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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서 《불멸의 향도》
장 편 소 설

권 정 웅
(제 17 회)
제 8 장
눈이 많이도 왔다.
나무가지가 휘늘어지고 길가의 잔디밭들이 백포를 씌운것처럼 하얗게 되였다.
어데를 보나 정갈하고 눈이 부시였다.
평양교외의 어느 한 농촌사업을 지도하고
돌아오시는 김정일동지께서는 차창으로 휙휙 지나가는 거리풍경에 자못 심취되시였다.
언제인가 들은바에 의하면 설경에 잠겨 신년을
맞는 평양거리를 촬영한다는것은 몇해가다가 한번 있으나마나하여 사진기자들이 고충을 겪고있다고 하였다.
그러고보면 이번 설은 자연이 주는 하나의 혜택이라고 할가,
하긴 징조를 믿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벌써 새해에 대풍이 들게 될것이라는 말도 했다.
현관앞에 이르신 그이께서는 차문을 여시고
마당에 내려서시였다.
향나무가 눈을 수북이 이고 서있다.
풍만하고도 현란한 감을 주었다. 벌써 아침해살에
눈이 녹아 수정같은 물방울이 방금 고드름을 지을듯이 가지끝에 재롱스럽게 매달려있다.
그이께서는 무척 상쾌한 기분에 잠기여 마당을
거닐기 시작하시였다.
빈틈없이 짜신 일과에는 보통
10여가지 일이 치차처럼 맞물려있지만 그것을 내용으로 볼 때에는 언제나 한가지 또는 둬가지
일에 초점이 집중되군하였다.
그런 견지로 볼 때 오늘은
100년사상사총화에서 중요한 한개 대목을 넘기게 되는 과정이 있고 그와 동시에 엄한정박사를
비롯해서 몇명의 일군들과 개별담화를 할것이 예견되여있었다.
어제 저녁에는 밤이 깊도록 허담이와 이야기를
나누시였다. 무엇보다
주의를 끈것은 허담이 전상환에 대하여 느끼는 의문과 분격이였다.
《제 말을 좀 들어봐주십시오.》
허담이 안경을 벗으며 어지간히 목소리를
높이였다.
《글쎄 <일편단심>이란 연극이 색갈이 점점
다르단 말입니다.
진상환동무는 혁명가의 안해를 주인공으로 해서 무대작품을 하나 잘 만들겠다고 했습니다.
한데 그것이 어떻게 되고있습니까. 고작해서
봉건사회의 삼강오륜, 말하자면 유교냄새를 피우는건데 그게 혁명적인
작품이라는겁니다. 더구나 한심하고 참을수 없는것은 사업체계요 뭐요 하면서 어떤
압력에 눌리워있는겁니다.
제딴에는 뭐 한다고는 하지만 결국 청맹과니가
돼간단 말입니다.》
《아,
아.》
김정일동지께서 손을 펴서 제지시키듯 허담의
앞으로 내미시였다.
《너무 흥분해서 성급하게 그러지 맙시다.》
그러나 이미 김정일동지께서는 허담이 말하고있는
점을 예리하게 분석하고 계시였다.
(누구를 위한 일편단심인가?…)
《저는 전상환부부장한테 몇마디 강하게
들이댔습니다.》
허담은 솔직한 심정을 터놓았다.
《전상환동무는 그런 중요한 직책에서 일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그와 절교할 결심까지 합니다.》
《절교라구요?》
김정일동지께서는 저으기 놀라시였다.
《그렇습니다… 우선 인간적으로 말입니다.》
그이께서 한참이나 허담을 지켜보시였다.
《물론 허담부상의 분격은 리해가 됩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절교라는 말이 쉽게 나옵니까?》
허담은 그만 고개를 숙이였다.
자신의 흥분이 지나치다는것을 깨달은것이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안을
거니시였다.
《난 이렇게 생각합니다.
전상환동무에게 한번 믿음을 준 이상 나는 그를 쉽사리 멀리하지 못하겠습니다.
그가 스스로 헤여나오기를 기다렸는데 그게 안되면 직접 끌어내오기라도 하겠습니다… 이 이야긴
잠시 뒤로 미룹시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허담앞에서 멈춰서며 그를
여겨보시다가 말씀을 하시였다.
《이건 좀 문제의 성질이 다른데… 요즘
허담동무한테 할 말이 좀 있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허담은 두무릎을 모으며 경건한 자세를 취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시 방안을 거니시였다.
《허담동무도 알겠지만 지금 국제적으로
당대표자회에 관한 반영이 대단합니다.
우리 당이 세상을 향해 통장훈을 불렀습니다.
우리의 원쑤들은 질겁을 하고있습니다.
아시아,
아프리카 신생독립국가들은 우리가 내놓은 이 자주적인 로선을 두고 놀라와하고 부러워도 합니다.
정치에서 자주, 경제에서 자립,
국방에서의 자위 이것이 바로 혁명과 건설에서의 주체사상의 구현이 아닙니까…
세계의 통신들은 당대표자회에서 하신 수령님의
보고를 앞을 다투어 널리 보도하였습니다.
자주성을 지향하는 나라들에서는 그 보고 원문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우리 수령님께서는 외교전선에 서있는
외무성일군들에게 크나큰 보검을 쥐여주신셈입니다.
우리의 동정자,
지지자들이 급속히 늘어나고있습니다. 그럴수록
우리는 더욱 힘있게 외교전을 벌려야 합니다. 외교전이란 어떤 의미에서 정치전,
사상전이 아니겠습니까.
평화와 친선도 단결하며 투쟁하고 투쟁하며
단결하는 원칙에 서야 합니다… 물론 아까 허담동무가 말한것은 다 옳습니다.
그건 그것대로 극복하고 우린 더 넓게 진공전을 벌립시다.
사실 이번 당대표자회를 통해 우리 수령님의
대외적권위는 비할바없이 높아졌습니다.
바로 우리는 수령님의 이런 권위로 반미투쟁도 하고 조국통일도 실현해야 하는것입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허담의 곁에 와 쏘파에
앉으시였다.
허담은 너무나도 현명하고 정확한 분석앞에서 할
말을 찾지 못하였다.
하나의 의문이 느닷없이 머리를 쳤다.
(우리 외무성에서,
구체적으로는 내가 우리 당의 립장, 우리 수령님의
사상에 얼마나 튼튼히 서있는가?)
이런 큰 물음에 대답을 찾지 않고 그저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에서 전상환이 이렇소,
저렇소 하면서 감히 절교라는 말까지 하지 않았던가.
물론 《전상환의 문제》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지금 김정일동지앞에서는 한갖 해빛속의 그림자처럼 무색해진다는것을 느끼였다.
여태 허담은 전상환이나 다른 사람을 대하면서
대체로 자기자신은 옳고 상대방은 그렇지 못하다고 생각해오면서 긍부정을 판단하는데로만 자신의 정치생활을 지향시켜왔다.
그렇다면 자신은 실천으로 과연 무엇을 하고있는것인가.
내가 과연 어떤 인간이란 말인가. 김정일동지의
말씀은 대번에 그를 심한 자책속에 빠져들게 하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시였다.
《허담동무,
왜 갑자기 심각해서 이럽니까?》
말없이 앉아있던 허담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닙니다.
전 정말… 이렇게 놓고보니 남을 시비만 했지 해놓은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자신이 뭘 하고있단 말입니까?》
김정일동지께서도 마주 일어나시였다.
《아니 아니,
그러지 마시오. 그것을 그토록 심중히 받아들이니
나로서는 더 할 말이 없습니다. 이렇게 리해를 해주니 나는 참말 기쁩니다.
이래서 좋은 동지는 만날수록 정이 간다는게 아니겠습니까.
혁명동지!… 참말 훌륭하고 좋은 말입니다.
어버이 수령님께서 늘 혁명동지의 귀중함에
대하여 하시는 말씀의 뜻을 더욱 깊이 새기게 됩니다.》
허담은 김정일동지의 손을 마주 꽉 부여잡고
떨리는 음성으로 말하였다.
《감사합니다.
저를 이렇게 대해주시니…》
그는 눈에 어리는 물기를 보이지 않으려는듯
급히 돌아서더니 방안에서 나갔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후더워오르는 심정을
주체할길없어 방안을 오락가락하며 흥분을 눅잦히시였다.
(허담이는 좋은 동지이다… 훌륭한
벗이지.)
그이께서 집무탁에 다가가실 때 뒤에서
문기척소리가 나더니 전상환이 들어왔다.
전상환은 말없이 의자에 앉아있다가 고개를
쳐들었다. 그의
얼굴에는 지친듯한, 그러면서도 종잡을수 없는 표정이 어리여있다.
그런 표정은 흔히 빠져나갈 길 없어 모대길 때의 자신에 대한 불신,
심하게는 자포자기의 극심한 상태의 표현인것이다.
평상시의 전상환은 전혀 이렇지 않았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소심하고 우물쭈물하는 성미를
제일 싫어하신다. 바로
이 순간의 전상환의 얼굴에서 이런 표정을 보신 그이께서는 일종의 측은함을 느끼시였다.
하지만 그것은 한순간이였다. 고개를
쳐든 전상환의
눈에는 그 어떤 광채가 번뜩이였다. 상대방에 대한 믿음,
신뢰의 빛이였다. 그이께서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저만치 있는 차탁에 다가가 차를 따라서 손수 전상환의 앞에 놓아주시였다.
전상환은 《고맙습니다.》 하고 주저없이 쭉 들이키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쏘파에 앉아 담배를 피우시였다.
전상환은 고뿌를 차탁에 갖다놓고 돌아와서는 잠시 주저주저하다가 머리를 쳐들었다.
《김정일동지,
제 일신상의 문제에 대해서 말씀드려도 일없겠습니까?》
《어서 말씀하십시오.》
《저는 지금까지 량심적으로 당을 위해
복무한다고 생각하면서 일해왔습니다.
그런데 왜 그런지 일이 자꾸 꾀여들어가는 감이 납니다.
왜 이렇게 되는가? 저는 그 원인을 찾아보느라
애써보았지만 이렇다할 원인을 찾을수 없었습니다. 제 실무능력이 딸리는것
같습니다.》
그는 비탄과 고민에 차있는 마음의 문을
열어보일수 있는곳은 여기뿐이라고 생각하는듯 새삼스레 방안을 둘러보았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잠시 말씀이 없이 연거퍼 새
담배에 불을 붙이시였다.
《부부장동무,
진정하십시오…》
그이께서는 전상환의 옆얼굴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말씀을 이으시였다.
《부부장동무는 실무능력이라고 했는데 제
생각에는 거기에 문제가 있는것 같지 않습니다.
사상문제가 아닐가요. 나는 전상환동무만큼 실무에
밝은 일군도 별로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왜 사상문제인가?… 맞대놓고
말해서 안됐지만 인간으로서 전상환동무는 무척 호감이 갑니다. 고지식하고
성실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김정일동지께서는 고개를 쳐드는 전상환의 눈을
곧바로 마주보시였다.
《그러지 않아도 부부장동무를 조용히 만나
얘기하려던 참입니다.
우선 부부장동무자신의 고민이라는것부터
말해봅시다…
혁명적인 생활을 담은 연극을 하나 해보겠다던
부부장동무의 그 주관적인 욕망이 과연 어디로 가고있는것입니까.…
부부장동무는 어째서 권력의 힘앞에서 그 압력을
느끼면서 맞받아나가지 못합니까.
그런 정도의 정의감이나 용감성이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니 그게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이께서는 안타까우신듯 잠시 말씀을 끊으시였다.
그러다가 불시에 빠른 어조로 계속하시였다.
《난 맹종맹동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또 반대로 우유부단이라고도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럼 뭔가? 부부장동무한테는 지금 은연증 개인에 대한 환상이 생기고 있습니다.》
《네?》
전상환은 퍼그나 놀라며 두눈을 크게 떴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단호히 손을 들어 힘있게
내리치며 음성을 높이시였다.
《그 환상을 짓부셔버려야 합니다!》
그이께서는 한결 어조를 낮추며 이으시였다.
《그러면 우리가 만들어내는 환상이
어떤것이겠는가? 그것은
높은 권위와 직무에 있는 사람은 모두 혁명사업을 잘할것이라는것과 다음은 이전에 잘 싸웠거나 공로가 있는 사람은 모두
지금도 혁명에 충실할것이라는 선입견입니다. 이것이 사람을 잘못보게 하는
장애물입니다.
우리 공산주의자들은 언제나 현실적이여야 합니다.
높은 권위나 직무에 있는 사람도 오늘현재 해놓은 일이 있어야 하고 또 과거에 공로가 많은
사람도 오늘에 하는일이 더 크고 좋아야 하는것입니다. 문제는 오늘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과거에 잘못 산 사람도 오늘에 잘 나오면 그것을 그대로 평가하고 기꺼이
받아들이는것입니다. 사람에 대한 환상,
여기서 우리는 대담하게 벗어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제스스로가 반편이 됩니다. 그러니 이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십시오.》
《생각해보겠습니다.》
번민에 싸여 고개를 숙이였던 전상환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의 눈에는 여전히 고뇌의 빛이 력연했다. 이윽고 그는 부서모임이 있다면서
방에서 나갔다.
그의 뒤모습을 바라보며 김정일동지께서는 측은한 생각이 드시였다.
그러시다가 힘있게 머리를 저으시였다. (동정이나
위안만으로 그를 도와줄수 없다. 오직 열렬한 동지애로,
아프지만 비판으로만 그를 구원할수 있다.)
김정일동지의 사색은 깊어지시였다.
번민에 싸인 전상환을 얼마간 놔두자. 무척
괴로와할수 있다. 하지만 괴로움속에서 관찰력이 예리해지고 모대김속에서 끝내는
진리를 찾는다는 말이 있지 않는가.
그날밤에 있은 허심탄회한 담화로 하여
김정일동지께서는 전상환에 대한 뜨거운 정을 간직하게 되시였으며 험난한 혁명의 길에서 그도 장차로는 훌륭한 길동무,
참다운 동지로 되리라는 믿음을 가지게 되시였다.
지금 김정일동지께서는 흰눈이 수북이 내린
정원을 거닐면서 사색을 이어가시였다.
그러시다가 팔목시계를 들여다보신 그이께서는 서둘러 사회과학자들이 모인 그곳으로 가야겠다고
생각을 하게 되시였다.
×
지정된 그 장소에는 례의 그 성원들이 모두
모여있었다. 서로
인사를 나눈후에 잠간동안 한담이 벌어지게 되였다. 이렇게 전원이 모이는것은
일주일에 화, 금요일 이틀이기때문에 그사이에 있었던 이러저러한 신변잡사들과
각기 제나름으로 얻어듣게 된 소식들이 이야기거리로 되였다.
그중에 흥미를 끌게 된것은 엄한정이 딸을
시집보내게 되는데 그것은 곧 할아버지가 될수 있는 믿음직한 전주곡이며 담보라고 하였다.
그것은 《정세자료전문가》인 원시준이 입수한 소식이다.
두달전에 약혼을 하고 이제 곧 결혼식을 하게 된다는데 대상자는 재능있는 연출가라는것이다.
모두가 흥미있어하였다.
그러나 당사자인 엄한정은 웬일인지 약간 모로
앉아서 창밖을 내다 보기만 하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아무 말씀도 없이 좌우를
둘러보기만 하시다가 짐짓 롱담을 하게 되시였다.
《그건 정말 축하할만한 일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손자와 손녀를
데리고 다니자면 허리가 좀 구부정하고 얼굴에 주름살도 있어야겠는데 아직 새서방처럼 보이니 그것이…》
엄한정은 두손을 흔들면서 《그건 엄청난
오보입니다. 저 원동무
통신이란 항상 오보와 오판이 많아서 들어볼것이 못됩니다.》 하고 어색한 낯을
지었다.
엄한정이 이때 이렇게 말한데는 다른 리유가
또하나 있었다. 그것은
절반나마 거침없이 진척되던 론문집필작업이 다시금 중단되고만것이다.
이것때문에
끙끙 앓고 있다는것을 아시게 된 김정일동지께서는 초고상태라도 무방하니까 지금 된것만큼이라도 읽어볼수 없겠는가고 하시였다.
며칠동안 망설이다가 엄한정은 초고보따리를 안고
간적이 있었다.
그러한지 벌써 두주일이 지났다.
한쪽에서는 딸문제,
다른쪽에서는 론문문제, 머리가 터질 지경인데
《손자의 팔을 잡고…》라고 하시니…
모두가 자리에 앉아 정숙한 자세를 취하게 되자
김정일동지께서는 수첩을 펼치시였다.
《그러니 맑스의 <자본론>토론이 오늘까지 몇번째던가요.
오, 그렇지.
오늘까지 여섯번에 걸친 토론입니다. 그럼
시작합시다.
앞서 다섯차례의 토론에서 이 저서가 가지는
기본내용과 그 의의는 충분히 론의되였다.
하여 《자본론》은 맑스의 대표작이라는 평가라든가 그 내용에 있어서 《자본주의에 대한
사형론고장》 또는 《사회주의도래의 필연불가피성》 그리고 경제학에서는 물론 론리학에서까지 기성수준을 월등하게
초월한것이라는 평가를 이미 내렸다. 그리고 겸해 맑스가 처음에 법학을 하다가
철학으로 넘어가고 그리고 다시 경제학으로 돌아서게 된 경위도 구체적으로 분석되였다.
또한 토론들에서는 경제를 중시하여 그것을
사회의 《토대》라고 하였으며 나중에는 사회발전력사를 자연사적과정으로 본데 대하여서도 론의하였다.
때문에 오늘은 그에 기초해서 저서가 우리에게 불러일으키는 론리적총화와 교훈이
요구되였던것이다.
원시준이 먼저 발언하였다.
《개별적문제에 대해서 저는 먼저번에도
의사표시가 있었기때문에 로씨야혁명에 대해 한가지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피의 일요일>을 잘 아실겁니다. 대중적앙양으로
혁명적군중이 들고 일어났으나 1905년 혁명은 실패했습니다… 2월혁명도
부르죠아들에게 정권을 주는 결과를 빚어냈습니다. 그들이 <자본론>을 몰라서
그랬겠습니까. 아닙니다. 여기서
론점으로 찾아볼수 있는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당시 로씨야프로레타리아의
사상의식이 아직 미숙했다는 점도 있었지만 보다는 다른데 있습니다.
그들이 바로 옳바른 령도를 받지 못했다는
거기에 있을것입니다.》
원시준은 숨을 돌리고나서 말하였다.
《제가 말하자는것은 이런것입니다.
가만 보니까 리종화동무가 할 말이 많은것 같은데 언권을 그쪽으로 넘깁니다.
어서…》
원시준은 언제나 첫 토론이 문제거리였는데 이쯤
해놓아도 론의의 서막은 열어놓은셈으로 된다고 보았다.
하지만 리종화는 묵직이 앉은 자세에서 좀처럼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그때 엄한정이 일어났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앉아서 말하라고 하시였지만
그는 서서 말하는것이 더 편안하다고 하면서 선채로 서두를 떼였다.
《<자본론>을 놓고 혁명승리이후에 어떻게
하라는것이 없다는 견해도 있었습니다.
맑스는 1권을 출판한이후에 곧 서거했습니다.
만약 맑스가 살아있어서 집필을 계속했더라면 그 종착점이 어데겠는지 그건 알수 없지 않습니까.》
이렇게 용의주도하게 앞뒤의 아귀맞춤을 해놓고
분위기를 일별해보았다.
리종화가 고개를 이리 기웃 저리 기웃 하는것을
보면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는 기분이였다.
엄한정은 기왕 말을 뗀바에는 적극적인 공세를
취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수첩에 적어놓았던 토론원고를 잠간
훑어보고나서 다시 계속하였다.
《엥겔스는 맑스의 <자본론>에 대해 쓰면서 그
첫머리에 로동계급이 생겨난이후에<자본론>만큼 로동계급에게 유익한 책이 나와본적이 없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습니다.
그런만치 맑스주의에서 진수를 이루며 또한 가장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고 볼수 있을것입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이미 예고한것처럼 저서자체의
해석에 머무르지 말고 거시적인 견지에서 또 현대성의 견지에서 그 의의와 교훈에 대하여 토론해야 할것이라고 강조하면서
이렇게 계속하시였다.
《생산력과 생산관계 문제 등 맑스주의는 커다란
력사적업적을 이룩하였습니다.
그러나 <자본론>을 총화하고 교훈을 찾는 이 마당에서 우리는 응당 새로운 문제점을 찾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이께서는 잠시 동안을 두었다가 계속하시였다.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사람중심, 인간중심으로… 다시말해서 우리
수령님께서 내놓으신 주체철학의 견지에서 토론을 계속해서 연구를 심화시켜야 하리라고 봅니다.》
엄한정은 눈앞에 펼쳐지는 새로운 탐구의 세계를
더듬는듯 두눈을 가느스름히 쪼프리였다.
원시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을 나타내였다.
리종화는 두손을 마주잡고 앉은채 심각한 표정을 띠우고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방안을 둘러보다가 《자,
그럼…》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시였다.
휴식시간이 되였다.
이때도 역시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모두 로대에
나가 바람도 쏘이고 담배도 피웠다.
팔을 앞으로 들어올리고 량쪽으로 쭉쭉 펼쳐 가슴운동을 하시던 김정일동지께서 《자본론》과
관련한 일화를 하나 들어보겠는가고 물으시였다.
모두 그이를 둘러쌌다.
《신통치 않은 이야기입니다.
휴식을 위한 여담입니다. 1920년대에 있은 일
같습니다. 일본의 어느 한 기업가의 아들이 대학에 다니고있었는데 그가
공산주의물이 들었다는 소문이 돌았다고 합니다. 누구보다도 놀란것은 그의
아버지였습니다. 성이 독같이 난 아버지는 아들을 붙들어앉히고 따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그런것이 절대로 아니라고
뻗대였습니다. 그렇게
되자 애비는 아들의 따귀를 후려치면서 다그어댔습니다. 너희 학교에서는
경제학부학생전원이 빨간물에 들었다고 하는데 그래도 아니야 하고 어느 교수가 귀띔해준것을 내대였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계속 모른다고 뻗댔는데 그렇게 되자 아버지는 아들의 책장과 소지품을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벽장구석에서 몰래 감추어두고 보던 책이
한보따리 나왔습니다.
하나 집어들고 <공산주의원리>,
봐라, 이래도 아니야.
오! 또 <공산당선언>,
이놈아, 이 엉큼한놈,
그렇게 나가다가 그중 두툼하고 무게가 있어보이는 책이 하나 나왔는데 <자본론>이라 하고
아버지가 머리우에 높이 쳐들며 바로 이거야. 네가 볼 책은 이런거야.
공산주의의 공자 하나가 붙어도 안돼. 그러나 자본!
이 얼마나 좋은 말이냐.
자본이 있어야 하고 그것을 끊임없이 불궈나가야
한다. 이 책이 하나
나왔으니망정이지 이 애비가 네 팔목에 고랑을 채워 경시청에 끌고갈번했다.
다른건 다 태워버리고 이거 하나만 읽고 또
읽어라…》
김정일동지께서는 책을 뒤져서 휙휙 집어던지는
시늉을 해보이시다가 나중에 《자본론》을 머리우까지 들어올리는 늙다리의 흉내를 어떻게나 방불하게 보이시였던지 모두가
웃음보를 터뜨렸다.
원시준은 허리를 굽히고 빙빙 돌아갔고 언제나
반응이 뜬 리종화는 입을 싸쥐고 킥킥 소리를 내였다.
그중 볼만한것은 엄한정이였다. 자신이 좀체로
웃지도 않았고 웃음은 대체로 실없는것으로 통하기 쉽기때문에 여태 한번도 희극공연관람에 가본 일이 없다는 그였다.
그런데 그가 마치 일생동안의 웃음을 단꺼번에
터쳐놓기라도 하는것처럼 몸을 꼬면서 흑흑 숨을 몰아쉬였다.
몸가짐 그것만 보아서는 우는것인지 웃는것인지 알지 못할 그런것이였다.
모두들 흐뭇하게 웃고나서 방으로 들어왔다.
토론이 다시 계속되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좌중을 향하여 토론을 더
하라고 제기하시였지만 모두 《이제는 결속하십시오.》라는
표정으로 그이에게 시선을 모으는것이였다.
《그러면 제가 또 문제를 제기해보겠습니다.》
하고나서 그이께서는 수첩을 펼쳐 이미 적어놓았던데를 찾아내여 계속하시였다.
《먼저번에 <공산당선언>을 토론하면서 우리는
혁명발전에서 수령의 출현이 얼마나 큰 의의를 가지는가를 론의했고 겸해서 수령의 지위에 대해서도 언급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수령을 어떻게 받들어 모셔야 하는가 하는데 대한 태도와 립장을 토론하는것이
좋겠습니다. 현시점에서 볼 때 이것이 큰 의의를 가지고있습니다.
이와 관련한 엥겔스의 글을 하나 인용하겠습니다.》
그이께서는 수첩을 들고 읽으시였다.
《… 나는 여기서 나자신에 대하여 몇마디
말하려고 한다. 최근에
이 리론을 완성하는데서 내가 기여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그러므로
나는 여기서 이 문제를 명확히 하기 위하여 몇마디 말하지 않을수 없다. 내가
맑스와 40년간에 걸친 공동사업을 하기 이전에 있어서나 그 공동사업기간에
있어서나 이 리론을 창시하며 특히 그것을 완성하는데 있어서 어느 정도 독자적으로 기여했다는것은 부인할수 없다.
그러나.》 하고 그이께서는 들어올리였던 책을
내려놓고 좌우를 둘러보며 《이 대목에 방점이 있습니다.》라고 하고나서 계속
읽으시였다.
《그러나 지도적인 기본사상의 대부분은 특히
경제 및 력사 분야에서의 기본사상과 그의 최종적인 예리한 정식화는 맑스에게 속한다.
내가 여기서 했다고 하는것은
2∼3개의 전문부문을 제외하고는 맑스가 나없이도
용이하게 해놓을수 있는 그러한것이다.
그러나 맑스가 해놓은것은 나로서는 결코 해내지
못하는것이다. 맑스는
우리들중 그 누구보다도 훨씬 높이에 서있었으며 더 멀리 앞을 내다보았으며 더 많이 그리고 더 빨리 관찰하였다.
맑스는 천재였다.
우리는 기껏해야 수재이다.
그가 없었더라면 우리의 리론은 도저히 오늘과
같이 될수 없었다.
그렇기때문에 우리의 리론은 정당하게도 그의
이름으로 불리우는것이다.》
김정일동지께서 상기된 얼굴을 들어
《마지막대목을 다시 읽겠습니다.》라고
하시였다.
《그가 없었더라면 우리의 리론은 도저히 오늘과
같이 될수 없었다.
그렇기때문에 우리의 리론은 정당하게도 그의 이름으로 불리우는것이다.》
마지막까지 힘주어 읽으신 그이께서는 무게가
잔뜩 실린것 같은 수첩을 천천히 내려놓고 고개를 드시였다.
언제보나 이글이글 타는것 같은 그이의 눈빛은 한결 근엄해보이였고 사색이 함뿍 실려있다는것을
알수 있었다.
《이것을 놓고 토론을 좀더 심화시킵시다.》
그이께서는 수첩장을 번지면서 재촉하시였다.
《토론을 합시다.
이것을 놓고 맑스에 대해서, 엥겔스에 대해서
생각도 해보고 또 우리에 대해서도 생각해봅시다.》
잠시동안 침묵이 흘렀다.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나 문제제기가
뜻밖의것이였기때문이다.
엄한정은 그이의 문제제기를 누구보다도
충격적으로 받아들이였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생각되는바가 너무 많고 또한 범위가 넓어서
무엇부터 말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순서없이 말해보겠습니다. 여기서 저는
공산주의자들의 참된 의리를 읽었습니다. 사실 과학적공산주의를 창시하는데서
엥겔스의 역할이 어느정도였는가 하는데 대해서는 우리들이 이미 잘 알고있습니다.
그리고 <자본론> 첫권은 맑스가 직접 집필했고 그 다음권부터는 엥겔스가 썼다는것도 다 알려져있습니다.
그런데 엥겔스가 그토록 맑스를 존중하고 사상리론활동에서 언제나 그 성과를 양보하였으며
필생의 과제의 하나로 맑스를 내세우고있은것은 우리 공산주의자들이 본받아야 할 동지적우애의 모범이라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현대에 와서 실존주의가 만연되고 <인간도 짐승이다.>라는
인생관이 판을 치고있는 지금의 시점에서 볼 때 벌써 한세기전에 인간의 의리가 이 정도에 이르렀다는것은 인류앞에 커다란
자랑과 긍지로 된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맑스가 있었기때문에 엥겔스가 있었고 또
엥겔스가 있었기에 맑스가 있게 되였다고 말해야 할것입니다.》
이밖에도 엄한정은 학술문제에서 어떻게 서로
협조하고 보충하였는가 하는데 대하여 상세히 언급하였다.
엄한정이 자리에 앉자 리종화가 일어났다.
몸이 비대한 그는 자리에서 일어난것만으로도 옆에서 숨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그러나 토론은 뜻밖에 깊은 곬으로 뚫고나갔다.
《나는 엥겔스의 글에서 맑스가 지닌 몇가지
특징을 발견할수 있다고 봅니다.
우선 맑스는 첫째로,
학술적으로 단연 높은 위치에 이르렀다는것을 알수 있습니다.
맑스는 그 누구도 이르지 못하는 최정상의 높이에 있었습니다.
둘째로,
맑스는 그 누구보다도 멀리 앞을 내다보는 눈을 가지였다는 사실입니다.
셋째로,
그의 관찰과 감각의 풍부성, 다면성과 예민성을
들어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특징이 바로 맑스주의창시자로 만든 요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또… 그만하겠습니다.
그외는 엄동무의 토론에 동감입니다.》
대체로 말이 적던 리종화가 이런 정도로 첫째,
둘째 순서를 꼽아가며 론리를 전개해보였다는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였다.
《다음 또.》
하고 김정일동지께서 원시준을 바라보시였을 때 원시준은 《말씀해주십시오.》 하고
간청하였다. 그렇게 되자 그이께서는 팔목시계를 보고나서 말씀을 시작하시였다.
《토론들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반드시 한가지 말하고 넘어가야 할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공산주의자들이 자기수령을 어떻게 받들어모시는가 하는 태도문제입니다.
엄한정선생은 방금 그들의 관계를 동지적우애의
모범이라고 하였는데 저는 그와 함께 맑스라는 수령에 대해서 엥겔스가 어떤 태도와 립장으로 받들어모시였는를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수령에 대한 전사의 태도말입니다.
그러니 엥겔스는 공산주의운동력사에서 로동계급의 수령을 발견하고 그의 위업을 충성으로 받든
첫사람이라고 말할수 있을것입니다. 자신이 쓴 글줄에 그것이 맥맥히
흐르고있습니다.
맑스는 공상으로부터 과학에로 사회주의리론을
발전시켰습니다.
맑스는 사회주의사상과 사회주의혁명투쟁을
결합시켰습니다. 맑스는
자기의 한생을 바쳐 로동계급의 혁명위업에 이바지한 고상한 인품을 보여주었습니다
엥겔스는 맑스를 가리켜 우리의 수령이다,
또는 로동계급의 수령이다, 이렇게 표현을 하지
않았을뿐이지 그 사상, 그 의리, 그
태도는 스스로 그런 결론을 도출하게 합니다.
저는 여기서 우리 당의 총비서이신 김일성동지를
조선의 공산주의자들이 얼마나 충성으로 받들어모셔왔는가를 생각해보게 됩니다.
길림시기의 김혁,
차광수, 항일혁명투쟁시기의 오중흡,
권영벽, 리제순,
해방후에 김책, 안길,
강건 등등…
방금 리선생은 맑스의 특징을 세가지 들어서
분석했는데 우리 수령님의 특징도 그렇게 말할수있다고 봅니다.
자주성의 시대에 상응한 주체사상을
창시하시였습니다. 총을
들고 조국광복을 이룩하고 제국주의자들이 련합하여 달려든 전쟁에서 승리를 이룩하시였습니다.
우리 수령님께서는 밀림속을 행군하시면서 또는
숙영지의 우등불가에서 수많은 로작들을 집필하시였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잠간 말씀을 중단하고 방안을
둘러보시였다. 방안은
물뿌린듯 고요하여 흥분된 사람들의 숨소리마저 들릴 정도였다. 엄한정은 목을
꼿꼿이 세우고있었는데 눈물이 글썽해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시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이런 견지에서 우리는 우리 당과 우리 인민의
위대한 수령이신 김일성동지를 충성으로 받들어모시는데서 우리가 못다한 일이 무엇인가를 더듬어보아야 할것입니다.
수령을 모시는데 있어서 엥겔스와 같은 충신도 있었지만 베른슈타인이나 카우츠끼와 같은
배신자도 있었다는것을 명심해야 할것입니다. 오늘 현대수정주의자들은 수령의
업적을 허무는것을 맨 첫자리에 놓고있습니다. <개인미신>이요 뭐요
하면서말입니다.》
이때 그이의 심중에는 전쟁시기나 전후에
이러저러한 배신자들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지만 그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하시였다.
《어떻습니까.
명백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로동계급의 혁명위업을
지지찬동하는것만으로는 문제가 다 해결되였다고 말할수 없는것입니다. 거기에 바로
옳은 수령관을 가질 때만이 그것이 모두 정당한것으로, 의의있는것으로
된다는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토론은 매우 유익했다고 볼수 있습니다.
혁명에서 수령이 노는 역할,
수령을 받드는 충성심, 이것은 참으로 숭고한
개념입니다. 례를 들면 더욱더 명백해집니다. 3.1인민봉기가
전민족적범위에서 일어났는데 실패했습니다. 1925년에 조직된 공산당은 몇해
못가서 해산되고말았습니다. 이것이 모두 수령의 령도를 받지 못했기때문입니다.
그렇기때문에 저는 당건설과 당활동의 모든 분야에서 수령을 중심에 놓고 사고하고
행동해야한다는 견해를 세우게 되였던것입니다.》
이외에도 얼마간 설명을 보충하고 토론을
끝마치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엄한정을 좀 남아달라고
하시였다.
《여기 가까이 와 앉으시오.》
하고 그이께서 자신의 옆에 놓인 안락의자를 가리키시였다.
엄한정은 혹시 자신의 토론가운데서 어떤 문제가
제기되지 않았나 우려하는것 같았다.
그가 자리를 옮기였을 때 김정일동지께서는 팔걸이에 놓인 엄한정의 손우에 자신의 손을
얹으시며 다정한 시선으로 그의 얼굴을 쳐다보시였다.
《요새 건강이 어떻습니까?》
하고 그이께서 물으시였다.
《괜찮습니다.》
《그렇다면 혹시 정신적으로 어떤 고충을
느끼는것이 없는지요.》
《별로 없습니다.》
《믿어지지 않습니다.
어떤 고민이라도 있다면 말씀하십시오. 걱정을
털어놓는것만으로도 후련해질수 있잖습니까.》
엄한정은 어깨를 들었다놓으며 긴 한숨을
내쉬였다.
그자신의 《원문그대로!》가
무너지기 시작한것이다. 견고하다고 보는 그 옹벽이 어떻게 구축되였는가.
수많은 저작들을 읽고 또 읽으면서 명제를 발취하고 암송하고 카트에 적어서는 그것을 분류하고
편편히 널린것들을 하나로 모아놓고 그것을 제나름으로 만든 주형에 넣어 찍어내기도 하였다.
이렇게 한치한치 쌓아올린 옹벽이 거침없이
무너지는것이다. 100년사상사총화를
시작할 때만 하여도 그는 옹벽에 착실히 의지할수 있었기때문에 얼마간 신심이 있었다.
그런데 몇개의 저서를 연구하는 과정에 처음에는 놀라움을 가지게 되였고 그다음에는 커다란
진폭을 그으며 자신이 흔들리고있다는것을 알게 되였으며 《공산당선언》이나 《자본론》을 토론하면서부터는 자신에 대한
허무감이 해일처럼 밀려들기 시작하였다.
친애하는 김정일동지께서는 이 과정에
혁명리론에서 중핵을 이루고있는 수령에 관한 문제를 도출해내시였다.
그런데 학자들인 자기들은 이전에 새겨넣었던 그것을 그냥 되풀이하고있을뿐이였다.
한동안 말없이 앉아있던 엄한정은 고개를 들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제와서 보면 저는 당에서 가장 유해롭게 보고있는 교조주의를 범하고있었습니다.
100년사상사총화를 하면서부터 그것이 뚜렷이 드러났는데 요새는 그것때문에 밤잠을 이루지
못할 지경입니다. 까놓고 말해서 저는 여직 수령과 관련한 문제에서는 옳바른
생각이 미치지 못했습니다. 한생 맑스,
레닌의 저서를 뒤지고 그 글줄에서 하나하나 주어모으고 그것을 통채로 외웠습니다.
이제 와서 저는 자신이 오래동안 쌓아올린 고전숭배라는 견고한 옹벽이 여지없이
무너져내리는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리해할만합니다.…
바로 그렇기때문에 품을 들여 우리가 고전을 연구하고 토론하는것이 아니겠습니까. 100년사상사총화에
대한 은이 나타나는것 같습니다. 한데 다른 성질의것이지만 그외 어떤 고민이 또
있는것 같습니다. 그런게 있으면 말씀해주십시오.》
엄한정은 속으로 크게 놀랐다.
역시 그이의 예리한 관찰력권을 벗어날수 없는것이다.
다음순간 그것만이 아닌 뜨겁고도 세심한 인간애가 가슴을 흔들었다.
과연 얼굴의 어느 구석에서 그런 그늘을 찾아보시였을가.
다른곳도 아니고 이런 장소에서 그처럼 내색하지않으려고 애썼건만 그이앞에서는 마음의
밑바닥까지도 숨겨낼수가 없는것이다.
아니 숨기지 않고 다 토설하고픈 충동을
느꼈으나 강잉히 어설픈 미소를 지어보였다.
엄한정이 미처 말도 하기전에 바로 그런 어색한
랍장을 리해하신듯 김정일동지께서는 급히 말씀하시였다.
《혹시 제철소에 나가서 너무 무리하여 몸에
탈이라도?…》
《아,
아닙니다. 정 반대입니다.
현실에 나간것이 여러모로 얼마나 잘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말하자면 심신이
단련되고보니 사업의욕도 곱절이나 왕성해지고…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그들, 로동계급의 열정과 패기를 보니 병진로선 관철에서 신심이 생깁니다.》
김정일동지께서 물으시였다.
《유상철로장아바이를 만났습니까?》
《네… 그리구 한창수라는 그 제대군인도
만나고…》
《오,
그렇지. 한창수… 아주 쾌활하면서도 믿음직하지요?》
《네,
그렇습니다.》
이 순간 엄한정은 언뜻 리형걸이를 생각하였다.
그자신이 리형걸이 새로 한다는 로동계급물창작을 지지한것이고 따라서 그것이 결국은 리형걸이
오늘 백암림산사업소로 나가게 하는데 부채질을 한격으로 되지 않았을가?…
리형걸이 넉달동안 로동현장에서 혁명화를
하고있는데 연극단에서 얼마전에 사람이 내려갔다.
단장은 자기대신 부단장을 보내였다. 부단장은
그쯤했으면 충분히 자기 잘못을 반성도 했을것이고 새롭게 살아갈 결심이 생겼겠는데 어떤가고 하자 리형걸은 《여기에 와서
내가 옳다는것을 더 굳게 믿게 되였습니다.》라고 하였다.
부단장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러니 참,
끝끝내 <일편단심>에서 물러나겠다는거구만… 동무의 앞길이 어떻게 되겠는지 참.》
부단장은 리형걸의 생각이 리해되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그를 측은히 생각해서인지 고개를 흔들었다.
《후회하지 않도록 잘 생각해보오.》
《아니,
후회하지 않을것입니다.》
이렇게 되여 리형걸은 곧 불리워올라와
백암땅으로 파견장을 받았던것이다.
리형걸이 백암으로 떠나간 날 밤늦게야 집으로
돌아온 영심이는 눈이 퉁퉁 붓고 목이 쉬여있었다.
영심이는 아버지앞에 나타나 한쪽무릎을 세우고
앉아 치마꼬리를 조심스럽게 펴놓으며 말하였다.
《아버지… 나 형걸동무를 따라갈래요…》
《뭐?
따라가?… 왜?…》
《아버진 다 아시지요.
형걸동무 아버지가 사연을 다 말했다고 하던데요.》
《넌 결혼을 한것도 아니잖니?》
《그게 무슨 상관있어요.》
《…》
엄한정은 말은 못하고 들어올렸던 물고뿌를
방바닥에 동댕이치고 밖으로 나와 밤새껏 거리를 헤매다가 아침에야 돌아들어갔다.
북새동에서 떠나 모란봉고개를 넘어 대동문으로
나갔다. 대동교,
평천, 그다음에는 보통강을 따라 밤새 걸었다.
기운이 진해서 비칠거리며 걸었다. 늦장을 부리는
겨울의 아침해가 솟아오를무렵 그는 집에 돌아와 침대우에 쓰러졌다.
그로부터 약 일주일간 그는 변변히 먹지도
자지도 못하였다. 오직
했다는것은 《자본론》토론을 위한 준비작업, 그것을 겨우 마무리 했을뿐이였다.
이렇게 되다보니 눈이 쑥 들어가고 입술에는 덕지가 앉았고 말소리는 갈리였다.
그중에서도 마음의 창문이라고 하는 눈이 빛을 잃고 게슴츠레해졌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바로 이것을 감촉하시였던것이다.
엄한정이 항상 후회하는것이 자신의 소심성인데
이번에도 역시 그 소심성때문에 어데가서 말 한마디 비쳐보지 못하였다.
설렁한 방안에 가만 앉아만 있는데도 이마에
땀방울이 맺히였다.
그것을 띠여보신 김정일동지께서는 미간을 좁히면서 체온이 오르고 오한이 나지 않는가 물으시였다.
《아,
아니 일없습니다.》
목이 갈리고 말소리가 떨리였다.
《어서 말씀하시오.
아무래도 심상치 않습니다. 여직 눈치가 다른걸
나는 몸에 무슨 이상이 생겼는가 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보면 신상에 간단치
않은 사연이 있습니다.》
엄한정은 머뭇거리기만 했다.
《벌써
4시입니다. 점심도 건느셨는데 제 좀 생각해서
래일에…》
이런 기회가 오기를 얼마나 기다렸는가.
하지만 정작 이렇게 되고보니 어째서인지 엄한정이 뒤걸음을 치게 되였다.
《아닙니다.
시름이 있다면 그걸 한시도 묻어두어서는 안됩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진정으로 안타까와하시였다.
엄한정은 고개를 돌리고 또 긴 한숨을 내쉬였다.
이것이 소심성때문인가. 아니다.
이런 하찮은 개인사정으로 해서 그이를 괴롭힌다는것은 하나의 죄악으로 된다.
몇분 침묵하고있다가 엄한정은 드디여 입을
열었다.
《별로 큰것은 아닌데… 저한테 요새 걱정거리가
하나 있기는 합니다.》
하고 그는 무릎우에 놓인 마디가 굵은 자기 손을 내려다보면서 말하였다.
이렇게 되여 엄한정은 금년초부터 시작된
리기찬과의 관계,
형걸이와 자기 딸과의 관계를 죄다 말씀올리게 되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낯색이 달라지시였다.
그이께서는 담배를 두대나 련달아 피우시였다.
그동안 아무 말씀도 없으시였다.
엄한정의 말이 절반도 진척되지 않았을 때 벌써
그이께서는 사태의 본질과 그것이 엄한정이나 리기찬의 가정에 미치는 심각성을 짐작하시였던것이다.
그런데 엄한정의 말을 듣고보니 형걸의 아버지 리기찬이 해당 부서에까지 찾아왔다가 《정의를
지키기 위해 퇴각》을 한다고 단언한것으로 보아 이것은 기필코 어떤 작간이 있다는것이 확실하였다.
엄한정이와 헤여진 그이께서는 집무실로
돌아오시였다. 간단히
스쳐버릴 문제가 아니였다. 현재 나타나고있는 이러저러한 현상들은 그자체로서는
그닥 큰 문제라고 볼수 없었다.
국제공산주의운동안에 대두한 좌우경기회주의,
특히 현대수정주의의 역풍에다 대면 아무것도 아니며 그저 밀수품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외면해서는 안된다.
어느새 정원에서는 눈가루가 날리였다.
향나무가지우의 눈이 우수수 떨어졌다. 눈보라가
그이의 주위를 맴돌았다. 그이께서는 신발이 눈속에 파묻히는데도 끄떡없이
서계시였다. 그러다가 두손을 허리에 얹으시고 머리카락을 날리시며 불어치는
눈바람을 맞받아 걸음을 옮겨나가면서 정원쪽으로 더 깊이 들어가시였다. 그만큼
그이의 심정은 더 복잡해지시였다.
×
퇴근시간이 되자 곧바로 집으로 돌아온 엄한정은
서재로 쓰는 맨 끝방에 올라가 문을 후려닫고 의자에 앉았다.
낯을 잔뜩 찌프리고 창밖을 내다보고있다.
엄한정이 한껏 우울해진것은 딸 영심이때문이였고
또 그 문제자체를 왜 김정일동지께까지 말씀드리게 되였는가 하는 자책때문이였다.
몹시 경망스러운것이였다. 그이의 너그러움과 따뜻한
사랑에 끌린것이기는 하지만… 가정문제란 언제나 한가정 울타리를 벗어나지 말아야 하는것이다.
그런데 무슨 망녕이 들어서 사위의 편역을 들고 나아가서는 자기 딸이 처한 립장을
도와주었으면 하는 의도를 비치면서 실없는 말을 그렇게까지 하게 되였던가.
내가 그이를 모르고있는가.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있는 처지가 아닌가. 학교를
나와서 중앙당에서 사업을 시작하자마자 김정일동지앞에는 여러가지 복잡한 사업이 기다리고있었고 그것을 그대로
맡아안지 않으면 안되시였다.
어느덧 그이께서 당사업을 시작하신지 벌써3년이
되여온다. 그동안 매해 부담이 가증되여 최근에는 옆에서 보기 민망할 정도로
부하가 걸려 이틀이면 하루는 밤을 새우시고 어느 하루 식사시간이 지체되지 않는 날이 없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그런것을 잘 알면서도
오히려 심려까지…) 하고 엄한정은 뜨거운 입김을 내불며 한숨을 내쉬였다.
하지만 엎지른 물을 다시 퍼담지 못하는것처럼 어쩔 도리가 없었다.
문소리도 없이 안해가 나타나 어깨에 세타를
걸쳐주며 저녁식사가 준비되였다고 하였다.
《그러다가 몸져 누우시면 어쩔려구요…
그만하세요.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지 않나요. 자!
일어나세요. 당신이 좋아하는 비빔밥이예요.
어서…》
《그럼 한그릇 먹고 또 해봐야지.》
한숨을 쉬던 엄한정은 급기야 범상한체하면서 무릎을 짚고 일어섰다.
두리반에는 김이 문문 나는 밥과 통김치와
시뻘건 깍두기가 올랐다.
비빔밥에는 고사리가 제격이라 하였더니 식성에 맞추어 만문해보이는 고사리,
콩나물 등이 보이였다. 숟가락을 든 그는 문득
전에 없던 반주 생각이 났다.
《여보.》
하고 그는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이거 있으면 한잔.》
《네,
있어요.》
안해는 사뿐히 일어나 부엌에 나가 가시장을
열어 《삼로주》 병모가지를 잡고 들어왔다.
이전같으면 공복에 술은 소화기에 영향이 있다,
어떻다 하련만 뜻밖에 고분고분이다. 술이 유리잔에 찰랑찰랑 부어지자 엄한정은
흠흠 냄새를 맡아보더니 입술에서 쪼르륵 소리가 나게 마시였다.
《또 한잔.》
《안돼요.
40프론데 석잔이면 만족입니다.》
《아 아,
오늘은 자.》
잔을 내들고 웃는데 령감의 그 기분이 너무
고마와 안해는 두잔이나 더 선심을 썼다.
그렇게 되여 밥그릇이 낮아지고 김치보시기가 비여가건만 처음에 한번 들렸다가 숙여진 영심의
머리는 좀체로 바로서지 않았다.
술기운을 타면 사촌한테 기와집도 지어준다지만
엄한정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더 정신이 멀쩡해지고 조심스러워진다. 그는
게슴츠레해진 눈덕을 들고 맞은켠을 건너다보았다. 딸 영심이는 활짝 피여난
한송이 꽃같은 처녀였는데 요즘은 그것이 서리를 맞은것처럼 되였다.
밥을 씹으며 딸애를 물끄러미 바라보느라니 가슴
한쪽구석에서 불이 일기 시작하였다.
옛적에 누군가는 인생은 고행이라고 했다. 그러니
이제 그앞에 무슨 일인들 없을것인가. 그러나 그것이 너무나 일찌기,
너무나 가혹하게, 너무나 뜻밖에 다닥치고있는것이다.
꽃은 아진 망울도 터치지 못했는데 모진 광풍은 잎을 뜯어내고 가지를 부러뜨리려 하고있다.
그래 꽃나무는 모지름을 쓰면서 바들바들 떨고있다.
밥 한그릇을 거의 비우는동안 엄한정은
진홍색세타에 장발머리를 뒤에 질끈 동여놓은 윤기도는 딸애의 머리태를 바라보고있었다.
밥상가녁에서 고개를 숙이고 밥을 뜨는둥마는둥 하면서 아버지의 괴로운 심리적움직임을
살피고있던 영심이는 살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순간 그의 얼굴을 피뜩 띠여보게 되여는데 눈이
퉁퉁 부었고 온통 눈물범벅이였다.
엄한정은 가슴에 전류가 흐르는것 같은 자극을 느끼며 손으로 가슴을 눌렀다.
《자식이란 그저… 에익.》
딸자식 하나 고이고이 자래웠다가 이러한 풍파가
들이닥칠줄 누가 알았으랴.
사랑의 응결체가 고통의 응결체로 변해버리다니.
그러나 딸아이의 정신에는 고결한데가 있었다. 그래서 그것은 그것대로 옳고
타당성이 있으며 동정이 갔다.
엄한정자신도 벌써 여러번 말했지만 정식 결혼을
한것도 아닌데 굳이 지방에 나가는 남자를 따라갈 필요가 있는가,
더구나 너는 이집의 외동딸이다, 너 없는 이 집을
생각해보았느냐? 하였건만 영심이는 《나는 교육자입니다.》라고
한마디 했을뿐이다. 엄한정자신이 이전에 교단에 섰던 경력이 있었던지라 리해가
갔으나 일단 일이 복잡해졌을 때 그렇게 립장을 세운다는것은 결코 조련한 일이 아니라는 측은한 생각까지 들었다.
딸이 나이로 보아도 다 자랐고 또 리성의 키도 이제는 상당히 자란 성인이라는 대견스러운
생각도 들었다.
《여보.》
하고 불러놓고 영심이가 사라진 부엌쪽을 가리키며 안해에게 말하였다.
《저애는 이젠 어쩐다오.》
《쟈 일이 정말 골치거리야요.
래일 떠나겠다는겁니다. 눈치를 봐가다가 직방
아버지한테 말하겠다고 했는데 자꾸 울기만 하다가 저렇게 자리를 피하고마는군요… 여보,
내버려둡시다. 의지가 있으면 거기 가서도 예술을
할수 있는거구 또 영심이는 교육자로 있음 되잖아요. 그러다가 요행 형걸이문제가
풀려서 또 올라오면 오는거구. 우선 난 당신이 너무 그러니까 막 속상해
못견디겠어요. 쓩이 되든 개가 되든 운명에 맡겨둡시다.》
《속이 편안해서 좋긴 하겠소.
그건 그렇고 요새 형걸이녀석은 아무 말이 없습데?》
《형걸이는 며칠전에 영심이한테 와서 자기
불행을 남에게까지 미치게는 할수 없다면서 전번날 왔던 그것으로써 완전히 절연이라고 선포했다는군요.》
《완전히 절연이라.》
이때 엄한정은 제철소에서 만났을 때 작품에
대한 구상을 듣고 형걸이를 지지했던 일을 상기하였다.
《영심이는 형걸이가 그렇게 나오기때문에
더더구나 배반할수가 없다는거죠.
영심이 말은 차라리 우리는 약혼한 사이니까 같이 가자 하고 나왔다면 안갔을거라구 합디다.》
《아,
참말 쉑스피어의 <로미오와 쥴리에트>도 왔다가 울고 가겠는걸…》
엄한정은 긴 한숨을 내쉬면서 다시 서재로
건너갔다. 그는
습관적으로 론문원고를 꺼내놓았다. 책상앞에서도 오랜 학자생활에서 습관된
기분전환이 얼른 되지를 않았다.
얼마후에야 엄한정은 자신을 다잡고 자기의
론문세계에 잠겨들기 시작하였다.
그는 생산자대중의 주인으로서의 역할, 당위원회의
집체적지도 이런 개념들이 차츰 생생히 떠오르면서 그것을 론문체계에서 두드러지게 할 궁리를 하였다.
하지만 때없이 자꾸 생각이 헛갈리였다.
무엇인가 지꿎게 사색을 방해하는듯하였다.
마침내 그는 어슴푸레 떠오른 사색의 실마리를
잡아쥐고 론문의 체계부터 고치려고 하였다.
딸 영심이문제를 잠시나마 잊을수 있는 그런
순간이였다.
《아버지!》
누가 부르면서 잔등을 흔드는 바람에 엄한정은 와뜰 놀라 깨여났다. 책상에
엎드린채 깜박 잠이 들었던것이다.
안경을 벗으며 돌아다보니 영심이였다.
뒤따라 안해가 나타나 잠옷을 내놓으며 침대에 누우라고 하였다.
이때 영심이가 아버지 귀에 대고 말하였다.
《나 아침차로 떠나요.
그런줄 알고계셔요.》
《뭐 아침차?》
《본평양역에서 아침
9시.》
《정말이냐?》
《어머니랑 다 의논이 있었어요.》
입이 붙어 더이상 말이 나가지 않았다.
엄한정은 책상뽑이를 열고 수면제 두알을 먹고
자리에 누웠다. 눈을
감은 그는 《맘대로 해라, 맘대로…》 하고 거듭 같은 말을 외워보았다.
그러느라면 가슴이 좀 진정될것 같았다.
한편 영심이는 아래방벽에 기대여 뜨개질을
하고있었다. 어깨가
넙적한 남자세타를 뜨는것이다. 벌써 초겨울부터 영심이는 아버지입은 속옷이 물이
날았고 류행에도 무척 뒤떨어졌다면서 모실을 사서 손수 떠주겠다고 했던것이다.
그러나 아직 끝내지 못했다. 그래 오늘은 밤을 새워서라도 마무리를 할
작정이였다.
영심이옆에서는 그의 어머니가
트렁크를 열어보고 갖출것이 다 들어있는가를 알아보고있었다. 그러다가 젊은것들은
어른들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고 푸념을 하면서 또 한개의 트렁크를 내려다놓고 이것저것 주어담고있다.
《어머니,
인차 또 왔다가겠는데…》
《야,
정신있니. 여름이면 몰라라 이 추운 겨울에.
거기는 또 춥기로 유명한데 내의를 넉넉히 가지고 가야 해.》
다심한 녀인은 밤이 깊었는데도 트렁크며
구럭이며 영심이가 입을 옷가지들을 손질하고있다.
그러다가 차츰 말이 적어지길래 영심이가
이상하다 하고 건너다보니 돌아앉아 울고있었다.
머리수건을 벗어서 입을 가리우고 어깨를 들먹거렸다.
《엄마!》
영심이의 말소리도 떨리였다.
《엄마가 그러면 난 어떻게 해요.
노상 죽으러 가는것도 아닌데 엄마는 공연히…》
그럴수록 녀인의 어깨는 더 높이 오르내리였다.
《엄마!》
뜨개질을 그만두고 영심이는 구석에 옹송그리고
앉은 어머니를 부둥켜안았다.
《엄마,
왜 그래요?》
《누가 어쨌니.》
녀인은 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며 목에 감긴 딸의
손을 끌어내린다.
이렇게 되자 영심이의 가슴이 왈칵 흔들리였다. 한숨을 내쉬며 가슴에 손을
가져다대였다. 손밑에서는 쿵쿵소리가 들릴만치 심장이 뛰고있다.
두무릎사이에 이마를 눌러댄 영심이도 울기 시작하였다.
생각하면 참으로 허무하기 그지없다.
누가 꼭 오라는것도 아니고 또 꼭 가야 할
용무나 어떤 의무를 지닌것도 없는 길인것이다.
그러나 심장은 꼭 가야 한다고 재촉하고있다.
이제 어떤 일에 부닥치게 될지 그것은 누구도 모른다.
그러나 의지력이 강한 사나이와 동행한다면 그 모든것을 이겨낼것 같은 신심이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가 늘 말하는 그것, 《당을 믿으라.》
그것이 오직 마음의 기둥이 되고있다. 당은 정의의 화신이다,
정의는 이긴다… 교단에 서서 어린 넋들앞에서 자랑스럽게 웨친 정의,
그것은 꼭 이긴다.
시간이 퍼그나 흘렀다.
벌써 3시가 되였다.
그러나 영심이도 무릎을 세운채 앉아있고 구석쪽에 돌아앉은 녀인도 그대로였다.
가뜩이나 불면증이 심한 엄한정은 자는지 어쩐지 숨소리마저 없다.
영심이는 뜨개질을 하던것을 다시 집어들고 얼마
남지 않은 마무리를 마저 해치웠다.
그런후 그는 부엌으로 나갔다.
마지막삼아 아침을 잘 지어볼 생각이였다. 물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조심 쌀을 일고 동태국을 끓이였다.
어느덧
5시가 넘었다. 서둘러야 하였다.
어머니를 깨우고 아버지의 방문짬을 들여다보니 잠들었는지 아니면 그저 누워있는지 알수없었다.
이 집 가풍으로서는 누구든지 먼길을 떠날 때에는 온 가족이 정거장까지 나가 바래워주군하였다.
영심이는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일찌기 집에서 나설 작정이였다.
웃방에서 아버지의 기침소리가 났다.
늘 이맘때면 깨여나군하였는데 역시 그 시간에 일어나신것이다.
어머니가 밥상을 들여왔다.
아침을 대수간 치른 세식구는 각기 제 할 일을 서둘렀다.
이때 영심이가 조마조마하게 생각한것은 아버지가
《정거장까지 같이 가자.》
하고 나설것 같은 느낌이였다.
영심이는 입었던 솜옷을 벗어놓고 양복저고리의
단추를 채우고나서 잠간 생각하였다.
《그렇지 세타.》
영심이는 농짝안에 정성스럽게 포개넣은 세타를 꺼내였다. 티 하나 없이
다듬은것이다. 두손으로 세타를 받쳐든 그는 아버지앞으로 다가갔다.
《아버지,
입어보세요. 실이 좋아서 포근할것 같아요.》
쌍까풀진 눈이 아버지를 정답게 쳐다보면서
웃고있다.
《이걸 입으시면 감기에도 안걸릴거야요.》
엄한정은 세타를 받아서 훌쩍 어깨에 걸치였다.
《좋구나,
꼭 맞는다. 색갈도 곤색이니까 더 젊어보이구.》
좋도록 말은 하는데 얼굴은 서글픈 빛을 띠였다.
《그래,
이제 떠나겠다는거지.》
엄한정의 목소리는 갈리였다.
《가서 직장이랑 정하고 인차 왔다가겠습니다.
군교육부에서는 읍에 빈자리가 하나 있다고 했답니다.》
《그럭저럭 살아갈수야 있겠지.
그런데 형걸이는 떠났느냐?》
《벌써 며칠전에 떠난다고 했으니까요.
그후는 인연을 완전히 끊자고 했구요.》
엄한정은 더 물을 말이 없었고 그 무슨 주의를
준다든가 깨우쳐줄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럼 떠나거라.》
엄한정은 영심의 등을 떠밀면서 한걸음 앞으로
나섰다. 그런데
영심이는 다시 돌아서서 발을 모으더니 몇초동안 아버지의 얼굴을 말끄러미 쳐다보고있다가 고개를 깊이 숙이며 절을
하는것이였다.
《아버지,
안녕히 계세요.》
그렇게도 맑고 챙챙하던 음성은 너무 젖어서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수 없고 고개를 숙일 때 눈굽에 솟아올랐던 이슬방울이 아래로 떨어져내리는것이 보이였다.
엄한정은 어깨를 쓸어만지며 입술을 굳게 사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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