의 후리드리후의 견해도 있다. 그러나 맑스로부터 시작해보아도 결코 간단치 않은 력사를 가지고 있는것만은 사실이다.

당은 리념을 같이한 정치적조직체이다. 로동계급의 당은 계급투쟁대오의 참모부이며 로동계급의 전위부대이다. 이것은 물론 그자체로서는 옳은 말이다. 그러나 그 본질, 그 핵을 찌르지는 못한 일면적인 해석에 지나지 않는다.

당이 로동계급의 최고형태의 정치조직이라고 하자. 하지만 결국 그것은 그 창건자이며 령도자인 수령을 떠나서는 생각할수 없지 않는가.

(그런데…) 하고 김정일동지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시였다. 최근에 있은 심상치 않은 일들을 들여다보면 그것은 사업과정에 있을수있는 어떤 실책도 아니며 어느 누구의 견해상착오에 의한 일시적인 현상도 아니다. 그런즉 이것은 그 어떤 딴생각을 가지지 않고서는 만들어낼수 없는 비정상적인 사태인것이 분명하다. 사사건건 일어나는 그 맨 밑바닥을 들여다보면 현시기 가장 큰 위험성을 띠고있는 수정주의사상을 비롯한 온갖 잡사상이 깔려있다는것을 즉시에 알수 있게 된다.

《똑똑똑…》 문기척소리가 났다. 응대에 뒤이어 가볍게 문이 열리더니 허담의 얼굴이 나타났다. 사람보다 안경이 먼저 나타나군한다는 그였는데 오늘만은 그렇지 않았다. 이전과 다름없이 허담의 눈은 빛나고 온몸에서는 정열이 내뿜기였다.

《어떻게 이렇게 한밤중에…》

《매우 긴절한 용무가 있어 찾아왔습니다.

《긴절한 용무라구요?

그이께서는 의아해서 받아외우시였다. 허담은 말없이 미소를 지었다. 무슨 속생각이 있는 모양이였다.

허담이 이따금 재밤중에 그이를 찾아오군하였는데 일이 있어 찾아오기보다는 그이께서 계속 밤이 지새도록 일을 하는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오늘따라 생각이 더 깊어지는게 있어서 그럽니다.

《생각이요? 하긴 눈이 오니까요.

언제인가 김정일동지께서는 눈오는 밤에는 저절로 추억에 깊이 잠기게 된다고 하신적이 있으시였다.

《별건 아니구요. 어떻게 하면 국제공산주의운동안에서 불어치는 수정주의역풍을 막고 우리 당을 끄떡없는 당으로 만들것인가 하고 말입니다.

《아! 그렇습니까.

허담은 언제인가 재밤중에 외무성청사에 찾아오시여 하신 그이의 말씀을 회상한것이였다.

《그건 그렇고 용무라는건?

그이께서 물으시였다.

《그저 퇴근하는걸 보기 위해서 왔습니다.… 벌써 12시가 넘었습니다.

《그래요?

(퇴근하는것을 보는것이 간절한 용무라?)

많은 뜻을 담고있는 그 《용무》에는 가슴뜨거운 진정이 담겨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말씀하시였다.

《감사합니다. 그에 대해서는 이미 내가 속한 당세포비서동무한테서도 의견을 듣고있습니다. 그러나… 부상동무, 저의 물음에 하나 대답해주시오. 제가 하는 사업이란 결국 수령님의 로고와 심려를 덜어드리자는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제가 편안히 지내면 그 부담이 고스란히 수령님께 돌려지게 됩니다. 그래도 일없겠습니까?

《…》

허담은 순간에 입이 얼어붙고말았다. 불덩어리같은것이 뜨겁게 목으로 올리밀었던것이다. 허담은 천천히 그이께로 다가갔다.

《뜻은 알겠습니다. 그러나 밤을 패는것도 한두번이지 어떻게 매일같이.

그래도 그이께서 전혀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게 되자 허담은 그이앞에 놓인 서류를 한쪽으로 밀어놓으며 말하는것이였다.

《정 그렇다면 오늘만이라도 이만하고 일어나주십시오.

《그렇게 합시다. 그런데 용무라는것이 그게 답니까?

《그렇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궁금한것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하면 100년사상사총화 그게 지금 어떻게 되고있는지…》

《아, 그거요. 잘 진척되고있습니다. 처음 얼마동안은 그저 그렇구나 했는데 차츰 심화되고보니 역시 그렇게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1년 거진 돼오는데  맑스, 엥겔스 저작들은 절반이상 진도가 나갔습니다. 깊이 파고들수록 현대수정주의자들의 견해에 독성이 많고 또 그들이 악랄하게 책동하고있다는것이 알립니다.

《그렇습니까?… 그런데 저자신은 그런 중요한 일에는 끼여들지 못하고 동서방 여기저기 밤낮 뛰여다니기만 하잖습니까. 무사분주지요.

《무슨 좋은 소식이 없는가요?

《좋은 소식은 별로 없습니다. 그저 여느때처럼 책을 몇권 구해가져왔습니다.

허담은 가방을 열어 소설책 세권을 내놓았다. 그리고나서 한숨을 내쉬면서 말하였다.

《요새 가만 동향을 보면 제국주의자들이 더 음흉하게 나오는것 같습니다. 겉으로는 반쏘, 반공깜빠니야를 완화하는척하면서 각방면으로 사상문화적침투를 강화하고있습니다. <대량보복전략>으로부터 <유연반응전략>으로 각도를 약간 돌리였습니다. 사상문화적공격을 강화하는겁니다. 동유럽나라들에는 미국화장품들이 물밀듯이 쓸어들어오고있고 미국식생활양식이 류행하고있습니다.

이윽고 허담이 봉투에 넣은것을 꺼내였다. 끼우개에 물린 서류인데 몇장 되지 않는 타자본이였다.

《요새 쏘련에 나돌고있는 흐루쑈브의 <6대과오>라는 자료입니다. 참고될것이 별루 있을것 같지 않습니다만.

김정일동지께서 자료철을 펼치며 말씀하시였다.

《그에 대해서는 흐루쑈브를 해임한 며칠후 전원회의에 관한 당보의 보도에 다 나있잖습니까?

《그런데 여기는 좀더 자세히 내놓은것 같습니다. 정치국회의보고서니까요.

《지금도 기억이 생생한데 그때 <쁘라우다>에는 주관주의자, 정신착란자, 허풍쟁이, 개인숭배자, 관료주의자라고 했고 정치적착오에서 까리브해위기 등을 들었는데… 아하, 여기는 맨처음에 개인숭배에 대한것을 지적했군요.…》

그이께서는 자료를 보시였다. 흐루쑈브의 <6대과오> 1964 10 14일부 정치국회의에서 제기한 쑤슬로브의 보고에서 첫째, 자기에 대한 개인숭배조성. 둘째, 자기만 아는체하고 사람들을 닦아세우거나 권력으로 억압. 셋째, 말을 망탕하고 고집을 부리고 자주 경솔하게 처신하는것. 넷째, 공업관리를 되는대로 하여 생산의 계통적저하를 초래한것. 다섯째, 잘못된 가격정책의 실시, 그로 인한 축산물생산의 급격한 감퇴. 여섯째, 농업지도에서 혼잡조성, 그로 인한 알곡생산 저하… 원사, 교수, 박사인 력사학자 메드베제브의 증언에 의하면 흐루쑈브는 1963년에만도 120회나 자기 사진을 당보에 내도록 하였다. 1964년은 4월에까지에만도 140회를 내였다. 반면에 쓰딸린은 년평균 10회내지 15회뿐이니 흐루쑈브는 그의 10배이상…

 

잠간동안에 자료를 다 읽고난 그이께서는 웃몸을 뒤로 제치면서 쓴웃음을 지으시였다.

《이걸 읽고보니 참으로 생각되는바가 많습니다. 무엇보다도 우선 쑤슬로브의 고충이 어느 정도인가 하는것을 알수 있습니다. 어떤 점에서 그런가? 그것은 6대과오안에 흐루쑈브가 범한 정치적, 전략적 과오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이 없잖습니까. 이것은 순전히 문학적입니다. 흐루쑈브가 어떤 인간인가. 이를테면 흐루쑈브는 쏘련공산당이라는 크고 권위있는 당의 총비서자격이 없다, 인간됨됨을 보라, 이런 식입니다. 한편 쑤슬로브가 그렇게밖에 나올수 없었던 사정은 현시대의 평가에서 제국주의본성이 변했다든가, 핵전쟁에 대한 공포증이 있다, 또 적아간의 력량타산을 해보니 이제는 프로독재가 필요없다는 등등의 과오에 대하여서는 말할수 없었을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런것에 대해서는 그들모두가 공모한것이기때문입니다. 이런정도로 만들자니까 그들의 고충이 어떠했는가를 짐작할수 있잖습니까. 그리고 이 6대과오를 분석해보면 총비서자리에는 변동이 있을수 있겠지만 정치로선상변화는 전혀 없을것이라는것이 명백해집니다. 어떻습니까. 저의 해석이…》

《전적으로 동감입니다.

그이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허담이앞으로 나서시였다.

《이제 우리는 100년사상사총화에 대한 중간단계의 결속을 인차 지으려고 합니다. 지금 우리는 혁명에서 수령 그리고 당건설에서 수령의 지위와 역할에 관하여 론하고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혁명에서 원칙적문제, 가장 심각한 문제로 보고있습니다.

한껏 근엄했던 허담은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한 몸가짐을 하고 그이께서 내놓은 의견에 전적인 동의를 표시하였다.

잠간동안 서로 말이 없었다.

허담은 창밖을 내다보며 조용히 말하였다.

《지금 밖에서는 눈이 오고있습니다.… 기왕 왔던김에 한가지 알려드릴것이 있습니다. 저는 이제 약 한달반동안을 기한으로 서아프리카 몇개 나라에 갔다오게 됩니다. 용무는 그 나라 실정을 더 자세히 알아보는 한편 신흥세력나라들간의 호상협조를 강화하는 방도를 모색하는겁니다.

《그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있습니다.

잠시후 그이께서는 현관을 나서시였다. 눈은 계속 내리고있었다. 현관에서 몇걸음 나서신 그이께서 손을 펴서 앞으로 내드시였다. 햇솜같은 눈이 가볍게 내려앉는다.

그이께서는 손바닥을 들여다보다가 허담이쪽으로 돌아서시였다.

《눈오는 밤길을 걸어보지 않겠습니까. 이런 밤이야 발등을 적시면서 걸어야 제멋이 날게 아닙니까?

《좋습니다. 찬성입니다.

그이를 앞세운 허담은 한걸음 사이를 두고 따라섰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정문을 지나 대동강쪽으로 걸음을 옮기시였다. 검은색 외투에 역시 같은색의 털모자를 쓰시였다.

, 눈이 내리고있다.

어느덧 유보도를 따라 련광정쪽으로 올라가게 되시였다. 강가에 드문드문 서있는 무리등이 가까스로 어둠을 물리치고있다. 그것으로 해서 강기슭에는 꿈결같은 신비경이 펼쳐졌다. 설경이 좋아서 그런지 밤이 깊었는데도 사람의 래왕이 그치지 않았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면서 이따금씩 좌우를 살피군하시였다. 어데를 보나 모두 낯익은것들이였다. 이제는 한껏 자란 수양버들도 그렇고 재간스럽게 쌓아올린 강뚝의 산보길도 모두 정다웠다. 앞에서 인적기가 나면서 털모자와 어깨우에 눈이 잔뜩 쌓인 청춘남녀가 걸어오고있었다.

《허담동무는 스키나 스케트 같은것을 탈줄 압니까?》 그이께서 물으시였다.

《웬걸요.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러면 헤염은 칠줄 알겠지요.

《그것도 모릅니다. 물에 들어서면 저는 돌덩이와 같습니다.

《아하, 그건 정말 그래선 안되겠는데요.

《그대신 저는 땅속에서는 훌훌 납니다.

《그건 또 무슨 말입니까?

《그럴 사연이 있습니다.

《흥미있는데요.

이렇게 되여 허담은 《땅속에서 훌훌 난다.》는 까닭을 설명하기 위해 자기가 나서자란 이야기를 하게 되였다.

…허담은 서울에서도 한쪽구석에 썩 나앉은 왕십리라는 빈민굴에서 나서자랐다. 그때 사람들은 왕십리라고 하면 거지와 빈대가 많은곳으로 알고있었다. 그가 열살을 넘기였을 때 아버지는 지게 하나에 가산을 몽땅 올려놓고 정처없이 길을 떠나 북으로 북으로 올라가게 되였다. 그러다가 마침내 황해도 골짜기 신평이라는데 이르게 되였다. 중석광이 많이 매장되여있어 백년은 문제없다 하여 백년광산이라는데 이르러 다섯식구가 살아갈수 있는 움막을 짓고 가마를 걸었다. 아버지한테 끌려 광산로무계에 찾아간 허담은 《너 몇살이지?》 했을 때 얼결에 《열여덟입니다.》라고 해서 허양 다섯살이나 나이를 불궈놓았다.

《키가 좀 작기는 하지만 해볼테면 해봐. 오늘부터 너는 노미도리 (정대운반공)!》라고 하며 안경쟁이가 허담의 엉덩판을 철썩 갈기였다. 그때부터 허담은 자기 키보다 훨씬 큰 정대를 두세개씩 메고 끌고 해서 채광막장으로 드나들게 되였다. 간데라불이 꺼지면 먹물속같은데를 손으로 더듬어 앞으로 기여나가군하였다. 그 과정에 후각이 발달하여 공기냄새를 맡고도 길을 가릴 정도로 되였다. 이렇게 되여 땅속에서는 어데라없이 마음대로 찾아다닐수 있는 자신심이 생기였던것이다.

《지금도 저는 아무리 캄캄한 밤이라 해도 길을 헛드는 법이 없습니다.

허담은 약간 어줍은 낯빛이기도 하지만 자기 경력의 한토막을 서슴없이 내놓았다.

《아! 그렇군요 이야기를 듣고보니 땅속에서 훌훌 난다는 말이 믿어집니다. 어떤 경우에는 물속에서 헤염치는것보다 더 나을것 같습니다.

《그저 그런거지요. 망국노의 신세가 준거니까요.

허담은 서글프게 웃음을 지으며 그이앞으로 한걸음 다가섰다.

《저는 이번에 아프리카를 한바퀴 도는 기회에 전번에 일깨워주신대로 수령님의 권위를 옹호하고 빛내이는 높은 안목으로 대외사업을 하려고 합니다.… 저는 많은것을 생각해보았습니다. 모든 일에서 자기자신을 채찍질해야겠다는 립장에 서게 되였습니다.

《그렇게 되면 부상동무는 백전백승의 무기를 걷어쥔셈입니다. 언젠가 손자의 병법이라는것을 보니까 나를 알고 적을 알면 백전백승이요, 나를 모르고 적도 모르면 백전백패이다. 그리고 어느 한쪽만을 알면 이길수도 있고 질수도 있다. 이렇게 되여있었습니다.

《아, 알겠습니다.

허담은 명랑하게 웃었다. 그의 외투어깨에 내려앉았던 눈이 떨어져내리였다.

《자, 그럼 이젠 여기서… 허담동문 저쪽으로 올라서 가야지요?

《네.

허담은 헤여지기가 아쉬운듯 잠시 머뭇거리다가 한마디하였다.

《여기서 지체하지 마시고 빨리 댁으로…》

《알겠습니다.

허담이 눈발속으로 사라졌으나 그이께서는 어째선지 이 눈내리는 강반에 더 오래있고싶어지시였다.

인적기가 나서 돌아보니 저만치 뒤에서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려왔다. 밤이 퍼그나 깊었는데도 설경을 즐기는 사람들이 나다니고있다. 거리가 차츰 가까와지자 움직이는 그 형체는 더 뚜렷이 륜곽을 드러내였다.

두개의 그림자가 떨어졌다붙었다 하는것을 보면 한가한 걸음같지 않았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길을 비켜주고섰노라니 한쪽은 군복을 입은 남자이고 다른 한쪽은 흰 머리수건을 쓴 녀인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혹시 어데를 다친 부상자를 부축해오는게 아닌가 생각되여 급히 다가가시였다. 그이께서 물으시였다.

《다리를 다쳤습니까?

저쪽에서 무어라고 대답을 하기는 하는데 잘 들리지 않았다.

그이께서는 좀더 다가가 물으시였다.

《다리를 다쳤는가요?

《아 아닙니다. 그저!

군인이 고개를 들며 손을 내저었다. 그들은 걸음을 멈추었는데 부축을 당한 녀인은 입김을 훅훅 내불면서 숨을 가쁘게 몰아쉬고있다.

《혹시 다리를 다쳐서 부축해가는가 했습니다.

《아니지요. 늙으시니 고집이란 참말…》

하고나서 장화를 신은 군인은 녀인의 어깨에서 눈을 털어주고있다.

《지금 우리 어머니는 강행군을 하고있답니다. 그렇지요. 행군이지요.

젊은 군인은 우연히 만난 고마운 손님에게 스스럼없이 롱말을 하고있다.

《행군을 한다구요?

《그렇습니다. 뻐스에 앉으면 잠간사이에 갈수 있는데 언제 이런 눈내리는 밤을 다시 만날수 있는가고 하면서 끝내 걸어가자고 해서… 선교에서부터 이렇게…》

아들이 행군이라고 불러주는통에 한층 더 신바람이 난 녀인은 온몸이 후끈후끈 달아오르는 모양 목에 감았던 머리수건을 벗어들었다. 그바람에 코마루가 덩실하고 아래턱이 기름한 얼굴이 활짝 드러났다.

《아니…》

김정일동지께서는 흠칫 놀라시였다.

《이게 누굽니까. 김명화어머니가 아닙니까?

그이께서는 결코 빗보지 않으시였다. 그렇게 되자 저편 군인과 녀인은 너무 놀라서 그런지 잠시 말이 없었다. 한밤중에 지나가던 낯선 사람이 이름까지 부르며 알아보았던것이다. 군인은 어느새 알아보았는지 발뒤꿈치를 모으며 경례를 붙이였다.

《아니…》

녀인은 눈이 잔뜩 묻어 말박만 해진 털신을 옮겨짚으며 한걸음 다가서서 이쪽을 찬찬히 쳐다보는것이였다.

《접니다. 정일입니다.

《아이구나, 이거 한밤중에 백두광명성이!…》

녀인은 팔을 벌리고 다가서더니 이쪽의 어깨를 와락 그러안는것이였다. 이런 밤중에 이런데서 만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이였다.

《다리를 상한게 아닙니까?

김정일동지께서 물으시였다.

《아니지요. 그저 늙은게 그래보는건데…》

《그런데 행군이라는건…》

《글쎄말이오다. 로망을 해서 그런지 눈오는걸 보면 자꾸 밖에 나오고싶어지지요. 그건 그렇고 어떻게 이밤중에…》

《저도 눈오는 밤이 그리워서 거닐던중입니다.

《그것보지. 생각은 누구나 다 비슷한걸… 이사람아, 들었나?

김명화는 아들을 향해 손짓을 하였다.

《차를 타지 말고 숫눈길을 걸어보자고 하니까 한다는 소리가 그건 로망입니다 하더라니까. 산에서 싸운 사람들은 눈오는걸 보면 마음이 들떠서 가만있지 못한다우. 그래서…》

《그래서 행군을 하던중이군요.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조심해야지 다리라도 혹시 삐게 되면 고생할수 있습니다.

《아직은 일없다우. 천식기가 있어 숨이 좀 차서 그러지… 이렇게 만나고보니 해방후 일이 생각나누만. 해방된 이듬해였지. 토지개혁을 하기 착 전이니까 2월말경이였어. 그때도 어머님이 밖에 나가보자고 해서 밤중에 여기 대동강가에 나와서 눈을 맞으며 행군해보았드랬소… 빨찌산시절처럼 <나가자 나가자 싸우러 나가자>노래도 불러보았구. 어머님은 행군두 잘하구 노래도 잘 부르구 총도 잘 쏘시더니… 내가 오늘밤 기어이 눈길을 걷자는것도 그때 어머님생각이 나서 그랬던거라오.

김명화는 코멘소리를 하면서 목도리로 입을 가리운다. 아무때고 만나기만 하면 김정숙어머님 이야기를 꺼내고 그런후에는 눈물을 보이고야마는 녀투사였다.

《그럼 오늘은 저와 같이 걸읍시다. 제가 대신하지요!

김정일동지게서는 팔을 부축하여 앞으로 내끄시였다. 몇마디만 더하게 놔두면 틀림없이 오열이라도 터치게 될것 같으시였다.

함박눈은 계속 펑펑 쏟아져내리고있었다. 발을 옮겨짚을 때마다 눈가루는 량쪽으로 갈라지고 그밑에서 굳어진 눈이 빠드득빠드득 소리를 냈다. 이따금씩 버드나무가지가 쳐져내리면서 눈가루가 허공에서 날리기도 하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녀인을 부축하고 걸음을 옮겨나시였다. 행군이라고 말을 붙여 그런지 평탄한 유보도가 아니라 어떤 령마루에라도 오르는것 같은 기분에 잠기시였다.

《우린 정말 걸음을 많이 걸었어. 밤에도 걷고 낮에도 걷고 비가 와도 걷고 눈이 와도 걷고…》

 환갑을 넘긴지 오랜 녀인인데도 설경이 불러오는 감흥은 역시 류다른 모양이였다.

《그런데 우린 지금 줄창 방안에 들어앉아만있거든…》

《어머니! 지금도 항일유격대처럼 우리 군대는 쉬지 않고 행군을 계속하고있습니다.… 걱정마십시오.

《하기야 그렇겠지.

《어머니! 건강에 조심하십시오. 먼저 간분들의 몫까지 합쳐서 오래오래 앉아계셔야지요.

《고맙소. 그런데 수령님 건강을 잘 돌봐드려야 하는건데… 하기야 가까이 모시는분들이 어련하겠소만… 우리가 보건대 수령님께서 너무 무리하시는것 같아. 언제나 공장, 광산길을 걸으시고 온 나라 방방곡곡 찾으시니… 참, 더 말은 하지 않겠소. 부탁이요, 부탁…》

김명화는 숨을 몰아쉬며 겨우 말을 끝내였다.

《이젠 다 왔습니다. 대동문입니다. 오늘밤 행군은 이것으로 끝이 났습니다. 그렇지요, 어머니!

아들은 역시 군대식으로 발을 모으고 경례를 붙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창광고개를 향하여 혼자 걸음을 내짚으시였다. 인도로에는 눈이 한벌 덮이였다. 이제는 사람래왕이 거의 없어졌다.

눈내리는 밤, 어머님! 김명화가 우연히 튕겨놓은 추억의 금선은 또다시 떨리였다. 그이께서는 눈이 오면 어머님을 생각하실 때가 많았다.

어머님께서는 눈을 좋아도 하시였지만 또한 눈과 관련한 사연도 많이 남기시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전쟁이 터지기전해 2월이였던것 같다. 유치원시절 그무렵이였으니까.

한밤중에 눈을 떠보니 어머님이 보이지 않았다. 아래방에도 웃방에도 부엌에도 계시지 않았다. 아버님방에는 아직 불이 환히 켜져있고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리였다. 현관에 나가보니 어머니의 신이 보이지 않는것으로 보아 밖에 나가신것이 틀림없었다.

문을 여니 캄캄한 밤하늘에서 눈이 내리고있었다. 홀연 정신이 팔린 그이께서는 외등불빛에 비쳐 현란한 광경을 펼치고있는 어둠속을 한참이나 내다보고있었다.

얼마간 그러고있는데 어둠속에서 《왜 나왔느냐?》 하는 어머님의 정다운 목소리가 들리였다. 고개를 돌리니 솜동복을 입고 장화를 신은 어머님이 현관앞으로 오시였다.

어머님께서는 스스로 야간호위를 서고계시였던것이다. 언제부터인지 알수 없지만 비바람이 불거나 눈보라치는 날이면 이렇게 밖에서 꼬박 밤을 새군하시였다. 《별일 없다. 들어가 자거라.

《아니, 나두.

《그럼 솜옷을 입고 나오너라.》 어머님께서는 손짓을 하시고는 담장쪽에 있는 백양나무밑으로 걸어가시였다. 어리신 김정일동지께서는 방안에 들어가 솜옷을 입고 어머님이 있는곳으로 다가가시였다. 어머님께서는 눈에 잘 띄지 않는 담장모퉁이에 서 계시다가 이따금씩 집주위를 돌군하시였다. 그럴 때면 그이께서도 옆에 붙어 따라가군하시였다.

눈이 내리였다. 함박눈이 사정없이 쏟아져내리였다. 난데없는 한줄기 바람이 휘익 불어닥치였다. 그통에 백양나무가지가 흔들리며 눈가루가 뽀얗게 날리였다.

어리신 김정일동지께서는 털모자를 눌러쓰고 어머님의 허리를 붙잡으시였다.

《왜 춥냐?》 어머님께서는 손을 잡아 돌려세우면서 뒤를 이으시였다.

《마음을 굳게 먹어라. 그러면 춥지 않다. 견디여내야 해. 이전에 빨찌산들은 박달나무가 얼어터지는 추위속에서도 숙영도 하고 행군도 했단다.

다시 걸음을 옮기여 그이께서는 어머님의 손을 붙잡고 마당을 한바퀴 도시였다.

《정일아! 너는 눈을 좋아하지?》 하고나서 어머님께서는 솜옷자락을 여며주면서 계속하시였다.

《후날 백두산에 가자. 거기 가면 밀영자리를 볼수 있을게다. 너는 백두산의 소백수골안이라는데서 이렇게 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 아침에 태여났다. 그래 그런지 너는 나서부터 눈을 좋아했다. 그렇지?

어리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언젠가도 그런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나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대동문이 바라보이는데서 걸음을 멈추고 동평양쪽을 바라보시였다.

밤은 하염없이 깊어갔다. 어데서도 인적이 느껴지지 않는다.

어머님께서는 수령님을 호위하기 위해 항상 마음을 쓰시였다. 한생을 그렇게 살아온 어머님이시다. 적탄이 비발치는 항일전의 나날에나 그리고 해방이 되여 반동들이 살판치는 그 삼엄한 속에서 호위에 호위를 계속하시였다.

해방직후 조만식이와 면담하는 날 밤에는 창문으로 총탄이 날아들었고 역전광장에서 연설하실 때 수류탄이 머리우로 떨어지는 형편이였으니까. 그런 속에서 수령님의 안녕을 마련하기에 여념이 없으신 어머님… 어머님… 그런데… 그런데 이 김정일은 지금 무엇을 하고있는것인가? 현시점에서 수령님을 호위하는것이란 신변의 안녕을 지키는것과 함께 당, 우리 당을 그 어떤 풍파에도 드놀지 않게 보위하는것이 아니겠는가… 명실공히 수령님의 의도대로 당이 꾸려지고 활동하도록 해야 할것이 아닌가. 그런데… 지금 실태는…

그이께서는 뜨거운 입김을 내불며 결연히 고개를 드시였다. 깊은 사색에 잠긴 그이께서는 만수대고개를 넘어 댁으로 들어가시였다. 현관에 들어서서 발을 구르고 모자를 벗어 어깨와 가슴의 눈을 터시였다. 어떻게나 눈이 많이 왔는지 설기떡같은 눈덩이가 와실와실 떨어져내리였다.

그이께서는 방안에 들어서는참 탁자우에 놓인 록음기의 단추를 누르시였다. 이미 흠뻑 몸에 배인 은은한 전주가 울리더니 노래소리가 시작되였다.

 

        내 고향을 떠나올 때 나의 어머니

       문앞에서 눈물 흘리며

       잘 다녀오라 하시던 말씀

       아 귀에 쟁쟁해

 

그이께서는 창가에 서서 노래가 다 끝날 때까지 밖을 내다보시였다. 세상만물이 다 희여진 꿈속같은 세계였다. 그토록 다양한 모습으로 그토록 많은 뜻을 나타내였던 자연은 하나의 색으로 물들어 오직 순결성만을 보이고있는것이다.

캄캄한 밤하늘에서는 함박눈이 하염없이 내리고있었다.

 

×

  

비행기가 금방 날아오르려고 할 때 허담은 옆에 앉은 주인호에게 아프리카지방의 기후풍토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자고 하였다. 다섯명으로 이루어진 정부대표단에는 3명이나 이 지역에 처음 가보는 사람들이 끼여있었다. 얼마동안 한담을 하다가 시간이 가고 이야기밑천이 떨어지고나니 모두 침묵에 잠기게 되였다. 고르로운 비행기 동음, 가도가도 끝이 없는 하늘 그리고 아득히 펼쳐진 대지… 창밖으로 그것을 내려다보고있노라면 누구나 인차 우주속에 있는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생각이 깊어지게 된다.

허담은 솜송이같은 구름이 끝없이 흐르고있는 대공을 여겨보기도 하고 또 눈을 감고 이러저러한 명상에 잠기기도 하였다. 하나의 땅덩어리우에 수십억이 오기작거리며 살고있다. 그러면서 적당히 국경이라는 금을 그어놓고 그것을 위해 총포성을 울리고 서로 살륙도 하고있는것이다.

한참동안이나 이러저러한 부질없은 생각에 깊이 빠져있다가 이번에는 함박눈 내리는 밤에 김정일동지와 함께 대동강가를 거닐던 때를 상기하였다. 리치는 어떻게 되였든 내가 갈 인생행로는 그이께서 정해준 그길인것이다. 수령님의 권위를 옹호하기 위하여 그리고 수령님의 권위로 대외사업에서 해야 할 일이 많고많다. 근본적인 의의를 가지는것은 우리 당을 그 어떤 풍파에도 드놀지 않게 강화해야 한다. 이를 위하여 나자신은 대외사업에서 자기 할바를 원만히 수행하는것이다. 그러자면 얼마전에 그이께서 지적해주신것 즉 여기서 이 허담이 당성이나 로동계급성, 인민성도 찾아보게 되여야 할것이다.

평양을 떠나서 모스크바에서 하루밤을 묵고 그다음은 에짚트의 수도 까히라에 내리였다. 로정은 매우 순탄하여 세네갈에서 사흘동안 일을 보고 그다음에 말리의 수도 바마코에 도착하였다.

이번 세네갈, 말리, 기네 등 서아프리카 5개 나라를 방문하는 정부대표단은 최근년간의 대외사업정형을 통보하고 신흥세력나라들사이에 협조를 강화하고 일치보조를 취할것과 자주적립장에서 평화와 친선을 도모하도록 하기 위한 의견을 교환하는것이였다. 때문에 한개 나라에서 두세번의 면담이 있게 되고 수도나 지방 참관이 한두군데 있는 정도였다.

바마코비행장에 내린것은 오후 6시가 넘어서였다. 지평선우에 익은 꽈리같은 태양이 놓여있는 때였다. 열대지방이긴 하지만 쟈까르따처럼 적도선상이 아니기때문에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비행장은 허허벌판에 대통로처럼 외가닥 활주로가 하나 째여져있어서 매우 단조롭게 보이였다. 세네갈과 마찬가지로 눈에 띄는 모든것이 아프리카다운 풍경인데 여기서 하나 더 첨부되는것은 바다가 없는 내륙이며 순전히 사막만이 펼쳐져있다는 특이한 점이였다.

하늘도 땅도 그리고 함석지붕이 대부분인 거리풍경도 모두 뿌연 모래빛이였다. 우리 사람들의 의식에는 사막이란 깔깔한 모래알로 알기 쉬운데 그런것이 아니라 감탕먼지라고 해야 근사할것이다. 여기 사람들의 모든 생활습성은 모래 그리고 매일 규칙적으로 내륙에서 밀려오는 열풍과 대서양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엇바뀌는 이런것들로 형성공고화되여있었다.

우리 대사관에 들어가서도 첫눈에 띄는것은 추운 겨울에 문풍지를 꼼꼼히 하는것처럼 바깥바람이 들어오지 못하게 짬을 바른것이다. 려장을 풀고 목욕을 하고나자 이 지방풍습에 익숙된 주인호는 허담에게 말하였다.

《여기서는 모든 일을 아침일찍부터 시작해서 늦어도 오후 2시나 3시까지는 끝내야 합니다. 그때부터 열풍이 오는데 먼지가 일고 너무 더워 아무것도 해내지 못합니다.

허담은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사관의 도서실을 돌아보고와서 대사에게 우리 수령님을 흠모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설명해달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밤깊도록 자세한 이야기를 듣게 되였다.

신봉자들가운데서 맨 처음으로 꼽아야 할 대상인 이곳 바마코대학의 철학교수 라케니트는 나이 올해 56이고 아버지가 백인혼혈이라는데 그는 외탁을 해서 이곳 토색을 그대로 가지고있었다. 피부는 윤기나는 흑갈색이고 키는 대통령 모디보케이타보다 약간 작은 정도의 장신자라고 한다. 그는 일주일이 멀다하게 찾아와서 김일성동지의 저작들을 달라고 한다는것이다. 그가 주동이 돼서 약 1년어간에 차츰 인원이 불어나 이제는 교원, 기자 또는 학생들속에 대상인원이 부쩍 늘어났다는것이다.

허담은 이야기를 듣노라 밖이 어두워진것도 몰랐다. 대사관성원이 저녁식사시간이 되였다고 알리자 그는 손을 들어 잠간 기다리라고 하고는 대사에게 말했다.

《그를 한번 만나봤으면 좋겠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오늘낮에 알아보니 아직 료양소에서 돌아오지 못했다더군요. 그 철학박사는 말리호수를 지나 친부끄츠라는데에 가서 치료를 받고있는데 한달 가까이 됩니다. 소화기도 나쁘고 어지럼증이 심하다고 합니다.

《거참 유감이구만요.

허담은 못내 섭섭해하였다.

대사는 말하기를 라케니트교수는 《자주성을 옹호하자》라는 우리 나라 《로동신문》 사설이 나오자 그것을 읽은 즉시로 이 나라 주요방송과 회견하여 자기의 인상을 피력했다는것이다.

그전부터 《김일성선집》을 비롯한 우리 당 문헌들을 깊이 연구하였는데 아마 발취노트만 해도 십여권이 훨씬 넘을것이라고 했다.

새로 출판된 수령님의 로작 《우리 나라 사회주의농촌문제에 관한 테제》 등 몇권의 신간도서가 대사관에 와있다는것을 알고 빨리 퇴원해야겠는데 야단났다고 하더라는것이였다. 그리고 라케니트교수는 늘 우리 나라에서 높은 급의 대표단이 오면 자기와 상면시켜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우리 수령님에 대해서, 우리 나라에 대해서 더 깊이 알려는 그의 열망은 갈수록 더 해간다는것이다.

허담은 감심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다 우리 수령님께서 지니신 높은 권위를 말해주는게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아까도 전화로 련계가 있었는데 부상동지가 왔다니까 한번 만나봤으면 좋겠는데 몸이 허락치 않아 올수 없다는거죠. 막 안타까와하더군요.

허담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무엇인가 생각난듯 대사에게 물었다.

《가만, 거기까지 거리가 얼마나 됩니까?

《세네갈을 거쳐 오셨으니까 짐작이 가시겠는데 그만한 거리는 좀 못되고 아, 그렇지. 호수의 서쪽이니까 한 400키로쯤 될것 같습니다.

《자동차로 몇시간이나 걸립니까?

《대여섯시간… 아니 그럼, 거기까지 가보시려구 그럽니까.

대사는 펄쩍 뛰였다.

허담은 응대가 없이 의자팔걸이에 팔굽을 세운채 손으로 턱을 고이고 물끄러미 어둠속에 잠긴 창문을 바라보고있었다.

(어떻게 한다?)

우리 수령님을 그처럼 흠모하고있다는 학자를 만나지 않고 떠난다는것이 어쩐지 도리가 아닌것 같았다.

(전화로 만날가? 아니 전화로야 어떻게 심중의 말을 다 나눌수 있겠는가.)

얼굴도 모르는 라케니트가 오래전부터 가깝게 지내던 벗으로 생각되면서 그를 한번 만나지 않고서는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을것 같았다. 더는 말고 가까이에서 한번 그를 보거나 하다못해 그의 손이라도 쥐여보고싶었다.

허담은 어떻게 되여 미지의 학자가 그렇게 친근하게 다정한 벗처럼 그리워지는지 알수 없었다.

허담은 후날에야 그것이 자기와 학자를 친형제와 같이 굳게 련결시킨것은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뜨거운 흠모심이였다는것을 깨달았다.

다음날부터 허담은 서둘러대였다. 면담도 전격적으로 하고 시간을 한껏 아끼였다. 바마코교외의 참관도 략하였다.

오직 라케니트교수를 만나야 한다는 마음이 불같이 타올랐다.

대사는 대표단의 일정에 없을뿐더러 일부러 고생을 사서 어려운 길을 부득부득 떠나려는 허담에게 사막의 열풍을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자기는 책임질수 없다고 충고삼아, 위협삼아 말하였다.

하지만 허담은 입가에 빙그레 맑은 웃음을 피워올릴뿐이였다.

그는 대사한테서 받았던 수령님의 농촌테제문헌과 자기가 대사관에서 짬짬히 학습하던 당대표자회에서 하신 수령님의 보고(단행본)를 서류가방에 넣었다.

대사는 한사코 만류해나섰다.

《모험입니다. 크게 고생할수 있습니다. 다음 일정도 생각해야 하잖습니까. 아직 기네, 나이제리아, 앙골라가 앞에 있다는걸 고려해서…》

그러나 허담은 한걸음도 양보할수 없었다.

말리에서의 일정을 끝내고 허담은 400키로행군을 단행하기로 하고 나섰다. 《벤즈 200형》은 기운차게 달리였다. 뒤자리에 허담이와 주인호가 앉고 앞에는 젊은 운전수 두명이 탔다. 사막지대인지라 속도는 최하 80, 보통 100정도 나갔다. 새벽 4, 아직 동쪽하늘이 트이지도 않았는데 승용차는 사막지대로 그어놓은것 같은 일직선도로를 살같이 달리였다. 가도가도 끝이 없는 사막이였다. 세계에 널리 알려진 사하라사막 서남쪽기슭에서 그 종심깊이로 들어가는것이다.

사막 한복판에 강이 하나 흘렀다. 강이라고 하니 강인가부다하지 그저 보기에는 사막 한쪽에 그어진 우묵한 고랑이였다. 30분에 한번씩 운전수들이 교대를 하였다. 너무나 곡선이 없고 들추는것도 없기때문에 깜박 졸기가 일쑤이고 한번 착각을 일으키면 엄청난데로 빠져들어갈수 있기때문이였다.

머리를 들면 진회색의 하늘과 땅뿐이다. 그외는 동쪽에서 떠오른 놋대야와 같은 태양 하나! 천태만상이라는것이 죄다 생략되고 이것이 전부이다.

허담은 너무나 특이한 풍경을 놀라운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생각에 잠기였다.

(여기 사람들의 마음은 어떤가. 자연처럼 이렇게 단순한가 아니면 정반대로 되여있을가.)

그는 입가에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어느쪽이든 아무 소용이 없는것이다. 그러나 부질없는 생각은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아이쿠!

운전수가 비명을 질렀다. 급정거하는 바람에 앞으로 쏠리였다가 반동력을 일으켜 엉덩방아를 찧은것이다.

《왜 그러오?

주인호가 물었다.

《모래사태가 났습니다.

두명의 운전수가 동시에 내렸다.

짐칸에서 평삽을 꺼내들고 길을 메운 모래를 치기 시작하였다. 앞이 보이지 않을만치 모래가 쌓여있었다. 시간은 아침 6시였다. 거리를 보면 3분의 1이 되나마나한 지점이였다. 그런데 이상한것은 모래를 퍼제끼고있는 두 청년은 기분이 평온하고 그것을 흔히 있는 일로 알고있는것이였다. 난처해진 허담이 먼데를 바라보고있는데 주인호가 담배불을 붙이자면서 한마디 하였다.

《걱정할건 없습니다. 여기서는 이런 일이 흔히 있으니까요. 우리 조선으로 말하면 자그마한 시내물을 하나 건느는것이나 같습니다. 지금 6시니까 시간은 넉넉합니다.

주인호의 말대로 한 30분동안 모래를 쳐서 대수간 길을 내고 차를 뽑게 되였다. 그런데 놀라운것은 세워놓은 차를 뽑기 어려울만치 바퀴가 묻힌것이다. 모두 달라붙어 영차영차를 해서 장애구간에서 빠져나왔다.

차는 또 달리였다. 날이 밝으면서 해풍이 세게 불어 앞이 뽀얗게 흐려졌다. 그러나 승용차는 기세좋게 몽롱한 모래안개속을 뚫고들어갔다.

《에익, 이거 또!

차는 다시 멎었다. 먼저번과 꼭같은 방법으로 작업이 진행되였다.

장애가 거듭되자 허담은 가슴이 묵직해졌다. 그러면서도 그는 왕청같은 생각을 하고있었다. 어느 책에서 보니까 레닌이 림종순간까지 애독했다는 어느 한 단편소설이 생각났다. 바로 이와 비슷한 정황에서 있은 일이였다. 굶주린 사람과 병들고 굶주린 맹수와의 결투였다. 인간의 힘과 긍지를 보여준 이야기는 아직 생생히 머리에 남아있었다.

주인호는 운전수의 삽을 뺏아들고 모래를 쳐내고있다. 얼굴은 한껏 침울해지고 군소리 한마디 없는 재빠른 동작은 매우 초조해있다는것을 알수 있게 하였다.

허담이도 불안을 감출수 없었다. 삽이라도 하나 더 있다면 도울 생각이지만 그렇게 할수 없었다. 그래 그는 사태가 밀린 한 10메터구간을 왔다갔다하면서 시간가늠을 해보게 되였다. 또다시 30분이 흘러갔다. 차를 뽑아 평탄한 길우에 내세웠지만 전번처럼 그렇게 쾌재를 부르는 사람이 없었다. 전번에 《나왔다!》 하고 소리쳤던 주인호도 쓴입을 다실뿐 말이 없고 운전수들은 담배를 붙여물고 인차 발동을 걸었다.

《여유시간 2시간을 가지고 떠났으니까 이제는 1시간이 남았는가요?

허담은 주인호의 기분을 이런 식으로 타진해보았다.

《아직 완완합니다. 이제 한시간정도면 절반지점에까지 갈수 있으니까요.

차는 속도를 한껏 높이였다.

그리하여 고작해서 10키로 남짓한 지점까지 단숨에 댈수 있었다.

시간은 벌써 오전9시가 되였다. 그런데 난처한 일이 또 벌어졌다. 일행이 편안한 마음으로 앞을 내다보고있는데 《아이구야?》 하고 운전수가 소리쳤다. 마치 집게에 집히는것 같은 비명이였다.

차가 멎는것과 함께 앞을 내다보게 된 허담은 순간에 온몸이 굳어지고말았다.

엄청난 모래산이 앞을 막아섰는데 새파란 승용차 한대가 다 묻혀버리고 뒤꽁무니만 약간 남은것이 보이였다. 사람은 아무데도 보이지 않았다. 정황이 딱해지자 차를 그냥 둔채로 어데론가 가버린것이 틀림없었다.

모두다 긴장해졌다. 누구도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말로 설명하기에는 너무나 엄청난 재난이 앞에 가로놓인것이다. 일행이 모두 흩어져 각기 제나름으로 수습책을 생각해보았다.

허담은 모래둔덕을 가로질로 거리를 가늠해보았다. 10메터이상 파제껴야 하였다. 그러자면 11, 12시까지 해야 하는데 이제 기껏해야 2시간정도 있으면 열풍이 불어닥칠것이였다.

주인호에게 물었지만 그도 묘안이 없노라고 하였다. 얼마동안 토론을 해보다가 허담은 단호한 결심을 내리였다. 차는 돌려보내고 주인호와 함께 걸어서 갈 작정을 하였다. 시간이 약간 모자라긴 하지만 부지런히 걸어서 10키로정도 가면 강이 나지는데 그러면 목적지에 무사히 가낼수 있었다.

《갑시다. 10키로도 되나마나하니까.

허담의 말에 주인호가 반발해나섰다.

《부상동지, 1시간 30분동안에 10키로를 걸어야 합니다. 그러다간 모래속에 묻힐수도 있습니다. 부상동진 아까부터 자꾸 가슴을 움켜쥐는데 열풍속에 견뎌내지 못합니다.

아닌게아니라 몸에 익숙되지 않은 메마른 공기와 열풍으로 하여 심장부위가 자주 뻐근해왔다.

《그렇다고 되돌아설순 없지 않습니까?

허담은 결연히 손을 내저었다.

《정 그렇다면 이렇게 하는것이 어떻습니까. 지금까지 우리가 온 로정은 별일 없었으니까 차를 돌려가지고 갔다가 래일이나 모레 기회를 보아 다시…》

《아아, 복잡하게 이러지 맙시다.

이렇게 되여 주인호는 마지 못해 허담이 하자는대로 따라나서지 않을수 없었다.

허담은 뒤좌석에 놓았던 두툼한 서류가방을 꺼내 누가 빼앗기라도 하려는듯 두팔로 그것을 꽉 부둥켜안았다.

두 운전수는 돌아갔다가 다시 오기로 하였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을 구멍이 있다더니 기분이 열리였다. 이제 기껏해야 한 10리 걸으면 되였다. 그런데 마치 기다리기라도 했던것처럼 열풍이 불어닥치기 시작하였다.

숨이 꺽꺽 막히고 피부가 따끔따끔하였다. 온통 모래판이다보니 걸음도 잘되지 않았다. 맥이 빠진데다가 초조하기까지 해서 더 걸음이 나가지 않았다. 5분이 멀다하게 물을 마셔야 하였다. 온몸을 불에 굽는것 같아 걸음을 떼기 힘들었다. 입안에는 모래가 자금자금 씹히고 눈을 뜰수 없었다.

《좀 쉽시다.

주인호가 간청하듯이 말하였다. 나이는 두세살 아래지만 체대가 크고 겉늙다보니 주름이 많았다. 우거지상을 한 그는 물을 마시고 나서 허담을 향해 짜증을 내였다.

《이놈의 날씨만 아니였어두 벌써 다 갔겠는데 이거야 어디…》

점점 숨이 가빠지는 허담이 오히려 이렇게 말했다.

《좀더… 기운을 냅시다.

《부상동지! 지금 우리는 아무 일 없는것 같지만 이제 한걸음 삐뚝해서 자빠지는 때면 순간에 모래무덤속에 들게 됩니다. 저기를 보십시오. 강한 열풍이 넘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한두시간 지체하면…》

《위협하지 마시오.

허담은 갑자기 모래가 미끄러워 앞으로 꼬꾸라졌다. 그러나 혼신의 힘을 다해 일어나 내짚었다. 마치 깊은 눈길을 걷는것과 비슷하였다. 그는 입술을 짓씹으면서 기운을 내였다. 이것은 일종의 항거였다. 불순한 자연에 대한 항거인 동시에 주인호가 은근히 잡아당기는 유혹에 대한 항거였다.

서류가방을 번갈아 안으면서 행군은 계속되였다. 자주 엎어지였다. 서로 부축해가면서 걷고 또 걸었다. 거리를 보아서는 이제 한시간이면 넉넉할것 같은데 목에서는 겨불이 타고 다리가 뻣뻣해져 한걸음도 더 내짚을수 없게 되였다.

그들은 고개를 짓숙이고 걸었다. 걷는다기보다 지친 다리를 모래우로 질질 끌고가는것이다. 먼지가 뽀얗게 끼여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맥이 빠진 허담은 자주 먼지투성이인 안경을 닦느라 주춤거리였다.

열풍이 시작되였다. 때때로 회오리를 일으켜 사람을 팽이 돌리듯 해놓군하였다. 그럴 때면 땅에 엎드려 바람이 자기를 기다려야 하였다. 멀리서 보면 뽀얀 먼지속에서 두개의 그림자가 아물거리는것으로 보일것이다. 그들은 드팀없이 한걸음한걸음 전진하고있었다.

허담의 얼굴은 고통과 모래먼지로 혼탕되여 무색무표정이 되고말았다.

오전 10 30! 열풍이 미쳐나서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다는 바로 그무렵에 그들은 마침내 오아시스의 초입에 들어서게 되였다.

이곳 말을 알고있던 주인호는 다섯번이나 물어서야 라케니트가 있는 료양소에 들어설수 있었다.

딱 들어붙은 곱슬머리에 안경을 낀 라케니트는 전후사연을 듣고는 그저 놀랍고 반가와 《아이야-야-》 할뿐이였다.

인사말이 오가고 다 자리에 앉았을 때 주인호가 말했다.

《교수선생을 만나기 위해 우리 허담부상동지는 난생처음 이런 고생을 했습니다.

《무슨 용무이기에…》

《무슨 용문가구요?

어떻게 그 뜨거운 사연을 단마디로 표현할가 하고 말마디를 고르고 있는데 허담이 스스럼없이 말을 건네였다.

《특별한 용무는 없습니다. 우린 그저 교수선생의 병문안이나 하자고. 그리구 낯도 익힐겸…》

《아니? 그 험한 길을… 사실은 제가 조선에서 온 손님들을 만나고싶었습니다. 제가 뭐라고…》

교수는 고개를 돌리고 슬며시 손끝으로 눈굽을 훔치였다.

그는 허담이 가져온 수령님의 로작을 받아쥐고는 격정을 누를길 없는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참말 감사합니다. 김일성각하께서는 동지들과 같은 의로운 전사들과 함께 계시니 행복합니다. 그리고 훌륭합니다. 그런 전사를 키워내고 그런 전사들의 호위를 받고있으니말입니다. 저는 60이 되여오는 이날까지 철학을 전문으로 연구해왔는데 오늘은 각하를 세계적 위인으로 존경하며 숭배하고있습니다.

라케니트는 저작선집의 가위를 펴들고 김일성동지의 사진을 가리키면서 《이분은 위인중의 위인입니다. 저는 한생을 바쳐 이분을 경모하고 이분의 저작을 연구할 작정입니다.》라고 하였다.

이렇게 시작된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허담은 하루밤 꼬박 새우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책 두권을 가져다준것으로 해서 그토록 상대방을 기쁘게 하리라고는 상상도 할수 없었던것이다. 비록 피부색이 다르고 혈통이 다르고 지나온 력사가 다르지만 위대한 진리를 따르고 위대한 위인을 따르는데는 지구상의 동서남북 가림이 없이 공통적이라는것을 절감하였다.

(, 이것이야말로 혁명전사의 행복이라는것이 아니겠는가!)

그로부터 20일이 지나 허담은 조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 앉아있었다. 서아프리카에서 쏘피아에 와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쏘피아에서 또 모스크바까지 와서 다시 비행기를 갈아타고 바야흐로 평양으로 향하게 되였을 때 허담은 기나긴 비행길의 려독도 려독이지만 사막의 열풍을 겪으면서 얻은 과로가 겹치면서 가뜩이나 심장질환이 있던차라 비행기안에서 쇼크를 일으켜 쓰러졌다. 응급치료가 있었으나 비행장에서 곧장 병원으로 후송되여가지 않을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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