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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서《불멸의 력사》 장편소설
석윤기 (제19회) 제 2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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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강촌은 며칠째 안윤재네 잔치때문에 들끓었다. 특히 오늘은 친영날이라 온 동네가 신부를 맞이할 준비로 바빴다. 널직한 대청에 큰상을 차렸으면 구경군들을 마당에 가득 들여세워 동네사람들이나 신부집 후행과 원근의 하객들에게 신랑집위세를 한번 떨쳐보겠는데 엄동설한에 그럴수는 없어서 안윤재가 거처하는 방에 상을 차렸다. 미닫이 하나로 대청과 련해있는 두간통방이라 대청을 향해 큰상을 놓으면 하객들과 구경군들이 대청에서 들여다보게 되였다. 신랑신부가 뜨뜻한 구들에 앉아 얼굴이 곱게 달아오르면 됐지 그까짓 늙은 하객이나 구경군들이야 코물을 흘리며 퍼렇게 언들 무슨 상관이 있는가. 신부가 시부모에게 절하는것만 보면 잘났다는 말 한마디씩을 하고 각각 동류끼리 모여앉게 배정된 방에 가서 부조감으로 실컷 마시면 되겠는데… 불쌍한것은 그런 축에도 못들어 마당과 부엌에서 허드레일에 내몰린 동네사람들이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긴급한 일을 미루어놓고 잔치집에서 하루종일 시달릴 일을 생각하시니 기가 막히시였다. 무슨 일감이 차례질지 모르지만 신역은 아무것이나 두렵지가 않으시였다. 다만 각 조직에서 제기돼오는 긴급한 문제처리를 속된 인간들의 허영심때문에 뒤로 미뤄야 한다는것은 참기 어려우신 일이였다. 그러나 잔치집에 가서 머슴군흉내를 착실히 내는것도 생각하면 중요한 사업의 하나였다. 오별장이 동네에 나갔다들어오더니 잔치집에서 찾으니 가서 일을 좀 봐주라고 말했다. 그래서 흔연히 대답하고 나가시려는데 정혁이가 긴장한 낯빛으로 다가오며 담장밑으로 눈짓해 불렀다. 《야단났습니다. 떡을 쳐봤습니까?》 《떡? 떡은 왜? 나더러 떡을 치라오?》 김일성동지께서도 놀라서 물으시였다. 농사일이면 어떤 험한 일이라도 다 자신이 계셨지만 떡만은 쳐보시지 못했다. 떡을 칠만 한 그런 환경에 부닥쳐보신적이라고 없는 그이시였다. 만경대에서 보내신 어린시절에는 타개죽으로 근근 끼니를 에워가는 어려운 살림에 습관되시였고 봉화리나 중강땅에 계실 때도 집에서 떡을 치는것을 보신 기억이 전혀 없었다. 림강, 팔도구, 무송-부모님께서 걸어가신 로정에는 언제나 독립운동자들과 혁명가들로 붐비는 들끓는 생활이 펼쳐졌으나 나라와 겨레의 운명을 구원하려고 커다란 포부와 경륜을 안고 몸부림치는 그런 자리에는 언제나 가난과 주림이 뒤따랐다. 할아버지의 생애에도 아버지의 생애에도 푸짐하게 떡 한번을 쳐보시지 못하였다. 인간이 가질수 있는 가장 고귀한 품성과 온갖 슬기를 다 갖추 지니셨던 아버지도 이런 호사스런 생활에 소용되는 재능은 못가지셨을것이다. 하기에 생활의 그런 험로우에도 한토막 가슴저리는 추억은 있었다. 아버님께서 조선국민회사건으로 체포되여가신 15년전 가을 봉화리의 초가집에는 밤마다 문풍지가 슬피 울었다. 갓난 철주는 집에 닥친 불행을 전혀 못느끼고 재롱만 부렸지만 어머님의 기색은 근엄하시였다. 당시 여섯살나시던 김일성동지께서는 어머님의 안색을 긴장되여 지켜보시였다. 그러면 어머님께서는 심중한 목소리로 의논하시는것이였다. 《성주야, 만경대에서 모두 이사를 해오라고 기별이 왔구나. 이제 머지 않아 날씨도 차지겠는데 우리끼리 살아가기가 어렵겠다고 할아버지, 할머니랑 삼촌들이 근심하신단다. 어떻게 하면 좋겠니?》 《우리끼리 만경대로 가면 아버지는 어떻게 하나요?》 《그러게말이다. 아버지는 왜놈들에게 붙잡혀가서 고생하시는데 우리가 만경대에 가버리면 그사이 감옥에서 나오시여 곧장 봉화리로 오실지 알겠니. 그리고 우리마저 가버리면 이 명신학교는 누가 돌보겠니. 그래서 우리 셋이 여기서 아버지를 기다리겠다고 기별하자고 한다. 좋지?》 어린 김일성동지께서는 고개를 끄덕이시였다. 어머님께서는 반짇고리옆에 누워있는 철주에게도 쓸쓸한 미소를 보내시였다. 그 며칠후 어머님께서는 어디서 구하셨는지 한되쯤되는 기장을 찌시더니 절구에다 능구시였다. 팥도 한줌 삶아서 찧으시였다. 어머님께서는 절구질을 하시며 호기심이 나서 지켜보시는 김일성동지께 말씀하시였다. 《만경대할머님께서 우리가 안가겠다는 기별을 받고 봉화리로 오시겠단다. 먼길에 오시지 말라고 기별했으면 좋겠는데 이제는 그럴 짬이 없구나. 그래서 할머님께서 좋아하시는 기장떡이라도 좀 빚어서 대접하자고 그런다. 이제 할머님께서 오시면 먼저 할머님께 대접하자.》 그날부터 김일성동지께서는 맥전나루에 나가시여 대동강을 오르내리는 배를 지켜보시였다. 배는 많이 오르내리고 때로는 맥전나루에도 들렸지만 할머님은 그날도 이튿날도 오시지 않았다. 아직도 더위가 남아있어 팥보숭이가 쉴가봐 걱정이 되신 어머님께서는 명신학교앞마당에 있는 박우물에 떡을 담은 이남박을 채우시였다. 할머님께서는 그리고도 며칠이 더 지나서야 오시였다. 우물에 채워놓은 떡은 굳어져서 다시 김을 올려가지고 할머님의 상에 올려놓아드렸다. 기장 한되를 쪄서 떡을 쳐놓고 기다렸다는 어머님의 말씀을 들으신 할머님께서는 김일성동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혀를 차시였다. 《이사람아, 아이들이나 줄것이지 나를 기다릴게 뭐람. 에이구, 이 할미때문에 우리 증손이가 떡맛도 못보게 하다니, 내가 그럴줄 알았더면 가을이고 뭐고 다 밀어놓고 달려오는걸 그랬다.》 할머님께서는 며느리의 효성과 손자분의 정상에 절로 눈물이 북받치시여 허리에 차고오신 명주수건으로 눈굽을 찍으시였다. 《어머님, 공연한 걱정입니다. 성주는 할머니가 보고싶어 나루로 달려나가면서도 떡이 쉰다고 걱정을 했어요.》 어머님께서도 젖어드는 눈을 안보이시려고 외면하며 말씀하시였다. 《남의 가슴을 그만 허비게. 나한테 무슨 대접이 따로 있겠나. 임자들이 재미있게 살면 그것이 대접이지 아이애비 없는 집에 와서 아무리 진수성찬을 받은들 배가 부르겠나.》 《어머님, 그런 말씀 마시고 성주의 효성을 생각해서라도 이 떡하나 드십시오.》 《오냐, 들마, 들지. 증손이도 들고 아이에미도 같이 하나씩 맛을 보자.》 할머님도 눈물을 지으시고 어머니도 눈물을 지으시였다. 그것을 지켜보시는 어린 김일성동지의 가슴도 눈물에 젖어드시였다. 그러나 이를 악물고 눈물을 참으시며 떡 하나를 저가락에 꿰여 할머님께 올리였다. 그것을 바라보시던 할머님은 와락 그러안으시더니 그만 목메인 소리를 터쳐놓으시였다. 《증손아, 네 아버지는 언제 온다더냐. 만경대에도 기장이 괜찮게 됐는데 이런 떡 한개 맛보지 못하고 얼마나 고생을 하겠느냐.》 어머님께서는 울지도 않는 철주를 다둑거리시며 부엌으로 내려가시였다. 그때는 몰랐지만 필시 어머님께서도 부엌에서 혼자 눈물지으셨는지 모른다. 떡, 한되도 되나마나한 기장을 쳐놓고 일가가 눈물짓던 그 떡, 언제 동네장정들을 다 불러들여서 치는 그런 떡에 대한 체험이 있을수 있으랴. 김일성동지께서는 억이 막히시였다. 《나는 떡을 쳐본적이 없소.》 《글쎄 그럴것 같아서… 마당에 내다놓은걸 보니 떡메라는것이 두어관 착실히 돼보이는데 날씨가 차니 김이 식기 전에 쳐야 한다고 볶아대지요. 보위단에 있는 패들이 두엇이 와서 치고 남칠이도 왔는데 번갈아 들이대도 못당해요. 그래서 일잘하는 증손이를 찾으라고 아낙네들이 고아대는데… 이거 어떻게 하겠습니까?》 방금 봉화리의 슬픈 가을을 회상하신 김일성동지께서는 당장 목청을 돋구어 그런 인간들의 호사스런 잔치떡은 치지 못하겠다고 소리치고싶으시였다. 그러나 다음순간 이것은 일잘하고 어리숙한 머슴군 증손이로서는 할수 없는 말이라는 생각이 번개같이 떠오르시였다. 그이께서 난처한 문제에 부딪쳐 미처 생각을 질정하지 못하시는 눈치를 채자 오정혁이 제먼저 입을 벌렸다. 《저 이렇게 하면 어떻겠습니까?》 《어떻게?》 《내가 먼저 가서 어제 나무하러 갔다가 팔을 삐였다고 선통을 놓고 대신 내가 한몫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동무가?》 하고 김일성동지께서는 의심쩍게 바라보시였다. 《동무는 떡을 쳐봤소?》 《나도 못쳐봤지요. 그러나 내가 떡을 서툴게 치는것이야 응당하지 않습니까? 떡은 칠줄 모르지만 장난삼아 한번 쳐보자고 할수도 있단말입니다.》 《하긴 그렇소. 그러나…》 김일성동지께서는 무언가 석연치 않는것이 느껴지시여 고개를 기울이시였다. 《그렇게 합시다. 나도 이번에 느끼는바가 많습니다. 내가 좀만 똑똑했다면 김일성동지가 여기 와서 이런 일까지 하며 차마 듣지 못할 말을 다 듣고… 생각하면 나는 조선인민들앞에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그렇기때문에 나도 혁명적인 군중공작방법을 체득하는것이 우리 혁명의 사활적인 문제라는것을 통감합니다. 내가 이 정황을 한번 잘 처리해보겠습니다.》 정혁의 표정은 심각하였다. 그의 자기반성은 어느 정도 깊이가 느껴졌고 또 그자신을 위하여 절실히 필요한것이기도 하였다. 《좋소. 그렇게 합시다. 그러나 내가 완전히 잔치집에 얼굴을 내밀지 않을수는 없을것 같소. 떡을 칠 형편은 못되지만 가령 불을 땐다든가 혹은 김올린 시루를 나른다든가 하는 일은 할수 있는것으로 합시다. 정혁동무가 먼저 가서 그렇게 선통을 놓으시오. 그러면 내가 슬슬 뒤따라갈테니…》 오정혁은 인차 말씀의 뜻을 알아채고 다시 표정이 긴장되였다. 《집에 볼일이 있어서 어디 내보낸것으로 하자고 하는데요…》 《그건 무엇때문에 그러오?》 《잔치집에 가면 아무래도 그자와 부딪칠 위험이 많지 않습니까?》 정혁이가 그자라고 하는것은 장철하를 념두에 둔것이였다. 장철하와 마주 부딪쳤을 때 그가 어떻게 나올지 모른다는것이다. 십분 있음직한 우려였다. 《지금 형세가 마치 산속에서 짐승을 만난것과 같소.》 하고 김일성동지께서는 확고한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짐승이 해칠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는 알길이 없소. 짐승이 한번 못본척하고 지나쳤다 해서 그걸 믿고 등을 돌려대고 걸을수는 없지 않소. 해칠 마음이 없는것이 사실인가 아닌가 확인하고야 마음놓고 등을 돌려댈수 있는거요.》 《일없을가요?》 정혁은 여전히 미타한 표정으로 말했다. 《대체로는 일없다고 봐도 괜찮을거요. 그도 한때 독립군중대장으로 이름을 날린 사람이니 그만 한 눈치는 있는 사람이요. 전날 그는 틀림없이 나를 알아본것 같은데 그런 내색도 없소. 이제 한번 더 검열해볼 필요가 있을것 같소. 만일 그의 눈치를 보고 완전히 개가 되였다면 즉시 대책을 세워야 할거요. 그러나 아직 량심의 한쪼각이라고 남아있다면 그는 심중하게 행동할거요. 그는 자기가 마지막 시험대에 올랐다는것을 충분히 느낄테니까… 그도 그만한 물계는 아는 사람이요.》 오정혁은 심중한 낯빛이 되여 그이의 말씀을 듣고있다가 종시 미타한 표정을 풀지 못한채 집을 나섰다. 그가 우려하는것도 노상 근거없는것이 아니였다. 그이께서 장철하를 정면으로 만나시게 되면 장철하가 어떤 행동으로 나올지 십상 모를 일이였다. 처음 오던 날은 불의에 만났기때문에 떨떨해서 어째볼 겨를이 없었다고 볼수도 있는것이다. 하기는 김일성동지께서도 바로 그점이 미타하기때문에 그날 그가 모른체하고 지났다는것만 가지고 마음놓을수 없다고 말씀하시는것이였다. 따라서 앞으로 부강촌에서 공작을 계속하시자면 장차 장철하가 어떤 행동으로 나올것인가를 가늠해보지 않을수 없다는것은 충분히 리해할만 한 일이였다. 그러나 정작 장철하가 교하에서 취했다는것과 같은 배신적인 행동에로 나온다면 첫째 그이의 신변자체가 위험해질수 있다. 장철하가 오게 될무렵이면 옛 독립군 지대현이도 의례 한자리에 있을것이고 안도와 량강구의 경찰을 비롯한 벼슬아치들도 올것이며 반일부대의 우두머리들도 올것이다. 그런 자리에서 장철하가 말 한마디를 잘못한다 해도 사태가 어떻게 번져질지 모르는것이다. 그러나 김일성동지는 언제나 자신을 위험앞에 드러내는것을 두려워 안하신다. 미리 송남칠이나 상범이 같은 믿을만한 사람들에게 귀띔을 할것인가. 그들은 아직 그이께서 김일성동지라는것까지는 몰라도 혁명가이라는것은 짐작하고있고 그이를 돕느라고 애도 쓴다. 그러나 그것은 김일성동지께서 이번 공작과 관련하여 특히 엄격하게 규률을 세워놓으신 지하공작의 규범에 어긋나는것이다. 오정혁이가 복잡한 궁리에 파묻히여 집을 나선 다음 한참 마당을 서성거리시던 김일성동지께서는 이윽고 헛간에서 큼직한 싸리비를 들고 문전을 나서려 하시였다. 《어데를 가요?》 때마침 안마당쪽에서 나오던 정란이가 그이의 모습을 찬찬히 살펴보며 물었다. 《잔치집마당이나 쓸어줄가 해서요.》 김일성동지께서는 언제나 깔끔한 태도를 취하면서도 자기때문에 왼심을 쓰고 속을 바글바글 태우는 이 령리한 처녀앞에서 신분을 감추기가 제일 힘들다는것을 느끼시며 시무룩한 어조로 대답하시였다. 《누가 쓸라고 해요?》 《아니, 그래도 쓸어주는것이 좋을것 같아서…》 《그만두라요. 별것들이 다 사람을 숙보지 않아요. 그런데 뭣때문에 시키지도 않는 일을 따라가며 해줘요. 참 답답해서…》 《그래도 그 집 사람들이 성내지 않을가?》 《성내면 어때요?》 정란이는 속이 상해 목청을 높이였다. 《누가 성을 내요? 그따위 시시한것들이 성을 내면 뭐래요? 그까짓 보위단장이 뭐라고… 그 집 사람들이 그렇게 무서워요? 어쩌면 사람이 주대도 없이…》 정란이는 제풀에 약이 올라 한참이나 씩씩거리다가 휙하니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속으로 웃으시며 길을 건너가시였다. 잔치집에 들어서니 고간다락에 무져두었던 목기며 소반따위 제기들을 끌어내느라고 이 집 머슴이 사닥다리우에 올라가서 거미줄속에 고개를 휘저으며 쩔쩔매고있는데 밑에서 식모와 동네아낙네들이 내려오는 족족 부엌으로 나르고있다. 그렇게 나른 목기들이 부엌한옆에 주런이 쌓여있다. 떡은 뒤마당에서 치고있었다. 뒤울안으로 돌아가니 벌써 담장우에 동네조무래기들의 머리가 박통열리듯 했다. 어떤놈은 기와를 허물어뜨리며 담장우에 기여올라오겠다고 버드럭거린다. 먼지를 피우며 부산스럽게 군다고 부엌일을 보는 아낙네들이 부지깽이를 들고 아이들의 머리가 솟아오를 때마다 내지르군한다. 김치움으로 내려가는 층층계앞에 두께가 다섯치는 실히 될 통나무떡판을 차려놓고 장정들이 둘러섰다. 뒤문을 터놓은 부엌에서는 뜬김이 자욱하게 서려나오는데 아낙네들이 시루에 쪄낸 찰밥을 함박에 하나가득 퍼담아다 떡판우에 쏟아붓는다. 그러면 두 장정이 마주서서 소대가리같이 우둔한 곰배를 함박의 더운물에 슬슬 굴려서 추겨가지고 처음에는 능구다가 풀기가 생기면 철썩철썩 감을 어지간히 갈무리해놓고 한쪽이 짝패를 보며 《쳐볼가?》 하고 눈짓을 한다. 상대도 허리춤을 추켜올리고 떡메를 다시 바로잡는다. 《쉿차!》 《쉿차!》 쌍떽메가 엇바꾸어 공중에 방아머리처럼 쳐들렸다가 쾅하고 내려치면 두말이 넘는 떡감이 쭐 늘어나며 떡판이 금시 쪼개져나가는듯 한 소리를 지른다. 떽메군들은 곰배대가리에 찰싹 달라붙어 한자나 묻어오르는 떡을 떼느라 얼굴이 시뻘개지는데 그앞에 물함박을 끼고앉은 남칠이 처가 제꺽 떡을 뜯어놓고 더운물을 곰배에도 바르고 떡감우에도 발라준다. 《쉿차.》 《쉿차.》 메질군들이 소리를 먹여가며 곰배를 휘둘러대면 남칠의 처 학실이는 물묻은 손으로 떡감을 척척 번져놓기도 하고 쓰다듬기도 하면서 《미운놈궁뎅인가 하고 사정없이 치라요.》하고 기세를 돋구어준다. 그러나 아무리 승벽을 내여도 부엌에서 연방 쪄내는 감을 미처 감당하지 못하여 남칠이까지 김이 다 식는다고 보채는 안해를 가로 훑어보며 담배질만 하고있다. 오정혁이나 상범이따위는 한시루분도 못치고 단김을 뿜으며 물러나 앉군하였다. 《아니 여보, 담배재 날려요. 어서 불 끄고 곰배를 잡으라구요.》 학실이가 남편을 쳐다보며 말했다. 《저놈의 녀편네 보게. 이런데 와서도 제 남편 좀 아낄 생각을 못해.》 《그까짓 남편 아꼈다 뭣에 쓰겠소. 밤낮 투전방에나 돌아다니는거… 차라리 이런 때나 실컷 부려먹어야지.》 《어이구, 드살이 센 녀편네한테 잡혔으니 어쩔수 없지.》 남칠이도 시큰둥한 소리를 한마디 하고 마라초꽁다리를 고무신뒤축으로 비벼끄더니 오정혁의 곰배를 슬그머니 앗아쥐였다.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해도 떡치는 법이야 알수 없지. 떡은 이렇게 미운 녀편네엉뎅이 답새기듯 해야 한단말야.》 남칠이가 공중높이 쳐들었던 곰배를 힘껏 내려치자 아닌게아니라 학실이가 둥그스름히 무져놓은 떡감은 한가운데가 움푹 패우면서 쭐 늘어났다. 《실컷 밸풀이를 해보소.》 학실이는 히쭉 웃고 떡감을 절반 꺾어 척 번져놓았다. 《내외싸움도 별스레는 하지.》 더운물을 퍼가지고 달려온 기득이 처가 시샘이 섞인 말로 한마디 씩뚝거렸다. 옆에 둘러섰던 남정들은 그것이 더 우스워서 한바탕 웃었다. 김일성동지께서 비자루를 어깨에 메고 뒤마당에 들어서시니 노랗게 익은 시루변을 뜯어내여 씹고있던 아낙네가 좋아라고 소리쳤다. 《에그, 증손이가 이제사 나타났군. 팔을 다쳤다더니 어때?》 《아니, 떡치는데 비자루는 웬 비자루요?》 《저런, 마당을 쓸 차비가 아니야? 떡고물이 좀 모자란다 했더니 증손이가 만주먼지로 떡보숭이를 할셈이군.》 중구난방으로 떠들어대는 아낙네들의 말을 들으시며 그이께서는 싱그레 웃으시였다. 그이께서는 떡치는판에 서서 한참 구경하시다가 앞마당으로 돌아나오시여 이제 친영행차가 들어설 대문간이며 대청앞을 말끔히 쓸어놓고 다시 뒤마당으로 가시였다. 까칠한 상범이 처가 데쳐놓은 문어처럼 얼굴이 시뻘개가지고 커다란 떡함지를 가슴에 안고 어깃어깃 걸어나왔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것을 맞들고 떡판있는데까지 날라가시였다. 이때 뒤담장에서 벼락치는 소리가 났다. 마침내 아이 하나가 담장우에서 기와를 허물어뜨리며 떨어져내린것이다. 《야, 이놈아, 여기가 어딘줄 알고 함부로 하강을 해!》 《저놈 잡아라.》 《아이구- 떡 다 마춰요.》 이런 웨침소리가 들썩하는가운데 아이는 몰이군에게 쫓기는 노루새끼처럼 갈팡질팡하며 내뛴다. 때마침 학실이가 소반에 방금 쳐낸 떡을 사람수효만큼 접시에 담아서 내오다가 그걸 보고 혀를 끌끌 찼다. 《아니, 애는 왜 그렇게 몰아요. 그 애들도 대사집 손님인데 떡이나 한개씩 뜯어주라요. 그러지 않고는 진정시킬수 없어요.》 학실이가 장정들에게 떡을 한접시씩 돌려주며 이렇게 말하니 남정들은 그럴상싶다고 껄껄 웃었다. 이 집 식모가 모랭이에 떡을 한덩어리 담아가지고 나와서 헛간쪽으로 쫓겨간 아이를 불렀다. 담장에서 떨어져내릴 때 한 절반 넋이 빠진 아이는 떡을 먹으라고 아무리 손짓해불러도 뒤걸음만 친다. 담장우에는 또다시 아이들의 머리가 하나 둘 솟아올랐다. 식모는 그 애들에게 떡을 한쪼박씩 뜯어주었다. 제 동무들이 별일없이 떡을 받아먹는것을 보고야 담장에서 떨어진놈도 비실비실 다가왔다. 때마침 한옆에 서계시는 김일성동지를 띠여본 식모는 그이께도 떡을 한쪽 뚝 떼서 내밀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자신이 떡치는 마을청년들축에도 못든다는것을 느끼시고 속으로 새삼스럽게 기가 막히시였다. 다같이 뜯기고 천대받는 사람들속에서도 사람의 층하가 이렇게 심할수 있는가. 더러운 계급사회의 음침한 그늘이 사람들의 정신을 이렇게 병들게 하고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이처럼 서글픈 생각을 하시면서도 겉으로는 흔연히 맨손에 얹어주는 그 떡을 받아드시였다. 친영행차가 들이닿은것은 점심참이 훨씬 지난 때였다. 그때쯤에는 원근의 손님들이 다 모여들고 과방에서도 손님들을 겪을 차비를 다 해놓은 뒤였다. 년중 해가 짧은 때라 모든 일을 서둘렀다. 면사포를 쓴우에 외투를 입고 마차에서 내린 신부를 안방에 데려가서 외투만 벗기고 큰상앞에 내세웠다. 시어머니는 새색시가 숨넘어가겠다고 소리쳤으나 초불을 켜고 성례를 올리겠느냐고 안윤재가 내우겨서 부랴부랴 상객들도 대청으로 나왔다. 대체 초례는 색시집에서 다 올리고 오는길이라 여기서는 신부가 시부모에게 절하고 지참품과 례물들을 동네사람들에게 구경시키는것이 례식의 기본이며 나머지는 부조값으로 신부가 손님들에게 술 한잔씩을 권하는것인데 고장마다 풍습이 달라서 신랑측은 여기서도 초례를 다 올리기를 요구하였다. 그러다나니 결국 손님들에게 술상이 차례진것은 해가 설핏해진 때였다. 부엌에서 연신 지져내고 볶고 과방에서는 뻔질나게 상들을 차려내는데 안채, 사랑채, 길건너 오별장네 집의 각 방에 나누어앉고도 모자라 멍석을 깔고 마당에 둘러앉은 손님들까지 있어서 저마다 찾고 부르는바람에 미처 정신을 수습할길이 없다. 처음에 작정된 일군들만 가지고는 손님들을 도저히 겪을수가 없게 되였다. 대청이나 마당에 앉은 손님들은 대체로 지체가 없는 원근의 농사군들이라 자연 대접에서도 몇등급 떨어지는것이 그나마 날이 저무는바람에 더 소홀해져서 저마다 볼이 부어가지고 혀꼬부라진 노래소리, 새장고소리가 울려나오는 안방과 사랑방을 흘겨보는가 하면 연방 그쪽으로만 상을 날라들이는 아낙네, 머슴군들에게 드러내놓고 욕을 퍼붓는다. 어떤 젊은 패는 지나가는 식모를 잡아세우고 걸찍한 롱담을 걸며 수북이 담긴 육전을 한 절반 허물어내리기도 한다. 늙은이들은 부자집잔치란 의례 그런 법이라고 중얼거리며 상이 차례지면 책상다리를 하고 앉은채 술을 기울이고 떡이며 과일, 적따위들은 목기채 수건에 쏟아부어 지푸라기로 동여들고 볼일다봤다는듯이 수염을 내리씻고 일어나는것이였다. 밤이 되자 대청을 비롯하여 사랑채 대문간 할것없이 휘황하게 청사초롱을 켜달고 그 불빛아래서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춤판을 벌려놓았다. 노새 젊어서 놀아 늙고 병들면 못노나니 화무십일홍이요 달도 차며는 기우나니… 누군가가 석쉼한 목소리로 제법 구성지게 꺾어넘기는 노래가락소리가 음침한 뒤울안에까지 울려왔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사랑채의 함실아궁에 불을 때시다가 손을 터시고 으슥한 담장그늘을 따라 대문간으로 나오시였다. 어디선가 장철하를 만나보셨으면 하는 생각이시였으나 뒤설레이며 돌아가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맞춤한 기회가 생기지 않는데다 이제는 날까지 저물고보니 마주쳐봤대야 시원한 반응을 보실것 같지 못하였다. 차라리 래일아침에 다시 기회를 보리라 생각하시고 오별장네 집으로 돌아가시는길이였다. 굴뚝옆을 돌아서시는데 개자리우에 웬 사람이 조그마한 우등불을 피워놓고 산적꼬챙이를 슬슬 굴리며 안마당쪽에서 울려오는 노래소리를 따라부르고있다. 왜 왔던고 왜 왔던고 울고 갈 길을 왜 왔던고 텁텁한 목소리로 한대목을 불러놓고는 제절로 흥 하고 코웃음을 친다. 벌써 한잔 얼근했는데 어깨를 부르르 떨며 김치보시기같은 술잔에 또 술을 기울인다. 신부행차를 따라온 후행의 마부였다. 신부측 사람들을 위해서 뒤집에 방한칸을 따로 냈다는데 어떻게 되여 그축에도 못끼이고 이런데 혼자 우등불을 피우고 앉아 술병을 기울이고있는지 모를일이다. 《이놈아, 왜 그렇게 으르릉거려? 되지 못한놈, 왜놈들은 만주천지를 다 먹었다는데 난 네놈의 자리에 잠간 앉았다 갈수도 없단말이냐?》 누구보고 하는 말인지 사람은 보이지 않는데 어지간히 정색한 투였다. 자세히 살펴보시니 굴뚝뒤에 이 집 삽살개가 허연 이를 드러내고 독을 쓰고있다. 따뜻한 아궁에 기여들었다가 털이 한 절반 타버린 재빛개는 겨우 강아지꼴을 면한 중개로서 아직 사람에게 접어들만 한 용기도 체력도 못가진놈이였으나 부엌과 함실마다에 불이 이글거리고 사람출입이 분주한데다 연신 피워올리는 기름내가 코를 쑤시지만 누구도 고기 한점 집어줄 생각을 안할뿐아니라 오히려 맞다들기만 하면 걷어채이는판이였다. 이래저래 심기가 좋지 못해서 자기의 합법적인 처소인 굴뚝밑을 찾아왔는데 여기까지 다른자가 차지하고있으니 이를 드러내고 으를만도 하였다. 삽살개는 개자리에 앉은 마부의 말을 전혀 납득할수 없다는듯이 멍멍 짖었다. 《허허, 하긴 네놈도 속상한 일이 왜 없겠니. 옜다. 여기 와서 요기나 하고 속을 풀어라. 이놈의 세상은 워낙 그렇게 돼먹어서 으르릉거려봐야 소용없단말야.》 마부는 목기우에서 부실부실 밀가루부침이 떨어져나가는 생선전 한토막을 집어던져주며 중얼중얼 말을 이었다. 《그렇지. 네놈도 별수 없구나. 방금 으르릉거리더니 먹을것을 집어주니 당장 꼬리를 치는걸 보니 개는 개로군. 너나 나나 피장파장이지… 뭐 잘난놈들만 살겠니. 우리같은 개자리인생도 살아야겠으니 마음에도 없는 꼬리를 치고 고기점 한점이라도 얻어먹어야지, 자, 이것도 먹어라.》 마부는 목기우에 부스러진것들을 한옆으로 걷어모아놓고 고기점 한점을 던져주었다. 어전 한개를 닁큼 삼킨 개는 방금까지 품고있던 적대감정을 싹 가셔버리고 꼬리를 부지런히 내저으며 적선을 바라듯 마부를 빤히 올려다보다가 저만치 던져진 고기점을 향하여 곤두박히듯 달려갔다. 개야 개야, 얼럭꿍덜럭꿍 수캐야 마부는 넙적다리옆에 끼고있던 술병을 보시기에 기울여 쭉 따더니 개를 손짓해부르며 거나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보매 아직 20이 되나마나한 젊은인데 놀아나는 품이 벌써 인생의 내림받이에 들어선 사람같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웬일인지 마부에게 말을 붙여보고싶으시였으나 신부집에서 온 우시군가운데 독립군퇴물로서 관청출입을 하는 사람도 있고 지어 정복경관도 있는것만큼 서뿔리 말을 붙이는것이 저어되시여 그냥 지나치려 하시였다. 그런데 마부쪽에서 그이를 불러세웠다. 《여보, 부강촌인심이 왜 이 모양이요?》 《부강촌인심이 어쨌다는거요?》 김일성동지께서는 이미 몸에 배인 머슴세계의 말투로 응수하시였다. 《잔치에 손님을 청해놓고 앉을 자리 하나 안내주는 법이 어데 있소?》 김일성동지께서는 방금 개에게 건네는 그의 말을 들으신 뒤끝이라 은근한 동정심을 느끼시였으나 겉으로는 범상하게 대척하시였다. 《자리타발할것 없이 좋은 자리 찾아가구려. 뒤집에 신부댁 사람들의 자리를 따로 내놨소.》 《흥, 나같은놈에겐 그런 자리가 다 소용없단말요. 마차를 여기두고 갔다가 동네아이놈들이 장난이라도 쳐놓으면 졸경을 치겠으니 파수를 서야 할게 아니요. 참 팔자도 더럽지. 송강장마당의 당책보는 령감은 워낙 청룡이란 내 이름이 잘못돼서 팔자가 기박하다는거요.》 젊은 마부는 늙은이같은 어조로 말하며 술을 죽 들이키더니 그이앞으로 보시기를 내밀었다. 《나는 술을 못하오.》 하고 김일성동지께서는 사양하시며 삽살개의 등을 한번 쓰다듬어주시고 마부옆에 앉으시였다. 《술을 못하다니? 그렇거고 이놈의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겠소? 맑은 정신으로는 살아가기 어려운 세상이요.》 《그래도 속에서 받지 않는걸 어떻게 하오. 그래 이름이 청룡이요?》 《청룡이요, 문청룡이, 성은 문가고 이름은 청룡이요.》 《내 이름은 증손이요. 그런데 청룡이라면 이름이 괜찮은데 왜 그러오?》 《듣기야 그럴듯 하지, 허지만 당책쟁이 령감은 영 글러먹었다는거요. 내가 나기를 3월달에 났는데 청룡이라는것은 한창 장마철에 태여나야 비를 타고 승천을 한다는거요. 그런걸 지내 빨리 기여나왔거던. 3월달이면 어떻게 되오. 한창 가물철이 아니요. 그러니 개천바닥에서 초들초들 마를밖에 없다는거지. 넨장, 그렇다면 느지감치 낳든가 3월달에 낳았으면 이름을 달리 달든가 할것이지 우리 어머니도 참 답답하단말이요.》 얼근하게 술기운이 번진 청룡은 신세타령을 벌려놓았다. 《그러니까 저따위 개새끼까지 사람을 괄세하지 않소.》 《괄세야 뭘.》 하고 김일성동지께서는 이제는 먹을것이 없으니 다시 자기 자리를 타고앉은데 대한 노염이 되살아나서 으릉으릉하는 삽살개의 등을 쓸어주시며 청룡을 달래시였다. 《이놈도 오늘 여기저기서 수태 걷어채웠소. 그런데 제자리에 사람이 앉았으니 심기가 좋지 않을수밖에 없지 않소. 가만 여기 좀 앉아있소. 내 뭘 좀 얻어올테니…》 김일성동지께서는 뒤울안으로 해서 부엌으로 가시였다. 안도에서 온 손님가운데 상을 못받은 사람이 있다는 그이의 말씀을 듣자 학실이가 냉큼 륙모소반에다 술 한상을 차려주었다. 그이께서 상을 들고 개자리로 돌아오시니 청룡은 또다시 개를 대상으로 길다란 설화를 벌려놓고있었다. 《내가 지금 이 경우없는놈에게 버릇을 가르치는중이요.》 하고 청룡은 반색을 지으며 그이께 자리를 내여드리고 말을 계속하였다. 《이제 보니 부강촌인심이 그리 각박한것도 아니군. 증손이가 술은 못한다지만 속은 틔였소. 그런데 내가 왜 자리를 잘못 잡았다고 하는가? 그건 참 기가 막힌 이야기요. 어떤 사람은 재수가 너무 좋아서 밭고랑에 넘어졌다가도 화김에 땅을 걷어차니 감자가 한말씩 쏟아져나왔다는 이야기도 있고 물에 빠져 허우적이다가 풀뿌리를 움켜잡고보니 왁새다리였다는 말도 있는데 나는 어떻게 된 문선지 날 때부터 자리를 잘못잡아 다리밑에서 낳았다는거요. 왜 다리밑에서 낳았는가 알아보니 우리 아버지가 부치던 땅이 하필이면 신작로낼 자리에 있었기때문에 땅을 떼우고 그다음 강가의 자갈밭을 일구었는데 그게 또 왜놈이 불하받은 땅이라지 않소. 아버지는 피땀들여 일군 땅을 내놓으라는바람에 너무 원통해서 대들었다가 그 왜놈에게 실컷 얻어맞고 그것도 모자라 경찰에 잡혀들어가서 죽도록 매를 맞았다질 않소. 그렇게 얻어맞고와서는 화가 난김에 실컷 술을 퍼마시고 그대로 숨을 거두었다오. 참 허무한 팔자가 아니요. 우리 어머니는 혼자 살길을 찾아 떠돌아다니다가 나를 다리밑에서 낳았다는거요. 그런데 나한테까지 그놈의 자리귀신이 묻어다닌단말이요. 길가다가 다리쉼을 하면 돌개바람이 휩쓸지 않나, 나무지게를 지고 골목길로 들어가면 현장의 행차가 마주오지를 않나, 지난 가을에는 송강장마당에 나갔는데 어떤 공산당이 삐라를 한줌 쥐여뿌리고 달아났단말이요. 나도 얼결에 삐라 한장을 주어서 괴춤에 찌르자 하는데 하필이면 국수집옆골목으로 기마경찰이 우루루 쓸어나와서 꼼짝 못하고 붙잡혔지요. 류치장에 끌려가서 하루종일 매를 맞고나서야 우리 주인이 현경찰의 과장이라는것을 알고 내주더란말이요.》 《주인이 경찰에 다니오?》 김일성동지께서는 청룡이가 마차때문에 자리를 뜨지 못하는 까닭을 비로소 짐작하고 긴장해서 물으시였다. 겉보기는 서글서글하고 수더분한게 누가 보아도 정이 가는 유쾌한 청년인데 무서운 불행을 당하고도 그 진정한 원인을 모르고 허황한 자리타령만 하고있으니 한편으로 분한 생각을 금하실길이 없었다. 그의 손을 잡고 청룡이의 아버지가 그렇게 억울한 죽음을 당한것도 청룡이가 까닭없이 매를 맞은것도 다 자리를 잘못잡아서 그렇게 된것이 아니라 왜놈들과 그 앞잡이들의 침략과 략탈때문이며 그런 불행을 다시 겪지 않기 위해서는 자리를 잘 잡자고 애쓸것이 아니라 손에 무장을 들고 원쑤들을 직접 때려눕혀야 한다고 저저히 타이르고싶으시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말을 할 형편이 못된다는것을 의식하실수록 가슴이 답답하시였다. 《우리 주인?》 하고 청룡은 또다시 술 한잔을 들이키더니 한숨과 함께 단김을 내뿜었다. 《경찰에 다니지. 나는 본시 왕청농막골에 있는 지금 주인의 형집에서 어머니와 함께 머슴을 살다가 저 량반이 안도경찰로 오는 바람에 나는 마부로 따라왔지. 하는 말을 들으니까 요즘은 도적놈은 하나도 안잡고 공산당잡이만 한다는군. 내동무 만춘이가 그러는데 공산당이 우리 주인을 노린다거던. 난 또 머슴자리를 잘못 잡아서 곁불에 얻어맞을지 모르겠소. 그래 어머니 있는데로 내뛸가 하는 생각도 가끔 하지만 어른들 말을 들어보면 팔자도망은 못한다거던.》 청룡은 삽살개의 대가리를 어루만지며 그 코끝에 대고 한숨을 후-내쉬였다. 돼지발쪽 한토막을 널고있던 삽살개는 술냄새가 역했던지 코를 끙끙거리며 뼈다귀를 물고 저쪽으로 피해가려 한다. 《이놈아, 너야 자리를 잘 잡았는데 피해갈게 있니.》 청룡은 개뒤다리를 잡아당겨 제옆에 눌러앉혔다. 짐승은 푸짐한 먹이를 대접받은터이라 그렇게 끌고 잡아당겨도 별로 성을 내지 않고 두어번 낑낑거리더니 잡아준 자리에 곰상스레 좌정하고 열심히 뼈다귀를 널었다. 청룡의 주인이라는 현경찰의 장상민이는 김일성동지께서도 어느 정도는 파악이 계시는 인물이였다. 바로 안영호의 처이모부되는 사람으로서 송강에서 구동북경찰을 특무선을 통해 일제의 리용물로 만들려는 주동인물로 주목되는자였다. 그런것만큼 송강의 조직들에서 처단해버리겠다는 의견이 제기된적도 한두번이 아니였다. 청룡이가 그런자의 마차를 끌고다니면서 자기의 불행을 타고난 팔자로 감수하듯이 그놈의 무수한 반역행위 역시 응당한것으로 치부하고있는것을 보실 때 김일성동지께서는 의분을 누르실길이 없었다. 《그래 청룡이는 장상민이가 동남촌에 나가서 아이들 야학을 짓뭉개고 야학생 아이들을 개화장으로 두들겨패는것을 보았소?》 《보았지. 참 소문도 빠르군. 그건 며칠전 이야긴데 벌써 여기까지 소문이 퍼졌군.》 청룡은 주기가 내번져 어느덧 게슴츠레해진 눈을 들고 김일성동지를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사실 그것은 바로 엊그제 오정혁이 차광수에게서 받아가지고 온 보고내용에 반영된것이였다. 《그래 그걸 보고 생각되는게 없었소?》 《생각되는게 왜 없어? 까막눈이농사군의 자식들이 공부를 해보겠다고 콩기름등잔밑에 새새끼들처럼 오구구 모여앉았는데 그걸 내리패다니… 그런데 우리 주인 말을 들어보니 그게 몽땅 공산당공부를 하는게라거던.》 《공산당공부를 하면 나쁘오?》 《나쁘지 않구.》 《왜 나쁘오?》 《왜 나쁘다니? 그야 공산당이니까 나쁘지. 허 참, 증손이는 여태 공산당이 나쁘다는 말을 못들었어?》 《그럼 공산당이 좋다는 이야기는 한번도 못들었소?》 《그런 소리도 더러 들었지. 허지만 그건 만춘이같은 나나 비슷한 무식쟁이가 하는 말이요.》 청룡이에게는 모든 생각이 거꾸로 서있다. 거짓은 참으로 믿고 참은 거짓으로 치부한다. 어떻게 하면 거꾸로 선 그의 사고방식을 뒤집어놓을것인가. 그러나 그와 이야기를 나눌 자유도, 시간도 없다는것을 느끼신 김일성동지께서는 마치 물에 빠진 사람을 보고도 손발이 얽매여 꼼짝 못하는것 같은 안타까움을 느끼시였다. 대청쪽에서 사람들이 들레는 소리가 났다. 손님들이 돌아가는 모양이다. 그러거나말거나 청룡은 모닥불에 삭정이를 꺾어놓으며 말을 이었다. 《그놈의 당책쟁이가 재수없는 말만 하더니 그래도 마감에는 괜찮은 자리를 하나 잡게 된다는데 그게 어느때쯤 되겠는지 통 짐작이 안가거던.》 《여보, 그 자리타령 그만하오. 젊은 사람이 벌써부터 그런 시시한 소리나 하고 어떻게 하겠소.》 김일성동지께서는 부지불식간에 분기어린 목소리를 터쳐놓으시였다. 《아니 뭐?》 청룡은 놀라서 되묻더니 다음순간 어처구니없는지 껄껄 선웃음을 터쳤다. 《증손이, 왜 그래? 그럼 당책쟁이가 거짓말을 한단말인가?》 《당책쟁이가 그렇게 사주팔자를 잘 알고 점을 잘 친다면 제 신수나 고칠게지 뭣때문에 장마당 네거리에서 궁상을 떨고 앉았겠나? 나도 그 당책쟁이를 봤어. 서문밖의 물산객주집 안주인이 신수점을 쳤더니 올해는 가세가 불이 일듯이 성해질거라고 해서 그 집 식구들이 눈이 가매서 기다리는데 웬걸 도적놈이 들어 손님짐을 채여가질 않나, 다 키운 자식이 서문강에 빠져죽을번하질 않나, 주인이 장질부사에 걸리질 않나 연방 액운이 덮쳐드니 안주인이 다시 그 당책쟁이령감을 불러 따졌지. 그러니까 령감대답이 그게 다 액땜이라는거야. 사실은 큰 강도떼가 들어 가산을 통채로 잃을번한걸 손님의 짐 한짝으로 땠고 또 아들이 물에 빠져 죽을번한것도 실은 총알 맞아 죽게 된 신수를 그렇게 해서 굼때넘긴거라고… 뻔뻔스럽게 우기니 한창 열을 내며 앓던 주인이 너무 화가 나서 <이 협잡군같은놈!> 하고 재떨이를 집어던졌지.》 이때 마당에서 《얘 청룡아, 이놈이 또 어디를 갔어.》 하고 찾는 목소리가 울려왔다. 《예, 청룡이 여기 있습니다.》 청룡은 김일성동지의 이야기에 귀가 솔깃해서 다음말을 기다리면서도 마당을 향해서는 정중성이 과장된 목소리를 길게 뽑아올렸다. 《아니, 우시군이 하루밤도 자지 않고 가다니 이런 법이라고 있소? 이건 사돈이 우리 집을 우습게 보고 하는 처사가 아니요?》 이렇게 까박을 붙이는 안윤재의 혀꼬부라진 목소리도 들려왔다. 《원 사돈님도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내 루루히 말씀드렸지만 래일아침에는 서장을 꼭 만나야 한다니까요. 이것보시오, 사돈님 지금 공산당이…》 하고 장상민이는 안윤재의 귀전에 바투 입을 갖다대고 뭔가 수군수군한다. 《어서 말하라구. 그래 주인이 당책쟁이를 답새겼는데 어떻게 됐다는거야?》 청룡은 마당에서 웅성거리는 사람소리는 못들은것처럼 뒤를 재촉하였다. 《어서 가보라구. 주인이 기다리는데 또 말듣지 않겠나.》 《그까짓 말들으면 뭐라나, 욕을 먹고 매를 맞게 태여났는걸… 내가 빨리 가면 안때릴것 같애? 그러나저러나 그 당책쟁이가 어떻게 됐다는거야?》 청룡은 무슨 까닭인지 이야기의 뒤를 집요할만큼 캐고들었다. 《허 이런 친구 봤나.》 김일성동지께서는 청룡이 역시 그 당책쟁이의 말을 믿지 않는지 오래다는것을 느끼시며 짧게 말씀하시였다. 《뭐 따로 있을게 있나. 실컷 얻어맞고 사실대로 다 불어놓았지.》 《어떻게?》 《자기는 하나도 아는게 없다고… 그저 책에 씌여있는걸 가지고 답답한 사람들이 듣기 좋도록 맞춤하게 살을 붙여서 섬긴것밖에 없다고… 그러자 객주집주인은 이담에 서울 가면 그 책을 찍어낸데를 찾아가서 해보겠다고 을렀다더군.》 《책에도 거짓말이 있을가?》 청룡은 슬그머니 허리를 일으키며 별안간 구슬픈 목소리로 물었다. 점쟁이도 책도 다 거짓말을 한다면 청룡이같은 천둥벌거숭이에게는 실로 하늘땅이 거꾸로 뒤집힌것만치나 놀라운 사실일것이다. 《아니 이놈이 아직 안나타난단말이야? 청룡이 네 이놈! 어데 있느냐?》 마당에서 장상민이의 벼락치듯 하는 목소리가 울렸다. 《어서 가보오. 책도 사람이나 같이 좋은 책과 나쁜 책이 있다는거요. 정 가슴 답답한 일이 있으면 송강장거리 마철전에 가보오. 거기 눈딱부리 메질군이 있는데 그 사람한테 소사하에 있는 안경쟁이를 만나러 왔다면 좋은 사람을 소개해줄거요.》 《그건 누구요?》 《만나보면 알게 되오. 저것 보오. 주인이 정말 성이 난것 같소.》 《그까짓 성이 나겠으면 나라지. 소사하의 안경쟁이라. 내 그 마철전의 딱부리는 좀 아는데… 알겠소. 내 증손이를 잊지 않겠소.》 청룡은 밤눈에도 알리게 씩하고 웃음을 짓더니 그다음은 몹시 황송한 자세로 달려나갔다. 《너 이놈, 어데 갔댔냐?》 장상민이 청룡이가 나타나자 다짜고짜 멱살을 움켜잡고 악을 썼다. 《좀 급한 일이 생겨서…》 청룡은 처져붙으며 일부러 어물어물한다. 《뭐 급한 일? 네따위놈에게 무슨 급한 일이 있단말이냐?》 《그래도 급한데야 어떻게 하겠나요. 잔치집에 오다나니 배속에서 온갖 벌레가 다 요동치는바람에…》 《뭐 어째?》 《이사람 동생》 하고 뒤전에 서있던 장철하가 점잖게 한마디 했다. 《봐하니 좀 과식을 한것 같은데 그만하게.》 그제야 장상민이도 더 할 말이 없어져서 《에끼 더러운놈!》 하고 청룡이를 마차께로 밀어팽개쳤다. 김일성동지께서도 청룡이가 말의 멍에를 씌우는것을 거들어주려고 마차로 다가가시였다. 안윤재와 신랑 안영호를 비롯하여 장상민이를 배웅하러 나왔거나 그와 함께 돌아가게 된 손님들 틈에 섞여나오던 장철하가 김일성동지를 알아보고 주춤 걸음을 멈추었다. 그 순간 김일성동지의 눈길도 장철하에게 정면으로 겨누어졌다. 장철하는 서느러운 빛이 자기 정수리를 곧바로 찌르고드는듯 한 느낌을 받으며 한순간에 머리가 어찔해졌다. 그저께 부강촌에 도착하던 날 저녁 진실을 확인하려고 문고리에 손을 댔다가 종시 외면하고만 그 진실에 정면으로 맞부딪친것이다. 그건 틀림없는 김성주였다. 그렇다면 그는 세상 험한 고초를 다 겪으며 안윤재가 그렇게도 공포를 가지고 말하던 그 《소연한 현실》을 빚어내고있는것이다. 장철하는 정의부 중앙호위대장으로 길림에 있을 때 이름난 공산주의자들과 거의 빠짐없이 면식이 있었다. 자기 집 바로 뒤채에 서상파의 거두 신일룡이와 서중석이가 살았고 화요파의 김찬이나 조청산이와도 잘 아는 사이였다. 길림에서는 조국광복운동의 령도권을 두고 그들 공산주의자들과 아침저녁으로 싸움을 벌려왔으니 편견도 없지 않았겠지만 지금 생각해보아도 그들 행세식공산주의자들속에 인간다운 인간은 별로 본 기억이 없거니와 그들가운데 그 누구도 입만 벌리면 웨치는 혁명을 위하여 헌신한다는 인상을 받은적이 없었다. 김성주는 전혀 그들과는 다른 부류의 공산주의자다. 그가 무엇때문에 머슴살이까지 하면서 온갖 욕과 고생을 사서 겪는가. 그것을 생각하는 순간 장철하는 고개를 떨구었다. 《장선생님, 어데 편치 않습니까?》 전날처럼 안영호가 근심스럽게 물으며 한팔을 부축하였다. 《아닐세, 약주가 좀 과했나보이.》 장철하는 자기가 혹 김성주의 정체를 드러내게 되지나 않을가 싶어 섬찍한것을 느끼며 외면하였다. 장상민의 마차는 떠날 차비를 다 끝내였다. 눈깜짝할사이라고도 볼수 있는 짧은 순간에 무서운 정신적번민을 겪은 장철하는 저도 모르는사이 끙끙 신음소리를 지르며 장상민일행을 겨우 바래우고 신랑부자와 함께 몸채로 돌아오다가 마당한복판에서 문득 멎어섰다. 《아니야, 나도 떠나야겠군.》 장철하의 중얼거림에 놀란것은 안윤재였다. 《아니 장형이 정말 취하지 않았소? 가다니 어딜 간단말이요? 이 밤중에...》 《아무래도 나는 떠나야겠소.》 장철하는 고개를 설레설레 내젓더니 안윤재에게 잡힌 소매를 뿌리치고 자기 짐과 옷가지가 있는 사랑방으로 걸어갔다. 신랑 안영호가 말 한마디 없이 그의 거동을 지켜보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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