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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서《불멸의 력사》 장편소설
석윤기 (제16회) 제 2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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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발구는 쏜살같이 산굽이를 돌아갔다. 행인이 드문 길이라 채 다져지지 않은 눈이 뽀얀 눈보라를 일으키며 말발구의 형체를 삼켜버렸다. 쌩- 쌩! 얼어붙은 대기가 걷잡을새없이 달려드는 말발굽소리에 놀란듯 비명을 질러댄다. 한겨울치고는 비교적 푸근하고 드물게 바람기도 잦아든 날씨였다. 그러나 말발구가 어찌나 세차게 달리는지 볼편의 가죽을 예리한 칼로 에이는것 같았다. 《허허허, 비슷하오. 아주 비슷해!》 마부대에 한절반 일어서시여 연신 채찍을 휘둘러대시던 김일성동지께서는 오정혁의 이야기를 들으시고 호탕하게 웃으시였다. 《그 술자리이야기를 들으니 부강촌의 분위기가 손에 잡힐것같이 환하오. 결국은 절벽같아보이는 부강촌에도 뚫고들어갈 틈사리가 있고 디디고설 발판이 있다는것을 말해주는거요. 부강촌의 생활전반을 그 술판처럼 뒤흔들어놓아야 하오. 안영호와 그 일가를 고립시키고 남칠이같은 동요하는 사람들을 우리 편에 끌어붙이고 보위단내부로 뚫고들어가야 하오. 우선 남칠이같은 사람을 걷어쥐시오.》 《그러나저러나 머슴살이를 꽤 해낼것 같습니까? 아버지는 아직도 남칠이를 데려왔으면 하는 눈친데 일손이 서툴다는것이 드러나면 다른 각도에서도 위험이 생길수 있습니다. 안윤재령감과 매일 만나다싶이 하는데 무슨 말을 할지도 모르고…》 오정혁은 한옆에 팔짱을 끼고앉아 그이의 얼굴을 미타한 눈길로 바라보며 벌써 몇번째 같은 걱정을 되풀이하였다. 《작은 주인님, 그래 내 말 다루는 솜씨가 어떻습니까? 우리 고향엔 말발구는 드물고 달구지가 많지만 달구지나 발구나 다루는 묘리에는 별반 차이가 없을것 같은데요.》 김일성동지께서는 어느새 몸에 밴듯한 이고장 머슴군들의 말투를 흉내내시며 능숙한 솜씨로 채찍을 휘두르시였다. 낄낄 혀를 차면서 채찍을 허공에 대고 휘두르시면서도 말에 대한 애정이 담긴 그 거동은 너무나 신통해서 오정혁이도 시무룩이 웃어버렸다. 《정혁동무.》 김일성동지께서는 가볍게 말잔등을 한번 후리신 다음 은근한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동무는 어디까지나 엄한 주인이 돼야만 내가 일을 실수없이 할수 있다는것을 명심하오. 얄팍한 소부르죠아적인 동정심이나 감상주의는 철저히 버려야 하오. 동무도 이번 기회에 그 샌님같은 성격을 무장투쟁의 요구에 맞게 강철같이 단련시켜야 하오. 이것은 어떤 방편이나 부탁이 아니라 조직이 주는 과업으로 접수해야겠소.》 《알겠습니다.》 오정혁은 고개를 떨구고 나지막하게 대답했다. 말발구는 해가 어슬어슬할무렵에 부강촌언저리에 나섰다. 동네가 가까와질수록 눈이 더 잘 다져져서 얼음판처럼 반들거리는 산기슭의 좁은 길로 짚동가리만한 나무지게가 천천히 걸어가고있었다. 워낙 나무짐이 엄청나게 커서 지게목발과 그밑에서 잔뜩 긴장된것이 알리는 허름한 솜바지속의 두다리가 느껴질뿐 사람의 형체는 드러나지부터 않았다. 뒤에서 달려오는 발구소리를 듣고도 남았겠는데 뒤 한번 돌아보는 법 없이 똑같은 속도로 걸어간다. 길을 피해줄 생각이 있으면 아래쪽으로 두어걸음 물러나서 옆으로 돌아서면 되겠는데 무슨 심술인지 아예 뒤를 돌아볼 궁리조차 하는것 같지를 않다. 그러나저러나 달구지가 다니게 되여있는 길을 나무짐을 지고 독차지한다는것은 경우가 틀려도 보통 틀리지 않았다. 《저게 아마 그 송남칠이 같습니다.》 《커다란 나무짐으로 앞길을 턱 막고있는것이 매우 상징적이요. 그런데 동무는 동네사람이 나타났는데도 여전히 말버릇을 못고치는군. 주인행세를 하시오. 누군지 모른체하고 냅다몰게 하란말요.》 김일성동지께서는 오정혁을 엄하게 돌아보시며 귀전에 대고 낮게 속삭이시였다. 오정혁은 낯빛이 긴장되더니 동네쪽을 기웃해보았다. 아닌게아니라 이대로 가다가는 여드레팔십리걸음을 하는 나무지게 뒤를 수걱수걱 따라갈수밖에 없으니 동네사람들보기에도 체면이 우습게될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천성적으로 부드러운 성미를 타고 난 사람이라 이런 때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궁리가 떠오르지 않았다. 《여보, 길 좀 내오.》 김일성동지께서 다시 돌아보셔서야 정혁은 한절반 허리를 일으키고 소리쳤다. 그러나 남칠은 못듣는것처럼 하고 여전한 걸음으로 느릿느릿 걸어간다. 《저게 아마 귀가 먹은 사람같습니다.》 하고 김일성동지께서 일부러 목청을 돋구어 말씀하시였다. 《눈구뎅이에 처박아버리고 갑시다.》 《이사람아, 그러면 쓰나.》 오정혁이도 이제는 별수없이 주인태를 내며 소리쳤다. 《거 누구요? 길 좀 내오.》 《귀먹쟁이 보고 긴말할것 없어요. 저런것은 눈구뎅이에 처박아야 버릇이 들어요.》 김일성동지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고는 한참 말을 세우고 다시 거리가 벌어질 때를 기다렸다가 별안간 끼랴! 하고 채찍을 휘두르시였다. 가죽채찍이 허공에서 앙칼진 소리를 질렀다. 여태까지 먼길을 숨가쁘게 달려온 말은 잠시라도 다리쉼을 하게 된것이 다행스러워 천천히 갈기를 날리며 머리를 주억거리다가 불의에 내리치는 채찍소리에 놀라 후닥닥 뛰여오르더니 모둠발로 달리기 시작하였다. 갈기와 코등에 싯허옇게 내불린 성에가루가 해빛에 반짝거리며 휘뿌려졌다. 남칠이는 그제야 찔끔해서 길아래로 내려서면서 말발구를 쏘아보았다. 말발구는 저만치서부터 길을 버리고 눈덮인 수수밭속으로 들어서더니 남칠의 얼굴에 눈가루를 휘뿌려던지며 씽하니 옆을 째고 나가서 다시 길우에 올라섰다. 《정혁이, 너 어디 두고보자!》 남칠이가 작시미로 삿대질을 하며 소리쳤다. 《귀먹쟁이는 아니군요.》 김일성동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남칠이는 어이가 없는지 《뭐 귀먹쟁이? 내가 귀먹쟁이면 너희들은 참봉이야?》 하고 소리쳤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오정혁이와 눈길을 마주치며 미소를 지으시더니 말을 세우고 길우에 성큼 뛰여내리시였다. 도끼눈을 해가지고 슬금슬금 다가오던 남칠이는 길우에 내려서시는 그이를 보자 작시미를 슬그머니 가슴앞으로 끌어당겨 단단히 틀어쥐였다. 《형님, 이거 미안하게 됐수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스스럼없이 말을 붙이시였다. 《진작 말을 할것이지 돌아도 안보니 난 또 귀가 멨는가 했수다.》 《자네 누군가?》 남칠이는 그이 앞에 딱 뻗치고서서 으르릉거리는 투로 물었다. 가까이 다가서니 나무짐이 산더미같이 우람차게 솟아보였다. 《나요? 난 증손이라구 해요. 앞으로 한동네에서 살겠는데 잘 돌봐주우다.》 이때 오정혁이가 발구우에서 소리쳤다. 《그 사람이 우리 집에서 3년계약으로 머슴을 살게 됐네.》 《흠- 그러니 오별장네 머슴인가? 그 령감이 뭐 어찌고어찌고 하더니…》 남칠이는 무엇인가 알아들을수 없는 소리를 입안에서 웅얼거리며 다시 그이의 모습을 하나하나 뜯어보았다. 아무리 뜯어보아야 명월구에서 떠나실 때 충분히 준비를 갖추었기때문에 어느모로 보나 머슴으로서 《손색》이 없는 차림이였다. 게다가 그이의 구수한 서도사투리가 진실감을 보태주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남칠이가 혼자 웅얼거리는것이 자기가 일단 거절한 머슴자리이기는 하지만 정작 딴사람이 나타나고 보니 서운해한다는 눈치를 채시고 더욱 허물없이 말씀하시였다. 《난 여태 구차하게는 살아도 머슴살이는 처음인데 꽤 견디여내겠는지 모르겠수다. 형님보기에 그 집 인심이 어떤가요?》 《흥, 인심이 어떻긴 어때, 무던하지. 주인을 앞에 세워놓고 주인집인심을 묻는걸 보니 눈치가 빠르겠군.》 《웬걸요. 난 아무데 가나 눈치가 무디다는 말을 듣지 않아요? 참, 형님, 짐이 무겁겠는데 그 지게를 벗어놓으시오. 가는길에 내 져다주지요.》 《뭐 자네가 내 짐을 져?》 남칠은 놀란듯이 되받아외우다가 시무룩이 웃었다. 《자네가 눈치가 무디다는 말을 듣고 제꺽 눈치빠르게 놀자는것같은데 이 송남칠이는 그런 얼림수에 넘어가지 않아. 그리고 이 짐은 자네는 지고 일어나지도 못해.》 김일성동지께서는 송남칠이라는 이 사니이가 부강촌사람들에게 큰 말썽군처럼 치부되여있지만 실상 그리 무딘 인간이 아닐뿐더러 어딘가 약고 심술스러운 구석까지 있다는것을 첫눈에 간파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일부러 그 말에 위압이라도 느낀듯 고개를 기웃하시고나서 남칠의 주위를 빙 한바퀴 돌며 나무짐을 살펴보시였다. 《두짐반은 되겠시다. 그러나 내가 한번 져봅시다. 못일어나면 내가 엿을 한근 내지요.》 《뭐 내기를 해? 기왕 내기를 할바에는 술이라도 낼것이지 엿을 낸단말이야?》 《난 술은 못먹어요. 그리고 돈도 없구요.》 김일성동지께서 남칠이와 이런 말을 주고받는 사이 오정혁은 천천히 말발구를 몰고가다가 아무래도 그이의 일이 안심치 않아 몇번이고 주저한 끝에 소리쳤다. 《이사람 증손이, 어서 오지 않구 그 사람과 무슨 이야기를 하나?》 《예, 이제 갑니다.》 하고 김일성동지께서 공손하게 목청을 뽑아 대답하시고는 남칠의 옆구리를 툭 건드리시였다. 《어서 내려놓고 저 말발구 좀 타고 가시우. 내가 형님을 잘못보고 욕을 했으니 형님더러 엿사라고는 안하겠수다.》 《허 이 친구 재미있다. 어디 그럼 얼마나 힘을 쓰나 좀 볼가?…》 남칠이는 오정혁이가 새 머슴을 데리고 온다는것을 느낀 그때부터 공연히 뒤틀려지던 마음이 저도 모르는 사이 스르르 풀려서 산턱에 치우쳐 지게목발을 쿵하고 내려박았다. 그는 김일성동지께서 질빵을 걸치고 한쪽 무릎을 꿇으시자 《이사람, 미끄러지겠네.》 하고 나무단을 받쳐주며 왼심을 썼다. 오정혁이도 긴장되여 말을 멈추어세웠다. 그의 생각에는 남칠이가 저쯤 큰소리를 치는 나무단을 과연 김일성동지께서 져내실가 하는 걱정도 있었지만 정작 머슴들의 세계에 주저없이 몸을 푹 잠그시는 그이의 모습을 뵈옵는것이 눈물겨웁기도 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단단히 뻗친 작시미를 꽉 움켜쥐시고 눈우에 무릎을 꿇고 앉은 바른다리에 힘을 주시였다. 허리를 솟구려 하자 짐이 머리우로 쏠리면서 기울기울한다. 아닌게 아니라 만경대에서부터 오가자, 명월구에 이르기까지 농사일이라면 별일을 다 해보셨지만 이렇게 큰 짐을 져보신적은 없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공작상 명목이 머슴인것만큼 이런 짐을 조석으로 져야 한다. 더우기 동네에 대한 공작이나 다른 지방과 조직에서 오는 보고를 산속에서 이런 나무짐을 져내리면서 토론하기로 오정혁이와 이미 짜놓았기때문에 무엇보다도 나무짐을 지는 일에 익숙해져야 하며 누가 봐도 그럴듯해야 하는것이다. 그렇다고 따로 련습을 할 시간은 없다. 이렇게 사람을 사귀면서 짐을 지는 련습도 하고 오별장네 집에 새로 온 머슴이 일을 잘한다는 소문도 내놓아야 하는것이다. 가까스로 바른다리를 펴고 허리를 일으키시자 왼쪽발이 눈우에서 미끄러졌다. 그바람에 댓걸음이나 옆으로 지쳐서야 겨우 몸의 균형을 바로잡으시였다. 《아무래도 형님은 못당하겠군요. 엿 한근 밑졌는데요.》 한순간에 내솟는 이마의 땀을 소매로 훔치며 이렇게 말씀하시자 남칠이가 묵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아니야. 그만하면 괜찮아. 우리 동네에서 이 나무짐을 지고 일어설 사람은 아마 저 안윤재령감밖에 없을걸.》 《안윤재령감이 그렇게 힘을 쓰나요?》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네만 한 3년전에 씨름을 안아봤는데 만만치 않더군. 내가 자네한테 진셈이니 밤에 우리 집에 오라구. 내 술 한상 내지. 그 짐을 보면 백두산호랭이도 피똥을 갈기겠는데 대장부가 엿내기를 하다니 말이 되는가?》 《고맙수다. 그럼 형님한테서 술을 배우지요. 어서 발구를 타시우. 주인이 성나지 않게 말 좀 해달라구요.》 김일성동지께서는 걸핏하면 한쪽으로 쏠리려는 나무짐의 균형을 잡으려고 신고하시면서 남칠이를 옆구리로 떠미시였다. 남칠이는 걱정스러운듯 나무짐과 그이의 얼굴을 살피더니 말발구로 다가가 자연스럽게 마부자리에 올라앉았다. 오정혁의 채찍을 슬그머니 빼앗아쥔 남칠이는 말잔등을 가볍게 건드리며 말했다. 《괜찮은 사람을 얻어오는군. 오별장령감이 인복이 있는 령감이야. 눈치가 좀 무딘것 같지만 머슴이 똑똑해서는 뭘하겠나. 말썽이나 부렸지.》 그 어조는 어딘가 제 신세타령처럼 침울하게 울려왔다. 말발구뒤를 따라가면서 그 말을 다 들으신 김일성동지께서는 아래다리가 후들후들하도록 짐이 실리는데다 길까지 미끄러워 숨을 톺기도 힘드셨지만 쾌활한 목소리로 말씀하시였다. 《형님, 말을 때려몰라구요. 난 얼마든지 따라갈수 있수다.》 남칠이는 뒤를 돌아보더니 못들은것처럼 하고 부시럭부시럭 담배를 말았다. 부시를 툭툭 치면서 그는 오정혁에게 넌지시 귀띔하였다. 《안윤재령감한테 사람을 떼우지 않게 하라구. 요즘 그 령감은 저런 어수룩한 친구들과 총을 보기만 해도 제손에다 걷어뫃느라고 돈을 아끼지 않는다데.》 오정혁은 잠자코 있었다. 그는 속으로는 남칠이가 역시 속은 살아있는 사람이구나 하는 확신을 가지게 되였다. 말발구가 동구길에 들어서자 우선 보위단 경비막에서 단속을 당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여기서 차기득이와 상범이 같은 보위단원들과도 한참 이야기를 나누신 다음 좀 뒤늦어서 발구뒤를 따라 동구길로 들어서시였다. 경비막에서부터 남칠이가 말발구를 타고오고 그의 엄청난 나무짐을 지고 오별장네 새 머슴이 온다는 소문이 어느새 동네로 쫙 퍼져갔다. 팽이채며 썰매를 든 아이들이 골목초입에서부터 묻어다녔다. 저녁을 짓던 젊은 아낙네들이 담장너머로 내다보고는 수군수군하였다. 《눈치가 정 무딜것 같지는 않구만그래.》 《겉을 봐서야 사람속을 아나요. 그러나저러나 순애 아버지 저 모양을 보라구요. 제법 제집 머슴이나 데려오는것 같수다레.》 김일성동지께서는 아낙네들이 까지르는 소리를 다 들으셨지만 아무것도 못들은것처럼 싱글싱글 웃으시였다. 《에그, 웃는걸 좀 보지. 막 정들게 웃지 않아요.》 하고 한 아낙네가 입을 싸쥐고 웃으니 《아무리 머슴이라도 다 숙성한 총각보고 그런 말버릇이 어디 있어.》 하고 다른 아낙네가 옆구리를 내지르더니 함께 까르르 허리를 잡고 웃었다. 오별장네 집에서는 머슴이 온다는바람에 일가가 바깥마당에 나와 서성거리고있었다. 안윤재와 함께 부강촌에서 기와집을 쓰고사는 유일한 집이라지만 실상 가산이 그리 넉넉한 편이 못되는 오씨일가에게 있어서 머슴이 어떤 사람이 오는가 하는것은 동네의 그 누구보다도 궁금했지만 주인된 체면때문에 나가보지는 못하고 집안에서 기다리자니 좀이 쑤셔서 못견딜 지경인데 들려오는 첫 소문이 기분을 잡쳐놓았다. 사람이 얼마나 숙보였으면 저나 비슷한 처지의 남칠이가 주인보다 먼저 머슴을 부린단말인가. 늙은 두 량주도 말은 안했지만 속으로 기분이 썩 좋지 못한데 정란이는 《흥!》 하고 코방귀를 내불며 옹알거렸다. 《오빠가 골라온다는 사람이 오빠같겠지 별수 있어요. 용해빠져서 만날 남의 체면이나 잡혀돌아가는걸, 내가 어릴 때 자기 동무들에게 쥐여박혀도 말 한마디 못하고 반편같이 웃기만 하더니…》 이러는판에 말발구가 바깥마당으로 들어서고 정혁이와 남칠이가 함께 뛰여내렸다. 《아버지, 다녀왔어요.》 정혁이가 인사를 하니 오별장은 고개만 끄떡이고 대문가를 내다본다. 낟알달구지가 마음대로 드나드는 대문을 가득 메우며 나무짐이 들어섰다. 제가 큰일이나 하고 온것처럼 섬돌에 척 걸터앉았던 남칠이가 그제야 놀라서 소리쳤다. 《이사람, 그 나무짐일랑 거기다 내려놓게. 내가 지고갈거니까.》 《그럼 이길로 아예 지고갑시다.》 하고 잘 울리는 목소리가 맞받아쳤다. 그냥 옹알거리면서도 호기심이 나서 대문가를 지켜보고있던 정란이가 입을 비쭉 내밀었다. 《이사람 너무 고맙게 구는군. 이제는 주인집에 왔는데 주인령감님이랑 안주인께 인사부터 드려야지.》 남칠이가 어느새 보호자연해서 이렇게 말하며 나무짐 내려놓을 자리를 가리켰다. 《그래요? 그런걸 난 또… 그럼 인사드리고 내가 져다드리지요.》 《됐네, 됐어. 사람이 너무 용한것도 탈이구만.》 송남칠이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그이께서 뻗치시려는 작시미를 제가 받아서 단단히 뻗치고 뒤일이 마음에 놓이지 않는듯 따라왔다. 정혁이가 그이를 자기 아버지에게 소개를 하니 그이께서도 이마의 땀을 훔치던 목자수건을 허리춤에 찌르고 머리를 깊숙이 숙이시였다. 그 정중성이 다소 흐려있던 오별장의 마음을 풀어주었다. 원래 성미가 무던한 그는 어쩐지 그이의 준수하신 용모며 어딘지 모르게 품위가 느껴지는 목소리며 사근사근한 례절바른 몸가짐이 너무 용해빠진듯한 행동과 이상한 조화를 이루면서 측은한 인상을 자아냈던것이다. 《그래 고향은 어디고 이름은 어떻게 부르나?》 《고향은 평양바루라는데 잘 모르겠어요. 이름은 증손이구요.》 그이께서는 이미 짜놓은대로 대답하시였다. 《증손이라면 아명이겠는데 관명은 없나?》 《관명이라는게 뭡니까?》 김일성동지께서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시였다. 《관명을 몰라? 어른이 돼서 짓는 이름말일세.》 《없는가봅니다.》 하고 옆에서 오정혁이 나섰다. 《어릴 때 부모를 다 여의고 산판으로, 공사판으로 떠돌아다니며 자란것 같습니다. 머슴을 살기는 이번이 처음이지만 농사일도 잘한답니다.》 《음- 불쌍한 사람이군.》 하고 오별장은 고개를 끄떡이더니 점잖게 말을 이었다. 《차차 지내보면 알겠지만 우리 집 인심이 그리 각박하진 않을걸세. 그러니 마음을 붙이고 한집안처럼 지내자구.》 《고맙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시한번 절하시고 이어 오정혁이 시키는대로 안주인과 정란이에게까지 굽석굽석 절을 하시였다. 안주인은 남편의 기분을 따라서 이름도 없이 자랐으니 얼마나 불쌍하냐고 동정하였고 정란이는 여태 옹알거리다가 정작 자기앞에 와서 절을 하시자 기겁해서 어머니의 치마꼬리를 붙잡고 키득거리며 숨어버렸다. 이때 어흠어흠 헛기침을 깇으며 안윤재가 마당으로 들어섰다. 살집이 좋은 불깃불깃한 얼굴이며 누런 호박단추가 달린 마고자에 푹 눌러쓴 풍덩이를 보고 김일성동지께서는 대뜸 그렇다는것을 짐작하시였다. 요즘은 아들 영호가 보위단일을 보게 되면서 그자신은 늘 껴입고 다니던 보위단의 제복을 드물게밖에 입지 않았다. 《증손이 이사람, 인사 여쭈게. 이 동네 보위단장어른이시네.》 하고 오별장이 그이께 인사를 시키면서 안윤재에게 말했다. 《우리 집에 새로 데려온 머슴이요.》 《젊은이가 탐탁하게 생겼소.》 안윤재는 인사삼아 이렇게 말하며 세세히 뜯어보았다. 이미 안윤재가 록록치 않는 인물이라는것을 허재률이나 최만득의 경우를 통하여 낱낱이 꿰뚫고계시던 김일성동지께서는 처음부터 이 령감의 새매같이 날카로운 눈에 어리숙한 머슴이라는 인상을 단단히 박아놓아야겠다고 생각하시고 그앞에 두손을 마주잡고 황송스러운 표정으로 서계시였다. 말을 많이 하는것이 재미가 적을듯하여 쭈밋쭈밋하시니 안윤재는 그것을 몹시 어려워하는 태도로 해석하고 대견스러운듯 고개를 연신 끄덕이였다. 《됐네, 됐어. 저리 가서 자네 일이나 보게.》 하고 손짓을 하는 그의 어조나 눈빛 속에는 아무런 의심도 느껴지지 않았다. 안윤재가 제아무리 눈을 밝혀도 혁명가가 자기 동네에 머슴군이 되여 찾아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하였던만큼 그런 각도에서 사람을 볼 생각은 전혀 없고 오히려 젊은이가 쓸모있어보이면 보위단으로 빼돌릴 궁리부터 하였다. 안윤재의 놀아나는 모양을 본 정란이의 표정은 또 상큼해졌다. 증손이로 말하면 엄연히 자기 집 사람인데 남칠이의 나무짐을 지고온것보다 안윤재가 제집사람 다루듯하는것이 더 비위에 거슬렸다. 제 오빠의 유약한 성격과는 달리 매사에 깔끔하고 승벽이 강한 이 처녀는 안윤재는 식자도 별로 없는것이 언제 봐야 자기 아버지를 가르치려드는것이 막 속이 상했고 게다가 룡정에서는 맥도 못추던 안영호가 부강촌에 돌아오자 총이랑 차고 소리치며 돌아가는것이 보기가 역해서 죽을 지경이였다. 정란이는 그런 자기 기분을 동무인 부금이에게 서슴없이 다 터놓았다. 부금이는 제 친아버지, 친오빠가 욕을 보는만큼 맞장구를 치지는 못했지만 그도 그런 문제때문에 순진한 가슴을 썩이고 있는 참이라 구슬픈 미소를 입가에 짓군하였다. 정란이는 새침해서 오빠를 할깃 쳐다보더니 《흥, 어디서 저런 사람을 데려와요?》 하고 바람소리를 일구며 안채쪽으로 사라졌다. 오정혁은 누이동생의 경망한 거동을 보고 낯색이 변하였다. 옆에 사람이 없다면 당장 후려치고싶었다. 우리 혁명의 령도자를 자기 집 마당에 이처럼 허술하게 모신것만 해도 속이 조마조마하고 걸핏하면 등줄기가 선뜩선뜩해지는데 이건 하필이면 제 누이동생이 이렇게도 못되게 굴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그였다. 그는 반사적으로 김일성동지의 표정을 살피였다. 그런데 그이께서는 빙그레 웃고계시였다. 그리고는 다른 사람 몰래 한쪽 눈을 찡긋해보이시였다. 그것이 무슨 뜻인지 딱히 짐작할수는 없었지만 그이께서 그닥 가슴에 새기시지 않는다는것만은 알수 있었다. 그러나 워낙 마음이 후하신 그이시기때문에 정혁이로서는 더 송구한 생각만 들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실상 이때 기분이 대단히 좋으시였다. 일은 비슷하게 되여간다. 잘하면 정혁의 어린 누이동생이 좋은 위장이 돼줄것 같은 예감도 드시였다. 그런데 문제는 오정혁의 섬약한 신경이다. 그의 표정을 보니 꽤 긴장한것 같은데 이런 분위기를 끌다가는 재미없겠다고 생각하신 그이께서는 발구에서 말을 떼여 마구간에 들이몰고 마초를 여물통에 쏟으시였다. 머슴방벽에 기대여있는 비자루로 널려진 마초를 쓸어모으는데 도끼를 박아놓은채로 있는 모태가 어중간하게 놓여있어서 그걸 한옆으로 세우시였다. 그옆에 흩어져있는 장작개비와 통장작도 아궁옆에 가리시였다. 《일손이 재군.》 유심히 그이의 거동을 지켜보던 안윤재가 이렇게 말했다. 《힘도 안주사만큼은 쓸것 같던데요.》 남칠이가 투박한 손으로 깔따귀모양의 마라초를 말아물며 슬쩍 한마디 한다. 안윤재는 같잖다는듯이 남칠이를 아래우로 훑어보더니 사람값에 들지도 않는것하고 말을 건네는것이 체면에 걸린다는듯 오별장을 향해 생뚱같은 말을 꺼냈다. 《이 집 사랑방구들이 내지는 않던가요?》 《지난가을에 구들을 뜯었지요. 벌써부터 잔치걱정이시군. 그럴것 없이 안주사가 직접 들어가보시지요.》 오별장은 이렇게 말하며 사랑방 퇴마루에 한쪽무릎을 꿇고 방문을 열어젖혔다. 《뭐 그럴것 없소. 이 집 방이야 내 다 알지요. 그러나저러나 청첩을 200장은 보내야겠고 점잖은분들한테는 직접 찾아가봐야겠는데 이게 또 조련찮은 일이웨다레. 난 그저 오별장령감만 믿수다.》 남칠이는 안윤재를 힐끔 돌아보더니 겨우 부시깃을 갖다대고 두어모금 빨던 마라초를 짚세기 뒤꿈치로 단단히 밟아비틀어버리고 두손을 탁탁 털었다. 그러다가 주춤 대문기둥을 잡고 서버렸다. 동구쪽에서 무엇을 짓마스는것 같은 말발굽소리가 울려왔다. 그것도 한두마리가 아니라 10여필은 잘될것 같은 말발굽소리였다. 오별장의 뒤를 따라 사랑방으로 들어가려던 안윤재도 엉거주춤 퇴마루에 한발을 걸쳐놓고 귀를 강구더니 도로 신을 더듬어신으며 중얼거렸다. 《안도경찰같은데 무슨 일인지 모르겠군. 일전에 빼앗긴 그 오가자공산당때문인가?》 안윤재가 한손으로 뒤짐을 짚고 다른 한손은 분주히 휘저으며 대문으로 다가가니 그를 맞받아 새까만 가라말 한필이 거품을 내불며 대가리를 들이밀었다. 안윤재가 말한대로 경찰제복을 입은 팔자수염이 뛰여내렸다. 《보위단장이 여기에 있는걸 찾았군.》 하고 가볍게 경례를 붙여보인 그자는 골목을 지나는 기마경찰들에게 소리쳤다. 《집집마다 샅샅이 뒤지라구. 수상한놈은 용서없이 잡아족쳐!》 《아니 과장이 어떻게 선통도 없이 직접 이렇게…》 안윤재가 거칠게 코김을 내부는 말고삐를 잡아주며 일부러 아양기를 죽이고 틀스럽게 말했다. 《보위단장, 이거 시절이 왜 이렇게 소란스럽소?》 과장이라는자는 거치른 동작으로 장갑을 벗어서 승마바지의 먼지를 탁탁 털며 불평스럽게 말했다. 훅-하고 내뿜는 입김에서 익은 과일내같은 술냄새가 풍겨왔다. 《웬일이시오?》 안윤재는 말을 마당안으로 끌어들이며 심중한 표정을 지었다. 술자리에 앉았다가 다급히 달려나온것이 분명하였다. 《에- 그런건 묻지 마오. 비밀이요. 그런데 동네에 무슨 수상한놈이 나타난게 없소?》 과장이라는자는 팔자수염을 갈라붙이더니 엄지손가락을 코방울에 갖다대고 코를 풀면서 물었다. 《수상한놈이 나타나면 과장님이 수고스럽게 래림하도록 기다리겠소. 우리가 제꺽 손을 쓰지.》 《여보, 부강촌보위단이 그렇게 똑똑해서 전날은 다 잡은 공산당을 빼앗겼소? 또 무엇이 들어왔다는 정보가 왔소. 그것도 거물이 지도사업을 내려왔다는거요.》 《전날에 빼앗긴건 우리때문이 아니라 그 경찰에서… 하긴 지난날이야기를 옴니암니 캘 필요야 없지요. 헌데 그 정보라는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씀하시는건가요?》 《아, 아, 그런건 묻지 말라는데…》 하고 과장이라는자는 엄한 눈짓을 해보이고나서 때마침 다가오는 오별장의 인사를 틀스럽게 받았다. 《그새 편안하시오? 이 집에는 낯선사람이 온게 없겠지?》 과장이라는자는 이렇게 물으며 거들먹거들먹 사랑채쪽으로 걸음을 옮겨놓다가 그사이 모태를 옮겨놓고 장작을 패고계시는 김일성동지를 보고 주춤 걸음을 멈추었다. 《오령감, 저건 누구요?》 한순간에 축 처져붙었던 팔자수염이 빳빳이 일어서는듯한 날카로운 목소리였다. 오별장은 까닭없이 후들거리며 서둘러 대답했다. 《우리 집 머슴이요. 전번에 과장님이 우리 집에 왔을 때 있던 머슴은 내보내고 딴 사람을 데려왔지요.》 과장은 오별장의 말이 사실인가 아닌가 따져보듯 김일성동지의 장작패시는 모습과 오별장의 얼굴을 번갈아보다가 그 의심쩍은 눈길을 그대로 안윤재에게로 옮기였다. 《이 집 머슴이 틀림없다니까요.》 안윤재도 등달아 보증을 하며 공것을 좋아하는 이 팔자수염이 불시에 들이닥친 진짜 목적을 들추어내려고 말머리를 돌렸다. 《부강촌같은데 무슨 거물이 내려오겠소? 여기서는 길목을 다 막고 지켜보아도 걸리는건 맨 송사리뿐이라니까요. 저번의 그 오가자에서 왔다는 공산당같은것이 고작이지요.》 《아니, 아니, 그래도 명월구에서 그런 통보가 왔단말이요. 똑똑히 눈을 밝혀야 하오. 이제 오다가 한패를 산속에 내보냈으니 들어온것이 사실이라면 잡아낼거요. 눈이 하얗게 쌓였는데 발자국을 내지 않고 다닐 재주가 있소? 내 그걸 똑똑히 다 일러보냈단말이요.》 아직도 취기가 가시지 않은 과장놈은 횡설수설하다가 문득 돌아섰다. 자기가 해서는 안될 말을 지껄였다는 생각이 든 모양이였다. 《그러나 부강촌은 내가 다 뒤져봐야 하겠소. 령감들이 음침한데 숨어서 무슨 꿍꿍이를 하는지 모르겠단말이요.》 과장이라는자가 같지 않게 을러메니 안윤재는 장히 가소로왔지만 쩔쩔매는척하면서 섭섭한 소리를 하였다. 《뒤져보고싶으면 실컷 뒤져보시오만 뭐 별건 없을거웨다. 그건 결국 이 안윤재를 믿지 못하겠단 소린데 마음대로 하시오.》 《허- 이 령감은 또 왜 이래?》 하고 과장은 안윤재를 흘겨보더니 장갑으로 어깨를 툭 쳤다. 《여보 령감, 공산당의 거물이 내려왔다는 통보가 저 돈화쪽에서 날아왔단말이요. 뭘 알기나 하고 이래?》 《아니 그건 또 어떻게 하는 말씀인지 모르겠소. 아까는 명월구에서 왔다고 하지 않았소. 경우를 따져봐도 무슨 통보가 왔으면 의당 명월구에서 오겠지 어째서 하필 돈화에서 온단말이요?》 《글쎄 그게 조화란말이요. 그 우리 장상민과장이 돈화와 련계가 깊지 않소? 그런데…》 하고 팔자수염은 기둥뿌리같은 실한 목을 힘들게 비틀어보이며 잠시 생각하는척하더니 사랑방의 퇴마루에 털썩 걸터앉았다. 《서장도 한심하지. 그런 중요한 련락을 받았으면 똑똑히 캐여볼것 아닌가? 나이는 몇살이나 되고 옷차림은 어떻고 하다못해 지나가는가 아예 침투해있자는것인가 하는것이라도 알아봐야 할게 아닌가? 훌 지나갔으면 이렇게 덤벼쳐봐야 무슨 소용이겠소. 밤낮 마장에 눈이 시뻘개서 돌아가다나니 공사에는 통 관심이 없단말이요.》 《참 과장이 속이 상하겠소.》 하고 안윤재가 괴여올리니 과장은 그만해도 속이 좀 풀리는지 장갑을 한옆에 내던지고 풀 한숨을 내쉬였다. 《말 마오. 이건 밤낮으로 공산당성환데… 어디 해먹겠소. 바로 안도현성 코밑에서 공산당이 총을 메고 돌아다니는 판인데 부강촌에 다니러 온 공산당까지 잡아낼 방법이 어데 있는가말이요.》 과장이라는자가 이처럼 푸념을 늘여놓고있는데 동네를 뒤지고 있던 경찰들이 련이어 보고를 하러 들어왔다. 별것이 없다는 소리가 몇사람 계속되자 과장놈은 벌컥 역증을 터뜨렸다. 《싹 걷어치워! 네놈들이 나를 속여보자고 해도 어림없다. 집에 없으면 산에 올라가서라도 잡아가지고 와. 공산당을 잡지 않고서는 집에 돌려보내지 않을테다.》 안윤재는 과장놈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자 그놈의 속심을 알아차렸다. 어떻게 트집을 잡고 시간을 끌어서 한밥 먹겠다는 수작이다. 그렇다면 이쪽에서도 아낄것이 없다. 언제 봐야 미련하고 어리석은것이 무슨 실속있는 뒤받침은 안돼주겠지만 어쨌든 안도경찰의 관할하에 사는 조건에서는 저 메돼지같은것을 잘 삶아놓으면 언젠가는 써먹을데도 있을것이다.- 이렇게 생각한 안윤재는 때마침 동네에 경찰이 와서 돌아친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온 안영호에게 인사를 시키는 한편 사람을 집에 보내여 술상을 푸짐하게 차리도록 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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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럭하고 문 여닫기는 소리가 나더니 문풍지가 한참이나 떨었다. 《이쿠 꽤 맵짜군.》 누가 문전을 나서자마자 부르르 몸을 떨며 동구길로 종종걸음을 친다. 뒤따라 또한번 문이 여닫기고 진저리를 치며 아직 새벽어둠이 짙게 깔린 보위단경비막쪽으로 달려간다. 새파란 비수같은 추위가 이를 빠드득빠드득 갈며 그 누군가를 노리고있는것 같은 이른새벽이였다. 문 여닫기는 소리가 잦은것으로 보아 이제는 투전판도 거의 파장이 돼가는 모양이다. 그러나 방안에서는 따고가는놈은 작두에 손목을 잘리울줄 알라고 위협하는 소리, 개평을 내라고 흡진갑진하는 소리가 아직 그치지 않는다. 보매 남칠이가 보위단소대장 기득이한테 손목을 잡힌 모양이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함실아궁에 장작을 지펴넣으시며 생각에 잠기시였다. 어제 산에서 오정혁이가 말한데 의하면 남칠이는 이제는 투전도 술도 딱 손을 끊고 바른생활을 하겠다고 맹세했다는데 간밤에도 여전히 투전방에서 밝혔다. 역시 사람의 개조가 말처럼 쉽게 되는것은 아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부강촌에 들어오실 때부터 맨 첫번째 공작대상으로 남칠이를 지목하고 정혁에게 그를 어떤 방향으로 교양하라는것을 일일이 가르쳐주시였다. 아버지가 일생 꾸준히 땅을 뚜지다가 안윤재와 경작권때문에 말썽이 일어나 결국은 땅을 떼우고 산판으로 떠돌아다니다가 객사한것이 그의 마음속에 허무감을 불러일으켰고 그것이 자라 자포자기에로, 타락에로 치달아갔지만 바탕은 좋은 사람이니 그 집에 닥친 불행의 진정한 원인을 깨우치고 그런 불행을 없애기 위하여 싸움의 길로 이끌어준다면 어렵지 않게 개변될수 있고 따라서 부강촌에 조직을 꾸릴 발판을 만들수 있을것으로 예상하셨다. 마침 만날 기회도 좋았다. 남칠이는 땅이 없다보니 여름내 산판에 들어가 나무를 했다. 그것을 겨울에 져내려 량강구나 송강에 내다 팔아서 연명하고있었다. 오별장네도 지난해에는 일손이 딸려 겨울나이차비를 똑똑히 못해서 겨울에 나무를 져내리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래서 김일성동지께서는 거의 날마다 산에 오르시였다. 그런 때 오정혁이도 함께 가서 사업토의를 하였다. 왕청, 연길, 화룡을 비롯한 동만각지와 국내에서 오는 보고며 련락도 오정혁을 거쳐 이 산속에 전달되군하였다. 김일성동지께서 문건을 보거나 사색에 잠기시는 사이 오정혁은 머슴으로서 그이께서 하셔야 할 일을 하면서 망을 봐드리였다. 남칠이가 가려놓은 나무가리는 같은 등성이에 있어서 누구도 안보는 눈덮인 밀림속에서 우등불을 피워놓고 얼마든지 깊은 이야기를 나눌수 있었다. 처음에 오정혁이가 이렇게 힘들게 일해서 몇푼씩 번 돈을 술독에, 투전방에 다 처넣으면 되겠는가고 걱정을 하니 벌컥 화를 내면서 다시 곁에 오지도 말라고 소리쳤다. 그런 보고를 받으신 그이께서는 이튿날 그렇게 에돌지 말고 직판 아버지의 자식으로서 아버지가 한을 품고 죽었는데 그 원쑤를 갚을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술이나 퍼먹고 투전방에나 다니는것이 무슨 인간이냐고 답새겨주라고 말씀하시였다. 오정혁이가 그대로 들이대니 남칠이는 좀 뜻밖이였던지 쭝해서 바라보았다. 그다음 골목이나 산판에서 만나면 슬슬 눈치를 보며 피하려 하였다. 그런것을 정혁이가 바싹 다잡고 들어서 자기 역시 당신보다 더 큰 죄를 짓고있다고 하면서 괴로운 심정을 터쳐놓았다. 당신은 나라의 형편이 어떤지 잘 몰라서 마음편히 투전장을 주무르고 술에 얼근해서 살아갈수 있겠지만 나는 그렇지 못하다, 지금 왜놈들은 우리 나라를 다 먹고 만주에까지 조선사람들을 따라와서 마구 죽이는데 부강촌에서는 왜놈들과 싸울 생각을 하는것이 아니라 왜놈의 편이 되여 조선사람들을 죽이고있다, 이걸 번히 눈뜨고 보면서도 말 한마디 못하니 이게 얼마나 절통한 일인가고 자기의 괴로운 심정을 이야기하였다. 그날 남칠이는 별말을 하지 않았지만 상당히 충격을 받은것 같았다. 오정혁은 김일성동지께서 주신 방향대로 남칠이에게 계속 접근하여 부강촌사람들의 동태며 조선과 만주의 정세를 이야기해주고 우리도 다른 지방 청년들처럼 뭉쳐서 왜놈들과 싸울 준비를 해야 한다고 절절히 타일렀다. 오정혁은 본래 내성적인 사람이라 남칠이같은 우락부락한 사람을 상대로 교양을 한다든가 군중속에 들어가서 선동사업을 하는것 같은 일은 몹시 힘겨워하였지만 김일성동지께서 뒤를 받쳐주시니 말하는데 자신이 생기고 두려운것이 없어졌다. 하루이틀 지나는 과정에 남칠이는 마침내 자기도 생활을 정리하고 야학이 생기면 나가겠다고까지 말하였다. 오정혁이가 술을 끊고 투전에서 손을 떼라고 하니 처음에는 좀 당황해하였으나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한쪼각이라도 남아있고 억울하게 객사한 아버지의 한을 풀겠다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다면 술을 퍼먹고 투전장을 주무를 겨를이 어데 있는가, 지금 황구령만 넘어가면 조선청년들이 왜놈들과 해보겠다고 맨주먹으로 총을 빼앗아내고있다, 이렇게 들이대니 남칠이도 주먹으로 땅을 치며 자기도 결심하고나서겠다고 하였다. 그런데 며칠이 못가서 남칠이는 또다시 술을 퍼마시고 《밀양아리랑》을 흥얼거리며 돌아가는가 하면 량성태네 마실방에 나타나서 투전으로 밤을 패기도 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보위단원들과 마을청년들이 많이 모여드는 동네초입의 이 집에 자주 찾아오시였다. 보위단의 경비막에서 멀지 않고 주인 량성태가 술이며 엿이며 황아따위를 거리에서 받아다놓군하여 답답한 동삼 한철은 이 량성태네 집이 마을청년들의 도회청처럼 되기도 하였다. 한쪽에서는 투전이 벌어지고 다른쪽에서는 추운 경비막에서 언 몸을 녹이러 온 보위단원들이나 투전에서 돈을 다 빨리운 마을청년들이 그 누가 개평으로 엿가락이나 낼가 해서 눈이 시뻘개있는 투전군들쪽을 흘끔흘끔 돌아보며 뒤숭숭한 소문을 주고받기도 하고 이놈의 세상이 어디로 나가자고 이 모양인가 하고 개탄하기도 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들속에 끼여앉으시여 명월구쪽에서는 삐라를 자꾸 내다붙이는데 여기는 왜 그런것이 없느냐고 물으시기도 하고 부강촌이 다 좋은데 야학이 없어서 틀렸다고 불만을 말씀하기도 하시였다. 그러면 청년들은 그이를 깨우치느라고 저마다 와짝 떠들어대며 자기의 유식을 뽐내였다. 앞을 다투어 야학이 어떤것이며 거기서는 무엇을 가르치게 되여있으며 아무 고장에는 누가 세운 어떤 야학이 있고 또 아무 마을에는 이러저러한 야학이 있었는데 거기서는 무엇을 가르쳤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삐라를 본 이야기도 나왔다. 어쨌든 이러는 과정에 청년들은 사회정치문제에 관심이 높아지고 때로는 투전판에서 짜증을 낼만큼 론쟁을 벌리기도 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 론쟁에 직접 간참하시지는 않았다. 다만 그럭저럭하다가 이야기가 시시한 고담이나 신변잡사로 기울어지면 또다시 사회정치문제쪽으로 관심이 기울어지도록 팔도구에서 왜놈군대가 조선녀자에게 손을 대려고 하다가 광산로동자들이 달라붙어 때려죽였다든가 어떤 왜놈의 고관이 기차를 타고 가다가 권총을 차고 나타난 조선청년에게 끌려갔다든가 하는 소문을 넌지시 꺼내놓으시였다. 해마다 투전으로 흥성거리던 량성태네 마실방은 이해에 이상스레 번져 마치 이 산골동네의 사회정치문제연단처럼 론쟁마당으로 변했다. 동네청년들은 모두 여기에 열중했고 때로는 투전목을 쥐고있는 패들조차 한마디씩 이야기에 끼여들군하였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이 마실방이 이렇게 변해가는것이 누구때문인지 전혀 눈치채지 못하였다. 이 집에서 종시 해결을 보지 못한 문제는 가슴에 묻어두고 갔다가 절반쯤은 오정혁을 찾아가서 해명을 받고 절반은 안영호를 찾아가서 해명을 받았다. 정반대의 대답을 가지고 이튿날밤 다시 만나면 더 치렬한 론쟁이 붙었다. 오정혁의 해명은 대개는 생활적이고 론리정연하나 안영호의 해명은 억지가 많고 어떤 경우에는 강압적으로 되였다. 하루이틀 하는 사이에 차츰 안영호를 찾아가던 마을청년들의 수는 줄어들고 보위단원들속에서도 오정혁을 찾아가는 사람이 하나둘 늘어났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량성태네 마실방분위기를 눈에 보이지 않는 줄을 가지고 조종해나가시였다. 그이께서는 그들이 시시한 잡담과 안일하고 무질서한 생활습성에서 벗어나 사회정치문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 현실은 그들에게 너무나 명백한 해답을 주고있는것만큼 어차피 혁명의 길에 나서게 될것이라고 생각하시였다. 밤새 이야기된 기본내용을 미리 정혁에게 알려주고 찾아오는 청년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해주며 누구를 찾아가서 어떤 말을 하라는것을 깨우쳐주군하시였다. 자신께서는 그들이 마음놓고 이야기를 벌리도록 누가 시키기 전에 함실에 나가 군불을 뜨끈뜨끈하게 지펴주고 시원한 물을 떠다 섬겨주기도 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부강촌사람들의 생활속에 깊이 침투해들어가시였으며 증손이라는 이름은 청년들뿐아니라 아이들, 아낙네들, 늙은이들에게도 친근한 이름으로 되였다. 그이께서는 누구나 손붙이기 싫어하는 일이면 누가 시키기 전에 웃는 얼굴로 해제꼈고 사람들의 부탁이면 첫마디에 다 들어주시였다. 이것을 너무 용해빠진 표현으로 보는 사람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일이 사랑이라고 부강촌의 모든 사람들이 그이를 사랑하였다. 김일성동지께서 함실아궁에 바람막이로 기와장을 세우시고 일어서시려는데 또다시 문이 벌컥 열리였다. 《넨장, 남칠이 인심 기다리다가 목젖 떨어지겠다, 나는 가네.》 이런 목소리와 함께 상범이가 털신을 끄당겨신느라고 끙끙 갑잘랐다. 《왜 가나? 그만큼 땄는데도 개평을 못내겠대?》 김일성동지께서는 밤마다 투전군이상으로 왼심을 쓰다가 새벽이면 눈이 시뻘개가지고 돌아가군하는 상범을 측은하게 바라보시였다. 《그자식 점점 더럽게 놀아난단말이야.》 상범은 당장 갈것처럼 바싹 신끈을 조여신더니 좁은 함실로 내려왔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바람가리개로 막아놓은 기와장을 치우고 부지깽이로 잉걸불덩이를 끄집어내주시였다. 《경우가 그러면 못쓰지 않아? 그런데 잃기는 누가 잃었대?》 《허, 우리 소대장이 다 빨리웠지. 그자식, 이제 집에 들어가면 경을 칠걸, 소사겠다고 꿍져둔 아버지 전대를 몰래 털어왔다던가… 그리군 우리 졸자들한테 와서 화풀이를 하겠지. 난 사실말이지 오늘저녁엔 그 돈으로 엿가락 하나 못얻어먹었구만.》 《남칠이가 오늘은 좀 이상하군?》 김일성동지께서는 개평을 못얻었다는것으로 하여 이처럼 속이 상해돌아가는 이런 인간을 어떻게 바른 생활의 길로 돌려세울것인가 막막한 생각이 드시였다. 하고싶은 말씀이 얼마나 많은지 몰랐다. 그러나 남의 집 머슴인 증손이로서는 그런 말을 한마디도 하실수가 없었다. 하기는 이런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부강촌에만도 한두사람이 아니다. 그런것만큼 지금 오정혁이가 추진시키고있는 야학설립을 서둘러야 하겠는데 그것이 오정혁이 한사람의 발기로 되면 지난날 오정혁이의 사상동태가 대체로 알려져있는 조건에서 불리한것이 많았다. 일정한 핵심이 꾸려지기 전에 덜썩 야학부터 내온다 해봐야 운영도 문제고 방향도 문제였다. 그래서 발판이 될 사람들을 교양하는 일을 앞세우고있지만 이런 한심한 말을 하는 사람을 옆에 두고 한마디 말씀도 할수 없다는것이 혹독한 정신적고문처럼 생각되시였다. 《이상하다마다. 그자식 정말 거름을 주무르다 온것이 분명해. 내가 소대장놈한테 단련받기가 싫어서 그자식 속임수를 까밝히려고 눈을 딱 부릅뜨고 살피는데 오그랑수는 하나도 없단말야, 그런데 매번 갑오가 아니면 여덟이거던. 한번은 기득이가 갑오를 잡고 이번에는 봉창을 했다 해서 어서 까라고 다긏다대는데 이자식은 석장을 뽑아가지고 그냥 꾸물대더니 하는수없이 깐다는게 열끝 뻥통이 아니야. 개판이 돼서 화투장을 척척 섞어대는 그 상통은 나도 쳐갈기고싶더군. 그러니 기득이가 얼마나 약이 올랐겠나. 이자식아, 똑바로 섞어라 하고 소리칠 때는 한바탕 붙는가 했지, 그런데 남칠이란자식, 돈을 딴놈이라 속이 후하더군. 슬슬 얼려맞추면서… 허 내 그자식 꼴 더러워서 정 못보겠더라.》 《그리구도 개평 한돈 안내놓아?》 김일성동지께서는 남칠이가 투전에서 손을 끊겠다고 맹세한만큼 그 소위가 상범이이상으로 괘씸하게 생각되시였으나 그것을 곧바로 표현하실수가 없으니 상범이의 말을 부축하실수밖에 없었다. 《그러게말이지, 증손이가 힘써 군불을 때주는 공도 아는것 같지들 않다니까. 그자식 오늘은 초저녁부터 어찌나 구두쇠로 놀아나는지… 더러워서 못보겠단말야.》 《상범이는 왜 투전을 안하나?》 《내가 투전을 해? 허허허. 증손이, 웃기지 말라구, 나한테 무슨 밑천이 있어서 투전을 해?》 《투전을 하고싶은데 밑천이 없어서 못하나?》 《그러지 않아도 나는 투전을 못해. 우리 집에 한번 와보라구. 어머니가 늘 골골 앓지, 동생들은 오롱조롱하지, 나도 땅만 있었으면 농사를 착실히 지어봤으면 좋겠는데 나한테 땅을 주겠다는 사람도 없고… 또 내가 버들밭을 일굴동안 우리 어머니가 기다려줄것 같지 않아. 그래서 보위단짓을 하며 근근히 살아가는데 내가 투전에 손을 붙였다는 소문이 나면 우리 어머니는 그날로 숨을 거두실거야.》 《어머니는 무슨 병이게?》 김일성동지께서는 리상범에 대해 대충 들으신적이 계시였다. 정혁이의 견해를 들어봐도 보위단원이며 어리무던하고 실속이 없는 사람이라 크게 중요시할 대상이 못된다는 정도의 평가였다. 정작 본인의 이야기를 듣고보니 역시 좀 트이지 못한 사람인것만은 사실이지만 생활에 대한 태도에서는 누구보다도 건전한 의식을 가지고있다. 상범은 아궁앞에 펼쳐댄 발갛게 물든 자기의 북두갈구리같은 손을 들여다보며 한참 말을 못하더니 김일성동지를 눈물이 글썽해서 돌아보았다. 《우리 어머니는 못산대.》 《아니 그건 누가 그래? 어떻게 앓기에 그런 말을 다 하나?》 김일성동지께서는 놀라서 물으시였다. 《저 량강구에 있는 지대현선생이 진맥을 했어. 약도 한제 지어주고… 뜸자리도 잡아주고… 고맙게 굴더구만. 그 선생이 너무 고맙게 굴길래 지선생을 모시고 온 안주사말대로 보위단옷도 입었지, 그런데 어머니병은 적이 뭉친건데 분돈이라누만. 배에서 무슨 돼지가 뛴다는지… 풀떡풀떡하는것은 사실이야.》 《분돈이라니? 어디가 어떻게 아프길래 한번 보고 그런 소릴해?》 김일성동지께서는 순간의 흥분을 억누르시기 힘들어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상범은 저으기 놀란 눈길로 그이를 한참 돌아보더니 말했다. 《증손이는 적이 무슨 병인지 알아? 배속에서 돼지가 뛰는것도 알구?》 《알지 않구. 나도 그런 병 앓다가 죽는 사람을 둘이나 봤어. 그래 상범이 어머니는 어떻게 앓아?》 김일성동지께서는 이미 후퇴할수가 없게 되였다는것을 느끼시고 되잡아 물으시였다. 《먹은게 내리지 않구 명치끝이 늘 쓰리는데 그속에서 주먹같은것이 치민다질 않아, 그게 돼지가 뛰는게라누만. 뭐 이제는 뼈만 남은게 보기도 무서울 지경이야. 어머니도 지선생이 적이라고 했다는 말을 듣자 이제는 죽을날만 기다리는 눈치야.》 《그래 상범이는 어떻게 할 차비야?》 《어쩔수 없지뭐. 남칠이가 개평이라도 좀 주면 엿가락이라도 한가락 얻어다 대접할가 했더니 그도 틀렸구… 래일쯤 말미를 얻어 송강 무당네 집에 가서 부작이라도 한장 사와야겠어. 부작으로 효험을 봤다는 사람도 있더구만, 전날 명월구인단장사가 인단 한곽을 공짜로 주길래 그걸 어머니께 드렸더니 속이 한결 편안하다누만.》 김일성동지께서는 말씀을 못하시고 잘 타는 아궁안의 불만 헤치시였다. 동네에서 못난이로만 통해있는 상범이에게 얼마나 뜨거운 인정의 세계가 있는가, 그가 개평을 기다리고 엿가락을 넘보는것을 누구나 다 빈충맞게 생각했지만 그 가슴에 어머니에 대한 효성이 깊이 간직되여있다는것은 아무도 알아주려 하지 않았다. 상범이자신도 그것이 그리 고상한 감정이라는것을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남에게 터놓기를 부끄러워한다. 하기는 이런 투전판이나 보위단의 경비막같은데서는 효성같은것이 못난이의 중요한 징표로 될수도 있다. 그런 사고방식, 생활습성이 혁명을 반대하는 길로 사람들을 내모는것이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남칠이가 바지춤을 추켜올리며 나왔다. 《넨장, 또 잠만 밑졌군.》 하고 골목길로 나서는 그의 어깨는 축 처져있었다. 돈을 한전대씩 따가지고도 꼴이 휘주군하기는 매일반이다. 《여보게, 남칠이, 해장이나 같이 하자구.》 뒤미처 문이 열리며 기득이가 소리쳤다. 부드러운 목소리다. 돈을 다 떼우고 방금까지 옥신각신하던 그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그따위소리 말고 오늘이라도 소를 사다매게, 자네 솜씨로 이집출입을 그냥 하다간 쥐 소금녹이듯 소살 돈을 다 불어먹을테니…》 《자식두…》 기득이는 내뽑았던 목을 문지방우에 떨구고 중얼거렸다. 그의 손에는 밤사이 남칠이에게 다 빨리웠던 돈이 쥐여져있었다. 개평한잎 주지 않은 돈이라 고스란히 그대로 돌아온 돈을 움켜쥔 그는 무슨 환영을 쫓는 사람처럼 우두커니 새벽어둠속을 바라볼뿐이였다. 부강촌생활이 서서히 흔들리기 시작한다. 완고하게 얼어붙었던 사람들의 가슴밑창에서부터 진실로 사람다운 생각들이 천천히 굽이돌기 시작하였다. 이제 그것이 소용돌이를 일으켜 얼어붙은 정신의 동토대를 테고 온 겨레가 하나의 지향을 안고 도도히 흘러가는 혁명의 본류에 합류할 날도 멀지 않았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마실방을 대충 거두어놓으시고 이제는 희슥이 지새여가는 동네로 돌아오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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