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서《불멸의 력사》

  장편소설

 

                         석윤기

(제17회)

제 2 편

 

5

 

우물가에 오시니 어둑어둑한 그늘에 아낙네들 서넛이 모여서 서성거리고있었다. 우물에서 흘러내린 물이 우물틀과 그 주변에 얼어붙어 지금은 집터만한 넓이로 빙판이 지고 그것이 우물틀까지 비탈이 져서 봉우리를 이루고있었다. 멜대를 메거나 물항아리를 머리에 인 아낙네들이 매일같이 넘어지고 미끄러져서 항아리를 깨기도 하고 다치기도 하였다. 그때마다 이 빙산은 차츰 높아져서 해토무렵까지 이곳 아낙네들의 공포의 대상이 되여있었다. 그래도 누구 하나 손을 써볼 궁리를 하지 않았다. 하기는 엄혹한 자연의 조화이니 인력으로써 어찌할 도리가 없는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깡지근한 아낙네들은 부삽에 재 한삽을 떠가지고 자기가 갈길에 살짝 뿌려놓고는 두어행보 길어가고 좀 손이 큰 녀자는 도끼나 곡괭이를 가지고나와서 층계를 쪼아내군하였다. 그래도 한낮이면 그 재나 층계가 새롭게 얼어붙어서 아이들의 좋은 놀이터로 되였다. 좀 큰놈들은 우물틀 바로 밑에서부터 썰매를 배에 깔고 지쳐내리면 거의 오별장네 바깥마당까지 가닿았다. 평지에서는 조무래기들이 팽이를 돌리기도 하고 손잡이로 지치는 썰매를 타기도 하였다.

제일 큰 문제는 아침마다 맨처음 우물틀에 가붙는것이였다. 밤새 깡깡 얼어붙어서 평지에서도 미끄러운 얼음우를 벌벌 기다싶이해야 하는데 그런 얼음이 두겹세겹 얼어붙은 우물틀에까지 잇달려 있어서 도무지 옆에 가 붙어설수가 없었다. 그렇기때문에 새벽에 나오는 사람은 누구나 도끼를 가지고 그 얼음을 까야 했다. 그다음은 얼어붙은 딸딸이 손잡이를 돌리는것이다. 쇠사슬과 함께 엿덩어리처럼 얼음이 엉겨붙은 손잡이를 돌리려고 힘을 쓰면 어느새 발이 미끄러지고 발에 조심을 두면 일껀 감아올린 쇠사슬이 되풀린다.

거기에 매달린 드레박이라는것은 한말도 나마 드는 우둔한 나무드레박인데 그걸 우물틀밖으로 끌어내여 항아리나 물초롱에 실수없이 쏟는다는것 역시 만만찮은 일이였다.

그래서 아침마다 우물가에 나온 아낙네들은 을씨년스러워서 겨드랑밑에 두손을 엇갈아찌르고 누가 먼저 손을 붙이기를 기다리며 끝없이 입심을 부리는것이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마실방에서 받은 좋은 인상때문에 마음이 밝아지시여 맵짠 새벽바람속을 성큼성큼 걸어가시다가 우물가에서 서성거리는 아낙네들을 보고 걸음발을 늦추시였다.

《저기 증손이가 오기는 오는군.

한 아낙네가 옆사람을 쿡 지르며 속삭인다.

《그렇구만, 마실방에서 오는가보지, 사내들이면 다 저렇게 팔자가 좋다니까.

《그렇게 부럽거든 태안에서 바로 나올게지.

《에그, 태안에서야 바깥세상이 남자세상인지 녀자세상인지 알수가 있어야지. 그러나저러나 어서 부르라구.

《일없을가?

《일없지 않으면… 전날도 말을 떼자마자 제꺽 까주던데뭘. 자 빨리 부르라는데… 저러다가 지나쳐버리겠어.

《에그, 난 싫어. 동서가 불러봐.

이 아낙네들은 새벽마다 증손이가 나와서 얼음을 까주기를 기다리고있으면서도 속으로는 너무 얌치머리 없다는 생각이 없지 않아서 이런 승강이를 벌리군하는것이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뻔한 속을 가지고 깜찍한 롱간을 부리려드는 아낙네들이 어찌나보자고 일부러 우물앞을 스쳐지나시였다.

그러자 큰소리를 치던 아낙네가 비명에 가까운 소리로 불렀다.

《이봐 증손이, 이 이 얼음 좀… 참 미끄러워서 야단났다니까…》

김일성동지께서는 빙그레 웃으시였다.

《그래요? 밤새 또 얼었군요. 어제아침에 내가 다 깠는데…》

그이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며 성큼성큼 다가가시자 아낙네들은 서로 눈들을 끔쩍끔쩍하며 반가이 맞이하였다.

그이께서는 한 아낙네가 내미는 도끼를 받아드시고 우물틀에 더께더께 얼어붙은 얼음을 다 까내시고 달구지살통같은 드레박줄감개를 이리저리 돌리면서 손잡이며 우물전의 얼음까지 다 까내시였다.

《이제는 됐어. 참 일손도 알뜰하지.

부엌에 돌아가야 할 시간이 바쁜 아낙네가 이렇게 말하며 자리를 내주기를 청하였으나 그이께서는 다시 곡괭이를 바꾸어잡으시고 우물틀밑바탕을 깊숙이 까내려가시였다.

《아니 이게 누구야? 또 증손이로군.

비탈진 얼음판우를 두려움 없이 활개짓을 하며 올라온 아낙네가 멜대를 척 내려놓자마자 걸걸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남칠이의 안해 학실이였다.

그의 억실억실한 눈이 동네 아낙네들에게로 쏠렸다.

《부끄럽지도 않니, 제가 못까겠으면 제 남정들을 불러댈게지. 에그, 증손이도 한심하지, 뭣때문에 이런 얌치없는 에미네들의 청을 다 들어줘. 주인집 일만 하재도 바쁘겠는데…》

그러자 한 아낙네가 맞불질을 못하고 입안에서 옹알거렸다.

《저도 신세를 지겠는걸 가지고 공연히 희떱게 굴지 않아.

《뭣이 어째?

대뜸 학실이의 총알같은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뭐야? 난 남의 신세를 안져. 저도 부자집 머슴처럼 부리울 때는 서럽다구 찔끔찔끔하면서 남 부리기를 그렇게 좋아하니 무슨 심보들이야.

아낙네들은 찍소리 못하고 입을 다물어버렸다.

학실이는 제가 들고나온 도끼로 얼음판을 걸싸게 까내기 시작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내외간이 신통히 닮았다고 속으로 생각하시며 겉으로는 아무것도 모르는체하고 한마디 하시였다.

《순애 어머니, 남칠이가 간밤에 돈을 다 떼웠어요.

《떼울 돈이 어디 있어서 돈을 떼워요. 다시는 투전방에 안가겠다더니… 이제 들어오기만 해봐라.

학실이는 마실방쪽을 돌아보고 욕설을 퍼붓더니 혼자 시무룩이 웃으며 도끼질을 부지런히 했다.

《돈이 없을게 뭐요. 차기득이네가 소 사겠다는 돈을 초저녁에 다 땄는데 그길로 훌 일어나지 않고 막판까지 앉아있다가 그 돈을 차기득이한테 다 돌려주고말았다니까요.

《그래요?

하고 학실은 반갑게 소리치며 그이를 찬찬히 바라보았다.

확실히 이 아주머니는 속이 트이고 경우가 밝고 무엇보다도 근로하는 사람의 소박하면서도 건전한 생활의식을 가지고있다. 언제봐야 청신한 기운을 풍기며 누구에게나 바른말을 한다. 남칠이가 그 사나운 성미에도 불구하고 그만해서 살림을 꾸려나가는것도 이 아주머니 덕분인지 모른다.

《밤새 딴 돈을 다 돌려줄바에는 투전은 왜 하겠소.

김일성동지께서 한마디 더 튕기시자 학실이는 그 말에는 대답않고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증손이도 그 투전방에 다니지 말라구요. 우리 순애 아버지도 이제는 그 집에 다니지 않을거야. 새벽마다 투전방에서 돌아오다나니 동네에미나들이 다 증손이를 부려먹자고 하지. 그 도끼 놓고 어서 돌아가라요.

《난 아주머니들 일손을 도와주는게 좋은데요뭐.

김일성동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 우물가에 모여든 아낙네들이 까르르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안영호가 보위단에서 돌아오다가 우물가에서 터져나오는 아낙네들의 때아닌 웃음소리에 주춤 멎어섰다. 증손이가 아낙네들의 사품에 끼여들어있다는것을 알아보자 《흥》 하고 저도 뜻모를 코방귀를 내불었다.

이때 정혁의 누이동생 정란이가 초롱을 량끝에 매단 멜대를 메고 찬바람을 일으키며 앞을 지나갔다. 이젠 날이 훤히 밝아서 사람을 못가려볼 형편도 아닌데 제 오래비의 친구를 보고도 눈인사한번 건네는법 없이 오히려 독을 풍기며 지나간다.

불러세워서 한마디 할가 하다가 그가 그처럼 속이 상한것이 바로 증손이때문이라고 판단하고 속으로 히죽이 웃었다.

어찌다 데려온 머슴이라는것이 동네 뭇아낙네들의 시중은 다 들어주면서 집의 물은 제가 길어야 하니 속이 배탈릴만도 하다고 생각한것이였다.

그러나 실상 안영호의 이 판단은 사실과 거의 맞지 않았다. 증손이가 아침마다 동네아낙네들의 시중을 들어주면서 놀림까지 받는것을 보고 정란이가 격분한것은 사실이지만 자기가 물을 긷게 된것때문에 속이 토라진것은 전혀 아니였다. 깔끔한 이 처녀는 방학에 집에 돌아올적마다 부엌살림을 일체 제가 맡아서 하면서도 어찌다 어머니가 물항아리를 이고나서는것도 질색하였다. 아침은 고사하고 낮중에도 증손이가 물을 길어오는것을 못하게 했다. 사실 아직 일손이 드세차지 못한 그로서는 새벽에 우물에 나가기가 조련치 않았고 그럴 때마다 증손이가 같이 가서 얼음을 좀 까주었으면 하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 그것은 증손이가 머슴이기때문이 아니라 한솥의 밥을 먹는 한식솔로서 그럴 의무가 없지도 않다고 생각한때문이였다. 그러나 우물가에서 새벽마다 동네아낙네들이 증손이를 부려먹는것을 보자 정란이는 일체 그런 생각을 눌러버렸다. 제손으로 얼마든지 할수 있고 또 응당 해야 할 일까지 남에게 시켜먹자고드는 저런 아낙네들이 부자집마나님이 된다면 아마 놀부녀편네이상으로 미련하고 표독해질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나갈 때마다 제손으로 도끼를 들고가서 제가 다닐 길을 제가 내였다. 증손이는 어찌나 눈치가 무딘지 자기의 그런 심정을 전혀 알은체를 않고 오늘도 아낙네들소박에 끼여 극성스레 얼음을 깐다. 얼음덩어리가 튀여 목덜미며 얼굴에 달라붙지만 언제나 웃음이 사라질 날이 없다. 그런것을 볼 때마다 정란이의 속은 쥐여짜는듯 배탈려지는것이였다.

정란이가 새침해서 일부러 딴쪽에 길을 내고 우물가에 올라서자 그렇게 입심을 부리던 아낙네들도 미안한 생각이 났던지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자리를 내주었다.

김일성동지께서도 정란이의 마음속을 어지간히는 짐작하고계시였다. 그러나 그에 대해 역시 알은체하실수는 없었다. 그래서 여전히 좀 어리숙한 목소리로 말씀하시였다.

《두고가라구, 내 이제 이걸 까놓구 길어갈테니…》

그러자 정란은 할깃하고 돌아보더니 《흥》 하고 누구에게나 다 들리게 코웃음을 치고는 세차게 손잡이를 돌렸다. 어찌나 세차게 돌리는지 물튀가 튀여 그옆에 붙어서있던 아낙네들이 기겁을 해서 피해섰다.

《잘해, 잘한다니까…》

학실이가 좋아라고 추어댔으나 그것 역시 정란이의 기분을 잡친듯 드레박줄 손잡이며, 초롱이며, 드레박줄을 웽강쟁강 멨다쳐가며 물 두초롱을 길어가지고 힝하니 사라져버렸다.

《이제 증손이가 욕깨나 보겠군.

한 아낙네가 걱정하였다.

《그레게나말이지, 물을 길어가겠다는데 별스럽게 야단이지.

《그것도 다 공부했다는 재새지 뭐야. 새파란 처녀가 너무하지 않어.

증손이를 걱정해준다는것이 또 왕청같은데 가서 입방아를 찧게 되자 학실이가 만만찮게 호령하였다.

《이 아낙네들이 정 이럴테야? 정란이가 어쨌다고 시비질이야 시비질이. 다같이 빌어먹는 처지에 남의 집 머슴까지 부려먹자는 저네들보다야 정란이가 얼마나 경우가 밝아서 시비질이야.

김일성동지께서는 아낙네들의 끝없는 입담에 더는 귀를 기울이실 겨를이 없어 서둘러 얼음을 까놓고 집으로 가시였다. 과연 우물가의 아낙네들이 근심하던대로 마당에 들어서니 분위기가 긴장되여있었다. 정란이가 오빠 정혁이한테 행패를 들이대고있는것이였다.

《무엇때문에 머슴은 들여가지고 온 동네의 웃음거리를 만드는가말이예요?

《넌 뭘 안다고 식전아침부터 소란을 피우면서 이래?

수건을 어깨에 걸치고 세수를 하러 가는길인듯 한 정혁이가 안타까운듯 짜증스럽게 말했다.

《머슴을 두는데 알면 어떻고 모르면 어때요? 오빠는 그렇게 아는것이 많아서 온 동네 녀편네들 시중을 다 드는 굉장한 머슴을 데려왔군요.

정란의 목소리는 야무지기가 총알같았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돼지물을 끓이려고 함실아궁에 불을 지피시며 홀로 빙그레 웃으시였다.

《너 정 건방지게 굴겠니?

《오빠는 왜 그래요? 동네 투전군들의 시중까지 들고 지나가는 녀편네들까지 턱으로 부려먹는 동네머슴에 대해서 나는 왜 한마디 말도 못해요? 지금 동네에서 오빠를 뭐라고 하는지 알아요? 오빠까지 머저리라고 해요.

《뭐야?

정혁이가 주먹을 을러메자 정란이는 흥하고 코방귀를 내불며 부엌으로 사라져버렸다.

《빌어먹을 계집애, 당장 죽여버릴테다!

정혁이가 우르르 달려가려는 눈치를 채신 김일성동지께서는 어험어험 기침을 깇으시며 안마당으로 들어가시였다. 부엌앞에 내다놓은 뜨물통을 멜대에 걸어메시고 나오시며 정혁에게 눈짓을 하시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소란을 피우지 말라는 신호를 하신것인데 정혁이는 어떻게 생각했는지 숨을 씩씩거리며 그이를 따라왔다.

함실앞에 이르자 정혁은 열기띤 목소리로 들이대듯 말하였다.

《제발 저 애한테만이라도 터놓게 해주십시오. 난 이제는 도저히 참을수가 없습니다. 쪼꼬만 계집애가 말끝마다 김일성동지를 모욕하는데…》

《정혁동무, 진정하시오. 우리 떠나올 때 절대 이러지 않기로 하지 않았소.

《그래도 이거야 너무하지 않습니까? 동네의 같잖은것들한테 수모를 당하는것만 해도 속이 터져나갈 지경인데 집안에서 꼭뒤에 피도 안마른 계집애까지 못되게 구니 이거야 울화가 터져서 못살겠습니다. 그 애한테만이라도 터놓읍시다. 그 애는 비밀을 지켜줄것입니다.

《정혁동무, 여기서 긴말은 하지 맙시다. 물론 정란이를 믿을수 있습니다. 정란이가 나때문에 속이 상해서 그러는것은 한마디로 말해서 마음이 깨끗하고 또 나를 동정해서 그러는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직 조직적훈련도 받지 못한 처녀에게 우리 조직의 중대한 비밀을 터놓겠다니 말이 됩니까? 조직원인 정혁동무자체도 자기의 감정때문에 지금 이처럼 동요하고있습니다. 정란이는 그걸 알게 되면 속이 상하는대로 우물가에서건 골목에서건 내가 누구라는걸 소리쳐 말할것입니다. 그것 역시 나에 대한 동정심과 순결한 정의감때문에 그러는것입니다. 정란이가 어떤 정황에서나 우리의 비밀을 지킬만큼 로숙해지려면 조직적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러니 동무는 정란이를 윽박지르거나 조직의 비밀을 터놓기보다 꾸준히 개별교양을 해서 그를 우선 조직에 받아들이도록 해야 합니다.

정혁이는 고개를 푹 떨구고 서있었다.

《어서 가보시오. 주인이 머슴앞에서 이런 모양을 하고 서있으면 되겠소. 지금 부강촌의 정세는 좋소. 간밤에 남칠이는 투전방에 나왔지만 딴돈을 몽땅 잃은 사람에게 돌려줬소. 그에 대한 교양이 먹어들어가는 징조요. 오늘 만나서 그걸 칭찬해주고 한걸음 더 다가드시오. 야학이야기를 꺼내시오. 그리고 상범이네 집 형편을 잘 알아보시오. 상범 어머니의 병이 무언지 병을 고칠 방도가 정말 없겠는지 구체적으로 잘 알아보시오. 나머지 이야기는 산에 가서 합시다. 낮경에 산에 오시오.

김일성동지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고는 비자루를 들고 마당을 쓸기 시작하시였다.

오정혁은 고개를 푹 떨구고 안마당으로 사라졌다.

 

 

6

 

 

어느날 정란이와 부금은 식구들 몰래 스케트를 감추어들고 집을 빠져나와 푸르하강의 상류로 올라갔다. 집안에서는 두집 다 아버지와 오빠가 있어서 도무지 자유롭지 못한데다 그들은 룡정을 떠나올 때부터 이번 방학기간에 스케트를 배우자는 약속을 하였던것이다. 두 처녀는 벌써 재작년에 용돈을 절약하여 오빠들 모르게 스케트를 샀다. 그러나 자존심이 강한 정란이는 학교스케트장에 나가 몇번 엉덩방아를 찧고 동무들이 까르르 웃어대자 새침해서 다시는 그 스케트를 돌아보지 않았다. 한편 자신은 별로 생각이 없으면서도 정란이가 하도 조르는바람에 함께 스케트를 산 부금은 본시가 내성적이고 어딘가 구식녀성같은 사고방식과 인습이 많이 배여있는 처녀라 저보다 훨씬 활달한 정란이가 스케트타기에서 여지없이 망신만 하고 물러서는것을 보자 겁이 나서 아예 학교에 가져가보지도 못하고말았다.

그런데 지루하고 답답한 부강촌의 겨울밤에 정란이가 이번 방학에 기어이 스케트를 배워서 본때를 보여주자고 들고나오자 룡정을 떠나올 때 서뿔리 고개를 끄떡거린 약속도 있는만큼 어쩔수 없이 따라나서게 되였다.

그들은 동네에서 근 10리나 벗어진 푸르하의 상류에 올라갔다. 인적없는 강판에 조그마하게 우등불을 피워놓고 몰래 싸가지고 온 떡쪼박을 구워먹으며 실컷 엉뎅이를 마사보자는것이였다.

강에는 눈이 두텁게 덮여있어서 스케트를 지칠만한곳이 못되였다. 그러나 무엇에 의지하지 않고는 일어설줄도 모르는 주제에 번쩍거리는 스케트를 들도다니는 이런 방가층이신녀성들에게는 안성맞춤의 놀이장이기도 하였다.

그들은 푸석푸석한 눈에 의지하여 일어서려다가는 넘어지고 넘어져서는 눈물이 나오도록 실컷 웃고하며 시간을 보냈다.

부금은 외투도 목도리도 벗지 않고 스케트를 신은채 우등불만 뒤적거리다가 정란이에게 억지로 끌려 나서군하였지만 일단 나서서는 입술을 지그시 다물고 집요하리만큼 열성을 내였다. 그는 지척지척하며 자꾸 앞으로 나갔다. 뒤에서는 정란이가 또 꽝하고 넘어져서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돌아보지 않고 자꾸 접질리려는 발목에 정신을 모으며 앞으로 나갔다. 뒤에서는 그냥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정란이는 이번만은 장난이 아니라 정말 어디 뒤통수라도 다친 모양같았다. 그래도 돌아보지 않고 내처 앞으로 나가니 마침내 정란이의 볼부은 소리가 울려왔다.

《얘, 너 어디로 자꾸 가니?

부금은 그래도 대답을 안하고 무엇엔가 들렌 사람처럼 앞으로만 나갔다.

저앞에 전혀 눈이 덮여있지 않는 반들반들한 얼음판이 부잇한 빛발을 뿌리고있었다.

다른데는 모두 눈이 덮여 푸석푸석하고 거칠거칠한데 유독 강굽이가 산을 끼고도는 그 절벽밑은 거울같이 반들반들한 얼음판이 깔려있었다.

부금은 그 얼음판에 까닭없이 끌리였다. 속세의 때가 전혀 묻지 않은 순결한 세계를 볼수 있을것만 같았다. 그는 최근 룡정에서부터 어렴풋이 느껴오던 자기 생활의 어지러운 환경을 부강촌에 들어와서, 특히 허재률이 다시 인단장사행색으로 나타나면서부터 더욱 뚜렷이 느끼였다. 허름한 행상트렁크를 지고 철지난 밀짚모자로 슬슬 가슴을 부치며 싱글싱글 웃다가도 잃어진 조국을 두고 피터지게 웨치던 그 사나이다운 목소리가 귀전을 떠나지 않았다. 뭔지 아버지나 오빠의 말과 행동에서 풍겨오는 의롭지 못하고 깨끗치 못한 인상을 다감하고 정에 무른 그 녀자의 혈육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으로써도 다 사상해버릴수가 없었다. 그렇게 남은 사회륜리상의 우수리를 메꾸기 위하여 그 녀자는 자기의 안타까운 심정을 그 누구에게 툭 터놓고 도움을 바랄만 한 주변도 없었다. 그는 정란이가 이끄는대로 이런저런 책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산보도 하고 때로는 자기 오빠나 아버지를 두고 비꼬는 정란이의 말에 쓸쓸하게 웃기도 하였지만 자기 마음속에 움트고있는 어떤 운명적인 번민에 대해서는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얘, 너 어디로 자꾸 가니? 거긴 가지 말어. 산밑에 가면 소가 있어.

한번 대담하게 일어섰다가 작대기처럼 공중 넘어지는바람에 뒤통수를 호되게 짓찧고 쩔쩔매고있던 정란이가 소리쳤다.

아닌게아니라 부금이의 눈앞에는 퍼렇게 얼어가지고도 당장 소용돌이속에 집어삼키고말것처럼 푸르딩딩하게 얼어붙은 강물을 보고 본능적인 공포를 느끼였다.

《여기에는 왜 눈이 없을가?

부금이가 소심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거긴 이 강의 숨구멍이 있대. 거기로 물이 넘쳐나군하니까 눈이 다 없어지지. 아무리 헤염을 잘 치는 사람도 그 소에 빠지면 빠져나오지 못한대.

정란이는 시끄러운듯이 위협조로 말하고 얼얼한 뒤통수를 툭툭 치더니 또다시 장갑을 끼고 일어섰다.

《겨울에도 이런데 빠지면 죽겠구나.

부금은 여전히 퍼런 얼음판을 겁질린 눈으로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죽지 않구, 숨구멍이 있단말이야. 그러니 어서 이리로 와!

정란이는 당장 무슨 일이라도 일어날것처럼 다급히 손짓을 했다. 부금이도 공연히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였다. 그는 서투른 동작으로 겨우 방향을 돌렸으나 눈길이 자꾸 뒤로 끌리여 연거퍼 두번이나 넘어지고서야 겨우 그 퍼런 소에서 멀어졌다. 그다음 부금은 강기슭의 우등불앞에 나가앉아서 다시는 일어서지 않았다. 정란이가 넘어지면 좋아라고 손벽을 치다가는 문득 사위여가는 우등불을 들여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인간이 진실하고 용감하고 아름답자면 어떻게 살아야 할가?

허재률씨는 그런 인간은 공산주의자라고 했지. 그럼 우린… 아니 나는 아무래도 이 끈적끈적한 생활을 버리지 못하는것일가?)

부금은 그 자신의 생활체험이나 지식으로써는 도저히 풀길없는 이런 엄청난 수수께끼를 스스로 제기해놓고 홍조가 곱게 비낀 얼굴에 늙은 철학가같은 주름살을 그리며 생각에 잠겨있었다.

정란이는 짧은 체육치마를 수세미처럼 만들며 다리도 못옮겨놓을 지경 지쳐서야 우등불가에 엉금엉금 기다싶이 돌아왔다. 어슬어슬 날이 저물어가고있었다.

정란이는 스케트도 제손으로 벗지 못하겠다고 엄살을 부리였다. 아닌게아니라 길에 나서자 몇번이고 무릎을 접으며 주저앉으려 하였다. 그런것을 부금이가 부축하여 가까스로 동네가까이까지 왔다.

《넌 성미가 너무 세차, 너 오빠처럼 얌전하면 얼마나 좋겠니.

부금은 어깨에 매달리는 정란이를 정겹게 돌아보며 핀잔조로 말했다. 그러나 실상 그 말속에는 비난이 아니라 부러움이 진하게 깃들어있었다. 그런것을 느끼는 정란이도 명랑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지 않아도 우리 엄마는 나보구 괄량이라구 그냥 욕하지 않니. 나하고 오빠하고 바꿨으면 좋겠다고말야. 사실 내가 남자가 됐다면 아련하고 찔끔찔끔 울기 잘하는 부금이를 사랑하고 보호해줄수 있는데, 호호호.

《얜 못하는 소리가 없구나.

부금은 여태 다정하게 끼고있던 정란이의 어깨를 징그럽다는듯이 활 밀어던져버렸다.

《아이구 못나기도 했다.

정란이는 그러는 부금이가 재미있다는듯이 한참 서서 바라보더니 부금이가 돌아보지도 않고 걸음을 다우치자 다급해서 따라왔다.

《얘, 남은 다리가 아파 죽겠다는데 혼자 가버릴테야?

《못된 소리 하니까 그러지.

《오늘은 웬일이야? 별로 더 얌전한체하는구나. 그 소에서 무슨 귀신한테 홀린게 아니냐?

《얜 또!…》

그들이 이런 롱을 주고받으며 동네가 저만치 바라보이는 버덩에 나섰을 때였다.

길에서 얼마 벗어나지 않은 비탈진 수수밭에서 웬 사람이 괭이질을 하고있었다.

두 처녀는 주춤하였다. 날이 아직 어둡지는 않았지만 이런 날씨에 동네에서 벗어난 후미진 곳에 사람이 얼씬거린다는것이 심상하게 보이지 않는 세상분위기였다. 더구나 수수밭에서 괭이질을 한다는것이 수상쩍었다.

《웬 사람일가?

정란이가 겁먹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글쎄, 흙을 파지 않니?

《흙은 왜 파나말야?

두 처녀가 가도오도 못하고 서서 귀속말을 주고받는데 수수밭속의 사람이 땅속에서 파낸 수수뿌리에서 흙을 툭툭 털며 허리를 폈다.

《아니 저게 너희 집 증손이 아니야?

부금이가 여전히 속삭이듯 하는 목소리로 다급히 말했다.

그 먼저 정란이는 증손이를 알아보고 입술을 잘근잘근 짓씹고있었다.

겁먹은 가슴을 진정시키고 찬찬히 살펴보니 길가의 밭머리에 뻗쳐놓은 엄청나게 부푼 증손이의 나무지게도 보이였다.

이제는 무슨 영문인지 다 짐작할만 하였다. 증손이는 산에 들어가서 나무를 해지고 내려오는길에 상범의 어머니의 병을 고쳐주겠다고 저렇게 수수뿌리를 캐고있는것이다.

얼마전에 오빠가 상범이네 집 이야기를 했었다.

상범이네 어머니가 죽을 병에 걸렸다는 말은 정란이도 부금이도 지난해부터 들은 소문인데 오빠는 암만 봐야 큰병같지 않는 환자를 지대현이가 그런 허망한 진단을 내려 온 집안을 절망에 빠뜨렸을뿐아니라 약같지도 않는것을 몇봉지 지어주고 그걸 리용하여 사람을 꼭두각시처럼 부려먹는것 같다고 의분에 넘친 목소리로 말했었다. 아버지는 그 일에 안주사도 관계되여있는듯 하니 그런 말을 함부로 돌리지 말라고 당부하였으나 오빠는 무슨 일론가 명월구에 나가더니 친한 의사 한사람을 데리고 왔었다. 오빠의 말을 들어보면 그 의사는 역시 짐작한대로 험한 음식때문에 받은 체기가 묵어서 생긴 속탈이니 크게 걱정말고 치료를 받으며 적당한 운동 즉 로동을 알맞춤하게 하면 곧 떨어질것이라고 진단하였다는것이다. 그 명월구의사도 약을 몇가지 지어주고 큼직한 주사도 몇대 놓아주고 갔다. 그리고 지대현이와 안윤재를 살인자이며 현대 노예상인이라고 욕설을 퍼부었다는것이다.

그러나 상범이도 환자당자도 어느 말을 들어야 할것인지 몰라 갈팡질팡하는데 안타까운것은 돈이 없어서 명월구의사의 약을 계속 쓸수도 없거니와 무엇보다도 환자당자가 신심을 못가지는것이였다. 그런데 증손이가 요즘 그 집에 드나들며 그 집 앓는 로친과 아주 가깝게 지낸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그리고 증손이가 무슨 비방의 약을 구해서 달여준다는 말도 돌았다.

증손이가 무슨 약방문을 알겠는가 하고 아버지와 오빠는 믿지 않았지만 어머니는 증손이가 고생을 하면서 세상 넓은 천지를 다 돌아다녔다니 혹 그런 약방문을 알수도 있지 않느냐고 하였다.

어쨌거나 그 비방의 약이라는것이 바로 저런 언땅을 호박구뎅이만큼씩이나 파내고 얼음버캐와 함께 뜯어낸 수수뿌리인것이다.

참 세상에 별일이 다 있다. 상범이라면 엄연히 보위단원인데 보위단때문에 욕 한가지라도 더 사게 마련된 생뚱같은 집 머슴이 저와는 생판 남인 보위단원의 어머니를 위하여 이런 오동지섣달에 돌을 쪼아내기보다 더 힘든 언땅을 파내여 약을 캐다니… 그것도 누가 신통해하는 약이기나 한가, 의사를 데리고 온 오빠만 해도 빈충맞다는 생각이 갔지만 그래도 오빠는 명색이 동네사람이고 동네에서도 개명한 사람축에 드는만큼 동네일에 대해 노상 무관심할수 없는 처지라고 볼수도 있다. 증손이의 경우는 암만 생각해봐야 한심한짓을 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정란이는 왜 그런지 증손이의 일이라면 약이 올랐다. 그가 동네의 같잖은것들한테서 욕을 보는것 같아 참을수가 없었다. 그렇게 안윤재네한테 굽신거리며 다니는 보위단원의 집이니 병자를 돌보겠으면 돈많고 권세많은 안윤재네 집에서 돌보면 될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이 나자 여태 함께 놀던 부금이까지도 괘씸하게 생각되였다.

《여기서 뭘해요?

정란이는 표표한 기상으로 수수밭머리에 다가가서 야무지게 물었다.

《집에서 걱정하던데 이제사 오누만.

증손이는 흙덩어리와 얼음버캐가 아직 그대로 주렁주렁 매달린 수수뿌리를 얼어서 새빨갛게 곱아든 손에 주섬주섬 걷어모으며 빙그레 웃었다.

《남의 걱정 그만해요. 그건 뭣하러 파는거예요?

《이거?

증손이는 수수뿌리를 두 처녀앞에 쳐들어보이고나서 순박한 어조로 말했다.

《이걸 달여먹으면 체기받은 속탈이 떨어진다고 해서 그러지.

《증손이가 속탈이 있어요?

《내가 무슨 탈이 있어? 상범이네 어머니가 불쌍해서 그러지.

《참, 기가 막혀서…》

정란이는 새침해서 삑 돌아서더니 참을수 없다는듯이 다시 돌아서서 쏘아붙였다.

《그럼 그것들은 증손이가 불쌍하다는 말이나 해요? 수고한다는 말이나 해요?

증손이는 힐끔힐끔 부금이의 눈치를 살피더니 난처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중얼거리듯 말하였다.

《그 사람들이 뭐라는지 들었어야지. 그저 그 집 어머니는 좋아해. 그 집 어머니때문에 하는 일인데 누가 뭐라면 일이 있나.

그러더니 두 처녀에게 시달리는것이 싫은지 캐낸 수수뿌리를 주어모아 가슴에 그러안았다. 허술하게 입은 옷자락이 벌어지면서 벌겋게 언 가슴이 드러났다.

정란이도 부금이도 무언가 번개를 맞은것 같은 강한 충격을 받았다. 남을 위하여 이처럼 제살 제몸을 이 랭혹한 세상과 무자비한 추위앞에 아낌없이 드러내놓고 그저 웃으며 살아가는 이런 사람이 있다는것이 도무지 현실의 일같지 않았다.

증손이가 지게를 지고 저만치 멀어진 다음에야 두 처녀는 타박타박 걸음을 옮겨놓았다.

어떤 죄의식에 압도된 그들은 갑자기 서먹해져서 다시는 건넬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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