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서《불멸의 력사》

  장편소설

 

                         석윤기

(제18회)

제 2 편

 

7

 

어느날 김일성동지께서는 어둑어둑한 이른새벽에 지게를 지고 오정혁이와 함께 문전을 나서시였다.

정혁은 안윤재의 부탁으로 영호잔치에 부를 손님들의 청첩을 가지고 명월구로 나가게 되였는데 마침 련락소에 보낼 급한 지시들이 있어서 겸사겸사 말발구를 메워타고 떠난 길이였다.

아직 어둠이 활짝 가시지 않은데다 날씨까지 찌뿌둥하게 흐려서 동네를 다 벗어나도록 골목길에 사람 그림자 하나 얼씬 안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충실한 머슴답게 오정혁의 무릎에 덮인 담요랑 바로잡아주시며 낮게 말씀하시였다.

《돈화까지 돌아오자면 시간이 걸리겠는데 수상하게 보일것 같지 않소?

《일없습니다. 명월구에서 돈화까지는 기차를 타고 갔다가 명월구로 다시 와서 발구를 타고오지요. 나한테 교하까지 다녀오라고 야단입니다. 이것 보십시오.

하고 정혁은 털외투 안주머니에서 새하얀 각봉투 한뭉테기를 내보이며 말했다.

《간밤에 그걸 영호 오누이가 쓰다가 손이 모자라 우리 정란이까지 불러갔습니다. 이중에 우편으로 부칠것 내놓고 내가 직접 전달하고 말로 또 부탁하라는것만 해도 50장이 넘습니다.

《그럼 잘됐소. 이번에 아예 명월구로 해서 송강까지 한바퀴 돌고 오시오.

김일성동지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며 사위를 살펴보시였다.

동네는 이미 벗어난데다가 설사 길우에서 누구 눈에 띄였다 하더라도 먼길 떠나는 주인과 머슴이 말마디나 주고받았다고 해서 의심스럽게 볼 사람은 없을것이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괴춤에 깊숙이 건사하셨던 문건을 정혁의 무릎밑에 찔러주시며 말씀하시였다.

《이건 차광수동무편으로 온 연길동무들의 보곤데 지금 당장 폭동을 일으키겠다는거요. 들어보면 그 지방자체로서는 타당성이 있지만 전반적정세를 보면 시기상조이고 준비가 부족하오. 그러니 아직은 군중속에 깊이 들어가 조직을 꾸리면서 핵심을 키우고 무기탈취투쟁을 적극적으로 내밀도록 방향을 주어야겠소. 지난 추수투쟁때와 같이 전반전인 지역에서 한꺼번에 들고일어나야 하며 또 이번에는 그달음으로 무장투쟁에로 넘어가야 한다는것을 똑똑히 인식시켜야겠소. 지금 올라오는 보고를 보면 연길뿐아니라 왕청, 화룡, 훈춘 어디나 농민들의 생활이 절박하오. 여기 부강촌형편만 봐도 설대목에 벌써 절량된 농가가 얼마요? 그러니 앉아서 굶어죽느니 일어나 싸우자는 목소리가 터져나오는건데 이것을 큰 범위에서, 전반적지역에서 조직화해야만 승리할수 있고 그것을 통해서 투쟁형태를 한계단 높은 단계로, 말하자면 무장투쟁으로 발전시킬수 있다는것을 잘 인식시켜야겠소》

오정혁은 무릎밑에서 통신쪽지를 꺼내여 결혼청첩사이에 끼워놓고 안주머니에 깊숙이 건사하며 그이의 다음말씀을 기다렸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다른쪽 옆차기에서 비교적 부피가 있는 문건을 역시 정혁의 무릎밑에 밀어넣어주시며 말씀하시였다.

《이건 돌아오는 길에 송강대장간에 들려서 차광수동무에게 직접 전달하시오. 그러니까 명월구에서 돈화까지 기차로 가지 말고 수고스럽더라도 그냥 발구로 갔다가 그길로 송강으로 나와야 할것 같소.

무장성원으로 새로 받겠다는 안도청년들 문젠데 그 동무들은 우리가 다 잘 알고 파악이 있는 동무들이니 그대로 하라고 하시오. 문제는 훈련계획이요. 지금은 당장 전투를 앞두고있다고 볼수 있는것만큼 실전에 써먹을수 있는 훈련에 기본을 두어야겠는데 박훈동무랑 만들다나니 그런지 일반론에 치우치고 제식이나 대렬동작이 너무 많소. 사격과 분대, 소대 단위의 전투훈련에 기본을 두라고 하시오. 그대신 정치학습에 힘을 넣으라고 단단히 못을 박아야겠소. 내가 제강에 손을 좀 댔는데 그것도 참작하면서 실정에 맞게 시간배당을 하라고 하시오. 그밖의것들은 통신에 다 썼으니 그대로 하면 될거요.

김일성동지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시면서도 무언가 미진하신듯 고개를 숙이시고 묵묵히 걸으시였다. 오정혁은 그이의 다음말씀을 기다리며 고삐로 말을 어루다가 물었다.

《저 전번날 차광수동무가 말하기는 돈화의 정세가 아주 나쁘다고 련락소개편문제때문에 상당히 걱정하던데 그 문제도 다 지시에 있습니까?

《그건 없소. 그래서 나도 생각인데…》

하고 김일성동지께서는 잠시 더 생각하시다가 말씀을 이으시였다.

《장춘과 공주령에서 체포사건이 있었으니 로출될 가능성이 있는데는 개편할 필요가 제기되는것이 사실인데 갑자기 적당한 대상이 없소. 돈화의 련락소를 개편한다는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요. 하여간 이건 여기서는 지금 당장 어쩔수 없으니 차광수동무에게 좋은 안이 있으면 성숙시켜보라고 하시오. 그리고 더 중요한것은 차광수동무가 빨리 안도에서 제기되는 문제를 해결하고 시간을 내여 각 조직들을 순시하는거요. 무장성원들의 훈련은 당분간 박훈동무와 계영춘동무에게 맡겨놓고 각 조직을 돌면서 편향을 바로잡아나가야겠소. 농민들의 투쟁기세가 높다고 해서 아무 준비없이 지나치게 급진적으로 나가는 경향도 그렇고 사람타발, 무기타발만 하면서 아직도 권총을 찬 간부 몇사람이 유격대라고 빙빙 돌아다니는 경향도 있소. 다가오는 봄에 일제히 총을 들고 일어나도록 만단의 준비를 갖추도록 해야겠소.

김일성동지께서는 말씀을 끊으시고 한참 걸으시다가 오정혁의 무릎을 다둑거리시며 사사로운 부탁을 하시듯 말씀을 이으시였다.

《또 한가지… 전날 놈들의 정치범석방음모에 대해 대책을 세우지 않았소? 이번에 명월구에 나가서도 알아보고 돈화에 나가서도 구체적으로 알아보시오. 우리가 장악하고 구출한 사람들외에 또 제기된 문제가 없는지…녕안현당비서 김책동무가 어떻게 됐다는것은 아직 아무데서도 보고가 없소. 정혁동무가 나가서 알아보고 차광수동무한테도 그 이야기를 하오. 김책동무가 룡정쪽으로 나갔다니 차광수동무가 그쪽으로 가게 되면 꼭 알아보라고 하시오. 그쯤 준비된 동무 한사람을 얻는다는것은 장차 련대나 사단을 얻는것과 맞먹는 힘을 얻는것이지만 그대신 명목없이 희생시키면 큰 손실이란말이요.

《의도를 알만합니다. 내 경우를 봐도 유능한 조직자 한사람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것을 충분히 알수 있습니다.

오정혁은 얼굴을 붉히며 솔직하게 말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빙그레 웃으시며 그의 무릎을 다둑거리시였다.

《그렇게 직선적으로 말할것도 없고…그런데 과업이 너무 많고 복잡한데…시간이 지내 걸리면 안윤재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가?

김일성동지께서 미타해서 말씀하시니 오정혁은 자신있게 대답하였다.

《그 령감이 이상하게 생각할게 있습니까? 자기 부탁을 받고 가는 길인데…다만 내가 돌아올 때까지 조심하십시오. 정 급한 일이 생기면 송남칠이는 믿을수 있습니다. 그러니…》

《됐소, 됐소. 나야 동네에 가만있는데 무슨 일이 있겠소. 어서 떠나보오.

김일성동지께서는 오정혁의 말을 밀막아버리시고 지게작시미로 발구채를 툭 치시였다. 통통하게 살이 찐 공골말은 인차 내뛸 차비를 하였다. 그런걸 오정혁이가 고삐를 잡아채서 도로 멈추어세우고 앞을 응시하였다.

어느새 동구길을 다 벗어나서 보위단의 경비막 가까이에 와있었다.

웬 사람이 고개를 푹 떨구고 걸어오다가 무슨 생각이 났는지 한자리에 멎어서서 경비막쪽을 멍하니 돌아본다.

이쪽은 동네로 꺾어지는 길을 막 돌아온 참이라 잘 보이지 않는 모양이고 경비막쪽은 또 엉성한 강낭밭에 가리워 이쪽에서 잘 보이지 않는다.

《아니 저게 상범이가 아닙니까?

오정혁이 까닭없이 긴장되는것을 느끼며 무의식중에 고삐를 채여 발구를 멈추어세웠다.

《그런것 같소. 간밤에 그 집에 가보니 경비를 서러 갔다던데 아마 교대하고 오는 모양 아니요?

김일성동지께서는 고개를 기웃하시며 말씀하시였다.

《교대를 벌써 했을가요? 그리고 교대했다면 혼자 올리는 없지요. 아니 그런데 저 사람이 되돌아가지 않습니까?

상범은 한자리에 서서 한참 망설이더니 어슬렁어슬렁 경비막쪽으로 되돌아간다.

《무슨 일이 생긴게 아닐가요?

《좌우간 가봅시다.

김일성동지께서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놓으시자 정혁이도 미타한 표정으로 말고삐를 잡아챘다.

뒤따라오는 말발구소리와 김일성동지의 모습을 뵈옵자 상범은 우뚝 멎어서더니 사위를 살폈다. 그리고는 강낭밭속으로 두어발자국 들어가서 오금을 꺾고 앉았다. 놀아나는 품이 점점 수상쩍다.

《상범이, 자네 웬일인가?

오정혁이 발구를 천천히 몰면서 먼저 말을 건넸다.

《명월구에 간다더니 벌써 길을 떠났나? 어서 가보.

상범은 시치미를 따고 전에없이 상냥하게 대답했다. 그리고는 뒤따라오시는 김일성동지를 향하여 손짓을 하였다.

강낭밭속으로 좀 들어오라는것이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오정혁을 잠시 돌아보시다가 아무래도 심상치가 않아서 먼저 떠나라고 눈짓을 하시고 지게를 지신채 강낭밭고랑으로 들어가시였다.

《증손이, 이거 내가 재수가 없어서 그런지 꼭 내가 번을 설 때마다 이상한 일이 생기지 않나.

리상범은 마음이 급해서 미처 앉으시지도 못한 그이의 소매를 자기곁으로 잡아당기며 귀전에 대고 수군거렸다.

《무슨 일이 생겼게? 그러지 않아도 어머니가 걱정을 하시더군. 이런 어수선한 때 총을 차고 밤새 나다니는것이 마음에 놓이지 않는다구.

김일성동지께서는 밭고랑사이에 쓰러진 강낭대를 깔고앉으시며 스스럼없이 말씀하시였다.

《간밤에 또 우리 집에 갔댔나?

《마실방에 갔다가 돌아가는 길에 들려봤지. 상범이가 없어서 인차 나왔어. 그런데 무슨 일이야?

《고맙구만. 그런데 증손이가 전날 지나가는 사람을 마구 잡아들이는것은 아주 나쁜짓이라고 했지?

그건 내 생각에도 그런것같아서 웬간한 사람은 다 빼돌렸는데말이야… 오늘 새벽에 괴상한 녀석이 하나 잡혔단말이야.

김일성동지께서는 긴장되시였다. 상범이가 로상에서 가도오도 못하고 바재이는 까닭이 어렴풋이 짐작되시였다. 강낭그루사이로 앞을 내다보시니 오정혁이도 뭔가 이상한 기미를 채선지 경비막앞에 발구를 세워놓고 누구하군가 이야기를 하고있다.

《저기 지금 누가 있나?

김일성동지께서 경비막쪽을 눈짓하시며 물으시자 상범은 별로 시답잖아하는 투로 《박일보지 누구야, 그자식도 나처럼 신수 궁한놈이거던. 늘 밤경비만 도맡아놓고 서지. 허지만 저자식은 아직 무슨 판인지 모르니까 태평이야.

《상범이는 뭐 태평이 못될게 있나? 이제 교대하고 집에 가서 한잠 늘어지게 잘판이지. 그런데 괴상한 사람이라는건 뭐야? 또 인단장사라도 하나 잡았나?

김일성동지께서는 상범이가 그때 허재률이 놀아나던 모양을 지금도 자주 외우기때문에 아닌보살하고 물어보시였다.

《인단장사면 좋지, 이런 권총을 차고 다니는놈이라니까.

상범은 누런 개털외투 안주머니에서 소형모젤권총을 슬쩍 꺼내보이며 말을 이었다.

《뭐 말은 라자구에 사는데 송강에 있는 아는 집을 찾아간다나? 아는 집이 누구냐고 따지니까 서문밖에 있는 물산객주집이라지. 허 자식, 요즘 부강촌보위단이 허술해졌다는 소문이라도 들은 모양이야. 내가 그 서문밖 물산객주집에 한두번 갔다고 그따위 허튼수작을 해?

리상범은 자기를 우습게 알고 업어넘기자고 한 그 라자구친구가 눈앞에 있기라도 한듯 눈을 부라리며 열을 올렸다.

《내가 속아넘어가는척하고 이렇게 고개를 끄떡끄떡해보이니까 그자식 웃기까지 하더군. 그짬에 다짜고짜 옆차기를 뒤지니까 이런게 나오지 않겠어? 내가 그자식을 척 볼 때 벌써 옆차기가 불룩한게 총을 찼구나 하는것을 알아봤단말이야.

그런데 그자식이 대뜸 나를 업어메치고 깔고타지 않겠나. 뭐 어떻게 날쌘놈인지 마침 박일보가 달려와서 총대로 까눕히지 않았더면 골이 깨질번했다니까…》

상범은 그때 짓찧었던 자리가 아파나는지 뒤통수와 어깨죽지를 슬슬 어루만지며 김일성동지의 눈치를 살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벌써 이야기의 시작부터 일이 몹시 복잡하게 됐다는것을 느끼고계시였다. 잡혔다는 사람은 어디선가 급히 달려온 련락원이 아닐가 하는 느낌이 드시였다. 그런데 상범이가 그런 이야기를 일부러 남몰래 귀띔을 하는 속심도 석연치 않거니와 그에 대해 어떤 립장을 취해야 할지 선뜻 질정하시기가 어려웠다.

어쨌든 아직은 증손이로 처신할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신 그이께서는 전이나 다름없는 어조로 물으시였다.

《상범이가 여간이 아닌데… 총이랑 차고다니는 사람을 그렇게 까눕혔으니 이제 단장령감한테 칭찬 받겠구만.

《그럴것 같애?

상범인 일순 서글픈 표정을 짓더니 침울한 어조로 말했다.

《그 령감한테 칭찬받으면 좋겠지… 사실 나는 그저 어두운 새벽에 시꺼먼것이 빠져나가니 엉겁결에 시키는대로 했는데 이제 소대장한테 보고를 하러 가면서 생각하니 그게 암만해도 공산당같단말이야.

《그럴수 있지. 그래서 어떻게 할 작정인가?

《공산당이라면 죽었지 별수 있나. 공산당이 아니라도 총을 차고 다니는 사람을 살려둘리가 없거던. 오다가 생각하니 전날 증손이가 우리 어머니한테 들려준 이야기가 떠오르더군. 우리 어머니가 증손이는 무엇때문에 세상 아무도 돌보지 않는 다 죽은 로친네를 이렇게 극진히 돌봐주느냐고 하니까 증손이가 말했지, 사람은 서로 도와야 산다고… 지금 세상이 점점 험악해지는데 불쌍하게 사는 조선사람끼리 도와주지 않으면 어떻게 살겠느냐고…》

그것은 사나흘전 일이였다. 리상범은 경비를 서고와서 웃목에서 쓰러져 자고 있었다.

수수대뿌리 달인 물을 한대접 짜서 들고 누워있는 늙은이의 등을 받쳐 일으켜앉히니 약사발을 손에 받아든 늙은이가 눈물이 그렁해서 그런 말을 했었다. 돌아보니 상범은 정신없이 자는것 같길래 늙은이에게 힘을 주기 위해 많은 말씀을 하시였다.

그때 상범은 자는척하고 돌아누워 그 이야기를 다 들은 모양이다.

《그때 증손이는 말했지. 지금 조선사람들이 얼마나 불쌍하냐. 왜놈들에게 쫓겨 만주까지 살길을 찾아왔는데 왜놈들이 또 따라와서 마구 죽이고 부강촌에서는 그것도 모자라서 조선사람까지 달려들어 지나가는 사람을 잡아다가 죽여달라고 경찰이나 우사령부에 섬겨바치니 조선사람이 어떻게 살아가겠느냐고… 나는 그때 속으로 생각했지. 혹시 증손이가 공산당이 아닐가 하고말이야. 그리고 이제 오면서 생각하니 그 라자구친구가 공산당이라면 이건 증손이의 동무겠는데 그럼 내가 사람으로서 이런 놀음을 해서 되겠느냐고말이야… 그러니까 걸음이 잘 걸리지 않아서 차라리 소대장이 제발로 올 때까지 기다려볼가, 정 맞갖지 않으면 박일보와 말을 잘해서 그 사람을 놓아보내면 어떨가?… 그런데 이놈의게 딱 걸린단말이야.

상범은 개털외투 안주머니에서 다시 권총을 꺼내보였다.

《어디 좀 보자구.

김일성동지께서 스스럼없이 손을 내미시니 상범은 불에 달군 돌멩이라도 내던지듯이 얼른 그이의 손바닥우에 권총을 내놓았다.

《박일보도 이 총을 봤나?

김일성동지께서는 만탄창이 된 탄창까지 뽑아보신 다음 다시 안전장치를 하시며 침착하게 물으시였다.

《내가 총을 빼내자마자 격투가 붙어서 돌아갔으니까 어두운데서 제까짓게 뭘 봤을게 뭐야. 그자식을 박일보가 영창에 끌어가는사이 내가 총을 이렇게 건사해버렸거던.

상범은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눈에 알리게 우들우들 떨었다.

여태 마음속의 비밀을 다 고백하면서도 기연가미연가해서 눈치를 힐끔힐끔 살피던 그는 권총을 능숙하게 다루시는 그이를 뵙자 가뜩이나 겁많은 눈이 커다래졌다. 이제는 증손이가 사상객이라는것이 틀림없는데 그렇다면 자기는 어떻게 될것인가 하는 운명적인 문제가 바로 눈앞에 가로놓인것이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일이 이렇게 된이상 다소 이른감이 없지 않지만 이미 상범은 우리 사람으로 점찍어놓은 사람인것만큼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도 그의 진심을 믿고 그와 모든 일을 터놓고 의논할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시였다.

《상범이 나를 그렇게 믿어주니 정말 고맙구만.

김일성동지께서는 추위때문인지 지나친 긴장때문인지 신장대떨듯 하는 상범의 무릎을 따뜻이 쓸어주시며 말씀하시였다.

《지금 일이 급하니 긴 이야기는 후에 하기로 하고 우선 상범이 말대로 그 사람을 어떻게 하든지 놓아보내라구. 그 사람이 나와 상관된 사람인지 아닌지 아직은 모르겠지만 아무튼지 우리 조선사람 아닌가, 그러니 상범이힘으로 그 사람을 놓아주기만 하면 우리 나라를 위해서 큰일을 하는것으로 되지 않겠나?

《그런데 글쎄 저기 박일보가 지키고있다니까. 저것 보라구. 저자식이 정혁이 발구를 세워놓고 무슨 수작을 아직도 하고있구만. 저자식이 먼저 소문을 내놓으면 총이 없다 하더라도 단장이 내놓자고 할리 없지… 그 령감이 요즘 공산당단속을 안한다고, 정 못잡으면 우리라도 잡아묶어서 우사령부에 섬겨바치겠다고 야단이야.

《그러니 그 단장령감이 환장하지 않았나. 사실은 그 령감같은것을 묶어서 달아매야 우리 조선사람들 살길이 열린단말이야.

상범은 놀라서 새삼스럽게 그이의 전에없이 준수해보이는 얼굴을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이제 증손이가 혁명가라는것이 명백해지고보니 말도 함부로 해서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방금 목구멍을 넘어오는 말을 삼켜버렸다.

《우리 이렇게 하자구.

잠시 생각에 잠기셨던 김일성동지께서는 상범을 돌아보시며 말씀하시였다. 상범은 마른침만 꿀꺽 삼키였다.

《제꺽 경비막에 가서 오정혁이를 집에서 부른다고 해서 이리로 보내주게. 그리고 보고를 꼭 지금 해야 하나?

《그런것도 아닌데… 박일보가 큰공을 세웠다고 당장 소대장한테 가겠다고 하길래 암만해도 그자식을 보내는게 껄끔해서 내가 나섰지.

《참 잘했구만.

김일성동지께서는 상범의 속깊은 생각이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되시여 그의 무릎을 다정히 쓰다듬으시였다.

《그럼 이제 가서 박일보를 소대장한테 보내게. 그사이 상범이는 그 라자구사람한테 들어가서 우리 마을 송남칠이와 한고향사람인데 송강객주집에서 송남칠이 만났다는 사람이 있길래 송강으로 나가는 길이라고 말하라고 하게. 살길이 막혀 송남칠이한테 오면 혹시 땅이라도 얻어부칠데가 있을가 해서 온다고… 알겠나?

《허 그건 안되겠는데…》

상범은 고개를 기웃하며 말했다.

《남칠이는 평안도 강동사람인데 그 사람은 알짜배기 함경도내기야. 차기득이가 아무리 바지저고리라도 속지 않을걸.

《그럼 다같이 빌어먹으려 다니다가 저 오랑캐령같은데서 이웃하고 살았다고 하세나.

《남칠이가 오랑캐령어방에서 살았나?

상범은 눈이 떼꾼해서 물었다.

《허허허, 여태 한동네에 살면서 그것도 몰랐나? 남칠이가 무슨 오랑캐령까지 갔겠나. 그저 그렇게 서로 말을 맞추자는것이지.

《오라, 그러니까…》

상범은 한참 속구구를 해보더니 이제는 알만하다는듯이 벌떡 일어났다.

그러면서 다짐을 두듯 한마디 하였다.

《하지만 박일보를 단단히 잡도리해야 돼. 그자식 사람은 어리무던하지만 제발가락이 남의 발가락보다 길다는것까지 자랑하는 놈이니까 무슨 수작을 할지 모른단말이야.

《알겠어. 우선 이렇게 해놓고 하나하나 일을 꾸며보자구.

김일성동지께서도 자리를 털고 일어서시였다.

오정혁은 얼마 있지 않아서 급히 말발구를 몰고 되돌아왔다. 그는 상범의 거동이 수상쩍어서 일부러 박일보한테 말을 걸어 시간을 지체하면서 새벽에 있었던 일을 대충 듣고 오는터이라 김일성동지께서 상범이가 하던 말을 전하시자 인차 내용을 리해하였다.

《박일보는 총까지 차고있더라는 말은 안하던데 듣고보니 틀림없이 우리 사람같습니다. 혹시 라자구에서 온다니 리광동무에게 무슨 급한 일이 생긴게 아닐가요?

오정혁은 덤비며 말하였다.

《나도 그렇지 않은가 걱정하는중인데 상범이가 이렇게 나오는것은 우리에게 보다 적극적인 행동에로 나갈것을 생활이 요구하고있는 뚜렷한 징조요. 그러니 우선 무슨 핑게를 대고 명월구로 떠나는것을 오후로 미뤄야 하겠소. 이길로 송남칠을 불러내여 사실을 다 말하고 그를 차기득이에게 보내야겠소. 이것은 조직이 그 사람에게 주는 첫 과업이나 다름없으니 그 동무가 어떤 개인적인 부탁쯤으로 알고 허술하게 대하지 않도록 과업을 명백히 해야겠소. 뭘 감출 필요도 없소. 우리 조직원인데 련락을 오다가 잡혔다고 명백히 말하시오. 차기득이는 다소 의심을 느꼈다 하더라도 송남칠이와 인간적으로 얽힌 관계가 있으니 거절하지는 않을거요. 권총을 가지고있었다는것만 모르면 차기득이도 요즘 경향으로 보아 굳이 송남칠이와 척을 지자고 하지도 않을것이고 또 죄없는 행인을 잡아가두는것을 그리 달가와하지도 않소. 문제는 박일보가 허튼 소리를 퍼뜨리지 않는것인데 그 사람은 질이 나빠서보다 맺힌데가 없는 사람이 돼서 걱정이요.

김일성동지께서 걱정이 되시여 생각에 잠기시니 오정혁이 장담하고나섰다.

《그건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상범이가 이제 가서 일보를 보낸다면 내가 그전에 송남칠을 차기득이한테 보내든가 그렇지 않으면 먼저 일보를 만나게 해서 자기 고향친구를 깠다고 시비를 걸어서 옴짝 못하게 해놓지요.

《그게 믿음성이 있겠는지… 하여간 시간이 급하니 빨리 행동하시오. 아무튼 지금 부강촌보위단이라는것이 전과 같이 안윤재의 말을 맹목적으로 따르지는 않으니까 박일보가 어느 정도 눈치를 챘다 하더라도 오정혁동무까지 나서서 압력을 가하면 그 사람이 함부로 놀아나지는 못할거요.

이번 사건을 잘 겪어보고 안윤재네가 잔치차비때문에 정신없이 돌아가는 틈을 타서 야학문제를 성숙시켜봅시다.

《신심이 생깁니다. 나는 상범이가 그렇게까지 속이 깊은 사람인줄 몰랐습니다. 그러고보니 성의를 가지고 대해서 교양못할 사람이 없다는 김일성동지의 평소의 말씀이 더 잘 리해됩니다. 그럼 뒤일은 저에게 맡기고 어서 산으로 가십시오. 다 잘될겁니다.

오정혁은 오래간만에 활기에 넘쳐 말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에게 믿음에 찬 미소를 보내시고 산판으로 올라가시였다.

보위단경비막앞에 이르시니 그때까지도 상범이는 일보를 잡고 옥신각신하고있었다. 그가 일부러 일을 꾸밀 시간적여유를 더 주느라고 그런다는것을 짐작하신 김일성동지께서는 참으로 가슴 한구석에 눈물이 고일만큼 기쁘시였다. 사람을 믿은것이 결코 헛되지 않았을뿐아니라 동네사람 모두가 놀림까마리쯤으로 알고있던 상범이를 저렇게도 지혜롭고 의리깊은 인간으로 변모시켜버린 혁명의 위대성과 정당성을 재삼 가슴뜨겁게 느끼시는것이였다.

뒤에서는 아직도 길우에 서서 옥신각신하는 상범이와 박일보의 목소리가 울려왔다.

《너 갈테면 빨리 가보란말야. 이제 오정혁이까지 갔는데 보고 안했다면 죽어.

《제가 가겠다고 나서지 않았어?

《글쎄 나는 골을 깨워서 걸어보니 어질어질한게 못견디겠다니까.

《흥, 공산당이 무서워서 그러지? 나는 뭐 공산당의 칼을 맞고싶은줄 알아?

그날 부강촌에서는 안윤재네 집 잔치때문에 떡방아요, 콩나물이요, 두부요 해서 집집마다 일거리를 하나씩 맡아서 돌아가고 송남칠이네 집에서는 라자구에서 난데없이 한고향 손님이 찾아와서 전에없이 점심차비를 한다고 학실이가 찬거리를 구하러 돌아갔다.

오후에 송남칠이와 함께 산판에 올라온 라자구손님은 예상한대로 리광이네가 보낸 련락원이였다.

라자구에 둥지를 튼 맹가성을 가진 산림부대가 점점 반동화되여 조선사람을 보기만 하면 잡아족치고 공산당으로 몰아 학살하군하였는데 최근에 무기를 가지고 일제에게 투항할 준비를 하고있다는 확실한 정보를 받았다는것이다. 일이 언제 벌어질지 모르는 형편이라 직접 김일성동지의 결론을 받아서 비록 소규모지만 우리 무장성원의 힘으로 그 산림부대를 치겠다는 제기였다.

련락원의 말가운데는 이번 기회에 무기를 해결할수 있다는 암시도 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산판에 우등불을 피워놓으시고 톱질을 하시던 자세 그대로 그의 이야기를 신중히 들으시였다.

사태의 엄중성은 충분히 리해되시였고 또 모험을 하면서까지 비상련락을 띄운 리광이네의 심정도 짐작이 가시였다.

그러나 제기된 문제는 너무나 원칙적인것이였다.

《우리는 명월구회의에서 일제를 반대하는 무장투쟁을 조직전개할것을 결정하지 않았습니까? 산림부대나 구국군과는 싸울것이 아니라 련합을 해야 한다는것을 동무들이 아직 모른단말입니까?

김일성동지께서는 준절하신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답답하신듯 눈덮인 산판을 오락가락 거니시며 안타깝게 손을 흔드시였다.

《동무들의 분노와 안타까움을 내가 왜 모르겠습니까? 그러나 동무들, 우리 혁명의 운명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교양을 잘 하고 일을 잘해서 그들을 쟁취하면 우리는 이기는것이요, 그들과 척을 져서 일제와 싸울 대신 그들과 싸우거나 그들을 일제의 편으로 넘겨주면 우리는 결정적으로 불리한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비록 동무들이 개별적인 지역에서 개별적인 대상과 관계한다하더라도 그것은 전반적인 사업에 즉시적인 영향을 줄것입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계속하여 제기된 문제가 비단 조중인민의 반일련합전선형성에 유해로울뿐아니라 조중인민사이에 리간을 조성하려는 일제의 간계에 발을 맞추는 행동이라고 엄격히 말씀하시고 우리는 전반적인 혁명의 승리를 위하여 지어 희생을 내는 한이 있더라도 꾸준히 그들을 교양하여 어떻게 하나 투항을 막고 항일구국의 길로 돌려세워야 한다는것, 치는것은 쉽고 설복교양하는것은 어렵지만 우리가 혁명에서 승리하자면 쉬운 길을 버리고 어렵고 힘든 길을 걸을줄 알아야 한다고 절절히 타이르시였다.

머슴군차림으로 눈바람 스산한 산판에서 험한 일거리를 잡고 절절하게 호소하시는 그이의 모습을 뵙고 련락원은 눈물을 머금으며 이 사실을 그대로 조직에도 보고하고 리광에게도 말하겠다고 결의를 다지였다.

오정혁이는 그길로 련락원을 데리고 말발구를 때려몰아 명월구로 떠났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날저녁 량성태네 마실방에 나오시여 동네사람들의 동향을 주의깊이 살피시였다.

라자구에서 온 손님사건은 리상범은 말할것없고 박일보도 뭔가 말할 건덕지가 있을것이며 특히 송남칠이의 청에 따라 안윤재부자간이 잔치때문에 바삐 돌아가는 틈을 타서 제혼자 독단으로 우물쩍 처리해버린 차기득이도 뭔가 께름직한것을 느꼈을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이야기거리에 주린 어둡고 긴긴 부강촌의 겨울밤, 량성태네 마실방에서 응당 화제에 올라야 할 이야기를 아무도 끄집어내지 않았을뿐아니라 아무것도 모르는 보위단원 한사람이 송남칠이에게 라자구에서 온 손님이 무슨 사람인가고 물었을 때 차기득이가 시끄럽다는듯이 그 이야기를 밀막아버리고 오늘 자기가 단장령감한테 여러 사람의 의견인데 야학을 내오자는 말을 슬쩍 비쳤더니 달다쓰다 말이 없더라고 하면서 정작 야학이 나온다면 공부하러 다닐 사람이 있기는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리상범이가 제꺽 무릎을 비집고 나앉으며 월사금만 받지 않는다면야 자기도 다녀볼 생각이라고 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이제는 보위단도 속으로 깊이 금이 갔으며 안윤재의 소왕국 부강촌의 세력균형은 벌써 혁명의 편에 유리하게 기울어져간다고 생각하시면서 자신도 야학에 다니겠다고 말씀하시였다.

《허, 증손이도 야학에 다니겠나? 하기는 증손이가 간도야학이야기를 많이 했지. 그럼 나도 다니겠네. 증손이가 다니는 야학을 나라고 못다니겠나.

말상을 한 보위단원 박일보가 그이의 무릎을 철썩 치며 덩달아웃었다.

 

 

8

 

 

장철하는 무거운 마음으로 길을 떠났다. 다시한번 한병만에게 들려 같이 떠나자고 권해볼가 하는 생각도 없지 않아 라법으로 가는길에 일단 들어섰다가 몇마장 못가서 마차를 돌려세우고말았다.

저번 안윤재가 아들잔치에 와달라는 청첩을 오별장의 아들편에 보내왔을 때 한병만에게 보내는것도 함께 와서 그걸 전하려 라법에 갔었다. 사실은 그때도 그 집에 들리기가 꺼림직하였다. 8.1폭동직후 김성주가 교하에 내려왔을 때 너무나 무시무시한 분위기에 겁을 먹고 그를 박대해보낸것이 스스로도 마음에 걸려 내려가지 않는차에 한병만의 딸 영희가 달려들어 사람을 역적취급을 하는바람에 앞뒤를 다 잊어버리고 어린 처녀와 로상에서 대들이판으로 싸웠다. 그것이 빌미가 되여 장철하자신도 한동안 심화를 앓았다. 그때 한영희는 장차 당신네 집에 어떤 인간들이 드나드는지 지켜보겠다고 말했었다. 장철하자신은 아직도 자기가 나라와 민족을 배반한 인간으로 생각지 않았다. 그러나 생활은 어쩔수없이 그의 신념을 뒤흔들어놓았다. 그가 흉금을 터놓고싶은 사람들은 차츰 멀어져갔다. 그대신 전같으면 사람취급도 하지 않았을 장사아치들, 벼슬아치들, 시세에 따라 간에 가붙고 섶에 가붙는 간사한 무리들이 장철하의 정미소에 드나들었다. 국운은 나날이 기울어지고 정세는 더욱 핍박하여 뜻있는 사람들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혹 은둔처를 찾아 자취를 감추기도 하였다. 홀로 번창하는 자기 집 가세를 바라볼 때 문득 정미소의 장부책을 집어던지고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안윤재가 자기와 한병만에게 보내는 청첩을 같은 인편에 보내왔을 때는 그리 큰 정신적부담을 느끼지 않고 오래간만에 라법에 찾아갔었다. 아들딸 다 바깥에 나돌아다니고 늙은 량주가 호젓이 사는 집이라 인적기가 없었다. 그래서 청하는대로 마음놓고 방안에 들어섰는데 확 하고 풍겨오는 음기에 주춤하고 멎어섰다. 방안에는 지방도 써붙이지 않은 제상앞에 향불을 피워놓았다. 환하게 웃는 영희의 사진이 놓여있는것을 보고 장철하는 가슴이 뜨끔하였다. 영희가 죽은지 벌써 여러날 된다는것이였다. 아래방에는 선아가 누워있었다. 영희의 유물을 안고 려순에서 닷새만에 라법에 도착하자 그길로 기함하여 쓰러졌다는것이였다. 영희가 동지를 구하려고 왜놈들과 불질을 하며 싸우다가 총을 맞고 쓰러졌다는 말을 들었을뿐 구체적인 이야기는 묻지도 못했다. 자기에게는 이미 그런 이야기에 끼여들 자격이 없다고 생각되였기때문이였다. 그 아까운 꽃나이에 쓰러진 영희자신이나 유해도 없는 딸의 제상앞에 얼빠진 사람처럼 앉아있는 늙은 량주를 보았을 때 장철하는 그 모든 참극을 자기 손으로 빚어놓은것만 같이 생각되였다. 선아는 너무나 신열이 높아서 사람을 알아보지도 못했다. 그것이 장철하에게는 오히려 다행스러웠다. 례법에 맞는지 어쩐지 돌아볼 생각도 못하고 향 한줌을 피웠다. 보는 사람만 없다면 제 딸이나 같은 아이지만 그 제상앞에 흰머리를 숙이고 절하고싶은 생각이 간절하였다. 장철하가 거기서 말없이 일어선것은 결코 그 어떤 자존심때문이 아니였다. 확실히 자기가 사람으로서 차마 못할 일을 해놓고 례법에 없는 절이나 해서 모든 잘못을 청산해버리자는 반드러운 타산이 엿보이는것 같아 스스로도 역하였다. 안윤재가 아들잔치에 청한다는 말은 비쳐보지도 못하고 나와버렸다. 한병만이도 그저 잘 가라는 말을 인사삼아 했을뿐 그가 무엇때문에 일부러 찾아왔는지 묻지도 않았다.

이것저것 생각하니 하필 이 엄동설한에 잔치날을 받은 안윤재라는 인간이 빈충맞게도 생각되고 자기 역시 그 길에서 벗어났지만 나라를 구하자고 꽃다운 청춘들이 목숨을 내걸로 싸우는 때 호사스런 잔치판을 벌려놓고 몇백리밖의 친지들을 불러들이는 일이 과연 옳은 처사인가 하는 생각이 가슴을 무겁게 눌렀다. 그러나 안윤재와의 교분을 봐서도 그렇고 송강에 피륙전을 내고있는 신익찬이와의 신의를 생각해서도 피할수 없는 자리였다. 내도산에 나가 독립군들을 훈련시킬 때 주장 뒤를 봐준것이 신익찬이였다. 장사를 한다지만 사람이 고정하고 견식이 높은 사람이여서 가끔 성안에 내려가면 바둑판을 가운데 놓고 천하를 론하며 밤을 새울만 한 벗이기도 하였다. 이번에 시집을 가게 된 그 딸로 말해도 장철하를 무척 따르던 아이였다. 이래저래 중매까지 서놓고보니 차마 성례를 올리는데 모르쇠할수가 없었다. 게다가 지대현이가 이번 기회에 꼭 만나서 할 이야기가 있다는 편지를 따로 보내여왔다. 지대현이가 전에 교하에 들렸을 때 자기도 정미업에 손을 뻗쳐볼 의향을 비친적이 있으니 필시 그 이야기를 또 하자는것으로 짐작되였으나 그것 역시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장철하로서 지대현이마저 외면한다면 더불어 말을 건네여볼 상대도 없는 형편이였다.

사람들속에서 버림받고 살아온 지난 몇해사이에 재물은 놀랄만큼 빨리 늘었지만 그는 외로움에 견디지 못하여 혼자 신음소리를 지르며 지난 독립군시절을 그리워하기도 하였다.

장철하는 가없는 눈벌을 달리는 마차속에서 이틀동안이나 이런 생각에 시달리다가 눈이 퀭하니 꺼져들고 어딘가 사나운 표정이 되여 다저녁때에 부강촌에 들어섰다.

겨울치고는 바람도 없이 개여오른 다양한 날씨였다.

래일은 초례날이라 동네는 벌써 잔치분위기로 들썽들썽하였다. 안윤재네 집 바깥마당과 골목앞에는 새벽에 떠날 신랑행차준비때문에 마차, 말발구, 달구지가 줄을 지어섰고 례물로 보낼 칠장, 칠함들이 주런이 가려져있었다. 초례끝에 인차 친영이 뒤따를것이기때문에 신랑집 잔치준비로 집안을 거두는 남정들, 부엌일을 하는 아낙네들, 신랑을 따라갈 하객, 신랑집에 온 하객들로 붐비였다.

장철하가 마당에 들어서니 신랑이 타고갈 마차에 례물을 내다싣고있던 부금이가 띠여보고 마주 달려나왔다.

《중대장선생님 오십니까?

처녀는 미처 처리하지 못한 색동보자기 하나를 가슴에 안고 반가와라 발을 굴렀다. 이 집에서 그래도 자기를 진심으로 반가와해주는 속세의 때가 끼지 않은 처녀의 모습을 보니 까닭없이 눈물이 핑하니 돌았다.

장철하는 번거로운 생각에 굳어져있던 안색을 펴고 마차에서 내렸다.

《잘 있었느냐? 이제는 부금이도 다 컸구나.

부금은 얼굴을 발깃하게 물들이며 장철하가 끼고온 가방을 받아안았다.

여느때 같으면 무심히 들을수 있는 어른의 인사말이지만 이런 잔치분위기속에서 들으니 저도 과년한 처녀라 무언가가 련상되는것이 있는 모양이였다.

장철하는 허거프게 한번 웃고 안으로 들어갔다.

대청마루에 서서 례장 싣는것을 신칙하고있던 안윤재가 손을 탁탁 털며 종종걸음을 쳐왔다.

《어이구, 이제사 오시우? 난 그저께부터 눈이 가매서 기다렸소.

벌써 한잔 얼근하게 걸친 안윤재는 반갑다고 장철하의 손을 잡고 안으로 끌었다.

대청에도 례물들이 여기저기 널려있고 신랑이 가지고갈 기러기한쌍이 죽지를 묶이운채 색동보자기로 싼 대바구니속에 앉아있었다.

《어허, 굉장하오그려.》 장철하는 천하의 복이 한마당에 다 쓸어든듯 한 집안풍경을 스스러운 눈매로 훑어보았다.

이때 부금이의 전갈을 받은 신랑 안영호가 안방에서 달려나왔다. 흑곤색양복을 말쑥하게 차려입은것을 보니 전안은 준비했지만 초례는 신식으로 지낼 모양이다.

《장선생님, 먼길에 오시기 수고했습니다.

안영호는 두손을 모아붙이고 정중하게 인사를 하였다.

《신랑 신수가 훤하군. 내가 중매애비로서 잔치에 빠질수가 있나. 허허허.

장철하는 갈수록 쓸쓸해지는 마음을 달래보자고 일부러 호탕하게 웃었다. 그 웃음소리가 속이 궁글었다는것을 느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신랑만은 과민한 성격이라 무언가 부자연스러운것을 느끼고 가볍게 미간을 찌프렸다. 그러면서도 그는 다시 례절바르게 응대하였다.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제 평생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허허허, 그래야지. 중매애비도 애비는 애비니 응당 그래야지.》 하고 웃음의 소리를 하다가 잠시후 정색하고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사람 영호, 내가 자네 성장한것을 보니 생각되는바가 많아 실없는 소리를 해본것이니 과히 허물치 말게.

안영호는 위엄차기로 소문난 이 령감이 오늘은 별스럽게 군다고 생각하면서도 겉으로는 깍듯이 례절을 지키며 미소를 지었다.

《자, 먼길에 피곤하겠는데 처소로 건너갑시다. 아무래도 이 집은 소란할것 같아 점잖은 어른들을 위해서 건넌집 오별장네 사랑채에 자리를 정했소. 영호야, 네 한걸음 먼저 중대장님을 모시고 가거라. 내 인차 뒤따라갈게.

장철하는 안영호의 안내를 받으며 골목길을 건너갔다. 오별장네 집에 당도하니 어느새 부금이가 건너와서 집안을 거두고있고 오별장이 바깥마당까지 마중나왔다.

방안에는 벌써 부금이가 장철하의 손가방이며 마차에 싣고 온 선물꾸레미들을 꺼내서 가려놓았다.

《얘 부금아, 안에 들어가서 술 한상 차려들여라.

《알겠어요. 오빠, 그러지 않아도 내가 중대장님 오셨다고 말해놓고 왔으니까 곧 차려올거예요.

하고 부금은 행주치마에 손을 문대며 물러갔다.

장철하는 어쩐지 부금이가 자기에게 보내는 신뢰와 존경의 정이 몸에 송구하면서도 그에게 쏠리는 다정한 눈길을 어찌할수 없었다. 그래서 부금이가 사라지는 마당을 내다보는데 나무지게를 진 청년이 마당에 들어섰다.

《응?

장철하는 저도 모르는 사이 무릎을 일으켜세웠다. 그 순간 머슴군차림을 한 그 청년의 눈길도 사랑방으로 돌려졌다. 장철하는 정수리에 비수가 박히는것 같은 충격을 받고 펄썩 무릎을 떨구었다.

《선생님, 웬일이십니까? 어디 편치 않습니까?

안영호가 이렇게 물으며 방금 닫으려던 문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증손이가 헛간앞에다 나무지게를 부리우고있었다.

《저게 누군가?

《증손이라고 이 집 머슴입니다. 왜 그러십니까? 뭘 분부하실게 있으면 말씀하십시오. 오별장의 아들이 달포전에 어디서 데려왔는데 사람은 좀 어리숙해도 마음씨가 무던해서 아무 일이나 덥적덥적 잘합니다. 무슨 일이든지 시키십시오.

《증손이라…》

하고 혼자말로 받아외우던 장철하는 갑자기 당황하여 손을 내저었다.

《아닐세, 내가 무슨 딴 볼일은 없네. 그저 전에는 보지 못한 젊은이길래…》

장철하는 저로서도 뜻을 가늠할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성주의 아명도 증손이였다. 과연 그 증손인가. 설마하니 그 증손이가 이렇게까지 전락할수야 있는가.

안영호는 장철하의 놀람이 아무래도 이상하다는듯이 다시 바깥을 내다보았으나 그때 증손이의 모습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장철하가 덤덤히 앉아서 생각에 골몰해있는데 안윤재 내외간이 술상을 차려들고 나왔고 뒤미처 오별장의 댁네와 아들딸들도 인사를 나왔다.

가족들이 들어간 다음 술상을 가운데 놓고 솥발모양으로 앉은 장철하과 안윤재, 오별장 세사람은 아무런 뜻도 없이 허허하고 선웃음을 한번씩 웃은 다음 술잔들을 들었다.

《이제 장형도 한번 겪어보시오. 인륜대사, 인륜대사 하니 그저 그런가보다 했지 내 혼인이라는것이 이렇게 시끄럽고 다난한것인줄을 몰랐소. 요즘 오별장 하고는 자주 푸념을 하지만 내 말이 자식 길러서 덕을 보겠다는것은 다 시러베아들이라고 하지요.

《그건 어떻게 하는 말씀이요?

하고 장철하는 건성으로 응대하였다.

《오면서 보아하니 차비를 굉장히 했던데…》

《차비가 다 뭐요?

안윤재는 독한 술을 들이키고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김치 한쪽을 집더니 그것을 질겅질겅 씹으며 서둘러 말을 이었다.

《자식을 길러서 정혼을 시키는데도 아들쪽이 단단히 밑지게 생겼단말이요. 륙례를 갖춘다 어쩐다 하는것이 실상 따지고보면 납채, 납길, 날페로부터 전안, 친영에 이르기까지 모두 신랑쪽에서 해야 하니 세상에 아들이 딸보다 낫다는 소리는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니까요.

《그런즉 안주사댁에는 아들딸을 갖추 두었으니 부금이를 시집보낼 때 봉창을 하면 되지 않겠소.

장철하는 안윤재가 놀아나는것이 호강에 겨워서 하는 수작이라 별로 응대할 흥취가 없었으나 그래도 중매군으로서 가만있기가 뭣하여 가볍게 비틀어 말하였다.

《사실은 나도 그럴 생각이 없지 않는데 그게 내 회계대로 될상싶지 않단말이요.

《그건 무슨 말씀이요? 갑자기 안주사답지도 않는 약한 소리를 하니 나도 기가 죽는구려. 오늘의 안주사 처지가 바로 래일의 내처지라 무심히 들리지 않는구만.

이렇게 오별장이 한마디 께끼자 안윤재가 기다렸다는듯이 더 신이 나서 한쪽무릎을 일으켜세우고 꼽기 시작하였다.

《오늘 내가 례장을 한바리 실어보냈다면 래일 부금이한테 그만 한 례물이 들어와야 하지 않겠소. 헌데 요즘 세상 돌아가는것을 보면 부금이를 여읠때쯤해서는 자유련애다, 자유결혼이다 해서 그런 놀음이 싹 없어질것 같단말이요. 이번에는 내가 보내는것이니 우겨서 보내지만 저쪽에서 보낼 차례가 되면 억지로 내랄수도 없지 않소.

장철하는 어이가 없어 껄껄 웃었다.

《그 안주사 회계가 밝기는 밝소그려. 례장은 신부집이 포목상인데 뭘 그리 많이 할게 있소? 그리고 설사 보냈다고 해봐야 송강땅에 부강촌 안윤재씨의 위세나 한번 떨치고 신부가 덧짐을 쳐서 도로 가져오겠는데 그만한 밑천도 안들이겠소. 그러나저러나 요즘 세월에 그런 구식잔치는 벌려놓을게 뭐요?

《허-이런, 내 아이들과 승강이를 할 때는 중매를 서준 장형이 빨리 좀 와서 내 우익이 돼주었으면 했는데 정작 미리 왔더면 랑패를 볼번했군.

《아니 그건 또 무슨 말씀이요?

《내가 조상전래의 법대로 륙례를 그쯘히 갖출것처럼 말했지만 실상은 잔치가 얼치기가 돼버렸단말이요. 이를테면 신구절충식이란말이요.

장철하가 무슨 말인가 해서 돌아보니 오별장이 튕겨주었다.

《량쪽 어른들은 안팎이 다 구식으로 하자는데 신랑신부는 짜고든듯이 사모관대와 칠보족도리를 못쓰겠다고 우깁니다.

《그러니 답답하지 않소.

하고 안윤재가 뒤를 이었다.

《신부는 그렇게까지 그러지 않는 모양이지만 우리 집 아이는 사모를 쓰고 말을 타라면 당장 룡정으로 가버리겠다고 우기니 꿇어앉힐 방법이 없더란말이요. 별수없이 례복에 면사포차림의 신랑신부가 전안청에 올라 북향재배할판이지요. 나라가 망하니 례법도 기강도 다 허물어지는가보오.

《그건 나라가 망한때문이라고 보기가 어렵지요. 세월이 변하지 않았소. 안주사도 랑패를 보지 않으려거든 시세의 변화를 잘 살피는게 좋을거요.

장철하는 아무래도 안윤재의 들뜬 기분에 끌려들어가지 않는 자기의 꼿꼿한 마음을 민망스럽게 생각하며 개탄조로 말했다.

《하기는 장형 말이 뜻이 깊은 말 같소. 그곳 교하는 어떤지… 요즘은 여기서도 그 시세라는것이 어디로 돌아가는지 정신을 못차릴 지경이요.

안윤재는 별안간 기가 꺾인 목소리로 말하면서 두사람앞에 술을 채워놓고 자기 잔에도 채웠다.

《접때 왔을 때는 천하가 소연한가운데 오직 부강촌만 태평세월을 누리는것 같더니 요즘은 여기도 그렇지 못한가요?

《태평세월이 다 뭐요, 요즘은 이 동네가 누구의 동넨지 모를지경이요.

《허-이건 또 무슨 괴이한 말씀이요? 부강촌이야 엄연히 안윤재씨의 장원이나 다름없는 동네가 아니겠소.

장철하가 필시 무슨 곡절이 있다는것을 눈치채고 이렇게 변죽을 치니 안윤재는 쓰거운지 안주만 뒤적거리고 그대신 오별장이 술잔을 절반쯤 기울이고나서 대답하였다.

《요즘 안주사도 속을 썩인답니다. 마을의 작인들이라는것들이 지난해까지만 해도 투전방에서 동삼을 나던것이 요즘은 그자리에다 야학을 벌려놓았지요. 안주사도 처음에는 작인들이라 해도 어디까지나 자기 땅을 부치는것들이니 투전을 놀고 술을 처먹는것보다는 글눈을 떠서 똑똑해지면 좋을상싶어서 허가를 해주고 야학방을 꾸리는데 재목까지 적지 않게 대주었는데 정작 야학을 시작해놓고보니 말썽이 그칠 날이 없단말입니다. 무슨 부역을 좀 시키자고 해도 엇먹지, 경작조건을 뜯어고치자는 말도 나오지… 게다가 요즘은 보위단에 있는 아이들까지 야학바람이 불어서 몰려다니니 그것들 다루기도 말째다나봅니다. 그런데 이거 내가 요즘은 안주사 보기가 더욱 난처하게 됐단말입니다.

《오별장은 무슨 상관이 있기에?

장철하는 어쩐지 긴장되는것을 느끼며 물었다.

《글쎄 그 야학방선생질을 하는게 우리 아이라니까요.

《정혁이는 문제가 아니란데두 자꾸 그러는구만.

하고 안윤재는 좀 역증스럽게 말하였다.

《바람은 딴데서 불어와요. 내 다 짚이는게 있어서 그러지 않소. 참 공산당바람이 드세차단말이요. 겉으로는 흔적도 안보이는데 어느 틈으로 불어드는지… 참 귀신 곡할 노릇이라니까요.

장철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까 한순간에 스쳐지나는 인상이지만 결코 사람을 빗보지 않았다. 그것은 틀림없이 김성주였다.

그는 역시 그가 주장하는바를 드팀없이 실천하고있는것이다. 교하의 그 무시무시한 분위기속에서도 오연하게 머리를 쳐들고 영웅호걸들은 다 물러났지만 우리는 인민대중을 믿고 그들을 묶어세워 나라를 광복하겠다고 장담하였다. 바로 그 인민대중속에 들어와있는것이다.

안윤재가 말하는 공산당바람이라는것이 다름아닌 나무지게를 지고 남의 집 머슴을 사는 김성주에게서 불어닥친다는것을 장철하는 확신하였다. 그러자 마치 시퍼런 칼날우에 올라서있는듯 한 긴장과 전률이 온몸을 스쳐지났다.

《장형도 짐작되는것이 있는 모양이요그려?

안윤재는 장철하의 표정을 살피며 이렇게 말했다.

《아, 아니 나한테 무슨 짐작이 따로 있겠소. 우리 교하도 사정이 비슷하니 생각되는바가 있을뿐이요.

장철하는 그야말로 등줄기로 식은땀이 미끄러져내리는것을 느끼며 허둥지둥 술잔을 들었다.

갈수록 소연해지는 세월에 대해 누구에게 향한것인지도 모를 불평을 한식경이나 주고받던 안윤재는 새벽에 신랑행차를 따라가야겠으니 로독도 풀겸 일찌감치 쉬라는 말을 남기고 제집으로 건너가고 오별장도 잠자리를 살펴본 다음 안으로 들어갔다.

장철하는 혼자 남았으나 적지 않게 마신 술이 전혀 번지지 않고 머리속만 욱신욱신하였다.

그게 확실히 김성주가 옳기는 옳은가.

아무리한들 김성주가 이런 벽촌에 와서 머슴까지 살수야 있는가. 그는 엄연히 공산주의자들속에서 령도자로 떠받들려있고 그의 이름은 비단 공산주의자들속에서뿐아니라 온 세상에 널리 알려져있다. 혹 교하에 왔을 때처럼 경찰, 군대의 추격을 받아 림시 방편으로 몸을 숨기고있는것이라면 몰라도 안윤재나 오별장의 말을 들어봐서는 분명 여기에 무엇이 있다. 그가 무슨 목적으로 이런데 박혀있는지 그것은 알 재간이 없다. 그러나 어쨌든 무언가 엄숙한 내용이 느껴졌다.

그것은 교하의 그 중국음식점에서 자기의 비루한 처세를 준렬히 규탄하던 말보다 더 심각한 내용이 깃들어있는듯 하였다.

마당에서 증손이를 찾는 목소리와 대답소리가 울리고 사람이 드나드는 소리가 들렸다. 장철하는 진실을 확인하고싶었다. 헛간쪽에서 무슨 잡은것을 드다루는 소리가 난다. 방문을 방시시 연다거나 측간출입을 하는듯이 꾸미고 퇴마루에 나서면 인차 알아볼수 있을것이다. 장철하는 문고리에 손을 갖다댔다. 그러나 어쩐지 그 문고리가 육중한 인경만치나 무겁게 느껴졌다. 그것을 억지로 여는 순간 그는 진실을 보게 될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에 그야말로 그자신의 추악한 몰골을 규탄하는 인경소리같은것이 온 천하를 뒤흔들어놓을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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